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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권 뒷부분의 해설을 보니, 이 소설이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비평적인 좋은 평가와는 별도로, 내 개인적인 감상의 영역에서는 좋은 평가를 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종종 비평과는 상반된 태도를 보여왔다. 비평적으로 좋은 평가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내가 그 작품을 재미있게 읽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어렵고 난해한 작품이 독자에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문학사적,사상적,철학적으로 좋은 비평적 의의를 가진 작품이 독자에게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독자는 그저 자신의 입장에서 책을 읽고 그에 따라 판단하고 느끼면 되는 거 같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은, 먹고 살기도 힘든 이 시대에 조금 욕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든 나는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비평과는 다르게. 그 재미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에 끌리는 습성, 낭만주의적이고 감상주의적인 성향 같은 것들이 많이 작용했다. 이 책을 읽고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여전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초기작들을 개인적으로 좋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야기꾼으로서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가로서 사상보다는 서사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좋게 느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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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상, 나는 기본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초기작이나 중기작을 더 좋아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사상이나 철학에 아직 심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설가로서의 이야기 구조를 이끌어나가려는 모습이 느껴져서. 깊고 심오한 사상이나 철학의 향취가 느껴지는 후기 걸작들의 문학성이나 가치를 인정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상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너무 당연하게도 <상처 받은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설이었다. 인물들의 장광설이나 광기, 작가의 사상이나 철학이 지배하는 소설이 아니라, 서사가 살아 있는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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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는 보르헤스의 문학적 동지로서 보르헤스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보르헤스 사후인 1985년 이후에야 주목을 받기 시작한 작가이다. 보르헤스의 문학적 동지답게, 그는 자신의 소설에 환상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적인 환상은 보르헤스와 다르다. 보르헤스의 환상이 문학적이고 텍스트적인 요소가 많다면, 카사레스의 환상은 과학이나 사상,철학에 기반한 좀 더 현실적인 것이었다. 문학적이고 텍스트적인 기법으로 현실과 환상을 겹치는 것이 보르헤스의 환상이었다면, 카사레스는 현실이 아님에도 마치 현실인 것처럼 보이는 환상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에 대한 확실성이 사라진 시대의 불확실한 현실적 경향을 소설로 형상화한다. 과학소설과 추리소설, 신화와 전설의 요소들을 이용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엄청 어려운 소설 같겠지만, 카사레스의 소설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과학소설(SF)와 추리소설, 연애소설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서사 구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보르헤스의 소설보다 훨씬 읽기 쉽다.(물론 동시대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담거나 그것을 패러디하는 부분이 있기에 그걸 제외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어쨌든 카사레스의 환상 속에서 빠져서 헤매다보니 어느새 책이 다 끝나 있었고, 나는 필연적으로 다음 책으로 넘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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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의 공포소설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는 <거울>의 공포는 어딘가 쓸쓸하고 외롭고 황량하고 서글프다. 슬픔과 외로움을 왔다갔다 한다고 할까.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중 한 편인 <몬터규 로즈 제임스>에 나오는 몬터규 로즈 제임스의 공포소설들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몬터규 로즈 제임스의 공포 소설에서 유령들은 어둡고 사악한 존재들이다. 그에 비해 이디스 워튼의 공포소설에서 유령들은 외롭고 쓸쓸하고 어딘가 서글프다. 물론 무섭고 섬뜩한 부분이 있지만, 그 무서움은 몬터규 로즈 제임스의 공포소설들의 공포 보다는 어두움이 덜하고 공포스러움이 약하다. 하나 더 내가 생각한 것은 이 소설들의 여백이다. 작가가 말하지 않고, 비어있는 이야기의 여백이 이 책의 소설들에는 상당부분 존재한다. 당연하게도 그 여백을 채우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열려 있는 텍스트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생각하기에 소설의 여백은 이 공포소설들의 장르스러움을 약화시키고 문학성을 강화시킨다. 결국 나는 이디스 워튼의 문학적인 공포소설 모음집을 본 느낌이다. 공포소설이지만 장르문학 같지 않은 문학의 향취를 강하게 풍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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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단편소설을 읽었을 때는 '지극히 도스토예프스키적인데 유머러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소설들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인물들의 서글픈 드라마 같은 느낌이었고, 마지막 두 편의 소설들인 <백야>와 <꼬마 영웅>의 경우에는 감탄했다. 특히 <꼬마 영웅>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과 비견될 정도로, 유년기를 다룬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 중편 중에서 가장 훌륭한 소설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어쨌든 도스토예프스키적이면서 도스토예프스키적이지 않은(??) 단편들을 읽으면서 역시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세계가 넓고 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도스토예프스키가 더 복잡한 작가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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