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
박연미 지음, 정지현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차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동안 북한의 참상에 관한 다큐, 드라마, 영화, 강연, 책등을 접했지만 잔혹한 인권유린을 이렇게 가까이 마주하게 되다니.. 어떻게 위로와 격려를 아니, 어떤 감정을 품고 있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참으로 숙연해지더군요.  《내가 본 것을 당신이 알게 됐으면》는 어느 탈북자의 극적인 탈출 과정과 (생각해 왔던 것보다 더) 열악한 북한 인권을 알리고자 한 여대생의 자전적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우리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 하지만 철저히 은폐되고, 왜곡된 북한이라는 또 다른 나라를 들춰봅니다. 손에 잡힐 듯 보이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나라 북한. 자유와 인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죽을 수도 있는 나라. 모든 것이 출신 신분에 의해 결정되는 나라. 죽을힘을 다해 탈북한 박연미씨는 현재 북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북한에 남겨진 주민들을 위해 그 어두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자 합니다.  스물두 살이 되던 2014년 2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세계 젊은 지도자 회의(One Young World Summit)'에 참석해 북한의 참혹한 실상과 인권유린 사태를 전 세계에 고발하게 되는데요. 그 이후 SNS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2014년 영국 BBC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 국제 사회에 널리 이름을 알립니다.  곧 <그들이 보고 있는 동안(While They Watched)>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합니다.

 

 


나는 시작 인사도 저버리고 나 자신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을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나는 영어를 잊어버렸고 심호흡을 하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북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라고 나는 첫마디를 뗏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북한은 불법으로 국제전화를 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할 수도 있는 나라라고 이야기했다. 어릴 때 엄마가 낮말은 새가 듣고 밤발은 쥐가 듣는다며 말조심하라는 이야기도 했다.

"북한을 탈출한 첫날, 엄마가 나를 노릴 중국 브로커에게 나 대신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얼마나 취약한 위치인가도 이야기했다.

P 316


참 용기 있는 고백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삼엄한 경계와 죽을 고비를 여럿 넘기고 한국에 온 것도 대단한데,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북한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고 전 세계인들에게 북한의 참상을 알리려는 박연미씨.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그녀의 강단과 절박함, 그리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 생생하게 그려졌습니다.

 

 

 

 


​중국에서의 인신매매 위기, 어머니가 당한 몹쓸 짓, 날카로운 추위로 무장한 고비 사막에서의 여정을 지나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남한이었지만 남한은 기회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굶주림과 자유를 찾아 선택해야 했던 남한. 하지만 사람들의 차별의 눈빛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고난의 연속이었죠. 탈북 당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었던 연미씨는 현재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오직 살기 위해서 이들은 한국의 경쟁 사회에 뛰어들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었을겁니다. 북한에서 악마라고 교육받았던 미국의 언어 영어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게 된 연미씨는 중국에서 행방이 묘연했던 언니도 찾고 지금의 인권운동가가 되기까지 영화와도 같은 인생을 산 사람이기도 합니다. 1993년생인 연미씨에게  북한은 참 가혹한 인생을 짊어지게 한 나라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북한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연미씨의 고백이 가슴 아파지면서도 한편으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내가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난 것과, 북한을 탈출한 것입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의 북한을 들여다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인권이란 것을 보장받지 못하는 북한에서 굶주림과 추위와 싸우며 취미가 무엇인지도 꿈이 뭔지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을 떠올리니 제가 무척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 씁쓸한 웃음이 지어집니다. 앞으로 연미씨의 꿈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연미씨의 움직임이 멈추지 않겠다는 연미씨의 용기 있는 도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 북한까지 돌볼 여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북한의 실상을 외면하지 말고 알려고 하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오늘도 저는 북한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내일의 태양을 따뜻한 이불 속에서 맞이할 수 있는 당연한 호사도 굉장한 사치로 느껴지는 밤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깨비 2015-12-07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표지만 보고 연예인이 쓴 에세이인 줄 알았어요. 너무 예쁘셔서. 근데 책내용이 완전 반전이어서 놀랐구요. 원제가 영문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아마존에 검색을 해보니 출간일로만 따지면 미국에서 영어로 9월에 먼저 출간되고 11월에 한글로 번역되어 나온 양상이라 또 한번 놀랐습니다. 표지도 똑같고. 북한주민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은 그만큼 국제적인 이슈인데 저는 이 분을 전혀 몰랐다는게 참 아이러니 하기도 하고. 언제 한번 저도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doona09 2015-12-08 15:06   좋아요 0 | URL
오! 많은 정보를 찾아보셨네요. ^^ 저도 몰랐던 정보 감사합니다. 자신의 얼굴을 전면에 내세울만큼 절심함이 있었겠죠. 충분히 전달이 되어요. 표정에서.. ㅜㅜ
 
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우주로 따지면 티끌만도 못한 지구, 그 지구에 사는 인간이란 종이 얼마나 오만방자하고 교만스러웠는지 알고 나니 뒤통수가 뜨겁더군요. 게다가 1976년생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방대한 지식과 통찰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사피엔스》를 읽고 나니 이런 제가 또 작아지는 날이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맥베스 더클래식 세계문학 프리미엄 에디션 3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한우리 옮김 / 더클래식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셰익스피어 4대 비국 중에 유일하게 연극과 읽어보았던 작품<맥베스> 다른 저자의 번역으로 그리고 영화로 또 한번 감동을 이어나가고 싶네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 세 줄, 마음정리법 - 일본 최고 의사가 전하는 스트레스 리셋 처방전
고바야시 히로유키 지음, 정선희 옮김 / 지식공간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빠르게 변하고 경쟁에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마음을 가다듬고 하루를 돌아보라는 일은 힘든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쉰다고 쉬었는데 더 피곤하고, 마음이 답답하면서 초조해지고,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소화가 안 되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병원을 찾기 전에 `세 줄 일기`를 시작해보는건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의심한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를,의심한다》 는 강세형 작가의 자전적인 에세이입니다.  ‘일상’, ‘환상’, ‘음악’이라는 세 가지 각기 다른 주제의 이야기들을 과거와 현재, 현실과 꿈을 오가며 흥미롭게 풀어낸 새로운 형식의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본인 이야기 플러스 , 본인 주변의 (이니셜로 대변되는) 지인들에게서 영감 받은 것, 관계, 상상력이 어우러져 탄생한 특별한 에세이(혹은 소설)라고 말하고 싶네요. 에세이의 탈을 쓰고 있지만,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도저히 분간이 가지 않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글들이 신선합니다. 그냥 일상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굉장히 문학적으로 느껴지면서 2차적으로 읽는 이까지 되려 상상하게 만드는 흡입력이 강한 작가의 필체가 독특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답니다.


 


언니, 정말 저는 이제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요. 저에겐 딱 30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고요한 정적의 시간, 나만의 시간이, 많이도 아니에요. 딱 30분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P40

특히 인상 깊었던 '단 30분'에 등장하는 라디오 막내 작가 W의 사연. 우연히 열어본 쪽지로 이어진 'W'의 푸념들. 수신인이 결고 읽지 않을 것을 알지만 벽에게라도 하소연을 하듯 울다 웃다를 반복하는 구구절절한 쪽지를 읽어 내려가며 W에 대해 멋대로 상상해 봅니다. 혹독한 막내작가를 겪으며 자신에게 허락된 단 30분도 누리지 못해 변비에 걸린 W의 하소연이 재미있으면서도 슬펐던 까닭이었을까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막내작가 W.. 그 W가 보내온 쪽지들을 읽으면서 W를 회상하는 작가. 그리고 모든 것을 전지전능하게 읽고 있는 독자들. 모두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세상에서 이 정도면 행복하다고 자위하는 W는 우리 모두의 초상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W 617' 읽고 나서는 '아 역시 작가는 사소한 것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뼛속까지 글쟁이구나'란 생각을 했죠. 어느 날 책상 의자에 앉아 허리를 꺾어 길게 기지개를 켜다 발견한 창문 틀의 빨간 색연필 자국 'W 617'.  그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 작가는 깊어지는 궁금증과 씨름을 하기 시작합니다.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검색하고 도 알 길이 없고, W는 무엇일까? White, West, Woman, With, Wendnesday... 작가는 친구들까지 동원해 흔적에 대한 무한 상상을 펼치는데요. 저 또한 단순한 문구 같은데, 의미를 알 수 없어 궁금해 미칠 지경이더라고요. 흔적을 남기기 싫다는 얘기는 평생 글로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작가의 입에서 나온 아이러니함에 잠시 갸우뚱해보기도 했고요. 어디서부터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도대체 분간이 가지 않는 자전적인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일기의 한 페이지를 몰래 읽고 있는 듯,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단편을 읽은 기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각각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이니셜로 불리는 지인들을 상상하는 재미 또한 매력 중에 하나! 아무래도 오랫동안 작가 생활을 하다 보니, 주변인들도 언어에 관련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니셜로 등장하는 실존 인물인지, 작가가 상상해 낸 허구의 인물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시점이 오는데 그게 또 매력 중에 하나! 그만큼 작가는 독자들에게 강한 집중력, 온전한 상상력을 쏟아내게 하여  글을 읽는 데에만 할애하게 만드는데, 다음 장을 넘기지 않고는 미칠 것 같이 빠져들게 하기도 합니다.

《나를,의심한다》 를 통해 강세형 작가를 처음 맞이했지만, 이미 굉장한 이력을 가진 작가 겸, 라디오 작가더라고요. 《나를, 의심한다》를 읽고,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도 관심이 생깁니다. 시간을 내어 꼭 읽어보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필력이네요.  끌림이 있는 글이 무척 독특하고 재미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