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
게르트 기거렌처 지음, 황승식.전현우 옮김 / 살림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쓴 저자는 심리학자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계와 확률에 대해서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위험을 말해준다.

이 세상에서 확실한 것들은 얼마나 될까? 책은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진리라고 생각되고 있는 많은 것들이함정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전문적인 사람들이 행하는 병원이나 법정 등등에서도 그 예를 들며 설명한다. 절대적이라 믿어지는 통계들에서 오류를 발견할 수 있는데, 정말 허무할 정도로 해석의 실수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범죄현장에서 가장 중시하는 단서인 DNA는 100% 확신을 갖는것은 의심하지않는 믿음 중 대표적인 예이다. ​범인이 아닌데도 DNA가 같다는 기본 전제가 있다. 하지만 말하는 방식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 가령 1."DNA가 우연히 일어날 확률은 10만 분의 1입니다."  2. " 10만 명 중에 1명꼴로 DNA 일치가 관찰됩니다." 법정에서 DNA에 대한 설명을 하는 의사가 1번을 이야기할 때와 2번을 이야기할 때 진술에서 오는 해석이 달라진다. 2번을 바탕으로 진술한다면 DNA 일치라는 증거만으로는 범인이라고 잡혀 온 사람이 실제 100% 범인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위 전문가들이 얼마나 정확하고 올바른 해석 방법을 '선택'하냐에 따라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180도 바꿔 놓을 수 있다. 그만큼 우리들은 '불확실성'에 노출되어있다! 이 책을 읽으며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확률과 통계가 얼마나 믿을 만한지에 대해서 이 책에서 그동안의 믿음이 얼마나 위험했는지에 대해서 알려준다. 흔히 자주 접하는 것 중에 "앞으로 성인 3명 중 1명은 암이다."라는 어마 무시한 문구를 볼 수 있다. 이런 말들은 우리를 미리미리 병원으로 향하게 한다. 예방하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이런 질병의 예방에 대해서도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해준다. 

대표적으로 '유방암 검진'의 불확실성에 대해 꽤 많은 부분을 적어놓았다.

『 실제로 60여 명의 의료 관계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장소에서 (만약 남성이라면 여성이라 가정하고) '유방촬영술을 받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부인과 전문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단 한 명도 YES라고 하지 않았다는 일화는 충격적이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이런 해석과 확률의 오류를 받아들일 수 밖엔 없는가? 통계의 함정에서 벗어날 방법은? 이 책에서는 이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을 정리해주었다.

 책을 통해 불확실성을 의심할 의식을 갖게 된다면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겠지만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하고 한 번 더 신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백의 그림자-

               -황정은-

 

​이 소설을 알게 된것은 비밀독서단 프로그램에서이다. 8회에 '한국 문학 안 읽은지 오래된 사람들'편에 나와서 최종 해결책으로 선정되었는데 나는 '퀴르발 남작의 성'을 재밌게 읽었던 지라 이 소설이 뽑힌것에 대해서 의아했다. 퀴르발 남작의 성 보다 더 재밌어서 뽑혔나? 하는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었다.  결론은... 뽑힐만하다. 예상보다 여운이 깊게 남는다!

 

한 여자가 숲으로 무엇에 이끌려 계속해서 들어간다. 뒤에서 한 남자가 여자를 불러 세운다.

어딜 가느냐고 묻는 남자에게 여자는 누군가 따라가고 있었다고 말한다. 누구를? 인상착의를 말하다 보니 자신이다. 본인의 그림자였다.​ 그림자 같은 건 따라가지 말라고 남자가 말한다.

소설의 초반부터 '그림자'가 마치 사람인양 이야기들을 한다. 그림자가 이 책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읽다 보면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사실 그림자만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갔다.

그림자가 자주 등장한다. 단골손님이다. 서서히 이 책에서 말하는 그림자의 의미가 어렴풋이 안 좋은 느낌임을 짐작하며 여주인공 은교와 남자 주인공 무재의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순수하게 '썸 타는'대화를 즐기며 읽었다.  도시에 오래된 전자 상가가 있다. 곧 철거된단다. 그 전자상가 안의 사람들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그들은 나름대로 한 번씩 그림자들을 만난다. 은교가 전자상가의 한 수리점에 있는 여씨 아저씨와의 대화가 인상 깊었다. 그림자가 일어났다고 여씨 아저씨에게 말하자 아저씨가 은교에게 묻는다.

『 그래서 그림자를 따라가는 기분이 어땠나.

나쁘지 않았어요. 자꾸 따라가게 되던데요,라고 말하자 그렇지,라는 듯 여씨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서운 거지, 그림자가 당기는 대로 맥없이 따라가다 보면 왠지 홀가분하고, 맹하니 좋거든, 좋아서 자꾸 따라가다가 당하는 거야, 사람이 자꾸 맥을 놓고 있다 보면 맹추가 되니까, 가장 맹추일 때를 노려 덮치는 거야.. 』​

그리고 어느 날 다시 여씨 아저씨와의 대화에서 아저씨의 그림자가 일어섰을 때 어땠는지를 말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그림자'가 힘들게 살아가며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 그림자가 일어선다는 뜻이구나 해석했다. 내 해석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 나름의 판단은 그렇다.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아마 거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림자'를 한 번씩 만나게 되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데 읽고 있는 나는 좀 오싹했다. 무거운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등장인물의 대화들에서 무서움을 느꼈달까...

무재가 은교에게 이런 말을 한다. 간밤에 자신이 그림자에 걸려 넘어졌었노라고... 그 말 안에 어떤 의미들이 있는 것일까... 무재의 그날은 유독 힘든 하루였던 것일까...

『 그림자 같은 것은 완전히 잊은 채로 한동안 누워 있었다, 바닥이 차갑고, 무언가가 묵직하게 등을 당기는 듯해서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때 뭔가 들러붙었다, 등 쪽으로 빈틈없이 붙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대단히 힘이 셌다, 엎드리지도 못하고 돌아눕지도 못한 채로 밀착되어 있었다, 밀면 미는 만큼 등 뒤에서 강하게 반발하는 힘을 느끼며 애를 쓰는 와중에, 차피,차피, 라고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자세히 듣고 보니 어차피, 어차히, 라고 말하고 있기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이 밀어붙이는 대로 몸이 뒤집히면 만사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힘을 다해 버텼다...... 』

무재의 그날 밤... 그림자에 걸려 넘어져버린 밤. 새벽에 깼을 때 강하게 느껴지는 그림자의 존재.. 그리고 들려오는 말. '어차피...어차피...'​ 이 말에 무서움을 느꼈다.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생이 자포자기할 수도 있는 순간이라고 느껴서 일까... 이 소설은 마치 한편의 짧은 독립영화를 본 거 같은 기분이 든다. 2시간 정도면 다 볼 수 있는 짧은 장편소설이지만  소설에서 말하는 '그림자'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은 더 길었다. 잔잔하게 내 머릿속에 맴돈다.  지금 그림자를 따라가려는 사람은 무재가 말한다. "그림자 같은 건 따라가지 마세요." 라고 말이다. ​ 아무리 길을 잃어도 말이다... 우리는 그림자를 따라가지 말자! 그림자는 그저 우리를 따라 오게해야 하는 존재이지 우리가 따라가는 존재가 되어선 안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현상과 환상을 넘나드는 결정적인 상상력>

이 책은 8편의 단편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책의 맨 처음 소개되는 소설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퀴르발 남작의 성>이다.

첫 번째로 나오는 이 소설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1993년 6월 9일) 어느 한 강의실의 교양과목으로 한 영화를 소개하는 중이다. 그 영화는 퀴르발 남작의 성이다. 1953년작으로 할리우드 영화라는 소개와 함께 이 영화에 등장하는 남작의 성은 인간의 욕망이 내재되어있는 공간의 상징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다른 시공간으로 커트#. ( 1932년 6월 9일 뉴욕)이 영화의 원작 소설 작가가 한 출판사 편집장과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리고 나서 다시 커트#( 2004년 6월9일 동경) 일본 영화감독이 이 영화를 리메이크하면서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식으로 년도는 계속 바뀌지만 날짜는 모두 6월9일! 수많은 6월9일이 소설 속에 나오며 독특한 전개를 펼친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후딱 하면 다른 컷으로 넘어가니 말이다. 혼란스러울 수 있다.~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소설과 영화에 주된 내용이 이런 것이다.

돈에 힘들어하는 한 여성이 있다.  돈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니 언니가 부잣집으로 시집갔다. 다행이다. 게다가 돈도 꿔주고 자신이 사는 곳으로 여행을 오라는 제안을 한다. 그래서 동생은 남편과 어린 딸을 데리고 언니가 사는 성으로 여행을 간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언니는 하나도 늙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많이 늙어있는데 언니는 젊었을 때 모습 그대로.. 그리고 사는 모습은 어떠한가! 산해진미와 우아한 생활은 그녀를 질투와 부러움을 넘어서 현실감 없게 만들어 버리기 충분했다.

어느 날... 언니가 솔깃한 제안을 해온다. 목장 두세 개 살 수 있는 충분한 돈을 줄 테니 자신의 딸을 양녀로 달라고 제안한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거절하는 것이 맞겠지만, 동생은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언니가 자식은 없다는 것에 묘~한 통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 이들 부부는 이 성이 악마의 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헛간에서 어린아이들의 뼈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남작은 200살도 넘었다는 사실도 알아낸다. 재미있는 점은 이들은 사실 언제든 성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떠나지 않았다. 왜?? 이곳을 떠나면 남은 생활은 초라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기 때문이다.. 남작의 말들은 점점 세뇌되어 가고.... 끔찍한 결말은 이 부부의 딸을 네 사람이 화려한 식탁에 앉아 요리해 먹으며 포도주에 대한 감상평을 하는 장면... 인간이 얼마나 괴물로 변해가는가 그 끝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런 내용을 소설 속에서 액자 형식으로 꾸며가는 것이다.  나는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영화와 소설이 존재하는 줄 믿었다. 여럿 당했을 것이다. 하하하~  그런 뒤통수는 소설을 읽을 때 즐거움을 준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녀의 매듭>이라는 세 번째 나오는 소설이 흥미로웠다. 이 소설 역시나 후딱 하면 장면 커트가 많이 나오는데 넘긴 장을 몇 번 다시 돌아가 보곤 했어도 읽으면서 "웬일이니~얼씨구? 대박~" 이런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 소설에서는 한 인간의 기억이란 온전히 사실 그대로를 기억하는지, 우리는 살면서 내가 지우고 싶은 기억을 무의식중에 지워버리며 있었던 그 사실.. 그 시간 속의 추억에서 빼 버릴 수도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비밀 독서단 프로그램에서 소개했듯이 최제훈 작가는 기존에는 없는 방식을 새롭게 펼쳐 보인 소설가인 것 같다. 이런 새로움은 소설을 읽는 사람들에겐 신선함과 다양성을 선사하는 것이라 반갑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 어느 젊은 시인의 야구 관람기
서효인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                         -서효인

​시인인 작가가 쓴 야구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야구가 우리의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저자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현재까지 모든 삶이 야구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다. 야구 안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한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공감은 훨씬 클 것이다.

책은 세 파트로 나눠서 인생과 야구를 오버랩시키며 이야기한다.

티비 프로그램인 <비밀 독서단>에서 '무언가 푹 빠지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 편에 소개되어 최종 해결책으로 선정된 이 책은 우리의 일상의 삶이 얼마나 야구와 비슷한지를 유머러스하고 시인 다운 문장으로 써 내려간다.

part.1 시범경기의 아버지들

 아버지는 방바닥에 누워 어둠의 색을 분류하고 있는 것이라 믿기로 한다. 야간 경기 검은 하늘 한가운데 떠오른 하얀 야구공, 그 공을 좇는 날렵한 외야수처럼 아버지는 항상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열심히 달렸을 것이다. 달리고 싶었을 것이다. 달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놓쳤을 것이다. / 눈을 감고 있다고 마냥 검은 것은 아니란 이야기다. 아버지는 곧 털고 일어났다. 가까운 사람의 치명적인 거짓말에 속으면 마음에 큰 부상을 입는 법이다. 재활 또한 오래 걸린다. 하지만 일어날 것이다. 훌훌 털고, 다시 야구장으로, 다시 삶으로. 』

야구 시범경기에서의 무기력한 후보 선수의 모습을 빗대어 우리네 아버지들의 슬럼프에 빠진 힘겨운 날들을 거울처럼 비춰서 글을 썼다. 이 글을 읽으면서 굳이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내 자신을 뒤돌아 봤을 때 이 부분은 충분히 서러운 마음이 들었으며, 충분히 찡했다. 아버지라는 존재에 빗대어 쓴 자체만으로도 서글프지만 거기다 자신을 생각해보자... 점점 놓치고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현실 속에서 이 부분은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건 슬픔을 동반한 복잡함이었다...

part.3 나의 빛나는 더러움 -런 다운(run down)

『밤에서 아침으로 슬라이딩하면서 나는 꼭 아웃당하는 기분이었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저 그런 일로는 그저 그런 대학의 등록금 내기도 빠듯했다. 더러워진, 내가 입은 유니폼이 나를 결정했다. 하지만 그 얼룩들은 이상하게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어쨌거나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누가 내 이름을 불러줬던가. 내 이름을 부르고, 또 불러서 끝내 응원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었다. 나는 죽지 않고 태그를 피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움직이는 동작은 반짝이게 마련이다. 유니폼은 더러워지겠지만, 뭐 어떤가.

그런 반짝반짝한 더러움을 '런 다운'이라고 한다. 』

그래... 지금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일은 나의 유니폼을 더럽혀도 그 힘겨운 상징이 되는 얼룩들이 언젠가 나를 빛나게 할 것이다. 내가 나 스스로를 응원하고 다독이며 가야 한다. 엎어져서 상처 나고 툭툭 털고 일어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각자의 몫...  나의 위치에서의 최선이 어느 순간 나를 반짝거리게 만들겠지? 나도 '런 다운'이라고 하려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기의 음모론 -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은 조작되었다!
제이미 킹 지음, 이미숙 옮김 / 시그마북스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누구나 한 번쯤 의심해 봤을 법한 내용들도 있고, 아주 생뚱맞은

내용도 있다. 많은 음모론으로 거론된 주제들 중에서

정말 우리가 놓쳤던 진실이 있을까?

어떤 일들은  사실근거를 판단하지 않고 들려주는 대로

믿을 때가 많다. 아니.. 언론으로 통하는 뉴스들은 그대로 받아들인다.

때로 철썩같이 믿었던 진실들이 잘못된 보도라는 사실을 알때가 종종 있다.

그렇다면 이런 유의 책을 그저 흥밋거리로 치부해버리기보단

한 번쯤은 의심해볼 만한 여지가 있는 거 같다.

수많은 내용들 중 내가 생각하기에 '요건 정말 음모가 아닐까?'하는

이야기는 이것이다,

-모차르트의 죽음 뒤에는 프리메이슨이 있었다-

죽은 후에도 계속 부어오른 그의 시신을 보고 혹자는 그가 독설 되었다고 믿는다.../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한 달이 채 되어 않았을 때 베를린에 있는 한 신문사의 프라하 특파원은 위와 같은 기사를 보도했다. 역사학자들은 역사상 최고의 작곡가로 인정할 만한 모차르트를 누가 죽였는가라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 젊은 시절 모차르트가 몸담았던 프리메이슨을 주범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모차르트는 분명 디 그로테(바위라는 뜻의 독일어)라는 이름으로 프리메이슨(메이슨은 원래 석공이라는 뜻)에 대적하는 새로운 집단을 설립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이는 모차르트와 프리메이슨의 관계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소문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클라리넷 연주자이자 친구(그리고 이따금 프리메이슨에 가담한)인 안톤 스타들러를 포섭했다가 그에게 배신당했다. 마지막 증거로서 프리메이슨 회원들이 모차르트의 장례식에 부조를 하지 않았고 영세민의 무덤에 묻히도록 손을 썼다는 미심쩍은 사실을 들 수 있다. 』

모차르트의 타살설을 두고 일부에서는 그를 평생 질투했다던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인 거 같다. 사실 영화에서 보이는

살리에리의 모습은 사실과 좀 다르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오페라에서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좋은 평가를

받았었고 금전적으로는 모차르트보다 더 풍요로웠다고 한다.

그래서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베일에 싸여있는 프리메이슨 쪽으로 의심이 가는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진실은 묻혔지만 죽은 후의 그의 시신의 상태가

음모론을 가리키고 있는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