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닭다리만 찾아다닐 겁니까? 매번 저놈들한테 질질 끌려다니면서 말입니다."
한국공조는 대형유통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그들을 통하지 않고 성공한 제품이 생긴다면 분명 지금까지의 일방적인 관계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
난 잔을 받아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것은 윗사람과의 주도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다. 술을 버리기 위한 기회를 엿보기 위한 꼼수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이런 제기랄, 타짜가 있었다니. 들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수많은 회식 자리에서 이 스킬로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트렌드에 맞춰 영업도 변해야 한다는 걸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영업부는 주량으로 임원을 뽑는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
"죄송합니다. 이사님. 그래도 안 되는건 안 되는 겁니다." "야. 손 안 떼?" "안 됩니다."
특허가 승인되기까지는 제법 오랜 기간이 걸리지만 제출해 놓은 상태라면 모방의 염려는 확실히 줄어든다.
"파트장님, 나가요. 나까지 취하는 거 같단 말이에요. 술을 얼마나 처먹었길래......." 처먹....... 기력이 없는 와중에도 난 뇌리 한편에 선 넘은 단어 하나를 조용히 기록해 넣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있다. 난 돌에 새기는 대신 뇌리에 새긴다.
원래 에어 프라이어 출시후 계속해서 개량되었다. 난 최종 결과물을 알기에 그 과정을 과감하게 스킵할 수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이었기에 거의 완성형에 가까웠다.
몸을 가득채운 알코올 도수는 떨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통이 에밀레종 울리듯 댕댕 울렸다. 지금 필요한건 따뜻한 우리 집 이부자리뿐이었다.
한숨 자고 나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중국집에서 짬뽕 한 그릇을 배달해서 먹으니 그제야 배 속의 장기들이 제 기능을 시작했다.
급하면 또 전화하겠지 뭐. 대표님이랑 술 먹고 쓰러져서 못 받았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거야.
때론 이토록 허무하게 벌수 있는 게 돈이었다. 그 돈의 꼬리를 쫓아 아등바등 살았던 과거의 삶조차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주식으로 불어난 비현실적인 숫자를 본 뒤 역설적이게도 난 두 번 다시 HTS를 켜지 않았다. 주식 수익은 허무하게 주어진 보상이었지만 조금 더 노력하면 손에 들어올 TF의 첫 성과는 직접 일구어낸 진짜였기 때문이다.
업무에 매달려 있을 때 난 살아 있음을 느꼈고 중독적인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어 더욱 열정을 불태웠다.
"야, 뭔 말을 그렇게 하냐. 여기 힘들지만 나름 재미있어."
신유통팀이 구성되어 활동을 시작한 지 고작 보름. 주변의 걱정과 견제의 시선에 그 출발은 불안했지만 정작 그곳에서 일한 사람들은 아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회사의 모두가 드러내놓고 꺼리던 홈쇼핑과 온라인. 그곳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신유통팀 직원들 모두가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두 채널 모두 한국공조의 주력 유통 채널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발전된 채널이었다. 접대와 인간관계가 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대형가전 유통 채널에서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신선한 경험이 아닐수 없었다.
모두가 내 존재를 주목하고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그만큼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것이 긍정적인 관심이든 부정적인 관심이든 상관없다. 수많은 사람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회사에서 원하는 바를 추진하려면 그 영향력이 꼭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어차피 이번 방송의 목표는 판매량에 중점을 둔 게 아니니까‘ 첫 방송의 목적은 홍보다.
경험도 입소문도 없는 상태에서 10만 원을 훌쩍 넘는 판매가는 구매 결정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죠. 백문이 불여일식! 자 이번엔 에어 프라이어로 어떤 요리를 할 수 있는지 직접 알아보자구요.]
얼마 전 홈쇼핑 MD 측과의 실무협의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었다. ‘준비한 물량이 매진되면 어떡하죠?‘ 난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웃었다.
MD의 말은 ‘지금 막 권투를 배운 초등학생이 타이슨을 KO 시키면 어떡하죠?‘와 같은거 였으니까. ‘매진되면 그 뒤부터는 공장에서 찍어낸 걸로 선착순으로 팔면 되죠.‘ 하하하. 호호호. 그런 미친 대화가 있었다.
이해할 만한 얘기다. 난 과거에서 회귀했기에 회사의 미래를 알고 있고 추진하는 일의 성공을 자신할 수 있지만 그걸 모른 채 날 지지하는 사람의 입장은 그럴 것이다.
조율이라는 게 참석자 모두가 만족스러울 수 없다.
다짜고짜 추궁해 봐야 반발을 끌어낼 뿐이다. ‘조용히 좀 알아봐야겠네.‘
쉽게 구매할 수 없다는 화제성은 입소문을 확대시킨다.
"올해 PAI 아가리에 박아야할 돈이 백억입니다. 그거 확보 못 하면 뭔 일이 나는지 다들 알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더 바짝 졸라매야 합니다. 벌써 쉬겠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필터의 여과력이 높을수록 저항력이 강해진다. 여과력만 올라가고 모터가 그대로라면 흡기 성능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게 성능 좋은 모터다.
[HEPA 등급 필터] "헤파?" 여과 성능에 따라 EPA, HEPA, ULPA로 나뉘는 필터의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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