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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전함께읽기 6회 모임

사랑에 대한 다양한 얘기들이 쓰여 있는 <향연>을 읽고 우리들은 모였습니다. 문학적이고 다양한 시각이 담긴 텍스트답게 우리는 사랑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사랑에 대해서는 정답이 정해진 것은 없기 때문에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는 게 좋겠죠. 함께 소통하는 시간의 중요성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제 플라톤의 주요한 네 편의 대화편을 다 읽었습니다. 어떻게든 다 읽은 분들에게 '잘 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고전을 읽어나갑시다.  다 함께 힘내봅시다.^^  
 
-00: 향연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이게 왜 고전인지 모르겠다. 고전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에로스에 대한 찬양이 지루했다. 사랑에 대해서 너무 추상적으로 얘기해서 와닿지 않았다. 디오티마의 얘기는 동의하지 않았다. 현대에 맞춰서 생각해보면 이상한 건 어쩔 수 없다. 소크라테스의 대화의 방식이 나랑 맞지 않는다.
-00: 지금 현재의 정서와 너무 맞지 않다. 시대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내용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안 읽는 것보다는 나았다. 개인적으로 맞지는 않았다. 불변의 진리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주변에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 있으면 피곤하겠다고 느꼈다. 보고 배울 점은 없었다.
-000: 이 책의 사랑은 영혼불멸설과 이어져 있는 것 같다. 과학적으로 봤을 때 사랑을 900일간의 열정으로도 볼 수 있다. 나머지 기간은 의리, 정으로 사는 것 같다. 결혼생활을 해 봤을 때 이 말이 진짜 맞는 것 같다. 이 책은 사랑에 본질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고, 경험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시대의 추세가 결혼 안 하는 것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에로스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되는 것 같다.
-000: 그때 그 시대의 가치관으로서 바라봤다. 이상적인 면이 있지만 좋았다. 사랑을 위해서 하는 행동을 좋게 보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발전시키는 사랑이 좋은 사랑이라는 이상적인 개념이 좋았다. 나를 발전시키는 사랑을 하고 싶다.
-000: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만이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욕망에서 사랑이 나온다.
-000: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관계가 연인이라는 주장이 있다. 절대적인 진리는 있을 수 없다. 사랑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사랑에 대한 정답이 없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얘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000: 내용이 어려웠다. 현재 시점에서 안 맞다. 끝까지 다 읽었지만 나는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
-00: 지금과 다르지만 지금과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생각할 계기를 주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이 고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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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부산고전함께읽기모임 여섯 번째 시간을 가집니다.
여섯 번째 시간에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 <향연>을 읽을 예정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랑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궁금하시다면
한번 와보세요.^^




6회 모임
1.일시:2017년 5월 12일 토요일 오후 다섯 시
2.장소:서면 텐스
3.함께 읽을 책:향연(숲출판사,천병희 번역)

-고전이라는 게 이름은 들어봤지만 읽은 사람은 찾기 힘든 게 현실인데(^^;;),
함께 읽으면 분명히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혼자 읽을 때보다 부담은 덜고, 재미는 두배가 되고, 거기다 유익하기까지 한
고전 읽기를 함께하며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함께 나누어보아요.^^
-나이,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임시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시면 됩니다.
-함께 고전을 읽자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참가하시고 싶으시면 쪽지로 연락주시거나 밑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고전 독서 모임의 목표
1.고전을 함께 읽는다.
2.고전을 통해 이 시대를 조망하는 시야를 갖는다.
3.고전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이 목표를 가지고 함께 고전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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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전함께읽기 5회 모임 후기(2018.4.14 파이돈)

소크라테스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을 떠난 소크라테스의 최후의 모습을 지켜본 소크라테스의 제자 파이돈은, 자신을 찾아온 친구 에케크라테스에게 소크라테스가 최후에 어떠했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여혼의 불멸설과 이데아론이 시작되는 그의 이야기를 모임에 참가한 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이제 대화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000: 소크라테스가 궤변론자중에 하나임을 깨달았다. 그는 정말로 말을 잘한다. 자신의 신념을 적절하게 논리적으로 전개를 잘 시킨다. 윤회 사상과 비슷하다. 불교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 시대 사상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000: 말을 늘어놓는다고 여겼다.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건 본인의 믿음이다. 지금 상황과 다르다고 느꼈다.

000: 이데아론이 있어서 어렵다고 느껴졌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을 통해서 볼 수 밖에 없다. 나는 소크라테스(플라톤)에게 설득당하지 않았다. 소피스트에 가깝게 상대주의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래도 괜찮았다.

00: 다른 번역본보다 쉽게 읽었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창의력도 대단하다.

000: 실재하지 않은 것을 실재한다고 말하면서 궤변을 펼치고 있다.

000: 영혼이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무엇이 영혼인가에 대해서 지칭해야 한다. 영혼이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현대인들의 입장에서 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00: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000: 동양은 영혼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 영과 혼은 다르다. 영은 정령에 가깝다. 혼은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에 가깝다. 양자역학에 나오는 파동을 생각해보면 영은 파동에 가깝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과거와 달리 영혼이 있을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혼에 대한 완전한 부정은 하지 못하겠다.

000: 플라톤의 영혼불멸설과 니체의 영원회귀설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죽음 이후에도 무언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삶이 여기서 끝난다하니 억울하지 않을까.

000: 영혼,사후세계,윤회를 믿지 않는다. 나에게 영혼이란 정신이다. 생각을 어떤 것에 집중시킬 수 있다면, 즉 의지를 가진다면 나는 변화를 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생각, 나만의 철학이 영혼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 영혼은 내가 죽으면 사라진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철학, 저마다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내가 죽으면 나는 죽지만 철학이라는 이데아는 남아 있다. 철학의 이데아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정신적 활동, 사유가 영혼이라고 생각한다.

00: 기독교에 대한 생각과 현실이 충돌한다. 사후세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있다고 믿고 싶다.

000: 다급해지면 신을 찾게 된다. 종교가 습관인 것 같다.

000: 삶이 한 번 뿐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열심히 사는 것 같다.

000: 고등학교 때 깊은 죽음을 경험했다. 죽음이 내 인생의 화두가 됐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채취하고 있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 ‘현재를 산다’는 것의 의미이다.

-철학자는 보이지 않는 영혼을 따라가는 존재다. 영혼이 진리의 세계인 이데아와 이어져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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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17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달 독서모임 선정도서와 다음 달 독서모임 선정도서 때문에 플라톤의 책들을 읽어보려고 해요. 지금 정암학당이 번역한 <파이돈>을 읽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영혼을 믿지 않아서 <파이돈>에서 강조하는 ‘영혼‘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네요. ^^;;

짜라투스트라 2018-04-17 15:3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sprenown 2018-04-17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이데아나 이성 정도로 이해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짜라투스트라 2018-04-17 22:24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이해하셔도 됩니다^^
 
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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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 위의 까치-진중권

'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단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철학자의 지적대로 어떤 철학도 해석에 그친 적이 없으며 나름의 방식대로 세계를 변화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맑스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한 이 명구를 통해 철학이, 아니 수많은 지식이 삶으로부터 분리되어 일종의 '교양'이나 '지식'이 되고 마는 근대의 경향에 반하여, 철학이란 '삶'이라는 외부를 자신의 내적인 일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혹은 나중에 '정치'라고 부르게 될 철학-외부적인 지대를 지반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선언적으로 표명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철학은 직접적인 삶으로부터의 충분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삶에 영향을 미치는 소극적(기만적!) 관여의 방식 대신에, 삶의 현실성에서 시작하여 새로운 삶을 구성하는 능동적 개입을 추구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다.(<자본을 넘어선 자본>, 이진경, p.21~22)

시간의 흐름은 제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바꾸나봅니다. 처음에 독서모임에 갔을 때는 독서모임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독서모임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고 즐거웠습니다. 그 모든 것이 좋았기에 계속해서 가고 싶었고, 그 욕망에 따라서 제가 생각하는 즐거움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저는 변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감이 저를 변화시켰기 때문이죠. 이제 독서모임에 나온지 13년째가 되어갑니다. 13년이라는 시간의 힘을 한마디로 정의할 순 없지만(그걸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행동이겠죠^^;;), 확실한 건 처음 나왔을 때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뭐가 다른 걸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 여러가지 중에서 그래도 굳이 하나를 꼽아보자면, 제가 독서모임에 바라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처음 나갔을 때는 그냥 나가는 것 자체가 좋았습니다. 지금은 나가는 것 자체도 좋지만 더 바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이제는 내가 나가서 함께한 시간 자체가 저 자신에게 의미가 있기를 바랍니다. 의미라는 게 주관적인 것이라서, 저 자신에게 의미가 있기를 바란다는 말 중에서 '의미'가 '어떤 의미'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앞에서처럼, 이 질문에도 뭐라고 정확하게 딱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그냥 제가 느끼기에 의미가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쓰고 보니 무언가 모호하고 불확실하네요. 제가 느끼기에 의미가 있으면 된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말 같지만, 상황에 따라서 제가 느끼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기에 딱 잘라서 한가지로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야 할 것 같으니, 잠시 생각해 봅시다. 아~~ 떠오르는 것이 있네요. <교수대 위의 까치>를 읽고 참석한 독서모임의 예를 들면 될 거 같네요.

그날 저는 어떤 기대를 품고 갔습니다. 이 책을 읽고 참여한 독서모임의 시간이 나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참석했지만 집에 돌아갈 때는 그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고 기대감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허탈감이 들어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무엇이 저로 하여금 허탈감을 느끼게 했을까요?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우선 이 책을 논하기 전까지 이 독서모임에서 최근에 현실과 관련된 책들을 주로 읽었고 예술 관련 책을 거의 읽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예술 관련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하는 예술 관련 책의 독서토론이, 그 이전의 현실과 연관성이 있는 책의 독서토론처럼 흘러갈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습니다. 독서토론에 참석하고 보니 아니더군요. 미술 관련 책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는데 모임에 참석한 분들은 미술에 관한 자신의 취향과 감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아, 예전에도 이랬었지'라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잊고 있었던 과거의 예술 관련 책을 두고 이야기 나눈 독서토론의 시간들이 기억이 났습니다. 자신의 취향, 예술작품을 보고 느낀 감상을 말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말한다는 독서토론의 기본적인 모토와도 맞죠. 과거에는 이에 대해 아무 불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대 위의 까치>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과거와는 확실히 달리진 것이 있더군요. 저 자신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자신의 취향과 감상에 대한 이야기만 들어도 좋았습니다. 독서모임에 참석한다는 사실 자체가,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으니까요.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의 저는, 그분들의 이야기가 귀로 들어오기는 하지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저에게 그분들의 이야기는 '삶으로부터 분리되어 일종의 '교양'이나 '지식'이 되고 마는 근대의 경향'처럼 느껴졌습니다. 삶과 괴리된 취향과 감상을 드러내는 말의 향연 속에서 헤매고 나서, 저 자신도 그 경향성을 결코 벗어나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허탈감이 밀려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소수의 분들이 자신의 삶에서 길어올린, 삶과 하나가 되는 자신의 생각을 말해서 숨구멍은 쉴 수 있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비평의 효용성'이나 '비평이 가치'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생각하는 의미화 작업을 시도했지만, 삶으로부터 분리된 교양이나 지식이 되는 경향을 벗어나지도 못했고, 그 모임의 주도적인 흐름에 어떤 변화도 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느낀 허탈감과 좌절감은 거기에서 기인합니다. 내가 여기에 와서 들은 말의 대다수가 삶과 분리된 교양과 취향의 향연이라면 나는 여기에 왜 왔는가 하는. 진짜 궁금했습니다. 저는 왜 왔던 것일까요? 무엇을 바라 여기에 와서 그런 말들을 듣고 돌아가면서 허탈감을 느끼고 독서모임을 조금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어쩌면 제가 욕심이 과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참여한 시간이 저 자신에게 의미가 되기를 바라지만 아닐 수도 있는데, 그것이 안된다고 해서 실망한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바랍니다. 제가 참여한 독서토론의 시간이 제가 생각하는 기대의 최소치는 채워주기를. 그게 그렇게 문제가 있는 생각일까요?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갑니다. 이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다릅니다. 위치가 다르면 보이는 것도 다르고, 보이는 것이 다르면 생각하는 것도 달라집니다. 달라졌다는 것은 몸의 상태가 변했다는 말입니다. 독서토론을 처음 시작하여 무엇이든 즐거워하는 나의 몸과 독서토론을 13년을 겪은 나의 몸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독서토론을 처음 시작하는 나의 몸이 삶과 분리된 감상을 토해내고 그 감상만으로 만족하는 몸이었다면, 독서토론을 13년 겪은 저의 몸은 더 이상 감상이 아닌 '비평'의 단계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삶과 괴리된 비평이 아닌 삶과 연결된 비평. 삶과 분리된 교양과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삶과 연결되어 삶과의 일체성이 느껴지는 교양과 지식. 가능성만 보여줘도 괜찮습니다. 가능성만 있어도 만족합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느껴지지 않고 '나 이런 그림 좋아해요', '나 이런 화가 좋아해요'라고 외치는 말들이라면 저는 자괴감을 느낄 확률이 높습니다. 나는 여기에 왜 왔는가 하고. 모임에서도 말했지만, 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비평이란, 특정 영역의 전문지식을 가진 이와 전문지식을 가지지 못한 이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제가 그 말을 한 것은, <교수대 위의 까치>에서 진중권이 나름대로 노력해서 펼쳐놓은 그림에 대한 그만의 해석을 읽고, 거기서 느낀 무언가(혹은 자기만의 해석)가, 제가 생각하는 비평의 일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저는 그런 비평을 듣고 싶다는 말을 제가 한 말을 통해 주장한 것입니다. 하지만 거의 듣지 못했고, 듣지 못했기에 필연적으로 허탈함을 느꼈습니다. 허탈함은 다시 회의로 이어집니다. 그 모임에 나가는 것을 당분간 쉬어야 하겠다는. 이렇듯 <교수대 위의 까치>가 내게 남긴 흔적은 허탈함과 회의와 휴식에의 욕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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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부산고전함께읽기모임 다섯 번째 시간을 가집니다.
다섯 번째 시간에는 영혼의 불명성에 대해 논한 <파이돈>을 읽을 예정입니다
'영혼의 불멸성이 뭐지?'라고 궁금증이 드시다면 오셔서 대화를 한 번 해보시면
됩니다.^^



5회 모임
1.일시:2017년 4월 14일 토요일 오후 다섯 시
2.장소:서면 텐스
3.함께 읽을 책:파이돈(숲출판사,천병희 번역)

-고전이라는 게 이름은 들어봤지만 읽은 사람은 찾기 힘든 게 현실인데(^^;;),
함께 읽으면 분명히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혼자 읽을 때보다 부담은 덜고, 재미는 두배가 되고, 거기다 유익하기까지 한
고전 읽기를 함께하며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함께 나누어보아요.^^
-나이,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임시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시면 됩니다.
-함께 고전을 읽자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참가하기고 싶으시면 쪽지로 연락주시거나 밑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됩니다.^^

고전 독서 모임의 목표
1.고전을 함께 읽는다.
2.고전을 통해 이 시대를 조망하는 시야를 갖는다.
3.고전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이 목표를 가지고 함께 고전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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