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자연선택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특수한 환경 하에서 생존에 적합한 형질을 지닌 개체군이, 그 환경 하에서 생존에 부적합한 형질을 지닌 개체군에 비해 ‘생존‘과 ‘번식‘에서 이익을 본다는 이론이다.
저자는 이 자연선택이 안정적으로 일어날 경우 각각의 개체들이 생존과 번식에 최적인 상태인 최적값의 평균에 가까워지는 것을 일컬어 ‘안정화 자연선택‘이라고 부르고 있다. 만약 이러한 선택에 역행하거나 엇나가는 개체들이 있다면 그 개체들은 생존하거나 번식하지 못한채 죽음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나아가서 이 안정화 자연선택이라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이것은 특정 분야에만 국한시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사회에도 얼마든지 적용해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예로 공무원 집단 같이 비교적 경직된(?) 집단 내에서 남들과는 달리 독특하게 튀기보다는 그냥 무던히 묻어가려는 사람이 많은 현상도 어쩌면 생존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것이 조직전체적으로 봤을 때 바람직한 전략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저 개인의 생존만을 생각했을 땐 괜히 튀는 행동을 하다가 조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으로 낙인 찍혀서 조직생활이 피곤해지거나 또는 그만둬야 하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그냥 대다수의 다른 직원들처럼 무던하게 맡겨진 일에 충실하고 쓸데없이 튀지 않는 것이 조직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자기주장이 너무 센 나머지 조직의 목표보다 개인의 목표를 앞세운다거나 하는 등의 선택을 할 경우 그 개인의 행복지수는 올라갈 수 있을지 몰라도 조직으로부터 배제될 위험도 함께 올라갈 수 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조직생활보다는 개인적으로 일해도 무방한 직업을 갖는 게 훨씬 더 나을 것이다. 결국 어떤 조직에 속해서 일을 하든 아니면 개인 단위로 일을 하든 관계없이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적합한 방식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잘 살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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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 11장 ‘윤리와 종교‘ 라는 제목의 글이 이어진다. 저자는 본문에서 이와 관련한 본질적인 질문 하나를 던진다. 그것은 바로 윤리라는 것이 인간이 임의로 만들어 낸 것인지 아니면 그냥 원래부터 존재해왔던 것인지의 여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저자의 얘기가 인상깊게 다가왔다.

본문의 설명에 따르면 위에서 언급한 질문에서 윤리라는 것이 원래부터 존재해왔다는 논리가 초월론이고, 인간이 임의로 만들어 낸 것이라는 논리가 경험론이다. 저자는 이 대립하는 두 논리의 입장을 각 논리의 근거에 입각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개인적으론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느 한 쪽의 편만 일방적으로 들기가 참으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각자의 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개개인 각자가 스스로 좀 더 그럴싸하다고 생각하는 논리에 순응해서 그 쪽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성향을 하나로 획일화할 수 없듯이 서로 간에 대립하는 어떤 논리라는 것도 어느 한 쪽으로만 쏠리기는 힘들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것이 우선순위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우선하는 가치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가치관이나 생각을 이루는 뿌리가 달라지고 거기서 파생되는 잔가지와 같은 다양한 생각들이 엄청난 속도로 뻗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각각의 논리에 따른 생각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질 것이고 이는 접점이라는 것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상태로 나아갈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차이에서 시작했지만 그 차이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속성을 생각하다보니 문득 수학에 나오는 한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한 꼭지점에서 출발했지만 다른 각도로 뻗어나가는 화살표 또는 직선이다. 그 둘은 지향하는 방향이 엄연히 다르기에 어느 한 쪽이 자신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 이상 영원히 만날 수 없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초월론과 경험론으로 대변되는 신학과 과학의 경우도 어쩌면 이와 유사한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극이라는 것이 언제 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궁극에 가서는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웃을지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 웃을지 지금으로선 아무 알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을 좀 덧붙이자면 신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든 아니면 그 반대이든 간에 그냥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아가면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만 상대방에게 존립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는 선을 지킨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근데 참 이 글을 쓰면서도 머릿속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어서 이 문제가 참으로 쉽지 않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인간 사회가 참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고 차라리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고 사는 게 속편하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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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후반부에선 초월론자의 입장을 위주로 살펴봤는데, 다음 포스팅에선 경험론자의 입장을 살펴보겠다.

안정화 자연선택(stabilizing natural selection)이 일어나면 최적값에서 이탈한 경우들은 점점 제거되고 그 최적값이 진화 기간 동안 규준(norm)으로서 유지된다. - P399

"가장 큰(또는 가장 밝은, 또는 가장 잘 보이게 이동하는) 개체를 잡아라." - P400

빼어난 미(美)의 희귀성은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us)으로 알려진 현상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 P399

사실 아름다움과 연관된 산업 전체가 정상을 벗어난 자극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예컨대 아이섀도와 마스카라는 눈을 크게 보이게 해 주고 립스틱은 입술을 빛나게 해 주며 연지는 뺨의 홍조를 유지해 준다. 또한 적절한 색깔의 파운데이션은 얼굴 윤곽을 선천적 이상형에 맞도록 부드럽게 재조정해 주고 매니큐어는 혈액 순환이 손끝까지 이르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머리 염색은 머리카락을 풍부하고 젊어 보이게 만들어 준다. 이런 모든 것들은 젊음과 생식 능력이라는 자연적인 생리 신호들을 모방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 - P401

의상과 상징적 문양은 정력을 과시하고 지위를 선전한다. 고대 예술가들이 유럽의 동굴 벽에 동물 그림이나 잘 차려 입은 주술사들을 그리기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은 옷에다 구슬을 매달고 벨트에는 구멍을 뚫고 동물의 송곳니로 머리띠를 장식해 왔다. 이런 증거들은 시각 예술의 캔버스가 본래 인간의 신체 그 자체였음을 보여 준다. - P401

미국의 미학사가인 엘런 디새너예이크는 예술의 일차적 역할이 인간과 동물 그리고 무생물 환경의 특수한 특징들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고 또 항상 그래 왔다고 말한다. 여성의 아름다움에 관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은 그러한 특징들에 선천적으로 민감하다. 그 특성들은 정신 발달의 후성 규칙들을 탐색해 나가기 위한 가장 좋은 출발점들이다. - P401

예술은 일상적 존재의 외양적 혼돈 상태로부터 질서와 의미를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비한 것을 향한 우리의 갈망에 자양분을 준다. 우리는 잠재의식을 넘나들며 표류하고 있는 어슴푸레한 형상들에 마음이 끌린다. 우리는 불가해한 것, 즉 닿을 수 없이 멀리 있는 시공간을 꿈꾼다. 왜 우리는 그토록 미지의 것을 사랑해야만 하는가? 아마도 그 이유는 뇌가 진화했던 구석기 시대의 환경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감정이라는 측면에서 나는 우리가 여전히 거기에 머물러 있다고 믿는다. 나는 자연주의자로서 이 형성기 세계의 공상들에 대해 명확한 지리적 이미지를 사용한다. - P401

우리의 마음은 너무도 쉽고 열렬하게 아주 친숙한 영역에서신비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 P402

오늘날은 지구 전체가 우리의 본거지이다. 전 지구적 정보망은 온 사방으로 뻗어 있다. 그런데도 신비한 영역은 없어지지 않았다. 단지 그 영역이 우리 앞마당에서 후퇴했고 어렴풋이 보이던 산 너머로 후퇴했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신비의 영역을 별들에서, 알 수 없는 미래에서, 그리고 여전히 우리를 설레게 하는 초자연적인 것의 가능성에서 찾는다. - P402

우리 조상들은 두 세계ㅡ알려진 세계와 미지의 세계ㅡ를 통해 인간의 영혼에 자양분을 공급했다. 이 두 세계의 뮤즈, 즉 과학과 예술이 다음과 같이 속삭인다. 우리를 따라와 탐구하고 발견하라. - P402

칼라하리 사막의 부족들은 사막의 빈약한 자원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계획을 세워야 하고 세심하게 행동해야 한다. 지형과 계절마다 변하는 생태계에 대한 지식은 특히 중요하다. 부족들은 자신의 세력권 내에서 수자원의 분배가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임을 알고 있다. - P403

칼라하리 사막의 부족은 대략 50명에서 7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공동생활을 하며 매우 협동적이다. 집단이 1년에도 몇 번씩 모든 소유물을 등에 짊어진 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개인은 생존에 별 필요가 없는 물자들을 축적하는 법이 거의 없다. - P405

집단을 하나로 결속하기 위해서는 예절과 호혜주의가 엄격하게 준수되어야 한다. - P405

칼라하리 사막의 수렵인들은 동물을 철저히 의인화함으로써 동물행동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적하고 있는 동물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기 위해 상상도 하고 주변의 세계에 직접 자기 생각을 투사하기도 하며 유추하기도 한다. - P406

수렵-채집인들은 동물의 행동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들이나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지닌 가치들에 기반을 둔 동기들을 통해 동물들의 행동을 감독한다. - P406

각 종은 고유한 행동 습관(kxodzi)의 지배를 받고 자신만의 언어 (kxwisa)를 지닌다. - P406

실제로 문자 사용 이전의 사람들은 물질세계와 비물질 세계의 등가성을 믿고 합리적 설명과 비합리적 설명이 동등하다고 믿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이 각종 신화와 토템으로 가득 찬 이야기들을 어떻게 창안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비를 받아들이는 일은 그들 삶의 중요한 부분이다. - P406

문자 사용 이전의 사람들이 실제로 지각하는 세계는 완전한 자연세계의 작은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원시인들의 마음은 끊임없이 신비한 것을 향할 수밖에 없다. 칼라하리 사막의 부족을 비롯한 현대 수렵 채집 부족들의 일상 경험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 주변의 신비한 환경으로 뻗어 나간다. 나무나 바위에도 영혼이 깃들어 있고 동물도 생각할 줄 알며 인간의 생각은 몸에서 밖으로 투사되어 물리적 힘을 가진다. - P407

우리 모두는 기대와 달리 여전히 원시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 생태계를 유지하는 수천 종의 생물들(동식물과 미생물) 중 겨우 하나 정도나 알까 말까 한다는 점에서 수렵 채집인들과 대학 교육을 받은 도시 사람들은 모두 똑같다. 우리는 공기와 물과 흙을 만들어 내는 진정한 생물-물리적 힘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심지어 가장 유능한 자연학자의 평생 연구를 집대성해 놓아도 생태계의 희미한 윤곽 이상을 추적하기란 불가능하다. - P407

설명들은 공간적으로는 분자로부터 생태계에 이르기까지, 시간적으로는 100만분의 1초 단위에서 1,000년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통섭적으로 설명하면 생물 조직의 상이한 수준에 있는 단위들이 재조립될 수 있다. - P408

확장된 시공간 속에서 과학과 예술이 뜨겁게 양손을 맞잡을 수 있다 - P409

정의나 인간의 권리와 같은 윤리적 격률들이 인간의 경험과 무관하게 독립적인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 낸 창안물인가? ...(중략)... 이런 입장들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스스로를 하나의 종으로서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완전히 달라진다. 또한 이 선택은 종교의 권위를 평가하고 도덕 논증(moral reasoning)의 방식을 결정한다. - P411

올바른 해답에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것은 객관적인 증거의 축적을 통해서일 것이다. 나는 도덕 논증이 모든 수준에서 자연과학과 본질적으로 통섭적임을 믿는다. - P412

인간 정신 외부에 도덕적 지침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초월론자(transcendentalist)와 그것들이 단지 인간 정신의 고안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험론자 - P412

종교적 확신과 비종교적 확신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윤리적 초월론자의 확신과 경험론자의 확신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사유 속에서 서로 가로질러 교차되는 결정이다. - P412

즉 윤리가 독립적인 것임을 믿는 윤리적 초월론자는 무신론자일 수도 있고 신의 존재를 가정할 수도 있다. 이와 유사하게 윤리가 인간의 창안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윤리적 경험론자 또한 무신론자이거나 창조자로서의 신을 믿을 수 있다. (물론 전통적인 유태-기독교적 의미에서의 입법자로서의 신을 믿는 것은 아니다.) - P412

윤리적 근거의 선택지들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도덕적 가치들(신으로부터 나온 것이건 아니건 간에)의 독립성을 믿는다.

VS.

나는 도덕적 가치들이 오직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일 뿐임을 믿는다. 신은 별도의 문제이다. - P412

의혹과 타협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도덕적 행위의 독립적 원리들로 이루어진 자연법 (natural law)이라는 성배 - P413

이 관점(초월론)에 따르면, 인간은 부지런히 논증을 개발함으로써 이 자연법을 발견하고 그 일상적 삶의 과정들속에 엮어 넣을 의무를 가진 존재이다. - P413

「독립선언문」에서 그(토머스 제퍼슨)는 하나의 초월론적 문장 안에 세속적 가정과 종교적 가정을 함께 섞어서 모든 가능성들을 교묘하게 다 포함시켰다. "우리는 모든 인간들이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이 권리들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가 있음을 자명한 진리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미국의 민간 종교의 주요한 전제이자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과 마틴 루서 킹(Martin Luther King) 목사가 휘둘렀던 정의의 검이었으며, 여전히 미합중국의 다양한 국민들을 한데 결속하는 중심 윤리로서 살아남아 있다. - P413

자연법 이론의 이와 같은 결실이 신성과 함께 호소될 때에는 너무도 강력했기 때문에 초월론적 가정이 문제시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고상한 성공의 이야기 뒤에는 무시무시한 실패의 이야기가 덧붙여져야 한다. 이 사상은 과거에 악용된 적이 많았다. 예컨대 식민지 정복, 노예 제도, 대량 학살 등을 열정적으로 옹호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또 저 엄청난 전쟁들이 일어났던 것도 양쪽 편에서 자신들의 명분을 어떤 방식으로든 초월론적으로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P414

"오, 우리는 신의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얼마나 서로를 증오하고 있는가!" 뉴먼 추기경(John Henry Cardinal Newman)의 탄식이다. - P414

우리는 경험론을 더 진지하게 취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경험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윤리는 사회 전체를 통해 한 가지 코드의 원리들로 표현되기에 충분할 만큼 일관적으로 선호되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것은 정신 발달의 유전적 성향ㅡ계몽사상가들의 "도덕 감정(moral sentiments)"ㅡ에 의해 추동되는 것으로서 다양한 문화들을 가로질러 폭넓게 수렴되지만 역사적 상황에 따라 각각의 문화 속에서 명확한 형태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 코드들은 외부인들이 그 선악을 어떻게 판단하든지에 상관없이 어떤 문화가 번성하고 어떤 문화가 쇠퇴하는지를 규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 P414

경험론적 관점의 중요성은 그것이 객관적 지식을 강조한다는 점에 있다. 윤리적 코드의 성공 여부는 그것이 도덕 감정을 얼마나 현명하게 해석하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에 그 코드의 틀을 만드는 사람들은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정신이 어떻게 발달하는지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 P414

윤리의 성공은 또한 다른 행동들과 반대되는 특정한 행동들의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이것은 특히 도덕적으로 모호한 행동일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이를 위해서는 또한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과 통섭을 이루는 많은 지식들이 필요하게 된다. - P415

경험론의 주장은 도덕적 행동의 생물학적 근원을 탐색하고 그 물질적 기원이나 편향을 설명함으로써 이미 없어져 버린 과거의 윤리적 기준보다 더 현명하고 더 지속성 있는 윤리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한다는 것이다. - P415

초월론과 경험론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인간 영혼의 존재 유무를 두고 벌어졌던 투쟁의 21세기 버전이 될 것이다. 그 투쟁의 결과는 도덕 논증이 오늘날처럼 신학과 철학의 관용구 속에만 남아 있게 되거나 아니면 과학에 기반을 둔 분석으로 바뀌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어떻게 될지는 어떤 세계관이 올바른 것으로 판명되는가, 혹은 적어도 어떤 것이 올바르다고 널리 인정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 P415

과학적 방법의 핵심은 사실에 기반을 둔 논리를 엄격히 따름으로써 다른 입장에 서 있는 특정 명제들을 거부하는데 있다. - P418

신은 과학을 포섭하지만 과학은 신을 포섭하지 않는다. - P418

과학자들은 특정 주제에 대한 자료들을 모아서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을 세운다. 그들은 객관적 지식의 범위를 가능한 한 확장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어떤 가설은 받아들이고 다른 가설들은 기각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식은 단지 실재의 일부분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다. - P418

과학적 연구는 놀랄 만큼 다양한 인간의 정신적 경험 전체를 탐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지 않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이라는 관념은 모든 것, 즉 단지 측정 가능한 현상뿐 아니라 개인이 느끼고 잠재의식적으로 감각하는 현상들까지 설명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다. 여기에는 영적인 통로를 통해서만 소통될 수 있는 계시 현상도 포함된다. - P418

왜 모든 정신 경험이 양전자 방사 단층 촬영을 통해 눈에 보여야만 하는가? 과학과는 달리, 신의 관념은 우리가 탐색할 수 있는 물질세계 이상의 것에 관계된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 물질세계 바깥에 놓여 있는 것으로 향하도록 한다. 신앙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신비에 다다르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다. - P418

만약 자연법칙들보다 더 상위의 힘이 없다면 그 법칙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과학은 이러한 신학적 질문에 해답을 제시해 주지 못한다. 다른 방식으로 말해 보자. 왜 무(無)가 아니라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존재의 궁극적 의미는 인간의 이성적 이해를 넘어서 있고, 따라서 경험적 영역 바깥에 있다. - P419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심문관이 관찰했던 대로 신의 지배적 손길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용되고 자유는 불행으로 치닫는다. 이 경고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원래 계몽사상가들이 가졌던 권위와 다름없는 권위를 갖게 된다. - P419

"신성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을 너그럽게 봐 줘서는 안된다. 인간 사회를 결속시키는 약속, 계약, 맹세 등은 무신론자들에게는 그 어떤 지배력이나 존엄성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이 사유 속에서조차 없어져 버리면 모든 것이 해체되기 때문이다." _로크 - P419

17세기의 위대한 물리학자 중 한 명인 로버트 후크(Robert Hooke)는 새로 창립된 왕립 학회 (Royal Society)에 대한 짧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왕립 학회라는 본질적으로 계몽적인 조직의 목적은 신학, 형이상학, 도덕, 정치, 문법, 수사학, 논리학 등을 배제한 상태에서 자연물과 인공물(유용한 기술, 제조, 정비, 엔진, 실험을 통한 발명 등)을 개선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 P420

경험론의 극치인 다윈 진화론은 대담하게도 창조를 무작위적 변이와 주변 환경의 산물로 환원시켜 버린다. 공공연히 무신론자임을 자처했던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조차도 다윈주의에는 절망했다. 그는 다윈주의의 숙명론을 비난했으며 다윈주의가 아름다움과 지성, 명예, 열망 등을 맹목적으로 조합된 물질이라는 한갓 추상적 개념으로 강등시킨다고 힐난했다. 생명에 대한 이처럼 메마른 관점, 즉 인간이라는 존재를 뛰어난 지능을 가진 동물쯤으로 환원시키는 이 같은 견해야말로 나치즘이나 공산주의가 저지른 대량 학살적 참사를 정당화해 줬다고 생각한 저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도 이해할 만하다. - P420

시간이 지나고 또한 과학의 역사가 진행되면 새로운 증거가 지배적이던 이론을 뒤집어 왔다. - P420

유신론은 인간의 정신, 즉 감히 말하건대 불멸의 영혼을 설명할 때 강력한 힘을 가지는 이론이다. - P421

과학이 너무 과도한 주장을 하게 되면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신의 물리적 영역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신이 과학자에게 부여한 능력 덕분이다. 과학이 제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 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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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달 전에도 큰 선거가 하나 있었고, 그 이전에도 크고 작은 선거들이 있었다. 보통 이런 선거들이 있을 때마다 여러 방송사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각 후보들의 당선 확률을 예측하는 방송들을 많이 하곤 한다. 그 방송들을 보다보면 종종 듣게 되는 고정멘트 중 하나로 ˝신뢰수준은 95%±2.5% 입니다˝ 같은 것이 나온다.

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는 이 멘트의 실질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다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독자인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여기 나오는 신뢰수준이라는 것은 통계 분석 모델 자체의 정확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특정 후보가 당선될 확률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다만 위에 나오는 ± 2.5%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표본 통계상으로 당선될 것으로 예측한 후보가 실제로 당선 되었을 땐 +2.5%만큼 분석 모델의 정확도가 올라가지만, 그 반대의 경우 즉 표본 통계상 당선될 것으로 예측되었던 후보가 실제로는 낙선할 경우 -2.5%만큼 분석 모델의 정확도가 낮아진다는 말이다.

솔직히 오늘 이 본문을 읽기 전까지는 신뢰수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몰랐었는데, 오늘 독서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 의미를 정확히 알게 된 것 같다. 향후에 있을 선거 개표 방송들을 볼 때는 거기에 나오는 데이터들을 좀 더 제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비단 선거 개표 방송 뿐만아니라 통계분석이 들어가는 다른 어떤 데이터들을 볼 때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좀 더 잘 아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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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나오는 내용에서 개인적으로 뇌리에 박혔던 것 중 하나는 바로 데이터와 관련된 분야의 집합 구조에 대한 것이었다. 밑줄도 치긴 했지만 정리 차원에서 내가 이해한 방식대로 다시 한 번 적어보자면 빅데이터는 데이터 사이언스의 부분집합이고, 데이터 사이언스는 통계학의 부분집합이고, 통계학은 수학의 부분집합이라는 것이다.

내가 부분집합이라고 표현한 개념을 저자는 본문에서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논리구조와 관련이 있다. 보다 상위 개념에서 논리적인 비약과 같은 한계가 있다면 작은 범위 안에서는 아무리 논리적으로 맞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넓은 범위로 놓고 보면 어처구니 없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가능성 때문에 저자는 데이터 분석이 가지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가능하다면 데이터 분석 없이도 논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추는 게 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데이터 분석이라는 도구는 통찰력과 같은 것이 있다는 전제하에 세부적인 분석으로 들어가서 활용될 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이런 것은 2차적인 문제일 뿐 결국 기본적인 논리적 사고와 같은 본질적인 것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인 듯하다.


그리고 여기 별도로 자세히 밑줄치진 않았지만 본문에서는 기본적인 논리적 사고의 중요성을 독자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몇 가지 사례들이 등장한다. 모기의 개체 수와 모기약 판매량간의 관계 그리고 야구장 치킨 판매량과 팀 성적간의 관계 등이 나오는데, 사례를 통해 독자인 내가 느낀 핵심은 바로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두 변수 간의 추세에 비례 또는 반비례 관계가 있다는 것은 상관관계가 있을 수는 있어도 인과관계가 있다고 까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우리가 보통 고등학교 1학년 때 배우는 명제라는 개념에 대입하여 독자들에게 설명해주는데, 어떤 복잡한 수식이 없어도 3단 논법 같은 기본적인 논리에 근거하여 어떤 결론을 도출하고 그것들을 응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데이터 분석도 결국 기본적인 논리가 밑바탕에 깔려있지 않다면 그저 아무런 의미없는 숫자놀음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오늘 느낀 것을 나만의 문장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실제로는 어떤 그림의 일부분을 그리고 있을지라도 언제나 큰 그림을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려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드론 카메라가 하늘 위에서 지상을 전체적으로 내려다보며 조망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각자의 영역에서 그런 넓은 시야를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출구조사 결과 A 후보가 40%의 득표율로 당선이 예상됩니다. 이 출구 조사는 95%±2.5%의 신뢰도를 가집니다." 선거 때가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멘트다. 이 말의 의미는 A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제 당선되지 않은 결과를 포함하여 통계를 낼 경우는 92.5% (=95%-2.5%)의 가능성으로, 반대로 실제 당선된 결과를 포함하면 97.5%(=95%+2.5%)의 가능성으로 결과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 P67

신뢰 수준이 99%±0.5%라면 어떤가? 이 선거에서 A후보가 당선된다고 볼 수 있는가? 대답은 역시 "아니오"이다. 여전히 A후보는 당선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당선이 되었을 경우의 신뢰 수준은 99.5%(=99%+0.5%)이고, 당선이 되지 않을 경우의 신뢰 수준은 98.5%(=99%~0.5%)로 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 P67

통계의 신뢰 수준은 샘플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해, 샘플의 크기가 작으면 통계값이 사실이더라도 믿을수가 없다. 그 이유는 오차 범위에 따른 변화폭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 P67

어떤 사건의 결과 여부는 그 다음 사건(즉, 미래)의 예측(혹은 분석)에 대한 오차 범위만을 결정할 뿐이라는 것이다. - P69

예측한 결과가 맞았으니, 우리의 데이터 분석이 맞다는 식의 논리는 틀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데이터 분석(모델)의 타당성은 해당 사건(혹은 현상)이 실제로 일어났는지의 여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전혀! - P70

분석이라고 하는 것은 데이터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파악하는 것 - P72

데이터 사이의 관계를 분석해주는 수학 이론이 바로 회귀분석 Regression Analysis이다. 회귀분석은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사이의 관계를 추정하는 통계적 기법으로 이를 통해 데이터의 패턴을 이해하고 미랫값이나 결과를 예측하는 데 사용한다. - P72

제대로 된 분석을 위해서는 각 변수들에 대해 신뢰할 만한 그리고 분석에 필요한 충분한 데이터가 수집되어야 한다. - P73

데이터 분석을 시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각 데이터 변수들(x, y 같은 것들)간의 관계를 알려고 하는 것이지만, 데이터 변수들 사이의 실질적인 관계가 1차 함수 꼴(선형적)인지, 2차 함수 꼴인지 혹은 그 이상의 함수 꼴인지를 알지 못하면 정확한 데이터 분석을 할 수 없다 ...(중략)... 이것이 바로 데이터 분석이 가지는 태생적 한계다. - P75

데이터 분석만으로 현상을 보다 보면, 어이없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 P75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나오는 결과는 변수들 사이에 상관관계correlation를 알려주는 것이지, 인과관계 Causality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 P78

데이터만으로는 변수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분석할 수 없다. - P78

데이터 분석이 이러한 한계를 갖게 된 데에는 선형성과도 관계가 있다. 변수들의 관계에서 선형성이 보장될 경우 그에 대한 역함수가 항상 존재한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y = f(x)의 관계가 성립하면 x = g(y)를 만족하는 함수도 존재한다는 것이 된다. - P78

데이터 과학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데이터 분석은 이러한 선형성을 전제하고 동작한다. 하지만 실제 자연 현상이나 사회현상은 이러한 선형성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 P78

올바른 데이터 분석을 위해서는 변수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지 않고서도 상식처럼 알 수 있는 포인트는 놓쳐서 안 된다. - P78

변수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인사이트는 데이터 분석 능력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 우선하여 나온다 - P79

데이터들 사이의 인과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수학, 물리학에 대한 지속적인 훈련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어떤 현상에 대한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말빨"(치킨 판매량과 야구 경기력을 빅데이터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기사를 써낸 기자의 말발)이 아닌 "수학적 언어로 묘사(물리)하고, 풀어가는(수학) 훈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 P79

수학은 자연 현상의 문제를 풀어내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는 언어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영어(혹은 국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듯, 많은 과학자들은 수학을 이용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 P80

집합과 명제는 수Number가 아닌 어떤 것Something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인 동시에 누군가의 논리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가장 유용한 도구이다. - P80

절대적인 명제에서 값이 바뀌는 것은 "(기본 혹은 최초) 전제가 바뀌는" 경우 밖에 없다. - P83

집합 사이의 관계로 인해, 빅데이터(A)는 데이터 사이언스(B)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고, 데이터 사이언스는 통계학(C)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으며, 통계학은 수학(D)의 한계를 "절대로" 넘어설 수 없다 - P84

(수학 대비) 통계학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한계는 바로 데이터의 추출(샘플링)이다. 이러한 데이터 추출은 데이터 사이언스의 측정과도 연결된다. 통계학을 적용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데이터가 추출(혹은 측정)되어 수치 형태로 저장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화려한 통계 기법이 있다 하더라도 데이터를 추출할 수 없다면 통계학 적용이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통계학의 한계는 데이터 사이언스(B)에도 심지어 빅데이터(A)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아무리 데이터의 양이 많아지고 현란한 분석 기법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측정을 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이러한 집합들 사이의 관계는 데이터의 속성과 그 속성에 따라 결정되는 한계로 그대로 이어진다. - P85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사실상 거의 대부분) 현상에 대한 성찰이나 통찰은 "절대적"이라기 보다는 조건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훨씬 많다. 특히, 수학이나 과학으로 간략화하기 힘든 사회라든가 문화라든가 신념이라든가 철학 같은 경우에는 전제조건에 따라 성찰이나 통찰이 바뀔 가능성이 매우 높다. - P85

"서는 곳(조건)이 바뀌면 풍경이 바뀐다" - P86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조건과 관계없이 절대적으로 맞거나(참) 절대적으로 틀린(거짓) 명제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 P86

대부분의 명제들은 조건에 의해 답이 달라질 수 있다. - P86

데이터 사이언스(혹은 데이터 분석)를 하는 목적 가운데 하나가 데이터를 이용하여 어떠한 주장을 하고자 함에 있다. 데이터를 이용한 주장에서 반드시 참인 사실(혹은 명제 혹은 분석)을 두고 이를 거짓이라고 하는 명제 또한 참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데이터를 얼마나 화려하게 분석했는지와는 관계없이 무조건 잘못된 분석이 된다. - P88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어떤 이가 데이터를 이용한 주장을 한다고 했을 때, 반박 논리에 반드시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략)... (명제가) 반드시 참인 경우 혹은 반드시 거짓인 경우라면, 데이터의 진실성 여부와는 상관이 없게 된다. - P89

논리적으로 반드시 참(혹은 반드시 거짓)이 된다면 그걸로 수학적인 증명이 끝난 거다. 아무리 데이터 분석을 한다고 해도 더 이상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박은 아무리 데이터 사이언스 할아버지가 와도 절대 반박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데이터 사이언스가 날고 기어도 그 기본 전제인 수학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문제로 정의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분석할 것인지 고민할때는 이 같은 절대 진리를 위배하는 것은 아닌지 잘 따져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단순히 분석 기술을 잘 아는 것과는 다르다. - P89

빅데이터는 아무리 큰 데이터라 하더라도 데이터라는 모집합Superset에 속한 부분 집합Subset일 뿐이다. - P93

빅데이터는 데이터 사이언스나 전산학 혹은 통계학을 하는 입장에서 컴퓨터로도 다루기 까다로운 큰 데이터일 뿐이지 그 이상의 어떤 대단한 무엇도 아니다(빅데이터가 마치 모든 걸 해결해줄것인냥 생각할 필요가 없다). - P94

빅데이터의 가장 쉬운 정의는 현재 자신의)컴퓨팅 파워로 연산하는데 어려운 사이즈나 복잡도를 가지는 데이터를 의미한다. - P94

현재 시대에서 빅데이터로 분류되는 크기의 데이터들도 10년 뒤가 되면 일반 데이터로 분류될 수 있다 - P95

빅데이터는 현재의 컴퓨터 성능으로 다루기에 까다로운 큰 데이터일 뿐이다. 그리고 그 기준 또한 세월에 따라 변한다. 지금의 빅데이터가 불과 몇 년 뒤에는 그냥 개인 PC에서 처리 가능한 수준의 그렇고 그런 데이터가 될 수도 있다. - P96

논쟁에서 데이터가 조작되었다고 논리를 펴기 시작하면, 상대방 또한 같은 논리로 방어를 하기 때문에 오류라고 인정될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논쟁은 절대 끝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데이터를 두고 논쟁하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 P98

데이터를 가지고서 논쟁한다고 할 때, 남이 가져온 데이터가 조작된 것처럼 보인다면 필시 내가 가져온 데이터도 문제가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중략) 이를 좀 유식한 표현으로 비례적 등가Proportionally Equal라고 한다. 논쟁의 근거가 되는 상대의 데이터가 조작되었다고 말하려면, 내 데이터 또한 조작되었다고 말해야 하고, 내 데이터가 신빙성이 있다(조작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려면, 남이 제시한 데이터 또한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데이터 사이언스적 관점에서도 훨씬 이치에 맞는 일이다). - P99

내가 얻은 데이터가 아무리 높은 신뢰성을 가진다고 해서, 모든 데이터가 진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P99

수집된 모든 데이터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수집된 데이터가 진실을 밝히는데 충분하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 P99

데이터에 근거한 어떤 주장(논쟁)을 할 때는 어느 누구라도(어떤 경우에서도) 데이터의 신빙성에 대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나 뿐만 아니라 제 3자(경쟁사든)의 누구에게라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데이터 지상주의나 데이터만이 모든 것을 다 말해줄 거라는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특히 내가 수집한 데이터에 있어서는 더더욱). - P99

"데이터는 주장이나 사실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수 없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크게는 데이터 수집에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데이터 수집에서의 한계는 무엇보다 모집단의 수가 크면 클수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의미한다. - P101

표본 추출sampling (중략) 모집단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표본을 추출하고 그 데이터를 이용해 통계 지표를 구하는 방법 - P101

샘플링 기법은 상당히 유용하지만 추가적인 문제를 일으키는데, 바로 "데이터 수집의 객관성"이다. 이는 데이터 자체의 객관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즉, 데이터 자체의 객관성‘은 "데이터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데이터 수집의 객관성‘은 "샘플링 데이터가 객관적이다"를 의미한다. - P101

자신의 주장이 혹은 어떤 사실이 맞다는 것을 뒷받침하려고 데이터를 조작하는 경우, 이는 엄연한 범죄 행위가 되며 조작 사실이 발각되었을 때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반감을 사게된다. 하지만 표본 추출을 객관화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데이터 조작보다 표본의 객관화에 대해서 훨씬 관대하다. - P102

통계를 전공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중략) 미래 예측과 모집단 분석은 빅데이터가 아니라 빅빅빅빅데이터가 있다 하더라도 실현 불가능하다. 지금도 불가능하고, 앞으로도 불가능한 꿈일 뿐이다. - P103

치약의 주성분에 속하는 불소는 기체화(혹은 분자화)해서 흡입할 경우 아주 극소량이라도 사람을 죽게 (한다) - P106

데이터가 거짓 없이 사실을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수집되었다 하더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혹은 듣는 사람의 타성(이라 쓰고 "느낌"이라 읽는다)에 따라 그 해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는 데이터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데이터를 사용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성의 문제이다. - P106

요즘 세상은 감성을 중요시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한다. 다만 필자의 관점에서 봤을 땐,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있어서 논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물리학적 소양)과 그렇게 바라본 세상을 논리에 맞게 풀어가는 능력(수학적 소양)(이 둘을 합쳐서 "과학적 소양"이라 칭하기도 한다) 또한 중요하다. 그래서 이러한 과학적 소양이 빠진 인문학은 진짜 인문학이 아니며 이런 사회는 구성원 스스로를 합리적이고 똑똑한 존재인양 착각하게 만든다. - P107

우리가 빅데이터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도 많은 양의 데이터를 통해서 시장을 예측하고, 경제를 예측하고, 소비자의 성향을 예측해서 더 정확한 미래 전략을 구축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슈에 대한 인과관계를 데이터를 이용해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108

빅데이터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데이터 과학에 대한 기본 지식(통계학, 컴퓨터과학, 과학적 소양, 물리학적 소양 등)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빅데이터는 단순히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 P109

데이터 과학은 데이터를 다루는 학문이다. 이러한 정량화(혹은 수치화)된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사용되는 학문이 바로 통계학statistics이다. 따라서 데이터 과학에서 사용하는 기법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용되는 분석 기법들은 통계학의 특성을 벗어날 수 없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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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8-13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이 밑줄로 뽑아 주신 글 내용을 예전에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5-08-13 17:31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군요 저는 그냥 신뢰수준이라는 용어만 예전에 한 번 들어보고 그 의미에 대해선 정확히 몰랐었는데 오늘 독서를 통해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잘 몰랐던 것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것도 독서의 유익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놀라움과 재치 그리고 독창성 뒤에는 언제나 은유가 숨어 있다‘ 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는데, 오늘은 이 말에 대한 하나의 예시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미국의 시인인 엘리자베스 스파이어스Elizabeth Spires 라는 사람이 어떤 작품에서 남긴 글인데, 글 속 상황 자체는 어느 한 수녀가 초등학생들에게 하는 말이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세부적인 내용보다도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은유를 어떤 식으로 하는지를 느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시에 나온 글을 보면 먼저 영원이라는 세월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그냥 단순히 사전적인 딱딱한 의미가 아니라 어떤 스토리를 상상하게 함으로써 영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긴 것인지를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독자인 나는 이러한 표현력이 바로 과학과는 다른 예술만이 가진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옥이라는 것을 표현할 때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불구덩이나 화염에 휩싸인 곳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오늘 나온 예시에서는 지옥이라는 동일한 단어를 ‘눈 덮인 툰드라‘라는 아주 차가운 느낌으로 표현함으로써 똑같은 단어도 표현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예술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과학에서 추구하는 어떤 명확함이나 정확함과는 그 성격이 좀 다른 것으로써 뭔가 창조적이고 자유롭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저 길 잃은 영혼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들의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할까? 영원히, 아주 영원히란다. 그렇다면 열한 살 난 너희들이 (그녀는 잠시 생각한다.)도대체 영원이라는 세월이 얼마나 긴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니? 자, 단단한 암벽으로 된 세계에 있는 가장 커다란 산을 상상해 보렴. 100년에 한 번씩 한 마리 새가 지나가면서 그 날개의 끄트머리로 산꼭대기를 가볍게 스치고 간다고 해 보자. 영원이란 그 새가 계속해서 스치고 날아가 마침내 산이 완전히 닳아 없어지게 될 때까지 걸릴 만한 시간이란다. 이제 나는 지옥과 영원을 불길이나 화염하고 연결하지 않는단다. 대신 뭔가 춥고 불변하는 것, 가령 풍경 위로 음침한 장막을 치는 거대한 화강암산 그늘 아래 있는, 눈 덮인 툰드라와 연결지을 거야. - P385

인간 정신의 창조적 능력에 대해 우리는 진정 무엇을 알 수 있을까? 그것의 물리적 기초에 대한 설명은 과학과 인문학의 접점에서 발견될 것이다. 과학의 편에서 제시할 수 있는 한 가지 전제는 우선, 호모 사피엔스가 생명과 관련 있는 풍부한 환경 속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탄생한 하나의 생물학적 종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전제로부터 나오는 결론은 인간 뇌에 영향을 주는 후성 규칙들이 인류 진화사에서 구석기인의 필요에 따라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 P385

문화는 수많은 세대가 바뀌는 동안 서로 연관되어 있고 서로를 강화해 주던 무수한 인간 정신들의 산물로서 마치 성장하는 유기체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우주 속으로 뻗어 나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문화는 모든 방향으로 똑같이 성장하지는 않는다. - P385

과학 혁명 전에는 모든 문화들이 원초적 상태에 있는 자기 문화 특유의 경험적 지식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물론 문화는 풍토, 수자원 그리고 식량 자원 등의 지역적 영향 아래 진화했다. 하지만 이보다 덜 분명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문화는 근본적으로 인간 본성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 P386

인간 본성의 후성 규칙들이 혁신과 학습 그리고 선택을 편향시킨다. 이 규칙들은 마음의 발달을 특정한 방향으로 인도하는 중력 중심이다. 바로 이 중심에 도달한 예술가, 작곡가, 그리고 작가들은 수세기 동안 원형, 즉 독창적인 예술 작품 속에 가장 예측 가능하게 표현되는 테마들을 창조해 냈다. - P386

비록 원형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식별 가능하다 하더라도 일반적 특징들을 나열함으로써 그것들을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오히려 원형은 사례를 떠올릴 때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수화를 통한 정의라고 불리는 이 방법은 기초적인 생물학 분류 작업에서 잘 쓰인다. 심지어는 한 범주로서의 종이 본질적 속성을 갖고 있는지 없는지가 논쟁거리일 때도 마찬가지이다. 신화나 소설에서는 한 스무 개 정도의 매우 주관적인 범주로 대부분의 원형들을 포괄한다. - P386

태초에 인간은 신들이 창조하거나 거인들의 짝짓기를 통해 탄생되거나 타이탄들의 충돌로 만들어졌다. 어느 경우든 그들은 세계의 중심에서 특별한 존재로서 삶을 시작했다. - P386

부족은 아르카디아든, 비밀의 계곡이든, 아니면 신세계든 상관없이 약속의 땅으로 이주한다. - P386

부족은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전투에서 악의 세력들과 마주친다. 그리고 강적들과 싸워 이긴다. - P387

영웅이 지옥으로 내려가거나 광야로 추방되거나 머나먼 땅에서 고난을 겪는다. 그는 온갖 풍파를 헤치며 기나긴 모험을 하다가 결국 돌아와 자신의 운명을 완성한다. - P387

세계가 종말을 맞는다. 홍수, 불, 외계의 정복자 또는 파괴신들에 의해 전면적으로 파괴되지만 영웅적인 일군의 생존자들에 의해 다시 복구된다. - P387

위대한 힘의 원천이 생명의 나무, 생명의 강, 철학자의 돌, 신성한 주문, 금지된 의식, 비밀스러운 공식 등에서 발견된다. - P387

보살피는 여성이 위대한 여신, 위대한 어머니, 신성한 여성, 신성한 여왕, 어머니 대지, 그리고 가이아 등으로 신격화된다. - P387

예지자는 특별한 지식과 마음의 능력을 소유할 가격이 있는 사람이다. 예지자는 현명한 남자 노인 혹은 여자 노인이며 성인, 마술사, 위대한 샤먼일 수도 있다. - P387

처녀는 순수의 능력을 가지며 신성한 힘의 통로이며 어떤 상황이 와도 무조건 보호받아야 하는데 신이나 악마와 같은 존재를 달래기위해 바쳐야 할 때도 있다. - P387

여성의 성적 자각은 유니콘, 온화한 괴물, 힘센 이방인 또는 마법의 키스를 통해 일어난다. - P387

트릭스터(Trickster, 원시 민족의 신화에 나와 주술 장난 등으로 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초자연적 존재.)가 나타나 기존의 질서를 교란시키고 술의 신, 광란의 왕, 회춘의 신, 익살의 왕, 광대의 신, 영리한 바보 등을 해방시킨다. - P387

괴물이 인류를 위협한다. 괴물은 뱀 악마(지옥 바닥에서 발버둥치는 사탄), 용, 고르곤, 골렘, 뱀파이어 등으로 나타난다. - P387

만약 예술이 정신적 발달의 선천성 규칙들의 조종을 받는 것이라면 그것은 전통적 역사뿐 아니라 유전적 진화의 최종 산물이기도 하다. - P388

유전적 지침 (genetic guide)이 단순히 부산물(부수 현상)이었을까, 아니면 생존과 번식을 직접적으로 향상시켰던 적응(adaptation)이었을까? 그런데 만일 그것이 적응이었다면 정확히 어떤 측면에서 어떤 이득이 되었단 말인가? - P388

인간이라는 종이 가지는 가장 특징적인 속성들로는 고도의 지성, 언어, 문화 그리고 장기적인 사회 계약에 대한 의존성 등이 있다. 이런 속성 집합들로 인해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는 경쟁하던 다른 모든 동물 종들보다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속성을 얻게 되면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예를 들어 자아 인식의 충격, 개인적 존재의 유한성 그리고 환경의 혼돈 등이 그것이다. - P388

인류가 낙원에서 추방된 것은 단지 신에 대한 불복종 때문이 아니라 이런 것들(자아 인식의 충격, 개인적 존재의 유한성, 환경의 혼돈)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심리적 추방감으로 인해 고생하는 유일한 종이다. - P388

사실 동물들도 어느 정도는 특수화된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본능의 지배를 받으며 환경이 주는 단순한 자극에서 촉발된 복잡한 행동 패턴들을 보인다. - P388

대형 유인원은 자기 인식(self-recognition)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자기 자신의 탄생과 죽음 또는 현존의 의미에 대해 반성할 수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우주의 복잡성 따위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도 없다. 유인원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은 자신의 생명이 의존하고 있는 환경에는 효과적으로 적응하지만 나머지 부분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 P389

예술은 지성이 야기한 혼돈에 질서를 부과할 필요성 때문에 탄생했다. - P389

정신이 급속히 발전하기 전에 살았던 인류 이전의 조상들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진화했다. 그들은 생존과 번식 성공을 뒷받침하는 본능적 반응에 따라 살아갔다. 호모 속 수준의 지성이 획득되었을 때 그 지성은 해발인 (releaser cues, 동물에 특정 행동을 유발시키는 소리, 냄새, 몸짓, 색채 등의 자극을 일컫는다.) 이상으로 정보를 잘 가공해 냄으로써 본능적 반응을 확장시켰다. - P389

지성은 융통성 있는 반응들을 이끌어 냈으며 현재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나 먼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정신을 만들어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하는 뇌는 일반 지성 (general intelligence)만으로 전환될 수는 없었다. 뇌는 만능 컴퓨터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 P389

진화가 진행되는 동안 생존과 번식의 동물적 본능은 인간 본성의 후성적 알고리듬(epigenetic algorithm)으로 전환되어 갔다. 그리고 언어와 성적 행동을 비롯한 정신적 발달 과정들이 빠르게 획득되기 위해서는 이 선천성 프로그램들이 제자리를 잡을 필요가 있었다. 만일 그 알고리듬들이 제거되었다면 그 좋은 멸종에 직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방향으로 열려있는 일반화된 학습에 의해 경험을 추려내기에 한 개체의 삶은 너무 짧기 때문이다. - P389

알고리듬들이 날림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은 적절하게 작동했지만 아주 뛰어나게 잘 작동하지는 못했다. 자연선택의 느린 속도 때문에ㅡ새로운 유전자들이 낡을 것들을 대체하는 데에는 수만 세대가 걸린다.ㅡ인간의 유전은 고도의 지성이 열어 보인 새롭고 우연한 수많은 가능성들에 대처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알고리듬이 형성될 수는 있었으나 모든 가능한 사건들에 대해 자동적 · 최적으로 반응하기에 충분할 만큼 정교하지도 수적으로 많지도 않았다. 이런 간극을 메운 것이 예술이다. - P390

초창기 인간들은 마술을 통해 환경의 풍요로움과 연대의 힘 그리고 생존과 번식에 가장 중요했던 여타 힘들을 표현하고 통제하고자 예술을 창안했다. 이런 힘들은 새롭게 모사된 (simulated) 실재 속에서 의례화되고 표현될 수 있는데 예술은 이를 위한 수단이었다. - P390

예술은 인간의 본성 중에서 감정의 안내를 받는 정신 발달의 후성 규칙들에 충실함으로써 일관성을 끌어냈다. 그것은 가장 호소력 있는 언어, 이미지, 리듬 등을 선택함으로써 그 규칙들을 따랐다. 예술은 이러한 원시적 기능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으며 그 옛날과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 P390

예술의 질은 그것의 인간다움(humanness), 즉 그것이 인간 본성을 얼마나 정확하게 고수하고 있는가에 따라 평가된다. 이것은 예술의 참됨과 아름다움에 관해 논할 때 거의 압도적으로 의미하는 바이다. - P390

동굴 벽면에 동물을 그려 놓은 다음 그것을 죽이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면 사냥에 더 쉽게 성공할 것이라는 주술적 믿음 - P392

예술은 마술이다. 이 말은 근대적 울림을 갖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종종 듣고 있는 바 예술의 목적은 매혹이기 때문이다. - P392

예술가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는 없겠지만, 그들은 새로운 의식(儀式)들의 목적에 맞춰 그림들을 복제함으로써 그 이미지들을 거듭나게 하려 했으리라. 그 의식들은 초기 형태의 음악과 춤을 동반한 본격적인 공식 의례(ceremony)의 일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 P393

상징과 이미지를 조작하면 자신들이 표상하고 있는 대상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 - P393

불안과 위협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력한 힘에 다다르려고 한다. 예술과 공감 주술을 연결시키는 것은 이런 시도를 위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식 중의 하나다. - P393

많은 문화권에서 수렵인들은 자신들의 용맹무쌍함을 기념하기 위해 해골이나 발톱, 짐승 가죽 등을 전리품으로 챙기고 모으는 경향이 있다. - P394

토템 신앙에 등장하는 동물들에게는 초자연적인 성질이 부여되며 존경의 대상이 되면서 그 부족의 성원들을 결속시키는 상징으로 쓰인다. 토템의 영혼들은 승리했을 때에는 축하 의식을 집전하고 실패했을 때에는 사람들을 보살핀다. 그들은 개개인에게 더 위대한 어떤 존재, 즉 자신이 떠받들고 있는 어떤 미지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 P395

토템들은 분쟁을 중재하고 때로는 부족 간의 의견 충돌을 무마한다. 그들은 진정한 힘의 원천이다. 빙하기 예술 속에 흔히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존재가 바로 수사슴의 뿔과 사자(혹은 새)의 머리로 자신의 머리를 장식한 샤먼들이라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동물 모습을 한 신들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고대에는 비옥했으나 지금은 일부가 사막으로 변한 중-근동 지역으로 인간이 처음으로 농경을 시작했다는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페르시아 만에 이르는 반달형 지대)과 중앙아메리카에 있었던 고대 문명들을 지배했다는 사실은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 P395

자신들이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성질들을 반영하는 토템으로서 특정 종의 동물을 채택하는 일은 수렵-채집 사회뿐만 아니라 고도의 문명을 가진 사회와 국가에서도 흔한 일이다. 가령, 미국의 미식 축구 팬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던 구석기 부족을 이제야 발견한 듯이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와 마이애미 ‘돌핀스‘ 그리고 시카고 ‘베어스‘에 열광한다. - P395

예술의 생물학적 기원 가설은 후성 규칙들이 실재하는지, 그리고 그 규칙들이 만들어 내는 원형들이 어떤 것인지에 의존한 하나의 작업가설(working hypothesis)이다. 이것은 자연과학의 정신 속에서 구성되어왔다. 즉 이 가설은 입증이나 반증이 가능하며 생물학의 다른 부분들과 통섭적이다. - P395

이 가설(작업가설working hypothesis)은 어떤 식으로 검증되어야 할까? 한 가지 방법은 예술 속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들과 그 밑바탕에 놓인 후성규칙들을 진화론적 입장에서 예측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준보편적 주제들이 진실로 존재하며 대부분의 소설과 시각 예술의 발판이 되고 있음을 안다. 이 주제와 규칙의 일반성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가 싱가포르에서도 흥행하고 노벨 문학상이 유럽 인뿐 아니라 아시아인이나 아프리카 인에게도 수여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 이런 현상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왜 정신 발달 과정이 특정 이미지와 내러티브에 그토록 한결같이 집착하는지에 관한 물음들이다. - P396

진화론은 기저의 후성 규칙들을 예측하고 유전 역사 속에서 그 기원을 이해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 P396

생물학 이론을 예술에 연관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반응들은 부모와 자식 간의 결속, 가족의 협력과 갈등 그리고 세력권 다툼과 방어 등이다. - P396

예술에 영향을 미치는 후성 규칙들을 발견해 내는 또 다른 방법은 신경과학과 인지심리학적 기법을 통해 그 규칙들을 직접 검사해 보는 방법이다. - P396

알파파의 탈동기화(desynchronization, 알파파는 눈을 떴을 때나 다른 감각 기관을 자극했을 때 또는 정신 활동이 이루어질 때에는 소실된다. 이와 같은 소실을 알파파 차단(alpha-blocking)이라고 한다. 알파파 차단 때에는 14~30 헤르츠의 높은 주파수(평균 20헤르츠)의 작은 진폭을 가진 파(베타파)가 출현한다. 이 경우 뇌파의 파형은 불규칙하고 기록 부위에 따라 진폭, 주파수, 위상이 크게 다르다. 이것을 뇌파의 탈동기화라고 한다.) - P397

알파파의 탈동기화가 심하면 심할수록 피실험자가 주관적으로 보고하는 심리적 각성이 더 컸다. - P397

디자인에서 요소들이 중복(redundancy)된 부분이 약 20퍼센트 정도였을 때 뇌 반응이 가파른 절정에 이른다 ...(중략)... 이 정도는 간단한 미로, 두 바퀴를 완전히 도는 대수적 나선 또는 비대칭적 가지들의 교차된 모습 등에서 다양하게 발견되는 것에 상응하는 양이다. 20퍼센트의 중복이 주는 효과는 선천적인 것으로 보인다. 신생아들도 이와 동일한 양의 질서로 이루어진 선들을 가장 오랫동안 응시한다. - P397

이러한 후성 규칙들이 미학이나 예술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 관련성은 생각보다 훨씬 더 밀접하다. (벨기에 심리학자인 게르다) 스메츠(Gerda Smets)가 발견한, 고도의 각성을 일으키는 그림들은 그것이 설사 컴퓨터가 만든 형상이라 해도, 건물 벽에 있는 띠 모양, 격자 모양, 표어, 책표지 구석의 장식, 깃발 디자인 등 전 세계적으로 애용되는 추상 디자인들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이것은 또한 고대 이집트와 마야 문명의 문자들뿐 아니라 중국, 일본, 타이, 타밀, 벵갈을 위시한 다양한 기원의 아시아 민족들의 상형 문자들과도 복잡성과 질서 측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게다가 몬드리안의 작품들처럼 최고의 근대 추상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들도 이와 거의 유사한 최적 수준의 질서를 가지고 있다. 비록 예술과 신경생물학의 이와 같은 관련성이 보잘것없는 것이라 해도 이것은 심미적 본능을 밝히는 데 좋은 단서가 된다. - 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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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술의 지배적 사조는 주기적인 진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사조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는 얘기를 했었다.

오늘은 예술의 사조 중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하는데, 이 포스트모더니스트들조차도 자신들의 사조가 계속 지속될 수는 없음을 자각하고 있다.

문득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게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일정기간 흥하고 나면 어느 순간 사그러드는 것은 비단 예술 분야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자연의 이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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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밑줄 친 내용을 누락해서 관련 내용을 추가합니다.

우리는 외견상 서로 달라 보이는 대상들을 가지고 시작한다. 서로 비교하여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유비(類比)해 봄으로써 어떤 패턴을 찾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멀찍이 떼어 놓고 변형, 사상(寫象), 은유를 이용하여 추상적 개념과 법칙 그리고 체계 등을 창조해 낸다. 이렇게 하여 수학은 더욱 추상적이고 강력해진다. 이것은 또한 음악이 작은 부분들을 통해 거대한 하나의 구조를 이루면서 힘을 얻어 가는 방식이다. 이런 식의 이해 방법은 대부분의 서구적 사고의 바탕에 놓여 있다. 우리는 보편적 지식을 추구하지만 그것의 힘은 개별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공통 원리들을 사용하지만 뚜렷하게 구별되는 세부 사실들을 드러낸다. _에드워드 로드스타인(Edward Rothstein)
p.379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텍스트가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찾고 저자의 사회적 구성물로 텍스트의 전모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 P373

"예술가와 시인은 환경 위기의 시대에도 자연의 구속력을 간과하고 과학을 무시하며 예술의 형식과 규율, 즉 그들 자신의 문화가 지닌 무속적 전통을 포기해야만 한다. 또한 보편적 인간 본성이라는 이념을 단념하고 숨막힐 듯한 구속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며 희망을 비롯하여 우리를 고양시키는 감정들에 대해 격노해야 한다." _프레더릭 터너(Frederick Turner) - P373

"호메로스, 단테, 레오나르도 다빈치, 셰익스피어, 베토벤, 괴테의 전통은 아직 죽지 않았다. 이 전통은 포스트모던 콘크리트의 균열 한가운데에서 자라나고 있다." _프레더릭 터너(Frederick Turner) - P373

우리가 고전을 부러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성취한 듯 보이는 그 평형 상태(equilibrium) 때문이다. - P373

"소포클레스(Sophocles)와 베르길리우스(Vergilius)의 작품에 나타나는 규칙성과 논리는 섬세함이나 격렬함 모두를 배제하지 않는다. 또한 플로베르가 할 수 있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것, 즉 사물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워즈워스나 셸리가 잘 묘사하던, 신비롭고 유동적이고 감상적이며 모호한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 P373

예술과 비평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힘인 아폴론적 충동과 디오니소스적 충동의 대립, 즉 차가운 이성과 열정적 방종의 대립이 과연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것은 경험적 문제일 것이고 그 대답은 선천적 인간 본성의 존재 유무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축적되어온 증거로 보아 의심의 여지는 거의 없다. 인간 본성은 존재하며 그것은 매우 심층적이고 구조적이다. 만일 이 정도만이라도 인정한다면 과학과 예술의 해석 간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더 명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즉 해석은 다중의 차원들, 즉 역사, 전기, 언어, 미적 판단 등의 여러 차원들에서 진행되며 인간 정신의 물질적 과정은 그 차원들의 기저에 놓여 있다. - P374

이론적으로 편향된 과거의 비평가들은 많은 큰 길들로 한 번 가 보다가 정신분석학과 포스트모더니즘적 유아론 같은 명패가 붙은 밀실로 들어가버렸다.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있어 별다른 과학적 도움없이 직관에만 의존했던 이들의 접근법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건전한 과학 지식에 기반을 둔 나침반을 갖지 못한 채 그들은 정처 없이 헤매다가 결국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 P374

만일 뇌과학, 심리학, 진화생물학의 통섭적 연구를 통해 뇌의 기능들이 도표로 정리되면 그 부산물로서 예술에 대한 영속적 이론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와같은 과정을 통해 창조적 정신을 이해하려면 과학자와 인문학자 간의 공동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 P374

공동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는 예술의 혁신(innovation)을 복잡한 신경 회로와 신경 전달 물질의 방출에 기반한 구체적인 생물학적 과정이라고 결론내리기 쉽다. 그것은 만능 발생자(all-purpose generator)에 의한 상징의 유출도 아니고 천상의 행위자에 의한 마법도 아니다. - P374

예술에서 혁신의 기원을 통찰하는 것은 우리가 그 창조물을 해석하는 방식과 커다란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 P374

자연과학은 창조적 과정 자체의 몇몇 요소들을 포함하여 마음에 대한 그림을 하나 그려 내기 시작했다. 비록 자연과학이 아직은 그 궁극적 목표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종국에는 예술에 대한 해석을 강화시켜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P375

인류가 진화하는 동안 자연선택은 혁신 과정들을 창조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있었다. 수천 세대라는 시간은 유전적 변화가 뇌와 감각계, 내분비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다. 그동안에 생긴 생각과 행동의 개인차가 생존과 번식 성공의 개인차를 야기했다. - P375

변이는 어느 정도는 유전적이었다. 즉 당시의 개인들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문화로부터 무엇을 배우는가뿐만 아니라 어떻게 배우고 반응하는지, 즉 학습의 유전적 성향도 각기 달랐다. 이 성향은 통계적으로 특별한 방식을 통해 드러난다. 그 결과로서 유전적 진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 P376

특정 유전자 집합을 선택적으로 선호하는 자연선택은 후성 규칙들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 규칙들은 인간 본성을 구성하는 정신 발달의 유전 규칙들이다. 내가 지금까지 기술했던 가장 오래된 후성 규칙으로는 근친상간을 억제하는 웨스터마크 효과와 뱀에 대한 자연스러운 혐오가 있다. 한편 10만년 남짓의 역사를 가진 더 최근의 후성 규칙으로는 아이들의 언어 습득 프로그램이 있으며 아마도 예술의 창조적 과정들 일부도 포함될 것이다. - P376

보편적이거나 준보편적인 것들이 문화가 진화하는 동안에 출현한다. 기본적인 후성 규칙들 사이에 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특정 생각과 행동은 그것이 야기하는 감정적 반응에 있어서 그리고 그것이 몽상이나 창조적 사고를 방해하는 빈도에 있어서 다른 생각과 행동에 비해 더 효과적이다. 그것은 예술의 지배적 테마를 이루는 핵심 내러티브이자 반복되는 개념인 원형을 창안하는 방향으로 문화의 진화를 편향시킨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원형의 사례로는 웨스터마크 효과를 위반했던 오이디푸스의 비극과 신화 및 종교에 등장하는 뱀의 이미지들을 들 수있다. - P376

예술은 원래 특정 형식과 주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다른 점에서는 자유롭게 구축된다. 원형들은 예술뿐만 아니라 평범한 의사소통을 구성하기도 하는 수많은 은유를 생산한다. 뇌가 학습하는 동안 뇌의 여러 영역이 폭넓게 활성화되어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는 은유는 창조적 사고를 구축하는 벽돌 역할을 한다. 은유는 서로 다른 영역의 기억들을 연관시키고 함께 강화시킨다. - P377

총체적으로 구조화되어 있고 강력한 힘을 가진 인간 본성에 대한 점증하는 증거들ㅡ주로 마음의 발달에 집중되고 있는 증거들ㅡ은 예술에 대한 보다 전통적인 견해에 호의적이다. - P377

예술은 역사적 정황 속에 등장하는 엉뚱한 천재나 특이한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술적 영감의 뿌리는 인간 뇌의 유전적 기원까지 심층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또 그렇기에 항구적일 수 있는 것이다. - P377

생물학적 이해가 예술에 대한 학문적 해석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어떤 과학도 결코 창조적 예술을 가둘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심미적이고 정서적인 반응을 절묘하게 강화함으로써 인간 경험의 복잡한 세부 사실들을 전달하는 행위가 바로 예술의 독점적인 역할이기 때문이다. - P377

예술 작품은 왜 그런지에 대해 설명하려는 의도 없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느낌을 직접 전달한다. 예술을 정의하는 이 같은 속성 탓에 예술은 과학과 대조를 이룬다. - P378

과학은 원리를 창출한 다음 그것을 사용해 인간이라는 생물 종 특유의 속성을 정의하지만, 예술은 그 속성을 섬세하게 구체화하고 인상적인 방식으로 명시한다. - P378

항구적인 것으로 증명된 예술 작품들은 하나같이 강한 인본주의적 냄새를 풍긴다. 개인의 상상력 속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인간의 진화가 부여한 보편적인 것을 건드린다. - P378

판타지의 세계를 상상할 때조차 예술 작품들은 인간성의 기원에 그 닻을 내린다. 판타지의 거장인 커트 보니것 주니어 (Kurt Vonnegut, Jr., 1922년~ 미국의 유명한 작가로 과학 소설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을 다수 썼다.)가 지적했듯이 예술은 우리가 거기에 속해 있든 아니든 간에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둔다. - P378

뇌의 유전적 진화는 몇몇 특별한 능력을 예술에 부여했다. 첫 번째는 은유를 쉽게 만들어 내 그것을 맥락들 사이에서 유동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능력이다. - P378

플롯(plot)이란 처음에는 물리적인 자리이자 건물 설계도를 의미했는데, 나중에는 무대 감독의 플롯 내지 대체적 윤곽이 되고, 결국은 연기나 스토리의 윤곽이라는 의미로 변했다. - P378

16세기에 프런티스피스(frontispiece)라는 말은 건물의 정면 장식이었는데, 곧 건물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는 책의 표지를 뜻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최종적으로는 책의 속표지 앞에 나오는 그림을 일컫게 되었다. - P378

스탠자(Stanza)는 이탈리아 어에서 공용의 방이나 휴식 공간을 의미하는 말인데 영어에 와서는 보통 4행 이상의 각운이 있는 시구로서 다른 시구와 구별되는 연(聯)의 의미로 전용되었다. - P378

프로그램화된 뇌는 예술과 과학에서 모두 우아함을 추구한다. 여기서 우아함은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 세부 사실들로부터 군더더기없이 어떤 패턴을 끄집어내 기술하는 것을 뜻한다. - P379

누군가에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고 하자. 그는 잘 숙지하고 있는 다른 어떤 것과 이것이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우연히 주목하게 된다. 그는 그것들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그 전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이해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그의 이해가 적절한 것으로 판명되고, 다른 어떤 사람도 그 전에는 그와 같은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음이 밝혀진다면, 그는 자신의 사유가 진정으로 창조적이었음을 주장할수 있을 것이다. _유카와 히데키 - P380

예술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실재 세계에서 출발한다. 그 다음에 예술은 가능한 모든 세계들(possible worlds)에 다다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세계들(conceivable worlds)에 도달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예술은 인간의 현존을 우주 속의 만물 위에 투사한다. 은유의 힘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예술은 우리가 ‘피카소 효과‘라고 부를 만한 것에서 시작하게 될 것이다. - P380

"만약 인간이 자신의 이미지들을 어쩌다 창조하게 되었다면, 이것은 그가 그 이미지를 그의 주변에서 모두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뼈, 동굴 벽의 불규칙한 표면 그리고 한 그루나무에서 그 이미지들을 보았다. 어떤 형태는 여자를 암시하고, 다른 것은 들소를 연상시켰으며, 또 어떤 것은 악마의 머리와 비슷했다." _줄러 헐러스 브러서이 (Gyula Halasz Brassai) - P380

예술은 그레고리 베이트슨(Gregory Bateson)과 타일러 볼크(Tyler Volk)가 메타패턴 (metapattems)이라고 부른 것들, 즉 자연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 복잡한 사물들을식별하는 데 좋은 단서가 되었던 원, 구, 테두리, 중심점, 두 개의 선, 층, 고리, 꺾임점 등의 기하학적 형상들을 지각함으로써 나타났다. - P380

이미지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목탄으로 암벽에 선을 그리거나 돌, 뼈, 나무 등에 새김으로써 그것을 재창조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태동기에는 외부 자연을 자극하여 그것을 결국 인간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 P381

예술사가인 빈센트 스컬리(VincentScully)는 선사 시대의 사람들이 산과 강 그리고 동물을 닮은 신성한 건물을 지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환경의 힘에 의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 P381

스컬리의 견해에 따르면 신대륙 발견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장소는 중앙멕시코의 테오티후아칸(Teotihuacan)이다. "거기서 ‘죽은 자의 거리‘는 ‘달의 신전‘
에까지 바로 연결되고 이 신전 뒤에는 테난(돌의 여신)이라고 불리는 산이 솟아 있다. 몇 개의 흠이 있는 이 산은 기본적으로 피라미드 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 중심은 계단 모양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신전은 산 모양을 본떴는데, 그 모양을 강렬하고 명확하고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만듦으로써 마치 산에서 아래 평지로 물을 끌어내리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 P381

모방하라. 기하학적으로 만들어라. 그리고 강렬하게 만들어라. 이세 가지는 예술 속에 고동치는 맥박을 뭉뚱그리기에 적합한 공식이다. 혁신가는 이것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감정적, 심미적으로 강한 힘을 가진 이미지들을 자연에서 골라낸다. - P381

온갖 기법들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예술가들은 이번에는 자신의 느낌들을 자연에 투사하기 시작했다. 건축이나 시각 예술 쪽의 사람들은 이상화된 신체 형상과 이것을 모델로 한 신의 이미지에 기반을 두고 갖가지 디자인을 창조했다. 기원(祈願), 경외, 사랑, 슬픔, 승리, 위엄 등을 비롯한 인간 정신의 정서적 구축물들이 추상적 이미지들로 포착되었으며 생물적, 무생물적 풍경에 그것들이 부착되었다. - P381

예술가는 자신들이 선택한 자세한 부분에는 자유분방하지만 선천적인 심미적 보편자에는 대개 순응하는 편이다. - P382

현대의 뇌파 분석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나무 수관부의 반복적인 그물 구조 같은 형태에 가장 활발하게 반응한다. 또한 나무와 집 주변의 텅 빈 공간과 물은 최근 심리학에 따르면 가능한 모든 배치들 중에서 선천적으로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 P382

몬드리안은 순수한 추상 디자인의 경지에 다다랐으며 이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추앙한다. 그는 순수 추상을 일컬어 "인간적인 것도, 특수한 것도 아닌 무엇"이라고 표현했다. 이런의미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을 해방시켰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지는 못했다. 사실 그 자신도 그런 자유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예술은 인간의 미적 감각이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기본 규칙들에 따라 정의된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있다. - P383

우리가 몬드리안 예술의 진화에서 본 것은 단지 서구 문화의 국지적인 산물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이와 동일한 과정이 아시아의 예술과 문학의 합류점에서도 작동하고 있었다. - P383

중국의 한자(漢字)는 그것이 표상하고 있는 대상들을 닮은 상형 문자로서 3,000여 년 전에 창안되었다. 고대 중국 문헌에 쓰인 해와 달, 산과 강, 인간과 동물, 집과 기구 같은 상형 문자들은 오늘날에도 바로 알아볼 수 있다. 그것들은 또한 뇌파 기준에서 본 최적 수준의 복잡성에 근접해 있다. - P383

수세기를 걸쳐 중국 문자는 표준 서체의 우아한 카라요 서법 ( (1) 중국풍, 중국 양식. (2) 중국식 서체. 특히, 에도(江戶)시대 중기에 유행한 명조체(明朝體)의 서체를 일컫는다)으로 진화해 갔다. 이 서법의 초기형태는 일본에 도입된 이후 새로운 형태로 발전했는데 거기에는 일본 특유의 흐르는 듯한 서체인 와요 서법(일본 고유의 습관이나 양식. 한마디로 일본식을 일컫는다.)이 포함된다. - P383

서구 서체와 중세의 원고에서 흔히 보이는 장식적인 머리글자에서처럼 예술은 자신의 심미적 기준들을 문자 자체에도 부과했다. - P383

예술가와 작가는 오직 직관만으로 또는 공식에 쉽사리 따르지 않는 감수성으로 정서적 · 심미적 반응을 환기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들은 예술적 기교를 조금씩 축적해 가며 "예술임을 숨기는 것이 예술이다. (ars est celare artem.)"라는 격률에 충실함으로써 자신의 창조물을 설명해 보라는 우리의 요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을 수 있다. - P384

 "질문을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절대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_루이 암스트롱 - P384

이와는 대조적으로 과학자들은 뭔가를 알아내려고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명확하게 말해 주고 싶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대의 커튼이 내려지고 책장이 완전히 덮힐 때까지 겸손히 기다려야만 한다. - P384

예술은 언제나 수많은 주제들을 다룬다. 그것은 새 이미지를 통해 최대의 효과를 보고자 한다. 그리고 기억 속으로 녹아 들어간 이미지는 다시 회상될 때 그 원래의 충격을 일부 지니게 된다. - P384

내가 특별히 높이 평가하는 사례는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나보코프(Vladimir Vladimrovich Navokov, 1899~1977년. 「롤리타(Lolita)」(1955년)로 유명한 러시아출신 망명 작가로, 이 작품으로부터 소아 성애를 나타내는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조어가 생겼다. 옮긴이)의 소아 성애(pedophilia)적 소설의 완벽한 도입부이다.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로-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로. 리, 타.)" 그러니까 나보코프는 정확한 해부학적 지식과 두운인 t 음, 그리고 시적 운율로 주인공의 이름과 책제목 그리고 플롯을 관능으로 흠뻑 적시고 있는 것이다. - P384

놀라움과 재치 그리고 독창성 뒤에는 언제나 은유가 숨어 있다. - P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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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서 사회과학 분야 중 경제학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었다. 저자가 사회과학분야에서 그나마 자연과학분야와의 접점을 찾았던 학문 분야가 바로 이 경제학인데, 오늘 시작하는 부분에서 저자는 경제학에 나오는 다양한 예측 모형들을 보다 더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환원주의에 입각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환원주의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어떤 큰 것을 분석할 때 그것을 구성하는 성분으로 잘게 쪼개서 분석하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다. 저자는 자연과학적인 요소들을 배제한 채 단지 직관에만 의존하여 사회과학적인 방식으로만 경제현상들을 분석하는 것에는 일정부분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경제학에서 다루는 경제현상들에 대한 보다 더 높은 수준의 분석을 위해서는 자연과학적인 지식들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인 듯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렇게 심오한 분석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최근 발달한 AI와 함께 한다면 마냥 불가능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진다면 과연 이런 정보들을 온전히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에 대한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AI가 도와준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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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글에서는 경제학에서 기본적으로 가정하는 합리적 선택 이론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것의 핵심은 인간이 의사결정을 할 때 모든 관련 요소들을 검토하고 최선의 선택을 한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렇게 세세한 고려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현실에서 휴리스틱이라는 용어로 대변되는 어림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인간이 진화해온 역사를 되돌아보는데, 최근 급부상한 기술의 발전은 인간 전체의 역사에 비하면 지극히 짧고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본다면 인간이 어떤 것을 결정할 때 모든 것을 꼼꼼하게 고려하기보다는 그저 직관적으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의사결정을 해왔다는 연구결과에 기반하여 뇌가 진화해온 방식도 그런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즉 인간의 뇌라는 게 무슨 컴퓨터처럼 모든 요소들을 고려할 정도로 섬세하게 진화해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절대자인 신(神)이 아니기에 결코 완전하거나 완벽하지 않음에도 그냥 나 혼자서 상대방을 마치 컴퓨터처럼 모든 것을 고려할 줄 아는 존재로 착각하고 내 마음을 몰라준다거나 내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운해한다거나 미워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잠시나마 돌아볼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이란 원래 불완전하고 부족한 존재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설령 내 기대나 내 생각과 다른 부분들이 있을지라도 그냥 상대방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면 언제나 상대방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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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지는 글에서는 철학자들이 과학의 한계를 지적하는 현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독자인 나 역시도 어쩌면 본문에 나오는 철학자들과 비슷하게 현실을 뛰어넘어서 생각하고 꿈꾸려하기보다는 그저 지금 존재하는 현실에만 철저히 종속되어 거기에 기반한 생각만을 하며 살아오고 있지는 않았는지를 돌아볼 수 있었다. 저자의 말처럼 만약 오늘 본문에 나온 철학자들이나 나 같이 현실적인 생각에만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만 있었다면 지금 존재하고 있는 수준의 과학 발전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미래를 꿈꾸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자 애썼던 탐구정신과 도전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 같은 것도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의 과학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그 끝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미래라는 건 꿈꾸는 자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꿈꾸는 자만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고 비록 그것이 지금 당장은 현실성이 없어보일수는 있어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향해 달려간다면 그 꿈은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의 수많은 역사들을 통해 증명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저자도 9장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작업을 못하게 막으면 막을수록 그 작업을 감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은 더 커지는 법이다.(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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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장을 바꿔서 10장 예술과 그 해석 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온다. 저자는 과학과 예술, 이 두 분야를 통섭하기 위해서는 예술에 대한 해석이 그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해석이라는 것 자체가 비평 하는 사람의 개성과 미적 판단의 표현이라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해석 자체를 어떤 하나의 예술로 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보며 처음에는 저자가 통섭이라는 것을 하려고 너무 억지 주장을 펼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각도로 본다면 연결짓는 것이 어려워 보였던 어떤 두 분야에서 공통되는 속성을 끄집어내어 그 둘을 연결하는 게 어쩌면 진정한 통섭을 위한 노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뒤이어 나올 저자의 생각이 좀 더 궁금해졌다.


뒤이어서는 예술의 정의와 특징 그리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철학들이 소개되는데, 개인적으로는 잘 몰랐던 분야라 큰 흐름을 잡는데 애를 좀 먹긴 했지만 그래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나의 좁았던 관심사를 보다 크고 넓은 영역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값지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덕분에 많은 작가들을 알게 되었고 각 사조들의 굵직굵직한 특징들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이 《통섭》책에서 접했던 작가들의 책들도 찾아서 읽어보면 굉장히 뿌듯할 것 같다.

경제학자와 사회과학자가 좀 더 예측적인 모형을 만들기 위한 전제를 발견해야 할 곳은 다름 아닌 생물학과 심리학이다. 이것은 생물학을 발전시킨 전제를 발견한 곳이 물리학과 화학이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 P355

미래의 사회 이론 작업도 추론 과정 자체에 대한 심리생물학적 이해에 의존할 것이다. - P356

인간의 두뇌는 매우 빠르기만 한 계산기가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결정은 복잡한 환경과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 P356

합리적 선택 이론에서 중요한 문제는 정보가 얼마나 많아야 충분한가이다. 즉 사람들이 어떤 시점에서 숙고를 멈추고 결정을 내리는가? 한 가지 단순한 전략은 ‘만족화(satisficing)‘ 전략이다. 여기서 ‘만족화‘란 ‘납득이 되는(satisfying)‘과 ‘충분한 (sufficing)‘이라는 단어를 결합한 스코틀랜드 용어이다. - P356

사람이 미리 최적 선택을 예견하고 그것이 발견될 때까지 찾아다닌다는 의미가 아니다. 만족화는 단기간에 가용적이고 감지되는 것들로부터 첫 번째로 만족스러운 것을 고른다는 뜻이다. 예컨대 결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젊은 남성은 자신의 이상형을 무작정 찾아다니기보다는 자기가 알고 있는 주위 여성들 중 가장 매력적인 여성에게 청혼할 것이다. 만족화란 바로 그런 것이다. - P356

합리적 선택 이론 ...(중략)... 그 중심 아이디어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인간들은 할 수 있는 한 모든 관련 요소들을 검토하고 특정 선택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저울질한다. 그리고 결정하기 전에 이해득실(투자, 위험, 감정적, 물질적 보상 등)을 따져본다. 선호된 선택은 효용성이 극대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고하는지에 대한 적합한 그림이 아니다. - P356

전통적인 합리적 선택 이론들에 대한 하나의 대안은 사람들이 어림법을 따른다는 사실이다. 어림법은 ‘발견 기법(heuristics)‘이라는 전문용어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중략)... 이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해득실을 따지기보다는 대체로 단순한 신호와 발견 기법에 기반을 두고 행동한다. 이 때문에 복잡한 확률 계산과 결과 예측이 불과 몇 가지 판단 작업으로 환원된다. - P357

발견 기법은 대체로 잘 작동하여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있게 해 주지만 여러 상황들에서 체계적인 실수를 낳기도 한다. 예를들어 빠른 셈 계산에 사용되는 발견 기법인 ‘정박(碇泊, anchoring)‘이 있다. - P357

계산과 통계를 이해하도록 훈련받을 수 있는 데도 왜 이런 일관적인 실수가 생기는 것일까? 이에 대한 정답은 유전적 진화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의 두뇌는 간단한 수와 비율을 다루도록 진화했지 추상적이고 정량적 추론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문제들을 처리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 P358

합리적 선택 이론은 정작 수십만 년 동안 진화해 온 석기 시대의 기관인 인간 두뇌의 속성들에 대해서는 주의를 거의 기울이지 않고 있다. 기간을 따져보면 인간의 두뇌가 산업 사회라는 아주 낯선 환경으로 떠밀려 온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따라서 합리적 선택 이론은 선사 시대의 사람들이 오랜 과거의 진화적 시간동안 어떻게 사고해 왔을 것인지에 대한 증거들에 잘 부합하지 않는다. - P359

크리스토퍼 홀파이크(Christopher R. Hallpike)는 『원시 사고의 토대(The Foundations of Primitive Thought)』에서 선사 시대 사람들의 추론 방식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직관적이고 독선적이며, 물리적 인과성보다는 특수한 감정적 관계에 매달려 있고 본질과 변형 (metamorphosis)에 집착하며, 논리적 추상화나 가설적으로 가능한 것들에 아둔하고 개념적 장치보다는 사회적 상호 작용을 위해 언어를 사용하며, 정량적인 측면에서 빈도와 희소성에 대략적으로 민감하고 부분적으로 환경에서 연유한 마음이 다시 환경으로 투사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단어 자체가 힘을 가진 존재자가 되었다. - P359

선사 시대 사람의 특성들이 현대 산업 사회의 시민들에게도 나타난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경제학자와 사회과학자는 이것을 자기 작업의 전제로 삼아야 한다. 그 특성들은 컬트 단원들, 광신도 그리고 교육 수준이 낮은 이들에게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들은 예술의 은유에 깊숙이 침투해 있고 또한 그것을 풍요롭게 만든다. 좋건 싫건 간에 현대 문명의 일부이다. 체계적인 논리 연역 추론은 고도로 특수화된 서양 문화의 산물로서 발휘하기가 매우 힘들뿐만 아니라 실제로 여전히 드물게 나타난다. 이 추론 양식을 완벽하게 다듬으면서도 낡은 방식의 추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훈련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또한 낡은 추론 방식이 우리를 현재까지 생존하게 만든 적응적인 인간 본성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P360

사회 이론가들은 엄청난 양의 기술적인 문제들 앞에 기가 죽어 있다. 어떤 과학철학자들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간의 경계 지점들이 너무 복잡해서 현재의 상상력만으로는 도저히 정복될 수 없다고 포기한다. 그들은 그것이 어쩌면 오르지 못할 산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들은 생물학으로부터 문화로의 통섭이라는 아이디어를 의심하며 공식의 비선형성, 요인들의 2·3차 상호 작용, 우연성 (stochasticity) 그리고 큰 소용돌이 바다에 살고 있는 다른 모든 괴물들을 지적한다. 그리고 "희망이 없어, 절망이야." 라고 한숨을 쉰다. 원래 철학자들이란 대개 그런 법이다. 그들의 일이 더 큰 도식 내에서 과학의 한계를 정의하고 설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P360

다행스럽게도 과학자 자신은 그런 것에 구속되지 않는다. 만일 우리 학문의 선배들이 미지의 것에 대해 겸손하게만 생각했더라면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16세기에 성장을 멈췄을 것이다. 철학자들의 독설을 막을 필요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과학 기술이 그 독설과는 정반대의 믿음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스스로 확신하는 일이다. 계몽이 처음으로 사그라든 곳이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라. - P361

물론 사회과학에 대한 비관적인 철학자들의 판단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을 그른 것으로 여기고 나아가는게 더 낫다. 갈 길은 하나뿐이다. 작업을 못하게 막으면 막을수록 그 작업을 감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은 더 커지는 법이다. - P361

통섭적 설명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도전은 뭐니 뭐니 해도 과학에서 예술로의 이행을 설명해 보라는 요구일 것이다. 여기서 예술은 창조적 예술들, 즉 문학, 시각 예술, 드라마, 음악, 무용 등의 개인적 작품을 지칭한다. 이 예술은 ‘참됨‘과 ‘아름다움‘이라는 단어 외의 다른 표현을 찾기 힘든 그런 속성들을 지닌다. - P363

일차적이며 직관적으로 창조적인 의미에서의 예술, 즉 ars gratia artis는 가장 광범위하고 유용하게 사용되는 정의로 남아 있다. - P363

예술이 역사적·개인적 경험 어디에서 연원하는가 - P364

참됨과 아름다움이라는 그 본질적 속성이 일상 언어를 통하여 어떻게 기술될 수 있는가 - P364

해석은 그 자체가 부분적으로 하나의 예술이다. 왜냐하면 해석은 비평가의 사실적이고 전문가적 의견일뿐만 아니라 그의 개성과 미적 판단의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P364

일급의 비평은 다루고 있는 작품만큼이나 영감에 따라 창조된 독특한 개성의 소산일 수 있다. 더 나아가 그것은 과학의 일부분일 수도 있으며 반대로 과학 또한 비평의 일부분일 수 있는데, 이것은 이제부터 내가 보여 주고자 하는 바이다. - P364

해석은 역사, 전기(傳記), 개인적 고백 그리고 과학이 하나로 엮어질 때 한층 더 강력해진다. - P364

불경스러운 단어가 성스러운 근거에서 언급되면 곧바로 거부 반응이 나온다. - P364

과학이 현상을 그 작용 요소들로 환원함ㅡ예를 들어 뇌를 뉴런으로, 뉴런을 분자로ㅡ으로써 진보를 성취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전체의 통합성(integrity)을 손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요소들을 그 본래의 집합으로 재창조하기 위한 종합 작업이 과학적 절차의 나머지 절반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이 과학의 궁극적 목표이다. - P364

나는 예술과 과학의 창조적 과정을 환원주의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미래의 예술이 가질 창조성과 우수성에 관해 그 어떤 본원적 한계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과 과학의 동맹 관계는 이미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고 그것은 해석을 매개로 하여 성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P365

과학과 예술 모두 서로의 힘을 합치지 않고는 완성될 수가 없다. 과학은 예술의 직관과 은유의 힘을 필요로 하며 예술은 과학으로부터 신선한 수혈을 필요로 한다. - P365

인문학 쪽의 학자들은 환원주의에 드리워진 저주를 걷어 내야 한다. 과학자들은 잉카 제국의 황금을 약탈하러 온 신대륙 정복자들이 아니다. - P365

과학도 자유롭고 예술도 자유롭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 관해 앞서 주장했듯이 과학과 예술이라는 두 영역은 모두 창조적 정신을 요구한다는 면에서 유사하기는 하지만 그 목표와 방법에 있어서는 근원적으로 다르다. - P365

예술과 과학 간 상호 교류의 핵심은 혼성화(hybridization). 즉 ‘과학적 예술‘이나 ‘예술적 과학‘과 같은 떨떠름한 혼합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과학 지식과 미래에 대한 그 지식의 독점적 감각으로 예술에 대한 해석을 되살리는 데 있다. 해석은 과학과 예술 간의 통섭적 설명이 가질 수 있는 논리적 통로이다. - P365

디스(그리스 신화의 하데스)

페르세포네(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데메테르 사이에서 태어난 여신)

페르세포네의 어머니이자 경작의 여신인 케레스(그리스 신화의 데메테르) - P367

아름다운 다프네를 향한 아폴론의 열정은 결국 아무런 보답을 얻지 못했다. 다프네가 그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그녀 자신의 정원에 있는 한 그루의 월계수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 P367

그(밀턴)는 상이한 감정들을 대립시켜 그들의 힘을 증폭시켰다. 예를 들어 아름다움과 어두움이, 자유와 운명이, 열정과 절제가 서로 충돌한다. 밀턴은 그런 감정들 간의 긴장을 이끌어 냄으로써 보다 낮은 단계의 낙원들을 거쳐 한순간에 신비로운 에덴의 원형에 도달하게끔 우리를 인도한다. - P367

밀턴은 권위에 의지하는, 기초가 단단한 또 하나의 전략을 사용했다. 즉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 예컨대 크롬웰이나 찰스 2세 그리고 혁명과 잉글랜드 공화국의 투사였던 그가 겨우 죽음을 모면한 바 있는 당시의 왕정 복고 시대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수세기를 지나면서도 여전히 기억될 만큼 강렬한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문헌을 언급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우리가 직접 듣지 않았더라도 진실임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 P368

예술은 인간의 조건을 감정과 느낌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즉 예술은 질서와 무질서 양자를 함께 환기시킴으로써 모든 감정들을 움직인다. - P368

예술을 창조하는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사실에 기반한 차가운 논리인가, 아니면 밀턴의 믿음처럼 시인의 사색을 이끄는 신의 인도인가? 모두 아니다. 게다가 『실락원』의 저자에게서 발견되는 천재성을 점화시키는 그 어떤 독특한 섬광의 증거도 없다. 예를 들어 음악적 재능이 특출한 사람이 상상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의 뇌를 관찰해 본들 그들에게서 어떤 특이한 신경생물학적 특징들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덜 재능 있는 보통사람들보다는 동일한 뇌 부위들이 보다 폭넓게 활용되고 있었다. 역사도 이러한 이른바 증대(incremental) 가설을 지지한다. 맨앞에는 셰익스피어,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차르트 등과 같이 늘 맨 앞줄에 있는 천재들이 있고 실력 순서대로 수많은 유능한 사람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 P368

서구의 정전(正典)을 비롯한 고급문화에 통달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독보적 지식, 뛰어난 솜씨, 독창성, 세밀한 감수성, 야심, 대담함, 충동 등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무언가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고 마음속에 불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선천적인 인간 본성을 직관적으로 파악해내는 능력도 지녔다. 그런데 그 능력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흐르고 있는 보잘것없는 생각들에서 뛰어난 이미지들을 선택하기에 충분할만큼 정확한 것이었다. 그들이 발휘했던 재능의 크기가 단지 정도에 있어서만 큰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들의 창조물은 다른 이들의 것에 비해 질적으로 참신했다. 그들은 주술이나 신의 자비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보통 사람들과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는 능력을 조금 더 발휘함으로써 이름을 남길 만한 영향력과 생명력을 얻은 것이다. 그들은 나머지 보통 사람들의 위로 높이 솟구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뿐이었다. - P369

정도는 다를지라도 모든 사람은 공통적으로 예술적 영감을 가지고 있다. 이 예술적 영감은 인간 본성의 분수에서 솟구쳐 올라온다. - P369

예술적 영감에 따른 창조는 분석적 설명이 없다 해도 보는 사람의 감수성을 직접적으로 자극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창조성은 절대적으로 인본주의적 (humanistic)이다. 지속적인 가치를 지니는 작품들은 이와같은 인본주의적 근원을 가장 충실히 따르는 것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그것들을 이끌어 낸 후성 규칙들을 탐구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후성 규칙들은 인류 진화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 P369

그들(예술에 대한 주류 관점)은 다양한 수준에서 보편적인 인간 본성의 존재를 부인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가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왔다. 문학 비평에 적용된 포스트모더니즘의 극단적인 표명은 자크 데리다와 폴 드 만(Paul de Man) 이 가장 도발적으로 정식화했던 해체주의 철학이었다. - P369

이 관점(해체주의 철학)에 따르면 진리는 상대적이고 개인적이다. 개인은 언어 기호들의 끊임없는 변환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내적 세계를 창출한다. 여기에는 문학적 지성을 인도할 어떤 특권적 지점도 길잡이별도 없다. 그리고 과학 역시 세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텍스트의 깊은 의미를 끌어낼 수 있게 해 주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지도 따위가 있을 수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다만 독자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서 여러 해석과 주석을 창안할 무제한의 기회뿐이다. "저자는 죽었다."라는 표현은 바로 해체주의의 상투 문구이다. - P370

해체주의를 주창하는 학자들은 오히려 자기모순과 모호함을 추구한다. 그들은 저자가 생략한 부분을 상정하고 분석한다. 바로 이와같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적 형식의 개인화된 주석이 허용된다. 이런 혼합물에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덧붙이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전통적인 문학 규준들을 지배 계급, 그것도 특히 서구 백인 남성의 세계관을 확고히 하는 집합체. 그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 P370

포스트모더니즘적 가설은 증거와 잘 부합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떻게 정신이 작동하는지에 대한 기존의 지식으로부터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이 그토록 인기를 끄는 데는 카오스에 대한 추구 이상의 어떤 이유들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만일 포스트모더니즘의 생물학적 근거가 맞는다면 그것의 광범위한 호소력은 인간 본성에 뿌리를 둔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 P370

예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이 『서구의 정전들(The Western Canon)』에서 고발한 바 있는 "원한 학파(School of Resentment, 블룸은 이 책에서 "서구의 정전들이 사회·정치적 엘리트들에 의해 부과된 구조물들에 불과하며 이제는 부적절하다."라고 주장하는 일군의 학자들을 이른바 "원한 학파"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해체주의 등)라고 부르고 그들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상의 것이며, 알렉산더 포프의 시구에서 나온 "거세된 남자의 앙심" 이상의 것이다. - P370

이것(예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미국 학계가 프랑스 몽매주의(Gollic obscurantism, 여기서 Gollic은 프랑스에 대해 약간 비아냥거리는 느껌으로 씌어진 형용사이며 obscurantism은 문학과 예술에서 고의로 의도를 애매하게 하는 표현주의적 사조 일반을 일컫는다. 몽매주의라고도 하며 여기서는 해체론 등 프랑스에서 기원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상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에 대해 통상 지니는 감상적인 경외심 이상의 것을 통해 지지되고 있다. - P371

또한 포스트모더니즘 속에는 어떤 혁명적인 정신이 요동치고있다. 예를 들어 이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 특히 자신만의 독특한 재능과 정서적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지난 수세기 동안 상대적으로 부당하게 무시당해 오다가 이제야 주류 문화 속에서 자신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 P371

나는 페미니즘ㅡ그것이 사회적이건 경제적이건 예술적 페미니즘이건 간에ㅡ을 환영한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옹호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새로운 표현의 창구를 열었고 억눌려 지냈던 인재 집단을 해방시키기는 했으나 인간 본성을 산산조각 내지는 못했다. 그와 같은 진전이 인간 본성을 폭파시켜 작은 조각들로 파편화시킨 것은 아니다. 오히려 페미니즘은 인류를 통합시키는 보편적 형질들을 충분히 탐색하게끔 새로운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 P371

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적 세계관의 역사적 진동 중 하나의 극값이라고 볼 수 있다. 1926년에 위대한 미국인 비평가인 에드먼드 윌슨(Edmund Wilson)은 서구 문학이 그 강조점에 있어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라는 양극단 사이를 "흔들거리며 왔다 갔다 하지 않을 수 없는" 듯이 보인다고 했다. - P372

아주 폭넓게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은 진동 주기 중에는 우선 포프와 라신처럼 질서있는 세계를 지향하는 과학자의 시각에 의존했던 계몽주의 시인들이 19세기의 반항적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대중의 사랑을 빼앗기고 만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 낭만주의자들도 합리적 질서로 회귀했던 플로베르 같은 사람들에게 곧 길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다가 말라르메와 발레리 등 프랑스 상징주의자들과 예이츠, 조이스, 엘리엇 등의 영국 문인들이 주를 이루던 모더니즘적 글쓰기가 나타나 또 정반대의 흐름이 풍미했다. - P372

에드먼드 윌슨은 극단적인 것이 하나의 지배적 사조로서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기 때문에 주기적인 진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P372

"예술 작품은 한 줄 한 줄마다 자신의 정당성을 지녀야 한다." _조셉 콘래드(Joseph Conrad)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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