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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직 다 읽지 않고 초반부만 읽었다. 그런데 한숨이 흘러 나온다. 하아~~ 이 글은 내가 왜 한숨을 내뱉게 됐는지에 대한 일종의 작은 기록이다.

처음 저자 소개를 읽었는데 폭스뉴스에서 경제논평을 하고 있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흠, 처음으로 폭스뉴스에서 경제논평을 하고 있는 인물의 책을 읽는군. 폭스tv는 미국의 극우 언론인데... 선입견은 좋지 않아. 선입견을 버리고 읽자. 하지만 선입견을 버리자고 외쳐도 머리 속으로 미국 극우파(미국 우파도 포함될 수 있다)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이 흘러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미국 극우파의 그 피해망상적인 음모론. 미국 정부의 위험성에 대한 거의 신경증적인 반발과 불안감, 불신. 그에 따라 세금을 악마적으로 여기는 경향. 엘리트에 대한 엄청난 불신과 반발. 하지만 그 엘리트가 기반이 된 기득권층에게 유리한 정책을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모순적인 태도.(예-감세) 과학의 정상적인 이론이 된 지구온난화를 음모론으로 치부하고 사뿐히 즈려밟고 무시하는 태도... 무수한 생각들이 머리로 흘러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머리를 흔들고 그런 지식 따위는 무시하고 차분하게 읽어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런데... 아뿔사...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다. 왠지 모르게 미국 정부의 위험성을 계속 경고하는 것부터. 지나치게 경고하는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정부의 힘을 강조하는 것이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사실 미국 우파가 정부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은 아주 일반적이다. 정부의 위험성을 계속 강조하며 그들은 작은 정부론을 주장하다 더 나아가면 시장만능주의나 자유지상주의로 흐른다. 규제는 좋지 않다에서 시작해서 정부 규제는 필요 없으니 시장이 알아서 한다는. 
그런데 시장이 그렇게 알아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면 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났을까? 왜 1920년대 말의 대공황이 일어났을까? 왜 닷컴버블 사태가 일어났을까? 왜 엔론사의 조작같은 사기 사건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아 그런 문제가 있어도 놔두면 알아서 해결한다고. ㅎㅎㅎㅎ 대공황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얘기한 천문학적인 경제 피해와 서민들이 겪은 무수한 고통 정도는 사뿐히 무시해야 자유시장주의자가 되는 거구나. 아 그 정도 피해와 문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야기한 것이니 넘어가야 되는 거구나.^^;;
다행히 이 책은 그 정도 수준까지 가지는 않았다. 행동경제학을 언급하며 기존 경제학의 주류가 이야기하는 경제적 인간은 잘못됐다고 이야기한다. 정말로 다행히.
이 책은 더 교묘하다. 저자는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은 행동경제학과 복장섭 이론, 베이즈 통계학등을 이용해서 기존과 다른 새로운 것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뭐가 새롭다는 거지...
정부의 위험성을 과대포장하고(내가 읽은 미국 지식인의 책들 중 다수는 미국 정부가 내치에서는 과거보다 훨씬 약해졌다고 말한다. 기득권층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의 자신들에 대한 규제를 로비를 통해 약화시켰기 때문에.), 세금을 경계하는 태도가 새롭단 말인가?
어떻게 기업과 가진 자들이 세금을 피하는지 온갖 이야기를 하면서 내리는 결론이 '국가는 만족을 모른다'라거나 '실적이 좋은 기업은 사정없이 털린다'라고. 하아~~ 이건 맨날 하는 얘기잖아. 이게 뭐가 새로워. 마음 속에서 반감이 올라왔지만 꾹꾹 눌러두고 책을 읽는다.
읽다가 드디어 폭발한다. 저 대목에서. '기후변화에 과학적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양측의 견해가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과학적으로 입증된 주장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주장도 있다.'
이봐요, 이 무식한 제임스 리카즈 씨. 기후변화는 과학의 영역에 있습니다. 과학이라는 건 뭐죠? 과학적 근거를 댈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것이죠. 그런데 당신은 기후변화에 과학적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개풀 뜯어먹는 소리입니까?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고백하고 있는 겁니다. 과학영역의 이야기를 과학이 아닌 정치의 산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정치에 있어서야 과학적 근거가 중요하지 않겠죠. 정치에서는 자기 말이 얼마만큼 먹히고 있냐가 더 중요한 것이니까요.
더 황당한 건 두 번째 말입니다. 양측의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고요? 이봐요, 최소한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학계의 동향을 살펴보고 연구성과의 흐름을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도대체 책을 쓴다는 사람이 근거 없이 자기 생각대로 내뱉습니까? 기후 변화에 있어서 지구 온난화에 대한 미국 극우파의 주장은 한번도 지구 온난화에 대한 학계의 주류적 주장과 팽팽히 맞선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언제나 지구 온난화에 대한 주류적 주장이 엄청난 다수를 차지하고 있죠. 왜냐구요? 그게 과학적으로 증명되니까요. 나중에야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이들이 지구 온난화는 없다라거나 과대포장되어 있다고 외치고 있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포장하려고 노력하죠. 하지만 거기서 그들에게 중요한 건 과학이 아닙니다. 정치죠. 그들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음모론을 퍼뜨리려는 겁니다. 지구온난화는 없다거나 과대포장되어 있으니 기업들에게 규제하지 마라고 하면서.ㅎㅎㅎ
내가 왜 이런 비과학적인 주장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내뱉고 무식한 저자의 책을 계속 읽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읽을 수밖에 없다. 읽기로 했으나까. 고행의 길은 계속된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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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21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구온난화 문제를 부각하는 학자들의 주장과 근거도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지구온난화를 회의적으로 보는 환경주의자들도 있어요. 이들의 주장을 듣지 않고, 무조건 반환경주의자, 기업의 끄나풀로 몰아세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짜라투스트라 2018-03-21 15:05   좋아요 0 | URL
글쎄요, 지구온난화의 영향에 대해서는 논의가 가능하겠죠. 그러나 지구온난화가 가능하지 않다거나 그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주장이 과학적인지는 의문이 드네요. 그리고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지속적으로 지구온난화를 공격하는 것에는 분명히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확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의도가 어떻든 어떤 식으로든 기업에 대한 규제를 줄여서 기업에 이득이 되는 것은 맞거든요.

짜라투스트라 2018-03-21 15:40   좋아요 0 | URL
저는 그들을 반환경주의자라거나 기업의 끄나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글 어디에도 그런 얘기는 없죠. 저는 다만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행동이 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닐수도 있습니다. 환경주의자들도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죠. 하지만 의도나 생각과는 달리, 결과는 거의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고 봅니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영웅이 된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저자 비외른 롬보르의 의도가 어떻든 미국 기업들과 보수주의자, 보수주의 싱크탱크에게 중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짜라투스트라 2018-03-21 15:06   좋아요 0 | URL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저자의 주장이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나름의 지적인 성찰을 거쳐 나온 문장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앞에 제가 쓴 문장을 봐도 무신경함과 특정한 편견에 기대고 있는 것이 명확히 보이고 있으니까요. 제가 바라는 것은 그런 문장을 쓰려면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노력도 없이 편견에 기대어서 과학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말을 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것에 대한 비판이죠. 저자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책을 읽는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저는 저랑 생각이 달라도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문장은 그렇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노력도 보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음모론이나 비관론적인 주장에 기후변화를 짜맞추고 있죠.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책과 대화하며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저는 그런 의미에서 저 나름의 대화의 결과물로서 이 글을 쓴 것입니다.

cyrus 2018-03-21 15:23   좋아요 1 | URL
저는 짜라투스트라님의 글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지적하고 싶어서 의견을 밝힌 건 절대로 아닙니다. 저도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고요, 지구온난화 문제 자체를 ‘부정’하는 학자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짜라투스트라님이 말씀하신 대로 지구온난화 문제를 부정하는 학자들의 주장은 기업의 입장을 유리하게 만들죠.

저는 지구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을 입증해주는 과학적인 근거와 지구온난화 자체를 부정하는 학자들의 과학적인 근거 모두 다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에서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제 의견은 <프리먼 다이슨의 의도된 실수>를 쓴 프리먼 다이슨의 견해와 비슷합니다. 프리먼 다이슨이 회의적인 환경주의자들을 ‘열정적인 환경운동가’라고 부르면서 옹호한 점은 저는 동의하기 힘들지만, 다이슨이 지구온난화 문제를 알리는 환경주의자들의 입장을 경계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어요.

환경주의자들도 ‘사람’입니다. 전문가도 오판을 내릴 수 있어요. 또 ‘전문가적인 권위’를 내세워 ‘가짜 정보’를 전달하는 나쁜 전문가도 있을 거예요. 물론, 회의적 환경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저는 지구온난화를 서로 다르게 바라보는 양측 전문가들의 입장을 다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양자의 입장을 서로 비교하면서 검토하면 제임스 리카즈처럼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걸러낼 수 있다고 봅니다.

짜라투스트라 2018-03-21 15:3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cyrus님이 기회를 만들어줘서 다만 오랜만에 댓글에 제 생각을 담아 써봤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식의 대화가 쉽지 않거든요. 논박을 하면 싸운다고 생각해서 말리거나 아니면 제가 ‘싸가지 없는 인간이 되거든요. ㅎㅎㅎ 어쨌든 cryus 감사합니다.

짜라투스트라 2018-03-21 15:34   좋아요 0 | URL
덧붙이자면, 읽어나가다 보니 제임스 리카즈는 기후변화에 대한 입장에서는 나쁜 지식인의 모습을 보이지만, 파생생품에 대한 견해에서는 괜찮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역시 사람은 다층적이고 복합적인가 봐요.^^ 물론 그의 주장중에 문제가 있는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cyrus 2018-03-21 15:37   좋아요 1 | URL
제 의견의 의도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아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짜라투스트라님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면 제 화법의 문제점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일로 불쾌한 감정을 가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혹시 조금이라도 마음이 상했다면 그 원인은 저한테 있는 거고, 제 댓글 때문에 실망을 끼쳐 드린 부분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

짜라투스트라 2018-03-21 15:49   좋아요 0 | URL
아이고 전혀 마음 상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생각이 있으면 적어주세요. 저는 이런 식의 대화가 있으면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정리가 되면서 좋네요.^^ 그리고 혹시라도 제가 했던 말에 불쾌했다면 이해해주세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제가 사과드립니다.
 

지금으로부터 2400여 년 전 그리스의 한 법정에서는 이상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머리가 벗겨진데다 주먹코에 눈은 개구리처럼 튀어나오고, 작은 키에 아랫배까지 볼록 나와서 몰골이 형편없는 가난하고 살날이 얼마남지 않은 70세 노인 소크라테스가, 친스파르타의 참주정부를 몰아내는데 앞장선 아테네 민주정의 거물 아니토스와 청년 멜레토스, 리콘이라는 인물에 의해 '신을 믿지 않는다' 라느니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재판이 열린 것이지요. 도대체 무엇이 돈도 없고 빽도 없는 한 노인을 이렇게까지 만들었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민주정부의 거물로 하여금 그런 노인을 고소하게 만들었을까요?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읽으며 우리는 이 미스터리에 도전했습니다. 읽다보면 이 재판이 '철학함'이라든가 '철학'의 개념과 이어진다는 이상한 경험을 하면서. 아마도 읽은 분들은 저마다 나름의 해답을 가져갔겠죠. 못 가져갔다면 앞으로 꾸준히 고전을 읽으며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해답에 '왜 내가 고전을 읽는가'라든가 '철학은 우리 삶에 있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찾는 것에 도움이 될테니가요. 어쨌든 여기에 그 기록을 남겨둡니다.

000: 배경설명 1.아테네에서 인간은 성인 남성을 가리킨다.(여성이나 아이,외국인은 인간이 아니다.)
2.노예제 노동에 기반한 아테네(철학이 피어나기 쉬운 최적의 환경)
3.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서의 아테네 다신론
소크라테스 변론의 역사적 맥락:페르시아 전쟁-아테네의 승리와 전성기-펠로폰네소스 전쟁-패전-친스파르타 참주정의 성립-참주정을 몰아내고 세워진 민주정-정치적 희생양으로 몰린 소크라테스

00: 두 번째 읽는 책. 다른 번역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따분하다고 여겼다. 처음에는 소크라테스가 선비스타일이긴 하나 끌리지 않았다.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쉬웠고 빨려 들어갔다. 왜 서양철학의 원류라고 하는지 알게 됐다.(소크라테스가 왜 서양철학의 아버지인지 알게 됐다.) 자신을 인정하고 한계를 벗어나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서양의 발전과 이 사상이 이어진다. 현실의 모습을 보며 철학의 기반이 무섭다는 것을 느꼈다.
  
000: 읽기가 나아졌다. 책 속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소크라테스가 유죄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중간쯤에 가면 읽기가 힘들다. 어렵지는 않았다.
  
000: 주의 깊게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변명과 변론의 제목의 차이를 생각해봤다. 소크라테스의 입장에서는 변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면 변명을 할 수밖에 없는데,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각과 사상과 철학을 논리정연하게 말하는 변론을 행하고 있다. 일반인이 사형선고 받아도 이렇게 논리정연하게 말할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가 왜 4대성인이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끝이라고 보지 않고 있다. 죽음은 이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니체의 영원회귀설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상황을 파악하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 소크라바로 죽음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면, 범인과 다름을 알 수 있었다
  
00: 예전에는 지루하게 읽었는데 이번에는 재미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과연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진짜로 그랬을까.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생각일 뿐이다. 대다수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본인의 입장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데 다른 이들이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소크러테스가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이 있었는데도 현명하게 사용하지 못했다는 생가기 든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죽음에 대해 의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대중을 너무 바보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00:  26페이지: 무지하는 걸 아는 것이 지혜롭다는 식의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장자의 구절이 떠올랐다. 책을 쓰면서 지식이 변형되기 때문에 책의 지식이 아니라 실제의 지식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전문가가 진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 특히 예술의 영역은 진짜 전문가를 구분할 수 있을까. 무언가를 많이 아는 것의 가치는 모른다에 있다. 남의 평가와 평론을 가지고 마치 내가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만 아는 것의 독선은 위험하기에 아는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얻어야 한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 있어서 오만은 가지지 말아야겠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00: 마지막 구절.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죽음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좋을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000: 죽음에 대한 구절들. 불치병에 걸리면 죽음을 수용할 수 있을까. 나이 들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죽음을 기쁘게 수용할 수 있다면 삶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불치병에 걸렸을 때의 삶을 생각해봤다

000: 마지막 구절. 깔끔하게 정리해서 그 구절 자체가 멋졌다,
  
00: 63페이지.(새 책 69페이지). 책을 읽은 의미가 뭘까. 책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안 하고 싶다는 가치관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책을 읽으며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나갔다
  
000: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고전에 대한 두려움을 약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여기서의 끝은 진정한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이죠. 고전으로 이어지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서양 철학의 문을 열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죽음을 앞둔 소크라테스의 생각이 담긴,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흘러나오게 된 <크리톤>의 세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다음 모임 때까지 다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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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부산고전함께읽기모임 네번째 시간을 가집니다.
네번째 시간에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이 나온 <크리톤>을 읽을 예정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 아세요??^^
그러면 어떻게 된 일일까요? 궁금하세요? 궁금하다면 한 번 참여해 보시기를 ㅎㅎㅎ


4회 모임
1.일시:2017년 3월 24일 토요일 오후 다섯 시
2.장소:서면 텐스
3.함께 읽을 책:크리톤(숲출판사,천병희 번역)

-고전이라는 게 이름은 들어봤지만 읽은 사람은 찾기 힘든 게 현실인데(^^;;),
함께 읽으면 분명히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혼자 읽을 때보다 부담은 덜고, 재미는 두배가 되고, 거기다 유익하기까지 한
고전 읽기를 함께하며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함께 나누어보아요.^^
-나이,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임시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시면 됩니다.
-함께 고전을 읽자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참가하기고 싶으시면 쪽지로 연락주시거나 밑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고전 독서 모임의 목표
1.고전을 함께 읽는다.
2.고전을 통해 이 시대를 조망하는 시야를 갖는다.
3.고전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이 목표를 가지고 함께 고전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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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읽은 책:총20권
22.오이디푸스왕-소포클레스(민음사,3)
23.오이디푸스왕-소포클레스(문예출판사,3)
24.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민음사,10)
25.오독-C.S. 루이스
26.눈물이,부질없는 눈물이-A. 테니슨
27.우리가 녹는 온도-정이현
28.파괴적 혁신-뤼크 페리
29.손석희 저널리즘-정철운
30.내 이름은 루시 바턴-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31.진흙발의 오르페우스-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32.민주주의의 시간-박상훈
33.사법부-한홍구
34.박정희 평전-김삼웅
35.조선공산당 평전-최백순
36.러시아 혁명사 강의-박노자
37.전쟁터로 간 책들-폴리 굽틸 매닝
38.똑똑함의 숭배-크리스토퍼 헤이즈
39.역사의 시작은 현재다-이병철
40.표현의 기술-유시민(글),정훈이(만화)
41.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하인리히 뵐(2)

가장 인상 깊었던 책


최악의 책

이 책에 대해 몇마디만 하겠다. 올해까지 읽은 책 중에 정말 최악이었다. 왜 읽었는지 아직까지도 알 수 없는 책. 제목과 책소개만 보고 골랐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욕하려는 글을 쓰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무의미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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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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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표현의 기술-유시민(글),정훈이(만화)

표현의 기술은 자유롭고 자신 있게 내면을 표현하려는 마음에서 나온다(6)
내 생각과 감정을 나다운 시각과 색깔로 써야 한다.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생각과 표현에서 멀어져야 한다.
 
어젯밤에 한 시간 가까이 <표현의 기술>에 대한 서평을 다 썼습니다. 다 쓰고 분명히 저장했는데 예상치 못한 제 실수로 다 날려버렸습니다. ㅠㅠ 기껏 써놨던 글을 다 날려버리니 멘탈이 가출해서 아직 돌아오지 않네요. 어떻게든 제 멘탈을 붙잡고 다시 글을 쓰려고 하지만 집나갔던 멘탈이 돌아올리도 만무하고, 정신적으로 혼란스럽기 그지없네요. 글을 다 써서 날린 것도 안타깝고, 계속해서 글을 쓰겠다는 제 다짐도 있고 해서 포기하지 않고 앉아서 글을 쓰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앉아서 글을 쓰고 있지만 제 글의 방향은 오리무중, 갈팡질팡, 아노미, 카오스 그 자체네요. <표현의 기술> 서평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가득합니다. '포기하면 편할텐데' 하는 마음이 저를 유혹하네요. 유혹을 따르고픈 마음은 강하지만 포기는 없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써보겠습니다.

잠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써보겠습니다'라는 말을 제가 썼네요. 사실은 저 문장이 제가 <표현의 기술>을 읽고 내린 결론이거든요. 결론이 앞에 나왔다는 것은 제가 '수미쌍관'이나 '두괄식' 구성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멘탈이 나가서 두서없이 쓰다보니 제멋대로 나왔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제멋대로 나온 글을 수습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음~~ 글을 들여다보니 뭔가 이상하네요. 유시민식 '표현의 기술'을 배우거나 들여다보려고 책을 읽었는데 나온 결론이 '글을 계속 써보겠다'라니. 이럴거면 뭐하러 <표현의 기술>을 읽었을까요? '글을 계속 쓰겠다'는 말은 굳이 <표현의 기술>을 읽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요? 저도 궁금해지네요. 제가 왜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 왜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 저도 한 번 그 과정을 책과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표현의 기술>은 저자인 유시민이 글쓰기 강의를 하다 받은 질문이 모티브가 되어 나온 책입니다. 유시민은 자기만의 '표현의 기술'을 글쓰기의 목적, 악플, 자기 소개서, 독서, 표절, 비평, 보고서, 회의록 같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드러내고 있습니다. 일단 유시민 특유의 글맛이 있는데다 저자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글 자체는 쉽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무언가 '표현의 기술'을 위한 필살기가 없는 느낌이랄까.
마치 필살기가 필요해서 무공 비급을 구해서 읽었는데 필살기에 대한 언급은 없고 일반초식만 가득 적혀 있고 일반초식을 제대로 익히면 필살기가 나온다고 적혀 있다는 상황이랄까. 표현의 기술에서 무언가 확실한 방법을 찾으려는 제 욕심이 지나친 것일까요? 하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저도 평범한 인간이니까요.^^;;

재미는 있는데 무언가 확실한 방법을 찾지는 못했던 제게 오히려 임팩트가 컸던 것은 마지막에 나오는 만화가 정훈이의 만화 '표현의 기술'이었습니다. 책의 서문에도 적혀 있지만 이 책에서 정훈이의 만화는 일반적인 삽화와는 다릅니다. 만화는 그 자체로 글과 대등한 영역으로서 책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만화가 정훈이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만화를 통해 유시민의 글과는 다른 자기만의 '표현의 기술'을 드러냅니다. 저의 지나버린 20세기를 추억하게 만들기도 하는 이 만화를 통해서 만화가 정훈이는 자신에게 '표현의 기술'이란
삶에서 마주친 순간순간의 총합이 모여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순간 머리속에 번뜩 하더군요. 머릿속의 번뜩임은 제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계숙을 글을 써라. 글을 쓰다보면 너만의 표현의 기술을 얻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가 제가 <표현의 기술>을 읽고 '글을 계속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과정이었습니다. 분명히 '표현의 기술'에 대한 좋은 방법을 얻으려고 책을 읽었는데 읽고 나니 '글을 계속 써야겠다'라는 결론을 내리다니. 이건 읽은 것도 같도 아닌 것도 같고, 뭔가 얻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네요.^^;; 어쨋든 독서는 재미있었고 글을 계속 써야겠다는 의욕은 강하게 얻었으니 좋게 생각하렵니다. 좋게 생각해서 나쁠 것은 없잖아요. 좋게 좋게 생각하며 이제 글을 마치겠습니다.

첨부: 다 쓰고 보니 이 글은 서평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도대체 알 수가 없네요. 마지막까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니, 알 수 없는 게 '표현의 기술'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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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0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를 알려주는 책들은 그 나물에 그 밥인 것 같아요. 표현이 다를 뿐이지 내용은 별반 차이 없어요. ^^;;

짜라투스트라 2018-03-01 12:56   좋아요 0 | URL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