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될 시간 - 고립과 단절, 분노와 애정 사이 '엄마 됨'을 기록하며
임희정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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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선물 받은 책 MBC 라디오 PD 장수연의 에세이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를 읽고 모성애와 여성을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인연은 영화 <피투성이 연인>이었다. 영화 속 재이는 신인 작가인데 비혼, 비출산을 선언했고 커리어 정점에 뜻하지 않게 임신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인 상황과 심정을 알아보고 싶어 참고 용으로 봤던 책인데 마치 내가 겪은 듯 생생하고 절절했었다.

금방 또 출판사에서 보내준 임희정 아나운서의 《질문이 될 시간》을 읽었다. PD, 소설가, 아나운서까지 전문직 여성이 한국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로 겪게 되는 솔직함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어제는 방향성은 다르지만 여성의 난임, 임신을 공포와 오컬트, 호러로 풀어 낸 드라마 [아메리칸 호러스토리] 시즌 12를 봤다. 동시기에 이와 같은 콘텐츠가 내게 온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말로는 여권신장, 양성평등이라 떠들지만 아직 한국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사랑, 완벽한 헌신, 완벽한 돌봄. 그런 건 없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랑을 설정한 후

나와 비교해서 괴로워하지 말라


임희정 작가는 엄마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뼛속까지 느끼며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게 되었다. 그 질문과 나름의 답을 잊지 않고 글로 풀어내려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몸과 마음의 고통, 모든 짐은 아이의 성장과 맞바꿀 수 있을 정도의 기쁨으로 다가왔다고 고민했다. 직접 경험했을 때야 이해되는 감정을 사회는 모성신화를 만들어 규정하려고 한다. 여성에게 치우친 노동환경과 법을 개선하고 함께 아이를 키우고 행복과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10년 넘는 아나운서 경력은 엄마 경력 앞에서 아무 쓸모 없었다. 출산 후 코로나도 겹쳐 집 밖 일은 두려움으로 변했고 수십 명 앞에서도 떨지 않았지만 문밖에 나가는 게 두려웠다. 더 큰 문제는 독박 육아로 지친 몸과 마음이 출산 전과 달라졌을까 봐 생기는 공포였다. 회복하지 못할까 봐 울었고 돌아가도 보장받지 못하는 커리어를 걱정했다. 산후우울증과 경력단절을 겪으며 작아져만 갔다.


작가에게 글쓰기란 얼마나 괴로운 일이며,

엄마에게 글쓰기란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가.

나는 지금 괴롭고 불가능한 그 일에 도전하고 있다

P58

하지만 출산과 돌봄 때문에 공든 탑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자신을 격려했다. 몸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몸매를 걱정하며 잊히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낳았다고 다가 아니, 키워야 하는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말이다. 임희정 작가는 '국가는 산모를 원하고 사회는 여성을 원하는 듯했다'라며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낸다. 완벽한 엄마, 직장인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나를 소모한다. '적당히' 하면서 마음 건강을 챙기는 게 우선이다.

젖몸살의 아픔, 늘어난 몸무게는 나아지지 않는데 대중 앞에 나서는 연예인을 보며 보이지 않는 고통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매스컴과 SNS에서 보이는 비정상적인 산모와 신성화된 엄마의 모습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비정상이 정상화되는 경계를 작가는 늘 의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루 종일 핸드폰만 볼 수밖에 없는 산모는 자괴감에 빠져 우울감이 커진다. 출산 후 몸매 관리보다 중요한 건 멘탈관리인 회복이다. 변해버린 내 모습도 사랑할 줄 아는 마음, 이를 격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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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지금의 안부 - 당신의 한 주를 보듬는 친필 시화 달력
나태주 지음 / 북폴리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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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칭찬 일기장'을 선물받았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간호사 다은이 쓰던 건데 자존감을 높여줘,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또 선물 받은 탁상 시화집에는 나태주 시인의 시를 달력처럼 만든 만년 주간 달력과 엽서, 2024 달력, '나의 안부 노트'가 있었다. 우연치고는 참 기분 좋은 일이 겹쳤다. 내년에는 괜히 좋은 일들만 일어날 것 같았다.

 

나태주 시인의 52주 시가 담긴 탁상 시화집 《나태주, 지금의 안부》는 한주마다 안부를 묻고 답하는 형식이다. 내가 나의 일주일을 궁금해하는 거다. 누가 챙겨달라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보살펴 주는 거다. 나도 모르던 나를 내가 들여다봐 주는 관심이다.

 


책이란 포맷이지만 탁상달력 형태라 인테리어로 활용하기도 좋고 연말연시 선물로도 센스만점이다. 따로 떼어 책갈피나 엽서로 사용해도 충분한 가치다. 책의 형식을 탈피한 디자인이 매력적이다.

 

마음이 몽그러워지는 글귀와 그림, 손글씨는 잊혀가는 아날로그와 맞닿아있다. 미공개 시와 나태주 시인이 직접 쓰고 그린 글씨와 그림이 수록되어 있어 소장각이다. 하나의 시가 양쪽에서 텍스트와 손글씨로 두 버전으로 담겨있다. 세트 안에 담긴 스티커, 엽서, 2024달력, 안부노트 구성도 알차다.

 

다 읽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아껴두고 일주일마다 고대하며 다음 시를 넘겨봐도 설레겠다. 필사해 봐도 좋은 시선이 너무 많다. 추운 겨울이 다가왔는데 곧 봄이 올 것 같다. 미루지 말고 오늘, 바로, 지금 나에게 안부를 물어보자.

 


나야 잘 지내니? 괜찮은 거야?


그대


그대는 봄

겨울이라는 봄

그대 생각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가슴에

꽃이 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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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아 다행이야 - 우리라는 이름의 사랑
오리여인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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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여인?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낯설지 않은 이름. 2020년에 에세이를 읽으면서 알게 된 작가였다. 어머나, 그때는 싱글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신랑과 아가가 구성원인 세 가족의 일상을 몽그러운 마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오리여인은 비혼주의였지만 아기는 너무 예뻤다. 완두 콩만 한 그 마음은 커져 결국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식장에 서 있는 신부가 되었다. 사람일 아무도 모르는 거다. 나도 6년 만났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1년도 안 돼서 다른 사람이랑 결혼했으니까. 사람은 다 때가 있고 만남의 인연이 있기 마련이다. 지나고 보니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혼할 사람을 정해져 있는 것 같다. 그냥 마음이 통하고 편하고 닮고 싶은 너그러운 사람이 있다. 나는 예민하고 마음에 모가 많이 나서 삐쭉 삐죽한데 그 사람은 둥그러워 나의 모서리를 감싸 안아 주고도 남을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오리 작가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게 아닐까. 부드러운 현과 살면서 가끔 맹수가 되어버리는 오리씨. 나는 착하디착한 신랑이 답답해서 악다구니를 쓰면서 해결하는 데 열 올릴 때도 있다. 답답하지만 바르고 착하게 사는 그 사람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본다. 그래도 세상은 거짓말도 적당히 하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싶긴 하다. 요즘은 내가 못됨에 조금 물든 것 같다. 화도 좀 내도 둘러대는 말도 늘어났다. 이런 게 바로 스며들어 동화된다는 거겠지? 부디 나의 못된 마음을 다 물들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글 쓰는 사람의 예민함은 비슷한가. 오리 작가는 주변에 친구도 많고 외향적이라는 말을 듣는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소심하고 카톡읽씹에 신경 쓰는 타입이었다. 나랑 되게 비슷하네 싶었다. 카톡 대화를 주고 받다가 인사 안 했는데 대화가 끊어지면 '내가 뭘 잘 못했나, 서운하게 했나?' 대화를 위로 올려 곱씹는다. 국밥 좋아하는 것도 비슷. 하얀 쌀밥에 겉절이나 김치를 올려 먹는 것도 좋아한다.

혼자였다가 둘이 되고 셋이 함께 살고 있는 이야기가 점점 추워지는 날씨와 역행한다. 데워지고 보드라운 마음에 센티멘털해지기도 하고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지기도 한다. 가을 타는 건가? 가족이 꾸려진다는 낯설고도 두렵고 든든한 양가적 감정이 녹아들어 가 있다.


왼쪽에는 에세이 오른쪽에는 3칸, 8칸 만화 형식이다. 만화만 봐도 이해는 되지만 좀 더 작가의 생각을 나누고 싶다면 텍스트 타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예전에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를 좋아하는데 한국에도 간결한 그림이지만 풍성한 생각을 담은 작가가 있다는데 새삼 놀랐다.

행복과 불안

나는 행복해도 불안한 사람. 좋은 일이 많이 생겨도 언제 또 불안한 일이 생길까 봐 초조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이 마음이 꽤 괜찮은 건 반대로 불행한 일이 닥쳐도 좋은 일이 곧 올거라는 작은 희망도 함께 품을 수 있다는 것.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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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효과의 실험과 결과
사사키 아이 지음, 양하은 옮김 / 모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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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을 참 좋아한다. 벌써 10년 전 영화다. 극장에서 봤던 재미와 감독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두 이모와 사는 서른 넘은 폴이 우연히 이웃 마담 프루스트 집에 방문해서 차와 마들렌을 먹고 과거의 상처와 추억을 떠올린다는 이야기다.


프루스트 효과는 반복된 습관으로 뇌가 반응하는 '파블로프의 개'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거론되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유래되었다. 소설 속에서도 등장하지만 아주 긴 시리즈라 완독했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고 중도 하차를 유발하는 전설의 난해한 책이다. 그래서 더욱 홍차와 마들렌, 기억의 상징이 된 것만 같다.


책은 표제작 '프루스트 효과의 실험과 결과', '봄은 미완', '악보를 못 읽는다', '지독한 마침표' 네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이 슌지의 풋풋하고 달달한 그러나 씁쓸하기도 한 청춘 미완의 모습이 청량감 있게 담겨 있다.


주인공은 초콜릿 입힌 죽순마을 과자를 먹으며 공부한다. 기대효과는 죽순마을을 먹을 때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문제로 기억력을 높이려는 귀여운 발상을 하고 있다. 거기에 첫 키스는 상상도 못할 곳에서 하자는 발칙한 계획까지 더해져 입가에 미소를 띠며 읽을 수 있었다. 누군가와 사귀다가 헤어져도 음식, 장소, 물건, 사람 때문에 떠오르는 관성을 공감하게 되었다.


나는 먹어본 적 없는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알고 싶다.

그 맛에 떠오르는 사람과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만약 도쿄에 갈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을 사귀고 싶다.

도쿄의 공기를 마셔도 오가와만 떠올리지 않도록.

p46


최근 <키리에의 노래>를 보고 이와이 슌지 영화 <하나와 앨리스>를 챙겨봤다. 접점인 아오이 유우가 나오는 <허니와 클로버>까지 보다 보니 2000년대 일본 감성이 지금 감성과는 많이 달라졌음이 느껴졌다. 이 책은 부담 없이 읽어볼까?는 생각을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책이다. 


변하지 않는 일본 감성과 가을이 되었지만 곧 돌아올 여름을 상징하는 시원한 수영장의 표지가 내용과 잘 어울렸고 '사사키 아이' 작가의 차기작이 기대되었다. 잠시나마 고교 시절도 돌아간 듯 홍차와 마들렌을 보면서 추억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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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유령 - W. G. 제발트 인터뷰 & 에세이
W. G. 제발트 지음, 린 섀런 슈워츠 엮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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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없다면 어떤 글쓰기도 있을 수 없다

1944년 독일 알고이의 베르타흐에서 태어난 '빈프리트 게오르크 막시밀리안 제발트'. 영국 노리치의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에서 30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브리티시문학번역원 초대원장을 지냈고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하인리히뵐문학상, 베를린문학상 등 국제적인 상을 받았다. 소설 《현기증. 감정들》, 《이민자들》, 《토성의 고리》, 《아우스터리츠》, 세 권의 시집, 에세이 《공중전과 문학》을 남겼다.

이 책은 그가 2001년 자동차 사고로 급작스럽게 사망한 후 '린 섀런 슈워츠'에 의해 만들어졌다. 중요한 인터뷰와 평론가들의 에세이를 엮어 만들어 냈다.

역시나 처음 만난 작가이기에 역자 후기부터 훑어봤다. 공진호 번역가는 같은 번역가로서 제발트의 번역 방식을 흥미로워했다. 《이민자들》독어를 영어 버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의역과 직역 논쟁으로 커졌다.

결국 독어 원작 보다 영어 번역 교정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훗날 제발트 전기 작가는 그래서 독어본 보다 영어본이 원작자가 공들인 완성체라 평가한다. 모르는 작가였지만 집요하고 성가신 완벽 추구 성향에 성격 지향점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교통사고 당시 죽음의 순간에도 친구가 낭송하는 자신의 시가 라디오를 흘러나왔다니 자존감이 엄청나다는 걸 알 수 있다.

책 소에는 평소 그의 일화나 인터뷰 성향, 문학적 성향을 다루고 있다. 전쟁 직후 때어났다. 알프스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죽음과 늘 가까웠고, 그로 인해 다양한 관점이 생긴듯하다. 스스로를 유령 사냥꾼으로 지칭하며 독일 산문 픽션의 창조자로 불린다. 후반부의 연보까지 읽어보면 전 세계적인 '제발디언'의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될 거다.

✔️본 리뷰는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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