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염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는 아닙니다. 특히 예림씨의 경우는 연인이시기에 더욱요. 진물이 흐르거나 할 때 옮기 쉽다고 말씀드렸죠? 연인 사이시잖아요? 키스로 전염될 수 있습니다. 냉정하게말씀드려서 증상이 안 나타날뿐, 예림 씨도 보균자이실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죠?" "일단 헤르페스에 완치란 없습니다. 한 번 헤르페스 바이러스를 보균하게 되면 평생달고 산다고 보셔야 돼요. 하지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전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보균자이고, 평생 자신이 보균자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하시면 아무 문제는 없습니다."
"그래도 성환 씨가 보균자이시고, 예림 씨는 확실하지 않으니 일단 조심하시고, 조만간 혈액검사를 한 번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증상인 바이러스 보균까지는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성환은 헤르페스 1형만 지니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게는 얼굴에서 보였다. 헤르페스 2형. 주로 성기 근처에 물집이 생기는 것인데, 한마디로 말해서 성병이었다.
헤르페스 1형과 마찬가지로 면역력이 떨어질 때 재발하는 증상이 있다. 재발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완치가 없었다. 이게 김성환이 달고 온 빅엿이었다. 포장에 싸여 있지만, 말 몇 마디만 던지면 금세까질 것이었다.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김성환이 사전에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대야를 망가뜨리고, 정성스레 만든 포도즙을 쥐어짜고 뱉어버리는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등의 기로에 섰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 능력이 고작 앙갚음이나 하기 위해 있는 건가? 정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아니다. 이런 식으로 이용하기 위한 능력이 아니다.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그새 좀 살만해졌다고 옛날 버릇이 나오는 건가?
절대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가는 철없던 시절, 아니, 개념 없던 과거로 돌아가게 되는 셈이었다. 입을 잠그기로 마음먹었다.
"헤르페스 1형과 2형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예, 그렇습니다" "그럼 2형은 뭔가요?" "1형과 특징은 비슷한데요, 부위가 다릅니다. 주로 생식기근처에 물집이 잡힙니다. 항문부근에 생길 수도 있고요."
"그럼 1형이 2형으로도 번지고 그래요?" "꼭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죠. 아무래도 형태 자체가 많이 다르니까요. 헤르페스 2형은 주로 성접촉에 의해서 감염됩니다."
"자, 저는 그럼 면역 관리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네요. 어떤 게 좋을까요?" "일단 잠 충분히 주무시고, 물도 충분히 마셔주시는 게 좋습니다. 적당한 운동도 필수적이고, 음식도 자극적인 것이나 인스턴트 혹은 패스트푸드보다는 자연식 위주로 드셔주시는 게 좋습니다."
"면역력 향상을 위한 음식들에는 종류가 여러 가지 있는데, 성환 씨의 경우 마늘이랑 프로폴리스 그리고 유산균을 챙겨 드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산균은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 제품을 성분을 따져서 드셔도 좋고, 그릭요거트 같은 것도 좋습니다. 또한 마늘과 케일도 드시면 좋고요."
"며칠 속도 아프고, 가만히 있어도 계속 생각나면서 괴롭겠지만, 그것도 결국은 다 지나가요."
"본인을 더 소중히 여겨요. 괴로운 감정에 계속 붙들려서 시간 버리지 말고. 그러는 건 자신한테 미안한 거니까. 알았죠?"
만약에 내가 일부러 여기에 불씨를 당겼다면? 아마 꽤나 죄책감이 들었겠지. 지금도 이렇게나 찝찝한 기분인데. 나도 웃으며 살고 싶었지만,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이 죄짓고 살면 안 돼, 죄짓고는....... 어떻게든 돌아와. 항상 떳떳해야 돼. 아마 그 김성환이라는 사람은 평생 후회할 거다." 나는 말없이 동의했다. 그리고 왠지 내게 하는 말 같아서 괜히 찔리기도 했다.
짧은 생각으로 가볍게 저지른 일 하나가 큰 복을 부를 수도 있고, 큰 화를 부르기도 한다. 정말 한 순간에 모든 게 무너질 수도 있다. 즉, 누구나 영향력을 가진다. 많은 사람들이 중시하는 것은 영향력의 크기인 듯하다. 적어도 예전의 나는 그랬다. 하지만 크거보다 먼저 중시해야 할 것은 ‘선함‘이라 생각된다.
당연히 나는 누구에게든 좋은 영향을 받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진실로 웃고, 먼저 선한 영향력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사악한 사람에게만 아니면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 그렇게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자 한다.
대박을 내지는 못했을지언정 그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나름대로의 장사철학과 신념이 있기에 가능했다. 모든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멋진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박을 내지 못하거나, 망한 곳일지라도 업주가 무조건 생각이 부족하거나 실력이 없어서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결국 성공을 결정짓는 마지막 요인은 운이다.
한 경제잡지에서는 전 세계에서 100위권 안에 드는 부자들을 상대로 성공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에 대해 물은 적이 있는데, 전부 공통적으로 운을 꼽았다. 얼마 전까지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의 만남부터 시작하여 운이 따르기 시작했다. 위대한 유산이자 선물인 비현실적인 능력, 작은아빠와 큰고모처럼 나를 생각해 주고 진심으로 조언해 줄 수 있는 가족 그리고 천금을 주고 살수 없는 건강까지. 나만 똑바로 하면 됐다.
나는 말끝을 흐리고는 다시생각했다. 애초에 가게를 운영하는 본질에 대해 생각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자꾸 상업적인 쪽으로 머리가 굴러간다. 이 죽일 놈의 욕심. 욕심을 전부 버릴 생각도 없고, 버리는 것도 불가능하겠지만, 부릴 부분에서 부려야 한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우선순위라는 게 있다.
자그마한 목표들이 하나씩 쌓이는 중이었고, 그것들을 하나씩 이뤄내면 큰 목표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잘된 듯했다. 실제로 우리 제품에는 아무 이상도 없지만, 모든 사람들이 진실에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니까.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잡음은 얼마든지 나올 수있는 법이고, 그걸 차단할 수 있다면 해야지.
잠 하루에 꼬박꼬박 최소 7시간은 자. 잠빚은 계속 따라와. 평생 따라오는 거야. 뭐 하루에 3, 4시간만 자도 괜찮다느니, 자기는 평생 그렇게 적게 자면서 새벽에 일찍 출근해서 일했다느니 하는 사람들 있지? "어, 어." 봐라, 재수 없으라고 하는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십중팔구는 마지막에 고생해. 실제로 그런 사람들 많잖아. 안 그런 사람들은 결국 나이 먹어서라도 잠 푹 자고, 푹 쉬고, 건강챙기면서 사니까 회복한 거야. "그치, 그렇지."
잠빚 쌓일수록 영원히 잠에 드는 날도 빨리 와. 그러니까 푹 자면서 살아.
다른 부모들이 무조건 자식을 믿지 못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이미 세상을 경험해봤기에, 가능하면 편하고 좋은길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다. 정답은 없다. 애초에 우리 삶에 정해진 정답은 있을 수가 없지. 그래서 사는 게 재미있는 거고.
옴. 진드기에 의하여 발생하는 동물 기생충성 피부 질환이다.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같이 일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식품을 제조하는 것이고, 보건증 발급이 안 되니 같이 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현재 보건증 발급이 가능하신 상태인가요? 식품제조업이라 보건증이 있어야 하거든요." "아마도 가능....... "지금 피부과 질환이 있으시지 않나요?" "아. 그게......."
"옴은 방치하면 더 나빠집니다. 심해지면 2차적인 세균감염으로 더 악화될 수 있어요. 바로 병원에 가서 치료부터 받으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실례했습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했던가. 누군가의 이별조차도 잠시씹었다가 단물이 빠지면 뱉을 가십에 지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도 연예인들의 결혼생활, 육아, 취미, 일상 등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즐비하고 가장 잘 되고 있다. 리얼이든 리얼을 가장하든, 그렇게 꾸며져야 잘 된다. 아이튜브의 경우 사회적으로 좀 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다 날것으로 맛보는 것과 같으니 더 열광한다. 이 세상 대부분의 것들이 양면성을 띤다지만, 이런 상황을 마냥 즐겁게 보는 것이 뭔가 찝찝하고 씁쓸했다.
돈이 무섭긴 무섭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잘 됐다고 볼 수도 있었다. 가예림과 김성환은 자신들이 원하는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고, 나는 1원도 들이지 않고 엄청나게 홍보를 했으니까나름대로 윈윈(win-win)이었다.
영상의 중심이라고 보긴 어려웠지만, 내 가게에 대한 홍보가 엄청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100만 조회수에서 1%만 우리 가게에 홍보를 가지면 1만이었다. 당장 구매로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면 엄청난 홍보비를 들여도 쉬운 게 아니었다. 일단 중요한 건 각인이었다.
작은아빠와 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경기가 워낙 어렵기도 했고, 장사는 특히 레드오션이었다. 작은아빠는 그랬다. 만약에 내가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알았으면 말렸을 거라고. 요즘은 앞 가게와 경쟁해서 이기면더 크고 새로운 게 들어온다고, 그래도 내가 잘 돼서 다행이라고, 상상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있다고. 장사는 한물간 세상이다. 자신만의 확실한 브랜드나 아이템이 있지 않으면 장사를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게 맞다.
확실한 아이템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서 그걸 키워나가야 했다. 그렇게 하면 장사가 아니라, 사업이 되는거다. 그냥 장사만 해서는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중장년이나 노년층보다 연락이 많이 오는 이유는 뻔했다. 가예림과 김성환의 아이튜브 때문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홍보 효과가 대단했다. 수익과 꼭 연결되지 않더라도 건강상담에 대한 홍보는 중히 여기고 있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였으니까. 한 사람이라도 더 걱정을 덜어주고, 건강하게 해주는 게 가장 중요했다.
진짜 걱정이 묻어나는 문의들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나름대로 스케줄표를 작성하여 예약을 받으려고 하는데도 정리가 쉽지 않았다. 몇 시간 만에 예약시간을 변경해달라는 말도 많았고. 아무래도 돈을 들여서라도 빨리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오는 사람들 스스로가 예약을 할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듯했다. 내가 조금 덜 벌더라도 투자를 해야 되는 부분이라 생각됐다. 오히려 여기에 계속 매달려 있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때 더 손해였다.
수익성을 바라보고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결국에는 더 큰 수익도 불러올 거라 생각했고.
올 사람은 온다. 제품의 품질만 지키면 된다. 작은아빠의 조언이 옳았다. 재고를 충분히 쌓아두고 가게를 열기로 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안 좋은 자세도 혈액순환을 방해합니다. 우선 자세부터 신경 쓰셔야 돼요."
"그럼 아침에 일어나서 언제 처음으로 물을 드세요?" "그때그때 달라서......." "일단 내일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셔야 될건-" "물 마시기요?" "아니요." 나의 대답이 의외라는 듯이 정시내가 눈을 살짝쿵 크게 떴다. "그럼요?"
"스트레칭입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5분에서 10분정도 스트레칭을 해주세요. 잠이 조금 부족하시더라도 꼭 그렇게 해주세요. 현재 정시내 씨는 10분 덜 자고 스트레칭을 해주는 게 몸에 더 좋습니다. 가능하면 1시간 일찍 일어나시고, 낮에 30분 정도 낮잠을 주무시는 게 더좋고요." "아아......." 정시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스트레칭을 마친 다음에는 물부터 드세요. 아침에 물을 드시되 가능하면 미지근한 물이 가장 좋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되나요?" "아니요, 현재 수족냉증의 가장 큰 원인인 혈액순환을 개선하셔야 합니다. 지금 말씀드린 걸로도 도움이 되지만, 더많은 노력이 필요하세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생강을 많이 챙겨드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생강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네. 생강차도 좋고, 음식에 넣어서 먹는 것도 좋죠. 그냥 드셔도 좋은데 아무래도 먹기가 조금 힘든데요. 생강을 설탕에 졸인 다음 말려서 간식처럼 드셔도 됩니다. "설탕은 몸에 안 좋지 않나요?" "아무래도 좋다고 보기는 힘들죠. 하지만 과자처럼 계속 먹는 간식이 아니니까, 생강을 드시는 게 힘드시면 이런 방법으로 조금씩 드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될까요?" "파도 많이 드시면 좋습니다. 파야 활용도가 높고, 한식에는 여기저기 다 들어가잖아요? 파도 많이 드세요."
내게 건강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들은 즙을 구입하러 오는 사람들과 동일하게 소중했다. 항상 이렇게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일에 조금씩 스스로가 깎여나가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때를 떠올리면 결국은 금전적인 여유가 있으니 보다 높은 것에 가치를 둘 수 있는 것이겠지만.
진짜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고, 돈을 더 벌어들이니 더 나갈 일도 생겼다.
나도 마음이 불편하고, 건강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도 불쾌하고, 즙을 사러 온 사람도 역정을 내는 환상의, 아니, 환장의 트리니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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