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 헝거 게임 시리즈 (리커버 에디션)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발의 속을 알 수 없는 얼굴, 늘 하얀 장미(스노우 가문 상징)를 행거칩 대신 넣고 다니는 판엠의 대통령 스노우의 과거가 궁금해지지 않았던가? 과연 그는 어쩌다가 영원한 전투인 헝거게임의 주최자가 되었을까?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는 스노우가 캐피톨의 아카데미에 다니던 열여덟으로 거슬러 가는 프리퀄이자 스핀오프다. 《헝거게임》 시리즈의 '수잔 콜린스'의 신작이지만 우리가 바라는 캣니스와 피타는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지 10년. 폐허가 된 후 혼란스러운 상황과 캐피톨을 중심으로 12개의 구역으로 나뉜 독재국가 판엠이 무대다.

 

제10회 헝거게임이란 시대적 배경은 헝거게임 시리즈의 약 65년 전 이야기로 산정할 수 있다. 전쟁 후 극심한 굶주림으로 누구도 충분히 먹을 수 없는 식량배급 시스템도 여전히 존재했었다. DNA를 조작한 동물 실험실에서 머테이션(돌연변이)이 만들어진다. 여러 머테이션이 소개되나 인간의 목소리에 이끌리도록 설계되어 도청이 가능한 재잘어치가 주요 포인트다. 지금은 실패한 머테이션이자 자연에서 흉내지빠뀌와 짝짓기 해 토착종이 되었다. 그들의 후손 모킹제이의 탄생 비화도 알 수 있다.

 

훗날 악명 높은 독재 대통령이 되는 코리올라누스 스노우의 유년 시절은 가난과의 싸움을 멈출 수 없었다. 몰락한 가문이지만 할머님과 사촌누나는 품위를 지키며 가문의 명예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금 스노의 대통령을 상상하자면 어렵지만, 어린 시절에는 여릴뿐더러 감성적이기까지 하다. 엄마의 장미 향 콤팩트를 버리지 않고 가끔 들춰 향기를 맡는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소환하는 방법이다.

 

외유내강 스타일로 가족과 친구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아카데미의 유망주였다. 비록 하루에 한 끼, 겨우 콩으로 연명하는 식량난일지라도 고매한 가문을 지키기 위해 자제력을 잃지 않는다. 자신만이 가문을 일으킬 유일한 해결방안이라 믿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장학금을 받고 금전적인 지원도 받아야 했다. 가족들이 용기를 북돋아주게 하는 말 "스노우가 일등이다"를 마음속에 세긴다. 하지만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에 세금이 부과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십 대 스노우에게 시련은 연이어 터진다.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해 줄 돌파구는 바로 제10회 '헝거게임'이다. 헝거게임을 통해 멘터로서의 자질을 검증받아야 했다. 그러나 스노우에게 12구역의 최약체인 '루시 그레이 베어드'가 배정된다. 그녀는 코비(집시 같은 단체) 의 일원인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쇼맨십이 강했다. 첫 이름은 발라드에서 두 번째 이름은 색깔에서 따오는 독특한 풍습이 있다. 화려한 색깔의 옷을 좋아하고 모자에 깃털을 꽂는 등 노래하는 새에 비유된다.

 

루시 그레이는 가장 먼저 죽을 거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영리하게 행동했다. 시장의 딸을 이용해 이목을 끌었고 코비 출신답게 노래도 유능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 스타가 된다. 노래하는 모킹제이, 뱀을 다루는 루시 그레이는 아름다운 발라드로 캐피톨 시민을 사로잡는다. 이런 코비들의 은유적인 가사의 노래는 소설 중간중간 등장해 활력을 불어 넣기도 하고 죽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모킹제이>에서 제니퍼 로렌스의 허스키 보이스가 인상적인 ' 매다는 나무(the hanging tree)'의 전신을 루시 그레이가 부른다. 영화에서 그 부분은 섬뜩하면서도 슬펐도 엔딩 크레딧에 또다시 나와 관객을 붙잡아 둔다.

 

헝거게임을 통해 멘터인 스노우와 조공인 루시는 믿음을 넘어 사랑을 쌓아간다. 그 과정에서 조공인을 발판 삼아 승리와 상까지 받으려는 세력들의 암투를 스노우는 슬기롭게 헤쳐나가지만. 아카데미 음식을 몰래 가져가 루시에게 준 것이 탄로나 촉망받는 학생 신분에서 평화 유지군으로 신분이 바뀐다. 그곳에서 한때 라이벌 가문의 아들 세자누스와 재회하며 다시금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살기 위해 타인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헝거 게임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타인의 심장에 칼을 꽂는 헝거게임은 뒤틀리고 굶주림에 괴물이 되어가는 시민들을 은유한다. 소설 속에서는 12개 구역의 남녀 조공인을 추첨해 한날한시 정당하게 출발하는 스포츠 게임으로 묘사되지만. 생존을 위해 타인을 배신하고 죽여야 하는 생존 게임이다.

 

표면적으로는 반란 구역인들을 처벌하는 것으로 보이나, 아이들이 주체라는 점에서 미래의 희망을 이용한 두려움을 심어주는 통제 중 하나다. 수많은 암투와 갈등 속에서 최연소로 장교 시험에 통과해 캐피톨로 금의환향하게 된다. 스노우는 잠시 도망치자는 루시 그레이의 제안에 흔들리게 된다. 책의 초반과는 다르게 결말부에 가서는 가족을 위해, 승리를 위해 변해버린 코리올라누스 스노우과 완성되어 간다.

 

이 게임은 굉장히 잔인하다. 인간 기저의 사악한 충동을 스포츠와 한 통제다. 시각적인 표현의 수위나 과격한 행동, 거친 욕이 나와서가 아니다. 아이들이 타의에 의해 게임에 투입되고 서로를 죽고 죽인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미디어에서 생중계되고 조작된다는 사실이다. 이 잔인한 현실에서 부모나 어른은 조력자이거나 가해자, 방관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뭐든 자신의 힘으로 헤쳐나가야만 한다. 삶도 죽음도 결국 자기 책임이다.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세상의 잔인한 이치를 학습하며 어른이 되어간다. 그런 어른이 만든 독재국가가 60년 이상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시리즈의 결말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소름 끼치는 프리퀄이 아닐 수 없다. 영화화 제작이 논의되고 있는 것 같은데 과연 나이 든 스노우의 인상이 강해서 젊은 스노우를 누가 대체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그와 더불어 루시 그레이까지.

 

덧) 책 후반부에는 12 조공인을 돌보는 멘터 이름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다. 로마의 역사적 인물에서 따온 사례가 많아 알아두면 좋을 팁이다. 참고로 코리올라누스는 로마의 코리올라누스(coriolanus)장문의 이름에서 파생되었다. 로마 정부에 대항하는 반란을 성공적으로 제압한 뒤 정치에 진출하려다 오히려 추방당한 장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민 골짜기의 모험 2 무민 골짜기의 모험 2
토베 얀손 지음, 천미나 옮김 / 온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민(MOOMIN)'은 북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초자연적 존재다. 우리나라로 치면 도깨비 정도라 할 수 있을까. 하마나 귀여운 돼지, 곰처럼 생겼지만 상상 속의 요정 혹은 요괴, 트롤의 원형이다. 1945년 토 베 한 손에 의해 발표된 지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럽을 넘어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무민 탄생 75주년을 앞두고 애니메이션 동화로 탄생했다. 이번 기회에 어른과 아이 함께 읽기 좋다. 30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무민 3D 애니메이션 스토리북 두 번째 이야기다.

 

온순하고 긍정적인 성격, 호기심 많고 엉뚱하지만 누구에게도 싫은 내색 못하고 혼자 속앓이 끙끙. 때론 바보 같아 보여도 닮고 싶은 느긋한 무민.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무민 골짜기에서 일어난 봄과 여름 이야기다. 이번 두 번째 이야기는 가을, 겨울의 이야기다. 그래서 겨울잠에 들어간 무민 가족의 이야기도 소소한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역시나 무민 골짜기를 방문한 여러 손님들과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무민 원작 소설을 충실히 반영해 스토리와 이미지는 입체감 있는 3D로 재해석했다. 100여 컷이 들어있는 귀여운 그림 탓에 무민 팬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될 것 같다.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우정'과 '모험'이다. 무민에 집을 어지럽히는 가사도우미 미자벨, 투명한 모습의 소녀 닌니, 오만한 스키 마니나 헤물렌 브리스크 씨, 겁주기를 좋아하는 착한 꼬마 유령, 화산 폭발로 길을 잃은 불의 요정, 무민의 조상님 등등.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무민에 골짜기를 배경으로 우정을 쌓아 간다.

 

 

자신이 손해 보는 일이 생기더라도 상대방을 미워하지 않고 너그러이 품어주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무민 가족의 넉넉한 마음이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 더욱 소중한 가치로 느껴지는 이유다. 이기적이고 내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쉬어가는 마음의 여유를 안겨주는 작은 사치다.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도 당신의 덕분이라고 말하는 진심 어린 칭찬과 배려는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지 생각해 보길 바란다.

 

 

*본 도서는 제공 받아 썼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빠와 손잡고 웅진 모두의 그림책 33
전미화 지음 / 웅진주니어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컴컴한 어둠 속에서 일하러 나간 부모님 대신 오빠는 동생을 깨워 고등어 반찬에 밥을 먹고 세수하고 이를 닦고 모험을 떠난다. 가장 좋아하는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나서지만 오빠는 왜인지 파란 모자를 꾹 눌러쓰고 나간다. 아무렴 어때, 꽃들도 바람도 인사하기 바쁜 산책길. 오빠의 손을 잡고 오순도순 길을 나선다.

그렇게 돌아온 집. 어쩐 일이지, 엄마 아빠가 벌써 왔나 보다 한 걸음에 달려갔지만 험상궂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숨어버리는데 선수인 나와 오빠는 아무도 찾지 못하게 꼭꼭 숨어 버렸다. 대체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하지만 어디에 숨어도 찾아내고야 마는 부모님과 다정한 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아늑한 우리 집은 더이 상 안전하지 못한집이 되었고 정들었던 구름과 꽃들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이사 가야만 한다. 아쉽고 미안하지만 꼬마는 어쩔 수 없다.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점점 자라나 어른이 되는 것뿐.

웅진 모두의 그림책은 창작자 고유의 색깔과 자유를 보장하며, 독자에게 다채로운 예술의 감동을 선사하는 책이다. 0세부터 100세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그림책 시리즈다.

 

그중 전미화 작가의 《오빠와 손잡고》는 맞벌이 부모를 둔 가정에서 오직 의지해야 하는 남매의 고군분투를 큼직한 그림으로 창작했다. 감정을 잘 알 수 없는 오빠와 아빠, 엄마는 전체 모습이 묘사되지 않는 반면. 주인공 꼬마는 항상 표정과 마음의 소리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다. 비록 재개발로 정든 동네를 떠나 더 높은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지만 든든한 오빠와 가족들이 있다면 마냥 행복한 막둥이다.

여백의 미와 간략한 그림체가 주는 풍경은 흠뻑 빠져들어 주인공의 마음을 상상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가끔 어른들에게도 동화책이 주는 환기가 필요한 것 같다. 요즘처럼 몸과 마음이 쉽게 지치는 나날들이 이어질 때면 동화로 그 위로를 대신해보는 것도 좋겠다.

*본 도서는 제공 받아 썼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빠와 손잡고 웅진 모두의 그림책 33
전미화 지음 / 웅진주니어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컴컴한 어둠 속에서 일하러 나간 부모님 대신 오빠는 동생을 깨워 고등어 반찬에 밥을 먹고 세수하고 이를 닦고 모험을 떠난다. 가장 좋아하는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나서지만 오빠는 왜인지 파란 모자를 꾹 눌러쓰고 나간다. 아무렴 어때, 꽃들도 바람도 인사하기 바쁜 산책길. 오빠의 손을 잡고 오순도순 길을 나선다.

 

그렇게 돌아온 집. 어쩐 일이지, 엄마 아빠가 벌써 왔나 보다 한 걸음에 달려갔지만 험상궂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숨어버리는데 선수인 나와 오빠는 아무도 찾지 못하게 꼭꼭 숨어 버렸다. 대체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하지만 어디에 숨어도 찾아내고야 마는 부모님과 다정한 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아늑한 우리 집은 더이 상 안전하지 못한집이 되었고 정들었던 구름과 꽃들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이사 가야만 한다. 아쉽고 미안하지만 꼬마는 어쩔 수 없다. 어른들의 세계 속에서 점점 자라나 어른이 되는 것뿐.

웅진 모두의 그림책은 창작자 고유의 색깔과 자유를 보장하며, 독자에게 다채로운 예술의 감동을 선사하는 책이다. 0세부터 100세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그림책 시리즈다.

 

그중 전미화 작가의 《오빠와 손잡고》는 맞벌이 부모를 둔 가정에서 오직 의지해야 하는 남매의 고군분투를 큼직한 그림으로 창작했다. 감정을 잘 알 수 없는 오빠와 아빠, 엄마는 전체 모습이 묘사되지 않는 반면. 주인공 꼬마는 항상 표정과 마음의 소리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다. 비록 재개발로 정든 동네를 떠나 더 높은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지만 든든한 오빠와 가족들이 있다면 마냥 행복한 막둥이다.

여백의 미와 간략한 그림체가 주는 풍경은 흠뻑 빠져들어 주인공의 마음을 상상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가끔 어른들에게도 동화책이 주는 환기가 필요한 것 같다. 요즘처럼 몸과 마음이 쉽게 지치는 나날들이 이어질 때면 동화로 그 위로를 대신해보는 것도 좋겠다.

*본 도서는 제공 받아 썼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셜리 클럽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친구의 이름은 설희였다. 나는 왜 그랬는지 몰랐지만 그 친구를 나 혼자 셜리라고 불렀다. 아마 <빨간 머리 앤>의 미들 네임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앤 셜리 커스버트. 순전히 한국 이름인데 영어 이름 만들면 셜리라고 부르고 싶었다. 너무 멋진 이름이었다. 한국어와 영어 이름이 발음이 비슷한 이름이 부러웠다. 나도 저런 멋진 이름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체공녀 강주룡》으로 알게 된 박서련 작가의 최신작 《더 셜리 클럽》을 읽었다. 중반부부터 나도 모르게 셜리 클럽의 할머니들의 의리와 연대, 사랑에 전염되고 있었다. 책 속의 말을 인용하자면 눈물 공장처럼 눈물이 줄줄, 콸콸 나왔다.(아.. 나도 이름이 설희면 셜리 클럽에 가입할 수 있었을 텐데..)

 

소설은 20대 초반 설희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한국계 독일인(소설상 딱히 정해지지 않은 혼혈인) S(심지어 이름도 없는 이니셜)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단 몇 줄로 요약하면 별거 아닌 심심한 이야기지만, 여기에 호주의 셜리 클럽 할머니들의 도움이 큰 몫을 하게 된다.

 

설희는 대학을 가지 않고 무작정 떠나 치즈 공장에서 일하며 셰어 메이트와 지내게 된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고 고된 노동이지만 지구 반대편에 와 있다는 낯섬과 두려움이 약간씩 교차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설희네 부모님은 이혼하였는데 복잡한 사정으로 멀리 떠나온 계기가 있기도 했다.

 

설희는 우연히 중심가 퍼레이드를 구경하다가 당당히 행진하는 할머니들을 보았고, 그녀들을 따라 펍에 갔다가 셜리 클럽에 슬쩍 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가입 조건은 없었지만 이름이 '셜리'여야 했다. 이때 번뜩이는 아이디어. 설희의 영어 이름이 셜리일 수 있다! 셜리는 옛날 이름이라서 우리나라도 치면, 순이, 영희, 영자 이런 이름인가 보다. 젊은 셜리는 없고 거의 백발이 송송한 할머니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다. 설희는 자신의 이름이 셜리라고 우기며 가입을 원했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왔기에 정식 회원이 아닌 깍두기 회원(임시-명예)으로 가입 승인이 된다. 이런 소소한 부분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렇게 셜리 클럽활동을 하던 중 우연히 만난 S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감정을 키워간다. 밤새도록 전화기가 뜨거울 정도로 통화한다면 누가 봐도 서로 호감이 있다는 건데 두 사람은 빙빙 돌기만 한다. 동양인이지 서양인인지 단박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그의 외모는 서독 광부와 간호사 출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탓이었고,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아직까지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정체성 찾기에 매진하는 S는 호주에서 만난 디아스포라였다.

 

설희와 S는 타국에서 한국이라는 매개체로 친해지고 마음을 나눈다. 셜리는 그의 목소리를 향해 보라색 말투라고 했는데, 숫자에 색깔이 있다고 믿었던 내 유년 시절이 생각났다. 1은 흰색, 2는 노란색, 3은 연두색이라는 나만의 공감각적 색깔론이 목소리에 있다고 생각한다니.. 매우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이상하게도 마음이 따듯해지는데 눈물이 펑펑 흘러나왔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은 슬픈 상황보다 감동스럽고 너무 좋으면 추체 할 수 없는 눈물이 댐처럼 방류된다.

 

여성-할머니-경계인이라는 소수자의 관점에서 서술하지만 작고 약한 사람들끼리 뭉친다는 말을 실감케하는 소설이기도 했다. 약한 사람들은 혼자 있으면 도태되기 때문에 서로 모여서 온기를 느껴야 한다. 소설을 통해 작은 연대성의 큰 성과를 느꼈고, 호주 전역에 퍼져있는 셜리 할머니들을 만난 것 같아 든든했다. 할머니들은 나이도 국적도 피부색도 필요 없이 그저 '셜리'라는 이름이라는 이유로 연결된다. 리틀 셜리를 아껴주고 보듬어주며 내 일처럼 나서서 처리해 준다.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담을 들려주며 앞으로 살아갈 날을 걱정해 준다. 나도 저렇게 늙었으면 하는 바람과 보라색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찾았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드는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다시금 박서련의 이름을 확인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셜리 클럽 할머니가 연 중고장터에서 건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언어처럼 소설은 재생, 잠시 멈춤 버튼을 넣어 설희는 속마음과 소설의 플롯을 나누었다. 이런 참신하고 아날로그적인 발상이 이 소설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