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점까지 나는 어떤 식으로든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가 어떤 위험에 빠졌는지 알아차리기에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크리스마스에서 겨우 이틀이 지났고, 연말까지는 닷새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하던 여자와 완벽하게 낯선 세상에 던져져 있었다.
남부 티롤 지방소도시에서 열린 나와 아내의 결혼식에서 그곳 시장이 낭독한 글이었다. 결혼식은 볼차노 위쪽 고산의 풀밭에서 진행되었다. 산꼭대기에 마지막으로 남은 겨울눈이 녹는 동안, 시장은 오전에 눈부신 햇살이 빛나는 아랫마을에서 어린 남자아이의 장례식을 치르고 온 뒤였다. 자전거를 타다가 관광버스에 치인 그 아이는 사고 현장에서 아버지의 품에 안겨 사망했다. 사랑과 고통이 같은 날 몇 미터의 고도 차이를 두고 벌어졌다. 엄마는 눈물을 훔쳤고, 내 친구들은 손을 맞잡았다. 우리는 소중한 순간들을 그저 온전히 누리자고, 보르헤스의 말을행동으로 옮기자고 약속했다. 삶이 우리에게서 그냥 미끄러져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던가.
그는 보고 있기 즐거운 남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살이조금 찐 듯했지만 찬영은 여전히 젊은이의 몸을 갖고 있었다.숙희는 문지방에 서서 상체를 반쯤 기댄 채 찬영의 몸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아름답다 느꼈던 많은 것들이 그것을 붙잡는 순간 곤란함이 되어 곁에 남았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엔예전에 비해 에너지가 달리는 기분이었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 취급을 받게 되는 건 상상만 해도 싫었지만, 젊은 남자들이점점 더 어린애처럼 보이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뭐가 되었든 무언가에서 또다시 멀어지고 있다는 이 생생한 느낌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모든 것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이 생경함. 그것만큼은 새롭다고 숙희는 자조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규가 커피를 쏟으면 지경을 보고, 지경이화분에 걸려 넘어지면 규를 본다. 지경이 과음하면 규를 보고,규가 하품하면 지경을 본다. 그 조용한 관음의 공기 속에서 규와 지경은 서로 뺨을 갈기면서도 끝까지 가는 사이 나쁜 부부처럼 산다. 둘은 최후의 멤버가 될 것이다. 아, 신나!어느 날, 규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 말한다. 지경이 흘끗본다. 지경의 표정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사람들의 눈이 돌아간다. 저마다 망상하며.
저런 것도 음악이 되나.저게 정말 음악이 맞나.들으면 들을수록 더 알쏭달쏭해졌다. 심란한 얼굴로 비트에귀 기울일 때, 밴드에서 유일하게 악기를 연주하는 아들의 기타 솔로가 시작되었다. 내심 고대하며 아들의 연주를 지켜보았다. 그래, 너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