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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타오르는 화염-존 스칼지

'교리적으로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방법'이란 말이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너도 알잖아. ... 교회는 자신이 봉사하는 종교와 별개의 체제다. 인간으로 가득 차 있어. 인간이 어떻다는 건 알지 않니.(52)

힘 있는 사람들은 질서가 어지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 자기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혼란은 찾아온다는 걸 이해하지 못해. 내 비전은 나중에 올 혼돈을 방지하기 위해 지금 질서를 흩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안 되지.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뭔가를 계획하고 있어요.(248~249)

네 위기는 상호의존성단의 해체이지. 너는 인류의 시스템들이 혼자 살아 가야 하는 세상에 대비하지. 그 일을 하는 데 네겐 국가라는 도구가 있지만, 국가의 도구만으로는 분명 충분하지 않겠지. 그러니 이제 너는 교회의 도구도 이용해야해.(311)

자신감은 내가 옳다는 확신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자신감은 내가 옳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에서 생기는 거다.(312)

그대들은 나를 의심했습니다. 더 이상 의심하지 말기를. 그대들은 나를 파괴하러 왔습니다. 나는 파괴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들은 나를 불태우러 왔습니다. 나야말로 여러분을 태우는 화염입니다. 불타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어려분은 느끼게 될 것입니다.(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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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화염 상호의존성단 시리즈 2
존 스칼지 지음, 유소영 옮김 / 구픽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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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타오르는 화염-존 스칼지

힘 있는 사람들은 질서가 어지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 자기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혼란은 찾아온다는 걸 이해하지 못해. 내 비전은 나중에 올 혼돈을 방지하기 위해 지금 질서를 흩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안 되지.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뭔가를 계획하고 있어요.(248~249)

'북스유니버스'라는 이상한 블로그 이름을 지으면서 뜬금없는 상상을 해봤습니다.(물론 이 이름의 기원이 된 것은 당연하게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입니다.^^) 내 서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는 무엇일까? 제 머릿 속 상상력에 떠오른 건 두말할 필요없이 '스페이스 오페라'였습니다. 우주를 무대로 펼치는 모험 활극인 스페이스 오페라가 북스유니버스와 맞지 않으면 어떤 장르가 들어 맞을까요? 뜬금없음이 계속 이어지지만(^^;;) 제가 이번에 읽은 책의 장르가 스페이스 오페라인 걸 생각해보면, 저는 제 블로그에 잘 들어맞는 독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책에서 제가 주목한 건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 뿐만이 아닙니다. 존 스칼지라는 작가의 이름이 눈에 꽂히더군요. '노인의 전쟁' 시리즈로 유명해진 이 SF작가는, 저한테도 친숙한 이름입니다. 재미있는 SF를 쓰는 작가로서요. 제가 이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신엔진>입니다. 제 나름대로는 제가 읽은 소설 중에서 최고의 배드엔딩을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작품이냐구요? <타오르는 화염>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신엔진>이야기를 하기가 뭐하네요. 그냥 읽어보시면 압니다. 제가 왜 최고의 배드엔딩이라고 했는지.(읽고도 모르면 어쩔 수 없구요.^^;;) 새드엔딩이 아닌 배드엔딩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있습니다.

말하다 보니 <타오르는 화염> 이야기는 전혀 안하고 있군요. ㅎㅎㅎ 이번에는 진짜 <타오르는 화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 잠깐, '그 전에'라는 말은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타오르는 화염>이야기를 해야하니까요. <타오르는 화염>은 상호의존성단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상호의존성단 시리즈는 우주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플로우'(해류나 기류처럼 우주에 존재하는 우주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에 의존해서 서로 연결된 채 이어진 '상호의존성단'이라는 우주 제국이 플로우 붕괴라는 위기를 맞아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존 스칼지는 우주적 규모의 스케일로 펼쳐질 수 있는 거대한 이야기를 '정치적 암투'라는 협소한 영역으로 축소시키는 영리한 선택을 합니다. 정치적 암투라는 영역의 이야기만 함으로써 플롯의 밀도를 높이고, 독자들이 이야기 속에 쉽게 빠져들 수 있게 하는 거죠. 당연히, 서사의 속도감은 높고, 이야기는 흥미진진합니다. 사극에 등장하는 정치적 암투에 익숙한 한국 독자들에게도 아주 친숙한 이야기 방식이고요.

플로우 붕괴라는 위기를 둘러싸는 정치적 암투라면, 사극의 애청자들은 쉽게 대립 구도를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시스템의 개혁을 통해 위기를 해소하려는 개혁 군주와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군주의 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의 대립. 이 뻔하디뻔한 구도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존 스칼지가 구축한 캐릭터의 개성, 스피디한 전개, 어렵지 않으면서 귀에 박히는 대사들, 암투의 흥미진진함입니다. 현재 SF를 쓰는 작가 중에서 손에 꼽히는 스토리텔러 답게 존 스칼지는 비교적 이것들을 능숙하게 해냅니다. 2편인 <타오르는 화염>에서는 황제의 카리스마를 부각시키는 방법까지 쓰면서. 제가 역사책들을 읽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로마 제국의 역사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원로원과 공화정의 시스템을 어떻게든 유지하려는 보수파와 거기에 대립하는 율리우스 시저 같은. <삼국지>나 <초한지>도 떠오르더군요. 어쨌든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었기에 다음편이 나오면 읽을 생각입니다. 재미있으니까요.^^;; 그 다음편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아, 참 그래도 황제의 카리스마 이야기를 언급했으니 그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대사를 안 적을 수가 없네요. 그걸 적고 진짜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대들은 나를 의심했습니다. 더 이상 의심하지 말기를. 그대들은 나를 파괴하러 왔습니다. 나는 파괴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들은 나를 불태우러 왔습니다. 나야말로 여러분을 태우는 화염입니다. 불타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어려분은 느끼게 될 것입니다.(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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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화염> 같은 소설에 내가 바라는 건 재미다.

재미를 준다면 그 이상 더 무엇을 바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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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20-01-14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칼지 재밌잖아요~~^^ 1편보다도 훨씬 재미있어서 3편이 기대됩니다~

짜라투스트라 2020-01-15 11:2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스칼지의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문학을 읽고, 소설을 읽고, 무언가의 감흥에 휩싸여 울 수 있다는 건, 지극한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이 복된 일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문학이 나에게는 '좋은 문학'이다. 내가 좋은 문학을 이렇게 생각한다는 건, '내가 지금까지 읽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문학 작품이 나에게는 좋은 문학작품이었다'는 말로 이어진다. 언제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문학은 나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슬픔이 계속해서 찾아들게 만든다. 읽다가 책을 덮고 감정을 잠시 억누르게 만든다. 그녀의 책은, 소설은 언제나 나를 그렇게 만든다. <아연 소년들>이 그랬고, <세컨드 핸드 타임>이 그랬다. 장담하는데, 아직 읽지 않은 <체르노빌의 목소리>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마찬가지리라. 그건 실제 일을 경험한 이들이 내는 목소리들이 모아서 만들어진 소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나를 감정의 어떤 극한으로 몰고간다. 나를 슬픔의 극한까지 치닫게 한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목소리는 나를 몰아가고 나는 거기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그게 팩트가 가진, 실제 경험이 가진 힘이다. <마지막 목격자들>도 마찬가지다. 2차 대전이라는 비극을 겪은 벨라루스의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려내는 전쟁의 비극은, 전쟁이라는 힘없는 사전의 단어가 주는 힘보다 몇 만 배, 몇 억 배 강하다. 아이들은 죽어가는 부모와 가족과 친척과 이웃과 친구와 사람들을 봤다. 죽어가는 이들의 비명을 들었고, 죽어가는 모습을 봤다. 그들도 죽지 않기 위해 극한의 삶을 견뎌야 했다. 이유없는 무수한 죽음들, 아니 설사 이유가 있다고 해도 설명할 수 없는 무수한 죽음과 폭력들. 수용소의 비인간적인 모습과 독일군이 저지른 무수한 만행들까지. 전쟁은 그들을 옥죄고 큰 상처를 남기고 심지어는 기억을 잃게 만들기까지 했다. 아이들의 시선과 기억속에 남겨진 전쟁이라는 비극의 참상을 목도하고 나는 눈을 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눈을 돌리지 않았다. 눈을 돌린다면, 그것을 보지 않고 회피한다면, 전쟁의 비극성 앞에서 굴복하는 꼴이 되니까. 눈물을 흘리며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면서 나는 다시한번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에 다다랐다. 뻔하지만 이 말밖에 달리 할말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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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책을 읽고 안 울어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역시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작가가 전해주는 '슬픔의 힘'에 나는 면역성이 전혀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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