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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함께 읽기다 - 독서공동체 숭례문학당 이야기
신기수 외 지음 / 북바이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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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393.이젠, 함께 읽기다-신기수 외

독서가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다른 생각을 듣고 그 차이를 경험하는 독서토론은 실천의 현장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삶의 문맥에 놓인 타자를 체험하고, 또 경험하는 자리다. 그러므로 독서토론은 인문적 실천의 장이다.(24)
마음에 새살이 돋아나게 하려면 내면의 어떤 힘이 약동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 안에 숨어 있는 소망과 가능성을 응시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을 꺼내어 존재의 날개로 펼칠 때 기꺼이 갈채를 보낼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우정과 환대가 곧 힐링이 된다.(60)
물질의 풍요가 아닌, 정신의 풍요를 원하기에 책을 진지하게 대하고 자신의 언어로 곱씹고 싶어 한다.(88)
가장 좋았단 점은 명쾌한 답이 아니라 모호한 그 느낌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그 모호함을 견디는 힘인 것 같다(158)
진정 '자기 찾기'를 하고자 한다면 타인과 무관한 존재로서의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포함한 이 네트워크는 어떤 구조이고, 이 속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168)
독서토론은 세게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독후활동이다. 책 속의 지식을 체화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은 물론 외부의 세계를 분석하고 정리해 스스로 인생관을 바로 세울 수 있다.(177)
독서는 언어의 규칙 안에서 하나 이상의 의미를 구축하려는 독서가의 노력을 반영하는 생산적인 과정(221)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유용한 것이 결핍되었을 때의 그 답답함을 생각하기 바란다. 억압된 욕망은 그것이 강력하게 억압될수록 더욱 강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중략) 인간은 문학을 통해, 그것에서 얻은 감동을 통해, 자기와 다른 형태의 인간의 기쁨과 슬픔과 고통을 확인하고 그것이 자기의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226~227)

독서토론을 한지도 거의 12년째가 되어 갑니다. 처음 군대를 제대하고 철학책과 사회과학책만 잔뜩 읽고 토론이 아닌 말싸움을 하고 싶어 독서모임에 들어가서 독서토론을 시작한 이래로 말다툼, 독서모임 내에서늬 싸움과 강제탈퇴, 우울증의 시간, 문학으로의 입문, 지금에 이르기까지 독서토론을 하며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겪은 시간이었습니다. 켜켜이 쌓인 시간만큼이나 독서토론에 대한 제 생각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복합적인 시각으로 독서토론을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제가 독서토론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건 다시 인생을 거꾸로 돌린다고 해도 독서토론을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만큼 제 인생에서 책과 더불어 독서토론이 무수한 영향을 미친 것이 맞고, 그것에 긍정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를 힘들게 한 것도 많지만, 그것보다 더욱 더 좋은 영향을 미친 것도 많습니다. 우울증으로 삶의 생기가 죽어가던 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의 길로 인도한 것도 책과 독서,독서토론이고, 예전과 달리 쉽게 우울해지지 않는 자아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과 책과 독서, 독서토론입니다.(책과 독서,독서토론만이 저를 치유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요인도 있지만 책과 독서, 독서토론이 큰 힘을 발휘한 것은 맞습니다.^^)

저처러 <이젠,함께 읽기다>의 저자들이 말하는 독서토론의 힘을 실감하는 독자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독서토론의 힘을 몸소 체험하고 삶과 자아가 변화한 인간으로서 저는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독서토론의 힘에 거의 공감합니다. 함께 책을 읽고, 나이와 직업과 성별에 상관없이 책에 대해 대화하며 웃고 즐기고, 때로는 치열하게 논쟁하며 소통의 시간을 가지고, 그것을 반복하며 자신의 생각과 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를 변화시키고, 살아온 나날들이 12년이 넘어가는 데 어찌 제가 독서토론의 힘에 대해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독서토론의 힘을 겪어온 산 증인으로서 저는, 저자들처럼 독서토론의 힘을 믿고 많은 이들이 이 경험을 하고 좋은 힘을 받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바란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겠죠. 책 읽는 사람을 찾기 힘들고, 실용적인 책이거나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책이 많이 팔려나가기 어려운 척박한 한국의 독서 현실 속에서 독서토론이라는 경험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는 믿음이 있습니다. 독서토론이라는 경험을 계속 해나간다면 그 이전과는 다른 인간이 되어 더 좋은 자아를 가지고 더 좋고 괜찮은 인간을 위해 나아간다는 믿음. 물론 어디까지나 제 믿음이지만, 저는 그럴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제 확신이 의심스럽다면 한 번 독서토론을 해보시기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다는 전제는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욱 더 많은 이들이 독서토론을 하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기 바라며 이제 글을 마치려 합니다. 참 글을 둘러보니 독서토론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간증 같은 글이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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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2-0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토론을 하게 되면 확실히 책만 읽으면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분위기를 느껴요. 책을 읽으면서 잘못 생각한 것을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피드백할 수 있어요. ^^

짜라투스트라 2017-12-07 10:32   좋아요 0 | URL
네 독서토론은 정말 좋은 경험입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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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조지 레이코프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바꾸는 것이다.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18)
제가 버클리에서 '인지과학 입문'이라는 수업을 진행하며 프레임 연구를 강의할 때, 처음으로 하는 일은 학생들에게 한 가지 과제를 내주는 것입니다. 그 과제는 바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은 것'인데요, 말 그대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코끼리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옮긴이] 저는 이 과제에 성공한 학생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코끼리'와 같은 단어는 그에 상응하는 프레임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어떤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종류의 지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코끼리는 크고, 펄럭이는 귀와 긴 코가 있고, 서커스와 연관되어 있고... 등이지요. 이 단어는 그러한 프레임에 의거하여 정의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합니다.(23~24)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닙니다. 본질은 바로 그 안에 있는 생각입니다. 언어는 그러한 생각을 실어 나르고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26)

예전에 저와 정치적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과 말다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흥분해서 싸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회의감이 들더군요. '어차피 말도 안통하는 사람이고 말을 해봤자 내 인생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데다 이 사람도 자신의 생각을 바꿀 여지가 전혀 없는데 이렇게 쓸데없이 싸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 자료와 증거를 제시하고 논리적으로 얘기하는데 상대방은 '안 들을건데, 안 믿을건데'로 응수하는 수준이라 도저히 내가 이 사람과 왜 말을 하고 있는지 의아해지더군요. 말다툼을 끝내고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식의 말다툼은 하지 않겠다고.

2006년도에 이미 읽었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독서모임 때문에 다시 읽으며 저 말다툼이 떠올랐습니다. 나와 말다툼을 한 나이 많으신 분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얘기한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의 틀로서의 프레임을 완벽하게 구축해놓고, 언어는 그 프레임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자신의 프레임을 벗어나는 말은 완벽하게 무시하는 모습으로. 저는 그 말다툼을 통해 조지 레이코프의 말이 얼마나 옳은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2006년에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읽고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적이 있습니다. 2006년에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읽고 그것이 얼마나 옳은지 알았고, 인식틀로서의 프레임과 인식틀을 전하는 도구로서의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저마다 자신만의 인식틀인 프레임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나서 세상을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재구성한 뒤에 그것을 언어로서 표현하고 있는 셈인데, 이 프레임과 말의 힘을 무시하고 말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2006년에도 저의 고민은 깊었습니다.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나의 프레임을 타인에게 전하기 위해 어떤 말을 써야할까. 깊은 고민만큼 나름대로 여러 방법을 써봤습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타인의 벽은 높았고 저의 좌절은 깊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저만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저만의 언어를 써왔죠. 어느새 시대가 바뀌고 나서야 깨달은 게 있습니다. 저만의 노력과 더불어 시대의 변화가 따라주어야 성과가 있는 거라고. 시대의 변화는 내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니 그냥 저의 이상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믿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수밖에 없다고. 그렇습니다. 조지 레이코프가 제시하는 것들이 어떤 희망을 준다고 해도 시대가 따라주어야 성과가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묵묵히 자신을 믿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제는 미소가 지어지네요. 미소로 글을 끝내려 하는데, 마지막으로 덧붙여서 미국인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네요. 조지 레이코프가 과거에 저에게 주었던 힘만큼 트럼프 시대를 살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제가 힘을 주고 싶네요. 노력하다보면 분명 좋은 날이 있을 거라는 말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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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김민철.김승은 외 지음, 민족문제연구소 기획 / 생각정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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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조한성 외

강제동원 100년의 문제를 해결할 가장 근본적인 노력은 진실을 기록하고 과거를 기억하는 데 있다.(13)
지난 세기 가혹한 고통을 당하고 질곡의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우리가 우리 시대의 정의와 공동체의 번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120)
죽은 자를 기억하는 것은 산 자들의 일이다.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산 자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죽은 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은 결국 산 자가 죽은 자의 이름을 빌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추모하고 기억하는 일이 의례를 넘어 생활 속에 함께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참된 의미의 추모와 기억이 아닐까.(303)
우리는 일본, 일본인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제 침략 및 일제 강제동원의 '강제성''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는 세력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용서 없이 역사 청산을 이룰 수 없다.(405)

R의 고백

이 책을 읽는 도중에 너무 슬퍼서 책을 덮고 잠시동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문뜩 내 머릿속으로 심리학, 자아 정체성, 역사가 뒤얽힌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마침 제가 제 생각을 발표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그때 떠오른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뭔가 논리적으로 잘 정리된 생각은 아니지만 저만의생각이 담긴 것이기에 이해하고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과거에 겪였던 몇 년에 걸친 심리적인 자가 치유의 시간에 있어서 제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제 자신의 여려 면모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가 치유의 시간을 가지기 전의 저는, 저 자신의 나쁜 면, 추한 면, 악한 면, 부끄러운 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피만 해왔습니다. 회피는 저 자신에 대한 부정이나 환멸, 자학으로 이어지더군요. 우울증이라는 문제가 생기고, 치유의 과정을 가지고서야 저는 저 자신의 부정적인 면모를 회피하다 못해 부정하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가 치유의 시간을 가지고서야 저는 자신의 부정적인 면모를 끌어안고 그것이 저 자신의 자아 정체성임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수용과 인정의 과정을 거친 저는, 그 이전의 저와는 다른 존재가 되더군요. 과거보다 조금 더 건강하고, 강해지고, 더 나은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의 존재. 저는 지금의 저가 좋습니다.

이 자아 정체성을 인식하는 과정의 문제를 단지 '자아'의 문제를 넘어서 확장시켜봅시다. 공동체,사회,국가의 영역으로. 공동체,사회,국가에도 긍정적인 면와 부정적인 면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긍정적인 면만 기억하고 부정적인 면은 무시하고 없는 것처럼 말하고 기억한다면 그 공동체가,사회가, 국가가 건강하고 괜찮은 공동체,사회,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자아 정체성에 문제가 생긴 저 자신의 과거의 모습처럼, 그 공동체,사회,국가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역사의 문제를 여기에 연결한다면 좋은 역사만 기억하는 공동체,사회,국가는 어딘가 있는 문제가 있는 공동체,사회,국가라는 말이 되겠죠? 어쩌면 역사를 공부하고 배우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라는 존재가 속한 공동체,사회,국가가 더 건강하고 건전하며 나은 공동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을 읽으며 저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건전한 국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피해,차별,학살,폭력,강제동원 등의 사건들을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사과나 보상도 안한 채 자신들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시키고 그것만 기억하는 나라가 어떻게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한국인 피해자들을 돕는 일본인들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각각의 개인들을 떠나서 일본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일본 사회 전체를 역사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일본만 문제가 있는 걸까요? 한국은 어떤가요? 한국은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돌아보고 더 건강하고 건전한 공동의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일까요?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보면 이 부분에서 한국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요? 저는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저는 저 자신이 자기 치유를 했던 것처럼, 미약한 힘이지만 저 자신이나마 더 괜찮은 공동의 정체성을 가진 사회로 한국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위해 더 많은 역사책을 읽고 혼자서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과 저 자신의 생각을 교류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입니다. 저의 이런 미약한 행동이 작은 파문이나마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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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의 시대
진중권 지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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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치란 무엇인가-진중권

책을 다 읽고 멍하니 앉아 있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무조건 서평을 써야한다는 1독1서평 원칙을 언제부터인가 실행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서평 쓸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글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써야하나부터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데 뻔한 서평은 쓰기 싫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진다. 일반적인 서평이 아닌, 조금은 다른 서평을 써야겠다는 의지에 굴복하여 나는 나의 정치적 궤적을 훑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 서평을 빙자하여.

나의 정치적 궤적.

 극우 마지막해: 만주를 한국이 점령해야 한다. 전라도에 대항하여 경상도가 뭉쳐야 한다. 빨갱이들이 한국을 점령하게 두어서는 안된다.
-그때 영향 받은 책이나 언론:환단고기, 조선일보 등

진보 원년: 한국은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다. 한국을 바꾸기 위해서는 급진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그때 영향 받은 책: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당신들의 대한민국,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폭력과 상스러움


극좌 원년: 모든 형태의 권위적 권력은 필요없다. 국가도, 사회도 모두 해체되어 새로운 급진적인 사회로 태어나야 한다.
-그때 영향 받은 책:만물은 서로 돕는다,저주받은 아나키즘,아나키즘 이야기 등

멋대로 정치 1년: 정해진 이념 속의 정치이념을 받아들이기 보다 상황에 맞는 정치 이념을 선택해야 한다. 어떤 정치이념이나 사상이든 상황에 맞게 제대로 쓸 수 있다면 그것이 괜찮은 정치가 될 것이다.
-그때 영향 받은 책:1984,동물농장,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자기 앞의 생,장미의 이름,눈먼 자들의 도시,픽션들,백년의 고독,한밤의 아이들,제5도살장,언젠가 세상은 영화가것이다,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모두스 비벤디,트랜스크리틱,멈춰라 생각하라,중용 등등

멋대로 정치 8년 째(2017): 정치와 삶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생활이 곧 정치고 정치가 곧 생활이다. 거기에서 정치니 생활이니 철학이니 하는 구분은 무의미하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실행하는지가 내 삶과 정치 모두를 규정지을 것이다.
-영향 받은 것들:내가 읽은 책 모두, 내가 살아가는 삶 전부가 나에게 영향을 끼친다.

낡은 반북주의, 반공주의 이념만큼 강력하게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을 제약하는 요인은 없을 겁니다. 현상을 타개하려는 어떤 시도도 이념 앞에서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지요. 새로운 생각은 무조건 위험한 생각, 시뻘건 생각으로 공격을 받았으니까요. 복지를 늘리자고 해도 빨갱이, 국보법을 폐지하자고 해도 빨갱이, 정부를 비판해도 빨갱이, 북한과 대화하자고 해도 빨갱이, 뭔가 다른 얘기를 하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 붙이니, 그 두려움 때문에 시민들 스스로 내적 검열을 해서 아예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 이제 우리도 과감히 정치적 상상력을 펼쳐야 합니다. 자유로워지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평등해지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 더 용감해져야 합니다.(144~145)

책에 덧붙여.
어떤 특정 정치이념에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얽매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 그러면서도 자신의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의 정치적 이념이나 선택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끊임없이 파악하고 자신의 정치적 주장이나 생각을 성찰하는 것. 자신의 정치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정치적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주저하지 않고 정치적 상상력을 펼치되 그 파급력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좋은 정치란 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정치적 태도에서 파생되는 어떤 특정한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정치적 태도나 생각에서 좋은 정치가 태어난다고 여기기에.

끝.
여기가까지 내가 생각한 이 책에 대한 나만의 서평이다.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의 한계 속에서 써내려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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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2-03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 주제를 다룬 책을 리뷰하는 일은 난감해요. 내 생각을 소신있게 밝히면 욕 먹으니까요.. ^^;;

짜라투스트라 2017-12-03 18:11   좋아요 0 | URL
맞는 말입니다^^

sprenown 2017-12-04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성향과 이념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솔직하고 진실된 글이라면 다들 이해 해 줄수 있을 것입니다. 이 알라딘 서재에서까지 자기 검열을 한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되고,억압된 사회였는지 반증이 되네요.^^

짜라투스트라 2017-12-04 11:21   좋아요 0 | URL
분명 그런 면이 있는 건 확실합니다.^^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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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이사카 코타로

1.
평화경찰은 진짜 위험한 인물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경찰에게 필요한 건 진짜 위험한 인물이 아니라
위험한 인물을 만들어냄으로써 생겨나는 통제와 질서다.
당신이 위험해서 위험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위험인물로 지목되었기 때문에 위험인물이 된다.
위험인물이 되는 순간 당신은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자백하게 될 것이다.
자백한 순간, 당신은 죽은 목숨이다. 위험인물이 되었기 때문에.
가학을 즐기는 평화경찰들은 즐기며 당신을 괴롭히고,
당신이 굴복하여 자백하면 역시 웃으며 당신의 공개처형을 결정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바라보는 앞에서 단두대 앞으로 끌려간 당신은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쳐다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신이 죽어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당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니 오히려 그들은 당신이 죽는 걸 은근히 바라기까지 한다.
당신의 죽음이 그들에게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당신이 운이 좋다면, 정의의 편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검은색 타이즈를 입고 오른손에는 목검을, 왼손에는 골프공 같은 신비의 무기를 든 남자.
그가 온다면 눈을 감고 기도하라. 나 자신을 구해주기를.

2.
위의 글은 이 소설의 내용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본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한 느낌이 있지만, 거의 들어맞는다고 보면 된다. 위의 글만 읽다보면 이 책이 어둡고 무거울 것 같지만 소설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이사카 코타로 특유의 위트와 톡톡 튀는 감성이 있어서 소설은 어둡다거나 우울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전개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소설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정의는 무엇인가라거나 영웅 이야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거나 사회적 부조리가 계속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같은.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와 무거운 질문의 역설적인 공존 앞에서 독자들의 고민은 무겁지 않게 계속될 것이다. 어쩌면 그게 이사카 코타로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볍게 읽고 나서 무겁게 고민하는 식으로.

3.
책에서 흐르는 정치에 대한 독특한 시각은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그런 것처럼 보인다. 자민당의 일당 독재 같은 일본의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변화를 꿈꾸는 이라면 어쩔 수 없이 회의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회의감이 너무 깊어서 절망감과 패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그 절망감과 패배감에서 빠져나오려면 자신만의 절망을 피하는 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사카 코타로는 소설을 통해서 자신의 상상력을 구현하며 그 절망감과 패배감을 피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뜻언뜻 들여다보이는 정치에 대한 혐오나 무력감마저 피할 수는 없었으리라. 이사카 코타로가 일본보다 정치적인 의사소통이 쉽게 이루어지고 정치 시스템이 활발하게 돌아가는 곳이었다면 그의 소설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 소설을 읽다가 문뜩 그것이 궁금해졌다. 아마도 제목이 '지구에서 살 생각인가?'로 바뀌지 않았을까. 혼자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소설 '지구에서 살 생각인가?'를 떠올리며 이제 이 글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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