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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ㅣ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노암 촘스키 지음, 문이얼 옮김 / 시대의창 / 2013년 12월
평점 :
주요 지역이란 미국의 경제적 요구에 종속되어야 할 곳을 말한다. 가능하다면 지구 전체까지도 포괄할 생각이었다. 이 계획은 기회가 되는 한 그대로 실행되었다.(23)
권력자들은 조용하고 수동적인 국민을 원한다. 이들을 골치 아프게 만들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잠자코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행동들이 지속적이고 조직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124)
촘스키 책을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롭네요. 책을 펼치기 전에 '언제적 촘스키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대 중반만 해도 저는 촘스키 책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불만, 반항에 대한 열망, 개혁과 발전, 정의와 윤리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20대 중반의 저에게 촘스키는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변형문법생성이론'으로 현대 언어학을 대표하는 언어학자가 되어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고 조용히 살아도 평온하게 명성을 얻은 채 지낼 수 있었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는 끊임없이 미국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발언을 하고, 전세계 분쟁지역의 평화를 외치는 행동하는 지성인의 면모를 계속해서 보여온 인물입니다. 베트남전 반전 시위와 민권 운동, 신자유주의의에 대한 비판, 9.11 사태 이후에 일어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판적 발언, 전세계에세 전쟁과 폭력과 독재에 저항하는 이들에 대한 지지표명까지 실로 그의 인생은 행동하는 지성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과 더불어 미국의 행동하는 지성의 대표적인 인물인 그가 쓴 책을 20대 중반의 제가 어떻게 안 읽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시간은 저를 무디게 했습니다. 20대 때 가졌던 열정과 이상과 믿음은 시간의 힘앞에 마모되고 사사그라들더군요. 제 열정과 이상과 믿음이 사그라드는 만큼, 촘스키의 책에 대한 제 열정도 사라져갔습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촘스키는 저에게 과거에 열심히 읽었던 저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흘러 며칠 전에 촘스키 책에 제 눈앞에 보였습니다. 아, 과거의 유물 같은 그 이름 촘스키. 저는 신기했습니다. 마음먹고 읽기로 했죠. 읽기로 하면서도 '이미 다 아는 내용인데 새로운 것은 없을거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럴수가. 저는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읽으며 놀랐습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렇게 새롭고 생생하다는 점에. 어쩌면 저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과거의 많이 읽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 믿고 게으름을 피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에 많이 읽은 것은 과거에 불과함에도, 뇌세포속에 담긴 기억이 시간이 지나며 망각의 늪에 빠진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다 안다는 식의 오만함으로 무장해 있었던 것이죠. 책을 읽으며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 시간은 어떤 책이든 다르게 읽을 수 있게 만든다는 사실을. 30대의 저는 20대때의 뜨거운 열정 가득한 독서와는 다른, 조금 나이 먹었지만 그래도 열정은 간직한 차분한 열정으로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누군가는 노엄 촘스키를 싫어하고 엄청 비난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가 맨날 미국을 지나치게 깎아내리고 비난한다고. 미국의 정치적 폭력과 미국적인 식민주의의 실상을 지나치게 과장한다고. 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까지 부정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노엄 촘스키가 말하는 것의 가치입니다. 그는 우리가 쉽게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여줍니다. 그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만듭니다. 우리가 손쉽게 접하는 폭력과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폭력이 자행됐고 아직도 폭력이 자행되며 많은 이들이 죽고 희생되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한다고 그는 얘기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은 킬링필드는 알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캄보디아의 진보적인 크메르루주 정권이 자행한 대학살이죠. 언론들이 엄청 떠들었고, 영화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의 친미 독재자인 수하르토가 저지른 동티모르 대학살은 얼마나 알고 있나요? 들어본적은 있나요? 미국와 친했던 인도네시아의 독재자 수하르토가 저지른 그 참혹한 학살을 아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요? 동티모르 대학살과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가 뭐가 어떻게 다르기에 이렇게 유명세에서 차이가는 나는 걸까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미국과 친했던 중앙 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니카라과,과테말라 정권이 저지른 학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아나요? 제 생각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이 나라들의 친미정권이 저지른 학살을 아는 사람이 얼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촘스키의 말을 빌려 이 학살 중 하나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예수회 신자들은 미국이 창설하여 훈련시키고 장비까지 지원한 정예 조직 아틀라카틀 부대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 조직은 1981년 3월에 미 육군 특수부대 학교가 반게릴라전 전문가 열다섯 명을 엘살바도르에 파견하면서 창설됐다. 이들은 창설되자마자 대대적인 학살을 시작했다. 미국 교관들조차 이 군인들이 "유별나게 잔인해서... 우리 교관들은 포로들을 죽인 후 귀만 잘라오지 말고 제발 산 채로 잡아오도록 설득하느라 늘 애를 먹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1981년 12월, 이들은 살인과 강간, 방화를 자행함녀서 1000명도 넘는 민간인을 살해했다. 그들은 그 뒤에소 수많은 마을을 폭격했고 사살하거나 물속에 빠드리는 등의 방법으로 추가고 수백 명의 민간인을 죽였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여자와 어린이, 노인 들이었다.(55~56)
이번에는 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신부의 증언입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죽음의 특공대가 사람을 그냥 죽이지만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의 머리를 베어 창에 꽂아 이곳저곳에 세워놓았다. 엘살바도르 재무경찰도 남자들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는 데 그치지 않고 생식기를 잘라내어 시체들의 입에 물려놓기까지 했다.(56)
으~~ 너무 끔찍한 얘기들입니다. 이것까지 쓸 생각은 없었는데 쓰다보니 생생함을 위해 이 정도만 적었습니다. 존재하는 최악의 조직으로 불렸던 ISIS 못지 않은, 어쩌면 그들보다 더한 생생한 폭력에 대한 증언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식의 끔찍한 폭력과 학살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었는데 우리들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ISIS,킬링필드,유대인 대학살은 알고 있지만 우리는 동티모르,엘살바도르의 학살은 모릅니다. 우리는 왜 이런 사건들을 모르는 것일까요? 언론은 왜 이런 사건들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일까요? 저는 이 부분에서 노엄 촘스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식의 균형을 위해서, 한 개인이 가진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기 위해서.
생각해봅시다. 킬링필드도 나쁘고, ISIS가 저지른 짓도 나쁘고, 유대인 대학살도 나쁩니다. 마찬가지로 동티모르,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과테말라의 학살도 나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는 한쪽의 나쁨만 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과 사이가 안 좋은 세력이 저지른 학살이나 미국 정치권에서 힘을 가진 이들이 당한 피해만 안다는 말입니다. 이건 뭔가 잘못된 건 아닌가요? 이건 세상을 편향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요? 우리는 지금까지 한쪽의 시각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의 주류 세력이나 기득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자, 그들이 부유하지 않거나 평범한 이들이 인식했으면 하는 시각. 여기서 깨어나야 합니다. 세상을 조금 더 폭넓고 균형있게 바라보는 것은 지금의 편향된 인식보다 훨씬 괜찮은 일입니다. 노엄 촘스키의 책들은 당연하게도 이것에 도움이 됩니다.
책은 왜 읽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다양한 대답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책을 읽고 더 나은 존재가 되고, 더 괜찮은 인식과 시각을 가지기 위해서라는 대답도 있겠죠. 자, 여기 책을 읽으면 기존의 시각을 깨부수고 더 균형잡히고 폭넓은 인식과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이 책을 읽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두려워서 책을 안 읽겠습니까. 눈 딱감고 읽으면 됩니다. 적고보니 무언가 책팔이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군요. 출판사랑 전혀 상관이 없는 인물로서 변명을 해보자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경험을 하며 제가 깨달은 게 지금까지 제가 적은 내용입니다. 어차피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저와 똑같은 경험을 할지는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확실한 건, 저에게는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읽는 경험이 유효하고 좋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