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공간은 정보‘라는 말과 함께 3차원, 4차원 등과 같은 차원에 대해서도 간단히 살펴봤었다.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찬찬히 저자의 글을 따라 읽어가면서 이해해보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저자가 들었던 여러가지 예시 중에 만화영화를 볼 때 우리 뇌가 초당 16장의 그림을 연산하여 공간과 이야기를 이해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 예시를 통해 과거에 비슷한 이미지를 동작만 조금씩 다르게 그린 뒤 그것을 여러 겹으로 포개어 빠르게 넘기면 각각의 이미지가 마치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이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공간‘이라는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공간‘의 본질에 대한 저자의 얘기를 읽다보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책을 더 읽으면서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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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어본 부분에서 p.258에 밑줄 친 ‘세 가지 정보와 세 가지 관계라는 시각으로 건축 공간을 읽어보라‘는 저자의 얘기가 ‘공간‘ 이라는 것의 참된 속성을 제대로 파헤쳐 볼 수 있는 좋은 관점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보게 된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약간 추상적인 느낌도 없지않아 있지만, 저자가 알려준 시각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면 추상적이었던 느낌이 지금보다는 좀 더 선명하고 명확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건축이든 기술이든 본능적 욕구를 따라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는 말과 함께 애플의 아이폰의 사례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공감이 갔던 내용이었는데, 이유인즉 지극히 주관적이기는 하나 생뚱맞게도 과거에 읽었던 문학작품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본능적 욕구가 이성의 끈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사실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많이는 아니지만 내가 예전에 읽었던 문학 작품들을 돌이켜보면 등장인물들이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이성의 끈을 끝까지 붙잡기보다는 결국 자신의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들을 참 많이 봤었다. 그 당시 들었던 생각이 아무리 이성이 발달하더라도 인간은 결국 본능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자가 기술이든 건축이든 본능적 욕구에 따라 발전할거라는 얘기가 더욱더 강력하게 느껴졌다.

본능과 관련된 얘기로 인간의 짝짓기 욕구에 기반하여 클럽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현상이라든가 페이스북이 큰 성공을 거둔 이유 등을 분석해본 저자의 얘기도 굉장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핵심은 모두다 본능에서 나온 행동이고 결과물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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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동조‘sync라는 키워드에 기반하여 서술되어 있는데 저자가 이 키워드와 관련이 있는 런던의 밀레니엄 다리에 대한 얘기를 하기에 앞서 장황한 과학 이야기를 해준다. 고등학교 국어의 과학관련 지문에서 만나봤던 카오스, 엔트로피, 열역학 제2법칙 등의 용어들이 나오는데 물론 과거에 처음봤을때보다야 덜 낯설지만 여전히 난해한 느낌은 남아 있었다. 평소에 잘 쓰는 용어들이 아니다보니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도 밀레니엄 다리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 전에 빌드업(build up)하는 과정이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제가 발생하는 어떤 원리를 설명하는 내용이다보니 본의 아니게 밑줄을 좀 많이 치게 되었는데, 건축을 잘 알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저자께서 아주 친절하고 꼼꼼하게 설명해주셔서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께 감사드린다.

부가적인 얘기를 하나 더 하자면 이 밀레니엄 다리를 설계한 ‘오브 아럽‘이라는 회사는 업계에서 아주 유명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여기 밑줄치진 않았지만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를 디자인 한 회사라고 하니 뭐 말 다했다. 그만큼 업계에서 인정받는 회사라는 말이다.
인터넷에 ‘오브 아럽‘을 검색해보니 관련 내용들이 이것저것 나오는데 책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추가적으로 더 알 수 있을 듯 하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경험이 하나 더 추가 되는 것 같다.

또한 저자가 밀레니엄 다리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마지막 부분에 건축이 정말 고려해야할 요소들이 많아서 어렵고 심오하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 부분도 이제까지의 내용들을 종합적으로 볼 때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부분이었다. 이런 걸 보면서 업종을 불문하고 외부사람들은 일일이 알지 못하는 해당 업계인들만의 고충이 있음을 다시금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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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를 바꿔서 나오는 내용은 우리나라의 코엑스와 관련된 것이었다. 여기서 일일이 언급하기는 힘들지만, 저자는 현재 코엑스의 건축 디자인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식의 뉘앙스를 지속적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것은 자신이 경험해서 알고 있는 외국의 사례들을 벤치마킹하여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개선해보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이었다.

보통 어떤 것에 불만이 있는 경우 그저 불평불만만 쏟아내고 끝나는 경우들이 많은데, 저자는 그러한 수준을 뛰어넘어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한다는 게 독자인 나에게 긍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부가적으로 저자가 대안제시와 관련하여 소개한 곳 가운데 개인적으로 잘 몰랐던 장소인 보스턴의 뉴베리 거리와 푸르덴셜 쇼핑몰 그리고 저자가 코엑스와 비교하면서 간략히 소개했던 파리에 있는 라 데팡스 광장까지 새롭게 알게 된 장소들이어서 아주 유익했던 독서였다. 기회가 되면 해당 장소에 꼭 여행을 가서 직접 두 눈으로 보며 느끼고 오는 것도 꽤나 흥미로울듯 하다.

마지막에 밑줄 친 부분에는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책에 성베드로 성당과 광장, 로마의 나보나 광장의 멋진 이미지가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도 적접 가보면 참 좋을 듯 하다. 특별히 나보나 광장에는 천재 조각가로 알려진 베르니니가 조각한 분수가 있다고 하는데, 사진을 얼핏 보니 잠실 롯데월드에 있는 분수대와 유사한 느낌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좀 다르기야 하겠지만 말이다.

다음 의문점은 과연 ‘어떤 정보들이 우리의 공간을 구성하는가?‘였다. 개인적으로 ‘보이드(void), 심벌(symbol), 액티비티(Activity)라는 세 종류의 정보로 만들어진다.‘라고 결론 내렸다. - P257

보이드는 물리적인 양이다. 정량적으로 측정 가능한, 실제 비어 있는 공간의 볼륨이다. 시대와 문화를 떠나서 객관적인 정보이다. 심벌 정보는 간판, 조각품, 그림 같은 상징적인 정보이다. 개인에 따라서 정보 해석의 차이가 있다. 마지막인 액티비티 정보는 사람들의 행동에 의한 정보이다.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행위가 무엇인지가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종류의 정보가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 P257

사람 간의 소통의 기본은 문장이다. 그리고 문장은 단어와 문장 구성이라는 두 가지로 완성된다. 어려운 말로 시맨틱 (Semantic)과 신택스(Syntax)라고 한다. 시맨틱은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신택스는 우리가 영어 문법 시간에 배운 1형식부터 5형식까지 있는 문장 형식 같은 것을 말한다. 이렇듯 언어의 소통은 문장 구성이라는 그릇에 단어가 담겨져서 전달된다. - P258

마찬가지로 건축 공간은 세 가지 종류의 관계라는 문장 구성에 세 가지 종류의 정보라는 단어가 담겨서 전달되는 것이다. 세 가지 종류의 관계들은 실제적(physical), 시각적(visual), 심리적(psychological) 관계이다. - P258

실제적 관계는 볼 수도 있고 그곳에 갈수도 있는 관계이다. 한강에는 다리가 있어서 강남과 강북은 실제적 관계가 된다. 시각적 관계는 볼 수만 있고 갈 수 없는 관계이다. 한강의 다리가 끊어지고 배도 없다면 강북과 강남은 볼 수는 있지만 갈 수는 없는 시각적 관계가 된다. 심리적 관계는 볼 수도 갈 수도 없지만 머릿속으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관계이다. 마치 계단식 아파트에서 같은 계단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벽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702호와 703호처럼 말이다. - P258

세 가지 정보와 세 가지 관계라는 시각으로 건축 공간을 읽어 보기 바란다. 그러면 현실 공간부터 인터넷 공간까지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 P258

 텔레커뮤니케이션: telecommunication. 먼 거리의 통신 체계, 즉 원격 통신 체계를 의미한다. - P387

과거의 사례를 보면 텔레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발전할수록 물리적인 접촉과 이동 역시 늘어나게 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실례로 TV매체와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이 세계 곳곳을 거실에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TV로 봤으니까 여행은 안가도 되겠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화면을 통해서 본 세상을 직접 가서 보기 위해 여행이 더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이외에도 텔레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더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더 많이 알게 되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이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 P259

인간은 그렇게 고상하지만은 않다. 인간은 큰 전염병이 돌지 않는 한 계속해서 모이고, 붐비는 공간으로 모여들 것이다. 가상체험이 3D 입체영상으로 보여도 사람들은 실제로 모일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은 짝짓기를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더 나은 짝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 P261

동물에게는 시각적인 것 외에도 냄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이 어떻게 발전을 하든 결국에는 냄새를 맡기 위해서 만날 것이다. 만나서 가까워지면 서로 터치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더 모여서 살게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 P261

냄새가 해결되면 촉각을 위해서 모이게 될 것이다. 연애하는 커플들이 전화나 문자만 하고 만나서 서로를 만지지 않기 시작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만지고 또 만져지고 싶어 한다. 터치는 인간의 본능이다. 아이폰이 큰 성공을 거둔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만지고자 하는 본능에 충실한 터치폰을 만들어서이다. - P262

애플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애완동물처럼 쓰다듬을 수 있는 기계를 선보인 것이다.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혁신은 본능적 욕구에 충실할 때 만들어진다. - P262

건축도 기술도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쪽으로 발달할 것이다. - P262

기술은 가상 공간이라는 지극히 관념적인 공간을 만들어 냈지만 실제로 필요로 하는 콘텐츠는 아직도 본능에 충실한 욕구를 만족시키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건축에서도 계속해서 기술적인 발달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본능을 채워 줄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을 필요로 한다. - P262

인간의 동물적 본능을 무시한 채로 디자인된 건축물은 좋은 건축물이라고 하기 어렵다. - P262

인간은 주광성 동물이기에 채광과 통풍은 기본이다. (중략) 햇볕이 들어오지 않고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건축물은 아무리 보기에 아름다워도 좋은 건축물이 될 수 없다. - P262

인간은 동물이면서 동시에 그 이상이기에 배부르고 따뜻하기만 하다고해서 만족할 만한 건축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몸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지만 또한 영혼을 가지고 있기에 기능적인 건축물 이상의 것을 제공해야 좋은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 P262

좋은 도시 경관이라는 것 역시 앞서 말한 인식에 근거를 둔 가치와 동물적 요구 사항 모두를 만족시켜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건축이 어려운 것이다. - P262

식구가 세 명이면 사람 간의 관계가 네 가지 나온다. 부부 간, 엄마와 아이, 아빠와 아이, 엄마와 아빠와 아이. 그런데 여기에 둘째가 생기면 발생하는 인간관계는 열한 가지가 된다. 식구는 한 명이 늘었을 뿐인데 관계 조합의 경우의 수가 일곱 가지 더 생긴다. 사람은 한 명이 늘어나지만 사람 간의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 P264

클럽을 가는 주된 이유는 새로운 이성을 엿보고 다양한 방법의 ‘즉석 만남‘에 대한 기대이다. - P264

만약 100명이 있는 클럽에 한 명만 더 들어가도 100가지 경우의 수가 더 만들어진다. 클럽은 ‘관계의 향연장‘이다. 페이스북의 가입자 수가 급속히 늘어난 원리도 이와 비슷하다. - P264

가상의 공간이든 현실의 공간이든, 어떤 공간에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자신의 짝을 다양한 무리 속에서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풀에서 고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전자의 개선 가능성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 P265

반면에 제한된 공간에 너무 다양한 인간관계가 존재하게 되면 우리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더 늘어난다는 그림자도 있다. - P265

건축에는 ‘모듈러‘라는 단어가 있다. 근대 건축의 대가 중 한명인 코르뷔지에가 모듈러를 인체 크기와 연관해서 디자인하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한마디로 사람의 평균 팔다리 길이에 맞추어서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 P266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성인을 위한 평균 책상 높이는 72센티미터, 문짝 높이는 2미터, 팔을 뻗어서 물건을 올려놓는 선반높이는 170센터미터, 계단 한 단의 높이는 최대 18센티미터 등이다. 이러한 것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일단 산업 사회를 거치면서 ‘최소한‘의 부피가 얼마인지를 알아내어 효율적인 공간과 재료를 활용하기 위한 것도 있다. - P266

효율성의 근거는 사람의 신체 치수이다. 이처럼 건축은 인식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몸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 P266

자연 속에는 자연 발생적으로 같은 시간에 같이 움직이는 동조라는 보편적인 원칙이 숨어 있다 - P266

카오스라는 이론은 자연의 모습에서 보이는 날씨 같은 불규칙한 패턴이 실제로는 단순한 공식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이다. - P266

프랙털(fractal)은 같은 패턴이 스케일만 달리해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 P266

카오스에서 더 발전해 나온 것이 ‘콤플렉시티‘ 이론이다. 지난 수천년간 서양 과학은 끊임없이 작은 ‘최소 단위‘를 찾는 데 매진해 와서 양자역학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러한 발견이 생명의 신비를 설명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에 착안해서 만들어진 과학의 흐름이 콤플렉시티 이론이다. 우리말로 ‘복잡계‘라고 번역된다. - P267

(콤플렉시티 이론은) 생명의 발생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만들어진 이론이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불규칙의 상태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규칙이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앞서 말한 싱크가 이 콤플렉시티 이론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의 기본 원칙 중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에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이다. - P267

엔트로피 법칙이란 한마디로, 가만히 놔두면 집이 점점 어질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는 가만 두면 점차 불규칙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 P267

아이러니하게도 빅뱅 이후 천제는 안 부딪치고 돌아가는 규칙이 만들어졌고, 생명이 탄생했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거꾸로 가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우주 전체로는 불규칙이 늘어나지만 부분적인 곳에서는 규칙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싱크나 콤플렉시티 이론은 그런 부분적인 규칙성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 P268

장황하게 현대 과학 이야기를 한 것은 건축에서 이 동조 이론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예가 있기 때문이다. 하이테크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런던의 밀레니엄 다리가 그것이다. - P268

(다리가 흔들리는) 문제는 사람이 걷는 것과 자동차가 가는 매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었다. - P269

보통 다리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자동차는 바퀴가 굴러가면서 앞으로 나간다. 따라서 자동차의 하중은 아래로만 향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은 걸으면서 왼발을 내디딜 때에는 왼쪽으로 밀고, 오른발을 내디딜 때에는 오른쪽으로 미는 힘이 있다. 이는 사람이 걸을 때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걸음마를 하면서부터 체득한 방법이다. 우리가 스케이트를 탈 때 얼음을 좌우로 지치는 것을 생각하면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P270

문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사람이 걸을 때 횡으로 미는 힘이 발생하게 되면 다리에 미세하게 진동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주변 사람들이 느끼고 옆 사람 걸음걸이의 리듬에 맞게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에서 말하는 동조가 일어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발을 맞추게 되고 그럴수록 다리의 움직임의 폭은 증폭되는 것이다. - P270

마치 그네를 뒤에서 밀 때 나아가는 방향으로 조금씩만 힘을 더 주어도 더 높이 올라가듯이 만약에 이 움직임에 사람이 계속해서 리드미컬하게 힘을 주면 다리가 붕괴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다리가 무너지면 자기가 죽는데 그럴 군중은 없겠지만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 P270

구조 회사인 오브 아럽은 다리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잡아 주기 위해서 횡으로 자동차의 충격 흡수 장치와 비슷한 장치를 달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좌우로의 진동이 커지는 것을 일차적으로 잡아 주게 되었고, 흔들림이 증폭되는 현상을 막을 수가 있었다. - P270

이 밀레니엄 다리의 사건에서 보이듯이, 건축은 몸과 심리가 함께 작동하는 장치이자 현상이다. 몸과 심리가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건축은 그래서 더 어렵고 심오하다. - P270

사람은 자원이다. 사람이 많이 온다는 것은 많은 이벤트가 형성되고 그 만큼 중심적인 ‘장소성‘을 구축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축가들이 아무리 무대를 만들고 연출을 하려고 해도 사람이 오지 않으면 그 공간은 죽은 공간이다. 결국에는 사람이 공간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 P275

여러 개의 건물로 만들어진 콤플렉스는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대형 공간에 모여서 섞여야 한다. - P275

광장은 유기적인 갯벌 같아야 한다. 다양한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없는 광장은 사막이 되기 십상이다. 파리의 라 데팡스 광장이나 서울의 코엑스 광장은 상업의 생태계가 없는 광야일 뿐이다. - P275

일반적으로 외부인이 한 도시에 애착을 갖기 시작하는 시점은 그 도시의 도로망을 완전히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인식이 안 되면 길을 잃기 쉽고 공포감을 느끼게 되며 그러면 주변을 즐길 여유가 없이 경계만 하기 때문이다. - P276

보스턴은 존 핸콕 타워와 푸르덴셜 빌딩이라는 두 개의 고층 건물이 현재 나의 위치를 알려 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특히 존 핸콕 타워의 경우에는 납작한 평행사변형 모양의 평면도를 가지고 있어서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모양이 시시각각 변한다. 그것만으로도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 어렴풋이 파악이 된다. - P277

날씨가 변한다는 것은 불편한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건축에서는 그 같은 변화가 부정적이라기보다는 긍정적인 다양성의 요소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나라 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날씨는 일 년 365일, 같은 날이 하나도 없다. 같은 거리라고 하더라도 날씨에 따라서 다르게 인식이 되어서 찾아갈 때마다 다른 얼굴의 거리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 P278

한결같다는 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 P278

뉴베리 거리는 역사가 깊은 옥외 거리이다. 우리나라의 북촌이나 인사동거리에 비유될 만하다. 그리고 그 거리에서 한 블록 떨어져서 평행하게 위치한 푸르덴셜과 코플리 쇼핑몰은 실내 공간으로 몇 개의 호텔과 백화점이 연결되어 만들어졌다. 관광객들은 뉴베리 거리를 보다가 비가 오거나 추우면 푸르덴셜 쇼핑몰로 들어간다. 반대로 쇼핑몰에 있던 사람들이 답답하면 뉴베리 거리로 나와서 거리를 걷는다. 이 둘은 상호보완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 P279

유럽의 성공적인 광장에는 두 가지 법칙이 발견된다. 하나는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축물이 있거나, 둘째로 광장 주변으로 가게들이 위치해 있다. - P280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장소이다. 장소가 만들어지려면 사람이 모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사람이 모일 목적지가 될 만한 가게나 랜드마크 건물이 필요하고, 사람이 정주할 식당이나 카페가 필요한 것이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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