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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물리학 - SF가 상상하고 과학이 증명한 시간여행의 모든 것
존 그리빈 지음, 김상훈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평점 :
SF장르 좋아하세요? 시간여행은 SF 단골 소재이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웹툰에서도 많이 볼 수 있어요.
기존의 시간여행과는 결이 다른데, 빙의 소재라고도 하죠.
어느날 갑자기 깨어나보니 내가 읽고 있던 소설의 등장인물이 되어 있는 거죠.
대부분 주인공이 아니라 악녀 또는 이름조차 잘 드러나지 않았던 주변인물로 많이 빙의가 되어 그 소설을 이끌어가는 핵심인물로 부상하게 되는 스토리를 갖고 있어요.
빙의 말고도 사건에 휩쓸려 죽임당했는데 눈을 떠보니 몇 개월 또는 몇 년 전으로 돌아가 있는 경우도 있구요.
웹툰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SF 이야기하다말고 웹툰 이야기만 한가득. 모두 시간여행이라는 한 카테고리 안에 존재하는 소재예요.
"SF는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다루지만, 보통 우리는 그런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반면 판타지는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을 다루지만, 독자인 우리는 내심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것을 판타지라고 부르죠. 아서 C. 클라크가 한 말인데 존 그리빈 박사는 <반지의 제왕>을 예로 들며 작중 인물들이 겪는 온갖 고난을 실제로 경험하고 싶은 독자가 있을까 하며 의구심을 갖지만, <반지의 제왕>은 대다수의 독자들이 SF와 판타지 사이에 펼쳐진 영역의 어떤 지점에 시간여행을 두고 있는지를 뚜렷하게 부각시켜준다고 의견을 남겼어요.
시간여행은 판타지가 아니지만, 그저 SF라고만 할 수도 없다는 의미예요.
따라서 시간여행을 '그저 SF에서나 가능한 공상'으로 치부하는 사람은 과학적인 맥락에서 틀렸을 뿐만 아니라 SF라는 장르에 심각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며 이 책에서 그 가능성에 대해 증명합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시간여행의 가능성'이라니.
김상욱 교수님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을 읽으면서는, 과학에서 예술적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생각했었어요.
시공간이동이라는 소재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상상력이라고.
그런데 <시간의 물리학>을 읽으면서는, 반대로 공상이 먼저 그리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낸.
어떻게 보면 공상이 과학 발전을 이끌어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로 중요한 차이는 아니지만 과학의 위대한 발전에 앞선 문학의 위대함이 더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운명적 문과인 저만의 뿌듯함이라고 할까요.
4차원으로서의 시간, 시간의 방향성, 양자 터널링, 시공간의 왜곡 등 정형화된 실험과 그 결과만을 기술하는 과학이 아닌, 이야기로 세계를 만들어가는 물리학을 통해 시간여행에 대한 끌림을 한층 더 높여줬어요.
출판사 카드뉴스에서처럼 저에게는 단 한 번이라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거든요.
9단계 사고실험을 거친 뒤, 에필로그에 실린 '모든 것은 오디오 큐브에서 시작되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존 그리빈 박사의 SF 단편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