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의 종말 - 인간은 똑똑한 기계를 원하지 않는다
마티아스 호르크스 지음,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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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치곤 기계와 꽤 친한 편이다. 특별히 기계를 낯설어 하지도 않고, 어려워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기계를 맹목적으로 믿지 않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컴퓨터, 핸드폰, MP3 등 나의 생활영역을 완벽하게 침투해 온 기계의 혁명들은 날로 빠르게 변신해가는데 그만큼 좋을때도 있고 나쁠때도 있다. 오히려 더 복잡한 기능들을 요구하는 경우가 숱하게 생겨서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테크놀로지의 시대에 대한 인간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 싶은 책이 <테크놀로지의 종말>이다. 저자 마티아스 호르크스는 유럽 최고의 미래학자이자 트랜드 전문가로써 장미빛 미래에 대한 꿈을 실현시켜주는 대신에 철저하게 테크놀로지가 주는 '진실'에 초점을 맞추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잘 생각해보면 80년대 90년대에 영화나 소설에서 꿈꿔왔던 자동차가 날라다니는 미래에 근접조차 못하고 있다는 현실로 말할 수 있다.  책에는 체펄린의 초호화 비행선 체펠린들을 소개하면서 인류의 오랜 열망 끝에 얻은 결과이지만 결국 더이상 그런 디자인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것, 아까도 말했던 운전이 필요 없는 전자동 자동차가 하늘을 날라다닌다는 것이 실현 불가능 하다는 것, 인간 수송기 세그웨이 등을 초반부터 제시하고 있다. '정신적 형이상학'이라는 표현으로 상상만으로 모든것이 해결되지 않는 다는 슬픈 '제약'을 이야기 한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화상전화'이다. 분명 지금 우리 손에는 '화상전화'를 할 수 있는 기능을 손에 쥐고 있다. 원한다면 상대방과 얼굴을 마주보면서 인사를 할 수 있다. 불과 몇십년 전에는 이런 상상조차 엄청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기술은 결국 해내었다. 하지만 단지 기술을 완성했단 것으로 '성공'이라고 불러야 할까. 분명 성공적인 기술 향상이지만 인간이 그것 자체를 매혹적으로 느끼면서 사랑해줄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나를 포함해서 여전히 사람들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아날로그적 향수'의 영역까지 침범해오는 테크놀로지에게 반감을 가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것은 '책'은 적어도 종이로 된 책으로 보고 싶다는 마음, 동물은 그냥 '생명체'를 가진 동물일때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 사진은 역시 필름으로 뽑아서 간직할때 비로소 맛이 느껴진다는 마음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저자도 그랬다. 책은 단순히 일개 매체가 아니라고, 또 우리는 무조건 큰 화면을 원하지도 않는다고. 이 책에는 공감가는 부분이 구석 구석 많아서 참으로 읽은 맛이 난다. 게다가 풍부한 상식까지 겸비해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렇다면 인간과 기계 사이에는 어떤 커뮤니케이션이 있었길래 기계가 그렇게 '오버'해서 변하고 있는 것일까. 그에 관해서는 2장에서 소개되어 있다.

스타니스와프 렘는 "기본적으로 모든 테크놀로지는 생존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변 환경을 통제하려는 자연적인 욕구의 인공적인 연장이다." 라고 말했다. 어쩐지 이 말속에 뼈가 있고 핵심이 있으며 인간과 기술간의 미묘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계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한 미래를 맞이하려고 준비중이다. 미래에는 영화 '월E'에서 보여주었듯 너무나 편한 삶을 추구하고 있어 앉아있으면 무엇이든 해결되는 완전 뚱뚱한  모습으로 살게 될지도 모르고, 영원 불멸의 삶이 가능한가, 투명인간이 가능한가, 타임머신의 가능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제시된 예와 같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기술이야 말로 인간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테크놀로지는 인간이 만든 문명이고 인간이 책임저야 할 매개물이기 때문에 인간을 더 인간답게,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어야만 '종말'을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참 괜찮은 책이라서  공대생들에게 읽히고 싶다고 살짝 생각해본다.  책의 구성과  짜임새도 좋고 나와있는 이야기나 그림들, 미래학자들의 이론들이 참 쓸모 있다. 이쪽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필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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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아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3
기 드 모파상 지음, 송덕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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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은 '목걸이' , '비게 덩어리' 라는 두 작품으로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특히나 기억에 남는 것은 물건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특별한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릴때 읽어서 잘 기억은 안나지만, 내게 모파상은 그런 존재였고, 특히 모파상이 여성작가라고 생각되어질만큼 여성적 문체가 강한 작가였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기억 속의 모파상은 그랬다.

 

그런 모파상의 새로운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벨아미>는 그를 만날 수 있었던 또다른 행운이었다. 게다가 내게 읽는 첫 장편이라는 점에서 설레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모으고 있는 터였기에 두툼한 책 두께에도 흐뭇했다. <벨아미>는 그렇게 설레임이었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 '벨아미' 자체도 상당히 매력적인 주인공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훈남이자 카사노바였다.

 

여자는 어쩔 수 없이 나쁜남자에게 끌리는 가보다. 너무너무 잘생겨서 저 멀리서 봐두 눈이 부실만큼 매력적인 남자라면, 자신의 어떤 것을 다 받쳐서라도 만나고 싶은 것이 여자일까. 실상은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서 이끌리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했는데, 여자도 의외로 그런경우가 있는 듯 보인다. 그런 심리를 읽어버린 듯, 모파상이 탄생시킨 가진것 하나 없는 뒤루아라는 캐릭터는 딱 그렇게 점차 유혹과 거짓의 세계에 물들어버리게 된다. 그는 친구인 포레스티를 만나게 되면서 사교계에 빠져들고, 거기서 만난 수많은 부잣집 여인들을 농락하면서 자신이 얻고 싶은 모든 것을 얻는다. 

 

기막힌것지 모르겠지만  얼마전에 본 영화 애쉬튼 커쳐의 주연 <S러버> 역시도 딱 그런 영화였다. 그도 가진거라고는 매력적인 자신의 겉모습과 여자를 꼬실수 있는 능력뿐인데, 그것만으로 자신이 얻고 싶은 부를 향유한다. 이런 카사노바 캐릭터들은 마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말하는 듯 여자를 철저하게 유혹하여 즐긴다. 벨아미와는 시대적으로 분위기는 다른 영화였지만 분명 같은 맥략임이 틀림없다. <벨아미>의 뒤루아는 자신의 친구의 아내까지도 농락할 정도로 쾌락을 즐기면서 반성이든 실패든 그런 '착한 모습'은 결코 등장하지 않고, 단 하나 '성공'만을 바라보면서 철저히 삶을 살아간다. 이 모습은 때로는 당시 프랑스의 물랑루즈를 떠올리게 하고, 프랑스 혁명을 떠올리게도 한다. 모파상은 그런 프랑스 사회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 이와 같이 파격적이고 격한 남자에게 투영시켜버렸다. 아무래도 타락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어서 인지 지루하지는 않았다. 통속적인 이야기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해서 일까 일단은 재미있개 읽었다고 해야할까. 여전히 현대 소설보다는 고전 소설이 끌리는 이유는 단지 소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런 통속적 소재를 멋드러지게 만들어내는 그 말솜씨 덕분이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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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패턴 - 루스 베네딕트 서거 60주년 기념, 새롭게 탄생한 문화인류학의 고전
루스 베네딕트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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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이해하는 코드

 

 

문화를 다룬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개념이지만 때로는 그만한 매력 또한 드물다. 실제 문화 이론의 영역을 들어왔더니 문화는 단순히 보고 느끼고 즐기는 것 이외의 인류 즉 인간에 대한 기본적 연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사람을 이해하는 학문, 그리고 사람을 알아가는 학문이 곧 문화이자 우리의 삶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개인의 취향부터 나아가서는 인류의 성격까지 팔악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이는 1934년에 발표된 문화인류학 분야의 고전 루스 베네딕트의 <문화의 패턴>에서 만나 볼 수 있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인류학계의 대표적인 학자가 되었다. 이 책은 분명 70년도 더 된 이론서적이지만, 21세기를 내다 보았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우리는 21세기를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라고 부른다. 인간의 감성이 곧 상품이 되고, 문화가 문화콘텐츠화가 되며, 더 즐겁고 행복하게 즐기는 것이 트랜드가 된 것이다. 이렇게 개인에게 문화가 얼마나 큰 영향소가 되는지 알았던 저자는 일찍이 미래를 내다 보았다. 그래서 지금 이 사실을 모두 알고 난 후에 읽는 기분은 또 다르다.


이 책은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습을 연구하는 학문에서 문화의 다양성, 통합성에 대한 설명이 있고, 도부 족 같은 특정 부족들의 연구를 통해 문화의 패턴 이론을 도출한다. 마치 하나의 굵직한 논문을 만나는 것 처럼 짜여있다. 문화의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문화적 형태에 대한 지식을 쌓는데 꽤 괜찮은 책이다.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것은 문화에서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정치에서도 때로는 경제나 문학에서도 적용되기도 한다. 서구사회는 오랜기간동안 사회와 개인, 즉 세계와 개인을 적대관계로 풀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한 주니, 도부, 콰키우틀의 세 부족 문화에 대한 이해와 서구사회에 대한 분석으로 ‘통합’과 ‘결핍’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부족 사회가 개인에게 질서와 통일을 강조한다고 해도 역사적 환경으로 인해 문화적 통합의 결핍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런 형태는 국지적 현상일 뿐 생물학적 단일성 같은 것은 없다. 환경과 심리의 영향이 크다고 보여진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주의라던가 순수 혈통, 인종주의 같은 것을 비판할 수 있는 근거를 찾게 된다.


결국 개인은 사회와 상호의존성이 강한 관계이며, 개인들은 대부분이 자신들에게 제시된 문화의 형태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집단’이 형성되겠지만,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과 소외될 수 밖에 없는 특정 성격을 지닌 개인에 대한 문화 패턴까지 지적해주고 있다. 이를테면 동성애자, 왕따, 정신병자 등이 그렇다. 이들에게 필요한 관용부터 정신의학까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우리 사회는 이들의 성격이 점차 강해지고 적응 개인과 부적응 개인들간의 이질화가 더 심해지고 있는 쓸쓸한 현재를 맞이하고 있다. 각박해지는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소외되어가는 사람들을 알기 위해서라도 역시 문화인류학에 대한 관심은 항상 필요해보인다.
이 책은 결국 고전이며 이론학 서적이지만, 다른 책들과 차별되는 ‘스토리텔링’ 측면으로 읽어두면 아주 좋은 책이기도 하다. 4.5,6 장에 소개된 부족들의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다. 문화이론을 읽기 지루하다면 여기를 마치 소설을 읽듯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지금읽어도 앞으로 읽게 되어도 전혀 거칠음이 없는 매끄러운 책이라서 후에 나의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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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페로스 2011-03-2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블로그에 담아갈게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유럽 미술의 거장들
스테파노 G. 카수 외 지음, 안혜영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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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어떤 경우에는 미술 작품을 본다고 하지만 때로는 읽는다고 표현한다. 그것은 예술 작품 마다 그 예술가의 삶과 역사가 담겨있어서 그 사상의 ‘이해’를 바탕으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경우에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 읽게 된다. 미술의 역사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널리 알려져 있는 유럽의 14세기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친 작품들의 ‘읽음’을 가능하게 해주는 책이 바로 두툼한 <유럽 미술의 거장들 >이다.

 

책은 세기의 순서대로 정렬되어 있다. 완전한 컬러로 화려함을 자랑하는 이 책은 꼭 소장하라고 말하는 듯 두툼하고 멋있다. 움베르트 에코의 <미의 역사>나 에른스트 H.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를 떠올릴 수 있는 책이지만, 특정 국가들의 특정 시대를 꼬집어서 풀어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찾아보기 쉽게 색상으로 분류해 놓아서 더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 시대를 대표하던 거장들을 중심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작가들만의 작품 세계를 익히는 데 더없이 훌륭하다.

 

앞의 15세기까지는 그 중세 시대와 맞물려 종교화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작품을 이해하는 것과 책에서 설명되어 있는 내용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책에서 소개된 ‘한스 멤링’은 처음 알게 된 화가인데, 그가 그린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비교해보면서 흥미롭게 공부할 수 있었지만, 내용에 담긴 종교적 의미는 알기 어려웠다. 역시 그림을 읽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사전지식이 보는 이에게 두툼하게 자리 잡혔을 때 가능한 것 같다. 하지만 점차 세기가 한 단계 지나갈수록 친숙한 화가들의 그림들이 등장하였다. 보티첼리의 경우가 ‘비너스의 탄생’으로 상당히 유명한 화가로, 그의 작품 ‘멜라그라나의 성모(석류의 성모)’ 가 이 책의 표지로 쓰였다. 늘 생각했던 것이지만 보티첼리의 그림은 마치 현재 많이 쓰이고 있는 일러스트 같은 만화 느낌이 강하다. 시대가 지나더라도 변하지 않는 느낌은 따뜻함인 듯 하다.

 

이 책을 보다보면 거장의 화가들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종종 알게 된다. 한 세기를 쥐었다 폈다했던 사람들이 있지만 죽고 나서 후에 유명해진 사람들도 있다. 그와 같이 그들이 그렸던 작품에서 힌트를 얻어 그 당시에 일어난 일들을 유추해볼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을 던져 준다. 꽤 많은 비난을 받았던 와토 ‘키테라 섬의 순례’의 경우도 연극학적 요소들이 다양하지만 경박하고 퇴폐적이며 귀족적 특권의식이 차있다고 해서 프랑스 혁명기에는 비밀리에 숨겨있었다고 한다. 시대에 따라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이 책은 정말 백만불 짜리이다. 유럽 문화 전반의 식견을 넓히고 싶다면, 또 유럽 미술의 거장들의 세계관을 알고 싶다면, 하물며 거장들의 이름이라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보기 바란다. 미술책을 여럿 보아왔지만 여기서 생소하게 만난 화가의 이름도 수두룩했다. 그것말고도 수록된 그림들을 보는 재미가 최고이다. 손에 잡으면 놓을 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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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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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빛 타히티 이야기


가끔, 여행이 미친 듯이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피곤한 일상을 완전히 없애줄 꿈같은 낭만이 여행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에는 낙천적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절망감에 가슴에 메일 때가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 감정에서 출발했던 것일까.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는 일주일의 타히티 섬에서의 경험을 <무지개>라는 작품으로 멋지게 탄생시켰다.
 
처음 읽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이었다. 그녀는 마치 여행 에세이와 같은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신간 소설을 선사했다. 처음이지만 낯설지 않은 그녀의 문체는 포근하고 친근하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타히티 속에서의 ‘자연의 존재 양식’을 감명 깊게 경험하여 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이 섬의 낭만을 같이 즐기고자 눈부시고 아름다운 사진들과 여행 일정표를 부록으로 첨부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인상파 화가 고갱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에 여행을 갔다가 그 곳의 풍경과 사람들의 그림을 다수 남겼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섬이었던 모양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에이코도 그런 감정으로 그곳에 닿았던 것일까. 그녀는 도쿄에서 ‘타히티안 레스토랑’에 취직한다. 그 가게 이름은 ‘무지개’였고, 거기서 만난 오너와 사모님과의 일화로 인해 2주일간의 타히티 섬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것은 오너와 에이코의 관계와도 밀접했으며, 둘의 타히티 섬과 같은 사랑의 연속이기도 하다.

 

현실에 지극히 충실하게 살다보면, 어느새 사랑도 열정도 휴식도 잊게 된다. 이 소설은 그런 낭만과 자유, 그리고 순수함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무지개’라는 이름의 순수함과 찬란함을 심어주고 있는 것 같다. 힘겨운 사랑의 선택을 해야 하는 에이코야 말로 그런 무지개의 상징 같은 것, 타히티의 아름다움이다. 불건전한 사랑이지만 ‘사랑에 빠진다’라는 행위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 묘한 소재들이 한데 어울러져서 미묘한 사랑의 빛깔을 만들어 내고, 그것이 흑색 진주이던 눈부시고 현란한 무지개이던 상관없이 나른하게 다가온다.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자, 사람들이 열광하는 요시모토 바나나식의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순수어체의 소설을 좋아하는 터라, 낭만주의에 지나치게 푹 빠져있다고 비난 할 수 있다하더라도 즐기고 싶어졌다.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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