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얕잡아 보다 보면 크나큰 약점을 드러내기 마련이니까! - P16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연도 기적도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주님은 이 시간을 위해 나를 훈련시키고 준비시키셨다. 나에게는 갈렙처럼 주를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열정과 두려움을 먼저 정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10여 년이 넘는 연습과 실전을 토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탁월한 무릿매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주님은 이렇게 나를 준비시키셨다. 그러니 누군가에겐 말도 안 되는 그 일이 주님 앞에서는 당연한 역사였다. 우연처럼 보이는 그 사건이 주님의 역사 안에서는 필연일 뿐이었다. - P18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주신 주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주실 것입니다." - P19
표범 같은 나의 눈빛에 왕도 흔들리는 듯했다. 몸에 남아있는 짐승들과 싸운 흔적, 송곳으로 찔러도 안 들어갈 딴딴한 근육질의 팔뚝도 유심히 보는 듯했다. 특히 나는 사자와 곰들과의 싸움에 최적화된 날렵하고 민첩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 P20
물론 육체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전쟁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는것이다. 직접 본적은 없지만 이순신 장군도 조선과 일본 사이에 벌어졌던 명량해전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하여 지키면 오히려 해낼 수 있습니다. 전선이 비록 적으나, 미천한 이 몸이 죽지 않은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한참 후대의 사람이지만 꽤 멋진 장군임에 틀림없었다. 그에 반해 사울 왕과 그의 군대는 철저히 사기를 잃은 상태였다. 이길 의지가 완전히 꺾인 상태라고나 할까? 이런 상태에서는 누가 나가도 질 수밖에 없다. - P20
돌아보면 나는 그때 마음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강하고 담대한 마음이 승리의 첫째 비결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것이다. 이때의 마음가짐은 훗날 지도자가 되었을 때도 꽤 유용하게 활용되었던 것 같다.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가 바로 용기가 아닐까! 나는 지도자가 되었을 때에도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고 나를 따르는사람들 또한 마음가짐을 바로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들이 어려운 환경을 타개할 수 있도록 늘 용기를 불어넣어주었으며 낙망 가운데 빠지지 않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 P20
"이런 무장에는 제가 익숙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무장을 한 채로는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나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P21
나의 전술은 바로 ‘비대칭 전술이었다. 승리를 위해서는 차별화 전략을 써야 했다. - P21
만약 내가 똑같은 방식을 택했다면 패배는 불 보듯 뻔한 사실 아니었을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상식부터 파괴해야 한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산산조각 내야 한다. 이에 나는 단거리 미사일공격이라는 비대칭 전술을 사용하기로 했다. - P22
나에게 무릿매가 있었다면 조선의 이순신 장군에게는 거북선이 있었다. 당시 일본의 해전 방식에 맞서 전쟁을 치렀다면 조선은 백전백패였다. 그야말로 왜군은 조선의 골리앗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바로 비대칭전략의 전함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가 한 말은 들을 때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제가 일찍이 왜적의 난리가 있을 것을 걱정하여 특별히 거북선을 만들었사온데, 앞에는 용의 머리를 붙여 입으로 대포를 쏘고, 등에는 쇠못을 꽂았으며, 밖에서는 안을 내다볼 수 없고, 비록 적선 수백 척 속에라도 뚫고 들어가 대포를 쏘게 하였습니다." - P22
당시 왜군의 전선은 기동성이 우수한 반면 삼나무로 건조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구력이 약했다. 소나무로 건조한 거북선과 충돌한다고 했을 때 어느 편에 유리할지 말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아마도 대나무 쪼개듯 왜군의 전선을 쉽게 깨뜨려 버리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거북선은 등판 위에 쇠못을 꽂음으로써 칼과 소총으로 무장하고 백병전에 능한 왜군이 전선 위로 올라서는 것을 차단했다. 이것은 골리앗에 대항하는 무릿매 전술과 다를 바가 없었다. 특히 배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었지만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를 갖춤으로써 전후좌우의 사방에서 화포를 쏠 수 있었다. 거북선의 이러한 기능은 육지 전투에서의 전차와 같은 기능을 해내기에 충분했다. 곧 적진을 교란하는 돌격선의 역할을 기막히게 수행했다. - P23
카드놀이에서 패가 읽히면 안되듯, 승리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예상을 뛰어넘어야 한다. 틀에 박힌 고정관념은 더 이상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아마도 이 원리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 P23
실패는 끝이 아니라고 한다.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 - P23
물맷돌 전략에는 ‘원운동의 과학원리‘가 숨어있다. 일정한 속도로 일정한 원을 그려 돌리다가 놓는 순간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원리다. 후에 뉴턴이라는 과학자가 발견한 운동의 법칙을 나는 일찍이 활용했다고 볼수 있다. - P24
여기서의 파괴력은 충격에너지로 환산되며 돌의 무게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그리고 날아가는 속도는 시간당 회전수와 원의 반지름에 비례한다. 이때 무릿매의 길이는 사정거리에 따라 짧거나 길게 줄을 바꿔 사용할 수 있다. - P24
무릿매를 던지는 기술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손목을 중심으로 빠르게 무릿매를 돌리는 기술이다. 이런 경우는 근거리에 유리하다. 두번째는 무릿매 줄의 길이를 길게 잡고 어깨 관절을 중심으로 돌리며 돌을 던지는 기술이다. - P25
후자의 기술을 쓸 때는 무릿매 줄과 팔 길이를 합친 길이가 반지름에 해당하는데 그 값은 총 2m이고 1초에 2~4회 속도로 돌리다가 놓는다고 가정할 때, 그 순간에 날아가는 속도는 등속원운동 공식에 의해25~50m/s가 된다. 이것은 시속 90~180km에 해당한다. 곧 주먹 크기만한 돌의 무게와 목표물에 대한 정확도만 있으면 한방에 적을 죽일 수 있는 파괴력이 발휘된다. - P25
무릿매는 원거리 미사일로도 제격이다. 물맷돌을 놓는 순간의 빠르기와 각도에 따라 포물선 운동을 한다. 물매를 수평에서 각도의 방향으로 놓았을 때 초기 속도를 V. 하면 날아갈 수 있는 거리, 최고점 높이 등을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수평에서 30도의 각도에, 50m/s의 초기 속도로 돌을 던졌다면, 수평 도달 거리는 220m가 된다. 즉, 날아가는 거리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이때 최고점의 높이는 32m이며, 그 최고점에 도달하는 시간은 2.5초에 불과하다. 이정도면 무릿매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할수 있을 것이다. - P25
나는 요즘 핫하다는 ‘1만 시간의 법칙‘ 이상으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타겟이 고정되었을 때만이 아니라 빠르게 움직일 때도 명중시킬 수있도록 수도 없이 훈련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직접 달리며 물맷돌을 쏘는 기술을 연마했다. 이 정도면 물맷돌의 달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잘 훈련된 저격수라고나 할까? 나비같이 날아 벌같이 쓴다는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 P26
전능하신 주님께서 나를 사용하실 때는 철저히 훈련과 준비를 거치셨다. 그것이 질서의 주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 P26
"이들은 좌우 양손으로 무릿매 돌도 던질 줄 알며 화살도 쏠 줄 아는 사람들로서 "(역대상 12:2) - P26
"이 모든 사람 가운데서 뽑힌 700명 왼손잡이들은 무릿매로 돌을 딘져 머리카락도 빗나가지 않고 맞추는 사람들이었다."(사사기 20:16) - P27
나의 활동시기와 800년가량 차이나는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도 무릿매 부대를 잘 활용한 대표주자였다. 로마와 맞서 싸워 맹위를 떨쳤던 그는 발레아레스 섬의 사람들로 구성된 무릿매 부대를 전술적으로 잘 활용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발레아레스 섬 사람들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무릿매 기술을 연마시켰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얼마나 지독한지 목표를 명중시키지 못하면 밥을 주지 않을 정도였다. 이들은 한니발 장군과 함께 로마와 맞서는 미사일 부대로 활약했다. 200m 이상 떨어진 사람 크기의 표적도 백발백중으로 맞힐 수 있었던 그들은 무릿매 줄의 길이에 따라 근거리, 중거리, 원거리 미사일을 빗발같이 쏘아댔다. - P27
한니발은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군을 완전히 패닉에 빠지게 했는데, 특히 칸나이 전투에서는 그 유명한 초승달 전술을 썼다. 보병을 중앙에 배치하고 기마부대와 무릿매 부대를 측면에 배치한 전투대열을 만든 뒤, 중앙밀집전투를 할 것처럼 초승달 모양의 대형을 갖추었던 것이다. 이것은로마군이 보병 중심의 전면전에 능한 것을 역이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P27
결국 로마군인들이 본격적으로 중앙을 집중 공격할 때 한니발의 부대는 밀리는 척하며 시간을 끌었고 그 사이 측면에 배치되었던 기마부대와 무릿매 부대는 로마군의 후방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무릿매 부대가 소나기처럼 투석한 마사일 돌들은 로마기병들을 가격하기에 충분했다. 이 전쟁의 두 지휘관은 바로와 파울루스 집정관이었는데, 파울루스는 무릿매 돌에 맞아 중상을 입고 전사하고 말았다. - P28
"제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 그런 아들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수금을 잘 탈 뿐만 아니라, 용사이며, 용감한 군인이며, 말도 잘하고, 외모도 좋은 사람인데다가, 주께서 그와 함께 계십니다. "(사무엘상 16:18)
"I have seen a son of Jesse of Bethlehem who knows how to playthe harp. He is a brave man and a warrior. He speaks well and is a fine-looking man. And the LORD is with him."(1 Samuel 16:18) - P34
수금을 잘 탄다는 것을 오늘날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까? 특기 혹은 달란트를 발휘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부모는 자녀 안에 있는 모든 달란트를 발산시키도록 도와야 한다. 노래면 노래, 악기면 악기, 미술이면 미술, 운동이면 운동.... 인간을 만드신 주님은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셨고 그 달란트를 극대화하길 원하신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오직 공부로서만 승부하려는 경향이 짙다. 이 사회는 더 이상 지적 능력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달란트도 실력이다.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것을 발현해 나가면 누구나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 - P36
저마다 자기만의 무릿매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갈고 닦아야 한다. 곧 전문화시켜야 한다. 세상의 대세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릿매를 잘 활용하려고 해야 한다. - P38
‘너 자신만의 물맷돌은 무엇이니?" - P38
‘구변이 좋다‘는 말은 단순히 말을 잘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기의 생각을 잘 표현하며 소통과 설득을 할 줄 안다는 것을 뜻한다. - P39
유대인들이 잘 하는 것이 바로 토론이다. 디베이트라는 논쟁은 누가누굴 이기느냐에 집중하지만, 유대인의 토론에는 항상 논쟁이 아닌 협력과 새로운 배움을 위한다는 전제를 두고 진행된다. 그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그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 자녀에게도 이같은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설득력이 필요하다.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의를 위해서 뜻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능력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논리를 세워 진실한 글을 써 보아야 한다. 자기 의견을 잘 피력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사람을 설득하며 희망을 제시해 보아야한다. - P40
주님이 함께하심을 어릴 때부터 경험하는 것처럼 인생의 큰 자산은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존감이 높고 모든 면에 당당하다. 쭈뼛거리거나 주저하거나 빌빌거리지 않고 담대함마저 갖게 된다. 열등감에 빠지지도 않는다. 비교의식과 과도한 경쟁의식으로 인생을 허비하지도 않는다. 전능하신 주님이 함께하시는데 뭘 못하겠으며, 어디인들 못 가겠는가? 그런 사람들은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기에 푯대를 향해 달려가고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다. - P41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사무엘상16:7) - P42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 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합한) 사람이다. 그가 내 뜻을 다 행할 것이다."(사도행전 13:2)
나는 주님의 마음(중심)을 매우 열심히 따르며 좇으려고 노력했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주님 마음, 나의 마음"이라는 표어가 내 인생의 모토였다. - P43
나는 주님의 사람으로서 삶의 중심인 스피리추얼 파워를 키웠고, 문학적 창작력으로 브레인파워를 키웠다. 또한 긍정과 열정으로 멘탈파워를, 소통과 설득으로 네트워크 파워를 키웠다. 거기에다가 무릿매 연습과 날쌘 짐승들과의 싸움을 통해 바디파워를, 부모에게 효도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것을 통해 모럴파워를, 양떼를 돌보는 것을 통해 리더십파워를 고루 갖추도록 노력했다. 이것은 오늘날 기업과 사회가 원하는 인재상에 부합한다. 어떤 조직이든 신앙만 좋고 실력은 없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신앙과 실력은 이원화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 P43
사울 왕이 나를 살해하려고 한다는 분명한 증거를 얻자 궁중악사와 천부장 자리에 대한 사직서를 낼 겨를도 없었다. 그때부터 나의 공식신분은 ‘도망자‘였다.
그때는 왜 나에게만 이런 가혹한 일이 생기나 싶었다. 그러나 3천 년이 지난 21세기의 정치상황을 보면 내가 당했던 것과 흡사한 일들이 버젓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 어제까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원수와 정적이 되고 서로 물어뜯지 못해 난리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바로 권력의 독 때문이다. 명분은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본인의 이기적인 권력욕 때문에 인간성을 상실해 간다. 철저히 교활해진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보다 인기 있는 자를 끌어내린다. 누군가가 내 위에 올라서는 상황 자체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두게 되면 언젠가 자기 자리를 뺏길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그 두려움은 질투로 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숙청 작업으로 이어진다. 본인이 있는 한 절대로 복권을 소망하기 힘들게끔! 이는 민주주의가 잡히지 않은 모든 나라의 공통점이다. - P53
바닥에 떨어져 있을 때보다 떨어지기 시작할 때가 견디기 힘든 법이다. 그 심적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자기를 못살게 구는 장본인을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반드시 복수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게 된다. 아니면 처절한 실망감과 회의감이 몰려와 세상을 떠나버리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누군가의 욕심에 의해 밀려나고 쫓겨나야 하는 사람은 보다 더 뼈아픈 시련을 겪는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생생하게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 P54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새로운 자기 직면의 기회를 가졌다. 죽음 앞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을 맞이했다고나 할까?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나의 힘으로 모든 것이 통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나를 돌아보았다. 내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과신했던 교만함을 떠올렸다. - P56
‘후유, 죽음은 모면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세상에서는 의지할 데가 없다는 진리 말이다. 하지만 이 세상 안에는 의지할 곳이 없어도 나를 지켜줄 진정한 피난처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함께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를 도울 사람이 없고, 내가 피할 곳이 없고, 나를 지켜줄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주님은 나의 피난처, 사람 사는 세상에서 내가 받은 분깃은 주님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42:4-5) - P58
나는 외로움과 죽음의 공포를 이기게 하시는 분! 바로 나를 보호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좌절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 와중에 오히려 새로운 소망이 넘쳤다. 주님만이 희망이 된다는것을 발견하자 죽음도 두렵지 않았다. - P58
"주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주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주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편 56:1-4) - P58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나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나이다." (시편 142:6) - P61
무엇보다 바닥에 있는 인생들을 보면서 내가 보이기 시작했고, 나의 내면에 있었던 상처도 보게 되었다. 사울에 대한 섭섭함이 넘치다 못해 미움과 분노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 P62
"주님께 몸을 피하는 것이,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 주님께 몸을 피하는 것이, 지위가 높은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 (시편118:8-9) - P63
주님은 우선적으로 나의 상처를 날려버리라고 명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치유되어야 그들이 치유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단했다. 사울로부터 받은 모든 상처를 날려 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마치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 마냥 기분 좋은 설레임과 흥분이 밀려왔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과 같이 희망이 넘쳤다. 그때 주님을 향한 나의 결심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 P63
"주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 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주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57:7-11) - P65
그 순간부터 나는 나를 얽어 매고 있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패배감과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두렵게 하지 못했다. 깜깜한 동굴 속에서 울리기 시작한 나의 찬양은 순식간에 동굴 속을 가득 메웠고, 아름다운 화음으로 나에게 되돌아왔다. 나의 꿈은 사울의 박해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이 온 세계위에 높아지는 것이었다. 나 자신의 이름이 이스라엘 위에 높아지는 꿈이 아니라 주님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고 천하만민으로부터 영광 받으시는 꿈을 꾸게 되었다. - P65
살다 보면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다. 가정에서는 부모님과 형제에게 상처를 받고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상처를 받는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오면 일터라는 공간에서 더 다양한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특히 경쟁관계에 놓인 동료들이나 상사들로부터 쓰라린 상처를 받는다. - P65
우리의 삶의 영역은 늘 상처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정치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 더 익숙한 듯하다. 그들은 너무나 쉽게 타격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극렬한 경쟁 의식 때문일까?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노력을 주야로 실천에 옮긴다. 상처를 입히는 방법도 여러가지이다. 가장 쉬운 것은 일단 뜬금없는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이다. 모함하여 도덕성에 타격을 가하고, 뒷조사하여 상대방 약점을 캐내고, 함정에 빠뜨린다. 거기에 말에 대한 진의를 왜곡시키고 사상 문제를 거론하고 과거를 들추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인신공격을 한다. 그밖에도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은 방법으로 서로를 괴롭힌다. 그만큼 정치인들은 언제 어디서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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