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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은 밤을 걷는다
우사미 마코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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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성()을 짊어진 산이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일본의 어떤 도시가 배경인 연작 소설집입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격인 앞뒤의 두 편을 포함하여 총 열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이야기엔 서로 다른 화자(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무대가 되는 도시의 삶에서 밀접하게, 혹은 느슨하게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들 또한 그런 모양새입니다. 한 이야기에서 그저 스쳐가는 단역이거나 엑스트라였던 인물이 다른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되는 식인데, 이런 구성엔 장단점이 있습니다.

 

단편적이었던 인물이 보다 입체적으로 다뤄지는 순간은 한 인간의 출생을 닮았습니다. 각기 다른 개성의 인물들은 그들이 공유한 한 세계 안에서 그들만의 삶을 구축해 냅니다. 그 삶들은 서로 다른 애환과 비밀, 음모, 욕망과 추문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른 인물들의 삶에 영향을 주거나 영향을 받습니다.

소설 작품을 읽는 즐거움이 타인의 삶을 몰래 엿보는 관음 행위가 주는 guilty pleasure와 비슷하다면, 일반적인 서사보다 이런 형식에 관능적인 쾌락이 더 많이 따르는 이유는 독자로서 지켜볼 수 있는 삶의 양상이 보다 다양하기 때문일 겁니다.

 

하나의 커다란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다수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비중을 균일하게 다룬다는 건, 그들을 통해 삶의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어 감상의 폭을 보다 넓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을 꿰뚫는 핵이 없거나 모호하다면 다소 산만해 보입니다. 이 작품집의 경우, 그럭저럭 반타작은 합니다. <고양이를 안은 여자>, <흰 꽃이 지다> 같은 작품들은 전체 이야기와 잘 붙지 않습니다. 다소 억지스럽고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이 단편들이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이유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읽히는 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짧고 쉬운 문장에 인물들의 심리가 보편적이라 감정이입이 수월합니다.

반면 이야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소 재활용의 느낌이 많이 듭니다. 인물들의 성격이나 갈등 요소들이 진부하다는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잘 붙는 건 환상적인 무대와 다소 괴기스러운 설정을 작가가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호러 소설로서의 설정들 역시 파고들면 재활용품이지만 작가 나름의 개성으로 그것들을 잘 포장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분위기, 전체 모양과 조화를 이룹니다.

진부함을 극복하고자 작가가 구성과 형식에 취한 몇 가지 트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노림수조차 아주 새로운 건 아니지만 이야기의 극적인 효과를 살리는 데 꽤 보탬이 됩니다.

 

 

뼈 때리는 통찰이나 철학을 내세운 읽을거리도 아니고 가까이 두고 거듭 읽을 작품은 아니지만 나름의 의미와 재미는 보장합니다. 출퇴근 전철 안에서나 누군가를 기다릴 때, 무료한 시간을 즐겁게 때울 가벼운 읽을거리로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익숙한 틀 안에서, 그 익숙함의 묘미를 잘 살려 자신만의 개성으로, 작가는 자신의 일을 썩 잘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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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독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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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이야기는 좋고 가독성도 뛰어난 편입니다. 

독자의 정서를 건드리는 지점도 풍부하고 혐오감과 동시에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들도 잘 만들어졌습니다. 캐릭터의 반전도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미스터리로서는 다소 허술해 보입니다. 

시점의 혼용은 기만적으로 보이고, 수거되지 않은 밑밥, 엉성한 트릭은 다 읽고 나서도 찜찜합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에서 오는 감동을 방해하는 꼴입니다. 


한 챕터는 이미 죽은 여자의 일인칭 시점에서 이야기가 서술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고무 보트가 단지 칼이 스쳤다는 이유로 그렇게 쉽게 찢어질 수 있는지. 무슨 풍선도 아니고 말이죠. 

'난바' 선생이 죽은 현장에서 발견된 책 사이의 과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은 건 작가가 단순히 잊어버린 걸까요. 

그리고 난바 선생의 죽음에 대해선 한 인물의 상상과 추리만 있을 뿐 명쾌한 해답은 결국 나오지 않습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책 사이에 과자를 끼워넣는 게 가능하다면 높이 쌓인 책들을 무너뜨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이런 허술함이 미완의 감상을 남겨 잘 쌓아올린 이야기의 매력을 반감시킵니다.   


읽는 동안 즐거웠지만 썩 잘 만든 미스터리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소개하고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닌 셈이죠. 투자한 돈과 시간이 아까운 건 아니지만 좀 더 완벽한 작품이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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