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리듬 (알라딘 한정판 표지)
엘라 윌러 윌콕스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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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보이>를 당시 극장에서 본 나는 무척 충격이 컸었다. 벌써 20년도 더 된 영화가 되었지만 여전히 센세이셔널한 감각은 잊을 수 없었고 얼마 전 OTT에서 다시 봤을 때도 너무 세련되고 잘 만들어서 (다른 의미로) 무서웠다.


전 세계의 영화팬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던 영화 <올드 보이>의 주인공 오대수는 방에 걸린 '제임스 앙소르'의 그림 '슬퍼하는 남자' 밑에 글귀를 본다. 


웃어라, 그러면 세상이 너와 함께 웃는다

울어라, 그러면 너 혼자 울게 된다

(여기까지가 올드 보이 인용)

이 후줄근한 세상은 근심거리가 차고 넘치지

그래서 어디선가 즐거움을 빌려야 한다

고독, '엘라 윌러 월콕스'

그 문장이 <올드 보이> 속 오대수의 상황과 잘 맞았다. 이 시의 원작자인 엘라 윌러 월콕스의 시 '고독'은 1883년 2월 25일자 《뉴욕선》에 실렸다. 당시 5달러(현 약 150달러)를 받았고, 1883년 5월 출간된 시집 《열정의 시》에 수록되었다. 


이 시는 주지사 취임식 만찬에 초대받아 오른 열차에서 결혼한 지는 1년째지만 1주일 전 사별한 여인의 흐느낌에 전염된다. 깊은 슬픔과 우울에 휩싸여 있었고 이후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장소에서도 쉽사리 놓지 못했다.

막상 전문을 읽어보니 삶에 대한 멜랑꼴리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서 살 수 없는 인간은 고독을 통해 행복을 갈망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성장하는구나 생각했다.


윌콕스는 대중 시인으로 성공했다. 대부분 사랑을 주제로 한 시가 많지만, 폭넓게 보자면 인생에 대해 다룬다고 할 수 있다. 한 편 한 편이 시라기보다는 격언구처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시의 엄격한 형식에서 벗어나 스토리가 있어 흥미롭다. 단 몇 줄로 요약한 영화의 로그라인 같은 시도 있었다.


《고독의 리듬》 표지는 두 가지다. 그중 알라딘 한정판이 내게로 왔다. 오스카 슐레머의 '바우하우스 계단'이다. 바우하우스 계단을 오르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며 지식, 무의식 등 무언가를 향해 이어지는 상황이 어울리는 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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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짜툰 10 - 고양이 체온을 닮은 고양이 만화 뽀짜툰 10
채유리 지음 / 북폴리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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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짜툰》 10번째 이야기가 단행본으로 나왔다. 2년 만에 찾아온 대한민국 최장수 고양이 만화의 10주년 기념 컬렉션. 애묘인, 집사들의 소장각 만화로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온 만화가, 역시나 돌아왔다. 2003년 가족이 된 애교와 시한폭탄급 사고를 치고 다니는 뽀또, 짜구, 쪼꼬에게 보내는 작가의 편지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세 마리 포비, 봉구, 꽁지를 포함한 일곱 대가족의 유쾌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번 단행본에서만 공개되는 스페셜 에피소드가 소장 욕구를 더하는 가운데, 'BUNUS 댓글 그려드립니다'라는 코너에서 독자의 댓글을 작가가 일러스트로 재구성한 '독자 헌정 선물'까지 쏠쏠한 재미와 소통, 정보, 노하우가 담겨 있는 열 번째 단행본이다. 

이 녀석들과 채유리 작가의 소소한 일상과 재미있는 추억을 배꼽 빠지게 읽어갈 때쯤. 마지막에 강타하는 뭉클함. 반려동물을 키워 본 사람만이 공감한다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이야기, 아픈 녀석들, 가족이 되는 20여 년의 과정이 펼쳐진다. 20여 년 전 초보 집사였던 작가가 베테랑 집사가 되었던 만큼 웹툰을 보던 청소년이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함께 성장해가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반려동물은 어찌 되었든 인간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가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동물을 키울 생각은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 여행도 제대로 못 가고, 아프면 비용도 많이 든다. 식비, 청결유지비, 미모 유지비 등등 나가는 돈도 많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보다 더 배우고 얻는 것이 많기 때문에 함께 하는 엄연한 가족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벌써부터 헤어짐이 두려워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유기 동물의 경각심을 되새기며 그래도 키우겠다면 가족이 되길 바란다. 사랑스러운 털 뭉치들이 얼마나 큰 위로와 기쁨이 되는지, 교감하며 힘이 되는지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무지개 우체통이 있다면 우리 몽이에게도 편지를 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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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그 말이에요 - 오늘 하루를 든든하게 채워줄, 김제동의 밥과 사람 이야기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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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밥심. 해외에 나가보면 맛있는 현지 음식이 며칠 내로 물린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불고기, 설렁탕, 떡볶이, 냉면.. 한식이 먹고 싶어지는 때가 누구나 찾아온다. 곁에 있어서 잘 몰랐던 음식을 끊었을 때 비로소 소중함을 알게 되는데, 한국인에게 밥은 소울푸드 그 이상이다.

요즘이야 탄수화물 중독이라며 찬밥 신세지만 찬밥도 맛있다. 김 싸먹어도 맛있지, 겉절이에 먹을 때도, 라면에 밥 말아 먹을 때도 오케이다. 밥 한번 먹자, 밥 먹었어?라는 말로 인사를 거네는 민족도 없을 것 같다. 잘 먹고 잘 자고 별일 없이 사는 게 최고인 하루하루다.

오랜만에 김제동을 만났다. 한때 말도 잘하고 소탈해서 인기가 많았는데 언제부터인가 활동을 하지 않더라. 어디 아픈 건가, 공부하는 건가, 해외 나갔나 싶었는데 오랜만에 작가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를 든든하게 채워줄, 밥과 사람 이야기'란 부제를 들고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우리 누나들에게

제가 만든 김치볶음과 따순 밥을 차려 주고 싶습니다.

p.31


김제동은 방송에서 다섯 누나들 이야기를 자주 했다. 어려운 형편에 누나들이 자길 키웠다며 고마워했었다.


누나들은 아마 안 먹을 거라지만 막냇동생의 효도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다복한 가족의 따뜻한 밥 이야기가 뭉클하다. 야식 같은 건 없던 시절 바가지에 비빈 밥을 나눠 먹으며 자랐단다.

이제는 탄이라는 예쁜 강아지와 사는 그가 여러 사람들과 밥을 먹으며 사는 이야기가 도란도란 적혀있다. 귀엽고 따스한 일러스트는 덤이다. 아직도 '장가 언제 가냐'라는 말을 듣는데 그때마다 '6시쯤 당신 모르게 남들 깨지 않는 시간'이라고 재치 있게 이야기한단다. 곤란하고 무례한 질문에서 빠져나가는 법, 대인관계 스트레스 덜 받는 법, 가짜 뉴스 판별 법 등. 요즘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도 제시한다.


저는 세상에서 제일 성공한 사람은

자기에게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에게 다정한 사람

p293

김제동이 그랬다. "친구하고 사이가 안 좋으면 잠깐 안 보다가 다음에 또 만나면 되고, 학교가 정 마음에 안 들면 전학 가면 되지만 자기하고 관계가 안 좋으면 평생 어디 갈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친절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가장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사랑해 주는 다정한 사람. 못나 보이고 막말도 서슴없이 해줄 사람도 나. 나를 좀 더 사랑해 주는 사람이길, 나의 첫 번째 지지자가 되어 주길 토닥인다. 그리고 맛있는 거 먹고 힘내라고 좋은 것만 먹을 거다. 내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내 주변도 같은 마음이니까.


"오늘도 수고했어, 내 말이 그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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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꽃 소년 - 내 어린 날의 이야기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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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을 거닐다 예쁜 카페가 반가워 커피를 마시다 알게 된 박노해 시인. 지인에게 책도 선물 받아 기분까지 좋아졌던 하루였다. 조근조근 거닐었던 그날의 마음만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왔던 전시도 무료 관람했다. 그때가 생각나는 책을 감사히 또 선물 받았다.

예쁘고 귀여운 필사노트도 함께와서 꾹꾹 눌러 담기에도 좋았다. 교보문고에서 구매하면 필사노트를 한정판으로 드리니 참고하길 바람!


박노해 시인의 첫 자전 수필 《눈물꽃 소년: 내 어린 날의 이야기》는 그의 소년시대가 담겨 있는 소박한 선물 같았다.

1984년 27살에 금서로 지정된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쓴 박노해 시인. 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며 1991년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사형을 받고서도 웃음을 감추지 않았던 그의 모습이 담겨 있는 듯 단단한 느낌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상을 유랑하기도 했다. 7년 6개월 만에 석방된 후 무기수에서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지만 국가보상금은 거부했다. 그 후에도 20년간 평화 활동을 멈추지 않고 지속했고, 만년필로 써 내려가는 글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책은 박노해 시인이 그린 연필그림 33점이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전라도 사투리가 그대로 담긴 책 속 어귀가 시인의 어린 시절 속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간 듯 생생하다. 스스로 가장 아름다웠던 노스탤지어로 칭하던 소년 시절을 눈물꽃으로 정의하는 시인은 감수성 깊은 소년이었을 거라 상상해 봤다.



난 평이 니가 시를 쓰고 읽어줄 때가 너무 좋아.

그럴 때면 너한테서 막 빛이 난다.

반딧불 천 마리가 모인 것처럼.

네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맑아지고 힘이 나.

난 알아. 넌...강한 아이야.

평아, 넌 꼬옥 훌륭한 시인이 될 거야.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고 자고 일어나면 어제의 세상이 오늘과 너무 다르게 변해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는 현대인. 좀 천천히, 쉬어가면 도태되어 버릴까 봐 조마조마, 노심초사다. 그때마다 잠시 쉬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책이 박노해 시인의 책들이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고 성장했는지 알 수 있는 자전적 이야기는 AI가 따라갈 수 없는 인류만의 유산이란 생각을 했다. 내가 겪어 온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나침반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참고서가 되리라. 순수해서 더 가슴 시렸던,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그때를 독자 스스로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고 있다.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은 2012년부터 상설 전시를 해왔다고 한다. 20여 년간 세상을 돌아다니며 카메라 포커스에 담은 세상 이야기를 서촌의 '라 카페 갤러리'에서 전시하고 있으니 시간 될 때 거닐어 보자.

이번 전시의 제목은 '올리브 나무 아래'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천 년의 올리브나무를 바라보며 자신의 길을 가고자했던 37점의 사진이 기다리고 있다. 무료 전시일 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한 카페와 맛 좋은 커피, 차도 즐 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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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른 등을 만질 때 -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엄마 그리고 나
양정훈 지음 / 수오서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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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지날 때마다 세우는 새해 소망 혹은 계획이 건강을 우선순위에 올린지 오래다. 자고 나면 가뿐했는데 예전만큼 회복되지 않는 컨디션을 감지할 때, 늘어나는 주름, 흰머리를 마주할 때, 양가 부모님의 건강 신호만 들어도 겁이 날 때. 아 내가 나이 들었구나 실감한다.

내 이야기가 아닐 거 같고 먼 북소리처럼 희미하게 들렸지만 건강은 장담할게 못 되기 때문에 주말 늦은 오후 저녁때가 다 되어 읽은 책이 유독 마음을 건드린다. 누구라도 떠나보낸 기억이 있다면 쉽지 않을 독서가 되게 싶더라.

부모님 두 분이 암을 진단받는 기분은 어떨까. 유방암을 이겨내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 얼마 후 자궁암이란 소리를 듣는다면..?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낯선 공포가 엄습해 왔다. 예전에 읽었던 어느 책에서 죽은 엄마가 담가준 반찬을 몇 년째 버리지 못한 사연을 읽다가 펑펑 울었다. 나도 비슷한 상황이라면 엄마 김치가 쉬어 터져 상해버려도 먹지도 못하고 놔두고 있을 것 같아 괜히 먹먹했다.



죽은 자의 김치가 밥상에 놓여 산 자른 먹인다. 밥 먹는 일도 까맣게 잊을 것만 같은데 끼니때가 되면 어김없이 배는 고팠다.

P 292

책은 유방암 발병 후 자궁으로 전이되어 완치 판정 3개월 만에 복수가 차오르던 엄마를 기록한 아들의 병상일지다. 절망과 희망을 오가며 항암 중 견뎌 온 날들을 힘겹게 꾹꾹 눌러 담았다. 눈물 없이 읽기 어렵고, 참기 힘든 고통이 그대로 느껴져 다음 장을 넘기기 쉽지 않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날은 먼 미래 같지만 지금 이 순간일 수 있다. 부모는 자식의 효도를 기다리지 않기에 현재를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커진다. 당장 못 다한 이야기, 못한 일이 있다면 실천하자.

힘든 기억을 글로 적어 책으로 엮은 정훈 씨가 부러웠다. 엄마를 글로 기록해 놓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책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을 테니. 그러나 쓰는 동안은 얼마나, 퇴고하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도 떠올리니 안쓰러웠다. 어쨌거나 이 책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잔인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산자의 밑거름이 되어 버린 거다. 남겨진 사람들은 떠난 사람을 평생 가슴에 묻는다. 추억을 곱씹으며 조금씩 살아갈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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