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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전함께읽기 4회 모임(2017.3.24. 크리톤)

소크라테스의 변론 같지 않은 변론(??)은 끝났습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지키라는 친구들과 가족들과 제자들의 제안을 뿌리칙고 묵묵히 사형을 기다리며 감옥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크리톤>은 그런 상황에서 사형이 얼마남지 않았을 때 죽마고우인 크리톤이 찾아가며 시작됩니다. 크리톤은 분명히 자기 목숨을 지키라는 제안을 할테고, 우리의 꼬장꼬장한 소크라테스는 당연히 그걸 거부할테죠.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크리톤을 설득하는지가 담긴 이 대화편을 읽으며 모임에 참가한 우리 각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더군다나 소크라테스가 한번도 말하지 않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조작된 명언이 유래된 책으로 알려진 책이라서 더 궁금했습니다. 자 이제 우리의 대화 속으로 한 번 들어가볼까요.^^ 

00: ‘제도가 자기에게 불리하더라도, 정해진 제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는 게 소크라테스의 생각이었음을 알았다. 그는 그게 정의라고 생각했다. 정해진 법을 지키는 게 아름다움이다라는 것이 그 시대의 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억울하게 느껴졌다.
000: 대화편이 토론의 한 형태라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논리를 주고 받으며, 소크라테스의 말을 크리톤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좋았다. 소크라테스가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000: 짧아서 부담없이 읽었다. 만약에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나에게 이런 친구가 있을까. 나는 친구에게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한 개인이 국가권력에게 당하는 폭력을 얼마만큼 참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00: 소크라테스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격이 대화의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고 여겨진다. 소크라테스는 친구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죽을 수 있었다. 내가 정말 바르게 살아야만 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을 봤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자기들이 만든 법이니까 지켜 주는 것이 맞다.
000: 분량이 작아서 읽기가 편했다.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데 거절한 건 소크라테스 자신의 원칙에 따라서 선택한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와 대비해서 살펴봤다
  
00: 저한테 유리한 법이면 한다. 아니면 나는 그 법을 따를 수 없다. 철저하게 제 위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 입장은 동의가 된다. 그는 명예롭게 죽기를 원했다. 도망가는 건 비굴하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육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00: 법이 어떻게 만들어줬는지 살펴봐야 한다. 유신헌법을 봐라. 국민을 억압해서 만든 법이면 저항해야 한다. 그런 법이라면 끊임없이 바꾸려고 노력할 것 같다. 민중은 잘못된 상황이면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만든 법이기에 따랐던 것 같다.
000: 악법도 법은 맞다. 다만 민중의 상식에 반한다면 바꿔야 한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뀐 것 같다.
000: 원칙은 지켜줘야 한다. 거기서 합리적인 부분이 필요하다. 원칙 속에서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합리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000: 법은 시대에 따라 바뀐다. 법 자체의 옳고 그름보다 시대적 맥락 속에서 법이 어떻게 적용되느냐가 중요하다. 소크라테스의 나이와 책임감이 그런 결론을 이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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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8-03-27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읽기...재미없고 어렵지만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짜라투스트라 2018-03-27 21:29   좋아요 0 | URL
아 지금까지는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화폐의 몰락
제임스 리카즈 지음, 최지희 옮김 / 율리시즈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화폐의 몰락-제임스 리카즈

<은행이 멈추는 날>의 제임스 리카즈 책을 또 읽었습니다. 아마도 전에 제가 그의 책을 읽고 토해낸 감정을 담은 글을 보고 또 그의 책을 읽을리는 없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다시 그의 책을 읽게 됐습니다. 흠~~ 써놓고 보니 뭔가 이상한 기분이라서 '이러저러한 인연'에 대해서 밝혀야겠습니다. 모든 것은 우연에서 시작됐습니다. 알라딘에서 책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화폐의 몰락>이라는 제목을 봤습니다. '화폐의 몰락'이라고? 제목에 끌리는데 한 번 읽어볼까?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보니 없었어요. 없네? 어떻게 하지? 살펴보니 그 책을 쓴 저자의 다른 책이 읽는 거예요. 그게 <은행이 멈추는 날>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며칠 뒤에 가서 <화폐의 몰락>이라는 책을 빌려왔죠. 일단 <은행이 멈추는 날>이라는 책을 읽고 저자에 대한 연습을 하고 뒤이어 <화폐의 몰락>을 읽을 생각이었습니다. 계획에 따라 책을 펼쳐 <은행이 멈추는 날>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일단 책 앞부분의 저자 소개에서 '폭스뉴스' 부분에서 멈칫거렸습니다. '극우 매체이지만 뭔가 큰 문제는 없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뭔가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임스 리카즈는 경제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전문가답게 멀쩡합니다. 물론 경제 이야기를 할 때도 음모론과 비관론의 기미가 보이지는 하지만 그것은 전문가적 식견에 의해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경제 문제 이외의 이야기를 할 때, 특히 정치 이야기를 할 때 그는 광기를 발휘합니다. 음모론과 비관론이 결합된 정치적 광기. 책을 정상적으로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읽기로 했으니 꾹 참고 다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이 책에 큰 의미는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책을 의미깊게 읽은 분들에게는 참으로 죄송한 얘기이지만, 저에게는 이 책이 음모론자의 광기에 가득 찬 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책 정도에 불과해서요.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습니다. <화폐의 몰락>이라는 양장본의 두꺼운 책이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던 거죠.

고민 따위는 없었습니다. 저는 지체없이 <화폐의 몰락>을 펼쳐 읽었죠. 책이 있으니까 읽는다는 듯이. 음모론은 문제없다는 듯이. 다 읽고보니 생각보다 훨씬 정상적인(??) 책이었습니다. <은행이 멈추는 날>과 비교해보면, 음모론의 강도는 훨씬 약해졌습니다. 저자 자신의 정치적인 광기는 잠깐씩 드러날 뿐, 거의 대부분은 저자 자신의 전문분야인 경제 이야기였습니다. 그래도 특유의 비관론은 여전했습니다. 저자인 제임스 리카즈는, 현재 달러 중심의 국제 화폐 시스템이 무너지고 새로운 국제 화폐 시스템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책 제목에 나오는 <화폐의 몰락>이 가리키는 화폐란, 세상의 모든 화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현재 달러 중심의 국제 화폐 시스템을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2007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의 최악의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미국이 달러화를 시장에 마구 푸는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한 이래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달러화의 가치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약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달러화가 시장에 너무 많다 보니 가치가 하락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외의 다양한 원인들이 뒤얽혀서 달러화 약세가 이루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국제 경제의 관점에세 국제 경제에 관여하는 이들이 과거보다 달러화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과거보다 다수의 사람들이 달러화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달러화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죠.(단기적인 의미에서는 달러화의 가치가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라는 말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에, 미래에 달러화 중심의 국제화폐 시스템이 무너지고 새로운 국제화폐 시스템이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래의 가능성으로서의 사건은 절대적인 것은 없거든요. 저는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은 가능성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능성이 가능성을 넘어서서 확신으로 가게 된다면 그건 위험한 것입니다. 반론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적인 확신이 역사에서 얼마나 잘못된 일들을 저질렀는지 너무 많이 봤거든요. 때문에 저는 어느 정도의 확신은 인정하지만, 어느 정도의 확신을 넘어서 절대에 가까운 확신이 된다면 저는 두려움에 가득한 채로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구분이 모호하긴 하지만, 저는 제 나름의 판단에 따라서 그것을 구분하려고 합니다.(저도 전문가가 아니라서요^^;;) 그런데 이 책에서 나오는 제임스 리카즈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제 입장이지만 아주 강한 확신처럼 보입니다. 제임스 리카즈는 당연히 달러화 중심의 세계화폐 시스템이 무너지고, 그것을 엘리트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의 시스템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아주 확신하고 있습니다. 강한 확신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주장에 유리한 방식으로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게 됩니다. 논증을 통해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결론을 정해놓고 논증을 그쪽으로 이끌고간다는 말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연준에 대한 비판, 유로화의 강세 주장이나 유럽에서 경제 위기를 겪은 나라들에 대한 입장, 긴축정책에 대한 지나친 긍정, IMF가 발행하는 특별인출권(SDR)의 강세 주장, 케인스주의에 대한 비판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달러화 중심의 국제 화폐 시스템이 몰락해야 한다는 당위에 따라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이죠. 특히 케인스주의에 대한 반발은 심각하게 균형을 잃은 상태입니다. 케인스주의의 성공 사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리카즈는 실패 사례만 나열하며 케인스주의는 성공할리 없다고 말합니다. 케인스주의식으로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재정정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위원회(줄여서 연준)의 경제정책이 실패한다는 말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연준은 특성상 미국이 중심이 되는, 현재의 달러화 중심의 국제화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밖에 없는데, 연준의 개입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면, 달러화 중심의 국제화폐 시스템이 무너진다는 것이 되고, 그 말은 제임스 리카즈의 '화폐의 몰락'론이 옳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해 그는 유로화가 강세라고 주장하며 유로화 강세의 미래예측을 합니다. 실제 현실은 다릅니다. 과거의 유로화 강세에 대한 예측과는 달리 지금 유로화는 생각보다 국제 화폐 시장에서 예측보다 못한 상황입니다. 그것은 유럽의 경제 위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리카즈는 이 책에서 계속해서 경제 위기를 겪은 유럽 국가들의 구조조정이 성공적이라고 얘기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구조조정이 경제 위기를 겪은 유럽국가들에 큰 성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습니다.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리스는 따로 두더라도, 위기에서 벗어난 국가도 있지만, 위기에서 벗어난 국가라도 과거의 경제에 미치지 못하는 힘겨운 상황이라는 말입니다. 유럽공동체가 강요한 긴축정책이 유럽 전부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죠. 제임스 리카즈는 의도적으로 긴축의 장점을 부각합니다. 정부의 공공지출을 강력하게 줄이고, 국가 부채 삭감에만 매달리는 긴축은 서민들의 고통을 만듭니다. 실업, 복지삭감, 공공정책의 축소, 불평등과 빈곤의 확대로 이어지는 긴축 정책이 야기하는 서민의 고통을 제임스 리카즈는 완벽하게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만 이야기합니다.(왜냐하면 유로화가 강세가 되어야 달러화 중심의 국제 화폐 시스템이 몰락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리스의 상황이 괜찮아졌다고 말합니다. 그리스가 괜찮아졌다고요? 글쎄 제가 아는 한에서는 그리스의 경제를 두고 괜찮아졌다고 말하는 게 옳은지 의문이 드네요. 경제가 쪼그라든 것도 그렇고, 엄청난 실업률과 지속되는 서민들의 빈곤, 긴축으로 인해서 정부가 시민들을 제대로 돕지도 못하는 현재의 상황과 과거 경제 위기 전의 그리스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괜찮아졌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이네요.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인 제임스 리카즈가 동유럽 국가들 이야기를 하며 경제 위기를 겪은 남유럽 국가들(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의 긴축이 좋지 않다는 천기 누설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가 했던 말을 자기가 반박하는 상황을 책에서도 볼 수 있다는 거죠. 더 흥미로운 건 저자는 시위를 아주 안 좋게 보고 있습니다. 힘겨운 고통 속에서 불만을 드러내는 시민들이 잘못됐다고 말하며 그는 시위 같은 것은 하지 않고 현실을 잘 받아들여 생존에 힘쓰는 게 낫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야 이거 어디서 많이 듣는 말 아닌가요? 세상에 불만을 드러내지 말고 '노오력' 하면 더 나아진다는 말은 한국의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하잖아요? 제임스 리카즈도 어쩔 수 없는 무책임한 기성세대군요. 현실의 고통 따위는 무시하고 개인의 생존만 강조하는 그런 기성세대.

쓰고보니 또 엄청난 불만을 늘어놓네요. 뭐 그 외에도 비판할 구석이 여러 개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가 주장하는 것중에서 금의 영향력 증대는 아마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러화가 약해지는만큼, 금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거든요. 그리고 세계의 강대국들이 금을 모아놓고 있는 현실도 그것을 반영하고 있고요.

어찌되었든 <은행이 멈추는 날> 정도의 비판은 하지는 않았습니다. 비판할 부분은 비판했지만, 저자의 음모론이 상당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강력한 비판을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비판은 일단 결론을 정해놓고 거기에 현실을 끼워맞추는 부분에 집중됐습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으니까요. 책을 덮고 보니 최근에 제가 경제책을 너무 많이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조금 쉬는 기분으로 가벼운 책을 읽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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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숏 Big Short - 패닉 이후, 시장의 승리자들은 무엇을 보는가
마이클 루이스 지음, 이미정 옮김 / 비즈니스맵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빅숏-마이클 루이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나를 분노하게 만든 책들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않아도 알아서 글이 흘러나온다. 그러나...
좋게 느끼거나 감동시킨 책들에 대해서는 글이 써지지 않는다. 마치 감정은 느끼는데, 내가 느낀 감정을 글로 쓰려고 하면 백지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빅숏>도 마찬가지다. 나는 <빅숏>을 읽고 좋은 감정을 느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건 기쁨이나 즐거움, 감동과는 다른 감정이다. 그건 이상한 쓸쓸함, 서글픔, 슬픔, 상실감 같은 감정들이 뒤섞인 이상하게 '좋은' 감정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대공황이 휩쓸고 지나간 미국 경제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한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감정. 어쩌면 언어는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감정이란 언어로 명확하게 표현될 수 없는 복합적인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지금까지 그 감정의 근사치를 언어로 표현해놓고 그것이 진짜 감정이라고 주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말에 따른다면 내가 <빅숏>을 읽고 느낀 이상하게 '좋은'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글을 쓰기로 다짐했으니까. '순환의 오류' 같은 말이지만, 나는 쓰기로 했기에 쓸 수밖에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불가능하든. 하여 나는 앉아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쓰고 보니 역시 떠오르는 건 없다. 잠시 가만히 있어 본다. 떠오르는 건 '폐허, 재난, 재앙, 어리석음 ' 같은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을 가지고 뭘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은 계속된다. 아, 뭔가 떠오른다.

우리는 재난을 어떻게 아는 걸까? 예언 같은 초능력을 가지지 못한 평범한 인간이라면, 재난이 닥치기 전에는 그게 재난일지 모를 것이다. 평범한 이들에게 재난이란 닥치고 나서야 그게 재난인 줄 아는 것이다. 우리는 재난이 닥쳐서야, 재난이 지나가고 나서야 그게 재난인 줄 아는 것이다. 전문가라면, 평범한 이들보다 조금 일찍 재난을 알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도 평범한 이들보다 조금 일찍 아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예외는 존재한다. 다수가 아닌 지극히 소수 중에 재난을 빨리 눈치채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외친다. '재난이 닥치고 있어요'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무시한다. '무슨 재난이 오냐'라고 하면서. 아폴론의 저주를 받아, 미래를 알지만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없는 그리스 신화 속의 예언가 카산드라처럼. <빅숏>은 그 '소수'의 이야기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불러올 재난을 미리 눈치챈 사람들이 바라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재난의 이야기. 경제나 금융에 관심없는 평범한 이들뿐만 아니라 소위 난다긴다 하는 월스트리트의 금융업자,애널리스트,관련인물들과 경제학자들도 파악하지 못한 그 재난의 모습을 파악한 이들이 파멸로 질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이야기. 여기에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있을까? 아니, 단언하지만 여기에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은 없다. 여기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함, 회의감, 서글픔, 상실감 같은 감정들의 회오리가 있다. 

'우리가 실패할리 없어요, 그러니 우리에게 돈을 맡기면 당신의 돈을 불려드리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추호의 의심도 없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팔고 사고 그것을 이용해 다시 복잡하기 그지없는 금융파생상품을 만들어 다시 팔고 산 월가의 금융업자들과 그들을 따라 돈을 굴린 전세계의 금융업자들과 투자자들.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돈을 얻기 위해 금융업자들의 의사에 따라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을 좋게 평가한 신용평가기관들.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이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르지만 시장을 안 건드리면 좋다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맹신해서 수수방관했던 규제기관의 관료들. 금융업자들에게 속아서 투자했던 평범한 사람들. 이들 모두는 알지 못했다. 빚에 빚을 더해서 만들어진 경제 호황의 끝에 어떤 재난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가정부 일을 하던 이가 빚에 빚을 더해 집을 15채 사고, 영어라곤 한마디도 못하는 라틴계 불법 이주자가 대출을 갚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도 빚을 내어 집을 사고, 그 사람의 채권이 신용평가기관에 최고로 높은 AAA등급을 받아 다시 팔려나가고, 미국의 JP 모건,골드만삭스 같은 유수의 금융회사가 이 위험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호황은 이어질 것이라고 외치고,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위원회의 위원장인 앨런 그린스펀이 그에 호응하여 미국 경제는 안전하다고 외치는 기막힌 현실.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눈치채지 못한 채 모두가 최악의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현실. 괴짜이자 세상과 다른 시각을 가진 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파악하여 사람들에게 외친다. 이것은 위험하다고. 당신들은 미쳤다고. 하지만 누구도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은 그들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좋게 돌아가고 있는데 왜 이상한 소리 하냐고 하면서. 그들은 파국이 닥치고 나서야 깨닫는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이제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이 모든 걸 지켜본 파국을 미리 눈치챈 소수의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내가 앞에 말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쓸쓸함, 회의감, 서글픔, 상실감 같은 감정들의 회오리를 느끼지 않을까? 책을 읽은 독자가 느끼는 감정 또한 그들과 비슷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감정은 책에 나오는 파국을 미리 눈치챈 소수와는 다르다. 우리는 이미 그 재난을 지나왔기 때문에. 하물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직접 겪지 않은 한국의 독자들의 경우는 더 거리감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독자들이 느끼는 감정의 회오리는 직접 그 사건을 지나온 그 소수의 사람들이나 재난을 겪고 몰락한 이들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시한 한국의 독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들이 느끼는 감정의 근사치에 불과할 것이다. 중요한 건, 책을 읽은 독자로 하여금 근사치라도 느끼게 한다는 점. 파멸의 구렁텅이를 운좋게 비켜간 이들이나 파멸을 맞은 이들의 감정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게 하다는 점. <빅숏>의 미덕은 그것에 있다. 우리는 곱씹고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어떻게 사람들이 파멸해갔는지를. 파멸을 피한 이들은 어떻게 피해갔는지를. 그래야만 조금이라도 경제적 재난에 대처하는 능력이 생긴다. 우리의 어리석음에 대한 경계만이 우리가 위기에서 벗어날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무언가를 쓰기는 썼다. 내가 한 다짐을 지킨 것에 안도한다. 글이 어떻든 썼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나는 이제 글을 끝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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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나를 열받게 하는 책은 글이 의식하지 않아도 막 써지는데,
좋게 생각하는 책들은 글이 안 써지네.
진짜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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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읽다가 화가 났다. 자신은 다르다면서 비슷한 말을 해서. 그런데 중간쯤가니 자신이 다니던 회사가 파산을 한 이야기를 하니 흥미진진해졌다.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담을 발판으로 파생상품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니 머리속에 쏙쏙 들어왔다.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방안도 설득력이 있었다. 경험이라는 실체적 진실이 전하는 삶의 무게감과 경험을 통해서 얻은 방안을 제시하니

그런데...
그런데...
마지막에 다다르니 이 사람이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자가 파시즘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나는 이 사람의 주장이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읽어볼만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런데 파시즘 이야기를 꺼내고 자신의 주장을 거품을 물고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일단 저자는 정부가 개입해서 무언가를 하면 다 파시즘이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정부가 개입해서 빈민을 돕고, 복지를 늘리고, 교육에 개입하면 다 파시즘이다. 진보는 파시즘이다.  우드로 윌슨은 파시스트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파시스트다. 허버트 후버는 파시스트다. 린든 존슨은 위대한 사회 계획을 시행했으니 파시스트다. 닉슨도 시장에 개입했으니 파시스트다. 아버지 부시도, 아들 부시도, 클린턴도, 오바마도 파시스트적 경향을 보인다. 신파시즘은 언제라도 살아남아 막강해진 정부의 힘을 이용하여 기업을 노린다. 개인을 노린다. 다음번 금융 위기가 오면 엘리트들이 힘을 합쳐 자본을 동결할 것이고 자본주의는 멸망할 것이다. 그리고 슘페터가 말하는 사회주의가 그 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는 깨달았다. 이 저자가 미쳤다는 사실을. 이 저자의 눈에는 지금 현재가 언제라도 파시즘이 도래할 수 있는 세상이다. 정부가 시장에, 사회에 조금이라도 개입하면 파시스트다. 진보는 파시즘이다. 엘리트는 언제라도 이 세상을 차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준비가 되면 그들은 언제라도 나서서 세상을 차지할 것이다. 사람들은 파시스트와 엘리트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아~~ 트럼프를 당선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대안우파라고 불린다. 기존의 우파가 자유무역과 작은 정부를 지지한다면, 이들은 보호무역을 주장하고 미국 우파들이 나서서 말하기를 꺼려하는 인종주의를 정당화한다. 전통적인 미국 우파가 엘리트에 대한 통치를 자기들도 모르게 인정한다면, 이들은 엘리트를 증오하며, 엘리트에 대한 통치를 분쇄하고 싶어한다. 제임스 리카즈의 주장은 아직까지 말해지지 않은 인종주의를 뺀다면, 대안우파와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대안우파의 음모론적인 부분도 그렇고 자유무역을 비판하며 보호무역을 강조하는 부분도 그렇고, 대안우파가 가진 체제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이나 신경증적인 이분법도 그렇고. 
나는 지금까지 버지니아 샬러츠빌에 모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할만한 이야기를 정당화하는 한 이상한 인물의 책을 읽고 있는 셈이었다. 대안 우파의 생각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인간의 책을. 다시금 분노가 끓어오른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으니 끝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서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읽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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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22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어떻게 꾹 참고 책을 읽고 계셨어요? 저 같으면 책을 덮었어요.. ^^;;

짜라투스트라 2018-03-22 13:48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미 읽은 게 있으니 아까워서 다 읽자는 마인드였습니다.^^;; 경제 분석은 그나마 괜찮은데 정치쪽으로 오면 너무 음모론이라서 당황스럽네요

sprenown 2018-03-22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폐전쟁 수준인가요?

짜라투스트라 2018-03-22 18:24   좋아요 0 | URL
화폐전쟁을 안 읽어서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