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 - Summer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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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흔히들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 본능을 억제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오히려 인간다움에 본능이 빠진다면 그것은 결코 인간답지 못한 ‘거짓된 미덕’을 발휘하는 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가령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본능에 대하여 철저하게 일관적인 방식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기계적인 습성을 발휘하는 꼴이라 할 수 있다. 싫은 것도 좋은 척하는 것이 인간다운 것인가? 차라리 본능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매우 인간적인 취향이 아닐까?  

 그러나 이 작품에서 말하는 본능은 꼭 덫에 걸린 토끼가 발버둥을 치는 꼴과 다름이 없다. 살고자 하는 강제된 본능처럼, 미필적 고의로 인한 욕망의 자극은 마치 리비아의 그것과도 같다. ‘나는 당신이 그것을 훔치고자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그것을 훔치기 쉽게 약간 도와줬을 뿐‘인 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그녀의 행동은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본다는 어느 도사와도 같다. 이처럼 미리암이 지니고 있던 새로운 남성에 대한 욕망 자체의 본질을 그녀가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래서 그녀가 준비하고 실행한 모든 행동들이 그것을 드러내기 위한 미필적 고의의 작업이었을 뿐이라면 문제는 쉽게 풀린다. 다만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실험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사고에 기인한 것이라면, 혹은 그녀의 욕망 자체에 대한 논의로 다시 깊게 들어가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리비아의 죽음 자체가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하나의 도발과도 같으며, 반대로 그녀의 죽음은 욕망의 끝에 존재하는 극한의 오르가즘과도 같은 것이기에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다시 순수하게 욕망의 굴레에서 새롭게 정리된다. 미리암의 리비아에 대한 질투심에서 유발된, 혹은 순수 본연의 욕망에 의한 결과물들은 그것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행위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런 욕망에 넘어갈 수도 있고 혹은 고민하고 갈등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 드러내는 추악함이란 곧 순수한 욕망에서 기인된다. 즉, 누군가는 이를 보며 ’바람난 여자‘의 이야기로 몰아갈 수도 있겠으나 누군가는 ’아름다운 로맨스‘라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던 그 말처럼, 유혹에 빠지는 것은 결국 선과 악으로도 혹은 좋고 나쁨으로도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그 결정은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이니까!

 이처럼 이 작품이 욕망의 덫을 미리 준비하고, 또한 그것에 걸리는 과정 자체를 상세하게 그려내는 것은 어찌보면 사랑을 준비하고 사랑을 실행하는 연인들의 모습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너무도 보편적인 사랑 역시도 유혹에 흔들리며 질투와 욕망에 의해 변질되거나 변모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사랑보다 달콤한 유혹! 혹은 유혹 그 자체가 진실한 사랑이 되어버리는 지독한 이야기. 이러한 모든 것들이 유럽영화 특유의 향기를 풍기며 잔잔하면서도 독특하게 그 속에서 버무려진다. 만일 이 작품을 보며 오종의 어떤 작품이 생각난다면, 혹은 실제로 관객 자신이 여름휴가를 즐기기라도 하는 듯 그 영상에 잠식당하는 기분이 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이 영화가 관객들을 유혹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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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 The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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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콕도는 영화를 통해 외적인 실험을 펼친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를 이용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마음껏 그려낸다. 예를 들어, 꽃의 죽음을 거꾸로 재생시키며 그것의 복원을 그려내거나(오르페의 유언) 3차원의 세계에 변화를 주며 바닥에 놓인 물을 벽으로 표현(시인의 피)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영화라는 도구, 카메라라는 도구의 활용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는지도 모른다. 

 반면 영화의 내적인 이야기 속에서 변화를 꾀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만든 '안달루시아의 개'는 브뉘엘이 꿈꾸는 초현실주의 영화의 시작이었으며, 데이빗 린치의 기괴한 세계 역시도 그만의 이야기가 만든 또 다른 차원의 세계이다. 그리고 이 작품을 만든 감독 타셈 싱 역시도 그런 독특한 세계를 그려내고자 했던 감독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의 전작 '더 셀'이 꿈속의 세계를 끊임없이 노크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더 폴'은 다르다. 이는 오히려 이전의 작품과는 다른 순수한 도전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무식하다. 또는 직설적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마 그 누구라도 당연하게 생각했을 CG를 비롯한 특수효과는, 그러나 없었다고 한다. 나 역시도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이 영화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야 알았다. 그렇게 미적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영상과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직접적으로 그려낸 것들이라니!!! 

 

 하지만 영상에 도취된 나머지 이야기는 약간 위태로운 감도 있었다. 꿈을 잃어버린 남자와 꿈이 넘칠 나이의 소녀가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오히려 즐거움이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단순하면서도 서정적인 측면이 강했기에 말이다. 그것은 너무도 순수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려는 동화적인 상상력과 다분히 충격적이면서도 기괴한 상상력이 엇물리며 마찰을 가져온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것 자체가 그들의 대립으로 표현되었지만!!

 게다가 타르코프스키가 그러했듯이, 영화는 몽상의 이야기와 현실의 이야기를 잘 접목시켰다. 즉 이야기 자체가 현실의 인물들을 고스란히 유지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속에 놓여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는 결국에는 현실과 결코 다르지 않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뛰어난 영상과 조화를 이루어나갔던 점이 상당히 놀라웠다는 것이다. 아울러 영화를 보는 내내 찝찝하게 생각되던 그 풀리지 않던 의문 역시도 마지막에는 전부 해소되었다. 

 결국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마지막에 나왔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옛날 그분들의 작품. 마임과 스턴트의 황제였던 버스터 키튼과 찰리 채플린.. 그리고 이외에도 자신의 몸을 영화의 도구 삼아 희생하셨던 모든 분들의 활약상까지~ 이 장면이 있었기에 이 작품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전혀 없었던 이들에게는 말이다. 

 

 영화는 이야기와 영상이 함께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그것을 만들어가는 이는 결국 배우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있었기에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며, 관객들이 그렇게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를 위한 영화! 영화에 바치는, 그리고 모든 배우들에게 바치는 오마주와도 같은 이 작품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 기나긴 시간동안 유지시킨 열정에도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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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맨 - Hi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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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 게임의 이미지를 정치로 풀어내다. 허나 쿠리렌코의 몸매가 가장 볼만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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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원티드 - Hero Wa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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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영웅이 되고 싶었던 그 남자.. 흑인! 쿠바 구딩 쥬니어의 액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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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내 사랑 - Hiroshima, My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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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원폭사건을 바라보는 레네의 시각. 대화체로 사랑을 나누며.. 미묘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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