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요가수트라 강독 1 : 삼매
배철현 지음 / 김영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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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는 나에게 실패의 경험이다. 요가를 예쁜 운동복 입고 힐링 되는 음악과 함께 스트레칭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나는 요가 학원 등록하고 겨우 한 달 정도 나가고 그만뒀었다. 이유는 너무 지루해서다. 한 시간이 천근만근 흘러갔다. 잡념이 자꾸 출몰하여 수업 내내 집중하기 힘들었고 언제 끝나나 시계를 자주 보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요가는 단순한 신체 운동이 아님을 깨닫는다. 운동보다는 명상 행위에 가깝다. ‘마음을 다스려 행위를 정갈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 p.71 이다. 요가에 대해 나는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던 거다.

📝”요가는 깊은 바닷속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이란 진주를 응시할 수 있도록 요동치는 마음의 물결을 잠잠하게 하려는 훈련이다. 또한 요가는 매 순간 출렁거리는 마음과 몸의 떨림을 소멸하려는 시도다.”

📝”요가 수련자는 요동치는 세상을 관찰하지만 그 세상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저 세상뿐 아니라 자신의 미묘한 생각까지도 이탈과 초월을 통해 객관적으로 무심하게 바라볼 뿐이다.”

📝”요가 훈련의 마음가짐은 과거에 자신이 이룬 성과에 대한 안주도 아니고 미래에 대한 근심도 아니다. 과거와 미래의 짐을 훌훌 벗어 던지고 온전히 ‘지금’에 몰입하는 기술이다. ‘지금’에 집중하는 능력은 모든 배움, 특히 요가와 같은 영적 훈련의 핵심이다.”

p.63~69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는 고대 인도의 요가를 집대성해 편집한 경전으로 총 4개 장과 195행의 짧은 경구로 이루어져 있다. <삼매>는 그 첫 장으로 51개 경구와 요가 수련의 핵심과 사상을 담고 있다. 태권도 띠에 비유하자면, 흰 띠에서 노란띠 단계다. 흔히 우리가 ‘삼매경에 빠지다’ 할 때 그 삼매다. 본격적인 요가 수련에 앞서 몰입의 상태로 진입하는 첫 관문이다.

이 책은 고전문헌학자이자 매일 요가 수련을 하고 있는 배철현 교수의 <요가 수트라> 해설서다. 원전에 담겨 있는 산스크리트 단어 하나하나를 분해하여 해독하고 의역을 통해 더 깊이 있게 깨달을 수 있도록 풀이해준다. 단순 해설에 그치지 않고 동서양의 인문학을 아우르며 경전의 참뜻을 현대에 적용하여 새로이 보여준다. 경구1에서부터 경구51까지. 매일 경구 하나를 묵상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가다 보면 요가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본연의 나를 찾아가는 몸과 마음의 수련이자 자기 성찰임을 알게 된다.

요가의 본질은 마음의 평정과 자유에 있다. 요가의 본질을 모른 채 피상적으로만 다가가면 그저 지루한 운동이 될 뿐이다. 내가 경험했던 요가는 이러한 본질을 모른 채 단지 동작을 흉내 내는 것에 그쳤던 거다. 경전에 의하면 나는 잡념에 동화된 사이비 상태였다.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를 진짜 나라고 착각하면, 그것은 사이비가 된다. 사이비란 자신이 평생 일구어 완수해야 할 임무를 알지 못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척하는 거짓을 뜻한다. p.95

📝”인간은 운명을 남들이 만들어놓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운명은 자신의 습관이 서서히 만들어낸 자신의 집이다. 자신의 반복된 생각, 그 생각의 표현인 말, 말이 몸으로 표현된 행동, 행동의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환경 그리고 그 굳어진 환경이 운명이다. 인간은 흔히 운명 탓만하고 운명의 원인인 자신의 생각을 돌보지 않는다. p.303

읽었던 책들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고 느낀다. 북스타그램 처음 시작할 시기에 배철현 교수님의 다른 저서 <심연>을 기록했었다. 새 책을 자꾸 사기보다 가진 책을 여러 번 읽고 싶어진다.

완독에 이르기 어려운 책이다. 눈 뜬 봉사가 된 심정으로 아직 읽는 중이고 한 번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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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이유 - 자연과의 우정, 희망 그리고 깨달음의 여정
제인 구달 지음, 박순영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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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아프리카를 꿈꿔본 적 있던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아프리카 대륙은 우주의 화성처럼 와닿지 않는 먼 세계다. 자연 곁에 있기를 꿈꾸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듬어진 공원과 같은 쾌적한 자연이었다. 아프리카는 두렵고 무서울 뿐더러 그곳에 살고 있는 야생동물의 세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영장류에 대해서도 단편적으로 밖에 알지 못했다.

제인 구달은 어릴 때 타잔을 읽고 운명처럼 아프리카를 꿈꿨다. 흙 지렁이를 잡아와 침대 위에 둘 정도로 자연과 동물을 사랑했던 제인 구달은 불과 23세에 꿈꾸던 아프리카에 가게 될 기회를 잡고 저명한 고생물학자이자 인류학자였던 루이스 리키 박사의 조수로 일하며 침팬지 연구를 하게 된다. 실험실 밖을 벗어난 생생한 탐사는 침팬지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 낸다. 나뭇가지로 개미사냥을 하는 침펜지 모습의 목격은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당시의 통념을 뒤엎는다. 학위가 없던 제인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얻게 된다. 당시 학계에서 혁신적인 행보였다.

📝“우리는 언어를 가지고 우리가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는 가라는, 다른 생명체는 할 수 없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고도로 발전된 지성을 가졌다는 것은, 확실히 인간 종의 생각 없는 행동에 의해 그 존재의 지속을 위협받고 있는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 우리에게 책임이 있음을 의미한다.” p.147

인간으로서 특권을 통감한 제인 구달은 학자에서 환경운동가로 전환한다. 침팬지가 멸종하고 있다는 현실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실험용 침펜지를 구조하고 동물을 사용하고 착취하는 연구의 윤리적인 의미에 대해 문제 의식을 알린다. 제인 구달은 연구소, ‘뿌리와 새싹’ 단체를 통해 계속해서 전 세계에 희망을 전파하고 이 희망은 생각이 아닌 행동에 관한 것이라는 철학을 평생에 걸쳐 실천하고 있다.

제인 구달의 곰베에서의 침펜지 연구는 인간의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 되기도 한다.
거기에는 전쟁을 일으키는 잔인성, 폭력성의 근원이 발견 된다. 제인 구달은 이를 ‘문화적 종분화’에 의한 걸로 본다. 이는 집단에 속한 개체와 그렇지 않은 개체를 구분하는 집단주의를 만들어내고 외부, 즉 타자를 배척하는 경향을 낳는다. 아이들의 배타적인 패거리 문화에서부터 근대적 갱 집단들의 전개, 종교 집단의 전쟁,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살상 홀로코스트까지 야기 된다.

📝“나는 문화적 종분화가 명백히 인간의 도덕적 영적 성장을 방해해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고의 자유를 가로 막고, 생각을 제한하고, 우리를 우리가 태어난 문화 안에 가둬 놓았다. (중략) 위험은 오직 우리 집단과 달리 생각하는 다른 어떤 집단 사이에 날카로운 선을 긋고, 도랑을 파고, 지뢰밭을 만듦으로써 생긴다.”p.199

📝우리는 종종 정말 잔인하고 악해질 수 있다. 누구도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행동뿐만 아니라 말을 통해서도 서로를 고문하고 싸우고 죽인다. 하지만 또한 가장 고결하고 관대하며 영웅적인 행동들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p.216

📝인간이 성품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합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덜 오만해질 수 있다.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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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틱낫한의 일기 - 나를 만나는 길 1962-1966
틱낫한 지음, 권선아 옮김 / 김영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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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잡한 연초에 만난 틱낫한 스님의 글이 처음에 잘 안 읽혔다. 분명 쉬운 문체인데 왜 잘 안 읽혔을까. 베트남에 대한 역사와 시대적 상황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그의 젊은 나날 분투하던 일기가 와닿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차츰차츰 맑은 글을 따라가다 보니 닫혀 있던 마음의 눈이 떠지고, 고뇌하던 젊은 수행자의 깊은 생각과 감정에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쩌면 아름다운 글을 읽는 데에 적응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틱낫한은 세계에서 존경받는 스승 가운데 한 사람이다. 16세에 스님이 된 그는 불안정하던 조국 베트남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이 책의 전반부는 그가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과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연구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후반부에는 베트남에서 반전 평화운동을 하다가 정치 탄압을 받아 조국을 떠나기 전까지의 일기를 엮었다. 이 일기를 쓰던 시기에 그의 조국 베트남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전쟁이 발발하고 그의 친구들과 뜻과 마음을 바쳐 세운 사원도 무너져버렸다.

책의 원제 ‘프엉보이(Phuong Boi, 향기로운 종려나무 잎)’는 1957년 틱낫한이 베트남 중부에 일군 사원 이름이다. 불안한 시기에 머나먼 이국에서 그의 마음은 늘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애탔으며 그가 세운 사원 ‘프엉보이’에 향해 있었다. 프엉보이는 젊은 틱낫한 사상이 응축된 꿈이었다. 세계의 평화를 위한 그의 노력은 정치 탄압으로 이어지고 39년 동안 베트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망명자로 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종교가 없다. 학교에 의해 종교를 접한 경험은 많다. 그러나 특정 종교에 헌신하며 진정한 믿음을 가져본 적은 없다. 특히 불교의 정신은 도달하기 너무나 어려운 경지의 종교로 여겨졌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같은 유심론적 삶의 태도에도 감응 받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것 아니면 잘 믿지 못하는 성향이 종교를 갖기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직도 정답은 모르지만, ‘자기 안의 평화, 세상의 평화’를 전하는 틱낫한 스님이 일평생 헌신한 삶의 단편을 읽으며 결국 모든 종교는 같은 곳을 향하지 않는가 한다. 그 세계에는 전쟁과 폭력, 미움, 욕망과 질투가 없으며 자비와 평화만이 존재한다. 자기만의 신화를 이루도록 한다고.

젊은 틱낫한이 자아를 찾는 과정의 일화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메시지와도 동일했다. 알을 깨고 나아가는 과정을 그는 “파괴에 파괴를 거듭 경험했다’고 표현했다.

📝때때로 두 개의 상반된 자아, 즉 사회가 강요하는 ‘거짓 자아’와 내가 ‘진정한 자아’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 갇혀 있다고 느낀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둘을 헛갈리고, 사회가 강요한 틀을 진정한 자아라고 추정하는가. 두 자아 사이의 싸움이 평화로운 화해에 이르는 경우는 드물고, 마음은 전쟁터가 된다. (중략) 나는 내가 ‘나’라고 여기던 실체가 사실은 허구라는 것을 보았다. 나의 참된 본성은 훨씬 더 진정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추하고 더 아름다웠다.
p.101

📝만약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계속 살 수 있겠는가? 살기 위해서 우리는 매 순간 죽어야만 한다. 우리는 삶을 가능하게 만든 폭풍우 속에서 거듭거듭 소멸되어야 한다.p.105

📝오늘날의 사람들은 쉬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주의를 빼앗는 셀 수 없이 많은 것으로 자유시간을 채운다. 사람들은 몇분간의 여유 시간도 참지 못한다. TV를 켜거나 신문을 집어 들고는, 그 어떤 것이라도 심지어 광고라도 읽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계속해서 보고 들을 것, 또는 말할 것이 있어야만 한다. 그 행동은 모두 내면의 공허가 그 무서운 머리를 쳐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p.150~151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빗자루로 쓸고, 물을 길어 나르고, 장작을 패는 동안 우리는 현재의 순간에 깊이 머물 수 있다. 우리는 음식을 먹기 위해 요리를 하지 않는다. 깨끗한 접시를 갖기 위해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 요리를 하기 위해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기 위해 설거지를 한다. 목적은 이 허드렛일을 빨리 해치우고 뭔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p.153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늘 꾸려지는 온갖 종교 모임, 사교 모임을 보라. 교회와 사원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남녀가 함께 만나 모임이나 파티를 계획하는 장소가 되었다. 교회나 사원에 가는 것은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한 수단이자 사람들에게 얼굴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다. (중략) 그들이 어디를 가든, 그들은 계속 똑같은 껍질 안에서 맴돈다. 공허한 사교 모임은 그 껍질의 표현일 뿐이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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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을유사상고전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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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쇼펜하우어’를 검색해보면 괴팍하게 생긴 노인의 얼굴과 함께 “고독도 능력이다.” “인간의 삶은 왜 고통인가?”와 같은 냉소적인 메시지의 섬네일들이 뜬다. 나에게도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독설쟁이 염세주의자로 각인 되어 있었다. <머리맡에 쇼펜하우어>와 같은 쉽게 편집된 책에서도 그의 철학을 접할 수 있었지만 정작 그의 핵심 철학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가 주창하는 핵심 철학은 ‘의지의 전능성’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의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행위라는 뜻이 아니라, ‘욕망’과 거의 같은 개념으로 사용한다. 그는 세상 만물이 이 의지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이 의지의 활동은 결코 쉬지 않고 만족할 줄 모른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살려고 부단히 애쓸 뿐이다. 쇼펜하우어가 볼 때 의지는 노력하고, 욕망하고, 상승하고, 희망하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증오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의지는 이성보다 더 강할 뿐 아니라 더 본원적이고 더 본질적이다.” p.555~556p <해제>

그는 인간은 만족할 줄 모르는 맹목적인 욕망에 의해 고통 받고 불행해진다고 보았다. 이 욕망을 이성으로 극복하여야만 비로소 인간은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금수저로 태어나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으로 생계 걱정 없이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던 그가 어떻게 삶의 고통을 논할 수 있었을까? 그는 아버지에게 경영수업을 받는 대가로 일찍이 전 세계 여행을 할 수 있었고, 그가 여행하며 목격한 ‘세상은 고통’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살로 추정되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괴테와 교류하던 문인 어머니로부터는 천재성을 물려 받았지만, 평생 어머니와 불화를 겪었다.

📝“쇼펜하우어는 청소년 시절의 여행으로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참혹한 현장을 경험했고, 노예들의 비참한 삶을 보았다. 그러한 고통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그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강한 의문을 품었고, 결국 이것이 그의 의지 철학의 근원이 되었다.” p.549 해제

번역가 홍성광님이 쓴 해제를 참고하여 그의 철학을 요약해 보았다. 쇼펜하우어의 글은 재밌다.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해 보이는 철학자의 심중에는 위트가 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이 나 자신의 욕망 때문이었다니. 전에 의욕 하던 것들을 더 이상 의욕 하지 않는 초연한 상태를 행복에 가깝게 보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상과도 비슷하다. 시대를 막론하고 현자들은 같은 말을 한다고 했다. 이는 지나가 버린 과거와 오지 않는 날에 마음 쏟기보다 현재를 명랑하게 살아야 함을. 현재만이 실재하며 나머지는 단지 사고의 유희, 즉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는 <소품과 부록>이다. 소품에서는 삶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행복론)을, 부록에서는 인생에 관한 철학의 글(인생론)을 실었다. 워낙 명언이 많아서 이러다 모든 페이지를 밑줄 긋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삶에 바로 적용 가능한데다, 돌직구라 재밌다. 그의 철학은 유용해서일까? 두 세기가 지나도록 살아남아 2023년의 30대 여성인 나에게도 삶의 지침이 되어주고 있다. 특히 행복론 ‘인간을 이루는 것에 대하여’에서 ‘인격’을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으며 명랑한 성정의 이로움을 설파하는 부분 눈여겨 읽었다. 쇼펜하우어는 ‘명랑한 인격’을 재산, 명예, 명성보다도 귀한 가치로 본다. 어릴 때 명랑하다는 칭찬을 정말 많이 들었던 나인데, 사회생활 하며 내가 좀 닳아졌나. 요즘은 그런 소리 못 듣고 있다. 새삼 ‘명랑한’이라는 단어가 좋게 느껴진다. Cheerful!

*인종차별적 생각이 있어서 놀랐다. 정신이 빈약하고 천박한 사람일수록 외부에서 무언가 얻으려 하므로 사교적이라는데, 이를 흑인에 비유했다. 35페이지에 나온다. 19세기 독일의 백인 남성임을 감안해도 적나라해서 조금 놀라긴 했다.

*여성관 역시 매우 부정적이다. 이는 그의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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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 계속 쓰려는 사람을 위한 48가지 이야기
은유 지음 / 김영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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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 없는 나는 글쓰기 방법에 관한 개론서도 읽어본 적이 없다.
‘글 쓰는 법’을 배우는 순간 형식에 구애 받을까 두려웠던 거다. 그런데 문학, 비문학 장르에 상관 없이 글쓰기는 체계와 기술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잘 썼다고 느끼는 글은 계획 하에 탄생 된다.

이 책의 저자 은유 작가는 우연히 교보문고 유튜브 <써드림 첨삭소>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뵈었었다. 구독자가 첨삭을 원하는 글을 신청하면 작가님이 그 자리에서 코멘트와 함께 바로 첨삭해주는 영상이었다. 어릴 때 선생님께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 위해 “참 재미있었다.” 로 끝나는 일기를 누구나 써 봤을 거다. 글의 시작과 끝을 어떻게 마무리하면 좋을지, 중복된 어휘를 제거해주는 등. 작가님의 첨삭을 거친 글은 식상해지기는커녕 완성도 높은 칼럼이 되었다. 그 짧은 영상에서도 배운 게 많았다. 좋은 글은 이렇게 탄생하는구나!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작가의 세 번째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13년 동안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르포 작가로서 살아가며 겪어온 글쓰기에 대한 48개의 현실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허심탄회하고 실질적인 답변을 담았다. 무지해서 용감했던 글쓰기에서 신중하지만 세심한 글쓰기로 진화하고 싶은 내게 필요한 책이었다.

공개적인 글쓰기는 책임감이 따른다. 이 책을 읽으며 사려 깊은 글쓰기란 이런 것이구나 배웠다. 불특정 독자를 배려하는 글은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얻어 진다. 내가 쓰려는 단어, 표현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하는 단계를 거치고 자의적인 해석은 덜어내는 퇴고를 한다. SNS에 쓰는 글도 마찬가지다. 발행 버튼을 누르는 순간, 타인에게 닿는 글이 됨을 늘 의식하고 글을 써야 한다. 작고 사소한 글일지라도 내 글에 책임감을 느끼고 다듬는 일은 사려 깊은 글쓰기를 위한 실천이다.

그러나, 머리로 알면서도 글쓰기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선 쓰자! 정답은 없다. 이 책은 하나의 방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노하우와 기술을 알려주되 진실하고 정확하게 쓰기를 먼저 응원한다. “글을 못 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 쓴 글이 잘 쓴 글입니다.”_서두에서 작가의 말.

📝퇴고할 때 불필요한 단어와 표현을 넣진 않았는지 의심하면서 골라내요. 그러다 보면 가장 먼저 지우는 것이 습관적으로 쓴 형용사나 부사예요. ‘따뜻한 국밥’의 “따뜻한”이나 ‘빠르게 내달렸다’의 “빠르게”와 같이 동어반복이거나 불필요한 수식이요. <글에서 부사와 형용사를 모두 빼야 하나요?>

📝오늘 쓴 글을 오늘 바로 다 퇴고하기보다는 며칠 묵혔다가 다시 보는 것이 방법이에요. 밤에 쓴 편지를 다음날 아침에 보면 낯간지럽듯이, 시간이 흐른 다음에 보면 글의 문제가 더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거든요.
<퇴고를 꼭 해야하나요? 퇴고는 어떤 방법으로 해야 좋은가요?>

📝 글에서는 서툰 비유보다 잘못된 비유가 문제입니다. (중략) 아, 비유 쓰기 참 어렵다’ 싶은 생각이 드실 것도 같아요. 그렇지만 그런 긴장감과 부담감을 느끼는 게 쓰는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 태도입니다. 글을 쓰겠다는 것은 평소보다 사려 깊어지겠다는 다짐이니까요. <비유를 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어떤 인물에 대해 쓸 때 최대한 여러 측면을 다각도에서 보려고 노력해요. <타인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룰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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