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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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집에 실린 소설들을 쓰기 위해서 `나`는 그간 수많은 책들을 읽었다. 그런데 한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이 시점에 이르러, 문득,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는지 깨닫는다. 머리는 이럴 때 숙이라고 만들어놓은 것 같다.

언제라도 `나`는 `나`라는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은 까닭은 그 `나`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읽은 많은 책들이 이 소설집에는 숨어 있다. 하지만 그게 부질없다는 것을 안 이상, 어떤 책을 읽었는지 밝히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그 책들을 통해 `나`보다 더 심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널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을 위안으로 삼는다.

1인칭, `나`. 내 눈으로 바라본 세계. 이제 안녕이다.`나`로만 구성된 소설집을 한권 쓰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거짓말쟁이가 돼버렸으니.

이 책에서 `나`는 너무 많은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나`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좀 어렵게 됐다. 그 생각을 하니 배가 고프다. 이 책의 제목을 빌리자면, `나`는 유령작가가 됐다. 더 많은 이야기. 이제 내게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살아있는 다른 사람의 체취가 그리워서 잠도 안 온다.

​책의 에필로그이다. 제일 좋았던 작품은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이었다. 아무래도 클라이머들의 이야기들이라 그랬던 것 같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마음에들었다. 그 다음은 뿌넝숴였는데, 이야기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쓰인 글 같았다.(말이 좀 이상하지만.) 단편 소설들의 모음인데 읽다보면 무슨 이야기야 싶은 것들이 꽤 있는데 에필로그를 읽으니 모든 이해가 갔다. 이 책을 추천해준 사람도 그렇게 말하더라. 음...김연수 작가의 색이 짙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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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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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마담 보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플로베르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담 보바리>는 위대한 작품이다.˝ 집안의 천치가 어떻게 이런 위대한 작품을 썼는지 너무 궁금해서 방대한 분량의 작가론을 쓴 겁니다. 작가가 마음에는 안 들어도 작품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해명을 해야했던 거죠. 사르트르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마담 보바리>를 읽어 `버리는` 바람에, 플로베르에 대해 많은 시간을 몰입하게 됩니다. 인생이 좀 바뀐거죠. 그러니까 책을 함부로 `읽어버리면` 곤란합니다. 대충 읽다가 위험하다 싶으시면 덮어버리세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만약 정말 신이 있다면, 내가 신이 아니고 어떻게 견디겠는가?˝ 정말 대단한 작품이 있고 작가가 있다는 걸 `알아버린다면` 내가 그렇게 안 되고 어떻게 버틸 수 있겠습니까?

요즘은 출퇴근 도합 1시간 정도는 책을 읽고, 자기 전에 30분은 책을 읽고 있다. 게다가 책에 대한 집착이 늘어나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읽으려고 사고 있는데, 어떤 순간에 책을 `읽어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 같다. `해석에 반대한다`라는 책을 만나고 나서부터 생각하며 곱씹어 책을 읽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었다. 그 이후로 고전에 대한 집요함이 시작되었는데 <안나 카레니나>에서 다시 좌절됐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자가 토마시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티켓으로 묘사되었고,<책은 도끼다>에서 만나 읽어봐야겠다 다짐을 했는데 여전히 침대 옆 책상에 우두커니 버려져 있다. 그런데 <아주 사적인 독서>에서 다시 만났다. 물론 주요 서평은 아니었지만, 이성과 정신의 결합으로 묘사된 부분이 박웅현씨와는 또다른 관점으로 해석이 되어 다시 읽어야겠단 마음을! 먹었다.

# 톨스토이의 과제는 육체적 자아와 정신적 자아가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거였어요. 하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이 둘 사이의 조화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는 이런 서두로 시작하죠. 행복한 가정은 정신과 육체가 잘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불행한 가정은 이게 조화를 이루지 않는 거예요. 안나의 오빠는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가정이 불행해집니다. 이유는 욕망이 적절한 이성의 통제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중략)결국 육체를 선택한 안나는 죽고 레빈만 살아남게 됩니다. 이러한 결말은 상징적입니다. 톨스토이는 육체적 자아를 완전히 부정하고 정신적 자아만을 선택한 것이죠.

<아주 사적인 독서>는 <마담 보바리>, <주홍글씨>, <햄릿>, <채털리 부인의 연인>, <돈키호테>, <파우스트>, <석상손님>의 서평으로 구성되어있다. 제일 읽어보고 싶은 건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었는데 로렌스의 생각이 마음에 들기때문이다. 외설서라고 난리가 났던 책이라는데 아마도 그랬을 것 같다. 이현우씨의 해설을 보니 전혀 외설서라고 느껴지진 않지만.

# [ 그녀는 이제, 자기 본성의 진정한 근본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본질적으로 아무 부끄러움이 없는 존재가 됐다. 그녀는 자신의 관능적 자아, 부끄러움 없이 벌거벗은 자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어떤 승리감을, 거의 허세를 부리고 싶기까지 한 승리감을 느꼈다. 그랬다! 바로 이거였다! 이게 바로 삶이었다! 이게 바로 자신의 진정한 존재방식이었다.]
로렌스가 생각한 진정한 삶은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이 조화로운 결합 관계에 놓인 삶입니다. 여자가 없으면 못 산다거나 남자가 없으면 못 산다는게 아니라, 서로에게 맞는 짝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관계에 대한 예찬을 담은 소설이 바로 이 소설입니다.

20대 중반에 고전 읽기 모임에서 <파우스트>를 읽었다. 읽다가 대체 난 모르겠다 싶어서 집어던졌는데, 모임에 나가서 헛소리를 잠깐 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대에서 저녁을 먹고 노는 것에 더 집중했다 돌아온 기억이 난다. 이현우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중년을 위한 고전이기에 저는 <파우스트>가 청소년 권장도서로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어렵기도 하지만 공감하기도 어려울 듯해서요. 그건 이십대도 마찬가지고요. 이대로 늙기엔 뭔가 억울하고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엔 좀 늦은 듯 싶은 나이가 <파우스트>를 읽기에 딱 좋은 나이입니다.

다행이다, 하며 안도감을 내쉰건 대체 뭐였을까 ㅋㅋ 파우스트의 욕망에 대해서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독특했다. 보통의 서평은 예찬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고 언제나 갈망하면서 애쓰는 것에 구원의 열쇠가 있다고 하는데, 이 구원이 과연 맞는 것일까 하는 물음을 던진다. 도덕적인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다.
서평은 길잡이다. 좋은 책이지만 역시나 원래의 책부터(고전)부터 읽는 것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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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때 반짝 리스트 - 엎드려 울고 싶을 때마다 내가 파고드는 것들
한수희 지음 / 웅진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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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락 이상 써버렸는데 다 날라가버려서 더 이상 쓸 힘이 나질 않는다. 중략 상태로 가야겠다..

인쇄판을 보니 2015년 7월 1일이다. 읽으면서 제일 반가웠던 점은 최근에 내가 본 신간 영화들 + 책들이 꽤 많았다는 점이다. 고전에서 느끼지 못했던 이 반가움이란!! 게다가 좋아하는 영화와 좋아하는 취향의 책들이 꽤나 많이 있어서 좋았다. 사실 처음에는 `연애담인가보다.. 뭐 그래, 관계에 대한 고찰은 늘 끝없이 하고 있으니 잘 됐다.` 싶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인생 얘기들이다. 누구나 경험하고 누구나 겪고 있을 법한 이야기들의 나름 탈출구. 이 작가만의 방법들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 이별을 겪고 7월과 8월에 미친듯이 쿠시네마트랩을 그렇게 다녔었는데 이별을 경험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찾아내려고 그랬던거구나 싶다.

# 사랑에 실패했는데 왜 연애가 아닌 심리에 관한 책을 고르는 걸까? 이제 우리는 사랑의 문제가 다른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인간으로 제대로 서지 못하면 또다시 같은 실수를 저지를 것임을 안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좋아했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라는 영화를 언급한다. 이동진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보고 나서였는데 신형철의 평론에도 등장했던 것 같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 결핍에 대한 깨달음. 그것이 `장애`라는 은유를 통해 영화는 사랑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나도 나의 결핍을, 상대의 결핍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함께 단단해질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을 차치하고 작가는 어마어마한 말을 던진다.

# 그러니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내 인생을 제대로 살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라는 말씀.

작가는 콘돔을 챙긴 인도 여행을 떠난다. 읽으면서 계속 피식피식 거렸다. 다섯의 남자를 만난 이야기하며, 인도 여행에서 자신을 돌아봤을 때 참 솔직하기도 하고 유머감각 넘치게 표현해낸 것이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앞으로 여행은 이렇게 해라! 라는 식의 전언이 써 있는데 난 그러고보면 내 베프랑 너무 재밌게, 아니 재밌다는 표현으론 부족하게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얻을 수 없는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것 같다. 여행을 갈 땐 예쁜 옷도 한 벌씩 챙겼고, 나를 즐겁게 해 줄 책은 당연히 있으며, 생각을 쓸 노트는 언제나 챙겼다.(노트를 글로 채운 건 유럽에서 편지로 꽉꽉 채운 적과 태국에서 책을 필사한 적. 2번뿐이네) 결혼하는 내 베프랑 다시 미친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리고 여행은 아니었지만 20대 중반에 앞 뒤 가리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 과감하게 연애를 시작해 본 것으로 어쩐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8월에 `비긴 어게인`을 보면서 그만큼 나를 위로해 준 영화가 없었는데, 한수희 작가도 그걸 콕 집어 이야기 한다.

# 그레타에게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이런 거다. 그녀는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기타를 치며 자신의 마음을 담은 노래를 부른다. 순간순간 울먹이면서도 몇 번이고 거듭해 노래한다. 바람을 피워 나를 차 버린 남자에게 너를 정말 사랑했노라고 거듭 말하는 데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걸까? 나를 모욕한 사람, 나를 망친 상처, 나를 버린 세상에게 그럼에도 너를 정말 사랑했노라고, 최선을 다했노라고 떳떳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견고한 자존감이 필요한 걸까?

나는 아직도 후회중이다.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나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도망친 것이었을까? 있는 그대로 알고, 상처받을 만큼 받고, 떨쳐버려야하는 문제였을까. 진실을 알아야 한다, 몰라야 한다라고 친구와 논쟁?한 적이 있었는데 난 그저 무서워서 도망친 것 같다. 전력 질주하여 삶의 품으로 뛰어들기에 아직 약했던 것이다.

요즘은 클라이밍에 미쳐 있다.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고 풀었을 때의 희열은 나를 살아가게하는? 에너지가 된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연수인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분들이다. 김연수 산문집에서는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다른 누군가를 이기지 않는다면 결국 패배자가 되는 것이 스포츠`라는 편견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나는(나에게 있어서) 클라이밍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누구와 비교할 것도 없고 내가 못 풀던 문제를 풀어낸다면 그건 나를 이긴 거다. 경쟁심으로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진정으로 즐기진 못할 것 같다. 요즘 매일 운동을 하고 있어서 내 빨래는 전부 운동복이다. 물론 더우니 일상복도 매일 빨아야하지만.. 땀에 흠뻑 젖은 운동복을 벗을 때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환풍이 되지 않고 선풍기 하나에 의존해 실내 암장에서 지구력을 한 적이 잇다. 그때 흘린 땀은 내 티셔츠를 전부 젖게 했는데, 너무 기분이 좋았다. 물론 내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은 지하철에서 불쾌감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한수희 작가에게 들킨 것 같다.

# 책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좀 더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그건 여러 사람들과의 화기애애한 술자리가 아니라 둘이서 술잔을 기울이다 걷는 밤길 같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우리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던 것,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인생을 떠올린다. 나라면 어땠을까?

술을 참 좋아하는데 사람들하고 그런 긴밀한 관계를 맺을 때 더더 좋은 것 같다. 저번주 월요일에는 새벽 5시까지 클라이밍하는 언니와 수다를 떨었는데 그런 기분이었다. 언니라는 책을 읽고 서로의 인생을 이해했던 것. 앞으로도 나는 더 많은 책들을 읽게 될 것 같다.

오늘은 너무 더운 날이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다가 수영장이 너무 가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아서 가게 되었다. 다녀오고 나니 주문했던 책이 도착해 있었다. 토마토 주스를 갈아 마시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살랑살랑 때리며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내 일상과 생각들까지 이렇게나 길게 바로 리뷰를 쓰고 있다. 수영장 락스 냄새와 빌려쓴 랑콤 바디샴푸의 냄새가 섞여 미묘하게 너무 좋아서 계속 이 상태로 읽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가 아까운 시간들이 자꾸 흘러간다. 오늘은 꽤나 행복하게 잘 보낸 것 같다.

여기 나온 책들과 영화들은 아끼지 말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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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밥 2015-08-28 0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운동 하나 해야하는데 게을러서.. ㅜ 끙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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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기록을 보니 이 책에 대한 리뷰가 없다. 2004년부터 시작해서 도합 5번은 읽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이 책이 너무 좋았다. 멋있어보이기도 했고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을 읽어내니 마치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다. 2004년 신입생 때 교양으로 불문학 관련 뭔가를 들었는데 이 책을 교재로 읽으라 했고, 레포트도 써서 냈던 것 같다. 그 수업에서 `프라하의 봄`도 봤고.. 무슨 정신으로 어떤 내용을 레포트로 썼는지 너무 궁금하다. 이 소설의 묘미는 간간히 필자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이 소설 첫머리에서 내게 드러났다 그의 모습을 본다. 그는 창가에 서서 건너편 건물 벽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 이미지에서 탄생했다. 이미 말했듯 소설 인물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처럼 어머니의 육체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상황, 하나의 문장, 그리고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거나, 본질적인 것은 여전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근본적이며 인간적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있는 은유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작가란 자기 자신 이외의 것은 말할 수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마당에서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것. 사랑이 고조된 순간 자기 배 속에서 끈질기게 꾸르륵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 배신하고 또한 이토록 아름다운 배신의 길 중간에서 멈출 수 없는 것. 대장정 행렬 속에서 주먹을 치켜드는 것. 등 나도 직접 이런 상황을 겪어 보았다. 그러나 내 이력서 속 자아로부터 그 어떤 인물도 도출되지 않았다.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하며 동시에 그 모두가 한결같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가 우회하기만 했던 경계선을 뛰어넘었다. 나는 바로 이 경계선에 매혹을 느낀다. 그리고 오로지 경계선 저편에서만 소설이 의문을 제기하는 신비가 시작된다.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 자, 이제 그만하자.

신형철이 좋은 소설은 소설가가 그 캐릭터를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글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이 부분이 가장 길게 필자가 등장한 부분인데, 주인공들이 은유에서 태어난다는 말이 너무 멋지게 들렸다. 레포트를 쓸 때 네 명의 주인공들을 `가벼움`과 `무거움`쪽으로 분리를 해서 인생과 사랑에 대해 써내려갔던 것 같다. 근데 그 당시 니체도 모르고, 영원회귀사상이 뭔지도 몰랐으며 프라하의 역사적 상황같은건 무지한 상태였는데 뭘 썼을까. 뭐 이걸 안다고 잘 쓸리는 없지만.

소설의 1부 중 1장.
#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 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다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람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중략) 그래서 영원한 회귀라는 사상은, 세상사를 윌가 아는 그대로 보지 않게 해주는 시점을 일컫는 것이라고 해 두자. 다시 말해 세상사는, 세상사가 덧없는 것이라는 정상참작을 배제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사실 이 정상참작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심판도 내릴 수 없다. 곧 사라지고 말 덧없는 것을 비난할 수 있을까?(중략) 이러한 히틀러와의 화해는 영원한 회귀란 없다는 데에 근거한 세계에 존재하는 고유하고 심각한 도덕적 변태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용서되며, 따라서 모든 것이 냉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1부 중 2장.
# 우리 인생의 매순간이 무한히 반복되어야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 영원성에 못 박힌 꼴이 될 것이다. 이런 발상은 잔혹하다. 영원한 회귀의 세상에서는 몸짓 하나하나가 견딜 수 없는 책임의 짐을 떠맡는다. 바로 그 때문에 니체는 영원 회귀의 사상은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영원회귀 사상이 철학자들을 곤경에 빠뜨렸다면, 소설의 1장, 2장의 질문이 나를 곤경에 빠뜨렸다. 가벼움과 무거움은 무엇을 말하는걸까? 부터 질문을 시작한다면 무거움은 테레사, 가벼움은 토마시로 은유된다. 내가 해석한 바로 굳이 답을 찾자면, 가벼움이 긍정이고 무거움이 부정이고를 이분법적으로 나눠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가벼움을 상징했던 토마시가 무거움으로 변하는 모습을 그려냈기때문. 그리고 영원회귀사상을 대입한 인생에 대한 태도는 카네린에게서 드러낸다.

# 카레닌이 개가 아니라 인간이었다면 틀림없이 테레자에게 오래전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봐, 매일같이 입에 크루아상을 몰고 다니는 게 이제 재미없어. 뭔가 다른 것을 찾아줄 수 있겠어?˝ 이 말에는 인간에 대한 모든 심판이 담겨 있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도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라고 테제라는 생각한다.

그래서 한 때는 ˝행복은 시간의 원형 속에 있다.˝ 라는 말을 내 인생 모토로 두기도 했었다. 최근에 니체에 꽂혀 영원회귀를 외쳐대면서 또 한번 우리의 인생은 언젠가 다시 살 것이므로 지금을 열심히, 소중하게 살아야한다! 라고 하지만, 나는 개가 아닌지라 내 시간은 직선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부장님과 이런 얘기들을 잠깐 나눴었는데 , 이런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이런 메세지를 끊임없이 일깨워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위로 삼아 오늘을 잘 살아야겠다. 이제 출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쩌겠냐 살아내야하는 것을!!!

* 이 책은 접힌 페이지가 워낙 많아, 전부 필사할 수 없었는데 아마 시간이 지나서도 다시 또 읽을 책일듯 싶다. 왜 자꾸 이 책을 다시 읽게 되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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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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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독서는 기본적으로 오독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오독의 순간도 나에겐 소중할 수 밖에 없다. 그 순간 그 책은 나와 교감했다는 이야기니까. 그 순간 그 책은 나만의 책이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때 나를 성장시켰든, 나를 위로했든,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든, 그 책의 임무는 그때 끝난 거다.

# 일어날 객관적 사태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은 단지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나의 주관적 태도일뿐입니다. 나는 다만 내가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나 자신의 주관적 태도를 고상하게 만들 수 있을 뿐인 것입니다.
- 김상봉,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돌아오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 중국의 시

# 나는 카뮈의 `안과 겉` `이방인`. `시지프 신화`까지 달음박질쳤다. 그리고 마침내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아침이 찾아왔다. 출근이 아무렇지도 않은 아침이라니. 출근은 내게 결코 화해불가능한 어떤 것이었는데. 믿을 수 없게도 6년을 매일 회사를 가면서, 그 6년을 매일같이 나는 회사에 가기 싫었다. 막상 도착하면 또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할 거면서, 심지어 열심히 일할 거면서, 나는 매일 아침 출근이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출근이 아무렇지도 않은 아침이 찾아온 것이다. 명백히 `시지프 신화` 때문이었다.

#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 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
나이라는 건
저절로 도착하는
정거장 같은 건데
나는 자꾸
빠른 열차를 타고 싶었다.
빠른 열차로
60이라는 나이에
도착해버리고 싶었다.
바람에 나부끼는 마음을 뒤로하고,
정처 없이 상처받는 시간을 모른 척 하고.

더이상은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
대신 해마다 도착하는
그 나이의 색깔을 기다린다.
모두가 지니고 있는
바로 지금의 색깔에 열광한다.

여리고 미숙하거나
닳고 바래거나
모든 나이에는
그 나름의 색깔이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색깔이 있다.

- 시간의 색깔

# ˝엄마, 친구가 오늘 학원 가지 말자고 그러는데, 학원 빠져도 괜찮나?˝
˝니 학원을 니가 알아서 해야지, 내한테 물어보면 우야노.˝

# 쓰면서 그 막연함을 약간이라도 구체화할 수 밖에 없다. 글을 쓰면 적어도 복기할 기회가 주어지니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태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니까. 내 감정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되니까.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아니, 이해해보려고 적어도 노력해볼 수 있으니까.

# 잘 쓰기 위해서는 좋은 토양을 가꿔야지, 라는 핑계로 수없이 읽고, 듣고, 보고, 돌아다녔다. 11년을 그랬다. 그 핑계 덕분에 삶은 더없이 풍성해졌다.

결국 잘 쓰기 위해 좋은 토양을 가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아야 잘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 이 책은 나에게 있어 오독된 책이다. 문장이 훌륭하지도, 수사학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다. 훌륭한 교훈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오독했고, 책 읽는 순간을 왜곡해서 너무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다.(친구의 신혼집에서 술을 엄청 먹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붙들고 읽고, 길에서도 읽고, 볼더링 대회 끝나고 녹초가 된 상태에서도 읽다가 잠들어 눈 뜨자마자 읽은 순간들) 아침에 책을 읽다가 심지어는 울기까지 했다. 책보다가 운 적은 정말 드문데, 뭔가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엄마의 믿음`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박웅현의 글과 이어지는 부분이 많은 책이다. 심지어 `생각수업`이었던가? 거기에 박웅현씨가 한 챕터를 썼는데, 김민철 이야기도 등장한다. 티비와 회사가 나오니 최근까지 가장 가까웠던 사람도 떠올랐다. 이래저래 나와 호흡이 잘 맞는 책인 것 같다. 그래서 가슴 속 울림을 혼자 조금 더 오래 간직하고 싶었는데 휘발될 것 같아서 기록한다.
잘 살기 위해, 나이기 위해 노력하는 김민철씨의 에세이는 오독의 임무를 다한 책이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책 권수를 세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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