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영꽃님의 서재 (영꽃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책 읽고 끄적끄적.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20 Aug 2026 21:39:13 +0900</lastBuildDate><image><title>영꽃</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47911594573865.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영꽃</description></image><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예순여덟 번째 책 - [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57918</link><pubDate>Tue, 18 Aug 2026 16: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579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935544&TPaperId=174579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611/82/coveroff/k7329355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935544&TPaperId=174579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a><br/>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br/></td></tr></table><br/>26년 예순여덟 번째 책.<br> ★★★☆&nbsp;환갑을 앞두고 때 아닌 죽음을 맞은 국어교사 ‘정윤옥’의 삶을 그린다. &nbsp;교사로서 윤옥은 투사에 가깝다. 전교조 가입으로 해임됐다가 복직했으며, 교육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원대한 꿈을 함께 품었던 동료가 육욕에 굴복하고 돈과 명예에 변절하는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동료 교사들과 친밀한 우정을 나누지 못하는 단단하고 꼿꼿한 원칙주의자고, 거의 모험에 가까운 수업으로 학부모들의 원성을 듣지만 무시할 정도로 배짱이 있다. &nbsp;개인으로서 윤옥은 슬픈 가족사를 지닌 비운의 주인공이다.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 동생 ‘지호’를 포기하는 엄마를 방관하고 어린 나이에 임신한 제자의 아이를 거두어 키운다. 정체가 모호한 시설에 떠맡겨진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기억은 윤옥의 일생을 지배한다.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교육에 헌신하는 모습은 과거의 속죄일 수 있다. &nbsp;내겐 ‘좋은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몇 명의 선생님이 생각나긴 하는데, 거의 초등학교 시절에 만난 분들이었다.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을 때. 그런데 그 시기에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까. 적어도 어느 선생님이 친절하고 누가 아이들에게 진심이었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대강 눈치채고 있지 않았을까. 어리고 세상 모르고 행동과 반응은 굼떴어도 분위기를 읽는 건 빠르고 정확한 편이었으니까. (눈치가 빠르다고 뭐를 어떻게 반응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는 선생님이란 존재를 절대 좋아할 수 없었다. 모든 걸 떠나서 그들은 내가 절대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요구했고 내 실패에 대해선 매우 엄격했다. &nbsp;굳이 내 과거를 거울 삼지 않아도 윤옥이라는 캐릭터는 비현실적이다. 너무나 일관된 모습뿐이라 얇은 종이처럼 팔랑거린다. 그 영웅적인 모습은 소위 교육계의 히로인, 어벤저스 대접을 받을 만하다. 이런 사람이 있다고? 아니, 이런 선생님이 있다고? &nbsp;소설이니까. &nbsp;하지만 무엇보다, 주인공이 위인에 가까운 인물임이 분명해도 정의와 올바름에 선다는 건 내게 일종의 각성이 되었다. 나, 자신이 비겁하고 기회주의적인 인간이지만, 인간이라면 정의와 올바름에 마음이 기우는 건 인지상정 아닐까. 정의롭게 행동하는 건 전혀 별개의 문제지만. 그러기 위해선 용기와 자신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그것은 나의 미덕이 아님을, 내게 그것이 충분치 않음을 깨달을 때 수치스러워야 할까. 아니면 부러움?&nbsp;이야기는 윤옥이 한 일보다 그녀의 삶 자체에 집중한다. 그래서 굉장히 바쁘다. 초반엔 산만해서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여러 일이 일어나는데 깊이는 없다. 큰 위험도 위기도 없다. 뭔가 일이 터질 만하면 운 좋게 잘 넘어간다. 다이나믹(dynamic)하기보다 파노라믹(panoramic)하다. 이런 이야기에서 흔히 보이는 건데 교훈을 너무 노골적으로 외치고 있다. 불필요한 사건들도 많다. 적어도 윤옥은 왜 죽어야 했는지, ‘영숙’은 왜 자살한 건지, 등은 설명 내지는 이유가 필요하다. 출판을 위해 분량을 많이 줄였다고 하는데(목차 포함 244쪽), 지금보다 좀 더 길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nbsp;‘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이 작가에게 계기가 됐다고 하는데, 그 이슈를 정면에서 파고든 작품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교권침해’, ‘학부모의 갑질’ 같은 이슈가 등장하긴 하는데, 다른 이슈들에 파묻혀 유야무야된다. 할 이야기는 많고 분량은 정해진(짧은) 탓에 진중하게, 사건의 드라마성을 차분히 다룰 공간이 없다. 오히려 ‘서이초’ 사건에 대한 정보는 이 작품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책을 손에 드는 게 낫다. &nbsp;그럼에도 (주인공의 한결같이 영웅 같은 면모를 무시하면) 작품은 꽤 읽을 만하다. 작품에서 힘이 느껴지는데 그게 이야기에서 나온다기보다 캐릭터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윤옥에게서 우러나오는 에너지는 여전사의 기개에 가까워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다. 간결하고 안정적인 문장이 눈에 착 붙는다. 윤옥의 죽음을 서두에 두고 그녀의 삶을 되짚는 세 장(chapter)의 구성도 적절해 보인다. 초반의 산만함은 오륙십 쪽을 넘어서며 질서를 찾아간다. (대사는 살짝 오골오골하다) 교육 현장에 관한 디테일이 상당하다. (그 바닥을 전혀 모르므로 그렇게 보인다고 말하는 게 낫겠다) 작가의 본업이 교사이니 아마도 실제 지식과 경험에서 온 디테일일 것이다. 선생님이 주인공이 아닌, 학교가 무대가 아닌 소설도 작가가 잘 쓸까, 이런 의심 살짝 해본다.&nbsp;결말에 대해서. 윤옥은 자신이 치른 전쟁에서 이겼을까. 그건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에 따라 다르다. 여러모로 이런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윤옥의 상대는 거대한 시스템과 삶 자체였다. 결과를 떠나 무언가를 시도했다는 것만으로 그 가치는 빛난다. 윤욕은 용감했고 자신을 희생했고 행동하며 버텼다. 삼가 정윤옥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nbsp;제13회 (2023년)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611/82/cover150/k7329355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6118200</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예순일곱 번째 책 - [그해 봄의 불확실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57892</link><pubDate>Tue, 18 Aug 2026 16: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578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4929&TPaperId=174578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627/3/coveroff/89329249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4929&TPaperId=174578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해 봄의 불확실성</a><br/>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01월<br/></td></tr></table><br/>26년 예순일곱 번째 책.<br> ★★★☆&nbsp;몇 년 전, 전 세계를 얼어붙게 만든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무대로 한다. ‘얼어붙게 만든’이라는 표현은 (돌이켜 보면) 전혀 과장이 아니다. 말 그대로였다는 걸 모두가 안다. &nbsp;작품은 그 시기를 지나는 한 개인(아마도 작가 자신)의 사적인 기록이다. 친구의 지인 집에 머물며 홀로 남은 앵무새를 돌보게 된 이야기를 기둥으로 남성과 여성, 문학과 예술, 글쓰기, 삶과 죽음, 유머의 힘, 선과 악, 타 생명체에 대한 예의와 책임감, 환경 문제 등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다양하게 흘러나온다. &nbsp;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 대한 윤리 의식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했다. 이슈는 곧바로 환경 문제로 이어지고, 환경 운동이 어떻게 좌파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는지 설파한 ‘데릭 젠슨’의 저서 ≪거짓된 진실 (아고라, 2008년 刊≫을 생각나게 해서 흥미로웠다. 또한 작가는 ‘제인 구달’을 인용하기도 하는데, 팬데믹 시절에 본,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의 출현에 대해 ‘야생 동물 학대’, ‘지구촌 빈곤을 줄이기 위한 노력의 부재’에 원인을 둔 제인 구달의 인터뷰 영상도 생각났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기적 행동과 태도를 악(惡)으로 규정지으려는 노력은 의외로 드문 것 같다. 선함과 악함, 둘 모두 인간 본성의 속성이라면, 대개 선함보다 악함이 더 쉽게 드러나는 것 같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nbsp;❝인간의 몰인정함보다 예측하기 쉬운 게 있을까? 그게 얼마나 이른 나이에 시작되는지 목격하는 것보다 섬뜩한 일이 있을까? (151~152쪽)❞&nbsp;❝나는 세상에 악한 사람들보다 선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는다. 하지만 수적으로 우세하다고 해서 반드시 선이 승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반드시 고려에 넣어야 할 점은, 특정 상황에서는 악이 선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게 만들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특정 목적-이를 테면 전쟁에서의 승리-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219~220쪽)❞&nbsp;이 소설엔 (굳이 첨언한다면) 플롯이 없다.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허문다는, 혹은 두 장르를 혼용한다는 점에서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 멀리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소위 ‘에세이 소설’들 대해 적어도 독자로서의 나의 인식은 부정적이다.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 즉 거짓의 이야기(하지만 진실을 말하는)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다. 그런 내게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nbsp;❝전통적인 소설은 우리 시대에 주요 장르로서의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아직 죽지 않았을 수는 있어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중략) 여전히 인물의 성격과 체험을 그려 내는 강력한 도구로 남아 있지만, 허구의 이야기는 점차 핵심에서 벗어난 인상을 줄 것이다. 점차 작가들은 ‘당신은 왜 지어낸 이야기를 하죠?’라고 묻는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288쪽)❞&nbsp;작가의 말대로 이 주장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까. 작가의 주장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의 역사와 성찰을 담은 문학(289쪽)’일까. 작가는 이란의 영화감독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nbsp;❝셰에라자드와 왕의 시대-이야기의 시대-는 끝났다. (289쪽)❞&nbsp;소설이 어떤 모습이든, 혹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든 분명한 게 있고 이건 내게 위로와 힘이 된다. 작가는 ‘플래너리 오코너’의 말을 인용한다. &nbsp;❝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소설을 쓰지 않는다. (220쪽)❞&nbsp;매력적인 인물이 등장하고 그, 혹은 그녀에게 일어나는 드라마틱한 사건과 클라이맥스, 반전의 결말 등을 이 작품에 기대하는 건 무리이다. 그리고 문학, 특히 소설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작가의 주장엔 아직까지 동의하기 힘들다. 하지만 잔잔히 물 흐르듯 작가의 의식을 쫓으며 조곤조곤 읊조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건 분명 편안하고 좋은 경험이었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627/3/cover150/89329249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6270320</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예순여섯 번째 책 - [그래도 춤을 추세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49887</link><pubDate>Fri, 14 Aug 2026 03: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498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030229&TPaperId=174498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991/19/coveroff/k4720302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030229&TPaperId=174498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래도 춤을 추세요</a><br/>이서수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8월<br/></td></tr></table><br/>26년 예순여섯 번째 책. &nbsp;★★★&nbsp;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서수’의 작품집.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nbsp;전체적으로 평타는 치는데 ‘정말 좋다’라고 할 만한 작품이 없다. 물론 겨우 한 권 읽고 이런 말 하기엔 섣부른 감이 있지만 (더 읽어봐야 하겠지만), 이 작품집 한 권만으로 감상을 밝힌다면 이서수 만이 쓸 수 있는, 오리지널한 무언가는 찾기 어려웠다. &nbsp;‘평타를 친다’는 말은 평균적인 감상이다. 아마추어 같은, 습작처럼 읽히는 작품(전반부)이 있는가 하면 뒤로 갈수록 작품들이 그럴싸해진다. 이걸 다 한 사람이 썼다고? ‘예소연’의 ≪사랑과 결함≫을 읽으면서도 거의 똑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하지만 예소연과는 달리, 이서수는 장편과 단편집을 이미 여러 권 펴낸, 소위 ‘중견’이라 할 만한 작가다. 그럼에도 이 책으로 작가의 역량, 문체의 개성, 상상력과 구성력, 필력 등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한 권만으로도 팬심이 솟아나게 만드는 작가들이 있는데 이 작가가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nbsp;이야기마다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바로 모녀 관계(혹은 그 유사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 반면 남성들은 철저히 소외된다. ‘거세된 남성성’이란 표현은 좀 과할지라도 작품들마다 남자들(주로 아버지들)은 나쁜 사람이거나 필요가 없거나 거추장스러워 무대 밖으로 치워진다. 뿐만 아니다. 이야기들의 ‘문제적 인물’들은 거의 남성들이라는 점에서 성차별적인 요소가 보인다. &nbsp;너무 불평만 한 것 같은데, 나름 좋았던 점도 언급해야겠다. 이건 차별이야, 이건 혐오야, 그건 꼰대 마인드야, 그건 가스라이팅이야, 그건 가부장이야. 이런 말들은 요즘 너무 쉽다. 그리고 너무 편리하다. 상대방의 입을 한순간에 닫게 만드는 너무나 강력하고 유용한 ‘칼’의 말들이다. 작가는 가끔 이런 말들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류에 묻어가지 않고 주변을 관찰하고 살핀 결과로서, 그런 말들조차 다른 형태의 폭력이고 편견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다. 그런 부분은 꽤 신선했다. &nbsp;작품집을 여는 &lt;이어달리기&gt;는 경쾌한 톤, 긍정적인 분위기로 쉽게 읽히지만 책의 첫 작품으로서 독자들을 휘어잡는 데엔 역부족이다. 별론데? 하면서 책을 쉽게 내려놓는 독자들은 분명 존재한다. 일단 화자의 상황이 설득력이 없는 건 물론이고 신뢰가 가지 않는다. 상사의 갑질에 시달리고 격무에 혹사당하고, 이런 불만들이 화자 자신의 시선과 발언에 머물고 있어 과연 그 말들을 믿을 수 있는지, 의심을 하게 만든다. 이는 균형의 문제다. 객관성이 결여된 시선은 이야기 전체에 암시되는 화자의 미성숙한 모습으로 탄력을 받는다. 재취업 의지를 보이지 않는 화자가 엄마를 대하는 태도는 가관이다. 엄마를 ‘씩씩하고 단단한 삶 대신 아름답고 슬픈 삶을 선택한 사람(27쪽)’으로 판단하며 희생을 종용하는가 하면, 막무가내로 회사에서 사라지려 했던 에피소드에서(36쪽), 엄청난 소동을 예상했으나 자신의 부재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모습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한편 연민과 동정을 구하는 어리광이나 투정에 지나지 않게 보인다. (완전한 성장과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엄마의 그늘 아래로 숨는 자식은 뒤에 실린 &lt;AKA 신숙자&gt;에서도 보인다) 화자의 상황에 설득이 되질 않으니 이야기 전체에 공감이 안 간다. 실직한 엄마와 도서관을 들락거리는 에피소드 역시 허무맹랑한 판타지, 과한 사치로 보인다. 과한 설정은 또 있다. 엄마의 교통사고는 도대체 무슨 의미, 무슨 소용일까. 화자가 고백하듯, ‘어려운 글 말고 그냥 내 이야기’, ‘하루를 낭비하는 이야기’, ‘의미 따위는 없는 글, 내가 이렇게 산다고 적는 글, 우리 외엔 아무도 읽지 않는 글(31쪽)’이 이 작품의 본질이라면 독자로서 무슨 말을 더 얹을 수 있을까. &nbsp;&lt;춤은 영원하다&gt;는 엔딩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무덤가에서 세 명의 여자가 춤을 추는 모습은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 제례나 ≪맥베스≫의 세 마녀, 러시아 설화를 소재로 ‘고골’이 쓴 작품들 연상하게 한다. 이 장면은 말하자면 이 소설의 가장 강렬한 장면,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게 전부다. 오직 엔딩 장면을 위해 쓰인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야기가 빈약하다. ‘춤’이라는 소재는 신선하다. 신과의 소통, 주술적 의식 이상으로 속을 비워내고 무아지경(trance)이 이르고 자신을 잊고 고달픈 현실을 벗어나는 행위는 모두에게 위로가 된다. 외할머니, 엄마와 이모, 화자로 이어지지는 세대를 아우르는 운명과 그것을 극복하거나 마주하기 위한, 시공을 초월한 연대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도 괜찮다. 하지만 결과물로서의 이 작품은 공허하다. 인물들의 춤은 위로가 아닌 ‘환각’처럼 보인다. 모든 시름을 잊고 한바탕 춤이나 추자는 결말은 너무나 진심 없는 위로, 대책 없는 파이팅으로 들린다.  &nbsp;‘직장사실주의’를 표방한 듯한 &lt;광합성 런치&gt;는 앞의 두 작품에 비해 늘씬한 모양새가 돋보인다. 여러모로 중간에 끼어 있는 인물 ‘차진혜’를 화자로 세대와 계급, 권력의 차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갈등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차진혜의 짝사랑은 자칫 빈틈을 메우기 위한 소비적 에피소드로 전락할 수도 있었으나, 차진혜에게 ‘그들’의 시각과 입장을 적극적으로 헤아리는 계기가 된다. 더불어 차진혜에게 타인과의 차이를 인식하는 인물, 그것을 극복할 의지가 있으며 적어도 노력은 하는 사람이라는 인간적인 매력을 부여한다. 전형적인 Z세대인 ‘박이재’라는 캐릭터가 평면성을 넘어서 입체적인 인간으로 반전하는 결말도 좋았다. X세대(대표, 홍차장), M세대(차진혜), Z세대(박이재) 등, 각 세대의 대표성을 지닌 인물들을 골고루 등장시켜 이야기를 천천히 빌드-업 시키는 구성, 인물 간 대화가 주는 재미가 좋으며 ‘차이와 다름에서 오는 갈등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독자 스스로 던지게 만드는 방식이 세련됐다. 단, 차진혜의 계모인 ‘김순화’는 쓸모가 없어 보여 지면 낭비처럼 보였다. ‘광합성’과 ‘런치’라는 두 단어를 결합한 제목에 대해선 핑계가 필요하다. 인간의 끼니는 박이재가 원하는 진지만큼이나 자본과 노동의 집약적 산물이다. 광합성도 마찬가지로 식물의 노동(명반응, 암반응)과 자본(빛에너지, 물, 이산화탄소 등)을 필요로 한다. ‘광합성 런치’라는 제목은 저절로, 혹은 손쉽게 얻어지는 무엇이라는 의미보다는 ‘식집사’인 박이재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화자의 욕망을 반영한 제목으로 여겨지는데, 작품의 제목으로는 부적절해 보인다. &nbsp;노동자인 엄마, ‘신숙자’와 미숙한 딸, ‘박미리’가 등장는 &lt;AKA 신숙자&gt;는 모녀 서사를 빌려 어떤 면에서는 아직 아이에 머물러 있는 청년 세대를 꼬집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줄곧 미숙한 딸의 이기심과 엄마의 희생을 비교하는데 미리 스스로는 엄마를 부양한다고 믿지만 그녀가 실제로 진심어린 성의를 쏟는 대상은 길고양이 ‘퐁이’다. 딸에게 신숙자는 그저 엄마일 뿐, ‘인간 신숙자’가 되기엔 요원하다. 딸은 엄마의 온라인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쓸 게 별로 없다는(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반면, 엄마는 계속되는 노동에 내몰린다. 그녀에겐 꿈이 있지만 아직은 일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그녀는 딸을 위해 끊임없이 희생한다. 무당은 아니어도 딸에게 도움이 된다면 서툴게 무당 흉내까지 낼 수 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헬레나 루빈스타인’의 초상화는 인간이 지닌 여러 겹의 얼굴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잘 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를 정말로 잘 알고 있는 것일까. 피상의 일부만으로 전체를 본다고 착각하고 있지나 않을까. 인간의 시간은 과거를 지나 현재에 이르러 미래를 향하는, 선(線)으로 흐르기보다 ‘차곡차곡 쌓이며(&lt;미식 생활&gt;, 252쪽)’ 흐른다. 위에 것을 덜어내고 깊이 파헤치는 노력 없이는 결코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작품은 우리가 타인을 보다 잘 보고 이해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이 충분한지 묻는다. 다만, 한 문단 안에서 시점이 ‘널을 뛰고 있다’는 건 치명적인 흠으로 보인다. 이런 아마추어 같은 실수가 진짜 실수일까. 아니면 어떤 의도로 계획된 예술적 허용일까.  &nbsp;&lt;운동장 바라보기&gt;는 이 작품집에서 베스트로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인물들의 편견과 설레발로 점철된 이야기는 부분으로 전체를 안다고 믿는 오만, 전형적인 패턴을 진실로 착각하는 오류, 소수와 약자를 위하는 척 드러내는 다른 형태의 가부장, 비판 없이 공식처럼 작동되는 PC적 사고, 이런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인식과 반응에 역차별적 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의 결말로 대항한다. 현실을 마주한 당사자가 아닌 외부인의 시선은 한계가 있다. 숫자뿐인 통계, 교묘히 선발되고 왜곡된 이미지 등은 사고를 무력화 시킨다. ‘김희서’의 일기를 제 식대로 윤색해서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청미’의 행동(161쪽)은 황색언론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돕고 싶다는 청미의 말에 희서는 ‘언니는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153쪽)’라며 되묻고, 귀촌한지 얼마 안 되어 곤충들에 익숙하지 않은 ‘설경’에게 ‘벌레를 무서워하면 벌레 많은 시골에서 못 산다(166쪽)’고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김희서로 대변되는 결혼이주여성들은 보통의 걱정, 우려와는 달리 타국 생활에 대해 이미 완벽한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들을 그저 타국에서 고생하는, 타국으로 ‘팔려온’ 피해자, 약자라는 프레임을 습관처럼 씌우고 있는 건 아닌지 질문해 볼 일이다. &nbsp;&lt;잘 지내고 있어&gt;는 논쟁적인 이야기가 될 뻔했으나 실패한 작품으로 보인다. 뭔가 아귀가 안 맞는 느낌이랄까, 초점이 어긋난 사진을 보는 느낌이 든다. 가장 눈에 거슬리는 건 연명 치료를 포기한 걸 ‘살인’에 비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딜레마를 제대로 보여주길 바랐다면 ‘안락사’ 정도의 이슈가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 이 작품은 줄곧 ‘모녀 서사’에 매달리던 작가가 (이제야 아빠들에게 미안했는지) ‘아빠’라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집의 유일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일단 눈에 띈다. 하지만 시종일관 의식불명으로 누워 있는 게 전부이므로, 아빠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서사의 촉매제로서의 도구 역할에 지나지 않는 아빠 캐릭터는 소외되고 거세당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면적으로는 조금 다른 형태의 모녀 서사로 읽히는데, 혈연이 배제된 모녀 관계(딸들과 아빠의 내연녀)가 이야기 저변에서 활발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아빠에 대한 힌트, 정보가 거의 전무하므로, ‘주연-세연’ 자매의 감정이 잘 살지 못하고 독자로서 이야기에 멀찌감치 거리를 두게 된다. 치열한 척 분위기를 내지만 이야기는 빈약하다. 공감할 여지가 많지 않다. 완성도와는 별도로 이 작품의 의미는 죽음, 웰 다잉(well dying)에 대한 사유를 촉발한다는 데 있다. 죽음에 있어 최소한의 품위를 잃지 않는 게 가능할까. 어떻게? 인간이라는 필멸자로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건 물론이고 안락사 역시 사회적으로 합당한 방법으로 용인되어야 하지 않을까. 죽음에 임박해 고통에 시달릴 때 그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동시에 사랑하고 함께 오랜 세월 동고동락 했어도 실제적으로는 가족으로서 아무런 권리도 보장도 없는 이야기 속 사실혼 관계를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 있는, 가족이지만 가족이 아닌 관계들(대표적으로 동성애자 커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숙고해 볼 일이다. 이들 관계를 법이라는 틀 안에서 효력을 갖게 하려면 사회는 어떤 시도를 하고 어떤 변화를 겪어야 할까. &nbsp;&lt;미식 생활&gt;에선 먹는 입, 넣는 입, 토하는 입, 탐하는 입, 죽으려는 입 등의 다양한 ‘입’이 등장한다. 작가는 ‘씹고 삼키는’ 흔하고 평범하며 익숙한 행위를 미시적인 시선으로 관찰하고 풀어헤치다가 경험, 삶, 역사로 시야를 확장(음식은 그저 음식이지 않고 입은 그저 입이지 않다. 그것은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생과 사에 개입하며 특정한 리듬 안에 잠기게 된다, 250쪽), 무너지고 있는 타인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인간애, 휴머니티의 결말로 이끈다. 서사의 흐름이 무척 유려한데, 마치 각기 흐르던 수많은 지류들이 마침내 깊고 푸른 강으로 합쳐지는 것에 비유할 만하다. 특히 손 끝에 혼이 붙은 듯 써내려간 결말 즈음의 페이지들에선 행간에 휘몰아치는 에너지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먹는 행위를 나만의 경험, 그것만이 내 역사의 근간으로 보는 작가의 인식이 독서라는 행위에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 건 새롭다. 책을 읽는, 나만의 고전, 나만의 명작을 찾는 과정도 비슷해 보인다. &nbsp;노동을 소재로 한 &lt;청춘 미수&gt;는 통통 튀는 문체와 경쾌한 톤, 화자 주변의 발랄한 조연들 덕에 유쾌하게 읽힌다. 이슈 메이커로서 울림이 꽤 묵직하다. ‘김아혜 선생님’의 행동을 시혜적 태도로 볼 것인가. ≪악인의 서사 (돌고래, 다수의 저자, 2023년 刊≫에서 ‘전승민’은 이런 태도를 ‘연민과 동정, 이해를 앞세운 우월한 자의식이 깃든 나르시시즘’으로 간주하고 소극적인 악(惡)으로 봤다. 김아혜 선생님의 친절 역시 있는 자의 여유, 가진 자가 보이는 가부장적 온정으로 볼 수 있을까. ‘미수’의 노동은 성실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과연 ‘성실한 노동’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떤 형태일까. 작가는 아마도 김아혜의 편을 들어주려는 모양이다. 미수의 꿈 속에 나타난 두 명의 엄마는 미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엄마 품을 벗어난 미수를 위한 다른 엄마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이 작품 역시 살짝 비튼, 다른 형태의 모녀 서사로 읽힌다. 김아혜의 친절이 진심이었는지, 그리고 진심이 통했는지, 미수는 자신이 받은 실망을 거두고 김아혜의 안녕을 빌어준다.  &nbsp;요즘의 한국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한국 문학’이란 어떤 장르적 특색, 경계가 존재하는 건 아닐까. 한정된 단어들만 가지고 생각하고 글을 쓰라는 무형의 압박이(마치 ‘오웰’의 ≪1984≫처럼) 작가들에게 가해지는 것은 아닐까. 물론 심각한 비약이고 과장인 줄 안다. 소설 역시 시대적 유행을 타는 것임을 부정해선 안 된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주류 문학들이 어떤 틀 안에서 머무는, 그 경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는 건 분명하다. 읽을수록 좀 더 새롭고, 좀 더 파격적이거나 독창적이고, 좀 더 용감하고, 좀 더 획기적인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 &nbsp;‘영혼을 때리는 울림’이라는 건 분명 있다. 과거엔 소설을 통해 종종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의 독서 이력을 살펴보면 그런 경험이 매우 귀하다. 무엇이 문제일까. 내가 변한 걸까. 아마도. 하지만 변화는 내 밖에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기교나 기술적 측면이 아닌 건 확실해 보인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991/19/cover150/k4720302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9911971</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예순다섯 번째 책 - [버트램 호텔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36111</link><pubDate>Thu, 06 Aug 2026 19: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361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8202577&TPaperId=174361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85/coveroff/893820257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8202577&TPaperId=174361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버트램 호텔에서</a><br/>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05월<br/></td></tr></table><br/>26년 예순다섯 번째 책. 애거서 크리스티 다시 읽기 스물다섯 번째 책. &nbsp;★★★☆&nbsp;❝사람은 절대로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돌아가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말이에요. 인생의 본질이란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니까 말이죠. 인생이란 결국 일방통행로 아니겠어요? (210쪽)❞&nbsp;영국 런던. 중심가에서 벗어난 한적한 곳에 위치한 ‘버트램 호텔(Bertram’s Hotel)’.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많은 게 진보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이 곳만은 과거 에드워드 왕조 시대(1901~1910년)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요즘 같으면 ‘레트로’라는 키워드 아래 SNS 페이지마다 인증샷으로 도배될 핫플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의 명탐정 ‘미스 마플’의 눈에는 부자연스럽다. &nbsp;호텔의 손님인 ‘레이디 셀리나 헤이지’에서 ‘데릭 러스컴 대령’으로 시점을 옮겨가며 작품의 주무대인 버트램 호텔을 보여주는 도입부가 무척 인상적이다. 독자는 작가가 이끄는 대로 호텔의 구석구석을 목격한다.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한 편의 연극처럼 느껴지는데 고풍스럽고 우아한, 한편으로는 폐쇄적이고 어딘지 모르게 비밀을 품고 있는 장소 덕이다. 무대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인 셈이다. 환상적인 연극 무대 같다는 미스 마플의 말은 버트램 호텔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nbsp;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다소 산만하다. 난삽한 사행활의 사교계 ‘셀럽’, 나이 어린 상속녀, 카리스마 넘치는 카레이서, 구시대의 완벽한 호텔 종업원, 각양각색의 손님 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강도 사건과 살인, 실종, 막대한 재산, 삼각관계의 연애 문제에 ‘내가 네 엄마다’류의 가족의 비밀까지, 작가는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재료들을 한 작품 안에 쏟아붓는다. 그렇지만 혼돈은 혼돈이되 보기에 좋다. 갖가지 문제들이 치고 빠지며 질서와 균형을 잘 유지한다. 각각의 사건들은 서로를 배반하지 않으면서 영향을 끼친다. 한 사건은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결과가 되기도 한다. 많은 사건들이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오는 장소는 바로 버트램 호텔. 결국 오랜 역사를 지닌 호텔 건물처럼, 인간의 범죄도 한 순간의 오류가 아닌, 오랜 세월에 걸쳐 곪아온 상처가 터진 결과로 보인다. 인간의 악행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식이 드러난다. &nbsp;외부의 사건과 복잡한 내면의 미로를 절묘하게 배합하여 이야기의 단순함을 극복하고 인간의 이기심과 사악함에 집중하는 구성은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보이지만, 50년대 이후의 후기작 (≪비둘기 속의 고양이, 59년≫, ≪핼로윈 파티, 69년≫ 등)에서 보다 더 두드러진다. 65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인상을 남긴다. 전체적인 소재는 굵직굵직하지만 강렬한 긴장감보다 아기자기한 잔재미가 돋보인다. 매력적인 인물들과 강한 멜로드라마 성은 작가의 팬들은 분명 반길 요소다. 그렇다고 ‘코지함(coziness)’만을 내세운 작품은 아닌 게, 결말이 꽤나 묵직하다. 악을 고발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의(justice)’이다. &nbsp;미스 마플이 등장하지만 활약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미스 마플의 런던 나들이는 그 인물에게도 독자들에게도 귀한 경험이지 싶다. 젊은 시절을 추억하며 곳곳을 누비는 미스 마플을 구경하고 그녀의 과거를 상상하며 그 머릿속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단순히 ‘노처녀 할머니 명탐정’이란 소설 캐릭터에서 벗어나 인간 ‘제인 마플’로 돌아가는 순간을 작가는 선물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nbsp;사족. &nbsp;극 중 인물인 ‘베스 세지윅’이 도넛을 먹으면서 잼이 턱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묘사하는 장면이 있는데,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도넛을 먹을 때마다 이 소설이 생각나곤 했다. 동시에 흘러내릴 정도로 잼이 꽉 채워진 도넛은 도대체 어디 가면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도.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85/cover150/893820257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8597</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예순네 번째 책 - [녹색 갈증]</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36089</link><pubDate>Thu, 06 Aug 2026 19: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360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44833X&TPaperId=174360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51/42/coveroff/895444833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44833X&TPaperId=174360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녹색 갈증</a><br/>최미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06월<br/></td></tr></table><br/>26년 예순네 번째 책. &nbsp;★☆&nbsp;단편 세 작품에 ‘프롤로그’, 그리고 작가의 에세이 한 편이 실렸다. 프롤로그의 분량이 꽤 긴데다 뒤에 이어지는 연작 형식의 세 작품과 내용이 이어지니, 독립된 단편 작품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단편 세 편+에세이 한 편’이 기본 포맷인 다른 ‘트리플’ 시리즈와 달리 다른 작가들에게 제공된 공간보다 더 많이 주어진 셈이다. 작가는 이 넓고 빈 터에 어떤 세계를 펼쳐 보일까. &nbsp;꾸역꾸역, 힘들게 읽었다. 인물은 호감이 전혀 생기지 않고 감정을 줄 여지도 없다. 인물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고뇌의 실체가 없어 공감하고 응원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재미가 없다. 인물들이 꾸준히 움직이고 계속 뭔가를 하는데, 동기도 모호하고 그 ‘뭔가 함’의 의미를 모르겠다. 페이지는 계속 넘어가는데 어떤 이야기인지 감이 안 잡힌다. 이야기가 뜬구름 같으니 흥미가 안 생긴다. 호기심이 안 생기고 뒷일이 궁금해지지도 않는다. 결말이 궁금하긴 했다. 과연 이 혼돈을 작가는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결국 지루해지다가 책을 읽는 게 고역스러워진다. 소설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요소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럼 어떤 모종의 의미라도 있을까? 글쎄. &nbsp;형식적인 면에서도 그다지 장점이 보이지 않는다. 평범한 문체에 소위 문장 수집가들을 유혹하는, 시선을 붙드는 문장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작가 만의 ‘그 무엇’도 찾아보기 힘들다. 작가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쓸 뿐, 자신의 머릿속에 머무르려는 태도도 개성이라면 개성이겠지.  &nbsp;작가가 이런 작품들을 (무려 네 편씩이나) 쓴 데엔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에세이를 정독했으나 머리만 더 어지러울 뿐이었다. 그나마 문학비평의 힘을 빌려 이 작품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평소에 읽지도 않는 작품 해설을 읽었지만 별 도움이 안 됐다. 비평이란 게 원래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니던가. &nbsp;충분히 매력적인 혼돈은 분명 존재한다. 모호하기만 한 혼돈은 그냥 혼돈 그 자체다. 질서가 결여된 환상성은 난삽하고 산만해 보인다. 소설 작품은 이성과 감성이 함께 동원되어야 한다. 잘 쓰인 소설은 정교한 건축물, 맛있는 음식과 같다. &nbsp;최미래 작가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고 이 작품집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을 터이니, 이 모든 감상은 그저 나의 취향과 안 맞았던 것으로, 내 독법이 모자란 것으로 돌릴 수밖에.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51/42/cover150/895444833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6514265</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예순세 번째 책 - [사례 연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36080</link><pubDate>Thu, 06 Aug 2026 19: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360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4252&TPaperId=174360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25/4/coveroff/89329242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4252&TPaperId=174360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례 연구</a><br/>그레임 맥레이 버넷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04월<br/></td></tr></table><br/>26년 예순세 번째 책. &nbsp;★★★&nbsp;‘버로니카’라는 장래가 촉망되는 여성이 육교에서 떨어져 자살한다. 가족들에게는 그것만으로 충격인데, 생전에 그녀가 가족 몰래 정신과 상담 치료를 받고 있었음이 사후에 밝혀진다. 버로니카의 동생은 언니의 자살에 정신과 상담의 ‘브레이스웨이트 박사’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믿는다. 언니의 뜻밖의 비극에 얽힌 진실을 밝히기 위해 ‘리베카 스미스’라는 가명으로 브레이스웨이트 박사의 상담실 문을 두드린다. &nbsp;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리베카 스미스라는 가명의 여성이 상담 치료를 받으면서 기록한 수기이고 또 하나는 브레이스웨이트 박사의 전기 형식의 글이다. 두 종류의 글이 번갈아 나오며 진행하는데, 가상의 작가(아마도 실제 작가 자신)가 익명의 기증자로부터 전달받은 리베카의 수기를 중심으로 자신이 한 조사를 토대로 쓴 브레이스웨이트 개인의 삶의 기록을 추가하여 완성한 책, 이라는 것이 이 작품의 전체적인 설정이다. 내가 보기엔 이런 얼개가 꽤나 복잡하고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작가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실제 일어난 일’로 여겨지길 바랐던지, ‘콜린 윌슨’, ‘폴 매카트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같은 실존 유명인사들을 카메오로 등장시키거나 언급한다. &nbsp;일단, 정신의학을 부정하면서 정신과 상담치료를 업으로 삼고 있는 브레이스웨이트는 여러모로 특이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60년대 정신의학계의 ‘앙팡 테러블’로서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반목하며 갖은 방법으로 반기를 드는 그 바닥의 문제아다. 난잡한 사생활과 여성 편력은 덤이요, 기성세대에 도전하면서 그들의 악습을 답습하는 모순도 보인다. 강한 매력과 캐릭터성에 반해 이 인물의 서사는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작가는 브레이스웨이트의 삶을 마치 유명인의 ‘위키피디아’에서 볼 수 있는 ‘바이오그라피’ 수준의 글로 압축한다. &nbsp;리베카라는 가명으로 박사에게 접근한 인물은 보다 마땅한 대접을 받는다. 언니의 죽음에 박사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심은 거의 일방적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인물이 보이는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 같은)모습은 그녀의 의심이 전혀 근거가 없을뿐더러, 어쩌면 이 여자가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적어도 평범한 보통의 정신상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독자로 하여금 품게 만든다. 이 인물이 작품 전반에 걸쳐 보이는 모습은 마치 서랍 안에 작은 비밀 서랍이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서랍이 발견되는 식이다. 그렇게 다양한 양상의 성격과 인격이 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할 수 있을까. &nbsp;‘진짜 나’는 존재하지 않고 ‘현재의 나’만이 존재한다는 브레이스웨이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나다운 게 뭔데?’라는 대사도 말이 된다. 우리의 사회적인 모습은 모두 가면이다. 그것들은 신중히 선택되고 교묘히 연출된다. 그 중에 ‘진정한 나의 모습은 바로 이것’이라고 우리는 분명하게 말 할 수 있을까. 그 어느 것도 내가 아니고 동시에 모든 게 나다. 리베카 스미스의 실제 이름이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리베카인 동시에 어떤 누구도 될 수 있다. &nbsp;소재나 이슈가 꽤나 흥미로운데 반해, ‘이야기책’으로서 성공적인가, 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작품 전체가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의 한 ‘주장’, 내지는 ‘학술적 이론’을 설파하기 위해 소설 형식을 빌려온 느낌이 강하다. 브레이스웨이트 쪽의 이야기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위키피디아의 한 페이지처럼 읽히고, 리베카 스미스 쪽의 이야기는 제목처럼 정신과 상담 치료의 한 사례 연구 보고서처럼 읽힌다. 이제 생각해 보니, 불필요하게 복잡한 얼개는 소설로서의 얄팍함을 커버하기 위한 ‘가면’이었던 것처럼 여겨진다. 여운도 없고 의미도 없는 에필로그도 마찬가지.&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25/4/cover150/893292425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7250472</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예순두 번째 책 - [다른 사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36065</link><pubDate>Thu, 06 Aug 2026 19: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360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9317&TPaperId=174360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81/1/coveroff/k98213931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9317&TPaperId=174360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다른 사랑</a><br/>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6월<br/></td></tr></table><br/>26년 예순두 번째 책. &nbsp;★★★&nbsp;문장들에 서린 긴장감이 좋다. 쉽게 끌어다 쓸 수 있는, 클리셰 같은, 빤한 문장들이 별로 보이질 않아 생동하는 느낌이었다. 이 문장이 이렇게 끝난다고? 이런 순간들이 많았는데, 단어의 조합이나 표현들에 들였을 작가의 고민과 숙고가 드러난다.  배경과 설정이 정말 다양하고 인물들의 직업, 소재들이 참신하다. 전작 ≪눈으로 만든 사람≫에서도 느꼈던 바인데, 작가가 이 모든 글감들을 제 것처럼 소화할 수 있다는 게 경이로울 정도다.  &nbsp;반면 난해하고 모호한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작가의 전작들과 비교해 볼 때, 작가가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한 느낌이 확연하다. 자신의 세계에 좀 더 집중했다고 보이는데, 수록작 절반이 굵직한 문학상 수상작임에도 내겐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독자로서 조금 소외된 기분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해와 공감을 가로막는 무언가를 느꼈던 것 같다. 서툰 건 분명 아닌데 조금 빈약했달까. ‘작가 세계’와 ‘작가만의 세계’는 엄연히 다른 거란 생각도 했다.&nbsp;인물들 사이에 존재하던 성적 긴장감이 나중에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이 쾌감을 주는 한편, 인간 본성의 잔혹함을 부각한 &lt;상리&gt;, 튀르키에의 난민촌을 배경으로 타인의 상처와 고통을 대면하는 이의 진심에 대한 이야기인 &lt;이 모든&gt;, 1980년 ‘사북항쟁’을 소재로, 폭력 피해의 경계를 묻는 &lt;김춘영&gt; 등은 비교적 쉽게 읽혔다. &nbsp;유적 발굴 현장을 무대로 쌓이고 퇴적된 폭력의 상흔을 고발하려 한 듯한 &lt;무장하는 날&gt;, 화자의 노스탤지어를 긴 호흡으로 풀어낸 &lt;정선&gt;, 동시다발적인 재난들을 배경으로 한 장소에 인물들을 고립시킨 후 그들을 관찰한 듯한 &lt;그곳&gt;, 시어머니의 장례식을 계기로 여성 화자의 각성을 보여준 듯한 &lt;고별&gt; 등의 작품은 선뜻 이렇다고 할 만한 감상이 없어 어려웠다. 읽는 데엔 막힘이 없었으나, 음식을 실컷 먹고 체한 느낌 같다고나 할까. 이런 작품들은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끼라고 하던데 뭘, 어떻게 느껴야 할지.  &nbsp;작가는 작품집의 제목으로 왜 ‘사랑’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을까. 가시적으로 사랑에 대한 작품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 그 이유를 고민하고 유추해보면 어렵사리 읽어냈던 작품들을 제대로 ‘느끼는’ 것이 가능해질까.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81/1/cover150/k98213931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810106</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예순한 번째 책 - [그건 심리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만 - 의심 많은 심리학자 최승원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04350</link><pubDate>Tue, 21 Jul 2026 20: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043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938659&TPaperId=174043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517/1/coveroff/k42293865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22938659&TPaperId=174043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건 심리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만 - 의심 많은 심리학자 최승원의</a><br/>최승원 지음 / 책사람집 / 2024년 02월<br/></td></tr></table><br/>26년 예순한 번째 책. &nbsp;★★★☆&nbsp;❝믿음은 고민을 종결시키고 정신의 평화를 가져온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어떤 법칙이 내 마음에 든다면 오래 간직하며 삶에 적용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망각하고 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믿음이 자칫 우리의 인생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나만의 신념이든 대다수의 믿음이든, 그것이 틀린 것이라면, 창피하고 억울한 일이다. (작가의 말, 217쪽)❞&nbsp;상술과 마케팅, 어쩌면 미디어의 호들갑에 동원된 심리학에 관한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고, 그때는 맞지만 지금은 틀린 과거 심리학 연구의 실수를 바로잡으려는 책이다. 학술적 진실을 증명하고 설득하기 위해 실시된 여러 심리학 실험들도 다양하게 소개되어 신빙성을 높인다. 심리학자이면서 현역 임상심리전문가인 저자는 속시원하게 폭로도 하고 차근차근 설명하기도, 오해로 인한 상처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독자들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nbsp;실험의 오류와 결과의 과장으로 결국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모짜르트 효과’, 타인을 판단하고 폭력과 차별의 근거가 되고 만 유사 심리학 ‘MBTI 성격유형’, 복지 국가와 자살률의 상관관계, ‘마시멜로 실험’의 오류, 과장된 웃음 치료의 효과 등의 내용이 재미있었다. &nbsp;경제적 약자들이 왜 보수당을 지지하는지, ‘시스템 정당화 이론’을 들어 그 행동을 분석할 땐 소름이 돋았다. 매 선거 때마다 갖곤 했던 불가사의였는데 그 저변의 심리를 명쾌하게 들려준다. 한때 트렌드의 키워드였던 ‘소확행’이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아닌 단순한 소비 형태로 어떻게 와전됐는지, 주식이나 도박에서 왜 이익을 얻는 사람들보다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지,  홈쇼핑에 중독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인지,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호감을 이끌어내기 앞서 자신의 ‘무해함’을 증명해야 한다는 내용은 우리의 일상과 밀접해서 친근하면서도 귀기울일 만한 조언들이다. &nbsp;책의 후반부엔 자폐 스펙트럼, ADHD,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 등의 정신병리학에 관한 세간에 널리 퍼진 오해들을 바로잡는다. 저자는 ‘정신과 환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는 이유(15쪽)’를 설명하며 그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경계할 것을 촉구한다. &nbsp;‘중심을 잡는다는 것, 균형을 맞춘다는 것(11쪽)’이란 말에서 저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심리학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복한 개인’과 ‘올바른 사회’를 지향한다. 주요 골자만 적고 있어 얇고 쉽게 읽히는 책이다. 심리학 도서보다 현재의 한국 사회를 진지하게 탐구한 저서로 읽힌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517/1/cover150/k42293865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5170182</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예순 번째 책 - [애니가 돌아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01372</link><pubDate>Mon, 20 Jul 2026 06: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4013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635224&TPaperId=174013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577/49/coveroff/k4626352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635224&TPaperId=174013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애니가 돌아왔다</a><br/>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06월<br/></td></tr></table><br/>26년 예순 번째 책. &nbsp;★★★&nbsp;전직 교사인 ‘조’가 고향인 ‘안힐’로 돌아온다. 이유가 있다. 우선 도박 빚. 조가 있는 곳은 채권자에게 금방 발각된다. 조는 이 돈을 동창 ‘스티븐’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 부자에 깡패, 재수 없는 스티븐을 옭아매고 돈을 우려낼 강력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과거에 여동생 ‘애니’에게 일어난 비극. 아마 조가 쥐고 있는 스티븐의 약점이 이 일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을 고향으로 불러들인 문자메시지, 최근 고향에서 일어난 살인+자살 사건도 과거 여동생 사건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모든 의문이 과거, 폐광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동생 ‘애니’를 향하고 있다. &nbsp;우선 장점. 이야기는 미스터리+스릴러+호러+하드보일드(hard-boiled) 등의 장르적인 성격을 두루 갖췄다. 그럭저럭 모양새는 잘 갖췄다. ‘영국의 여자 스티븐 킹’이라는 별명에 큰 반감은 없다. 여러 요소들이 적절하게 치고 빠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nbsp;폐쇄된 탄광이란 공간은 호러의 좋은 효과를 낸다. 얼핏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를 연상하게 만들고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온다는 설정은 ‘W. W. 제이콥스’의 유명한 단편 &lt;원숭이 손&gt;이나 여러 좀비 영화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에 범죄와 비밀이라는 미스터리가 추가되는데 크게 어색하지 않다. &nbsp;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주인공, 조는 ‘필립 말로우’나 ‘샘 스페이드’의 매력을 답습한다. 주변에 배치된 서로 차별화된 성격의 세 여자들(베스, 글로리아, 마리), 티격태격 유쾌하고 잘 짜인 대화 역시 하드보일드의 유산으로 보인다. ‘썩은 세력가’의 전형인 스티븐 역시 잘 만든 악역이다. 지역 공동체의 정계, 재계, 학계 등을 손아귀에 쥐고 제멋대로 놀린다. 이 사람의 영향력은 막강하지만 절대 선하지 않다. 여기에 주인공과는 여자 문제도 얽힌다. &nbsp;무대와 인물 셋팅. 소설을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해결한 듯 싶다. 이럼 된 건가? 이야기는 결말을 향하면서 정연함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nbsp;가장 큰 단점은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이야기에 푹 빠지는 데 장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겹겹의 압박과 해결해야 하는 일이 대개 일치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살짝 어긋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동력은 ‘애니’라는 인물에게서 나오는데, 그에 관해 주인공이 하려는 일이 대체로 모호하다. 작가는 애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보여주길 거의 최후까지 미룬다. 그 덕에 주인공의 모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못하고 그저 방관하게 된다. 잘 만든 음식 모형 바라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nbsp;작품의 재미와 완성도를 위해, 무엇보다 독자의 호기심을 붙들기 위해, 특히 미스터리 장르라면 작가는 ‘숨기는 것’에 능해야 하지만 그것에도 완급은 필요하다. 미스터리 장르는 지문을 확대한 사진만으로 인체를 알아맞히는 게임과 비슷하다. 당근 냄새도 못 맡은 말이 달릴 이유가 없다. 이 작품은 이야기의 중요한 토대가 되는 사실을 거의 막판에서야 보여준다. 지반이 약한 땅에 지은 사상누각처럼 보인다. 조가 원하는 게 복수인지 비밀을 풀기인지 저주를 막는 것인지 모호하다. 결국 셋 다인데 이래서는 곤란하다. 뭔가 강력한 깃발이 있어야 한다. 나머지는 부수적이 되어야 한다. 주인공은 뭔가를 열심히 하기만 한다. 그러다 결말에 가서야 사실들이 폭죽처럼 터진다. 그리고 허겁지겁 엔딩. 감정이 요동치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다가 서서히 가라앉는 정서적 묘미가 생길 여유가 없다. 그냥 폭주하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작가가 결말에 터뜨리는 사실들이 모두 중요한 것도 아니다. 독자들이 몰라도 될,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에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것들도 있다. 트리비아에 불과한 것들을 마치 대단한 비밀인 양 폭로한다. 도대체 ‘팻맨’의 정체를 궁금해 했던 독자가 과연 있을까. &nbsp;감히 넘겨짚는 말이지만, 작가가 미스터리를 구성하는 데 아직 완성된 재능은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장점은 분명히 있지만 얼개는 엉성해 보인다. 후반으로 갈수록 말이 안 되는 설정들이 눈에 띈다. 속도감이 갑자기 떨어지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중반까지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했더랬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이 책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심이 모자란,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었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577/49/cover150/k46263522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5774996</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쉰아홉 번째 책 - [세이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94524</link><pubDate>Thu, 16 Jul 2026 07: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945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835306&TPaperId=173945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355/82/coveroff/k2228353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835306&TPaperId=173945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이프</a><br/>S. K. 바넷 지음, 김효정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11월<br/></td></tr></table><br/>26년 쉰아홉 번째 책. &nbsp;★★★&nbsp;여섯 살 딸, ‘제니’가 사라졌다. 유괴로 짐작된다. 지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지만 어느새 미제 사건이 된다. 그리고 12년 후. 딸이 돌아온다. 그런데 열여덟의 제니는 어딘가 수상쩍다. &nbsp;이야기의 초반은 돌아온 제니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야기는 그런대로 잘 흘러가지만 열여덟의 제니의 정체는 짐작이 가능하다.중반을 넘어가면서 돌아온 제니의 정체가 까발려지고 국면이 전환된다. 제니에게 맞춰져 있던 포커스가 주변으로 확장된다. 제니는 음흉한 음모자에서 추적자의 입장이 된다. 과거의 제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이것이 이 작품의 진짜 노림수다. 그런데 이 부분을 지나면서 흥미가 뚝 떨어진다. &nbsp;결말을 예측 가능한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은데, 사실 그것도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뻔한 결말이라도 그것에 이르는 과정, 주인공의 활약과 통찰을 바라보는 재미도 무시할 순 없다. 제니의 부모인 ‘로리’와 ‘제이크’는 뭔가를 숨기고 있고, 까칠한 오빠 ‘벤’이나 과거의 제니를 기억하는 이웃들 역시 주목할 만하다. 작가는 이런저런 단서를 흘리고 미심쩍은 사건들을 전시하는데 그게 좀 빤하다. 발견한 사실들을 토대로 과거를 재조립하는 과정이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야 할 부분인데, 작가가 썩 잘 한 것 같지 않다. &nbsp;일단 너무 쉽다. 그리고 우연이 너무 많다. 주인공이 운이 좋아도 너무 좋다. 벤의 입원, 치료 기록을 찾아가는 부분에선 실소가 터져 나왔다. 책장을 뒤지다 보니 아주 중요한 서류가 나오고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니 사이트가 열린다. 해킹이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정신분석이나 꿈이 너무 자주 등장하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이 정도면 귀신이 사또를 찾아와 ‘저를 죽인 범인은…’ 하고 알려주는 『장화홍련전』이나 다름없다. 무의식 같은 소재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수단, 암시 정도로 그쳐야 하는데 너무 결정적이다. 시점을 다른 인물에게 나눠주는 것도 작가의 편리를 위해서라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보이지 않는다. &nbsp;이야기를 읽다보면 독자가 가장 크게 느끼는 ‘주도적인 감정’이란 게 있는데, 이 작품엔 그게 모호하다. 어느 인물과 감정을 함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야기에서 가장 힘을 받는 인물은 ‘어린 제니’이다. 이 인물은 이야기 곳곳에 나오지만 실제로는 등장하지 않는(일찌감치 무대에서 퇴장한) 인물로서, 이 사람에게 건질 건 과거의 사실과 추측뿐이다. 과거의 사실은 박제된 동물과 다름없다. 아무리 험한 일을 겪었어도 생동감이 없어 독자의 감정도 그 밖에 머문다. ‘돌아온 제니’는 중반 이후의 역할이 너무 기계적이고 전형적이다. 처절한 서사를 갖는다고 캐릭터 성이 강화되는 게 아니다. 기능에 치우친 캐릭터의 얄팍함은 꼭꼭 숨어 있다가 엔딩에 이르러서야 모습을 나타내는 메인 빌런에게도 있다. 완전한 감정 이입이 어려운 독자의 눈에 들어오는 건 결국 ‘사건’뿐이다. 인물들은 사건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신경이 쓰이는 인물이 있기는 하다. 바로 ‘벤’과 ‘로리’. 그렇지만 누구 못지않은 악몽을 겪고 불행을 떠안은 이들은 그냥 방치된다. &nbsp;아주 나쁜 작품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럭저럭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썩 좋았다고 하기엔 퍽 부족하다. 장르 소설 특유의 쾌감, 칼에 베이는 듯한 날카로움 같은 게 없다. 충분히 비극적인 이야기임에도 감흥이나 페이소스가 없어, ‘그랬다더라’ 하는 사실만 남는다. 클리셰 범벅에 여기저기서 좋은 것들만 주워다 엉성하게 엮은 공산품의 느낌,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헌 것’의 느낌이 강하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355/82/cover150/k2228353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3558253</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쉰여덟 번째 책 - [마지막 이야기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92420</link><pubDate>Wed, 15 Jul 2026 01: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924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2583&TPaperId=173924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91/26/coveroff/895469258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2583&TPaperId=173924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지막 이야기들</a><br/>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05월<br/></td></tr></table><br/>26년 쉰여덟 번째 책. &nbsp;★★★☆&nbsp;&lt;피아노 선생님의 제자&gt;;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제자에게 도벽이 있다면? 작은 의심은 도화선이 되어 과거의 불행까지 소환해 ‘미스 나이팅게일’의 마음을 소란스러운 지옥으로 만들지만, 제자의 완벽한 연주는 ‘그것으로 충분(17쪽)’하게 만든다. 현실이 주는 작은 위안에 안주하고 삶과 타협하는 결말은 독자들에게 위로가 될까. 현재의 만족은 인생의 부정적인 요소들에 맞서게 해주는 치료제일까, 아니면 곳곳에 도사린 위험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는 마약 같은 것일까. &nbsp;&lt;장애인&gt;; 타인의 삶에 거리를 두려는 것은 비겁한 외면일까, 사생활의 존중일까. 영어가 서툰 폴란드 형제는 장애인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타인에 대한 이런 무지와 굳이 파고들려 하지 않는 태도는, 제자에게 도난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 캐지 않으려는 (위 작품의) 미스 나이팅게일과 닮았다. 이 작품집 안에 ‘타인’을 모티프로 한 이야기 중, 가장 강력한 여운을 남긴다. &nbsp;&lt;다리아 카페에서&gt;; 남편과 절친의 불륜으로 이중의 배반을 경험하고 이중의 상처를 지니고 살아오다가 남편을 빼앗은 친구 역시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불행했음을 알게 된 ‘애니타’는 과연 ‘클레어’에게 용서(연대)의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인가. 암시로 가득한 결말이 인상적이다. &nbsp;&lt;레이븐스우드 씨 붙잡기&gt;; 범죄를 목적으로 접근했던 자산가에게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고 머뭇거리게 되는 ‘로잰’의 이야기. 타인을 미지의 영역에 남겨두는 이야기들과는 달리, 타인을 좀 더 알게 됨으로서 스스로의 행동에 변화(혹은 발전)를 경험하는 주인공으로, 위의 &lt;다리아 카페에서&gt;와 같은 맥락의 작품으로 읽힌다. &nbsp;&lt;크레스소프 부인&gt;; ‘추근거림’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을 유혹하려는 여자에 대한 ‘에서리지’의 거부감은 미지(未知)는 곧 두려움임을 상징하는 장치로 보인다. 이야기는 ‘크레스소프 부인’의 사적이고 인간적인 면을 비교적 드러내는데, 에서리지는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끝까지 모른다. 엔딩에 이르러 주인공이 갖는 감정은 연민보다 동정에 가까워 보인다. &nbsp;&lt;모르는 여자&gt;;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죽음 앞의 무력함과 더불어 타인이라는 영역은 우리에게 영원히 알 수 없는 존재이지 않을까. &nbsp;❝한 아이가 두려움 때문에 도망쳤다. 아버지가 약속했다. 순종적인 어머니도 약속했다. 그래도 아이는 자신을 숨기는 데서 힘을 찾기 위해 도망쳤고, 영원히 돌아가지 않았으며, 영원히 발견되지 않았다. (127쪽)❞&nbsp;본문 안에서 의미 파악이 어려웠던 위의 문장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타인의 진실에 대한 경구처럼 읽힌다. &nbsp;&lt;대화를 이어가기 위해&gt;; 어긋나고 되돌아오지 않는 감정은 상처가 될까. 오늘날 스토킹 범죄의 요소가 보이는 이야기로, 이 역시 타인의 진심을 모름으로 생긴 공백을 제멋대로 해석해 채운 결과로 생길 수 있는 소동을 다소 코믹하게 풀어낸다. 현재와 과거를 병치시켜 단순한 친절을 거듭된 오해로 문제를 키우고 긴장을 쌓아가는 구성이 돋보인다. &nbsp;&lt;조토의 천사들&gt;;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 도둑질을 한 인물이 판화 작품 속 천사의 모습에 각성 받아 훔친 돈을 되돌려주려 하지만 생각에 그친다. 옳은 일을 하기가 결코 쉽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로 인간 본성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 잘 드러난다. &nbsp;&lt;겨울의 목가&gt;; 절절한 사랑 이야기. 그런데 불륜이다. 결말은 당연하고 인물들의 죄책감 역시 마땅하다. 감정의 흐름과 서술, 배경 묘사가 아름답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에서 성인이 된 시기를 짧은 분량에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nbsp;❝상처받은 사람들은 점잖게 사라지지 않고 악마들을 풀어놓는다. (202쪽)❞ &nbsp;위 문장에서 불륜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준 ‘메리 벨라’의 죄책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nbsp;&lt;여자들&gt;; 출생의 비밀이 소재이지만 ‘그 여자가 네 엄마’라는 결말은 없다. 비밀의 열쇠를 쥔 인물의 말은 모호하고 의심을 하는 인물은 함구한다. 인물들을 오리무중 속에 남겨두어 독자들 역시 갈피를 못 잡게 만드는 결말은 &lt;장애인&gt;의 엔딩과 비슷하다. 이야기 속 인물들 간의 거리, 타인이어서 어쩔 수 없는 무지(無知)를 독자들 역시 똑같이 경험한다. 엔딩까지 유지되는 호기심과 긴장감이 매우 좋다. &nbsp;명성은 익히 들어 책 몇 권을 무작정 사놓은 게 오래전인데, 막상 읽은 건 최근이다. 작가 사후 출판된 유고 소설집이라고 하니, 가장 마지막의 작품으로 스타트를 끊은 셈이다. 더 읽고 싶어졌다.  작가가 ‘관찰자’를 고집했던 만큼 그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설명하기보다 보여주기. 결말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여러 갈래의 생각에 단초를 제공하기 위함으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질문하게 된다. 이거일까, 저거일까. 이야기가 끝나도 그 세계 안에 좀 더 머물게 된다. ‘여운’이라고 해도 좋고 독자를 작품 안에 끌어들이고 경험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는 것 같다. &nbsp;‘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별명은 얼핏 ‘레이먼드 카버’를 연상케 하지만 두 작가의 개성이 좀 달라 보인다. 이렇게 말하려니 좀 우스운 게, 카버는 두 권, 트레버는 겨우 한 권 읽었을 뿐이다. 그래도 카버의 소설들보다는 읽기 편하다고 분명하게 말 할 수 있겠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91/26/cover150/895469258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912645</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쉰일곱 번째 책 - [뒷자리에 태워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81857</link><pubDate>Thu, 09 Jul 2026 06: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818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139518&TPaperId=173818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6/15/coveroff/k8021395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02139518&TPaperId=173818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뒷자리에 태워줘</a><br/>애덤 마스-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에이유앤씨 / 2026년 06월<br/></td></tr></table><br/>26년 쉰일곱 번째 책. &nbsp;★★★☆&nbsp;‘조그맣고 뚱뚱해서, 왕따 당하는 게 지겨워서(45쪽)’ 학교를 그만둔 ‘콜린’은 우연히 만난 ‘레이’에게 한눈에 반한다. ‘레이’야 말로 킹카 중의 킹카. 바이크 족들의 비공식적인 리더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로 여러모로 비밀에 싸인 인물이다. 바야흐로 부모님 곁을 떠나 레이와 동거를 시작하는 콜린. 동시에 그의 게이 라이프도 문이 열린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을까. &nbsp;시종일관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콜린은 비교적 투명하다. 콜린의 진짜 삶이 레이를 만남과 더불어 비로소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레이와 함께 하는 ‘색다른’ 경험들도 전혀 이질적인 게 아니다. 바이커 그룹 안에서의 ‘주종’ 관계는 콜린의 성적 판타지(‘나를 무시하는 남자만이 진짜 남자인 것처럼, 129쪽’)에 적잖이 부합한다. &nbsp;그런 이유로 레이에 대한 콜린의 감정이 거짓이나 자기기만처럼 보이기도 한다. 상대의 외모와 행위가 주는 자극에 콜린이 반응한 거라면, 그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중에 스스로 깨닫듯이(혹은 고백하듯이) 콜린은 레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게 거의 없다. ‘전혀 모른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그렇다면 레이는? 레이는 철벽에 철벽을 두른 모습으로만 묘사된다. 그 묘사조차 콜린의 눈과 의식을 거친다. 그 모습만으로 레이라는 인물을 독자들이 파악하기란 완전히 불가능하다. 콜린을 가까이 두고 섹스라는 친밀한 행동을 하고 친구들과 더불어 어울리지만, 일반적인 연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좀 있다. 가끔 보이는 친절과 배려 역시 사랑이라고 단언하기엔 부족하다. 이 두 사람의 진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nbsp;이는 작가의 의도처럼 보인다. 이 사람은 안개 속에, 불명확한 모습으로, 이런저런 암시만 흘릴 뿐인 미스터리로 ‘존재했어야 했다’. 실제로 우리는 잘 모르는 상대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닌 경우가 많다. 기술적으로, 이 작품은 일반적인 ‘퀴어 로맨스’ 서사의 영역 밖에 있다. 이게 바로 사랑이야, 혹은 이건 사랑이 아니야, 라고 하기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겹겹의 층위를 다양한 측면에서 보도록 독자들을 유도한다. 작가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기보다 ‘진실한’ 러브스토리를 쓰고 싶었다고 하는데, 과연 진실이 무엇일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끌릴 때 상대의 무엇이 우리를 자극하는가. 가장 원초적인 어떤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드물지 않게 보이는 성행위 장면이 거슬리지 않는 건 작가가 그 행동을 가장 인간적인 것으로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  전체 분량의 삼분의 일 정도가 레이가 퇴장한 후의 이야기인데, 작가는 이 부분을 콜린의 애도로 채운다. 콜린에게 애도란 기억하기다. 그런데 레이에 대해서 기억할 것이 별로 없다. 뒤늦게 찾아오는 호기심에 후회가 들지만 레이와 함께 한 육 년이란 세월동안 콜린은 그것을 의식하면서도 애써 잠재웠다. 왜? 두 사람 사이에 맺어진 암묵적인 약속, 혹은 동의 때문이었다. 레이의 곁에서는 그게 최선이었고 콜린은 최선을 다했다. 콜린은 레이도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모호한 감정의 공백을 채우고 있는 건 인간의, 인간적인, 인간을 향한 ‘무엇’으로 보인다. 그 무엇이 무엇일지는 독자들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게 사랑이거나 아니거나, 아무래도 좋지만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먼저 논의되어야 하지 않을까. 두 사람 사이에 버티고 있는 적나라한 계급의식이, 가스라이팅과 착취, 학대를 전제로 했다며 이들의 관계가 불편한 독자들도 분명 있을 테지만, 그리고 그 감정이 사랑일 수도 있다는 말에 터무니없다고 분명 동의하지 않을 테지만, ‘BDSM(Bondage/Discipline, Dominance/Submission, Sadism/Masochism)’이라는 소재는 인물들의 관계와 소통의 방식일 뿐 이야기를 이끄는 주동적인 장치도 아닐뿐더러 두 사람의 관계 안에 혐오의 시선과 의견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 &nbsp;어쩔 수 없이 영화와 비교하게 된다. 원작을 읽으며 영화를 위한 각색 작업이 참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기본 설정은 그대로인데 디테일에 변화가 있다. 유머와 드라마가 첨가되었고 레이라는 인물이 (설명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지만) 비교적 드러난다.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과 추측으로나마 채울 수 있는 틈을 보여주었던 것 같다. 덕분에 그들의 감정 읽기가 다소 쉽다. 영화가 로맨스+드라마의 외형을 갖췄다면, 소설은 콜린의 자신감 회복과 내적 성장을 그린 드라마, 인간의 본능에 천착한 심리드라마로 읽혔다. 작품 어딘가에 언급되듯, ‘푸른 수염’에게 잠긴 방문들이 없었다면 여자들이 끔찍한 살인자에게 매혹되었을까. &nbsp;작품을 돌이켜보면, 가장 두드러졌던 감정은 로맨틱함이나 에로틱함보다 긴장감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내밀하면서도 끊임없는 긴장감은 주로 콜린이 주도하지만 그 역시 ‘베일에 싸인’ 레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못했을 것이다. &nbsp;작가의 문체가 의외로 수다스럽다. 삼천포로 빠지는 문장들이 더러 있는데 곤란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끔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나 잘 그려지지 않는 장면들이 있기는 했다. 영국의 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 문해력 문제일 수도, 혹은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다. &nbsp;소설 원제는 ‘뒷자리에 태워줘’ 도 아니고 영화의 원제인 ‘Pillion’도 아닌, ≪Box Hill; a Story of Low Self-Esteem≫이다. box hill은 ‘회양목(boxtree) 언덕’쯤으로 해석될 수 있겠는데, 두 인물의 운명적인 첫 조우가 이뤄진 장소이다. 이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난다. 어리광 가득한 번역 제목은 아무리 생각해도 시트콤에나 어울린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6/15/cover150/k80213951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961592</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쉰여섯 번째 책 - [네가 누구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78051</link><pubDate>Tue, 07 Jul 2026 07: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780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032324&TPaperId=173780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53/63/coveroff/k2220323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032324&TPaperId=173780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네가 누구든</a><br/>올리비아 개트우드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br/></td></tr></table><br/>26년 쉰여섯 번째 책. &nbsp;★★★&nbsp;비밀스러운 과거로 거의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미티’는 이웃집 ‘레나’에게 매혹된다. 빼어난 외모에 인형의 집 같은 저택에 윤택한 살림. 하지만 그 모든 부유함은 레나의 것이 아닌, 남자친구 ‘서배스천’의 소유이다. 미티의 동거인인 노년의 ‘베델’은 아름다운 레나에게 질투 어린 편견을 갖고 있다. 베델에게도 아픈 상처가 있다. 그리고 미티가 보기에 레나는 남자친구의 통제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nbsp;기본적으로 여성 (퀴어) 서사에 A.I.를 위시한 첨단 과학, 어둠 속에서 곪아가는 상처, 남성성의 폭력과 희생되는 여성성, 여성들의 연대, 과거와의 화해, 나는 누구일까, 라는 실존적인 질문까지, 모든 재료들이 이야기 안에서 비교적 조화롭다. 하지만 다소 산만하다. &nbsp;이야기는 주로 미티의 시각으로 전개되는데 미티의 서사는 그냥 평범하다.정작 흥미로웠던 인물은 따로 있는데 바로 레나. 과연 이 사람의 정체는 뭘까. 첨단 기술이 낳은 결과물일까, 아니면 단순히 트로피 와이프에 불과한, 남성성의 희생양일까. 어느 정도 힌트와 암시만 난무할 뿐, 작품이 끝나고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 레나의 정체는 모호한 결말과 더불어 기이한 여운을 남긴다. 어떤 경우로든 레나는 통제 가능한, 누군가의 통제 하에 있는 존재다. 느닷없이 청소기를 돌리고 제 몸에 스스로 상처를 입히는 행동은 자신에게 없는 주체성과 독립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인공성이 농후한 집을 떠나 미지의 초원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레나에게 적절한 퇴장이다. &nbsp;이러한 레나의 캐릭터 성은 양면성을 갖는다. 레나는 첨단 기술의 노예처럼 되어 가는 현 세태를 비판하는 도구로도 기능하고 억압받는 여성성을 대표하는 기능도 하는데, 이는 작품의 감상을 다양하게 해주는 장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작가의 의도를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nbsp;이 소설을 S.F. 범주에서 읽어도 될까. 큰 반감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스릴러 장르로 소비하는 데엔 무리가 있다. 그리고 퀴어 서사와 살인사건 등은 모난 돌처럼 도드라져 군더더기처럼 보여 작가가 취사선택에 실패한 것처럼도 보인다. 데뷔작이니 만큼 쓰고 싶은 것들을 한 작품에 모두 쏟아 부은 느낌이랄까. 두 작품을 하나로 합친 것처럼도 보인다.  &nbsp;첨단 과학 기술을 폭력적이고 억압하는 남성성에 비유한 것이 재미있지만 이는 어느 정도 작가의 편견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nbsp;‘혁신’은 기존의 질서를 와해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반란’이다. 첨단 기술은 인간에게 편의를 주는 쪽으로 발전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것들은 인간을 길들이다가 결국엔 옭죈다. 기계의 가치는 인간이 그것에 얼마나 종속되느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온갖 편리한 기계에 굴복하고 인간성을 잃어간다. &nbsp;책장을 덮고 생각해 보면, 이 부분에서 작가의 통찰력이 가장 빛나지 않았나 싶다. 반면, 레나가 정말 ‘도망친 기계’라면, 여성의 외관을 갖추기만 했을 뿐 성별이 없으므로 ‘가족오락관’에서 성대결 펼치듯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여성들의 주체성과 연대를 말하기 위해 꼭 남성을 적으로 돌려야 했을까. 남성을 최대 빌런, 주적으로 삼는 건 어느새 여성 서사의 통과의례, 필수 요소처럼 되어 버렸다. 불필요하고 무의미해 보인다. 오히려 폭력적이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53/63/cover150/k22203232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536332</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쉰다섯 번째 책 -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73995</link><pubDate>Sat, 04 Jul 2026 22: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7399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1X&TPaperId=1737399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0/22/coveroff/893643991x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1X&TPaperId=1737399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a><br/>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03월<br/></td></tr></table><br/>26년 쉰다섯 번째 책. &nbsp;★★★&nbsp;&lt;당신의 손끝&gt;; 무모하고 얼마간 자초한 불행을 ‘지금껏 겪은 모든 악몽(36쪽)’이라 말하는 ‘효원’의 행동에 공감이나 동정이 가질 않는다. 효원은 수강생을 약탈하고 경험도 없는 학원 운영에 무작정 달려든다. 학원 강사로서의 경력과 학원장의 업무는 별개의 문제다. 심지어 말미엔 본인의 허락도 없이 ‘주영’의 그림을 이용한다. 이런 얌체짓에 담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까. 하는 짓은 얄밉지만 연민을 가져 주세요, 일까. 아니면 이 뻔뻔한 여자 좀 보세요, 일까. 효원에게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말이 면죄부가 되어줄까. &nbsp;&lt;태양 아래 반짝이는&gt;; 거의 헐벗기 쉬운 한여름 바닷가라는 공간 배경은 화자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적절한 무대로 보인다. 동료, ‘시현’과의 일탈적 행동으로 탄력받은 화자는 내면의 파괴 본능을 서서히 불러일으킨다.  화자는 직업 윤리를 저버림으로서 자신의 틀, 자신을 옭아매는 사회적 의무를 파괴하고 고의적인 불륜 관계로 타인을 파괴하고자 하며, 동시에 그녀가 속했다고 믿는 계급의 벽을 파괴하려 한다. 이런 파괴적 행동은 여인의 진짜 정체, 본질을 알고 난 후 형태를 바꾼다. 화자가 여자의 ‘이용 가치’를 얼마간 셈하고 있지 않았을까. &nbsp;&lt;피아노&gt;; ‘버린 것이지만 아직도 내 소유’라고 주장하는 인물의 이야기다. ‘혜심’이 집착하고 있는 건 피아노 자체보다 피아노 의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피아노 의자에 보관된 ‘아이들의 편지’를 되찾으려 한다. 그 편지들엔 자신의 역사에 얽힌 기억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준용’이의 편지가 소중한 주인공이 정작 당사자인 준용에 대해서는 냉정한 아이러니를 통해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 이야기로 읽힌다.  &nbsp;&lt;그 아이&gt;와 &lt;마스크는 통행증&gt;; 짧은 분량이지만 당대의 현실이 잘 반영된 르포타주이다. 훗날 시대를 연구하는 통속 자료나 사료로서의 의미도 보였다. 오늘날 비틀린 소비 문화를 보여준 &lt;그 아이&gt;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이런 혼란과 공포의 시간들조차 추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lt;통행증은 마스크&gt;는 짜증과 불안의 정서가 잘 보였다. &nbsp;&lt;익명의 마왕으로부터&gt;와 &lt;유령의 집&gt;; 소품으로 읽히는 두 작품은 공허한 작품들이다. 아이디어를 제외하고는 달리 보이는 게 거의 없다.&lt;익명의 마왕으로부터&gt; 진짜 악인(성격)이 아니라 악당(역할)일 뿐인 마왕의 하소연이 재치있고 위트 있게 들려진다. 이런 낭창낭창한 톤이 작가에게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lt;유령의 집&gt;은 ‘귀신들린 집’ 이야기를 하나 써야겠다는 욕구와 끔찍한 이미지 하나로 밀고나간 작품이다. 실패한 자영업자 이야기로 읽기엔 부족하다. 이야기에 나오는 공간은 정확히 ‘집’이 아니다. &nbsp;&lt;모자이크&gt; 과연 무엇이, 어디까지기 ‘진짜 나’일까, 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다. 가까이서 보면 색의 조각일 뿐이지만 거리를 두고 보아야 형체와 명암 등이 비로소 보이는 모자이크 화(畵)처럼 여러 모습의 나, 여러 가면을 쓴 나, 결국 그 총체적 합으로서의 ‘나’가 실제로 존재하는 ‘나’임을 말하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화자는 모자이크(blur)라는 ‘익명’ 뒤에 숨어 은밀하면서 집요한 폭력을 휘둘러 한 이난을 파멸로 이끈다. 모자이크(익명)는 화자를 보호하고 숨겨준다. 그 뒤에서는 안전이 보장된다. 그러므로 일탈이 가능하고 비난과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자아 탐색과 폭력의 이야기가 잘 안 붙어 산만하게 읽힌다. 전시된(보이는) 모습과 실재하는 모습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고루하다. 소재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작가의 솜씨도 그렇다. 작가의 고유한 시선이나 새로운 목소리가 없어 보여 지루하고 식상한, 개성 없는 작품으로 읽었다. 어디선가 빌려온 문장도 한몫한다. 여러 모습들을 연출하는 화자의 모습은 ‘부캐’나 ‘페르소나’보다 ‘정신분열’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한 듯 보인다. &nbsp;&lt;조망&gt; ‘수하’라는 인물이 가장 눈에 띈다. ‘그들만큼 내가 행복해지는 게 어려우니, 그들이 자신만큼 비참해져야 한다고(165쪽)’ 생각하는 수하는 똑같이 불행해지길 바라는, 물에 잠기자 모든 것이 공평해졌다고 생각하는 수하는 평균의 기준을 행복이 아닌 불행에 두는 사람이고, 너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쌤통’의 심리(schadenfreud)를 자명히 드러낸다.  이야기 속에서 ‘물’이라는 소재는 과거의 소거, 천지개벽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갖는다. 이는 ‘삶에 reset이 가능하다면, 다음의 (다시 시작한) 삶은 괜찮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지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좀 장황하다. ‘수하’의 과거 경험과 현재를 중첩시키는 건 보기에 그럴싸하지만 큰 의미는 없는 것 같아 그저 ‘기교’에 불과해 보인다. 아이의 등장도 뜬금없고 세상에 대해 거의 악의에 가까운 열패감을 갖고 있는 수하가 건네는 위로도 공감이 어렵다. 작품 자체도 공산품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모호하다. 여러 면에서 ‘김애란’의 단편 &lt;물속 골리앗&gt;괴 비슷한 점이 많은데, 다른 작가와 비교하는 건 예의가 아닌 건 알지만 두 작품을 비교하게 되면 이 작품의 허점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작가가 말하는 조망이 ‘眺望’인지 ‘鳥-’인지, 제목에 부연도 필요해 보인다. &nbsp;&lt;딸과 깍 사이&gt; 이 책 안에서 가장 모양새가 잘 나온, 가장 만족한 작품이었다. 직장에서 ‘사형선고’ 같은 업무를 담당하는 여자가 짝사랑하는 마음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다는 이야기다. 단순하고 지루한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의 고뇌와 실제적인 경제력을 해결해 주지만 전혀 즐길 수 없을뿐더러 혐오할 수밖에 없는 성격의 업무에 대한 애증이 로맨틱한 감정과 잘못 보낸 전체 메일 같은 사건 등으로 잘 포장됐다. 직장인으로서의 번민이라는 외부적인 면과 짝사랑이라는 내면적인 면을 양립시키면서도 서로 부딪힘 없이 잘 조화시킨 구성이 인상적이며, 유연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솜씨도 좋아 보인다. 원한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뜨개질’이란 소재도 실수나 실패에 얽매이지 않는 관대함, 또 다른 기회와 가능성을 위한 것 같아 유용하고 적절해 보인다. 이야기의 온도도 10도 정도 올려주는 데 기여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좋았고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좋았다. &nbsp;전체적으로 현실적인 노동, 삶의 고단함, 노동 현장의 인물들과 그 주변의 이야기가 많다. 좀 더 현실에 밀착한, 현실 지향의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부희령’의 작품집 ≪꽃≫을 생각나게 하는데, 부희령의 이야기들보다 피상적이고 얄팍하지만, 작가가 지향하는 바를 고려한다면 심각하게 거슬리는 점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nbsp;작품들마다 관통하는 일관적인 core가 있어, 표제를 의식하게 된다. 행동의 의도, 선의와 악의, 그리고 그것이 오해되고 곡해되는 양상들이 읽히는데, 작가의 실제 지향점이 이곳에 있지 않을까 싶다. 작품집 전체를 아우르는 이런 통일된 감각은 작품들의 완성도를 떠나 모종의 미적인 균형을 부여한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80/22/cover150/893643991x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802201</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쉰네 번째 책 - [바다에서 온 소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64037</link><pubDate>Tue, 30 Jun 2026 10: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640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7906&TPaperId=173640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7/7/coveroff/k15213790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7906&TPaperId=173640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바다에서 온 소년</a><br/>개럿 카 지음, 이은선 옮김 / 북파머스 / 2026년 04월<br/></td></tr></table><br/>26년 쉰네 번째 책. &nbsp;★★★☆&nbsp;아일랜드의 바닷가 작은 마을에 아이가 한 명 발견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정적이고 성실한 어부 ‘앰브로즈’가 입양을 결정한다. 옛날 표현대로라면 옆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빤히 알 정도로 워낙 작은 공동체라 앰브로즈의 섣부른 행동이 스캔들을 부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앰브로즈 부부는 아이에게 ‘브렌던’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마을 사람들은 아이에게 ‘바다에서 온 소년’이란 별명을 붙여준다. &nbsp;브렌던이 이끄는 뭔가 신비롭고 영적인 이야기가 예상되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드라마틱한 오프닝에 비해 아이는 평범하게 자라고 이야기의 중심도 아니다. 앰브로즈와 ‘크리스틴’ 부부는 투철한 공동체 의식에 가족애까지 겸비한 모범적인 사람들이다. 부부의 아들 ‘데클란’이 브렌던에게 질투를 느끼지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배경으로 서로 아끼고 존중할 줄 아는 이웃들이 등장한다. 소위 ‘빌런’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착한 소설’이다. 이다지도 착해 빠진 소설이라니.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고 독자를 조바심 내게 만드는 국면도 거의 없다. 이런 느슨한 소설이 과연 재미있을까. &nbsp;충분히 재미있다. 시작하자마자 이야기에 푹 빠져서 읽었다. 초반 원고만 보고 출판사들이 경쟁했다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닌 듯하다. 이 작품의 매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nbsp;‘인물들이 생생하다’는 말은 식상하지만 그 표현 외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가족에 헌신하면서도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앰브로즈는 현재의 ‘아재’ 세대의 특징들을 답습한다. 친정아버지와의 애증과 갈등을 억눌러야 하는 크리스틴이나 아버지를 두고 입양된 형제와 경쟁하는 데클란도 저러지 말았으면 하면서도 이해가 간다. 혼기를 놓쳐 병든 아버지와 함께 집에 남은, 크리스틴의 언니 ‘필리스’는 또 어떤가. 자매의 고집불통 아버지 ‘유넌’ 또한 충분히 동정이 간다. &nbsp;이야기는 이들 가족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아우르고 데클란도, 브렌던도 성장하지만 이 작품은 가족 소설에 더 가깝게 읽힌다. 여기에 브렌던을 둘러싼 마을의 소문, 형제 간의 질투와 경쟁, 장래에 대한 고민과 방황, 부양과 간병의 문제, 가장의 실직과 죽음 등의 사건들이 미묘한 균열과 파장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들은 당황하거나 갈등하고 싸우기보다 타협하고 현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쪽을 택한다. 이들에게 과거는 있으나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개인적인, 혹은 가족을 둘러싼 걱정이 있으나 그건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이다. 그들은 현재에, 그리고 그들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한다. &nbsp;반목이나 갈등보다 삶 자체에 주안점을 둔 이야기는 문득 의심이나 회의가 들거나 난데없는 궁지에 몰렸을 때, 우리가 그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묻는다. 이 착해 빠진 이야기는 위기 자체는 심각하지만 인물들이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차라리 경쾌하다. 삶의 허들을 쉽게 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태도는 안일하기보다는 현명해 보인다. 어마어마한 태산 앞에서 좌절하느냐, 한 걸음이라도 산을 향해 다가가느냐는 우리의 결정이고 이는 곧 ‘용기’의 문제로 귀결된다. &nbsp;대도시가 배경이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폐쇄적인, 다소 고립된 느낌의 바닷가 마을은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처럼 보인다. 풍광 묘사도 생생하지만, 작가는 바다 위에서의 조업 현장을 매우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다. 번역 과정에서 난관이 있었을 법도 한데, 매끄러운 우리말 문장으로 옮겨온 역자의 능력과 수고 또한 언급해야겠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7/7/cover150/k15213790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70776</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쉰세 번째 책 - [스노우 헌터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54210</link><pubDate>Thu, 25 Jun 2026 10: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542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932903&TPaperId=173542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61/46/coveroff/k36293290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932903&TPaperId=173542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스노우 헌터스</a><br/>폴 윤 지음, 황은덕 옮김 / 산지니 / 2024년 07월<br/></td></tr></table><br/>한국 전쟁에서 포로로 살아남은 북한 청년 ‘요한’이 송환을 거부하고 브라질에 가서 정착하고 삶을 일구는 과정에 관한 작품이다.  &nbsp;인물의 지독한 고립감과 외로움, 조용하고 차분하며 나른한 분위기와 서정적인 문체, 함축적이고 시적인 문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전쟁 이후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데, 보다 주목하고 있는 건 일그러진 세계사나 한국 역사의 비극이 아닌 그 파장의 영향 아래 놓인 개인의 삶, 기억으로서의 개인의 역사이다. 바로 지금, 여기의 내 모습이 가끔 새롭고 생소한, 낯선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느낌이 타국의 이방인인 요한을 통해 드러난다. 여기까지 어떻게 이르게 되었을까 여정을 톺아보지만 아찔하면서도 남은 기억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놀라는 요한은 현재에 집중한다. 요한이 보기에 타인의 삶 역시 미지의 우주이다. 그런 개인들이 모인 브라질 바닷가 동네는 기억들이 쌓인 과거의 공간이자 현재 삶의 현장이다. 요한의 삶은 지속된다. 낯선 사람들에게서 친절과 호의를 받으며, 그 자신도 타인을 향해 손을 내미는 요한의 이야기는 작가가 나중에 발표한 단편 작품 &lt;보선&gt;과 많이 겹친다. &nbsp;이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리뷰나 칭찬에도 불구하고 내겐 다소 불편한 지점이 있었다. 일단 번역. &nbsp;당시 북한의 평범한 민가(民家)에 ‘정원’이란 단어가 흔했을까. 작가가 ‘garden’이란 단어를 썼어도 번역자는 ‘마당’이라고 옮기는 게 옳지 않을까.‘칼날의 반사(178쪽)’란  빛이 반사되는 건지, 아니면 어떤 상(象)이 반사되는 걸 의미하는지 명확해야 하지 않을까. 그저 한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의 문체가 번역하기 힘들었다는 건 쉽게 상상이 간다. 역자 후기를 보면 이 작품에 대한 번역자의 애정이 오롯이 드러나는데, 그것과 번역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애정과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다. 시적인 리듬과 겹겹의 의미는 번역을 거치며 뻣뻣하고 건조하고 얄팍해졌다. 단지 해석에 지나지 않는 문장들이 많이 보인다. 번역자가 무려 소설가다. 소설을 쓰는 일과 해외 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최근에 나온 작가의 다른 책 ≪벌집과 꿀≫을 보면 쉽게 비교가 된다. &nbsp;작가에게도 한계가 보이는 듯하다.‘요한’이나 ‘펭’이라는 이름을 가진 북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런 이름들이 북한에서 보편적일까? 이름은 그렇다 치자. 작가가 당시의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아닐까 강한 의심이 드는 지점이 왕왕 있었다. 혈통만 한국계일 뿐인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 특히 한국의 독자들은 상상이 아닌 정확한 정보나 사료(史料)를 기대하며 이 책을 펼친다. 이 소설은 본격적인 역사 소설과는 거리가 있지만 역사적 사실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작품은 과거의 요한과 현재의 요한이 교대로 등장하는 열여덟 개의 챕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과거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치 지구 상, 미지의 다른 나라를 무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nbsp;아래의 문장은 183쪽에 나오는 것을 옮긴 것이다. &nbsp;- 그해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도착했다. 그러다가 한국이 분단되었고 몸통 한가운데를 따라서 영토가 나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nbsp;일본의 항복은 1945년의 일이고, 휴전선으로 한반도가 절단 난 건 1953년의 일이다. 두 사건 사이에 무려 8년의 세월이 있다. 그런데도 마치 연이어 생긴 일처럼 다루고 있으니, 한국의 독자들은 이상하다 생각해도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한국의 역사에 생소한 해외 독자들의 눈에는 과연 이 문장이 어떻게 읽힐 것인가. 이어지는 이야기에 관련한 역사적 사실에 작가가 부연하고는 있지만 이 문장만으로는 오독과 오해의 소지가 충분하지 않을까.  &nbsp;한 술 더 떠, 요한의 과거 고향의 기억을 더듬는 부분에 ‘오렌지 과수원’이 등장하고 있다(200쪽). 당시에 오렌지 농장이 가능한 일인가. 그것도 한반도 북쪽에서. &nbsp;≪벌집과 꿀≫의 느낌이 좋아서 펼친 책이다. 그 때의 감상에 비교하면 이 책은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형식과 내용이 임팩트 있게 할 말만 하고 빠지는 압축된 형식의 단편에 더 어울리는 듯하다. 예상과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작가에 편에서 핑계를 만들자면 작가가 한국계이긴 하지만 한국인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미국인 소설가’가 한국에 대해 쓴 소설이다. 그렇다고 오류를 ‘가능한 실수’로 덮어버릴 수 있는가. 작품을 쓰기 위해 작가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의 질문은, ‘디아스포라 문학의 확장’이란 칭찬 일색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답을 궁리해야 할 것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361/46/cover150/k36293290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3614634</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쉰두 번째 책 - [두려워요, 투우사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6418</link><pubDate>Sun, 21 Jun 2026 09: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64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6187&TPaperId=173464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18/44/coveroff/89324761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76187&TPaperId=173464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두려워요, 투우사여</a><br/>페드로 레메벨 지음, 임도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br>❝사랑이라는 게임을 할 땐 늘 실수할 위험이 있으니까. 무엇보다 세상엔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까. (255쪽)❞&nbsp;‘피노체트’ 독재 시절의 칠레. 식탁보 따위에 손자수를 놔주며 벌어먹고 사는 늙은 게이(혹은 트랜스젠더) ‘앞집 미친년 로카’가 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무장 테러로 독재 정권의 전복을 꾀하는 지하 저항세력의 핵심 요원 ‘카를로스’. 로카가 아는 카를로스란 이름은 본명도 아니고 로카는 앞집 미친년이지만 앞집 미친년이 아니다. 극 중 누구도 그녀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로카와 카를로스는 서로 어울리는 상대일까. 손에 실과 바늘을 들기 전엔 잘 나가던 ‘드랙 퀸’이었던 로카는 ‘무식한 촌년’이고 이미 바닥을 친 늙은 ‘퇴물’이다. 반면 카를로스는 이십대 초반의 푸릇푸릇한 나이에 똑똑하고 잘생기기까지 한 대학생이다. 무엇보다 로카는 뼛속까지 동성애자이지만 카를로스는 그렇지 않다. 우연히 만난 카를로스에게 홀딱 빠진 로카가 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으로 시작된 그들의 관계(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까. &nbsp;‘늙고 무식한 촌년’인 로카는 오히려 현명하고 용감하고 우아하다. 카를로스가 로카를 (어느 정도는) 이용을 했더라도 로카는 카를로스를 진심으로 (거의 충심을 다해) 사랑한다. 자신이 연인에게 이용될 가치와 희생될 덕목을 갖고 있다는 걸, 시작부터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카를로스와 그 집단의 의도와 목적, 수단에 대해 온전히 무관심한 척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카를로스는 로카를 사랑했을까. 로카에 대한 카를로스의 감정은 감사와 연민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다가 사랑으로까지 여겨지는 감정을 보이지만, 엄연한 착각일 뿐이다. 그렇다고 카를로스가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나쁜 놈이냐. 그렇지 않다. 카를로스는 로카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녀의 안위를 걱정한다. 모든 일을 비밀로 하고 ‘그 일’에 대한 대화를 최대한 삼간다. 로카에 대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 지금 있는 그대로, 당장 보이는 대로의 모습으로 그녀를 인정한다. &nbsp;독재 정권과 시위대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86년의 칠레를 무대로 하지만, 관련한(정치적인) 장면들은 별로 없다. 그녀가 한 모든 정치적인 행동은 오직 카를로스를 위해서였다. 카를로스도 그녀를 자신의 일에서 되도록 멀리 떼어놓으려 한다. 조국의 현 상황에 눈을 뜨라고 보채는 일도, 그렇지 못함을 나무라는 일도 없다. 이런 태도가 로카와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서로를 위한 배려는 결국 서로에게 옳은 것이었다. &nbsp;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로카는 끝까지 ‘순진한 게이’로 남는다. 하지만 그녀의 내부엔 조용하고 느리지만 확실한 어떤 움직임이 느껴진다. 의뢰받은 식탁보를 전달하러 방문한 국회의원 저택에 느껴지는 어떤 반감, 도심에서 맞닥뜨린 최루가스, 우연히 끼게 되는 여성들의 집회 들은 그녀에게 모종의 자극이 된다. 남성의 육체에 여성의 삶을 사는 정체성의 약점이 위기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는 수단이 되는 아이러니도 정체성(경계)의 모호함, 현실의 혼란을 암시하는 것 같다. &nbsp;칠레의 당시 정치적 상황이나 등장인물들을 보면, 약간이라도 서스펜스 두드러지는 스파이 소설 같은 장면을 예상할 수도 있겠으나, 그저 언급하거나 짧게 보여주고 만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러브스토리’로 일관한다. 마치 ‘사랑’에 오로지 그것 말고는 모두 방해 요소일 뿐이라고 조용히, 그러나 절절히 외치고 있는 것 같다. &nbsp;소설의 대부분이 로카의 삶과 내면에 집중되어 있지만, 독재자의 모습이 막간처럼 등장하는데, 상상하는 그런 모습(실제로 피노체트의 독재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자자했다고)이 아닌, 그저 생활에 찌들고 와이프의 바가지에 지쳐 있으며, 테러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경이 곤두선 ‘늙다리’ 정도로 묘사되고 있는 게 재미있다. 알고 보니 한심하고 게으른 늙은이인 피노체트와 알고 보니 그냥 나약하고 평범한 인간인 로카를 나란히 놓고 ‘그저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대유(代喩)하는 장치로 보인다. &nbsp;소설에 표현된 사회, 국가적 상황들이 그 시절의 대한민국과 닮은 점이 많아 겹쳐 보였다. 당시의 우리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들(특히 영화)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가난한 고학생을 뒷바라지하는 호스티스나 우연히 시위대를 돕다가 위장취업한 운동권 대학생(학출)과 사랑에 빠지는 여공. 우울한 분위기. 결국 배반하는 남자들. 여자들의 결말은 언제나 불행하고(정신병원에 갇히거나 자살), 소비되고 버려지는 여성성, 불쌍한 여자들을 앞세운 이야기들. 로카의 결말은 어떨까. 약간은 열려 있고 조금은 약간 행복에 기울어 있어, 저런 클리셰들에서 비껴나 있다. 그녀는 함께 쿠바로 가자는 카를로스의 제안을 거절한다. 카를로스를 사랑하지만 그 한계를 무엇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로카는 자신이 준 사랑을 되돌려받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진짜 사랑을 누군가에게 주었다는 사실만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보다 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에 임하는 그녀의 용기와 현명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강렬하고 아름다우며 슬프지만 희망적인 마지막 장면은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오랫동안 벅찬 여운으로 남는다. &nbsp;어쩌면 평범한 퀴어 로맨스에 단지 인물과 배경에 변화를 준 것뿐인데, 마치 완전 다른 시도, 새로운 장르인 듯 감상이 특별하다. 시인이자 퀴어 논픽션 작가, 조형 예술가였던 작가의 유일한 소설이라고 한다. 유난히 시적인 문장들이 슬픈 왈츠를 추며 다양한 감정을 독자의 피에 새겨 넣는다. 한동안 로카와 카를로스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18/44/cover150/89324761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184447</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쉰한 번째 책 - [선을 지키는 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6414</link><pubDate>Sun, 21 Jun 2026 09: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64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183744&TPaperId=173464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942/47/coveroff/89821837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183744&TPaperId=173464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선을 지키는 일</a><br/>조미해 지음 / 강 / 2025년 11월<br/></td></tr></table><br/><br>&lt;더미&gt;는 이 작품집 안에서 가장 말 할 거리가 많다. 완성도를 떠나 작품을 볼 수 있는 관점이 다양해 보이는데, 이야기가 품고 있는 여러 개의 씨앗은 토론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을 듯하다. 이 작품은 남녀 모두에게 능욕당하고 소비되는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처럼 읽히는데, 동시에 정체성의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한다. 정체성이 뒤섞이고 경계가 모호해지자 사라지는 개인의 고유성, 독자성, 개성. 이런 틈바구니에서 폭력이 어떻게 싹을 틔우는지 보여준다. &nbsp;인물들의 ‘기 싸움’ 이상은 아닌 &lt;선을 지키는 일&gt;은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를 두지 못한 데서 오는 이야기라기보다, 질투와 욕망, 고유성과 개성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처럼 보인다. 읽는 내내 작가의 포커스가 살짝 어긋나 있는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의 이미지를 이야기로 형상화하는 데 실패했다고나 할까.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을 모방하려는 ‘도플갱어’의 이미지는 사람의 모습을 모방하는 ‘더미(dummy)’와 흡사해 보여서, 앞의 &lt;더미&gt;와 소재는 함께 하되 맥락은 달리하는 이야기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소재가 잘 쓰이지 못한 느낌이다. &nbsp;&lt;부끄러움을 아는 마음&gt;은 제목과는 달리 부끄러운 마음을 ‘모르는’ 인물을 통해 선의를 가장한 악의, 선의가 타인에게 악의로 가닿는 오해의 순간을 말하려 한 것 같은데, 그러기엔 ‘서준’이란 인물이 너무 민폐 캐릭터라 공감이 잘 가지 않는다. 맹랑하고 이기적이고, 어린 아이 특유의 순수함을 가장한 사악함마저 보이는 아이의 모습에 화자에게 동정심이 들 정도였다. &nbsp;그 외,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유령과 조우하는 딸의 회고담인 &lt;남태평양에는 쿠로마구로가 산다&gt;, 장례 화장(化粧)을 소재로 삶과 죽음을 대비시킨 &lt;마스카라&gt;, 삶의 통제권, 결정권에 대한 이야기인 &lt;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gt;, 상실과 이별 후의 슬픔과 방향 없는 분노를 통해 ‘자기 통제’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lt;비 내리는 밤에 우리는&gt; 등이 실려 있다. &nbsp;처음 접하는 작가다. 이 책 역시 서점을 ‘탐험’하다가 ‘발굴’했다. &nbsp;작품들 마다 경제성이 돋보인다. 최소한의 재료로 차려낸 음식 같다고나 할까. 발화점에서 멀리 가거나 크게 부풀리지 않으면서 사건과 감정을 중첩시켜 이야기를 키워나간다. 그 과정에 호기심과 긴장을 효과적으로 불어넣는 솜씨가 꽤 좋다. 호기심을 일으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건 작가의 분명한 장점처럼 보인다. &nbsp;반면 임팩트가 있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건 아쉽다. 작품들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감상의 폭이 모두 고만고만하다. (이 작품집엔 수상작이 무려 세 개나 실려 있다)서사 진행이 덜컹거리는 지점이 있다. 매끈하지 못하다고 해야겠다. 작품들마다 다양한 소재가 나오는데, 작가가 그것들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의문이 들곤 했다. 내 느낌인데, 단순히 인터넷을 뒤져 조사한 자료에 의지한 것처럼 보이는 구석이 있다. 그런 소재는 한계가 있다. 작가들이라고 모든 삶을 경험해 볼 수는 없을 테지만 한계를 한계처럼 보이지 않게끔 ‘척’하는 것 역시 작가의 능력이다.  목적이 불분명한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을 왜 썼는지, 무슨 말을 하려고 썼는지 모호한 건 독자로서 내 수준이 낮은 때문일 수도 있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942/47/cover150/89821837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9424713</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쉰 번째 책 - [노생거 수도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6411</link><pubDate>Sun, 21 Jun 2026 09: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641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77182&TPaperId=1734641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65/14/coveroff/895277718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77182&TPaperId=1734641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노생거 수도원</a><br/>제인 오스틴 지음, 최인자 옮김 / 시공사 / 2016년 10월<br/></td></tr></table><br/><br>고딩 때 오만과 편견을 읽은 이후로 ‘제인 오스틴’은 오랜만이다. 영화로 본 『이성과 감성』과 영미 여성작가 앤솔러지 ≪그녀들의 이야기≫에 실린 단편, &lt;세 자매&gt;는 열외로 친다.  제인 오스틴과 그녀의 책들을 소재로 한 『제인 오스틴 북 클럽』은 영화로, ‘오만과 편견’을 좀비 활극으로 패러디한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는 책으로 읽었지만 기억도 안 난다. &nbsp;다작한 작가도 아니고 활동 시기가 긴 것도 아닌데다 무려 300년 전에 살다 간 작가이다 보니, 그리 관심이 가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물론 해외엔 ‘오타쿠’라 불릴 만한 열혈 팬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웬 호들갑? 이런 식은 아니었지만, 로맨스를 좋아하지도 않고 대표작은 이미 읽었으니 그 이상으로 내가 작가를 접할 기회는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은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표지가 예뻐서? &nbsp;총 2부로 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다양한 성격과 관점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는 로맨스 성격이 강하다. 2부로 들어서면서 고딕 소설의 분위기가 살짝 보태지는데, 이는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난다. 제목인 ‘노생거 수도원(Northanger Abbey)’은 중반 이후, 주인공인 ‘캐서린’이 ‘틸니 가족’의 초대로 방문하게 되는 그들의 영지로, 고딕 소설을 위한 훌륭한 무대가 된다. &nbsp;이 작품을 읽으면서 놀랐던 점이 있는데, 여성 참정권도 없던 시절(이 책의 원고가 완성된 게 1799년, 출판은 1817년), 작가가 굉장히 진보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작품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경제권을 포함한 삶의 거의 모든 요소들을 남성들에게 의지해야 했던 당시 여성들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작품에 보인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에피소드나 대화들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특히 당시 결혼을 앞둔 여성들의 ‘지참금’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그렇다. &nbsp;또 하나 놀랐던 점은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작가로서 상당히 도전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작품은 습작을 제외하고 출판을 목표로 작가가 완성한 첫 작품(비록 출판은 나중에 이뤄졌지만)이라고 알려져 있다. 소위 ‘입봉’도 하지 못 한 작가가 당대 유행하던 로맨스 소설과 고딕 소설을 비판하고 장르적 클리셰들을 비틀고 있으니, 걸음마도 못 뗀 갓난쟁이가 마라톤을 하려고 달려드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용기와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게다가 작가는 작품 곳곳에서 화자 자신을 드러내 독자들에게 말을 걸면서 ‘제 4의 벽’을 허물고 있다. 작가는 이야기가 전적으로 허구(소설)임을 스스로 강조하고 있다.  &nbsp;이야기로서의 재미는 주로 로맨스 장치에서 나온다. 주인공의 짝사랑과 결혼을 둘러싼 통속적인 장면들에 숨겨진 날카로운 질문들, 다양하고 입체적인 성격의 인물들과 배반, 뒤통수, 횡설수설과 모함이 난무하는 그들의 관계가 주는 흥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당시 영국의 모습과 생활, 유행, 풍속들을 엿보고 연구하는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어 보인다. &nbsp;고딕 소설로서는 어떨까. 작가가 이 작품을 고딕 소설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위에 적은 ‘고딕 소설로서 어이없는 해프닝’이라는 표현은 일단 반은 옳고 반은 그르다. 이런 장면들은 나중에 ‘틸니 장군’의 성격과 모순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중요한 복선이다. 작가는 고딕 장르를 비판하면서 모방하고 이용한다.&nbsp;책은 살짝 옆으로 두고, 나로서는 상당히 재미있는 시도였다. 현실적인 주인공과 현실적인 이야기, 과장되고 이런저런 액세서리들을 제거한 담백한 이야기, 거기에 작가 제인 오스틴의 인간적인 매력까지. 예상 외로 얻어가는 게 많았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가 일찍 세상을 뜨지 않았다면 어떤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을까. 궁금하고 아쉽다. 제인 오스틴의 다른 작품들도 궁금해진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0065/14/cover150/895277718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0651474</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마흔아홉 번째 책 - [모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6403</link><pubDate>Sun, 21 Jun 2026 08: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64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035474&TPaperId=173464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26/92/coveroff/k6720354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035474&TPaperId=173464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모린</a><br/>안윤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2월<br/></td></tr></table><br/><br>❝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털어놓는 일과 서로를 이해하는 일, 한 사람을 아는 일 간에 정확히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그것이 관계에 얼마나 중요하고 중요한 일인지, (121쪽)❞&nbsp;문장에 땀과 피가 서려 있다. 문장이 눈물을 흘린다. 감상적인 문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작가 ‘안윤’에겐 이상하게 이끌린다. 상실과 좌절의 현실에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이야기 일곱 편이 실렸다. &nbsp;작가에게 나를 처음으로 이끈 &lt;담담&gt;은 거듭 읽어도 좋다. 애도의 이야기이면서 ‘앎’과 ‘이해’의 이야기이다. 절제된 슬픔, 제목처럼 담담하지만 절절 끓는 슬픔이 느껴진다. 전세사기라는 시의적인 소재로, 진정한 위로란 과연 있는지 묻고 있는 &lt;또,&gt;, 인생의 불확실성과 감히 예측할 수 없음, 와중에 존재하는 희망과 기회에 대한 이야기인 &lt;하지&gt;, 꿈은 잃어버리는 것인지 포기하는 것인지 묻게 되는 &lt;작은 눈덩이 하나&gt;, 차별과 억압으로 얼룩진 비밀이 드러나면서 관계의 균열을 그린 &lt;핀홀&gt; 등이 실려 있다. &nbsp;반면, 모호하고 피상적인 감정 묘사로 일관한 &lt;모린&gt;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에 취한 작가의 습작처럼 읽히며, 좋은 소재가 낭비된 느낌인 &lt;틈&gt;은 돌고 돌아 결국 불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무너진 인물을 보여주기 위해 이 많은 과정이 필요했을까, 싶게 다소 장황하게 읽힌다. &nbsp;단편 세 편이 실린  ≪방어가 제철≫을 포함해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애수어린, 강바닥 진흙 같은 무거운 분위기, 짓눌린 정서, 슬픔 뒤의 쾌감, 사연 있는 인물들이 작가의 특징이다. 한꺼번에 모아서 읽으니 작가의 다소 모자란 점도 눈에 띄는 것 같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26/92/cover150/k6720354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3269246</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마흔여덟 번째 책 - [어디까지 왔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6400</link><pubDate>Sun, 21 Jun 2026 0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64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1676X&TPaperId=173464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487/57/coveroff/893741676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1676X&TPaperId=173464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디까지 왔나</a><br/>이청해 지음 / 민음사 / 2021년 12월<br/></td></tr></table><br/><br>북풍한설 같은 격동의 세월을 보낸 뒤의 고요함, 조용히 가라앉은 노작가가 쓸 법한 이야기 일곱 편. 그럼에도 독자들의 가슴에 불어넣는 숨결이 생생하다. 편편이 주옥 같고, 폐부를 찌르는 표현, 관록이란 이런 거구나, 싶은 문장들이 빛난다. 요즘의 어떤 작가가 단어들의 이런 조합을 생각해낼 수 있을까. 작가는 작품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당신은 지금 당신 삶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묻고 있다. &nbsp;‘극한 상황에서 저절로 작동되는 생존본능(61쪽)’이 과연 이기심인지 묻는 &lt;검은 나비&gt;가 포문을 연다. 살면서 잃은 것들, 잊은 것들, 놓친 것들을 화자와 함께 되짚게 되는 &lt;남편의 시(詩)&gt;, 절망과 외로움에 빠진 인간에게 구원은 어떤 형태로 다가오는지, 내밀어진 손이 완전히 의지할 수 있는 것인지 묻는 &lt;친절한 금화씨&gt;, 어둡고 침울한 화자가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서 반려견 때문에 뜻밖의 소동을 겪는, 이질성과 동질성에 관한 이야기인 &lt;생쥐와 낙타&gt;등이 실려 있다. &nbsp;폭력이 드리운 긴 그림자를 통해 폭력 피해자로서의 여성과 그들의 인권에 대해 말문을 여는 &lt;너의 발걸음 소리&gt;는 노골적인 여성 서사임에도 폭력을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된 수작이다. 코믹한 필체로 오늘날 문학의 진정성을 탐구하는 &lt;소설가들&gt;도 가슴에 남고, 충동적으로 떠난 여행에서 타지의 낯선 사람들로부터 뜻밖의 호의와 위로를 받는 &lt;여수 이야기&gt;도 기분 좋은 여운이 오래 남는다. 이 작품을 읽고 여수에 가고 싶어졌다. &nbsp;세상은 거칠고 가차 없지만 사람들은 따뜻하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소설집으로서는 ‘이게 마지막’이라고 밝히는데, 제발, 아니길 바란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487/57/cover150/893741676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4875719</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마흔일곱 번째 책 - [달걀의 온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6399</link><pubDate>Sun, 21 Jun 2026 08: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639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36&TPaperId=1734639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17/coveroff/89364399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9936&TPaperId=1734639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달걀의 온기</a><br/>김혜진 지음 / 창비 / 2026년 04월<br/></td></tr></table><br/><br>&lt;관종들&gt;은 오지랖과 정당하고 애정 어린 관심의 차이와 경계, 즉 선의(善意)의 선(線)을 묻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정답을 주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고 문제만 던지고 뒤로 빠진다. 그 뒤의 판단과 결론은 독자의 할 일이다. 자유로운 감상이 가능한 무대를 제공하는 작가의 수법이 능숙하다. &nbsp;&lt;빈티지 엽서&gt;는 매우 흥미로운, 이 작품집의 백미이다. 읽을수록 토끼굴이 연상된다. 마치 렌즈가 여럿 달린 망원경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lt;관종들&gt;과 연이어 읽으면 그런 느낌이 두드러진다. 로맨틱한 분위기와 정서,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표면적으로 이 작품은 ‘낯선 곳에 자신의 일부를 남기고 오지 않았을까(48쪽)’ 의심하는 화자의 권태를 다룬다. 화자는 헬쓰장에서 우연히 친해진 남자를 통해 삶을 회고하고 과거에 내릴 수 없었던 결정과 선택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는데, 사연과 맥락이 명확하지 않은 ‘외국의 엽서’는 우리가 원하지만 닿을 수 없는 세계, 가질 수 없는 것의 상징처럼 보인다. 손에 들고 해석하려 하지만 우리가 가진 건 단어와 맥락 없는 문장 들은 보잘 것 없는 일상에 약(藥)도 되고 독(毒)도 되는, 양가의 가치를 지닌다. &nbsp;이야기의 문제의식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작가는 시선을 중첩시키고 가장 밖에 독자들의 시선을 둠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을 읽는 것 이상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화자와 헬쓰남의 ‘엽서 읽기’가 멈추는 건 외부(관종들)의 시선 때문이었다. 그런데 화자와 헬쓰남 사이에서도 ‘관종들’의 시선이 존재한다. 나중에 화자는 남자의 의도가 진짜 엽서 읽기뿐이었을지 의심하며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그 이상의 바람은 없었는지 묻는다. 가장 밖에서 이 모든 양상을 목격하는 독자 역시 이들의 의도를 의심하고 상상하면서 ‘관종’의 시선을 경험한다. &nbsp;&lt;달걀의 온기&gt;도 여운이 길다. 작가는 얼마간 방치됐던 어린시절 기억으로 태생적 피해의식이 있어 늘 원망의 화살로 경계하는 ‘선희’와 보살핌을 받은 적이 없으면서 어떤 대상을 보살피는 꼬마 ‘민지’를 대비시킨다. 성인이지만 정신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선희와 달리 어린 민지는 오히려 성숙하다. 선희는 민지로 인해 ‘바깥의 열기와는 무관한, 내부에서 만들어져 흘러나오는 온기, 아니, 바깥에서 불어넣지 않았다면 결코 생겨나지 못했을 온기(233쪽)’를 경험한다. 작가는 ‘결핍’의 증후가 ‘없어서 할 수 없슴’만이 아닌 ‘없으니까 오히려 더 잘 하려는’ 의지도 있음을 보여준다. &nbsp;창작과 표절의 경계를 내세워, 우리가 무엇을 인식할 때, 오직 그것 자체만이 인식의 대상일까 질문하는 &lt;우연의 직조&gt;는 예술과 우연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게 했고, 나와 우리라는 울타리 밖의 존재를 그저 외부, 나와 상관없는 것, 의심스럽고 조심해야 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편견과 혐오에 대한 이야기인 &lt;우리와 우리 아닌 것&gt;도 읽기 좋았다. 이 작품은 또한 한 번 경험되어 각인된 이미지가 얼마나 오래 가는지, 우리가 그것에 얼마나 고집스레 집착하는지, 화자를 통해 경험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nbsp;서서히 세상 밖으로 나와 ‘어떤 것에 어렵게 다다른(102쪽)’ 화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lt;푸른색 루비콘&gt;과 독(毒)이 약(藥)으로 작용해 밖으로 나왔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다시 껍질 속으로 들어가는 ‘애실’의 모습이 안타까운 &lt;하루치의 말&gt;은 쌍을 이루는 작품처럼 보였다. &nbsp;‘김혜진’의 소설집이다. 미문(美文)보다 경제적이고 적확한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의 특징이 읽기에 좋다. 섬세하고 내면적이되 개인성에 함몰되지 않고 안과 밖, 개인과 사회를 적절히 조율한 이야기, 일곱 편이 실려 있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60/17/cover150/89364399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601774</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마흔여섯 번째 책 - [죽음의 사냥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5086</link><pubDate>Sat, 20 Jun 2026 13: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50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8202771&TPaperId=173450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3/49/coveroff/8938202771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8202771&TPaperId=173450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죽음의 사냥개</a><br/>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10월<br/></td></tr></table><br/><br>크리스티 다시 읽기 스물네 번째 책. &nbsp;&nbsp;❝- 어둠에서 헤매는 아들을 운명의 여신은 무슨 등불로 이끌어주시는가? &nbsp;- 이심전심의 등불이다, 하고 하늘에서 대답했다. &nbsp;알겠니? 제프리에게는 그것이 있는 거야. 이신전심의 등불 말이야. 아이들은 모두 가지고 있지. 어른이 되어가면서 점점 그것이 없어져 버리지. 아니, 그것을 없애고 있을 뿐이지. 아주 나이가 들어버리면 희미하게 빛이 돌아오는 수도 있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등불은 아이 때가 가장 밝은 빛을 내지. (&lt;등불&gt;, 65쪽)❞&nbsp;전형적인 ‘귀신들린 집’ 이야기이면서 어른이 되면서 사라지는 동심과 순수함의 흔적을 좇는 &lt;등불&gt;은 작가의 단편 중 내가 자주 꺼내 읽는 작품 중 하나이다. 으스스한 분위기에 완벽한 구성, 각 캐릭터들의 효과적인 역할 분담과 ‘어른 되기’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메시지까지. ‘좋은 단편소설’이 갖추어야 할 미덕을 짧은 분량 안에 빼곡하게 담아낸다. &nbsp;이 작품집은 크리스티의 여러 단편집 중 여기저기서 추려 편집한 책이다. 원래 영미권에서 출판된 책은 이런 모양새는 아니었으나 출판사(‘해문’) 임의로 저지른(?) 결과물이다. 그런데 오히려 더 좋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맛과 색깔을 갖춘,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모양새를 갖췄으니까. ‘황금가지’의 판본은 아마도 다르리라 추측된다.&nbsp;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두드러진다. 보통 애거서 크리스티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후던잇(Whodunit)’에 특화된 작가지만, 사실 여러 장르를 넘나든 전천후였다. 열한 편의 작품이 실린 이 책에서만도 호러, 정통 미스터리, 로맨스 등, 그 맛이 다양하다. &nbsp;&lt;죽음의 사냥개&gt;에서 작가는 초현실적인 요소들을 자신의 특기인 범죄와 교묘하게 연결 짓는다. 그런 특징은 고양이와 인간의 영혼이 뒤바뀌는, 다소 허무맹랑한 이야기인 &lt;아서 카마이클 경의 기묘한 사건&gt;에서도 보인다. 미래를 예견하는 인물의 비극을 그린 &lt;집시&gt;, 귀신 들린 인형을 중심으로 한 소동극인 &lt;의상 디자이너의 인형&gt;도 호러 소설 범주에 속한다. 특히 &lt;의상 디자이너의 인형&gt;는 독자의 인간적인 면에 호소하는 결말로 독특한 여운을 남긴다. &nbsp;로맨스 소설로 읽히는 &lt;목련꽃&gt;은 불륜 상황을 중심으로 인간의 존엄과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진지하게 조명한다. 작가 자신이 불륜의 피해자였으므로 그 상황과 관계를 탁월하게 잘 설득해냈다. &lt;개 다음에&gt;는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몇 십 년이 지나서도 눈물짓게 만든, 매우 좋아하는 단편이다. 절망과 희망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순간을 잘 잡아내어 진정한 위로란 무엇인지에 곱씹게 만든다. 애절하고 사랑스럽고 낭만적인 작품이다. &nbsp;나머지 작품들은 이 책의 작가가 누구인지 잊지 않게 만들어준다. ‘포와로’가 도난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는 &lt;이중 범죄&gt;와 &lt;이중 단서&gt;는 범죄와 트릭이 강조된 작품이며, 포와로가 앞으로 일어날 살인을 미리 막는 &lt;말벌 둥지&gt;와 ‘미스 마플’이 이방인의 죽음을 조사하는 &lt;성역&gt;은 범죄보다 인물의 드라마가 전면에 드러난다. &nbsp;읽을 때마다 이런 작가가 또 있을까, 감탄하곤 한다. 올해(2026년)가 크리스티 사망 50주년이라고 해서 고향인 영국에선 여러 축제가 열리거나 열릴 예정이라고 하니 부럽기만 하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3/49/cover150/8938202771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34929</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마흔다섯 번째 책 - [폭풍으로 들어가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5076</link><pubDate>Sat, 20 Jun 2026 13: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50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137709&TPaperId=173450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46/1/coveroff/k5421377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137709&TPaperId=173450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폭풍으로 들어가기</a><br/>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03월<br/></td></tr></table><br/><br>바로 전에 읽은 ≪스물두 번째 레인≫의 속편 격 이야기. 전편에서 어린 아이였던 ‘이다’가 주인공이다. 출판은 전작으로부터 일 년의 터울이 있지만, 이야기 속 이다는 어느 새 성인(열아홉이나 스물)이다. &nbsp;알코올 중독이었던 엄마가 약물 과용으로 죽고 이다는 홀로 남는다. 죽은 엄마를 발견한 충격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함부르크에 정착한 언니에게 가는 길, 충동적으로 외딴 섬으로 향한다. &nbsp;낯선 지방, 낯선 사람들에 섞여 슬픔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다의 이야기다. 전작과 같이 성장 드라마 성격이 강하다.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를 홀로 견디며 울퉁불퉁 반항적인 기질이 된 이다가 주변 인물들의 도움으로 모서리를 다듬어가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 전작보다 더 인물의 내면에 천착한다. 틸다의 이야기가 미래를 찾는 과정에 관한 것이었다면, 이다의 이야기는 과거를 부드럽게 매만지며 자신의 모습을 깎고 다듬는 과정에 집중한다. &nbsp;언니의 이야기와 비교했을 때 공통점이 많다. 물의 이미지(수영장, 바다), 비와 바람, 숲이라는 공간, 인정 많고 친절한 조력자, 수수께끼 같은 매력의 젊은 남자. tone &amp; manner가 일관되어 나처럼 연달아 읽는다면 살짝 지루할 수 있다. &nbsp;개인적으로 이젠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진, 자매의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결혼과 출산으로 문학의 꿈을 접은, 상실된 미래에 아파하다가 알코올이 주는 괴력에 의존하게 된, 그래서 남편에게 버림받고 아이들을 소외시켜 결국엔 붕괴되고 만 여자의 삶은 어땠을까. 프리퀄 형식으로 엄마의 이야기를 읽고 싶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46/1/cover150/k5421377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460182</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마흔네 번째 책 - [스물두 번째 레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5073</link><pubDate>Sat, 20 Jun 2026 12: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50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9190&TPaperId=173450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22/73/coveroff/k21203919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039190&TPaperId=173450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스물두 번째 레인</a><br/>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05월<br/></td></tr></table><br/><br>가정을 저버린 아빠에 알코올 중독에 빠진 엄마, 나이 터울이 많은 이부동생. 힘겹고 부지런할 수밖에 없는 삶. 하지만 힘에 부친다. 교통사고로 인한 ‘썸남’의 죽음도 죄책감을 짓누른다. 수학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틸다’는 교수로부터 박사 과정을 위해 대도시로 떠날 것을 추천받는다. 도약할 좋은 기회다. 그런데 어린 동생과 망가진 엄마가 걸린다. 틸다는 훌훌 털어버리고 꿈을 좇고 싶지만 삶이 녹록치가 않다. &nbsp;기회와 선택, 희망과 극복의 이야기다. 과거에 매인 현재에 주저앉느냐, 아니면 희생을 있더라도 미래로 나아갈 것이냐. 이런 딜레마를 중심으로 틸다의 고민이 전개된다. 나라면 어떨까. 현재에 그냥 남기로 결정하는 게 나에겐 쉬운 결정 아닐까. 나쁜 사람은 되기 싫기에, 나중에 후회하거나 손가락질 받는 건 견디기 어렵기에. 하지만 그런 걸 완벽하게 차단할 방법이 있을까. 결국 집을 떠나는 주인공을 보며 부러웠다. 가족을 떠나고 싶은 게 아니라 현실을 벗어나기로 결정한 그 용기에. 틸다의 결정엔 동생 ‘이다’의 역할이 컸다. 겨우 열두세 살인 이다는 너무나 성숙하다. 어린 아이가 저래도 되나, 걱정될 정도로. 동생이 언니를 설득하고 능력을 증명하고 응원하지 않았었대도 틸다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nbsp;어둡고 침침한 이야기이지만 마냥 침울하지만은 않다. 대부분 무겁고 슬프지만, 그래도 유머러스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장면들이 양념처럼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두 자매가 서로 의지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인간은 스스로를 먼저 돌봐야 한다. 석 달만에 완성한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그 재능이 놀랍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22/73/cover150/k21203919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4227301</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마흔세 번째 책 - [뜨거운 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5069</link><pubDate>Sat, 20 Jun 2026 12: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506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831525&TPaperId=173450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064/46/coveroff/k5428315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831525&TPaperId=1734506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뜨거운 피</a><br/>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빛소굴 / 2023년 02월<br/></td></tr></table><br/><br>❝그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육체의 욕망은 헐값으로도 채워진다. 도무지 채워지지 않는 마음, 사랑하고 절망하고 어떤 불로든 타오르길 갈망하는 마음이 문제다. 우리가 원했던 건 그것이었다. 타오르는 것, 우리 자신을 불사르는 것, 불이 숲을 집어삼키듯 우리의 나날을 집어삼키는 것. (151쪽)❞&nbsp;작가는 불륜이나 살인, 출생의 비밀 같은 막장 요소들에 생생한 자연 묘사, 세대 간의 대립, 인간을 세밀하게 관찰한 결과 등을 세련되게 버무려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시골 공동체 안을 배경으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전개하여 ‘본능’과 ‘욕망’이란 인간의 본질을 통찰한다. 이야기는 인물들의 사랑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자리한 ‘그 무엇’에 초점을 둔다. 도덕에 관한 도발, 사회 통념에 반하는 작가의 진취적인 사고가 눈부시다. &nbsp;서른아홉의 나이에 아우슈비츠에서 최후를 맞은 작가의 미완성 원고가 뒤늦게(2005년) 전체 발견되어 출판된 소설이라고 한다. 그렇게 이른 나이에, 그렇게 억울하게 생을 마감하지 않았다면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더 써냈을지, 생각하면 몹시 안타깝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064/46/cover150/k5428315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0644602</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마흔두 번째 책 - [커먼웰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5065</link><pubDate>Sat, 20 Jun 2026 12: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50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56358&TPaperId=173450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340/53/coveroff/895465635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56358&TPaperId=173450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커먼웰스</a><br/>앤 패칫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05월<br/></td></tr></table><br/><br>❝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나 자신 안으로 추락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거였지. 내 인생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았어. 내 인생은 이미 바뀌어 있었으니까. 나는 헤쳐나가야 할 뿐이었지. -중략-우리 모두 그랬을 거야.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스로는 그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어. 우리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 내가 결국 깨달은 건 그거였어. 그리고 우리가 영원히 살지는 못할 테니 그 사실을 붙들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 (372쪽)❞&nbsp;작가는 이런저런 동기와 이유로 얽히고설킨 두 가족을 가지고 재미있게 논다. 현재와 과거를 뒤섞은 구성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생뚱맞은 곳에 등장하는 유머는 날카로우며 그릇된 선택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 사람조차 나쁜 사람으로 그리지 않는 작가의 연민어린 시선은 몹시 따뜻하다. 인물들의 등퇴장이 명확해 그들에 대한 작가의 배려도 좋다. 인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엔 애정이 철철 넘친다. &nbsp;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실수나 아직 닥치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진을 빼느니, 반쯤 내려놓는 마음으로 현재에 순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어차피 닥칠 일은 닥치게 되어 있고 과거의 잘못된 선택은 우리의 손을 떠났으니, 그것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을까. 작품 안 ‘테리사’처럼 ‘상실’을 인생의 기본값으로 여긴다면 삶 앞에서 주춤거리지 않을 용기가 생겨나지 않을까. &nbsp;재미와 감동, 모두 만족스럽다. ≪벨칸토≫의 웅장함은 없지만 그 작품을 능가한다. 작가의 작품들이 많이 번역되지 않은 게 아쉽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340/53/cover150/895465635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3405352</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마흔한 번째 책 - [얽힘 설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2990</link><pubDate>Fri, 19 Jun 2026 01: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29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531800&TPaperId=173429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409/38/coveroff/k0725318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72531800&TPaperId=173429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얽힘 설킴</a><br/>테오도어 폰타네 지음, 박광자 옮김 / 부북스 / 2017년 07월<br/></td></tr></table><br/><br>질질 짜는 결말이나 환상적인 해피엔딩이 없는 로맨스. 130여 년 전의 소설이 이리도 담백할 수가. 다른 양념 없이 새우젓으로만 간을 한 맑은 조치 같다. &nbsp;이름 뿐인 귀족 청년이 세탁부의 딸과 사랑에 빠지지만 빚 청산에 도움이 될 부유한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세탁부의 딸도 한 공장의 책임자와 결혼한다. 연인들이 제 짝을 찾는 과정에서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거나 연적에게 복수심을 품거나 하는 일은 없다. 인물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교적 정확히 인식하고 있고 자기 그릇에 맞춤한 결정을 한다. 각자의 결정에 이르는 인물들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계급 차이를 극복하여 마침내 사랑을 이루는 통쾌함은 없지만 현실적인 결말에 안심이 된다.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마음에 회한은 남겠으나 그건 각자가 알아서 할 일.  &nbsp;당대(1888년) 독일의 사회 분위기와 역사적 사실들이 잘 반영된 글이라고 한다. 부유한 노동계급의 출현과 가난한 귀족 계급의 몰락은 사회의 갈등과 역변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아직까지 순응해야 할 대세적 질서로 보인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 ‘보토’와 ‘레네’의 짧은 사랑은 눈부시기보다 차분히 빛나는 윤슬 같다.  &nbsp;저자는 거의 환갑을 앞둔 나이에 첫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그 전에 이미 여행기와 운문 등을 출판하고 신문기자로 밥을 벌어먹었다고 하니 그 나이에 작가 데뷔를 했네, 하는 건 의미 없는 말일 터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409/38/cover150/k0725318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4093831</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마흔 번째 책 - [필연적 혼자의 시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2985</link><pubDate>Fri, 19 Jun 2026 01: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29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5919&TPaperId=173429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66/75/coveroff/k8421359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135919&TPaperId=173429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필연적 혼자의 시대</a><br/>김수영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01월<br/></td></tr></table><br/><br>공수래 공수거,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세상인 건 알지만, 혼자 남아 혼자 죽는 삶을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결국’ 혼자 잘 살아보기에 대한 책이지만 나에겐 혼자 살다가 잘 죽기에 대한 내용으로 읽혔다. 이 책의 주요 포커스가 죽음에 맞춰져 있는 건 아니지만, 대개 홀로 삶은 홀로 죽음으로 이어지기 쉽고, 사람들은 삶보다 죽음에 더 무게를 둔다. 어른들 말대로 사는 건 이러구저러구 살게 되는 것 같다. &nbsp;‘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혼자 삶’과 ‘독거’는 의미는 비슷하지만 뉘앙스는 사뭇 다르다. ‘독거’란 단어엔 외로움이 스며있다. 나 역시 일인 가구이고, 지금 당장은 별다른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지만 나중을 장담하는 게 오만이라는 걸 안다. 그러므로 관심 있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슈를 다뤘기에 흥미가 동했다.&nbsp;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바라고 기대했던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쉽게 쓰이고 인문서적답지 않은 감동도 있었지만, 폐부를 찌르는 통찰이나 쾌감 같은 건 없었다. 어떤 느낌이었느냐 하면, 일인 가구를 중심으로 현 사회를 피상적으로 관망하고 리서치한 보고서처럼 읽혔다고나 할까. 그렇게 느낀 몇 가지를 적어보자. &nbsp;그럴 수밖에 없는, 그것 외엔 별다른 도리가 없는 일인 가구의 대표성은 아마도 동성애자들에게 있지 않나 싶다. 그들의 사회적 결합이 불가능한 한국에서 그들이 가정을 꾸리는 건 아직 요원하다. 이성애자들과는 달리 그들에겐 혼자 남지 않을 어떤 방법도 없는 거다. 그들에게 혼자 삶은 선택이 아니다. 그들의 언급이 거의 없는 게 아쉽다.  &nbsp;저자의 편견도 다소 거슬렸다. 청년 일인 가구를 논할 때 그들 모두를 마치 워커홀릭처럼 다루는 데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일정 부분 사실일 수는 있지만 전부가 그렇지는 않다. 설득력을 좀 더 갖추려면 그렇지 않은 표본에 대해서도 언급했어야 하지 않을까.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마치 쓰레기 음식으로 대하는 태도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건 절대 사실이 아니다. 가정식도 충분히 쓰레기일 수 있음을 안다면 그런 생각은 분명 편견이다. &nbsp;노년의 독신들에 대한 지표가 부족해 보인다. 사회가 진심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인 가구는 경제력이 전혀 없는 독거 노인들이다. 그들에 대한 심도 있는 취재나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 이는 전주에 대한 여행기를 쓰면서 전주비빔밥을 외면한 것과 같다. &nbsp;돈, 자본의 중요성을 (마치 금단의 열매 대하듯) 도외시하고 있는 부분도 살짝 기만적으로 보인다. 솔직해 보자. 경제력은 무시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혼자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렇게 말하거나 생각한다고 속물이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 특히 노년엔 더욱 그래 보인다. 예를 들어 보자. 중증의 치매에 폐암으로 죽어가는 노인 두 명이 있다. 그들에겐 가족이나 친구가 전혀 없다. 그런데 한 명은 완벽한 의료진에 환상적인 생활환경과 서비스, 고급 요양 보호 인력을 갖춘 시설에 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쓰러져가는 지하 셋방에 거주한다. 하루 양식을 벌기 위해 흐릿한 정신, 아픈 몸을 이끌고 폐지와 공병을 주우러 다닌다. 차이가 보이는가? &nbsp;기타 등등…&nbsp;전반적으로 저자는 그림자만 바라볼 뿐, ‘진짜 그늘’은 외면한다. 시선이 좁고 얕다. 주요 타겟으로 삼는 독자들(주로 20~30대의 싱글들)의 연령대를 의식한, 다소 ‘답정너’ 같은 결과물 같은 느낌이 컸다. 다소 편파적이고 ‘혼자 삶’이라는 이슈를 구석구석 훑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66/75/cover150/k8421359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667534</link></image></item><item><author>영꽃</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26년 서른아홉 번째 책 - [불만의 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2982</link><pubDate>Fri, 19 Jun 2026 01: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791159/1734298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13523&TPaperId=173429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549/40/coveroff/893741352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13523&TPaperId=1734298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불만의 집</a><br/>사샤 나스피니 지음, 최정윤 옮김 / 민음사 / 2021년 02월<br/></td></tr></table><br/><br>작품이나 작가에겐 큰 문제가 없다.작품만으로 치면 웅장한 오페라 같은 느낌이고 각기 드라마 한 편씩은 충분히 뽑을 것 같은 인물들의 스토리는 퍼즐처럼 어우러져 거대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인물들 각자의 굴곡진 삶이 무지막지한 자연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는 결말은 운명의 비애랄까, 비장미가 넘친다. 그런 점에서 ‘마가렛 케네디’의 ≪휴가지에서 생긴 일≫을 연상하게 된다. &nbsp;이 책의 진짜 문제는 번역이다. 정말 심각하다. 외국 저작물의 경우엔 번역이 감상에 큰 영향력을 끼친다.  제 아무리 좋은 작품, 명색이 고전이라도 번역이 거지같다면 읽기 괴롭다. 가장 좋은 예가 민음사 판 ≪파리 대왕≫일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학과장이란 인간이 교재로 사게 한 전공 서적 생각이 난다. 표지엔 그의 이름이 역자로 버젓이 인쇄되어 있지만 결과물은 여러 사람이(아마도 제자들) 동원된 태가 역력했다. 사실 그렇더라도(그런 경우가 전문 서적 출판 분야엔 흔한 일이라고 쳐도) 한 번 걸러줄 편집자가 있으니, 절차 상으로는 크게 문제가 될 건 없다. 크레딧이니 저작권이니, 그건 그들의 일이고, 독자에게 피해만 가지 않으면 된다. 하물며 소설이 이런 꼴이니. 거기다가 거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도 민음사에서 나왔다.독서를 방해하고 제대로 된 감상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번역이 엉망진창이면 독자들은 무슨 죄란 말인지. 이런 불량품에 거금을 지불한 독자들은 호구인가. &nbsp;하나만 예를 들어볼까. ‘넨초니’와 ‘넨치오니’는 같은 사람이다. ‘지난네스키’와 ‘잔네스키’도 같은 사람이다. 또 예를 들어볼까. 쌍둥이 남매가 등장하는데, 오빠-여동생이랬다가 누나-남동생이랬다가 오락가락한다. 더 있는데 팔 아프다. 오자와 비문이라고 없을까.&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549/40/cover150/893741352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549405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