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지음, 이수경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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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어둠-레오니트 안드레예프

 

책을 읽으며 다양한 목소리들이 흘러 나오는 경험을 했다. 나는 그 목소리들을 그 다양한 목소리 그대로 옮겨 적기로 한다. 지금까지 써오던 서평과는 다른 서평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따라서.

 

A: 이 소설의 줄거리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우선 거사를 며칠 앞둔 혁명가가 있습니다. 이 혁명가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매춘업소로 가고, 거기서 평범한 가정집 여인 같은 류바라는 매춘부를 선택합니다. 그는 매춘부와 대화를 나누면서 심경의 변화를 겪고, 매춘부의 밀고로 경찰에 잡히게 됩니다. 더 단순하게 말하면 매춘업소로 갔고, 매춘부를 만났고, 대화를 나누고, 심정의 변화를 겪고, 경찰에게 잡혔다입니다. 줄거리로만 보면 특별한 게 없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줄거리가 아니라, 혁명가의 심경의 변화를 다룬 심경 묘사입니다. 세밀하면서도 자세하게 묘사되는 개인의 심리 묘사가 이 소설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것이죠.

 

B: 이 작품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에게 문제가 되는 건 개연성입니다. 혁명의 대의에 충실한 한 인물이 매춘부와 대화를 나누고 갑자기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는 게 개연성이 없다는 거죠. 개연성이 없다는 건, 다른 말로 설득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혁명에 대의에 빠져 자기 목숨을 걸고 거사를 하려던 인물이 갑자기 매춘부와 대화를 나누고 뺨을 맞은 뒤에 혁명을 버리고 나쁜 인물이 되기로 한다? 빛나는 혁명의 대의가 아니라 무기력한 어둠을 선택한다? 이 작품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이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혁명을 위해 자신을 바치려는 이가 대화를 나눈다고 아예 다른 사람이 되는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거죠. 어쩌면 러시아의 혁명이 다가오는 시절을 살아가던 이 소설의 비판가들에겐, 혁명의 대의를 받아들인 이가 무기력한 인물이 되는 게 싫었던 겁니다. 혁명이 다가오는데, 혁명을 해야할 이들이 무기력하게 패배주의적인 인물로 변화해서는 안 되는 거죠.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건, 혁명을 성공시킬 영웅같은 이들이니까요.

 

C: 반대로 이 소설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에게 중요한 건 개연성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들도 비판가들처럼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개연성 보다는 이 소설의 특징인 심리 묘사에 주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주인공의 변화가 개연성이 없을지라도, 섬세하고 디테일한 심리 묘사가 문학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문학이란 인간의 영혼을 세밀하고 자세하게 보여주면서 인간 삶의 어떤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니까요. 섬세하고 디테일한 심리 묘사로 인간 영혼의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고, 심리의 어두운 모습까지 파고들어가면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게 문학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충분히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D: 특징, 비판적인 평가, 긍정적인 평가들을 다 들여다봤습니다. 골고루 저 요소들을 바라봐도 저에게 이 소설은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너무나 섬세하게 파고들어가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면도 있고, 인간 심리의 병적인 요소도 드러내기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비판가들의 말처럼, 너무 긴박하게 변하는 심리를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하지 못해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도, 문학은 자신만의 가능성과 특징을 가진 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할 뿐이지, 자신만의 특징으로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요. 그게 지금까지 꾸준히 파악해 온 문학세계 속 문학의 모습이니까요. 이해할 수 없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멋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게 문학이라는 예술의 힘, 아니 어쩌면 예술이라는 영역의 힘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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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미하라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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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야미하라-츠지무라 미즈키

 

괴담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왜 괴담을 좋아할까요? 시대가 바뀌어도 괴담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현대에도 괴담이 도시전설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사람들 사이에 퍼지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저 같은 사람이 알리 없죠.^^;;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원인 하나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인간에게서 너무나도 중요한 공포라는 감정 때문이겠죠.

 

공포. 진화심리학에서는 이 공포라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진화 과정에서 공포라는 감정이, 위협요소에 대한 경계심을 발휘하게 만들어 생존확률을 높였다고 말하며.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기술일 발달하지 않았던 인류의 초기 시대에 공포라는 감정이 생존에 도움을 줬을 거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힘들죠. 그때에는 공포라는 감정이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어느 정도는 생존의 문제와 이어진 점도 있습니다. 여전히 위기 시에는 공포라는 감정이 힘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현대에는 공포가 단순히 생존과만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지금 공포는 유희적인 부분과 이어지기도 합니다.

 

공포문학, 공포영화, 공포게임, 시중에 떠도는 괴담들과 도시전설들. 이제 공포는 단순히 생존에만 머물지 않고, 유희와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에도 진입했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적인 상업에 포함된 비즈니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시대는 공포를 즐기고, 공포라는 감정을 사고 파는 상황이라는 것이죠.

 

츠지무라 미즈키의 첫 공포소설 <야미하라>는 유희화된 공포를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괴담이라는 공포이야기가 어떻게 현대화된 공포스토리로 변화되는지를 알게 해준다는 말입니다. <야미하라>의 현대화된 모습은, 소설이 포커스를 맞춘 지점에서 드러납니다. <야미하라>는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공포에 핵심을 두지 않습니다. <야미하라>에서 강조하고 있는 건, ‘감정의 공포화입니다. 나의 감정, 혹은 나의 옮음과 나쁨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고 밀어붙이면서 생겨나는 억압과 공포의 행태들. 이 소설은 여기에서 생겨나는 어둠과 이 어둠에서 생겨난 존재들, 그리고 그들과 싸우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공포의 행위들, 언제 어디서나 있을 것 같은 공포스런 모습들을 기반으로 쓰여진 소설은, 그 어둠에서 태어난 초현실적인 존재들과 그들과 싸우는 존재들의 모습을 지우면 우리의 삶과 겹쳐집니다. 나의 가치관과 생각을 강요하고 타인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아 생겨나는 무수한 다툼과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자 미래에도 쭉 있을 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이 소설의 공포는 소설 자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 소설이 알려주는 건, 소설에서 말하는 공포가 끊어지지 않고 인간이 살아 있는 한 계속된다는 점일 겁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공포. 적고보니 너무너무 무서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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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 - 2022년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
김준녕 지음 / 허블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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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김준녕

 

하루하루 글 쓴다는 핑계로 비슷비슷한 글을 쓰는 게 지겨웠다. 지겹고 쓰기 싫어서 하루하루 글 쓴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안 썼다. 하지만 써야 하는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쓰려고 앉았다.

 

조금 다른 글, 지금까지 써오지 않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쉬운 건 오독하고 왜곡하는 것이다. 진실이 아니라도 내 마음대로 해석해서 쓰는 글.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의 서평을 예로 든다면 이 책을 내 마음대로 오독하고 왜곡해서 쓰면 된다. , 떠오른다. 어떻게 써야 할지가.

 

일단 작가의 나이를 본다. 96년생. 아주 좋다. 지금 담론계에서 대히트 치고 있는 세대론적인 분석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밀레니엘 세대에 속해있기 때문에. 작가가 태어나고 몇 년 뒤에 한국은 IMF 사태를 맞게 된다. IMF 사태 이후의 한국은 그 이전과는 다른 세계라는 걸 나는 안다. 그야말로 신자유주의의 본격적인 향연이 펼쳐지는 시대를 한국인들은 IMF 이후로 살아가게 된다. 작가는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태어나서 신자유주의로 숨을 쉬고 살아갔을 것이다. 작가의 10대 초반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덮친다. 역사상 최악의 불황 중 하나였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한국 사회에 또다른 충격파로 다가온다. IMF 사태로 시작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은 청소년기를 보낸 삶을 상상해보려 노력한다. 내가 그걸 상상할 수 있을까. 상상력의 부족으로 그 삶의 재현은 힘들다. 하지만 작가가 쓴 소설에서 약간의 추측을 해본다.

 

<막 너머에 신 있다면>은 참혹한 소설이다. 소설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걸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온난화를 겪고 몰락한 소설 속 지구는 대기근이 덮친 뒤에 최후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실에 더해서 지구인들은 우주 탐사를 통해 태양계를 감싼 막을 알고 있다. 인간들은 막 때문에 더 나아갈 수 없다. 우주로 더 나아갈 수도 없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구는 몰락해가고 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한국을 지배하고 있던 독재자 B는 이런 상황 속에서 우주선 무궁화 호를 띄우고 막에 가닿으려고 한다. 마치 그것만이 희망이라는 듯. 미래를 기대할 수도 없고, 굶주림 속에서 괴로워하던 첫 번째 주인공 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로서 우주선 승선을 선택한다. 140년이 넘게 걸릴 우주 항해이기에 아이들을 뽑을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아이로서 나에게 새로운 희망은 우주선 탑승 밖에 없다고 여기며. 나는 굶주림 속에서 자신을 잡아먹으려던 부모를 죽인 냉혹한 형섭의 도움을 받아가며 온갖 참혹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우주로 나아간다. 우주선에서 형섭이 냉정한 독재자가 되었다가 살해되었음을 알리며 일종의 1부격인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시간이 흐른 뒤에 우주선의 현실을 바탕으로 2부격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새로운 가 등장한다. 1부의 주인공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들이 주인공이 된 우주선 무궁화는 철저한 계급제에 기반하고 있는 사회이다. 이들은 철저한 효율을 추구하며, 비효율적인 건 최선을 다해 처리한다. 인간의 죽은 몸은 비료로서 우주선 속 사람들을 위해 이용된다.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규율을 지키지 않은 이들은 철저하게 죽음을 내리는 식으로. 나는 우주선의 이발사로 죽을 이들의 머리를 깎고, 죽은 이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스팀기를 작동시키는 인물이다. 철저한 계급화와 효율성 속에서 살아온 나는 이 삶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우주선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아내와 아내가 임신한 배 속 아이에 작은 희망을 거는 나에게 우주선의 현실을 뒤바꾸려는 반란군이 접촉해오고, 동료의 잔혹한 죽음 앞에서 나는 우연히 그들과 함께 반란에 나서서, 막 너머로 향하는 발걸음을 향하게 된다.

 

위에 적은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소설에 희망이나 이상이 들여설 여지는 거의 없다. 대기근을 겪은 지구에서부터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혹은 막으로 가려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서로 죽고 죽이고 이용한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고, 내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남을 죽이고 짓밟고 이용하는 게 일반화된 현실의 모습. 어쩌민 이 비정하고 잔혹한 현실은 신자유주의의 삶을 숨쉬듯 살아온 밀레니얼 세대에게 내면화된 삶의 또다른 문학적 형상화가 아닐까. 이것이 오독이고 왜곡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드리운 신자유주의적 삶의 모습들이 이런 식으로 형상화되는 게 일말의 삶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느낀다.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자신이 쓴 글에 반영될 수 밖에 없는 게 진실이기에.

 

일전에 나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일본 만화 <원피스><진격의 거인>을 쓴 작가는 전혀 다른 삶을 그리고 있다고. <원피스> 속 세계는 꿈과 희망, 동료애, 우정이 넘쳐흐른다. 넘쳐 흐르다 못해 폭발할 정도로. 그에 비해 <원피스>보다 후대에 나온 <진격의 거인>에는 냉혹하고 잔혹한 현실이 담겨 있다. <진격의 거인>에서 중요한 건, 꿈과 희망, 우정이 아니라 생존이다. 이 두 만화의 차이는 그 만화가 시작된 일본 삶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이 말을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에도 쓰고 싶다. 이 소설에 담긴 현실은 작가가 살아온 삶을 반영한다고. 물론 소설에 절망만 있는 건 아니다. 2부의 주인공인 나와 지구인으로 우주선에 건너온 이아의 우정, 나를 돕는 유전자 인간 백팔의 행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사이의 유대감을 절멸 시킬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막으로 향하는 나의 행동과 사고 속에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비정하고 냉정하고 참혹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살아갈 수밖에 없고,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추구할 수밖에 없고, 그런 추구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는 진실, 그 의미에 이라는 이름을 붙여 희망을 걸 수도 있고, 믿음을 가질 수도 있는 게 인간이라는 진실. 거기에 인간 삶과 문학의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포기할 수도, 폭주할 수도 없는 삶 앞에서 인간은 살아갈 수밖에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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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 강의 2 : 패풍·용풍·위풍 고전완독 시리즈 2
우응순 강의, 김영죽 정리 / 북튜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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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경강의2-우응순

 

길게 적었던 글이 날라가면서 내 멘탈도 날라가버렸다. 이 서평을 다시 써야만 하는 걸까. 고민했다. 하지만 악에 받혀서 다시 쓰기로 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근데 내가 쓴 것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뭐라고 썼더라. , 모르겠다. 내 마음대로 쓰자.

 

<시경강의> 2권도 1권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응순의 강의는 세밀하면서고 꼼꼼하고 친절하게 시경 속 노래들을 한 글자 한 글자씩 소개한다. 그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그 시대의 삶이 눈앞에 그려진다. 최선을 다했지만 젊은 아내에를 받아들인 남편 때문에 쫓겨가는 나이든 아내, 전쟁터로 떠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슬픔, 반대로 전쟁터에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 연인들간의 그리움과 아쉬움과 질투 같은 복합적인 감정들까지.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담은 시들은 보편성을 선사하며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2권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2권에 담겨 있는 노래들이 전해진 지역인 위나라의 역사적 사건들이 담긴 노래들. 이 노래들이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들은 현대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죽은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아들, 죽은 형의 아내를 위찬 동생, 배다른 형을 죽인 동생과 동생의 어머니, 그 동생을 몰아낸 배다른 형의 동복 동생 같은 사건들. 지금이라면 패륜이나 막장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는 현실 앞에서 막장, 패륜이라는 단어는 힘을 잃고 그 시대의 하나의 현실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주희 같은 후대의 해석가들은 특유의 도덕적이고 교화적인 해석을 덧붙인다. 우응순은 거기에 넌지시 숟가락을 얹으면서 동시에 열린 해석의 가능성도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잠깐의 숨구멍을 열어준다.

 

보편성과 그 시대 특수성을 왔다갔다 하면서 우응순의 강의를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2권도 끝나버렸다. 나는 아쉬움을 느끼며 다음 강의를 기대해본다. 나에게 다시 이렇게 시경의 노래들을 쉽게 전해준 책은 없었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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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전쟁 - 투자인가? 투기인가? 암호화폐의 거짓과 진실
에리카 스탠포드 지음, 임영신 옮김 / 북아지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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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암호화폐 전쟁-에리카 스탠포드


 

11리뷰 쓰기 3일째. 시계를 본다. 벌써 1050. 다시 허겁지겁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본다. 이번에도 이틀 전에 읽은 책 리뷰를 쓰기로 한다. 어제처럼 쓰다 보면 써지리라 여기면서.

 

2017, 2018년은 암호화폐 버블의 시기였다. 사람들은 암호화폐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여긴 채 무수한 돈을 쏟아부었다. 그 당시 모두가 암호화폐로 일환천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암호화폐에 투자하기만 한다면 부자가 되는 게 가능하다 여겼다. 그건 일종의 광기였다. 눈이 벌건 상태로 암호화폐에 돈을 집단적으로 넣기만 하면 된다는 광기. <암호화페 전쟁>은 그 당시 일어났던 말도 안 되는 암호화폐 사기극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책은 그 당시의 광기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며, 돈 벌려는 욕망에 미친 사람들이 미친 사기극을 벌이는 미친 사기꾼들에게 넘어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알려준다.

 

생생한 암호화폐 사기극을 보면, 사람들이 무언가에 씌었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무언가에 씌이지 않고서야 저런 거에 넘어간다고? 저게 가능하다고? 물론 가능했다. 사람들이 진짜로 씌었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물신이라 부른 것의 변형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돈귀신, 일확천금 귀신, 한탕 귀신에 씌인 인간들은 돈을 벌 것이라며 여기며 부나방처럼 사기라는 불꽃에 뛰어든다. 책은 초반부에 ICO부터 시작한다. ICO는 기업이 신규 암호화폐를 발행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방식으로, 백서를 공개하고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것을 말한다. 당연하게도 그 당시에는 암호화폐 시장은 미지의 영역이었고, 그에 따라 관련법도 전무했다. 따라서 말도 안 되는 온갖 ICO들이 남무한다. 어떤 이는 암호화폐로 섹스를 중개해주겠다 하고, 어떤 이는 연애를 이루게 해주겠다 했다. 어떤 이는 암호화폐로 사람들을 구원에 도달하게 해줄 수 있다. 이 외에도 무수한 말도 안되는 주장들이 넘쳐났다. 가장 황당했던 건, 이 돈으로 사람들에게 아무 도움도 안 줄 것이며 자기 소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도 돈을 모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위의 사건들은 황당하긴 하지만 액수로 따지면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등장한 건 액수 단위가 달라진다. 암호화폐 여왕으로 불리며 희대의 사기극으로 유명한 원코인을 만든 주역 루자 이그나토바는 5조를 들고 사라졌다. 아직도 잡히지 않은 채로. 비트코인을 넘어설 것이라 주장하며, 구글을 믿지 말라고 외치던 그녀는 고전적인 피라미드 방식을 이용한 폰지 사기로 돈에 눈 먼 이들의 돈을 들고 세상 어디간로 떠나갔다. 돈을 빼앗긴 이들의 절망과 한탄을 먹은 상태로.

 

원코인부터 시작한 사기극들은 말도 안 되는 이자를 약속한 비트커넥트 코인, 중국에서 시작되어 170억 달러 먹튀로 유명해진 플러스토큰, 거래소 운영자가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살아 있을 걸로 의심되어 부활 사기처럼 보이는 캐나다의 쿼드리가 거래소 사건, 부실한 운영으로 연속 해킹당해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 마운트콕스 거래소 사건, 채굴기가 사라지는 마법을 부린 클라우드 채굴소 비트클럽네트워크 사건, 유명인을 이용한 시장조작으로 사람들을 울린 펌프앤드덤프 사기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책의 저자는 암호화폐의 유용성을 갑자기(??) 말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사람들의 욕망이 없었다면 위의 사기극들은 불가능했으리라. 돈을 벌겠다는, 일확천금을 마련하겠다는, 남들 다 같이 돈 버는데 나도 뒤질 수 없다는 욕망이, 욕심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했다.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무시한 채 돈을 사기꾼들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들은 돈이 사라지자 절망 속으로 추락해간다. 집단적으로 귀신에 씌인 듯한, 집단 광기의 무서움을 실감하면서 생각해본다. 현명한 투자 이전에 그 당시 암호화페 열풍은 투자도 무엇도 아닌 광기 그 자체였다고. 아무런 법도, 역사도 없는 그 당시 암호화폐 시장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수준이 아닌, 크레이지 리스크 크레이지 리턴이었다고. 그런 크레이지한 상황에서 돈을 버는 건 크레이지한 사람 아니면 힘들었을 거라고. 그리고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마르크스가 말하는 물신 그 자체라고. 어디 다른 글에서 적은 것을 다시 쓰며 이 글을 마친다. 물신은 죽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계속되는 한, 물신은 불사조처럼 살아나고 또 살아나며 사람들을 홀리고 미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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