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에만 유현준 저자의 책을 무려 5권이나 읽었다. 책들간에 서로 겹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읽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시간이었다.

오늘 읽는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약간 느낌이 다른 책이다. 알라딘 분류 기준으로 내가 앞서 읽었던 책들이 교양 인문학의 범주에 속해있었다면 오늘 시작하는 이 책은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이 책에 대한 다른 분들의 리뷰를 잠깐 봤었는데 이 책도 저자가 저자의 다른 책들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공간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얘기에 근거해 책의 목차를 살짝 훑어봤는데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공간들도 물론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공간들도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공간으로의 여행을 떠나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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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p.100, 101에 밑줄친 문장에서 저자의 깨달음을 엿볼 수 있었는데, 여기 일일이 적지는 않았지만 본문에 나오는 간단한 일화들을 통해 저자가 쓴 책에 나왔던 생각들이 어디서부터 유래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쓴 글은 결국 자기가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것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쓰고보니 당연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문득 이런 속담도 생각났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즉,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다. 이를 조금 달리 말하면 내가 경험한대로 내 말이나 생각이 튀어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래서 가급적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느끼려나보다.


p.109에 밑줄 친 이중 벽에 대한 설명은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이 디자인 한 ‘MIT 채플‘이라는 교회의 독특한 벽 구조에 대한 것인데, 이를 통해 소리가 증폭되는 원리에 대해 잠시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사람은 일생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 P13

책, 영화, 음악, 미술 등 예술도 한 사람을 이루는 모태가 된다. 이런 모든 경험이 모여 한 명의 사람을 만든다. - P13

시간을 보낸 공간도 그 사람을 만든다. 이 책은 나를 만든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 P13

우리가 소개팅에 나가서 할 말이 없으면 가족과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본다. 그 이야기들을 통해 그 사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P13

내가 지내온 공간들과 좋아하는 공간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마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 P13

나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것 - P14

같은 공간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된다. - P14

‘아는 만큼 보인다‘ - P14

버려진 장난감은 그대로는 별 가치가 없지만, 서로 다른 것들을 연결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 세상에 하나뿐인 장난감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나만의 가치,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첫걸음이었다. - P16

우리의 도시는 부서진 장난감 더미와도 같다. 곳곳에 쓸모없는 공간들, 버려진 공간들, 쓰레기 같은 건축물들뿐이지만 그 와중에도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건축가의 눈으로 보면 도시에는 재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 P16

공간에 나만의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배운다면 이 도시는 새롭게 재창조될 수 있다. 해외로만 여행을 갈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이 일어나는 여기서도 당신만의 새로운 공간을 ‘발명‘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추억을 만들 수 있다. - P16

이 책을 읽고 여러분만의 공간을 찾고 주변에 나누기를 바란다. 남들이 정한 ‘핫 플레이스‘만 찾아다니는 것은 기성품만을 소비하는 것과 같다. - P17

골목길 계단처럼 별 볼 일 없는 도시의 요소도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통해 바라보면 특별한 공간이 된다. - P25

동화 속에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파랑새 - P28

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의 마지막 주택 건축물, 카사 밀라Casa Mila. - P31

나는 여전히 보라색을 좋아한다. - P31

계단참은 계단 위층과 아래층을 연결하는 평탄한 공간을 말한다. - P55

과거 학교에서처럼 지금도 계단실은 도시 속에서도 숨겨진 공간이다. 계단실은 주로 창문이 없다. 창문이 없는 공간은 비밀스럽다. 벽으로 둘러싸인 계단실은 때로는 방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계단실은 연인들의 연애 공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 P58

나는 공간을 감정과 연관시켜 기억한다. 다양한 공간과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한의원 약초 서랍처럼 여러 개 있다. - P87

디자인을 할 때는 내가 그 공간에서 어떠한 느낌을 받기 원하는지를 먼저 생각한 후 그 서랍에서 필요한 공간을 찾아 대입하는 식으로 작업한다. - P87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기억들이 나를 먹고살게 한다. - P87

이곳(보스턴의 뉴베리 스트리트)의 특징은 인도의 한 자리에서 두 개의 가게를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 P99

이 거리(보스턴의 뉴베리 스트리트)를 통해 가게 입구의 수가 걷고싶은 거리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5년에 출간한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쓴 이벤트 밀도 개념은 뉴베리 스트리트 Newbury Street 덕분에 구상하게 된 것이다. - P99

바라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불쾌할 수 있다는 것 - P100

보는 것은 권력 및 인간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 P101

내가 즐겨 가던 가게가 사라지는 것은 일종의 수몰지역 난민이 되는 기분이다. 가게가 사라지면 나의 추억과 그 시절 그 시간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 - P101

홍대나 가로수길의 임대료가 비싸서 원주민 가게가 떠나는 것이 안 좋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스타벅스나 유니클로 같은 다국적 기업만이 앵커 테넌트 Anchor Tenant가 아니다. 그 지역에 오래된 가게도 앵커테넌트다. 우리의 기억과 함께 묶여있는 장소가 앵커 테넌트다. - P101

요즘은 우리의 기억들이 각종 홈페이지와 연결되어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내 사진을 올리면 그 공간이 나의 추억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추억이 연결된 장소가 고향이다. 그런 홈페이지가 내 고향이다. 그래서 싸이월드가 폐쇄되었을 때 우리는 일종의 ‘디지털 난민‘이 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 P102

지금 싸이월드가 다시 회복하려고 하지만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싸이월드로 사람이 돌아오게 하는 것은 마치 안 좋게 헤어진 연인이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 P102

벽을 이렇듯 이중으로 만든 것은 음향적인 이유가 크다. 우선 구불구불한 벽은 음을 난반사하고, 바깥쪽 원형 벽과 안쪽의 물결치는 듯한 벽 사이의 빈 공간이 음향적 공명을 만들어낸다. 물결치는 듯한 벽돌 벽은 벽돌 사이에 공간을 두고 쌓아서 벽에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으로 소리가 들어가 빈 공간에서 음이 증폭되어 나온다. 그래서 공간이 좁아도 깊이 있는 음향이 연출된다. 우리가 휴대폰의 작은 스피커를 종이컵에 넣으면 괜찮은 스피커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다. - P109

공간이 어떠한 시퀀스를 가지고 진입했을 때 최종 공간에 다른 영향을 줄 수 있다 - P112

버려진 공간은 소중하다. 이 공간들은 모두 여러분이 써주기를 기다리는 공간이다. 버려진 공간이 여러분의 상상력과 만나면 대단한 장소가 된다. - P113

공간은 인간관계를 규정한다. - P114

누군가가 내 방을 통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느낌은 뭐랄까, 회장 비서실에서 잠을 자는 듯한 느낌이다. 공간은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는 묘한 힘이 있다 - P115

부부가 같은 방을 사용하다가 한 명이 자리를 비우면 방의 냄새가 달라진다. 남녀가 다른 체취를 가지는데 두 체취가 섞인 것과 혼자만의 것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좀 그로테스크하지만 좁은 기숙사 방의 두 남자는 그렇게 각자의 체취로 공간을 함께 채색하는 밀접한 사이인 것이다. - P116

권력자의 공간은 원래 들어가는 절차가 복잡하다. 회장님 방은 비서실을 거쳐서 들어간다. - P116

1994년 스물다섯 살 때 내 별명은 ‘포틴 아워 fourteen hour‘였는데, 이유는 하루에 열네 시간을 스튜디오에 계속 앉아 있어서였다. 사실 거의 종일 스튜디오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모형을 만들었다. - P119

건축과 학생에게는 기숙사 방보다는 스튜디오 자리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매 학기가 시작되면 스튜디오의 의자와 책상을 꾸미는 데 돈을 아낌없이 썼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가장 많은 삶을 빚는 공간이다. 그곳이 좋아야 그 사람의 삶의 질도 좋아진다. - P119

고산병은 산소가 부족해 온몸이 쑤시면서 아픈 증상이 생기는데, - P127

누구나 머릿속에 가장 멋진 상황을 그리고 있는데 그것을 실제로 만났을 때는 그 감동이 더 클 것이다. - P129

엑스터 도서관은 거장 루이스 칸Louis Kahn이 미국의 명문 사립고 필립스 엑스터에 설계한 학생 도서관이다. - P131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이 예상하지 못하고 그냥 일상적인 건물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안에 있는 반전의 공간에 감동과 충격이 더 컸다. 인생도 그렇다. - P132

전 세계 곳곳에 여러 가지의 피라미드가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티칼은 가장 경사가 급한 피라미드다. 그리고 색상도 가장 어둡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밝은 모래색이고 멕시코의 마야문명 피라미드들은 밝은 회색을 띤다. 그런데 티칼의 피라미드는 거의 검정색에 가까운 느낌이다. 어두운 톤의 색상 때문에 그 어느 건축물보다도 무게감이 느껴지고 급한 경사도 때문에 그 앞에 서면 압도되는 느낌이 있다. - P135

나중에 <아포칼립토Apocalypto, 2006>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 건축물(티칼)의 계단으로 제물로 바쳐진 사람의 목이 굴러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 계단을 기어 올라가서 높은 제단 위에 앉아본 느낌은 대단했다.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이 위에 올라선 제사장은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겠구나‘라고 느껴졌다. 수천 수만명의 사람이 쳐다보는 그 정점에 선 느낌이다. 요즘 세상 같으면 수만 명의 시선 집중을 받는 공연장의 가수나 TV 카메라 앞에 섰을때의 느낌과도 같을 것이다. - P135

건축은 일상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나는 건축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도시에 가서 한 달 이상 살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건축을 하나의 체험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36

호텔에 묵으면서 식당에서 밥을 사 먹어서는 안 되고, 그 동네 시장에서 장을 봐서 음식을 해 먹을 때 비로소 현지인의 마음으로 그도시를 느낄 수 있다. - P136

도시의 주요 장소가 걸어서 연결되어야 하며 다양한 크기의 외부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한 달동안 로마에 있으면서 배울 수 있었다. - P137

여행을 할 때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면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다른 사람이 만든 교과서를 읽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 P138

여행을 하면서 그곳에서는 어디가 좋은지 전혀 모른 상태에서 여행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가서 정말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온 경우도 허다하다. 예를 들어 이스탄불까지 고생해서 갔는데 정말 스펙터클한 지하 저수조인 ‘예레바탄 사라이Basilica Cistern‘를 못보고 오는 것 같은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 P138

때로는 예상치 못한 나만의 경험을 얻기 때문에 무계획 여행의 매력을 거부하기 어렵다. 무계획 여행 덕분에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로마의 ‘성 이그나티우스 교회Church of St. Ignatius‘에 있는 안드레아 포초Andrea Pozzo의 그림을 본 것이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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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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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서 이 책의 전반적인 리뷰와 함께 뇌과학 분야까지 내가 느끼고 생각해봤던 것들에 대해 적어보았고 오늘은 생물학 파트에 나왔던 내용들과 그에 관한 나의 생각들을 적어보겠다.


저자는 뇌과학에서 뇌를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p.38) 라고 정의했었는데, 생물학에 나오는 유전자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유전자는 목적의식을 가진 행위 주체가 아니‘(p.123)라고 말하는데 이로부터 파생된 것이 ‘삶의 의미‘와 관련된 얘기다.

뇌과학에서 말하는 뇌와 지금 여기 생물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유전자 모두 과학의 관점에서는 그냥 물리적 실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 뇌과학적으로든 생물학적으로든 이들(뇌와 유전자)에게 주어진 어떤 철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의 의미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결국 삶의 의미라는 것은 과학에서 찾을 수 없기에 개개인이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독자인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인문학이라는 것이 효용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독자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저자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p.127)고 말한다. 즉, 인문학이 각 사람의 어떤 철학적인 삶의 의미를 찾는데 유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과학이 말하기 힘든 부분을 보완하는 보완재 성격으로 인문학을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이 부분을 통해 인문학의 쓸모 혹은 유용성에 대해 한 층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본문을 읽으면서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잘 정리해서 표현했다고 생각한 문장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대단히 복잡하고 독특하게 발전한 생존기계다. 유전자가 명하는 본능에 따라 사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고 감정을 느끼며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p.128)

이 문장은 앞선 파트였던 뇌과학에서 언급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생존 기계로 지칭되는 물질적 실체인 ‘나‘ 와 삶의 의미를 탐색하는 철학적 자아인 ‘나‘ , 이렇게 두 종류의 ‘나‘ 에 대해 잘 파악하고 알아가고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주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이어 읽다가 저자가 ‘생물학 이론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p.117)고 말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꽤나 눈길을 끄는 얘기였다. 이유인즉, 저자의 정치 성향이 좌파에 가깝다는 걸 독자인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좌파적 성격을 많이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주의 체제의 한계점에 대해 가감없이 논했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본문에서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는 바로 마르크스가 인간의 본능을 너무나도 이상적인 것으로 가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이기적인 본능을 갖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한 결과로 인해 사회주의가 무너졌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었다.

솔직히 마르크스가 얘기했던 이상대로만 현실 사회가 구현되었다면 부자와 가난한 자의 구별없이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인문학적 지식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에 대한 과학적(여기서는 생물학적)지식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사회주의가 실패하게 된 이유를 분석하면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과학적인 사실들을 결코 무시하거나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역행하여 어떤 일을 추진한다면 잠깐은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인간 본능에 따라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실패 사례가 명백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에 나왔던 한 문장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국민 대다수가 ‘태만‘ 을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사회는 혁신과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소련은 미국이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과 싸우다 졌다.‘ (p.143)

위에서 내가 주저리주저리 적은 내용들보다 어쩌면 p.143에 나온 이 문장이 훨씬 임팩트 있게 느껴지는 건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닐듯 하다.


뒤이어서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사례 중 하나는 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는 심사평가원 이야기였다. 이것은 저자가 과거 참여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경험했던 일들에 대해 서술한 것인데, 이 사례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독자들이 보다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사례를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의료서비스 시장에는 환자로 대변되는 의료서비스의 소비자(수요자)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공급자) 이렇게 두 그룹이 있다. 여기서 공급자인 의사라는 역할의 본질은 아픈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지만, 결국 의사들의 뇌 또한 다른 사람들의 뇌와 동일하게 생존이라는 본업에 충실하다는 게 이 사례의 키포인트다. 이러한 생존 본능으로 인해 의사들은 가벼운 처방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과잉진료를 하고 공단에 과다한 금액을 청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사들의 이기적인 본능으로 인해 과잉청구된 금액을 적정한 금액으로 바로잡고 이외의 추가적인 감시감독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 바로 건강보험공단의 심사평가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완벽하게 모든 것을 감시감독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기관이 있음으로 해서 의사들의 과잉진료로 인한 부담금 과잉청구 같은 불합리한 일들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생존 본능과 관련하여 본문에 나온 임팩트 있는 문장 하나를 소개한다.

‘욕망이 이성보다, 이익이 도덕보다 힘이 세다.‘ (p.144)

개인적으로 이 문장과 관련된 과거의 기억들이 문득 떠올랐다. 과거에 나왔던 고전 소설들(예를 들어 세계 문학 같은 것들)을 읽다보면 등장 인물들이 이성에 입각해서 행동하기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행동들을 하는 것들을 보게 되는데, 이로 인해 파생되는 각종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것들이 생각났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개인적으로 ‘본능을 이기는 이성은 없다‘ 라는 나름의 철학을 갖게 되었는데 이번에 읽게 된 이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 사례를 보면서 본능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잘 만드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추가로 더 해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런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결국 본능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없이는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덤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문득 이런 말이 생각 났다. ‘아는 것이 힘이다.‘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많이 알면 알수록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이다. 여러모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게 도움을 주신 저자께 감사드린다.


생물학 파트 관련 포스팅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다음 포스팅에선 화학 파트에 대해 리뷰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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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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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문과 출신 사람들에게 과학이라는 분야는 뭔가 나와는 거리가 먼 분야 혹은 나랑은 관련없는 분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거라고 본다. 지금 이 리뷰를 쓰고 있는 나 또한 그랬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여타 다른 과목들과는 다르게 과학은 과목자체에 대한 어떤 호기심이나 탐구심보다는 그저 시험을 봐야하니까 그리고 전체 평균점수를 깎아 먹지 않기 위해 공부해야 하는 정도로만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과학이라는 과목은 그저 시험 때만 바짝 외웠다가 시험 끝나면 머릿속에서 다 휘발되고 사라지는 그런 과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바보같고 어리석은 생각과 태도였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우주에 갈 일도 없는데 왜 우주에 대해 알아야 하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주기율표의 원소들은 도대체 왜 외워야 하는지 그리고 각종 물리공식들은 실생활에서 과연 필요가 있긴 한건가 하는 회의감, 마지막으로 생물학 용어들은 왜 그리 난해하게만 느껴지는지 등등 진짜 과학의 세부분야들에 대해 필요성과 흥미를 거의 느끼지 못했던 게 과거의 나였다. 한마디로 그냥 바보 중의 바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서 지금도 중학교에서 과학고로 진학하는 과학에 재능이 있는 똑똑한 학생들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이렇게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나 였는데, 성인이 되고 시간이 지나서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가 우연히 지난 5월경에《최재천의 곤충사회》라는 책을 읽고 과학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샘솟아서 연관된 책을 찾다가 알게 되어 읽게 된 책이 바로《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다.


이 책이 다른 과학 책들과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바로 저자가 문과 출신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여타의 과학 교양서들은 과학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이과 출신의 과학 전공자들이 저자인 경우들이 많은데, 이 책은 저자가 문과 출신이다보니 일반적으로 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문과 출신의 독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쓰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느낌은 전혀 근거없는 느낌이 아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과학 교양서들을 닥치는대로 읽고 공부하며 자신이 느끼거나 생각했던 것들을 서술하면서 문과 출신 사람들이 과학을 접하기 좋은 순서대로 책의 내용을 배치하였다고 말한다.

목차를 보면 일반인들에게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한 뇌과학부터 시작하여 여기서 파생되는 생물학, 생물학을 이해하기 위한 화학, 화학을 이해하기 위한 물리학, 마지막에는 우주의 언어로 대변되는 수학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호기심을 심화시키는 형태로 목차를 구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의 말미에 나왔던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저자는 이 책이 철저히 문과 출신 독자들을 주요 타겟으로 했음을 밝히는데, 자신이 본문에 썼던 내용들 중에 이과출신들이 보면 오류라고 생각할만한 것들이 있을까 두렵다는 고백도 한다. 솔직히 문과 사람인 나의 입장에서는 저자가 본문에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 각종 과학지식들만 소화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간혹 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비교적 풍부하신 분들이 이 책을 리뷰한 글들을 보다보면 자신이 이미 거의 다 알고 있는 것들이 나와서 이 책 내용의 깊이가 얕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들을 보며 과알못(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나같은 사람과는 달리 과학에 관심있고 깊이가 어느정도 있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앞서 저자는 이 책을 문과 출신 사람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설정하고 썼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혹여나 저자는 딱히 원치는 않지만 만약 이과출신의 독자들 중에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과학 교양서를 쓰는 분들이 있다면 앞으로 책을 쓸 때 과학을 잘 모르는 독자들의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이 책을 활용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덧붙인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길었고 본격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독자인 내가 느꼈던 내용들 중 핵심적인 것들 위주로 리뷰를 시작해보겠다.

가장 먼저 저자는 과학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오랫동안 공부해왔던 인문학의 토대가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자아를 두가지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하나는 물질로 존재하는 ‘나‘ , 다른 하나는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 이다. 전자의 ‘나‘는 과학의 영역이고, 후자의 ‘나‘는 인문학의 영역이다.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기반하여 철학적인 생각을 하는 ‘나‘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물질로 존재하는 ‘나‘ 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는 듯했다. 독자인 나는 이것을 물질로 이루어진 외형이 없는 상태에서 생각이라는 것이 툭 튀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였는데, 저자께서도 이러한 내 생각에 동의하실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러한 생각들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이러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심오한 영역을 다루는 것처럼 느껴졌다. 읽으면서 때론 머리가 지끈지끈해지기도 했는데 여기서 어떤 의미를 찾아보자면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예 이런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텐데, 생각의 폭을 조금이라도 확장시켜보는 시도를 해봤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었다.

저자는 ‘공부는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다. 공부를 온전하게 하려면 당연히 과학을 알아야 한다‘(p.8) 라는 말을 하는데,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를 포함한 문과 출신들의 경우 앞에 나온 두 가지인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것에는 익숙할지 몰라도 뒤에 나온 두 가지인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경우가 많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을 공부한다면 뒤의 두 가지인 생명과 우주를 이해하는 시각까지 갖추게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눈이 더 크게 확장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게 하는 부분이었다.

또한 ‘먹는 것은 몸이 되고 읽는 것은 생각이 된다‘(p.8) 는 문장도 나오는데, 지극히 문과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나를 이루는 것이 단지 어떤 생각이나 관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리적인 몸뚱아리(?)도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게 해준 문장이었다. 문과 출신이라면 상대적으로 어떤 물리적인 실체보다는 관념적인 철학 같은 것에 집중할 때가 많은데, 본문에 나온 이 문장을 곱씹어 읽으면서 인문학과 과학이 따로 별개의 것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이 ‘나‘라는 실체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두 축 혹은 두 날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을 읽다보면 저자가 읽었던 과학 교양서 중 리처드 파인만이 쓴 책에 나왔던 용어가 하나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거만한 바보‘(p.18) 라는 말이었다. 독자에 따라 이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 말은 인문학과 과학 중에 어느 한 쪽은 정말 심도있게 알지만 다른 한 쪽 분야에는 무지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 분야에 정통한 관계로 ‘야, 나 이정도 알아.‘ 같은 태도를 보이지만 자신이 아는 분야 외의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무지하면서도 마치 자신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내가 공부 좀 했다고 혹은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거들먹거리는 모든 인간들을 지칭하는 말인 것이다. 뭐 딱히 내세울 것도 없긴하지만 독자인 나는 살면서 이런 적이 없었는지 한 번쯤 스스로를 돌아보고 만약 있었다면 반성하고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인문학이란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는 욕망의 산물(p.27)이라는 말과 함께 이것이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때가 인문학의 위기의 때라는 점을 지적하는데, 과학이 최신 지식들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에 비해 인문학은 자신들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 갇힌채 안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며 새로운 사실을 지속적으로 찾아내려는 과학과 소통하고 교류하려는 노력만이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p.29).

이 부분을 보면서 어떤 학문이라도 화석처럼 굳어지기보다는 역동적으로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지속적으로 최신 지식들을 업데이트하면서 진화해나가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없다. 모든 건 다 변한다. 변화의 흐름에 역행하지 말고 그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는 것을 저자가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누구인지 어찌 알겠느냐‘(p.30) 는 말을 하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던 ‘먹는 것은 몸이 되고 읽는 것은 생각이 된다‘(p.8) 는 문장과도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고 느껴졌다. 저자는 인문학의 익숙한 질문 형식은 ‘나는 누구인가‘ 인 반면 과학의 질문 형식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말을 한다. p.30에 나온 문장을 좀 더 알기 쉽게 풀어보자면 ‘내가 물리적으로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지를 알고난 뒤에 내가 누구인지, 즉 인문학에서 말하는 철학적 자아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하여 본문에 나온 문장 하나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정신은 물질이 아니지만 물질이 없으면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p.32)

어쨌든 이 얘기를 통해 과학적인 시각과 인문학적인 시각 두 가지 모두가 있어야 ‘나‘라는 사람의 실체를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는 과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로도 바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나 자신‘에 대해 반쪽만 알고 나머지 반쪽은 전혀 모른채 살아왔다는 생각에 ‘내 자신‘에게 괜시리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뒤이어 읽다가 문득 자존감이 높아지게 만드는 문장 하나가 나왔는데 간단히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내 몸과 똑같은 배열을 가진 원자집합은 우주 어디에도 없다‘(p.32)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문장처럼 느껴졌을수도 있지만 독자인 나는 이 문장을 통해 넓디넓은 우주에서 고유한 존재가 바로 ‘나‘ 라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하며 ‘나‘ 라는 사람이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표현 방식이 문학적이기보다는 과학적이다보니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의미만 놓고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굉장히 좋은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 통일성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문장들도 있는데 몇 가지만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내 몸을 이루는 물질은 별과 행성을 이루는 물질과 같다.‘(p.32)

‘지구 생물의 유전자는 모두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있다.‘(p.32)

이 두 문장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어떤 하나의 물체에서 모든 것이 진화했다는 일원론의 생각에 기반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는 각기 다를 수 있어도 속에 내재된 근원의 물질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통해 우주를 뜻하는 단어 중 하나인 universe에서 파생된 형용사인 universal이 ‘보편적인‘ , ‘일반적인‘ 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이유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어지는 내용에서 ‘과학은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물질의 증거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p.32) 는 말을 하는데, 이는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인문학의 성격이 다소 주관적인 반면 과학은 지극히 사실에 입각하여 말하는 객관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어떤 추론이나 추측보다는 명백하고 확실하게 드러난 증거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설령 인문학자라 하더라도 과학이 인문학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워보인다.

하지만 저자가 인문학자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순순히 물러서지만은 않는 듯하다. 저자는 과학이 객관성이라는 측면에서 힘이 센 것은 맞지만, ‘원자는 생각하지 않지만 원자의 집합인 인간은 생각한다‘는 점을 근거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인문학 둘 다 필요하다고 말한다(p.37). 이는 마치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라는 말이 생각나게 한다. 어느 한 쪽이 힘이 쎄더라도 힘이 약한 쪽도 결코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간 관계의 모습과 과학과 인문학 간의 관계의 모습이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저자는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근거하여 인간의 뇌를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만든 기계‘(p.38)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뇌는 단지 기계일뿐 이 기계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는 결국 앞에서 언급했던 과학에서 말하는 물리적인 ‘나‘ 와 인문학에서 말하는 철학적 사고를 하는 ‘나‘ 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말로 귀결된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과학의 사실을 받아들이고 과학의 이론을 활용하면 인간과 사회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p.39)는 얘기로도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뒤이어 저자는 앞서 언급했던 과학적 질문인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는 뇌다‘ 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대답을 사실을 기술한 문장이 아닌 자아의 거처를 드러내는 문학적 표현(p.47)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뇌를 떠나서는 철학적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p.48) 였다고 말한다. 또한 철학적 자아의 모든 감정과 생각은 뇌가 작동해서 생긴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러한 설명을 통해 독자인 나는 물질인 뇌와 물질이 아닌 철학적 자아가 서로 얽히고 설켜서 나온 대답인 ‘나는 뇌다‘ 라는 말이 너무나도 가슴 깊이 와닿게 느껴졌다. 얼핏 보면 단순한 대답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의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생각해보면 결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뇌와 관련된 다소 디테일한 내용들이 쭉 나오는데 보다 자세한 내용들이 궁금하신 분들에게는 저자가 본문에 정리해놓은 뇌와 관련된 내용들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직접 책을 구해서 읽어 보시길 추천드린다.

추가로 저자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경제학에 나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든지 한계생산력분배이론 등과 같은 것들을 사용하여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들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뇌에 있는 신경세포의 성질이 경제학에 나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유사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것은 문과출신(경제학과 출신)인 저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이력으로 인해 추가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었기에 참으로 신선하게 느껴졌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 중에서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으로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차이점을 비교하는 부분이 있었다. 먼저 과학자는 자신이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만 인문학자는 잘 몰라도 일단 아는 것처럼 둘러댄다는 것이었다(p.68).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저자는 이렇게 둘러대는 것도 인문학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독자인 나는 이러한 비교를 보면서 위에서 언급했던 과학과 인문학의 특성들이 문득 생각났다. 과학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는 것이기에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인 반면에, 인문학은 주관적인 생각에 근거해서 말하는 것이기에 잘 몰라도 일단 그럴싸하게만 떠들어놓고 주관적인 생각이라고 덧붙이면 그만인 것이다. 또한 그 주관적인 생각이 논리적으로만 들어맞는다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더 이상 방해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이후에 칸트의 불가지론, 거울신경세포 등을 비롯한 각종 다양한 과학 지식들을 접하고 배울 수 있었는데, 낯설게만 느껴졌던 과학 개념이나 관련 지식들을 저자가 나같은 일반인들에게 잘 풀어서 설명해 주어서 해당 내용을 이해하기가 조금이나마 수월했다. 마치 저자가 공부했던 과학이라는 재료를 독자들이 먹기 좋게 제공한 ‘요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또한 저자가 인문학자이다보니 맹자, 묵가, 양주학파 등 다양한 철학 사상에 대해서도 함께 소개되면서 과학의 내용과 비교분석해볼 수 있었는데, 이를 보면서 독자인 나는 문과 출신 독자들이 과학에 접근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수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저자가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 그냥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맨 앞에서 저자가 문과인들을 주요 독자층으로 겨냥하면서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뇌과학 부터 접근했다는 얘기를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딱히 근거없는 느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뒤이어 읽다가 ‘사람은 변한다‘ 라는 말과 함께 ‘전향‘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전향이라고 하면 ‘무슨 사상을 전향했다‘ 뭐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여기서 저자는 이러한 전향이라는 행동을 인문학과 과학 이렇게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눠서 분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먼저 인문학에서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과학에서는 이러한 ‘자유의지‘보다는 뇌의 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되는 것(p.94)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좀 더 설명하자면 뇌의 시냅스 연결망과 연결패턴의 변화로 생긴 현상(p.96)을 전향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독자인 나는 인문학과 과학이 세상을 보는 관점 혹은 패러다임이 아예 뿌리부터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학이 참으로 객관적인 학문이라고 한다면 인문학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것에 좀 더 가깝다고나 할까. 다만 여기서 한가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객관적이지 않다고 해서 쓸모가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과학과 인문학의 특성이 그렇다는 것일뿐 어느 것이 더 좋고 다른 것은 더 안 좋고 이런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과학과 인문학의 성격은 앞에서 언급했던 내용들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선 내용들에선 이러한 것들을 그냥 머리로만 이해했다면 지금 이 ‘전향‘ 이라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보면서는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를 보다 명확히 마음속 깊이,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추가로 위에서 언급했던 뇌의 시냅스 연결망과 연결패턴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에 대한 내용들도 본문에서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 도파민으로도 인간의 행동을 일정부분 설명할 수 있음을 보면서 과학의 힘이라는 게 과연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감탄을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특별히 최근 커다란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는 마약 같은 것도 결국에는 도파민 분비에 혼란을 일으켜 야기되는 문제이기에 과학이 이러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도 상당부분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마약이외에도 사람들의 소비행동패턴 등을 연구하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 등 우리 사회 곳곳에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 중에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거꾸로 뉴런의 연결패턴에 영향을 준다‘(p.99) 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을 좀 더 쉽게 풀어 쓰자면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p.99)는 말인데, 이 글을 보면서 독자인 나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과학에서 말하는 신경전달물질이 우리의 자아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우리의 생각도 신경전달물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왜 그토록 많은 자기계발서 같은 것들에서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하다고 하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야 신경전달물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하는 자기계발서가 얼마나 있는지는 다 알 수 없지만 독자인 내가 그동안 막연하게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의 과학적 근거를 알고나자 그동안 알고 있던 생각들에 대한 믿음이 좀 더 확고해졌다.

난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하는 이유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 책을 통해 과학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다보니 내가 하는 어떤 행동이나 생각들에 합당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재천 교수의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지식의 영토‘ 가 확장됨에 따라 넓어지는 지식들과 파생되는 생각들이 내가하는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데이터도 자아에 영향을 준다(p.97) 는 말과 함께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p.100) 는 말도 덧붙인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자신의 자아에 데이터를 공급함으로써 자아가 어리석어지는 것을 최대한 늦추고자 애쓰는 저자의 모습을 보며 저자가 과학 공부를 하면서 몸소 느꼈던 것들을 단지 깨닫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을 통해 실천하며 살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멋지게 느껴졌다.

저자는 뇌과학 파트를 마무리하면서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자신의 행동이 변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자유의지가 아닌 단지 뇌라는 하드웨어가 퇴화된 것이라 여겨달라(p.100) 는 말과 함께 인간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어떤 인간도 무한 신뢰하거나 무한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p.101) 는 말이었다. 독자인 나는 저자의 이 말을 보면서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해볼 수 있었다. 또한 뇌라는 하드웨어의 퇴화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일단은 악과 누추함을 멀리하고 선과 아름다움에 다가서려 노력하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내자(p.101) 는 저자의 말을 참고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일단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와 뇌과학 파트를 읽으며 느꼈던 생각들을 쭉 적어봤는데, 생각보다 양이 너무 길어져서 이어지는 생물학 파트부터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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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부분은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읽었던 저자의 전작인《최재천의 공부》에서 만나봤던 부분들이 나와서 내용을 다시금 상기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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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계속 읽다보니 이전 저작에서 못봤던 내용들도 일정부분 수록되어 있어서 저자가 살아왔던 인생과 그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여기 별도로 자세하게 밑줄치진 않았지만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것 중 하나로 저자가 ‘제돌이야생방류시민위원회‘ 라는 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제돌이는 돌고래의 이름 중 하나이다. 저자는 이 돌고래를 야생으로 방류하는 것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었는데 p.130에 밑줄 친 문장에서 단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를 선택하겠다고 하는 부분이 있다. 저자가 자유라는 것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인 생각을 좀 더 덧붙이자면,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목숨이 붙어있더라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과 단지 생계만을 목적으로 내가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사는 것은 그 삶의 만족도 같은 질적인 측면에서 커다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경우들이 많다는 현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 혹은 꿈꾸던 일을 하지 못하고 생을 살아간다면 마음 한켠에 늘 아쉬움이 상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위에 나온 돌고래 사례에서도 결국 돌고래가 있어야 할 곳은 담장 안에 갖힌 동물원보다는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야생 바다가 아닐까 싶다. 물론 돌고래의 머릿속에 들어가 본 게 아니라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돌고래든 사람이든 관계없이 타자에게 속박되어 있기보다는 자기자신에게 선택권이 있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좀 더 낫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임과 동시에 나의 생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도 그저 저자나 나의 생각일 뿐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나처럼 생각할 줄 알았다‘(p.129)고. 어떤 이들은 자유보다는 그냥 누군가에게 소속되어서 그들의 지시에 따라 시키는대로 일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자유라는 것에 가치를 얼마나 두느냐에 따라 사람의 성향이나 취향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에 각자 자기의 성향에 맞게 스스로의 포지션을 잘 선택하면 될 듯하다. 단지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기가 만족하고 행복하면 그만일 뿐 타인이 왈가왈부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게 내가 내린 나름의 결론이다.


또한 이 돌고래 방류 사례의 뒷 부분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숙론‘ 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p.137에서 ˝정부는 정책을 만들고 국민은 대책을 만든다.˝ 는 말을 하는데, 애초에 정책 따로 대책 따로 만들 게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이해관계에 얽힌 모든 시민과 단체의 대표들이 마주 앉아 격렬한 숙론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덜하다(p.137)고 저자는 말한다. 독자인 나는 이런 생각을 미처 해보지 못했었는데, 저자의 얘기를 듣고나니 그 의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개인적인 창의성은 주로 홀로 있으며 몰입할 때 나타난다. - P75

황동규 시인은 외로움과 ‘홀로움‘을 구별한다. 그는 ‘홀로움‘ 을 ‘환해진 외로움‘이라고 묘사한다. 스스로 선택한 혼자 있음은 사무치는 외로움이 아니라 혼자서도 충만한 ‘홀로움‘이다. ‘홀로움‘은 말하자면 ‘자발적 외로움‘이다. 자발적이고 철저한 자기 시간 확보가 창의성과 생산성을 담보한다. - P75

매사를 미리 준비한다고 해서 나의 하루가 스물다섯 시간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이 정해준 일정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삶을 끌고 갈 수 있어 나는 늘 여유롭다. - P76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자는 우선 말을 잘해야 한다. - P77

자연계에서 가장 탁월한 언어를 구사하는 동물인 호모 사피엔스 사회에서 리더는 무엇보다 먼저 말을 조리 있게 할 줄 알아야 한다. - P77

우리는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문자를 개발해 사용하는 동물이다. 따라서 호모 사피엔스 사회에서는 말하기 못지않게 글쓰기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나는 침팬지와 달리 우리 삶에는 모든 갈래마다 그 끝에 결국 글쓰기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글로 밥 벌어 먹고사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면면에 어김없이 중요하다. - P78

말하기와 글쓰기는 성공적인 삶의 조건이다. - P79

말과 글의 재료는 어디에서 오나? 살면서 보고 듣는 모든 게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말하기와 글쓰기에 가장 훌륭한 자료는 읽기가 제공한다. - P79

들어가는 게 있어야 나오는 게 있기 마련이다. 많이 읽는 사람의 말과 글이 훨씬 풍성하고 질적으로도 우수하다. - P79

‘배운지 모르게 배운다‘를 뒤집으면 ‘왜 배우는지 알면 스스로 익힌다‘가 된다. - P82

다윈 이래 가장 탁월한 생물학자로 칭송받던 윌리엄 해밀턴 William Donald Hamilton은 이런 멋진 말을 남겼다.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Nature abhors pure stands." 순수하다고 배웠는데 순수를 혐오하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말인가? 자연은 결코 순수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은 끊임없이 다양화한다. - P83

하버드대에서 고생물학을 연구했던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진화를 다른 말로 ‘다양화‘라고 불렀다. 이처럼 자연은 끊임없이 다양화하는데, 그 속에서 그 일부로 살아 마땅한 호모 사피엔스는 악착같이 다양성을 파괴하며 산다. 나는 인간 불행의 근원이 어쩌면 거대한 자연의 흐름을 역행하려는 무모함에 기인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P83

섞여야 새롭고 아름다워진다. - P85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의 시 <결혼에 대하여>는 자연과 우리의 삶을 적절하게 묘사한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P87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뭔가 중요한 질문을 할때 바로 들이대지 않는다.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고 알려준 다음 다른 사람에게 지극히 단순한, 그래서 별 준비 없이 편안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먼저 던져준다. 그 사람이 답변하는 동안 할 얘기를 충분히 준비할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매우 현명한 기법이다. - P99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대담을 담당하는 우리나라 진행자들은 날카로운 질문을 해서 후보자를 궁지에 빠뜨려야 훌륭한 진행자로 평가받는다. 이럴 때마다 나는 도대체 우리가 뽑으려는 대통령이 과연 어떤 대통령인지 묻고 싶다.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았을 때 얼마나 잘 대처하는가를 평가하는 게 목적인 듯 보이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혹시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얼마나 공정하게 국정을 운영할지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임기응변에 능한 미꾸라지 혹은 기름장어를 뽑으려는 것인가? - P100

대담이나 인터뷰가 너무나 긴장감 없이 흘러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는 모습이나 보는 게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건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하는 짓이다. - P100

브라운 백 런치 미팅Brown bag lunch meeting은 누런 종이봉투에 샌드위치 같은 점심을 싸 와 누군가의 발제를 듣고 숙론을 이어가는 편안한 공부 모임을 일컫는다. - P102

또래들 앞에서 면박당하거나 흠을 잡히고 싶지 않단다. - P103

때로 스스로 정상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남의 눈을 더 심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음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 P103

자존심 pride과 열등감inferiority complex은 동전의 앞뒤이거나 기껏해야 종이 한 장 차이다. - P103

하버드대 경영대에는 사례연구법 case method이라는 학습법을 개발해 유명해진 롤런드 크리스튼슨C. Roland Christensen 교수가 있었다. 사례연구법은 제한된 정보와 제약 조건을 안고 있는 실제 비즈니스 케이스를 두고 학생들 스스로 숙론을 통해 사업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연습하는 학습법인데, 지금까지도 세계 많은 경영대에서 수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 P104

학자에게 자유를 허하면 어떤 위대한 선물이 되돌아오는지 - P106

"이번 학기에 나는 여러분을 모두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선출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배들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지요. 그런데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줄 수는 있는데 보좌관을 붙여줄 여력은 없습니다. 국회의원도 하고 보좌관도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덴마크의 국회의원들은 대충 그렇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사회적 이슈도 스스로 발굴하고 조사도 직접 해야 합니다." - P113

국회의원이 되면 각종 위원회에 소속되어 일한다. 나는 학생들 스스로 위원회를 구성하게 한다. 누군가가 특정 주제의 위원회를 제안하고 동조하는 학생이 많으면 위원회로 채택된다. - P113

일단 위원회가 구성되면 자체적으로 위원장과 사관史官을 선출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조선시대처럼 사관을 정해 활동 기록을 꼼꼼히 남기도록 권고한다. 각 위원회는 위원장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끊임없는 숙론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한다. - P114

자신들이 해온 일을 보다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경험을 하는 것 - P114

나는 오래전부터 경협競協, coopetition 개념을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경협은 보다시피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합성어다. - P114

자연계에서 종 간에 벌어지는 관계로 경쟁 competition, 포식 predation, 기생parasitism, 공생 mutualism, 네 가지가 있다. 기본적으로 서로에게 해가 되는 관계가 경쟁이고 서로에게 득이 되는 관계는 공생이다. 한편 한 종은 이득을 보고 다른 종은 손해를 보는 관계로 포식 또는 기생이 있다. - P115

나는 경쟁을 다른 관계들과 동일한 차원에서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게 평면적인 분할이라고 생각한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걸 원하는 존재들은 늘 넘쳐나는 상황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실이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연은 맞붙어 상대를 제압하는 것 외에도 포식, 기생, 공생 등을 고안해냈다. - P115

자연계에서 가장 무거운 생물 집단이 무엇일까? 그건 고래나 코끼리가 아니라 꽃을 피우는 식물, 즉 현화식물 flowering plants이다. 이 세상 모든 동물을 다 합쳐도 식물 전체의 무게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지구는 누가 뭐라 해도 식물의 행성이다. - P115

자연계에서 수적으로 가장 성공한 집단은 누구일까? 단연 곤충이다. - P115

한곳에 뿌리를 내리는 바람에 움직여 다닐 수 없는 식물은 꽃가루받이를 위해 애써 꿀까지 제공하며 ‘날아다니는 음경‘을 고용하여 공생 사업을 벌였다. - P116

곤충과 식물은 결코 호시탐탐 서로를 제거하려는 무차별적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게 아니다.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살아남았다. 평생 생물학자로 살며 깨달은 결론은 자연이란 손잡은 생물이 미처 손잡지 못한 것들을 물리치고 사는 곳이라는 점이다. - P116

원고지 10매는 얼추 일간신문 시론의 길이로서 대중을 설득하는 데 가장 적절한 분량이다. - P117

"살아보니 이 세상은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짓밟고 제거하며 올라서는 게 아니라 그들과 돕고 사는 가운데 내가 그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려면 그들이 잠잘 때 나는 일어나 조금 더 일하고, 그들이 휴식을 취할 때 나는 조금 더 노력해서 한 발짝이라도 앞서 나가는 것임을 터득했습니다." - P119

소통이 당연히 잘되리라 착각하기 때문에 불통에 불평을 쏟아내는 것이다. 소통은 안 되는 게 정상이라 해도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소통이 필요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우리를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했다. 소통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 P122

돌고래 야생 방류의 찬반을 묻는 설문이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나처럼 생각할 줄 알았다. 불법으로 붙들려 와 쇼에 동원됐던 돌고래를 고향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는 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었는데 결과는 놀랍게도 반대가 찬성보다 많았다. - P129

단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를 선택할 겁니다. 이 세상에 대가 없이 얻어지는 자유는 없습니다. - P130

석사 박사 학위는 그 분야에서 대가가 되었다고 수여하는 훈장이 아니다. 이제 홀로 설 수 있는 학자가 되었다는 뜻으로 주는 일종의 자격증일 뿐이다. - P131

우리에게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음을 곧바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만일 야생 방류 과정에서 어떤 작은 실수라도 일어나면 앞으로 이 땅에서 동물생태 복원 사업은 꿈도 꾸지 못하리라는 엄중한 현실을 직감했다. 그래서 나는 오롯이 과학을 강조하기로 했다. - P131

‘배냇주름 fetal folds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몸통의 줄무늬 자국)‘ - P132

우리 사회에 돌아다니는 우스갯소리중에서 내가 가장 절묘하다고 생각하는 말이 있다. "정부는 정책을 만들고 국민은 대책을 만든다." - P137

정부가 무슨 정책을 내놓든 그저 30분이면 초토화된다. 인터넷에는 비판이 넘쳐나고 정책의 영향을 입을 당사자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처음부터 이해관계에 얽힌 모든 시민과 단체의 대표들이 마주 앉아야 한다. 비록 과정은 지난하고 고통스러울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덜하다. - P137

우리 사회의 모든 일이 전부 다 대의민주제 방식을 따를 필요도 없고 그게제나 효율적이지도 않다. 큰 틀에서는 대의민주제를 행하지만 그때그때 적절하게 직접민주제를 가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P137

4차산업혁명이 몰고 올격변이 두려운 이유는 바로 연결성 connectivity에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개발해온 거의 모든 기술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어떤 변화가 어떤 분야로부터 촉발될지, 그리고 그 영향이 어디로 번질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통섭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 P139

그동안 우리 정부가 늘 추구해온 지나친 ‘선택과 집중‘은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균형 잡힌 평가가 절실합니다. - P139

바하마에서 오랫동안 목회를 하다 2014년에 돌아가신 마일스 먼로 Myles Munroe 목사님은 비전vision을 "Foresight with Insight based on Hindsight"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분석한 다음 거기에 통찰력을 발휘하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겁니다. - P140

예전의 ‘hindsight(사후 자각, 사후 진단을 바탕으로 통찰력을 기르면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는 대개 어느 현자의 주관적 관찰이었겠지만 지금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분석 위에 놓입니다. 정확한 상황 파악을 바탕으로 우리 모두의 명석한 두뇌와 열정을 모으면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핵심을 꿰뚫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집단 지능 collective intelligence을 믿습니다. - P140

이미 짜여 있는 판에서 전술을 세우고 열심히 일하는 ‘전술국가가 있는가 하면 새로 판을 짜는 ‘전략국가‘가 있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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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 코로나가 가속화시킨 공간 변화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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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들에서 접했던 내용들이 일부 겹친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 제목에 나온 단어인 ‘미래‘ 라는 키워드에 걸맞게 저자가 생각하는 미래의 공간들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변화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새로운 뼈대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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