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기-황정은

 

일기는 나만의 것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것인 일기는, 나의 삶을 나의 글로서 기록한 것이기에, 나라는 영역의 정체성을 잘 표현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기는 저마다의 이름을 가진 고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홍길동의 일기는 홍길동의 것이고, 이미경 팀장의 일기는 이미경 팀장의 것이고, 김민수의 일기는 김민수의 것입니다. 황정은의 <일기>도 황정은 작가만의 것이죠. 하지만 이 일기는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글로 기록한 것은 맞지만, 다른 이에게 공개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측면에서 홀로 보고 남기는 다른 일기와는 다릅니다.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기>일기이기에, 황정은 작가 고유의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세상과 일상을 바라보는 황정은만의 섬세하고 세밀한 시선, 조근조근 말하는 듯하면서도 삶과 일상의 폐부를 찌르는 듯한 느낌의 글들, 어딘가 다른 듯하지만 결국은 삶과 일상으로 이어지는 특성 등등.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황정은 작가의 글은 저의 어깨에 죽비를 내려치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인식하지 못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려주면서 저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폭력적인 성향,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의 위험성,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평범한 권력적인 상황들을 잘 알려주니까요. 오늘도 저는 <일기>를 읽으며 깨닫습니다. 제가 얼마나 무심하고 평범하게 폭력을 용인하고 받아들이며 행사하는지를.

 

단단하고 굳건하게 형성된 내 일상의 견고함을 깨부수고, 또다른 시각이 있음을, 또다른 삶의 방식이 있음을, 무수한 삶의 요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일기>를 읽는다는 건 저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더불어서 황정은 작가의 진솔한 고백은 <일기>가 단순한 사적인 고백이나 사적인 감각의 표현만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 고백은 사적인 것이 공적인 영역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의 사적인 고백이 다른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건 쏜살 문고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건-아니 에르노

 

이 책은 아니 에르노가 겪은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사건이라면 세상 어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건의 발생 확률이나 그것의 실제 체험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그러나 아니 에르노가 겪은 사건은 세상의 절반은 겪을 수 없는, 특정 성에 속하는 이들만 겪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임신 중절이라는 이름의 사건이니까요.

 

중년의 여성 아니 에르노는 감추어 두었던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기 시작합니다. 20대의 젊은 시절에 찾아온 불의의 임신. 삶에 낯선 손님처럼 덜컥 찾아온 임신 앞에 젊은 아니 에르노는 당황합니다. 아니 에르노의 삶에 임신이라는 상황을 만들어낸 상대방 남성도 당황하고 불안해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독실한 가톨릭교도인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죠. 당황하고 불안하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아니 에르노는 임신 중절을 결정합니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 임신중절은 불법으로 법적인 처벌을 받았으며, 사회적인 인식도 좋지 않았습니다. 절친한 친구는 그것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고 했고, 자신을 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남성은 도움을 요청하는 아니 에르노를 돕지 않고 이용하려고만 합니다. 의사들은 임신 중절을 거부합니다. 누구도 그녀를 도울 수 없습니다. 또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힘듭니다. 아니 에르노는 세상 앞에 오롯이 혼자로 서서 임신중절이라는 파고를 겪어내야 합니다. 혼자서 겪는 시련 앞에서 아니 에르노의 개인적인 사건은, 세상의 여성들이 겪었던, 겪고 있는,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사건의 의미를 획득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여성들과 이어지면서.

 

불안, 혼란, 고통, 고독 속에서 헤매던 아니 에르노 앞에 구원의 손길이 내려옵니다. 아니 에르노처럼 혼자서 임신 중절을 경험한 다른 한 여성이 아니 에르노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돕게 됩니다. 자신과 다른 타인이지만, 임신중절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한 여성의 도움으로 아니 에르노는 임신중절을 시도합니다. 그 과정은 혹독하고 괴로우며 힘겹습니다. 여성으로서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최악의 경험을 하면서 아니 에르노는 힘겹게 임신중절을 하게 됩니다. 다시는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힘겨운 경험을 겪은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이 경험을 감추어두게 됩니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마음 깊은 곳에서 꺼내어 글로 씁니다. 때가 되었다는 듯이, 이제는 글로 써도 괜찮다는 듯이.

 

짧은 내용이지만 이 책을 읽는 경험은 힘겹습니다. 고독하고 혼란스러우며 고통스럽고 불안한 작가 개인의 내밀한 경험이 페이지마다에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건, 그 고독하고 불안하며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작가의 경험과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 함께 불안하고 고독하며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기 때문에 생기는 정서적인 부담감이 독자에게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책읽기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세상 어디에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세상 누군가는 겪을 수 있는 일을 들여다보는 걸 포기한다는 건, 독자로서의 직무유기이자 책임방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을 읽기 전이라면 상관없습니다. 읽기 전이라면 아무 의미 없는 사건일 테니까요. 하지만 읽은 뒤라면, 읽고 있는 중이라면, 읽기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사건>을 읽었다는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 겁니다. 독자는 사건을 겪은 저자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같은 인간으로서, 혹은 조건이 같다면 같은 여성으로서. 이거야말로 <사건>이 독자에게 선사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 일리야의 눈으로 ‘요즘 러시아’ 읽기
벨랴코프 일리야 지음 / 틈새책방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벨랴코프 일리야

 

이 책을 읽으며 현재 제가 하고 있는 앎에 대한 인식의 과정을 되돌아봤습니다. 나는 앎의 과정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나는 앎이라는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용하며 내 것으로 만들어나가는가?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가 전해 준 지적인 자극이 일으킨 내 인식 과정에 대한 성찰은, 어쩔 수 없는 단순화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공통된 과정으로서 다가왔습니다.

 

1.성급한 일반화. 무언가를 안다는 건, 우선 피상적인 앎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드라나, TV영상, 우연히 보고 들은 지식의 과정을 거쳐 제 안에는 성급한 일반화를 거친 스테레오 타입이 생겨납니다. 미국은 부유하고 자유롭다. 일본 사람들은 친절하다. 러시아는 춥다. 이슬람은 테러리스트가 많다 등등. 세세하고 세밀하게 아는 게 아니기에 성급한 일반화는 어쩔 수 없이 이질적인 것들을 균질적으로 만들어 받아들이게 됩니다.

 

2.다양화 혹은 특수화. 성급한 일반화를 거쳐 생성된 내 안의 스테레오 타입이 이 과정을 거치면 깨져 나갑니다. 내가 앎의 대상으로 삼은 것들에 대해 꼼꼼하게 세밀하게 파악한 책이나 다큐먼터리, 인터넷 상의 정보들을 받아들여서 일어나는 이 과정은 카프카가 말한 책은 도끼라는 말과 딱 들어맞습니다. 책이나 다른 자료들에서 얻은 정보들은 내 안의 고정된 앎의 형상을 깨뜨리는 도끼가 되는 것이죠. 보통 이 과정은 성급한 일반화로 인해 균질한 것들로 여겨진 것들의 다양성, 특수성을 깨닫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이슬람 국가이지만 이란은 중동권 국가들과 다른 특서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다른 특성을 보인다. 러시아는 넓은 국가로서 기후가 지역마다 다양하다 등등. 다양화 혹은 특수화 과정을 거치면 내가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세밀하고 꼼꼼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3.재일반화. 다양화 혹은 특수화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체에 걸려 남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건 성급한 일반화와는 다른 또다른 의미의 일반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국가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재일반화 과정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여기서도 일반화를 합니다. 하지만 이 때의 일반화는 성급한 일반화와는 다릅니다. 보통 이때의 일반화되는 요소들은 길면 몇 백 년 짧으면 몇 십 년의 시간을 거쳐 국가, 사회, 지역, 공동체 사람들이 공통적 경험을 하면서 생성된 것들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것들은 몇 천 년 혹은 영원히 이어지는 영원불멸의 민족성이나 정체성이 아닙니다. 이것들은 나타났다 사라지고, 변화되어나가는 공통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한국을 대표하는 빨리빨리문화는 백 년 전에는 없던 것이었습니다. 백 년 전 한국인들은 농경 중심의 느릿느릿한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문화는 민족성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경험을 거쳐 형성된 공동체 의식이나 공통 정서, 문화적 습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보통 이렇게 세 가지 과정을 거쳐서 앎을 인식하게 되더라구요.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를 읽으며 러시아를 인식해나가는 과정도 똑같았습니다. 1.러시아는 추운 나라다-2. 책을 읽고 러시아의 기후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러시아를 단순히 추운 나라라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3.러시아는 모순적이고 다양한 특수성을 갖춘 나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러시아인들을 포괄하는 공통적 정서나 문화적 습관은 있다. 러시아어는 거의 사투리가 없으며, 러시아인들은 남에게 미소를 잘 짓지 않는다, 러시아인들은 권위주의적인 러시아 지도자상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제국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자신들의 길을 가려는 경향이 있다 등등등. 지금 전쟁으로 인해서 러시아에 대한 평이 좋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 모임을 통해서 이 책을 읽고 러시아에 대한 앎을 얻는 과정은 의미 있었습니다. 왜 러시아가 저런 행동을 저지르는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힌트는 얻었고, 러시아라는 국가에 대한 일종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앎'이라는 건,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기쁨과 동시에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들을 포함한다고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알았던 것이 잘못되었다거나

혹은 내가 알았던 것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서

내 자신의 지의 영역이 확장되거나 깊어지고,

내 삶 자체가 풍성해지는 것이

앎이라는 것이죠.

저는 이미 앎의 기쁨에 빠져버렸으니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저 책을 읽고 읽으며

앎의 기쁨을 계속해서 누리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이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밤이 되니까 확연히 느껴지네요.

더위가 사그라졌습니다.

더위가 사그라진만큼

이제는 더위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모두들 건강하시기를...

오늘은 여기서 이제 그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