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메인에 슬램덩크 전자책이 나왔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해서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책이다. 대략적인 스토리는 어릴적 TV매체를 통해 또는 오늘 시작한 이 신장재편판 이전에 나온 책들을 통해 접해보긴 했지만, 시간이 오래지나 지금 현재는 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번 기회에 과거에 접했던 스토리들을 추억하면서 혹시라도 내가 놓치고 지나갔던 부분들이 있다면 새롭게 기억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시작해본다.

덩크슛은 농구의 가장 화려한 볼거리야! 가장 멋지고 가장 관객을 열광케 하는 플레이거든! - P27

특히 골대가 부서질 정도로 공을 과격하게 내리꽂는 것을 슬램덩크라고 해. - P27

끈기없는 사람은 농구부원이 될 수 없다고 했거든. - P40

어떤 녀석이라도 내 잠을 깨우는 건 용서할 수 없다. - P57

승부는 한순간에!! - P95

그래!! 매처럼!!
먹이를 낚아채는 날랜 움직임!! - P95

이렇게 질질 끌려다니다간 놈의 생각대로 되는 거야!! - P95

올해야말로...
꿈을 이룰 수 있겠군. - P109

저 녀석을 보면 뭔가 저지를 것 같단 말이야.
아, 그래.
왠지 보통 녀석이 아닌 것 같아. - P121

히야~공을 완전히 가지고 노네!! - P123

공을 들고 3보 이상 가면 안 돼!!
드리블을 해야지!! - P123

내버려둬!!
자기 좋을 대로 하게. - P123

공을 골대 안으로.... 내리친다!!! - P134

바보는 혼자 놀게 놔둬! - P145

올해 목표는 전국 제패다!! - P173

백호야, 농구는 기초가 중요해. 힘내라고!! - P177

왜, 나만 구석에서 탕탕 공만 튕겨야 하냐!
이제 더 이상 못 참아— !!! - P192

네 녀석은 스포츠가 뭔지도 모르는 놈이다!!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몰라!! - P195

제아무리 덩크를 잘할 수있다 해도 기본을 모르는 놈은 시합에 나가더라도 허수아비일뿐이다!! - P195

난 슬램덩크만 하면 된단 말야!! 그냥 내버려두면 좋잖아!! - P196

제길!! - P197

꾸준한 노력은 언젠가 꼭 보상받게 된다고 오빠가 그랬어. - P231

봐주는 것 없기다!! - P235

예술이라고까지 표현된 ‘스카이 훅‘을 무기로 20년동안 NBA의 톱에 군림해온 그(카림 압둘 자바)를 사람들은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렀다. - P244

저 녀석, 겉보기엔 멍청해보이지만 속은 지독한 승부근성이 있어. - P257

나도 지기 싫은 성질로는 아무한테도 안 진다! - P261

자유투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던질 수 있는 거야. - P264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 P265

남의 플레이를 보는 것도 공부야! - P269

흥! 뭐 좋아. 난 저 주장한테도 이긴 사람이니까. - P269

그래!! 말하자면 높은 자리에서 구경이나 한다 이거야!! - P269

헤헤... 서태웅 따위완 질적으로 다르지!! - P2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은 결핍에 대해 말하는데, 특별히 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는 어떤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결핍감에 대해 나온다. 만약 만성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 문제와 관련없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 한편에서는 그 미해결된 문제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 없기에 어떤 일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 결과 효율성 측면에서 굉장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본문에 나온 각종 연구들에 따르면 어떤 소음이나 잡생각 등과 같은 방해요인들이 있을 경우 그런 것들이 없는 경우에 비해 성취도에 있어서 엄청나게 큰 손해를 본다고 한다.

독자인 나는 상대적으로 소음같은 것들에 민감한 편인데, 오늘 본문을 통해 나의 이런 민감함이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정신을 차지하고 우리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은 굳이 바깥에서 들어오지 않는다. 흔히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생겨난 산만함은 현실 속의 기차보다 더 강력하게 주의를 사로잡을 수 있다. 이 잡생각의 기차는 개인적인 상념을 싣고 우르르 쾅쾅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달려간다. - P-1

지속적인 근심거리는 우리의 정신을 잡아당기고 우리를 빨아들인다. 외부의 소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명쾌하게 생각하지 못하도록 산만함을 조장하듯, 결핍도 사람들의 내면에 그런 혼란을 생성한다. - P-1

내면의 생각이(심지어 머릿속으로 일련의 숫자를 외우는 것조차도) 전반적인 인지 기능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을 입증한 논문이 굉장히 많다. - P-1

잡생각과 관련된 뇌 활동에 따른 산만함은, 뇌의 부하가 높을 때 증가한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하는 친구인 인선의 부탁을 받고 인선의 집에 있는 새(아마)를 구하기 위해 매서운 바람을 동반한 폭설을 뚫고 천신만고 끝에 인선의 집에 도착했지만, 중간에 길을 잃고 낙상하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된 나머지 새(아마)는 이미 죽은 뒤였다. 경하는 자신이 조금만 더 빨리왔다면 하는 자책을 하면서도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새(아마)를 안전한 바구니에 넣어서 땅 속 깊은 곳에 매장한다. 처음 밑줄친 문장은 새(아마)를 매장하는 모든 작업을 끝낸 뒤 경하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말인듯 보인다.
.
.
.
뒤이어서는 인선이 과거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던 시절에 어느 한 인터뷰이를 상대로 인터뷰를 했던 내용이 나온다. 독자인 내가 이 책의 소개글 등을 통해 접한 내용들에 따르면 여기서부터 나오는 인터뷰 내용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주 4.3사건‘ 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사건에 관해 이미 잘 알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계실 것이다. 만약 잘 몰랐던 분들이라면 이 인터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그때 당시의 상황을 느껴볼 수 있을 듯하다.
.
.
.
오늘 포스팅의 중후반부 부터는 챕터가 바뀌는데, 개인적으로 처음에는 잘 인지하지 못했으나 어느순간부터 본문에 인선이라고 나오는 인물이 실존하는 인물이라는 느낌보다는 육신이 없는 영혼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본문에 나온 문장들 중에 이렇게 추론할만한 근거가 되는 몇몇 문장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제 더 할일이 없다. - P156

몇 시간 후면 아마는 얼어붙을 거다. 2월이 올 때까지 썩지 않을 거다. 그러다 맹렬히 썩기 시작한다. 깃털 한줌과 구멍 뚫린 뼈들만 남을 때까지. - P156

이 섬의 동굴들은 입구가 작아요.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정도니까 돌로 가려놓으면 감쪽같은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놀랄 만큼 커집니다. 1948년 겨울엔 한마을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 몸을 피한 곳도 있어요. - P158

아버지와 내가 가곤 했던 동굴은 그만큼 크지는 않았어요. 많아야 여남은 사람이 몸을 피할 수 있을 정도. - P158

공기가 항상 축축했던 기억이 나요. 동굴에 들어가기 직전엔 늘 비나 눈을 맞았던 것도. 맑은 날씨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아버지는 낮은 기압에 반응했던 것 같습니다. 눈비가 오면 관절이나 근육이 아픈 사람들처럼. - P159

속솜허라.
동굴에서 아버지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에요. - P159

숨을 죽이라는 뜻이에요. 움직이지 말라는 겁니다.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는 거예요. - P159

감기 들리면 안 돼여. 정신 바짝 차리민 아프지 않을 수 이서. 정말로 멩심해야 돼여. - P160

그 집에 이시면 안 돼여. - P160

밤낫이 어신 거라이. 군사작전이라는 건. - P160

어멍이 기다릴 건디.
내가 어멍이라는 말을 뱉은 순간 아버지의 몸 전체가 움찔 떨리는 걸, 전류가 옮겨온 것처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우릴 따라와서야 해신디. - P160

어떵할 수가 이시냐. 억지로 끄성 올 방법이 어디 이시냐. 아이를 살려사주. 이 아이가 무신 죄가 이서. - P160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스쳐가고 있었을 상상들의 내용을 몰랐지만, 절망적인 결론에 다다를 때마다 내 손을 잡는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의 몸에서 배어나온 조용한 전율이, 빨래를 쥐어짜는 순간 쏟아지는 물처럼 손을 적시는 걸 느꼈어요. - P161

동서로 긴 타원의 섬 지도가 화면에 떠올랐다. 1948년 미군 기록물이라는 자막 위로, 해안선에서부터 오 킬로미터를 표시하는 경계선이 두드러진 굵기로 그어져 있었다. 한라산을 포함하는 그 안쪽 지역을 소개疏開하며, 해당지를 통행하는 자를 폭도로 간주해 이유 불문 사살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이 자막으로 이어졌다. - P161

놀라울 만큼 노이즈 없이 선명한 흑백 무성 영상이 뒤따라 들어왔다. 초가지붕들이 불탔다. 검은 연기가 불꽃과 함께 하늘로 치솟았다. 검이 장착된 장총을 멘 옅은 색 제복의 병사들이 현무암 밭담을 뛰어넘었다. - P161

어둠이요.

어둠이 거의 기억의 전부예요. - P161

어둠 속에서, 다른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잠결에라도 내가 소리 내지 않게 하려고, 언제 그 굴 앞을 지나갈지 모를 존재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 P162

동굴로 가다가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버지가 조릿대를 꺾었어요. - P162

나한테는 앞장서 가라고 하고, 아버지는 바닷게처럼 옆걸음을 걸어서 나를 따라왔어요. 두 사람의 발자국을 조릿대 잎으로 쓸어 지우면서. - P163

더이상 길이 없는 산속으로 접어들면 나에게 등을 내밀어 업히라고 하고, 그때부턴 당신의 발자국만 쓸어내며 비탈을 올랐어요. 업힌 채로 나는 발자국들이 사라지는 걸 똑똑히 지켜봤어요. 마술 같았어요. 매순간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사람들처럼, 우린 단 한 점의 발자국도 남기지 않으며 걷고 있었어요. - P163

언젠가 어머니가 말한 적이 있어요.
느네 아방이 소나이다워시민 아마 내가 싫어실 거라. 처음 봐신디 소나이 얼굴이 얼마나 곱닥하던지. 십오 년을 햇빛을 못 봐난 그래나신가. 살갗이 버섯같이 히영했주게. 그런 사름을 다들 피하는 게 잘도 이상해서. 죽었던 사름이 돌아온 것추룩. 눈초리 한 번만 섞어도 귀신을 옮길 사름인 것추룩. - P164

내 손에서 귤을 건네받으며 아버지는 반쯤 웃었어요. 마치 두 세계를 사는 사람 같았어요. 한 눈으로는 나를 보고 다른 한 눈으론 내 몸 너머 다른 빛을 보는 것같이, 어두운 방인데도 부신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올려다봤어요. - P165

깜박 잠들었다 통증 속에 깰 때마다 뼈들의 희끗한 형상이 파고든다. 인선의 마지막 영화가 끝나기 직전, 유골 수백 구가 묻힌 구덩이가 맥락도 설명도 없이 일 분 가까이 클로즈업되었던 장면이다. 무릎을 구부려 올린 사람의 유골, 삭은 천조각이 허리에 걸쳐진 유골, 작은 발뼈에 고무신이 신겨진 유골 들이 밭고랑 같은 구덩이 속에 포개져 있었다. - P167

차가웠지.
아니, 부드러웠지.
나는 고쳐 중얼거린다.
돌같이 단단했지.
입술을 뗄 때마다 피에 젖은 얼굴이 소리 없이 입을 벌린다.
아니, 솜같이 가벼웠지. - P168

숨을 다시 쉴거지. 아마. 심장이 다시 뛸 거지. 그렇지, 이 물을 마실 거지. - P170

새들이 건강해 보이는 건 믿을 수 없어, 경하야.
끝까지 고개를 들고 횃대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면 이미 죽은거야. - P171

부서질 듯 문과 창문들이 덜컹거린다. 바람이 아닌지 모른다. 정말 누가 온 건지도 모른다. 집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려고. 찌르고 불태우려고. 과녁 옷을 입혀 나무에 묶으려고. 톱날 같은 소매를 휘두르는 저 검은 나무에. - P172

죽으러 왔구나, 열에 들떠 나는 생각한다.
죽으려고 이곳에 왔어.

베어지고 구멍 뚫리려고, 목을 졸리고 불에 타려고 왔다.
불꽃을 뿜으며 무너져 앉을 이 집으로.
조각난 거인의 몸처럼 겹겹이 포개져 누운 나무들 곁으로. - P172

왜 가지가 없어, 잎도 없어.
무시무시한 대답이 목구멍 안에서 도사리고 있었다.
죽었잖아.
그 말을 삼키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퍼덕이는 새가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오는 통증을 견뎠다.
다 죽었잖아.
부리를 벌리고 발톱을 세운 그 말이 입안에 가득찼다. 꿈틀대는 솜 같은 그걸 뱉지 않은 채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 P176

온다.

떨어진다.

날린다.

흩뿌린다.

내린다.

퍼붓는다.

몰아친다.

쌓인다.

덮는다.

모두 지운다. - P177

어둑한 마루를 빛의 기둥으로 훑어보다 숨을 멈췄다.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창백한 광선의 기둥이 관통한 새장 속에서, 횃대에 발을 걸고 앉은 새가 한번 더 삐이, 울었다.
아마.
갈라져 나온 내 목소리가 정적 속에 흩어졌다.
너는 죽었잖아. - P179

새가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감싸고 여민 손수건을 비집고, 친친 감아 매듭지은 실을 풀고, 귀를 맞춰 닫은 알루미늄 통을 열고, 수건으로 감싼 뒤 십자로 묶었던 실을 끊는 것은. 얼어붙은 봉분과 그 위로 쌓인 눈을 뚫고 날아올라, 잠긴 문 안으로 들어와 철망 속이 횃대에 앉는 것은. - P180

죽은 다음에도 배고픈 게 있어? - P181

새들에게 간식이 아닌 식사를 줄 때는 반드시 새장에서 먹게 해야 한다고 인선은 말했었다. 그러지 않으면 새장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게 되고, 제시간에 재울 방법이 없게 되며 결국 모든 규칙이 깨진다는 거였다. - P182

네 생각을 많이 했어.
인선의 목소리에 나는 눈을 들었다. 그녀도 그 바람구멍 속을 보고 있었다.
하도 생각해서 어떤 날엔 꼭 같이 있는 것 같았어. - P190

우리 프로젝트 말이야.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그녀는 주전자에 생수를 부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제목을 묻지 않았어.
나는 대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주전자와 머그잔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걸어오며 인선이 되뇌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 P192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 - P192

완성되지 않는 거야, 작별이? - P192

미루는 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 P193

잔에서 입술을 뗀 인선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뱃속에도 이 차가 퍼지고 있을까. 인선이 혼으로 찾아왔다면 나는 살아 있고, 인선이 살아 있다면 내가 혼으로 찾아온 것일 텐데. 이 뜨거움이 동시에 우리 몸속에 번질 수 있나. - P194

나는 더 차를 마셨다. 위가 뜨겁게 채워질수록 수그렸던 어깨가 펴지고 허리가 곧아졌다. - P195

가로등도 이웃도 없는 집에서 말이야. 눈이 내리면 고립되고 전기와 물이 끊기는 집 말이야. 밤새 팔을 휘두르며 전진해오는 나무가 있는 곳, 내 하나만 건너면 몰살되고 불탄 마을이 있는 곳 말이야. - P195

혼자가 아닌데, 나는.
고요한 사랑의 빛이 그녀의 얼굴에 어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 P196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인선의 목소리가 그 열기 사이로 번졌다.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 - P197

오늘 우리 몸이 닿지 않았다는 것을 그때에야 나는 알았다. 오랜만에 만나면 언제나 서로 어깨를 안았다. 이게 얼마만이야, 어떻게 지냈어, 인사를 나누는 동안엔 손을 잡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거리를 두고 있었나. 몸이 닿는 순간 상대의 죽음에 전염될 것처럼. - P198

인선이 성큼성큼 앞장서는 대로 나는 뒷문을 향해 걸었다. 그녀의 발이 디딘 곳으로만 걸으니 신기하게도 어떤 나무에도 부딪히지 않았고 피를 밟지도 않았다. - P199

아마는 잠들었을 거야. 깨우지 말자. - P200

새 그림자가 흰 벽 위로 소리 없이 날고 있었다. 예닐곱 살 아이의 몸피만큼 커진 그림자였다. 꿈틀거리는 날개 근육과 반투명한 깃털들의 세부가 확대경을 통과한 것처럼 선명했다. 이 집에 존재하는 광원은 내 앞의 촛불뿐이었다. 저 그림자가 생기려면 촛불과 벽 사이로 새가 날고 있어야 한다. - P203

몇 초 만에 가버릴 때도 있고, 날이 밝을 때까지 머무르기도 해. - P204

헝겊들이 서로 스치는 것 같은, 젖은 흙덩이가 손가락 사이로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어디선가 새어나왔다. 인선의 것과 닮은 소리였다. 지금 내 곁에 있는 그녀가 아니라 서울의 병실에 누운 인선이 손이 아니라 성대를 다친 듯 목을 울리지 않으며 내던 무성음과 어딘가 흡사했다. - P2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은 거의 2달 전이었는데, 초반부만 살짝 읽다가 작가님의 다른 책들을 먼저 읽다보니 본의 아니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었다. 가장 최근에는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이 수록된 책인《빛과 실》이라는 에세이를 읽었는데, 그 책에서 그간 작가님이 써오신 다양한 작품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에세이에 수록된 작품들을 그냥 생각나는대로 읊어보자면,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바람이 분다, 가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별하지 않는다》정도가 떠오른다.

《빛과 실》을 읽기 전에 개인적으로는《작별하지 않는다》외의 다른 작품들은 완독을 이미 한 상태였기에 그간 읽었던 작품들의 스토리들을 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려보면서 작가님의 의도나 생각을 되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에세이를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작별하지 않는다》 라는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샘솟아서 근 2달만에 다시 집어들게 된 것이다.

개인적인 잡설이 굉장히 길었고, 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는 이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경하가 제주도에 있는 인선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인선은 목공일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인해 손가락이 절단되어 급하게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있는 상태인데, 자신의 집에 있는 앵무새 한 마리(아마)가 죽을 수도 있다면서 자신의 집으로 가서 자기 대신에 그 새를 봐달라고 급하게 경하에게 부탁한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제주도에 함박눈이 내리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인선의 집까지 가는 길이 순탄치 않았다. 그 힘든 와중에 경하는 인적이 드문 길에서 우연히 어떤 할머니를 만나게 되는데, 경하는 그 할머니에게 말을 건넬지 여부를 마음 속으로 재고 있다. 그러면서 경하는 인선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데 인선은 붙임성이 좋아서 처음보는 할머니를 만나도 금세 친해지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경하가 인선에게 처음 보는 할머니들과 금방 친해지는 비결을 물었을 때 인선이 답한 것인데, 확실히 사람이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에서 더 빠르게 적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가로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는 말도 복잡다단한 세상살이에 조금이라도 빨리 적응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할머니 같은 엄마가 키워서 그런지도 모르지. - P97

그날 밤에 대해 당신이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이 사람이 묻습니다. - P97

이 섬에서는 손윗사람을 삼촌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인선은 나에게 말해줬다.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외지인밖에 없어. 삼춘이라고 일단 부르면, 설령 그다음에 제주 말을 못한다 해도 섬에서 오래 산 사람인가 싶어 경계를 덜 하게 되지. - P98

어떤 기쁨과 상대의 호의에도 마음을 놓지 않으며, 다음 순간 끔찍한 불운이 닥친다 해도 감당할 각오가 몸에 밴 듯한, 오래 고통에 단련된 사람들이 특유하게 갖는 침통한 침착성으로. - P99

입맛을 쉽게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 산대. 엄만 오래 사실 거야. - P101

꼭 생시 같은 꿈이 있으니까. - P104

인내와 체념, 슬픔과 불완전한 화해, 강인함과 쓸쓸함은 때로 비슷해 보인다. 어떤 사람의 얼굴과 몸짓에서 그 감정들을 구별하는 건 어렵다고, 어쩌면 당사자도 그것들을 정확히 분리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P105

그 밤에 군인들이 왔지. - P108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이 물방울만큼.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 P109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 P109

무게를 줄이기 위해 새들의 뼈에는 구멍들이 뚫려 있다고, 장기 중에 제일 큰 건 풍선처럼 생긴 기낭氣囊이라고 - P109

새들이 조금 먹는 건 위가 정말 작아서 그런 거야. 피도 체액도 아주 조금뿐이어서, 약간만 피를 흘리거나 목이 말라도 생명이 위험해진대. - P109

왜 그때 내 눈앞에 발생 초기 태아의 형상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심장박동이 감지될 무렵의 몸무게가 그 정도(이십 그램)라고 오래전에 들었다. 그 시기, 알에 담긴 듯 동그랗게 웅크린 태아의 형상은 새끼 새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해 보였다. - P110

새들은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공룡이라는 과학잡지의 기사도 그 무렵 읽었다. 거대한 소행성과의 충돌로 지구의 표면이 불타며 끓어오를 때, 대기층을 덮어 지상의 거의 모든 동물들은 물론 식물들까지 절멸시킨 화산재 속에서 몇 달을 날아 버틴 생명체가 깃털 공룡ㅡ새들이라는 것이었다. - P111

건강해 보여도 방심할 수 없어.
아무리 아파도 새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횃대에 앉아 있대. 포식자들에게 표적이 되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견디는 거야. 그러다 횃대에서 떨어지면 이미 늦은 거래. - P112

그렇게 두 개의 시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건지 나는 알고 싶었다. 저 엇박자 돌림노래 같은 것, 꿈꾸는 동시에 생시를 사는 것같은 걸까. - P114

그러니까 지금 인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그녀의 집으로 가는 거다. - P120

이게 운좋은 거냐. 날씨가 야, 이래가지고. 이 좋은 운을 타고 어떤 위험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건가? - P120

언제나 그렇듯 통증은 나를 고립시킨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몸이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고문의 순간들 속에 나는 갇힌다. 통증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으로부터, 아프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로부터 떨어져나온다. - P121

두통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내 마음은 차츰 마비되어, 그 낯선 할머니와 작별한 일이 어느 사이 멀어진다. 불안도, 구해야 할 새에 대한 생각도, 인선에 대한 마음까지도 통증이 예리하게 그어놓은 금 바깥으로 빠져나간다. - P122

내가 잘못 들어서서 미끄러져 내려왔고 지금 누워 있는 이 길은, 길이 아니라 건천인 것 같다. 우묵하게 파인 지형에 살얼음이 얼어 있었고 그 위로 눈이 쌓인 것이다. 이 화산섬에는 하천이 거의 없고 폭우와 폭설에만 흐르는 마른 물길이 드물게 있다. 이 건천을 경계로 원래는 마을이 나누어졌다고 인선은 산책길에 말했었다. 내 너머로 사십 호 안팎의 집들이 모여 있었다고, 1948년 소개령 때 모두 불타고 사람들이 몰살되며 폐촌되었다고 했다. - P127

그러니까 그때까진 외딴집이 아니었던 거지. 내 하나 건너면 마을이 있었으니까. - P127

그 버스에서 내리지 말았어야 했다. - P128

물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지 않나. 그렇다면 인선이 맞으며 자란 눈송이가 지금 내 얼굴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아니란 법이 없다. - P133

인선의 어머니가 보았다던 학교 운동장의 사람들이 이어 떠올라 나는 무릎을 안고 있던 팔을 푼다. 무딘 콧날과 눈꺼풀에 쌓인 눈을 닦아낸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 P133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다.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 P134

모른다. 새들이 어떻게 잠들고 죽는지.
남은 빛이 사라질 때 목숨도 함께 끊어지는지.
전류 같은 생명이 새벽까지 남아 흐르기도 하는지. - P135

물뿐 아니라 바람과 해류도 순환하지 않나. 이 섬뿐 아니라 오래전 먼 곳에서 내렸던 눈송이들도 저 구름 속에서 다시 응결할 수 있지 않나. - P136

다섯 살의 내가 K시에서 첫눈을 향해 손을 내밀고 서른 살의 내가 서울의 천변을 자전거로 달리며 소낙비에 젖었을 때, 칠십 년 전 이 섬의 학교 운동장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덮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암탉과 병아리들이 날개를 퍼덕이는 닭장에 흙탕물이 무섭게 차오르고 반들거리는 황동 펌프에 빗줄기가 튕겨져 나왔을 때, 그 물방울들과 부스러지는 결정들과 피 어린 살얼음들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법이, 지금 내 몸에 떨어지는 눈이 그것들이 아니란 법이 없다. - P136

삼만 명이었어요. - P136

대만에서도 삼만 명, 오키나와에서는 십이만 명이 살해되었는데요. - P136

그 숫자들을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곳들이 모두 고립된 섬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 P137

생생한 기억들이 동시에 재생된다. 순서도, 맥락도 없다. 한꺼번에 무대로 쏟아져나와 저마다 다른 동작을 하는 수많은무용수들 같다. 몸을 펼친 채 단박에 얼어붙은 순간들이 결정結晶처럼 빛난다. - P137

모르겠다. 이것이 죽음 직전에 일어나는 일인지.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이 결정이 된다. 아무것도 더이상 아프지 않다. 정교한 형상을 펼친 눈송이들 같은 수백 수천의 순간들이 동시에 반짝인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모든 고통과 기쁨, 사무치는 슬픔과 사랑이 서로에게 섞이지 않은 채 고스란히, 동시에 거대한 성운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빛나고 있다. - P138

잠들고 싶다.
이 황홀 속에서 잠들고 싶다.
정말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 P138

하지만 새가 있어. - P138

손끝을 건드리는 감각이 있다.
가느다란 맥박처럼 두드리는 게 있다.
끊어질 듯 말 듯 손가락 끝으로 흘러드는 전류가 있다. - P138

더 만져달라는 거야. - P141

더, 계속 쓰다듬어달라는 거야. - P141

저 너머에 뭔가 있다. 빛을 발하는 무엇인가가. - P141

철문이 활짝 열려, 마치 빛의 섬 같은 그곳에서 불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누가 저기 먼저 와 있나, 몸서리치며 생각한 다음 순간 깨닫는다.
그날 이후 아무도 오지 않은 거다. - P142

조금씩 다른 농도로 칠해진 그 검은 나무들이 어떤 말을 하는 것 같다고 나는 느낀다. 먹을 칠하는 일은 깊은 잠을 입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오히려 악몽을 견디는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걸까? 칠하지 않은 생나무들은 표정도 진동도 없는 정적에 잠겨 있는데, 이 검은 나무들만이 전율을 누르고 있는 것 같다. - P145

움직여봐.
내가 구하러 왔어. - P149

부드러운 것이 손끝에 닿는다.
더이상 따스하지 않은 것이.
죽은 것이. - P149

방금까지 따뜻한 피가 돌았던 듯 생생한 적막에 싸인 조그만 몸을 들여다보는 동안, 그 끊어진 생명이 내 가슴을 부리로 찔러 열고 들어오려 한다고 느낀다. 심장 안쪽까지 파고들어와, 그게 고동치는 한 그곳에서 살아가려 한다. - P151

솜요를 밟고 옷장에 다가서며 생각한다. 지금도 실톱이 아래에 있을까. 톱날들이 악몽을 물리치는 건가, 그 날카로운 걸 미리 꿈이 피해가는 건가. - P151

이해할 수 없다. 아마는 나의 새가 아니다. 이런 고통을 느낄 만큼 사랑한 적도 없다. - P152

어디에 묻어야 할까.
처마 아래 상자를 두고 삽을 들며 나는 생각한다.
인선이라면 어디 묻으려 할까. - P153

내가 없는 그곳에 인선이 있고, 그녀가 없는 이곳에 내가 있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 P155

나는 생각한다. 내가 건천으로 미끄러지지 않았다면 그전에 물을 먹일 수 있었을까. 그 순간 제대로 길을 택해 내처 걸어왔다면. 아니, 그전에 터미널에서 더 기다려 산을 가로지르는 버스를 탔다면. - P1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의 도입부에는 화자인 나와 나의 아내로 지칭되는 사람이 등장한다. 한 가지 특이사항은 아내의 몸에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는 피멍이 군데군데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 별도로 자세하게 밑줄치진 않았지만, 아내로 나오는 사람의 캐릭터가 굉장히 감성적인 듯 보였다. 무언가 자기만의 감상에 젖어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나 할까? 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간선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차들을 보면서 아내가 내뱉은 말인데,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아내라는 사람의 스타일을 어느정도는 대략적으로 짐작해볼 수 있었다. 뒤이어지는 내용들이 과연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결코 평범하게만 흘러가지는 않을 듯하다.

......다들 어디로 저렇게 달려가는 거야? - P20

허기와 피로 때문에, 밥 떠먹을 깨끗한 숟가락 하나도 남김없이 싱크대의 개수통 안에서 썩어가고 있는 식기들 때문에 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먼 곳에서 돌아왔는데 아무도 없다는 것 때문에, 긴 비행 시간 동안 겪은 소소한 일들과 이역의 기차에서 본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에, ‘피곤해?‘라고 물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괜찮아‘라고 강인하고 참을성 있게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외로웠다. - P28

외로움 때문에 화가 났다. 내 몸이 보잘것없어 세상의 어떤 것도 나에게 엉겨붙지 않는 듯한 느낌, 어떤 옷으로도 가릴수 없는 한기, 무엇으로도 누구로부터도 위로받을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용케 스스로에게 숨겨왔을 뿐이라는 생각 때문에 화가 났다. 언제 어디에서나 혼자이며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미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 P29

이상하지요 어머니,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고 맛보는 것이 없어도 모든 것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져요. - P32

모든 것이 마음 탓이라고 - P35

나는 그것을 힘주어 깨물었다. 내가 지상에서 가졌던 단 한 여자의 열매를. 그것의 첫맛은 쏘는 듯 시었으며, 혀뿌리에 남은 즙의 뒷맛은 다소 씁쓸했다. - P39

.......지겨워, 진저리가 나. - P46

그러나 이제 이 고요한 방에 혼자 있자니 아이는 그렇게 지겨운 아빠라도 곁에 있었으면 싶다. 연신 일회용 종이 잔을 비우며 우두커니 앉아 있어도 좋고, 앞이빨로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이 연놈들을......하고 뇌까려대도 좋다. - P48

지겨워... 지겨워, 정말. - P54

기다리기로 마음먹으면 시간의 속력이 더 느려지는 것을 안다. - P57

이것만은 알아두십시오. 나, 이 세상에서 더 바라는 것 없는놈입니다. 미련도 없는 놈입니다. - P59

엄마는 어떻게 아빠 같은 남자와 결혼했을까. - P61

우는 것과 좋아지는 건 뭔가 분명한 관계가 있는 거라고 - P61

꼬챙이로 붕어빵 틀을 들출 때마다 노릇노릇하게 익어 있는 물고기들을 아이는 지느러미 끝을 잡고 끄집어냈다. 아직희끗한 붕어들의 뚜껑은 도로 덮어놓았다. 태어나려면 그 뜨거운 틀 속에서 더 견뎌야 했다. 옆엣것들과 똑같이 견디지 않고는 그 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 P76

붕어를 다 꺼낸 다음에는 틀들을 세로로 세워둬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눕혀놓으면 그 부분이 너무 달궈져서 반죽과 고물을 붓고 나면 그쪽만 타버린다. - P76

틀의 얼굴 모양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붕어들은 하나같이 웃는 입꼬리를 하고 있었다. 제가 웃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 P76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 P77

.......이렇게는 못 살아! - P79

언젠가부터 아이는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저 생겨난 일대로 숨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견디는 데익숙해져 있었다. - P91

해질녘의 개들이 어떤 기분일지 아이는 궁금하지 않다. 너무 아팠기 때문에, 오래 외로웠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이 순간 두려운 것이 없다. - P99

눈을 떠라.
눈을 떠! - P105

"......혼자 초를 그리게 되기까지는, 이렇게 삼천 장을 그대로 베껴야 된단다." - P117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다. 부처님 앞에 절하듯이 한 장 한 장 그대로 베끼기부터 해야 되는 거야. 주름 하나 어깨선 하나 다르지 않게 하려면 그렇게 해선 안 된다." - P118

눈물로 세상을 버티려고 하지 마라. - P119

눈물 따위로 버틸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마. - P119

내 살아온 동안 쌓아온 것들이 고스란히 내 병이야...... 이제 와서 보니 후회가 되는구나, 한평생 칼을 품고 살아왔던 것 같으니. - P120

말해야 한다.
나는 다짐했다.
망설이지 말고 지금 물어야 한다. - P122

"저는 바라는 게 없어요. 그쪽이 바라는 대로 하세요" - P125

나는 그의 흉터와 용기를 함께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니, 바로 그 흉터가 나에게 안겨준 충격 때문에, 평생 숨기고 싶었을 알몸을 보여줄 만큼 나를 신뢰해준 데 대한 고마움 때문에 그를 받아들였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 P127

하루하루를 인내하고 있는데, 네 몸을 견디며 살아주고 있는데,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니. - P128

나는 처음부터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 P134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의 흉터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이제 그 흉터 때문에 그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의 흉터가 다만 한 겹 얇은 살갗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다는 것이 내 마음의 얇은 한 겹까지 벗겨내주지는 못했다.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죄가 있다면 모두 나의 것이었다. - P134

삶이 얼마나 긴 것인지 몰랐던 죄. 몸이 시키는 대로 가지 않았던 죄. 분에 넘치는 정신을 꿈꿨던 죄. 분에 넘치는 사랑을 꿈꿨던 죄. 자신의 한계에 무지했던 죄. 그러고도 그를 증오했던 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가학했던 죄. - P135

나는 타인의 그것처럼 그의 흉터를 보았다.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듯이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 P135

세계가 다른 방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것을 낯설게, 그리고 오래 바라보았다. 선한 것과 악한 것, 의무와 책임과 방기, 진실과 거짓 따위가 내 눈앞에서 경계선을 무너뜨려갔다. 나는 그 혼란에 더 이상 놀라거나 당혹스러워하지 않았다. 다만 잠자코 바라보았다. 그 간격이 나를 구해주었다. - P135

우리는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그를 미워하지않았다. 다시 평화가 찾아오자 나는 다시 작업에 열중할 수 있있으며, 예전보다 더욱 내 일을 사랑하게 되었다. - P135

작업실에 온종일 틀어박혀 있으면 나는 자유로웠다. 몰입만큼 자유를 주는 것이 어디 있는가? - P135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끼리 사는 것은 시간 낭비잖아요" - P137

아주 높이 올라간 상태에서 뒤돌아봤을때 후회될 만한 짓들은 하고 싶지 않았어. - P139

일단 목표가 생기면 그는 최선을 다했다. - P140

그 애는 날 원해. 상대방이 날 원한다는 걸 느낀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까마득히 잊고 지냈어. - P143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은 나 자신이었다. - P144

"그 스님이 그러더라. 관세음보살은 내 속에 있다고. 내 몸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득해지면 그게 바로 관세음보살이라더라." - P148

어디서 이 묵묵한 인내가 나오나. - P149

어떻게 이토록 고요한 얼굴인가. - P150

"뭘 준다고 하면 ‘그럼, 그럴까?‘ 하고 좀 받어. 원, 주는 사람 성의도 생각해야지!" - P151

"의료보험료는 괜히 내? 이럴 때 쓸려구 내는 거 아냐." - P152

처음부터 그렇게 되었어야 했던 것을 어리석게 버텨왔을 뿐 - P155

......지나가는 아픔 하나 견디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다는거냐? - P156

그 가죽 안에서 악취 나는 거품처럼 부글거리고 있는 것은 오래 묵은 분노와 후회와 증오, 억울함과 자책과 부끄러움이었다. 그것들이 내 살을 속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부식시켜왔다. - P1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