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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말을 걸 때 - 아트 스토리텔러와 함께하는 예술 인문학 산책
이수정 지음 / 리스컴 / 2025년 6월
평점 :

스무살 즈음 혼자 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23일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당시 루브르, 오르세 등 유럽의 유명 미술관투어를 하며 많은 유명한 그림들을 처음 만났는데 실제로 유럽의 여러 미술관에서 강렬한 아우라를 온몸으로 체험한 기억이 난다. 사실 그 당시 미술관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림을 구석구석 찬찬히 볼 기회는 없었고, 미술작품에 흥미도 크지 않았던 때라 그저 유명한 장소에 가서 나 여기 다녀갔다고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잠시 스쳐지났었던 미술 작품들을 이 책 「그림이 말을 걸 때」로 다시 만났다.

예술 전문 강연가이자 아트 스토리텔러이신 저자님은 예술과 인문학을 결합한 '심미한 학교' 대표로 활동하며, 예술을 삶 가까이 끌어와 사람들이 자기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단단하게 살아가도록 돕는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신다. 중년의 문턱을 넘고있는 저자님은 나이 쉰이면 지천명이라고 했건만, 하늘은 여전히 무심하고 인생은 여전히 좌충우돌이라며 변화하는 시대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고,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며 '내가 무엇을 이루었나'여전히 자문하고 계시다고한다.

예술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다정히 머무는 일상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며 그것을 알아보는 눈, 느낄 수 있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예술과 만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저자님은 이 책에서 예술과 인문학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며 그림을 단순한 감상이 아닌 삶의 통찰로 이끄신다.
빛보다 어둠을 더 오래 바라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의 기괴하고 불편한 그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로 시작해서 마지막 장에는 전쟁의 잔혹함을 정면으로 마주한 고야의 또다른 작품 <전쟁의 참화>로 마무리된다.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고야의 감정의 층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되는데 너무나 충격적이라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이 책은 크게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장은 4개의 큐레이션과 8개의 챕터로 되어 있고, 총 16개의 큐레이션과 32개의 챕터를 통해 유명한 예술작품과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섬세하게 담겨있다.

너무나 유명한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를 비롯하여 밀레이의 작품 <오필리아>의 모델이자 여성 화가로 활동했던 엘리자베스 시달, 몽마르트의 뮤즈로 수많은 화가의 모델로 활동하다가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로 당당한 포스의 예술가로 자리매김한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 등 여러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화가들의 손끝으로 흘러나온 그들의 생명이자, 그들이 호흡했던 시대의 공기와 살아낸 시간이 스며든 기록들을 접하며 미술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간의 감정을 전하는 가장 힘이 세고 아름다운 언어라는 저자님의 말씀이 이해되었다. 저자님의 큐레이션덕분에 작품의 구석구석까지 찬찬히 들여다보게되었는데 '천사도 직업으로 하니 힘드네' 등 자칫 스쳐 지나칠 수 있는 작품속 디테일의 숨은 메시지를 발견하며 미술관이 지닌 다채로운 매력에 어릴적 유럽여행의 추억을 소환하며 즐겁게 읽었다.

프레데릭 윌리엄 버튼(Sir Frederic William Burton, 1816~1900)의 <헬레릴과 힐데브란트, 탑 계단에서의 만남>,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의 <물약을 든 트리스탄과 이졸데>,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1829~1896)의 <오필리아>와 같이 비극적 결말을 화폭에 담은 라파엘 전파 미술가들의 작품들에서는 강력한 색감과 풍부한 디테일이 인상적이었고, 소중한 것들의 덧없음을 느끼며 슬픔속에서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그 속에 깃든 고귀함을 볼 수 있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다.
소중한 것들의 덧없음과 그 가치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삶의 깊이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새드엔딩은 잃어버린 것들과 지키고 싶은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 아픔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결국 삶의 일부임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해피엔딩을 사랑하면서도 새드엔딩의 슬픔을 더 오래 간직하게 된다. 사랑하고, 상실하고, 다시 살아가는 인간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감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 당시 예술가님들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대신 살아보며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Aura, 원본 작품이 지닌 고유한 존재감으로, 작품이 제작될 당시의 물리적 환경과 역사적 맥락 그리고 화가가 담은 감정과 메시지가 관람자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전달되는 특별한 분위기와 감정의 떨림을 의미함)'개념이 이 책을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의 증언'으로서 우리 앞에 서 있는 이 작품들이 주는 감동과 마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삶에 대해 생각하게된다.
우리에게 매번 다른 얼굴로 다가오는 만남이 우리를 상처 입히고 좌절하게 만들지라도 우리는 결국 그 경험을 통해 스스로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겪는 기대와 실망, 기쁨과 아픔, 그 모든 것이 결국 나의 빛을 밝혀주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이카루스의 비극은 균형을 잃을 때 벌어진다. 너무 높이 날아 태양에 다가가도, 너무 낮게 날아 바다의 습기에 젖어도 추락은 피할 수 없다. 이 이야기가 전하는 진정한 교훈은 적절한 높이를 유지하는 삶이다. 욕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비행법이다.
진정한 용기는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힘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자세다. 너는 이미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주눅들지 말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라.
항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폭풍을 두려워하지 말고, 온몸으로 통과하라. 비로소 그때 그대의 삶 또한 한 폭의 그림이 될 수 있다.
미술관을 테마로 이 책과 함께 다시 유럽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는데 잠시 유튜브와 SNS와 같은 삶의 소란에서 벗어나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가 된 기분으로 인간의 내면과 우주적 존재감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서양미술사와 예술 인문학을 바탕으로 고전 명화 속에 숨은 이야기, 감정, 통찰을 발굴하며 '예술을 통해 자기 삶을 더 잘 살아내는 법'을 함께 탐색하는 철학적인 시간이었다. 나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존재에 대한 사색과 위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이다.

예술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며 품었던 질문과 감정, 시대의 공기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미술작품들을 만나보고 더불어 저자님이 전하는 통찰력있는 인문학 큐레이션과 함께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insigh-t-ravel'여정을 떠나보면 어떨까?

얼핏 보고 기괴하게만 생각했던 그림에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었구나 하며 작품을 통해 인간 내면을 재조명하고, 의미있는 소통을 추구하는 미술 작품이 나에게 위대함으로 다가오는 마법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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