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E 샤르코 & 엔벨 시리즈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민정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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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품을 고를 때는 분명 나름대로의 기준에 의해서 고르게 될 것이다.

프랑크 틸리에의 "신드롬 E'를 고를 때 나는 어떤 기준으로 혹은 기분으로 고르게 된 것일까?

제목은 어딘가 약간 촌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제법 뒤처진 듯한 느낌이었을까? ​

하지만 표지의 필름과 눈동자 같기도 하고 카메라 렌즈 같기도 한 O의 느낌들이 사뭇 공포스러움을 느끼게 한 부분이 컸던 것 같기는 하다.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전 소설들에서 각각의 주인공이었던 '프랑크 샤르코' 형사와 '뤼시 엔벨' 형사가 이번 소설에서 함께 나와서 범인을 추적한다.

이른바 "샤르코 & 엔벨" 시리즈 그 첫 번째 책이라고 한다. 

엔벨이 인터넷 만남 사이트를 통해 몇 번의 데이트를 가졌던 ​뤼도비크는 굉장한 영화광이어서 벨기에에 위치한 곳에서 '옛날 영화 소장품 판매'라는 광고를 보고는 200km를 달려 아침 일찍 찾아간다.

​뤼도비크는 거기서 라벨이 붙어있지 않은 영화와 함께 열 편을 400유로에 사서 돌아온다.

그리고 라벨이 붙어있지 않은 영화를 보게 된다. ​

대개 그런 영화들이 숨겨진 보물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품고 ... 하지만 뤼도비크는 영화를 보다가 눈 앞이 안 보이는 실명 상태가 되고 ​엔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를 하게 되며 엔벨은 '그 영화'와 접하게 된다.

​공사현장에서 시신 다섯 구가 발견이 된다. 두개골이 절단되어 있고 뇌와 눈이 사라진 시신들.

시신을 조사하던 샤르코에게 엔벨이 연락을 취하게 되고 그들이 각각 알고 있는 두 사건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두 사람은 만나게 된다.

샤르코는 자동차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고 망상성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형사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위제니'라는 이름의 소녀가 나타나서 자주 샤르코를 괴롭힌다.

엔벨은 쌍둥이 두 딸을​ 기르는 이혼녀이며, 사건 때문에 자주 어머니에게 두 딸을 맡긴 채 일을 해야 하며, 두 딸이 성장해나가는 시간 동안 자주 함께 하지 못함을 안타까워도 하는 엄마이다.

샤르코와 엔벨은 각자의 삶은 고단함에 시달리는 인물들이다.

그들 내부에 짙은 그늘이 있는 ...

두 사람만 두고 보자면 샤르코가 훨씬 더 병적인 인물이다.

자기만의 세계가 분명하게 지켜져야만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래서 엔벨과의 첫 만남에서도 엔벨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외모를 제외하면, 성격적으로 참 못되게 군다.

현실에서의 일이라면 참 정나미 떨어지는 인간이겠지만, 소설이기에 두 사람이 주인공인 걸 알기에, 읽으면서 어떻게 두 사람이 관계를 형성해갈지 자못 궁금하게 만들어 그래서 눈여겨보게 만들어준 부분이 아닐까 싶다.

소설은 굉장히 전문적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게 만든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는 영사기의 종류라든지 필름의 종류, 영화의 기법이나 서브리미널 효과에 대해서도 말하고 영상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 뇌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뇌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들이 아주 많이 등장한다.

영화와 정신의학 분야에 대해 작가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 이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 글을 읽는 나로서는 구분도 못하지만 ... 아무튼 그럴 수 있겠단 생각이 들게 만들어준다. ​

특히 '정신 전염'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최초의 감염자가 분노를 폭발하게 되면 그 주변의 사람들도 그 분노에 전염되어 집단적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이야기에서는 상당히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우리 인간의 뇌가 무한한 힘을 지닌 만큼 반대급부적으로 또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쉽게 조종당하기 쉬운 존재인지를 ... 인간의 뇌를 조종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인간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

우리는 어쩌면 무수히 많은 영상과 소리들에 의해 갖가지 조종을 당하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광고를 통해 판단의 기준을 삼게되고 소리의 느낌에 따라 감정의 기복이 달라지며 그렇게. 조종을 당하는 줄도 모르고 조종을 당하는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끔찍한 것일까?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한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많은 사람들이 코카콜라를​ 찾았다고 한다.

그 영화의 필름 속에는 1/3000초 마다 코카콜라 영상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1/3000초라면 너무나 짧은 찰나의 순간이라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의 눈으로는 그 코카콜라를 인식할 수는 없지만 눈을 통해 들어온 그 콜라의 영상은 뇌에 새겨지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콜라에 노출되어 영화가 끝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콜라의 시원함을 맛보고 싶은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

이것이 서브리미널 효과라는 것인데 광고에서도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나라는 혹은 우리라는 인간의 존재가 스스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도 통제가 된다고 생각하면 이보다 더 큰 두려움, 공포가 있을까 싶다.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폭력성을 드러내고 집단적으로 살인에 동참하고 ... 그러면서도 개인적인 행동이 아니었기에 죄책감을 다르게 느낀다면 ...

이런 일들은 실제로 우리 주변에 흔하게 일어났고 일어나는 중이며 앞으로도 충분히 일어날 일일 것이다.

가장 흔한 예가 전쟁이고,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학살이며, 일제가 행한 만행에서부터 6·25 때의 양민 학살과 광주에서의 군인들에 의한 만행 ...

옳고 그름의 판단을 우리의 뇌가 제대로 하지 못할 때 ... 휴대폰 어디 뒀지? 하는 잠깐의 건망증이 아니라 인간의 목숨이 달려있는 그런 문제에서도 ​어떤 이의 조종을 받거나 옆 사람의 행동을 따라 하게 되는 그런 연약한 존재가 학살을 하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공포스럽게 느껴진 부분은 이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인간의 뇌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하는 부분.

인간의 뇌에 대한 이야기. 학대받는 아이들. 뇌에 문제를 앓고 있는 샤르코. ​자신의 딸들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생기는 엔벨.

작가 프랑크 틸리에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아주 재미있는 반면 ​신중하게 읽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있다.

그냥 설렁 설렁 읽다가 쫓고 쫓기고 잡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아주 크게는 사회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문제를 말하는 ... 가장 오랜 역사 동안 인간이 인간일 때부터 시작되었을 악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

유럽의 추리 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못해 감히 이렇게 말하긴 그렇지만 프랑스에서 이집트의 카이로로 수사를 하러 가고 캐나다의 몬트리올로 가고, 예전 미국의 CIA가 캐나다에서 저지른 만행이라든지 어딘지 스케일이 큰 것이 헐리우드 영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엔벨 형사 역시도 멋진 사람이겠지만 샤르코와 엔벨을 처음으로 접한 나로서는 '샤르코'에게서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상처입은 수컷이 지키고자 하는 정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지도 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결혼반지를 빼지 않은 남자.​

집을 떠날 때면 늘 장난감 모형 기차를 챙겨가는 남자.

엔벨이 모성애로 따뜻하게 안아줘야 할 그런 남자.​

​이미 세 번째 시리즈까지 나왔다고 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도 곧 번역이 된다고 하니 무척 기대가 되는 소설이다.

반드시 읽고 싶은 시리즈이고 ​개인적으로 "신드롬 E"는 다음 기회에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더 읽어야 할 책인 것 같다.

그리고 다음 책을 꼭 읽게 만드는 식의,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끝날 때 다음 이야기를 언급하는 듯이 끝날 때 기대가 되어서 좋기도 한데 프랑크 틸리에씨 이런 식으로 "신드롬 E"를 끝내는 건 좀 싫습니다 ...

이걸 싫다고 해야 할지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어서 좋다고 해야 할지 ... 참 난감하게 끝을 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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