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윌리엄!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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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7.,윌리엄-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을 읽고 나서인지 일단 이 소설은 잘 읽힙니다. 색다르거나 어렵거나 예술적인 묘사로 가득한 문장들은 별로 없어서 읽어 나가는데 막힘이 없이 술술 읽혀집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재미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생생히 살아 있는 입체적인 인간으로서 자신들만의 복잡한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풀어냅니다. 하지만 이 인물들은 쉽게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모순적인 사람들이니까요. 그들은 아이 같으면서도 어른이고, 저마다의 약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강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람 같은 나쁜 일을 벌이다가도 사람들을 위로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인간들의 생생히 살아 있는 이야기. 그게 제가 읽은 <, 윌리엄>입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냐구요? <, 윌리엄><내 이름은 루시 바턴>의 루시 바턴이 화자로 나와서 자신의 전남편인 윌리엄의 이야기를 하는 소설입니다. 현재의 남편인 데이비드를 병으로 잃은 루시는 전남편인 윌리엄에게 닥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더합니다. 가난하고 사랑받지 못한 유년기를 보낸 루시 바턴은 도망치듯 대학으로 가서 당시 대학원생이던 윌리엄을 만나서 사랑을 느끼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루시가 윌리엄에게 사랑을 느낀 건, 자신과는 다른 안정감이 윌리엄에게 있다고 느껴서입니다. 그리고 윌리엄의 어머니인 캐서린은 그녀와는 다른 부유한 도시인의 삶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윌리엄의 바람기로 둘은 헤어지게 되고, 루시는 자신과 비슷한 불안함을 가진 데이비드와 만나서 재혼을 합니다. 윌리엄은 윌리엄대로 결혼을 하고 삶을 이어가죠. 윌리엄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까지 두 사람의 삶에 위치하며 둘 사이에 중요한 매개가 되어주구요.

 

데이비드의 죽음 이후로는 평온한 삶을 살던 나와 달리 윌리엄의 삶은 큰 파국을 겪습니다. 20살 어린 젊은 아내의 도주, 어머니가 자기를 낳기 전에 아버지 다른 누나를 낳고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충격까지. 폭풍처럼 몰아친 삶의 변화 속에 루시와 두 딸은 윌리엄을 위로하고 힘이 되어줍니다. 루시는 윌리엄과 더불어 숨겨진 윌리엄 어머니의 비밀과 또다른 윌리엄 가족의 삶의 진실을 찾아나서고 그 끝에서 윌리엄과 자신의 삶이 예전과는 완전하게 달라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소설 속에서 설득력 있고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물들의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고, 그들의 삶이 어우려져 빚어내는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그 흥미의 끝에서 독자가 만나는 건 인간의 불가해성입니다. 타자로서의 인간을 쉽게 알 수 없다는, 그 뻔하면서도 새로운 진리를 흥미롭고 복잡한 인간 이야기의 끝에서 만난다는 게 이 소설의 아름다운 점입니다. 뻔한 삶의 진리를 재미이는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펼쳐내니까요. 그런 점에서 <, 윌리엄>은 재미있고 좋은 소설입니다. 다른 말로 아름다운 이야기이자 소설이죠. 이야기의 측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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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1
페터 한트케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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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6.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페터 한트케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페터 한트케가 생각하는 모험은 제가 생각하는 모험과 다르다고. 저에게 모험은 낭만적이고 열정 가득하고 무언가 색다른 느낌의 단어입니다. 어쩌면 제가 어릴 때 봤던 <원피스>라는 일본 만화의 영향이 아직도 저에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원피스> 속 모험은 낭만적이고 열정적이고 화려하며 일상과 다른 삶의 방식이니까요.

 

그에 비해 페터 한트케에게 모험은 <원피스>에서 말하는 모험과 의미가 다른 것 같습니다.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을 보면 그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탁스함이라는 도시의 약사가 겪은 모험을 그린 작품입니다. 여기서 탁스함의 약사가 겪는 모험은 제가 생각하는 원피스식 모험과 다릅니다. 그건 섬세하고 세밀한 묘사로서 기록된 자의식 가득한 내면으로의 모험이자 낯선 이들과 낯선 장소를 만나면서 변화를 겪는 이의 여정이 담긴 모험입니다. 이런 모험을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모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작가가 자신만의 문장과 표현으로서 써내려간 아름다운 문학적인 모험.

 

분명 페터 한트케식 모험은 현대의 다양한 동영상 컨텐츠에서 나오는 모험과는 그 궤를 달리합니다. 그건 스펙타클하거나 리드미컬하나 스피디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강렬한 액션이나 일상을 초월하는 환상은 나오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대신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게 파고드는 예술가의 고백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낯선 장소와 낯선 이들을 꼼꼼하게 세밀하고 관찰하고 묘사하는 작가의 시선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빠르지 않지만 변화를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을 바꾸려는 한 인간의 의지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일상적이지 않지만 예술적이고 문학적이며 색다른 표현과 문장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더해져 페트케식 모험이 하나의 소설로서 탄생하고, 독자는 그 소설을 페터 한트케식 모험으로 받아들인 채 읽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독자는 책을 펼치고 읽었기 때문이죠.

 

도둑질하는 아들을 내쫓고, 버섯에 미쳐서 아내와 멀어진 채 고립된 삶을 살다 모험을 한 탁스함의 약사는 변화를 겪고 고립에서 탈피합니다. 자기 자신의 삶에 갇혀 살아가던 그는 일상으로 돌아와서, 다른 이들의 삶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삶에 자신을 적응해가면서 살아갑니다. 모험이 준 변화가 자기 자신을 바꾼 것이죠. 어쩌면 그 변화는 독자들에게 영향을 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탁스함의 약사가 겪는 모험은, 책을 읽은 독자가 독서를 통해 경험한 모험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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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일기 - 우크라이나의 눈물
올가 그레벤니크 지음, 정소은 옮김 / 이야기장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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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5.전쟁일기-올가 그레벤니크

 

전쟁 첫째 날 내 아이들의 팔에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내 전화번호를 적어두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 팔에도 적었다.

혹시나 사망 후 식별을 위해서.

무서운 사실이지만 그 생각으로 미리 적어두었다.(p.96)

 

바로 앞에 쓴 서평에서 저는 앞에 읽은 책에 대한 최악의 평가를 했습니다. 그 책을 읽은 내가 잘못이라고. 그 책을 선택한 내가 바보라고. 별점 평가에서 별 한 개를 주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별 한 개도 아까운 책이었다고. 너무 뻔한 내용에 뻔한 주장인데, 마치 자신은 뻔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듯이, 무언가 대단한 주장을 한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고. 인터넷 공간을 조금만 뒤지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메시지에다, 정치학이나 정치철학, 정치이론 다루는 책을 읽으면 자주 나오는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무언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는 듯이 너무너무 별로였다고. 내가 비판하는 사람의 주장은 진부하다고 말하고, 자신의 주장의 진부함은 깨닫지 못하는 한국 지식인의 오만함이 너무 잘 드러내는 책이었다고.

 

어휴~~ 쓰다보니 너무 많은 독설이 나오네요.^^;; 참아야지. 쉼호흡 한 번 하고. 휴우~~ 제가 전에 서평을 쓰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말하며 우크라이나 인들의 실존의 무게감을 말하는데, 이 책으로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실존의 무게감을 느낄 수 없다고. 그런 뒤에 저는 덧붙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의 실존의 무게감을 알려면 우크라이나인들이 쓴 책을 읽어봐야 한다고. 여기서 저는 <전쟁일기> 서평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일기>는 우크라이나인이 겪은 전쟁의 경험이 생생하게 남겨진 책이기 때문이니까요.

 

먼저 전쟁이라는 말의 무게감을 한 번 생각해봅니다. 제가 쓴 전쟁이라는 말은 참 피상적입니다. 이 때의 전쟁이라는 말은 뉴스 보도에 나오는, 인터넷의 동영상에 나오는, 책의 문장 속에 나오는, 영화의 한 장면으로 등장하는, 게임 속에서 가상의 게임 캐릭터가 경험하는, 딱 그 정도의 무게감 밖에 없습니다. 그건 제가 전쟁을 실제 삶으로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쓰는 전쟁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은 실제 삶의 무게는 없는, 가상의 간접경험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니까요.

 

그에 비해 <전쟁일기> 전쟁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은 무겁고도 무겁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그림책 작가였던 저자 올가 그레벤니크는 35년간 평화롭게 지내던 삶에서, 하룻밤 사이에 폭격 소리를 들으며 전쟁이라는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모든 삶의 안전함이 사라진, 남편과 아이들, 함께 지내는 개, 자기 자신의 목숨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으로의 급전직하. 평온함이 아닌 불안이 지배하는 삶. 눈앞에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나날을 저자는 단순하고도 인상 깊은 그림과 짧은 글들로 생생하게 남깁니다. 마치 생생한 전쟁의 호흡을 전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 우크라이나를 떠나서 폴란드를 거쳐 불가리아로 가서 정착하게 된 저자. 성인 남자는 국경을 넘을 수 없어서 남편을 우크라이나에 두고 온 저자의 불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저자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쟁의 나날 속에서 그림 그리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삶의 기록을 남겼고, 그 기록은 이렇게 머나먼 이국의 저라는 사람에게도 와 닿았습니다. 전쟁이 평범한 이의 삶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생생하게 전하며.

 

<전쟁일기>를 읽으며 위에서 적은 것처럼 제가 말하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게감 없고, 피상적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실제 겪은 것은 사람만이 전쟁을 말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실제 전쟁을 겪은 사람이 느끼는 전쟁이라는 단어의 무게감과 전쟁을 겪지 못하는 이가 말하는 전쟁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의 차이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니까요. 그래서 이 서평 이전에 혹평을 했던 책을 쓴 저자가 과연 우크라이나인의 실존의 무게감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그 말의 무게감을 얼마나 생각했을지 궁금해집니다. 진부하기 그지 없는 주장을 하면서 마치 자신은 진부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 그 저자는 진짜 우크라이나인에게 닥친 전쟁이라는 삶의 무게감을 파악하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저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위해서 아무 생각없이 말을 했을까요.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자기 주장의 진부함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걸 보며 아마도 자기가 말하는 단어의 무게없음을 깨닫기가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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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번 서평을 썼다.

너무 독설을 날려서 알라딘 서재에는 안 쓰려고 한다.^^;;

사실 별 하나도 주지 않으려 했는데,

별 하나는 기본적으로 주는 거라서 

어쩔 수 없이 별 하나는 줬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 그 책은

별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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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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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3.사랑의 역사-니콜 크라우스

 

모든 사랑은 저마다의 사랑의 역사를 가집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기까지 했다면, 그 사랑은 자신만의 사랑의 역사를 가진 셈이죠, , 여기서 이 사랑의 역사를 소설로 쓴다고 쳐보죠. 일단 누군가가 자신만의 사랑의 역사를 씁니다. 여기서 그친다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겠죠?^^;; 자신만의 사랑의 역사를 쓴 이는 그 원고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잃어버립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사랑의 역사는 노년의 인물에게 기적적으로 가닿습니다.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는 이 과정을 그린 아름답고 멋진 소설입니다. 바로 사랑의 역사가 전해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의 핵심에는 세 인물이 얽혀 있습니다. 폴란드에서 태어났고 한 여자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 사랑의 역사를 글로 써서 남겼지만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의 비극 앞에서 여인과 헤어지고 미국에 건너가서 열쇠공으로 살아남은 한 남자. 친구의 원고를 들고 칠레로 가서 살다 친구의 소설에 매혹되어 그 소설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고 평생에 걸친 죄책감을 가지게 된 또다른 남자. <사랑의 역사>를 우연히 잃고 매혹된 아버지 때문에 <사랑의 역사> 속 여자주인공의 이름을 달고 태어난 소녀. 소녀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으로 더 이상 사랑을 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다른 남자들과 이어주려고 노력하다가 우연히 <사랑의 역사> 속 수수께끼와 얽혀 소설의 비밀을 파고들게 됩니다.

 

얽히고 설킨 관계들이 뒤엉키고 풀리는 과정을 통해서 소설은 사랑이 인간에게서 인간으로 전해진다는 너무나 단순하고 확실한 진리를 아름답게 알려줍니다. 동시에 소설은 유대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비극 앞에서도 사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비극을 거치고나서도 사랑은 따스하게 인간의 마음에 스며든다고 소곤거립니다. 니콜 크라우스는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문학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역사>를 전하는 인간들의 역사를 섬세하고 따스하게 그리며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십니다. 과하지 않게, 감상적이지 않게, 역사의 비극에만 빠지지 않게, 문학적인 기교를 담아서 예술적으로. <사랑의 역사>를 전하는 사람들의 사랑의 역사를 읽고 나니 내 마음이 젖어드네요. 문학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듬뿍 들이마신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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