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이미 대지의 탓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아무런 잘못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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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젖은 총신을 겨눈다.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은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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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된 감정은 파도같이 동적인 표현을 요구한다. 따라 어조가 율동화하며 나온다. 이것은 거의 운문의 경지다. 그러므로 시는 서정문의 최고형식이라 할 것이다.
산문에서도 서정문은 가장 감정적인 글이다. 자칫하면 값싼 감상(傷)에 빠지기 쉬우니 내용이나 형식을 물론하고 고상한 풍격(風格)을 내는 데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품격이 없으면 거짓 울음이요, 거짓 넋두리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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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에 대한 건축가적 정의가 아니다. 생활인으로서 인생관으로서자기류로서, 창의 정의를 음미 · 천명했다. 가장 평범한 대상에 학적.
술어를 끌어 이론하는데, 탈속·청기(淸奇)한 풍미가 있다. 수필의 좋은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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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는 문장 공부가 된다. ‘오늘은 여러 날 만에 날이 들어 내기분이 다 청쾌해졌다‘ 한마디를 쓰더라도, 이것은 우선 생각을 정리해 문자로 표현한 것이다. 생각이 되는 대로 얼른얼른 문장화하는습관이 생기면 ‘글을 쓴다’는 데 새삼스럽거나 겁이 나거나 하지 않는다. 더구나 일기는 남에게 보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쓰는 데 자유스럽고 자연스러울 수 있다. 글 쓰는 것이 어렵다는 압박을 받지 않고 글 쓰는 공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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