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동서양을 떠나서 건축이라는 ‘같은 속‘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동양과 서양의 건축은 완전히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다른 종‘이기도 하다. - P207
나는 건축이라는 같은 속에 속한 다른 종의 동서양 건축이 동서양 간의 무역을 통해서 문화 유전자를 교환하고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낸 것이 근대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 산업혁명을 통한 재료 기술의 혁신도 한 축을 이룬다. - P208
결론적으로 서양의 근대 건축은 기술 혁신과 동양 건축 유전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2세대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을 연 사람이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다. - P208
건축은 언제나 주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다. 그러면서 만들어진 ‘문화 유전자‘는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주변으로 퍼져 나가고 그 지역 고유의 문화 유전자와 섞이게 된다. - P208
15세기에 삼각돛을 단 범선의 등장으로 공간이 더 압축되면서 유라시아 대륙의 양 극단에 위치했던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유전적으로 섞이기 시작했다. 16세기 중국산 도자기가 유럽에 대량으로 수입되었고, 17세기에는 동양 철학 책들이 유럽에서 번역되어 출판되었고, 18세기에는 조경 디자인이 바뀌었고, 19세기에는 이 변화가 미술로 전파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건축에서 문화적 이종 교배의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 P209
인간 사고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서를 작고하신 한태동 교수(연세대학교)의 논지로 풀면, 가장 먼저 미술에서 변화가 생겨나고, 음악, 철학, 건축의 순서로 일어난다. 건축이 가장 느리게 변화하는 이유는 위의 여러 가지 문화적 결과물 중에서 건축이 돈이 가장 많이 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경에서 시작해서 미술까지 적용된 이후에나 건축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건축이 바뀌기까지는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 P209
18세기 2차 산업혁명의 발달은 인간이 화석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석탄은 태양 에너지가 키운 식물이 죽어서 수억 년 동안 땅속에 묻혀서 높은 압력과 그로 인한 온도 상승의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에너지원이다. 따라서 석탄을 사용한다는 것은 태양 에너지를 식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오랜 시간 숙성시켜서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석유는 태양 에너지가 키운 식물을 먹고 자라난 동물이 역시 죽어서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가 만들어진 에너지원이다. 석탄, 석유 같은 화석 에너지는 모두 태양 에너지를 오랜 시간 저축했다가 시간을 통해 숙성시켜서 쓰는 격이다. - P209
과거 인간이 농업혁명을 통해서 농산품의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면, 화석에너지를 사용하면서는 공산품의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이 같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건축에서는 두가지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첫째는 재료적인 혁명인 강철의 도입이다. 강철을 그대로 사용해서 철골 구조를 만들었고, 강철을 철근 형태로 만들어서 콘크리트와 섞은 철근콘크리트를 만들었다. 둘째는 기계적인 혁명인 엘리베이터의 보급이다. 엘리베이터 덕분에 높은 층에 쉽게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 P210
과거에 높은 층의 공간은 두가지로 사용했다. 첫째, 최고 권력자인 제사장이 신전 높은 곳에 제단을 놓고 올라가서 사람들이 자신을 올려다보게 하여 권력을 강화하는 공간으로 사용됐다. 둘째, 사회 내 가장 낮은 권력 계층의 하녀들이 걸어 올라가서 사는 다락방으로 사용했다. - P210
같은 높이인데도 완전 반대로 사용되는 이유는 사용 빈도수에 있다. 제사장은 중요한 행사가 있을때 일 년에 몇 번만 올라가면 됐지만, 하녀들은 다락방을 하루에도 몇번씩 걸어서 오르락내리락 해야 했다. 제사장이 1년에 몇 번 신전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는 게 힘든 것은 문제가 안 됐다. 오히려 걸어 올라가기 힘든 것은 권력의 차등을 느끼게 해 주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 다른 차이점은 다락방은 올라가도 다락방 안에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신전 높은 곳의 제단에 올라간 사람은 땅에 있는 사람이 올려다볼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 P210
많은 사람에게 좋은 모습만 편집해서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가진다. 유라이크 필터로 찍고 포토샵 처리한 예쁜 사진만 인스타에 올리는 인스타 샐럽들이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1년에 몇 번 행사에서 멋진 제사장 옷을 입고 신전 꼭대기에 서서 대중에게 꾸며진 모습만 보여 줄 수 있었던 제사장은 권력을 갖게 되었다. - P210
이렇듯 높은 공간은 경우에 따라서 사회 권력의 최상층과 최하층이 사용했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의 등장으로 아무리 높은 곳도 화석에너지를 사용하여 쉽게 올라갈 수 있게 되었고, 매일 올라 가야 하는 주거 공간에서도 높은 곳은 권력을 가진 자의 차지가 되었다. 이제 건축물로 지을 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높게 지어서 사람이 공중의 공간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제 얼마나 효율적으로 높게 건물을 지을 것이냐는 문제만 남았다. 그리고 강철과 콘크리트 재료는 이전에는 지을 수 없었던 높은 층의 건물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 P211
수천 년간 서양은 돌이나 벽돌을, 동양은 목조를 주재료로 사용하였고, 상하 이동은 두 문화 모두 ‘계단‘만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20세기 들어서 나타난 강철, 콘크리트, 엘리베이터는 인류의 수천 년 건물 역사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재료와 기술에 있어서 혁명 같은 변화였다. - P211
강철과 콘크리트라는 재료와 엘리베이터라는 기계, 이 두 가지 기술 혁명이 전 세계의 건축을 바꾸었다. 이 두 기술의 힘은 너무나도 강해서 20세기부터 인류의 건축 문화는 이 두 엔진이 이끄는 대로 갔다. 결과는 지금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나 콘크리트로 높게 지어진 ‘국제주의 양식‘만 남아 있는 세상이 되었다. - P211
산업혁명과 대량 생산은 20세기에 들어서 건축에 모더니즘이라는 문화적 흐름을 만들었다. 하지만 모더니즘이 단지 기술적 혁명에 의한 결과물일 뿐일까? 나는 그러한 기존 관점에서 방향을 조금 달리하여 건축에서의 모더니즘을 ‘동양 문화가 서양에 유입되면서 생겨난 문화 변종‘이라는 측면으로 바라보려 한다. 15세기에 삼각돛의 범선이 공간을 압축시켰다면, 20세기 들어서 발명된 증기선, 기차, 자동차, 비행기는 획기적으로 공간을 압축했다. 이로써 문화 유전자의 이종 교배가 가속화되었다. - P211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는 미스 반 데어 로에라는 이름이 생소하겠지만, 그 이름을 알아두면 좋을 듯하다. 그는 음악으로 치자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인물이다. 앞에서 나온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뒤에 나올 르 코르뷔지에와 더불어 근대 건축의 4대 거장 중 한명이다. 나머지 한 명은 알바 알토Alvar Aalto라는 핀란드 건축가인데, 사실 후세 건축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그는 나머지 세 명에 비해서 비중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4인조 비틀즈에서 드럼을 치는 ‘링고 스타‘ 같다고 할까. - P212
건축에서 평면도는 일반적으로 바닥에서 1.5미터 정도 높이에서 칼로 잘라서 그 윗부분 벽과 지붕을 들어내고 그린 그림이라고 보면 된다. - P216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지붕은 기둥보다 더 멀리 뻗어 나가서 처마가 생겨났고, 만들어진 처마 공간은 내부와 외부의 중간 지대적인 성격인 ‘사이 공간‘을 만들어 내고 이 공간은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한옥에서도 처마 밑에 있는 툇마루 덕분에 건축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한옥에서는 툇마루가 실내인지, 외부인지 불명확하다. 툇마루는 지붕과 바닥은 있지만 벽이 없는 공간이다. 건축의 내부 공간을 규정하는 지붕, 벽, 바닥이라는 세 가지 요소 중에서 두가지만 있기 때문이다. - P220
공간의 성격을 살펴보면 ‘허블 하우스Hubble House(1935)‘는 동서양의 특성을 반반씩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즉, 동서양 건축의 ‘짬짜면‘ 같은 디자인이다. - P234
‘판스워스 하우스Fansworth House‘(1946~1950)‘는 가끔씩 강이 범람하면 침수되는 지역에 지어져 있어서, 침수를 피하기 위해 집을 땅에서 조금 띄워서 지어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 미스는 기둥 구조를 사용하여 집을 반 층 정도 올려서 지었는데, 집의 거실이 있는 층에 올라가기 전 중간 정도 높이에 데크를 설치했다. 그 데크를 밟고 올라가면 지붕이 덮인 두 번째 데크 공간이 나온다. 그 공간을 거쳐서 집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 P236
공간의 구성은 우리나라 한옥과 비슷하다. 한옥에서 방에 들어가려면 땅에서 계단을 밟고 기단에 올라가고, 거기서 디딤돌을 딛고 대청마루에 올라가야 한다. 지붕이 덮고 있지만 앞뒤로는 뚫린 대청마루를 거쳐서 안방으로 들어간다. 미스의 ‘판스워스 하우스‘에서 보이는 첫 번째 데크는 기단부, 두 번째 데크는 대청마루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들어간 집은 기둥 구조로, 벽이 없고 모두 유리로 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 P236
미스는 서양 건축에 철골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만든 기둥식 구조를 적극 도입함으로써 기존에는 찾아보기 힘든 성격의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의 건축은 기둥과 지붕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며, 벽을 구조로부터 해방시킨 건물이었다. 이는 기본적으로 동양의 나무 기둥을 철골 기둥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 P239
하지만 그의 건축이 동양의 전통 건축과 확실하게 다른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창문에 유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기존의 동양 건축에는 창호지로 만든 창문이 달려 있었다면, 미스는 철골기둥 구조로 벽이 필요 없어지자 벽이 있던 자리에 유리를 사용하여 내부와 외부를 극적으로 연결시켜 주었다. 그의 건축은 한마디로 ‘나무 기둥을 철골 기둥으로, 창호지를 유리창으로‘ 바꾼 건축 공간이었다. - P239
기본 구성은 수천 년 동안 내려온 동양의 구법을 따르면서 20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철과 유리라는 재료를 적극 도입하여 새로운 문화적 변종을 만든 사람이 미스 반 데어 로에다. - P239
근대 건축의 5원칙은 근대 건축이라면 가질 법한 다섯 가지 특징을 코르뷔지에가 정리해 놓은 것이다. 여기서 간단히 소개한다면, 1. 필로티, 2. 옥상 정원, 3. 자유로운 평면, 4. 자유로운 입면, 5. 리본 수평창이다. - P240
엄밀히 말하자면 5번 ‘리본 수평창‘은 4번 ‘자유로운 입면‘의 하위개념이어서 ‘근대 건축의 4원칙이면 충분했으나, 코르뷔지에는 고전 건축 원리들이 주로 ‘5원칙‘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억지로 하나를 더 해서 5원칙으로 만든 것이다. - P241
그런데 사실 르 코르뷔지에가 이야기한 근대 건축의 5원칙이라는 것이 두 번째 항목인 옥상 정원을 제외하고 나면 다 동양의 기둥식 구조의 건축에서 보이는 디자인과 거의 똑같다. - P241
‘필로티 덕분에 이제는 땅의 습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 P241
코르뷔지에의 돔이노 시스템Dom-ino. ‘혁신적 집‘이란 뜻의 돔이노 시스템은 동양 건축의 목구조와 동일한 개념의 공간 구축 방식이다. - P242
근대 건축의 5원칙 중 3. 4. 5번인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 가로로 긴 창문 역시 기둥 구조에서 쉽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 P244
근대 건축의 5원칙과 동양 건축의 다른 점이라면 나무 기둥에서 철근콘크리트 기둥으로 바뀐 것이고, 창호지 창문 대신에 유리창을 넣은 정도다. 또 하나 차이점을 굳이 찾는다면 동양의 건축물들은 창문을 기둥과 기둥 사이에 두었다면, 르 코르뷔지에의 창문은 기둥보다 조금 앞으로 나와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 건축의 5원칙은 동양의 기둥식구조의 건축 양식이 서양에 전파되어 산업혁명의 새로운 재료인 콘크리트와 함께 만들어진 문화적 변종이라고 볼 수 있다. - P244
문화 변종의 탄생은 패러다임 변화의 결과다. 생각은 창작자 자신이 의식을 하건 안하건 상관없이 영향을 받고 진화하는 법이다. - P245
구조적으로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도록 설계된 벽인 내력벽 - P248
슬래브: 콘크리트 바닥이나 양옥의 지붕처럼 콘크리트를 부어서 한 장의 판처럼 만든 구조물 - P405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건물의 정면을 디자인할 때 진입로를 정면에 수직으로 배치하여 진입하면서 2차원의 평면적인 건물 정면이 한눈에 들어오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보이는 정면은 황금 분할에 의해서 디자인되었다. - P266
하지만 말기 작품인 ‘카펜터 센터‘에서 코르뷔지에는 건물의 정면에 수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버렸다. 대신에 인도와 평행하게 시작한 경사로는 곡선 형태로 휘어지면서 건물에 접근하다가, 건물에 들어가기 직전에야 비로소 정면과 수직으로 만나게 되어 있다. - P267
‘카펜터 센터‘에는 정면에 수직으로 놓인 진입로가 없기에 건물을 객관적으로, 전체적으로 인지하는 순간이 없다. 다만, 사람들은 건물 입면의 단편적인 투시도만 기억한다. 그리고 이러한 단편적 공간 이미지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다시 재구성되어 ‘카펜터 센터‘라는 건물을 머릿속에 만들 뿐이다. 이 같은 디자인 방식은 17세기 영국의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 방식과 동일하다.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에 처음 보였던 1인칭 관점의 디자인이 3백 년 가까이 지나서야 르 코르뷔지에에 의해 건축물에 적용되어 나타난 것이다. - P267
코르뷔지에는 ‘카펜터 센터‘에서 격자형 기둥 구조 시스템을 사용하고, 흐름이 있는 유동적인 사이 공간을 연출하고, 빈 공간을 적극 도입하였으며, 1인칭 관점을 이용하여 상대적인 가치를 가진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 모든 특징은 동양 건축의 특징과 일치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철근콘크리트를 이용한 노출 콘크리트로 외관을 만들었고, 형태는 동양의 건축물과 완전히 다르다. ‘카펜터 센터‘는 동양적 문화 유전자와 20세기 산업화가 완전하게 융합되어 새로운 변종으로 만들어진 성공적인 혁신이다. - P268
새로운 생각은 서로 다른 것이 만나서 융합할 때 이루어진다. 보통 이런 다른 생각들은 충돌하고 모순되어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이 새로운 생각으로 통합되면서 문화는 한 단계 발전한다. - P272
모순을 새로운 이론으로 화합시키는 방식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과학이다.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에 의하면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지구상에서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관찰해서 규칙을 찾아낸 갈릴레오‘의 생각과 ‘아주 거대한 천체의 움직임을 연구한 케플러‘의 연구를 합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 P272
패러데이와 맥스웰은 ‘전기에 대한 연구‘와 ‘자기에 대한 연구‘를 합쳐서 전자기 방정식을 완성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의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특수 상대성이론을 완성했다. 그리고 ‘뉴턴의 역학‘과 자신의 ‘특수 상대성이론‘ 사이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일반 상대성이론‘을 완성했다. 이처럼 역사상 뛰어난 생각은 모순되는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로 화합시키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 P272
두 거장(미스 반 데어 로에와 코르뷔지에)이 이룬 업적은 ‘새로운 기술‘과 ‘다른 지역의 문화유전자‘를 섞은 것이다. 그들은 공간의 구축 방식으로 기둥 구조라는 동양의 수천 년 된 아이디어를 사용하고 거기에 최신 철골이나 철근콘크리트 기술을 합쳐서 새로운 근대 건축의 장을 열었다. - P273
미스와 코르뷔지에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명의 건축가가 유럽건축가였기 때문이다. 유럽은 무역을 통해서 외부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유럽은 산업혁명의 발생지로 산업화기술이 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하였다. 그런 조건상에서 수입된 동양의 문화 유전자와 유럽의 기술혁명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 미스와 코르뷔지에의 공간이다. 15세기 대항해 시대의 시작부터 19세기까지의 문화 교류가 있었기에 20세기 초반에 유럽에서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 P273
미스와 코르뷔지에가 신기술과 동양의 문화 유전자를 섞었다면 다음에 소개할 건축가 두 명은 콘크리트 기술 위에 동양의 문화 유전자와 서양의 기하학적 성격의 문화 유전자를 섞은 건축가들이다. 한 명은 20세기 후반 최고의 건축가로 일컬어지는 루이스 칸Louis Kahn(1901~1974)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1941~)다. - P273
20세기 전반부가 동서양 공간의 이종 교배 1세대라고 한다면 20세기 후반부는 이종 교배 2세대가 나온 시대다. - P277
요즘은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빌딩들이 다 비슷하게 지어져 있다. 뉴욕, 두바이, 서울, 방콕, 상하이, 도쿄의 현대식 건물은 모두 네모난 상자 모양에, 유리창이 많고 고층으로 지어진다. 이렇게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은 양식으로 지어지는것을 ‘국제주의 양식‘이라고 한다. - P277
20세기 후반에 지어진 건축물의 대부분은 국제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르 코르뷔지에가 동서양의 건축 공간을 융합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공간을 선보였지만 그 이후의 건축은 국제주의 양식이라는 획일화된 공간으로 귀결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지역 문화를 배재한 상태에서 철근콘크리트, 엘리베이터, 유리 같은 기술만 적용했기 때문이다. - P277
앞서서 설명한 미스와 코르뷔지에 역시 철골 구조, 철근콘크리트, 유리 같은 새로운 기술과 재료를 그들의 건축에 도입했다. 하지만 그 둘은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문화적 요소까지 융합했기에 새로운 공간을 창조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창조는 문화와 기술 두 마리 토끼를 잡았을 때 만들어진다. - P277
문화적 요소의 융합이 배제된 상태에서 기술적인 부분만 적용하면 다양성이 소멸된다. 21세기 문화 다양성의 멸종 문제는 기술적 요소만 도입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 P277
국제주의가 장악했던 20세기 후반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명제의 시대였다. 따라서 특별한 기능을 제공하지 못하는 빈 공간은 건축에서 존재 의미를 증명하지 못하고 퇴출되었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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