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BL] 최애 빙의가 너무해! 1 [BL] 최애 빙의가 너무해 1
seawolf / BLYNUE 블리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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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바로크 시대도, 로코코 시대도 아니고 지구 역사에 존재했던 나라도 아니다. 한동안 내가 미쳤나 진지하게 고민도 해 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여긴 세계사에 기록된 적 없는 진짜 낯선 세상이었다.

덕분에 곤란을 겪진 않았지만 대신 나 역시 몸 주인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없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원작의 일리야가 뭘 원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일리야의 몸에 있는 이상 우리는 운명공동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건 일리야의 무병장수와 나의 귀가뿐.

이 원수 같은 사망 플래그는 내 손목 따위는 한 손으로도 부러트릴 수 있다는 듯 휘어잡은 채, 맹렬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눈만 움직여 나를 노려보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와 붙잡힌 손목을 번갈아 보았다. 말씀 못 해. 나도 몰라.

애초에 여긴 현대사회가 아니다. 좀 더 야만적이고, 좀 더 비인도적이며, 좀 더 무도한 사람들이 사는 세계다

내가 충격받을 게 아직도 더 남았나? 목울대가 꿀렁이며 저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스산한 느낌이 뒤통수를 스쳤다.

일리야의 모든 행동은 철저한 계산의 산물이다. 카이사를 대하는 황녀의 태도에는 일말의 욕망도 실려 있지 않단 사실을, 누구보다도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조명이 대부분 꺼진 어두운 방 안에서, 일리야는 달빛만으로도 몸이 훤히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무방비하게 웃으며 저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일리야의 몸을 타고 흘렀다. 매끄럽게 뻗은 팔, 진주 가루를 뿌린 듯 반짝이는 어깨. 하얀 가슴팍 위를 대조적으로 흐르는 검은 비단실 같은 머리칼.

달뜨는 것도 흔들리는 것도 늘 자신만의 일이다. 그걸 알면서도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참한지 당신은 모른다.
……애초에 관심도 없지.

카이사는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차라리 제가 아무 짓도 못 하게 칭칭 묶어 줬으면. 머리를 쳐서 아무런 기대도, 망상도 못 하게 막아 줬다면 좋았을 텐데……

당신이 지금 내 심장 위에 손을 얹어 보았다면, 내가 고장 나서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 텐데. 당신은 늘 내게 관심이 없어.

「그대의 검이 내 심장을 꺼트릴 수 있는지 궁금하긴 하군.」
완결까지도 일리야의 시점은 드러나지 않지만, 나는 이 대사야말로 일리야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운명공동체의 무병장수를 계획하는 나의 희망찬 포부는 시작하기도 전에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설마 ‘부서’가 ‘남편’의 이음동의어인가? 이런 빌어먹을! 염병천병! 페르디난트 이 새끼가 갑자기 기사단을 빌려주겠다고 한 목적이 그거였나?

사실 명분은 1할이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이런 무서운 놈과의 인연은 이어 갈 수 없다는 생존본능이 9할이었지만.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다가온 끝은 너무 갑작스러웠고, 그는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아마도 이것은 심장에 박힌 가시다. 사라지는 순간 카이사 페르디난트를 처참하게 무너트릴 가장 애틋하고 고통스러운 가시.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기대가 번갈아 찾아왔다. 카이사는 지금 절벽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일리야가 밀어버리면 죽는…….

저렇게 욕망의 항아리 같은 놈이 소설에서는 어떻게 순정 가득한 남자처럼 여주를 지켜 주는 건지 완독을 했음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사망 플래그인 놈에 대한 경계를 풀 수는 없지만, 도의적인 책임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

체온을 나눠 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내 상황이 좀 특수하긴 하지만, 포옹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래도 별일 아니라는 말로 스스로를 혹사시키지는 말고. 정말로 별일이 아니면 아프지도 않거든."

마음이 약해져 있고 몸도 안 좋을 때 누군가 도와주면 사람이 잠시 감성적으로 변할 수도 있지. 사람은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설령 그게 저 무시무시한 성질머리를 자랑하는 페르디난트 공작이라고 해도!

가장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 시절 몇 번이나 그를 구해 준 존재라서, 맹목적인 무의식이 이토록 생생한 환각을 만들어냈다면…… 오랜만에 찾아온 악몽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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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바로크 시대도, 로코코 시대도 아니고 지구 역사에 존재했던 나라도 아니다. 한동안 내가 미쳤나 진지하게 고민도 해 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여긴 세계사에 기록된 적 없는 진짜 낯선 세상이었다.

덕분에 곤란을 겪진 않았지만 대신 나 역시 몸 주인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없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원작의 일리야가 뭘 원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일리야의 몸에 있는 이상 우리는 운명공동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건 일리야의 무병장수와 나의 귀가뿐.

이 원수 같은 사망 플래그는 내 손목 따위는 한 손으로도 부러트릴 수 있다는 듯 휘어잡은 채, 맹렬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눈만 움직여 나를 노려보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와 붙잡힌 손목을 번갈아 보았다. 말씀 못 해. 나도 몰라.

애초에 여긴 현대사회가 아니다. 좀 더 야만적이고, 좀 더 비인도적이며, 좀 더 무도한 사람들이 사는 세계다

내가 충격받을 게 아직도 더 남았나? 목울대가 꿀렁이며 저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스산한 느낌이 뒤통수를 스쳤다.

일리야의 모든 행동은 철저한 계산의 산물이다. 카이사를 대하는 황녀의 태도에는 일말의 욕망도 실려 있지 않단 사실을, 누구보다도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조명이 대부분 꺼진 어두운 방 안에서, 일리야는 달빛만으로도 몸이 훤히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무방비하게 웃으며 저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일리야의 몸을 타고 흘렀다. 매끄럽게 뻗은 팔, 진주 가루를 뿌린 듯 반짝이는 어깨. 하얀 가슴팍 위를 대조적으로 흐르는 검은 비단실 같은 머리칼.

달뜨는 것도 흔들리는 것도 늘 자신만의 일이다. 그걸 알면서도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참한지 당신은 모른다.
……애초에 관심도 없지.

카이사는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차라리 제가 아무 짓도 못 하게 칭칭 묶어 줬으면. 머리를 쳐서 아무런 기대도, 망상도 못 하게 막아 줬다면 좋았을 텐데……

당신이 지금 내 심장 위에 손을 얹어 보았다면, 내가 고장 나서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 텐데. 당신은 늘 내게 관심이 없어.

「그대의 검이 내 심장을 꺼트릴 수 있는지 궁금하긴 하군.」
완결까지도 일리야의 시점은 드러나지 않지만, 나는 이 대사야말로 일리야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운명공동체의 무병장수를 계획하는 나의 희망찬 포부는 시작하기도 전에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설마 ‘부서’가 ‘남편’의 이음동의어인가? 이런 빌어먹을! 염병천병! 페르디난트 이 새끼가 갑자기 기사단을 빌려주겠다고 한 목적이 그거였나?

사실 명분은 1할이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이런 무서운 놈과의 인연은 이어 갈 수 없다는 생존본능이 9할이었지만.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다가온 끝은 너무 갑작스러웠고, 그는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아마도 이것은 심장에 박힌 가시다. 사라지는 순간 카이사 페르디난트를 처참하게 무너트릴 가장 애틋하고 고통스러운 가시.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기대가 번갈아 찾아왔다. 카이사는 지금 절벽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일리야가 밀어버리면 죽는…….

저렇게 욕망의 항아리 같은 놈이 소설에서는 어떻게 순정 가득한 남자처럼 여주를 지켜 주는 건지 완독을 했음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사망 플래그인 놈에 대한 경계를 풀 수는 없지만, 도의적인 책임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

체온을 나눠 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내 상황이 좀 특수하긴 하지만, 포옹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래도 별일 아니라는 말로 스스로를 혹사시키지는 말고. 정말로 별일이 아니면 아프지도 않거든."

마음이 약해져 있고 몸도 안 좋을 때 누군가 도와주면 사람이 잠시 감성적으로 변할 수도 있지. 사람은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설령 그게 저 무시무시한 성질머리를 자랑하는 페르디난트 공작이라고 해도!

가장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 시절 몇 번이나 그를 구해 준 존재라서, 맹목적인 무의식이 이토록 생생한 환각을 만들어냈다면…… 오랜만에 찾아온 악몽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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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곤란을 겪진 않았지만 대신 나 역시 몸 주인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없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원작의 일리야가 뭘 원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일리야의 몸에 있는 이상 우리는 운명공동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건 일리야의 무병장수와 나의 귀가뿐.

이 원수 같은 사망 플래그는 내 손목 따위는 한 손으로도 부러트릴 수 있다는 듯 휘어잡은 채, 맹렬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눈만 움직여 나를 노려보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와 붙잡힌 손목을 번갈아 보았다. 말씀 못 해. 나도 몰라.

애초에 여긴 현대사회가 아니다. 좀 더 야만적이고, 좀 더 비인도적이며, 좀 더 무도한 사람들이 사는 세계다

내가 충격받을 게 아직도 더 남았나? 목울대가 꿀렁이며 저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스산한 느낌이 뒤통수를 스쳤다.

일리야의 모든 행동은 철저한 계산의 산물이다. 카이사를 대하는 황녀의 태도에는 일말의 욕망도 실려 있지 않단 사실을, 누구보다도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조명이 대부분 꺼진 어두운 방 안에서, 일리야는 달빛만으로도 몸이 훤히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무방비하게 웃으며 저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일리야의 몸을 타고 흘렀다. 매끄럽게 뻗은 팔, 진주 가루를 뿌린 듯 반짝이는 어깨. 하얀 가슴팍 위를 대조적으로 흐르는 검은 비단실 같은 머리칼.

달뜨는 것도 흔들리는 것도 늘 자신만의 일이다. 그걸 알면서도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비참한지 당신은 모른다.
……애초에 관심도 없지.

카이사는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차라리 제가 아무 짓도 못 하게 칭칭 묶어 줬으면. 머리를 쳐서 아무런 기대도, 망상도 못 하게 막아 줬다면 좋았을 텐데……

당신이 지금 내 심장 위에 손을 얹어 보았다면, 내가 고장 나서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 텐데. 당신은 늘 내게 관심이 없어.

「그대의 검이 내 심장을 꺼트릴 수 있는지 궁금하긴 하군.」
완결까지도 일리야의 시점은 드러나지 않지만, 나는 이 대사야말로 일리야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운명공동체의 무병장수를 계획하는 나의 희망찬 포부는 시작하기도 전에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설마 ‘부서’가 ‘남편’의 이음동의어인가? 이런 빌어먹을! 염병천병! 페르디난트 이 새끼가 갑자기 기사단을 빌려주겠다고 한 목적이 그거였나?

사실 명분은 1할이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이런 무서운 놈과의 인연은 이어 갈 수 없다는 생존본능이 9할이었지만.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다가온 끝은 너무 갑작스러웠고, 그는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아마도 이것은 심장에 박힌 가시다. 사라지는 순간 카이사 페르디난트를 처참하게 무너트릴 가장 애틋하고 고통스러운 가시.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기대가 번갈아 찾아왔다. 카이사는 지금 절벽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일리야가 밀어버리면 죽는…….

저렇게 욕망의 항아리 같은 놈이 소설에서는 어떻게 순정 가득한 남자처럼 여주를 지켜 주는 건지 완독을 했음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 사망 플래그인 놈에 대한 경계를 풀 수는 없지만, 도의적인 책임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

체온을 나눠 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내 상황이 좀 특수하긴 하지만, 포옹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래도 별일 아니라는 말로 스스로를 혹사시키지는 말고. 정말로 별일이 아니면 아프지도 않거든."

마음이 약해져 있고 몸도 안 좋을 때 누군가 도와주면 사람이 잠시 감성적으로 변할 수도 있지. 사람은 누구나 그럴 때가 있다. 설령 그게 저 무시무시한 성질머리를 자랑하는 페르디난트 공작이라고 해도!

가장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그 시절 몇 번이나 그를 구해 준 존재라서, 맹목적인 무의식이 이토록 생생한 환각을 만들어냈다면…… 오랜만에 찾아온 악몽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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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우리는 스스로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되뇌었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지난 몇 년간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면서 얼마나자주 이 단어를 입에 올렸는지 이제는 그것이 의미를 잃고 말았다.
현실이 우리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유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드디어 꽃이 만발한 초원에 이르렀다. 꽃이 만발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았지만, 거기에서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처음으로 불꽃 튀는 것 같은 기쁨을 느낀 것은 꼬리에 여러 가지 색깔의 깃털을 단 수탉을 보았을 때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우리는 아직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정신적 억압에서 갑자기 풀려났을 때 도덕적 결함을 보이는 현상만 너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성격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두 가지 기본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을 때 겪게 되는 비통함과 환멸이다.

지금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언젠가는 그때를 돌아보며 자기가 그 모든 시련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날이 올 것이다. 마침내 해방의 날이 찾아와 모든 일들이 아름다운 꿈처럼 여겨진 것과 같이 수용소에서 겪었던 모든 시련들이 언젠가는 하나의 악몽으로 생각될 날이 올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의미와 가치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나 반사작용 그리고 승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내 경우를 얘기하자면 나는 단지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을 위해 세상을 살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단지 내 반사 작용을 위해 죽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 살 수 있는 존재이며, 심지어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실존적 좌절 역시 정신 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 정신 의학에서는 그동안 심인성 노이로제psychogenic neurosis라고 했지만, 로고테라피에서는 이것을 누제닉* 노이로제noogenic neurosis라고 부른다. 누제닉 노이로제는 병의 원인을 심리적인 것에 두지 않고 인간 실존의 정신론적 차원에 둔다. 이것이 인간 고유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또 다른 로고테라피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로고테라피에서는 인간을 그저 충동과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쾌락을 얻거나 서로 갈등하고 있는 이드와 자아, 초자아를 절충시키거나 혹은 사회와 환경에 그저 순응하고 적응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주된 관심사가 어떤 의미를 성취하는 데 있다고 보고, 그런 점에서 로고테라피는 정신 분석과 구별된다.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마음에 평온을 가져오기보다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면의 긴장은 정신 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깨닫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
라는 니체의 말에는 이런 예지가 담겨 있다. 이 말에서 정신 치료에도 유용한 어떤 좌우명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돼야 할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well-being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인간 실존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일과 사명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삶 역시 반복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에게 부과된 임무는 거기에 부가돼 찾아오는 특정한 기회만큼이나 유일한 것이다.

삶에서 마주치는 각각의 상황이 한 인간에게는 도전이며, 그것이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한다. 때문에 실제로는 삶의 의미를묻는 질문이 바뀔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 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인간성을 가장 깊은 곳까지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사랑으로써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과 개성을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실현돼야것이 무엇인지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사랑의 힘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어떻게 돼야 하는지를 깨닫게 함으로써 잠재 능력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아무리 절망스런 상황에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유일한 인간의 잠재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을 볼수 있기 때문이다. 잠재력은 한 개인의 비극을 승리로 만들고,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꾸어 놓는다. 상황을 더 이상 바꿀 수 없을 때 -수술이 불가능한 암 같은 불치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보자 - 우리는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사람은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나 혹은 자기 인생을 즐길 수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시련의 불가피성이다. 이런 시련의도전을 용감하게 받아들이면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를 갖게 되며, 그 의미는 글자 그대로 죽을 때까지 보존된다. 다시 말해 삶의 의미는 절대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시련의 잠재적인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모든 시련,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이런 상황이의미 있는 것일까? 왜냐하면 만약 그렇지 않다면 궁극적으로 여기서살아남아야 할 의미가 없기 때문에. 탈출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우연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는 삶이라면 그것은 전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이기 때문에."

"랍비님. 바로 그 때문에 선생이 아이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고생각할 수는 없습니까? 시련을 겪으면서 선생의 영혼은 깨끗하게 됐습니다. 비록 선생의 아이들만큼 깨끗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늘나라에서 아이들과 같은 곳에 있게 될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요? ‘너희가 흘린 눈물을 내가 다 알고 있노라‘ 라고 <시편〉에도 쓰여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선생이 겪은 시련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닐 겁니다."
실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그는 내가 열어 준 새로운 시각을 통해 고통으로부터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의 삶에서 의미를 빼앗아 가는 것은 고통만이 아니다. 죽음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인생에서 정말로 무상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잠재가능성이라는 말을 입이 닳도록 해 왔다. 가능성은 그것이 실현되는순간 바로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과거로 옮겨 간다. 이렇게 과거로 들어감으로써 일회성을 탈피해 영원한 실체로 보존될 수 있다.

인간은 대개 그루터기밖에 남지 않은 일회성이라는 밭만 보고,
그 행동과 기쁨, 심지어는 고통까지도 구원해 준 과거라는 곡창은 그냥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서는 모든 것이 이미 이루어져 있으며, 그 어느 것도 사라질 수 없다. 과거에 ‘그랬다‘라는 것처럼 확실한존재 방식도 없을 것이다.

‘가능성 대신에 나는 내 과거 속에 어떤 실체를 갖고 있어. 내가했던 일, 내가 했던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용감하게 견뎌 냈던 시련이라는 실체까지도 말이야. 이 고통들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지. 비록 남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자기 연민이든 멸시든 간에 환자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치료의 핵심은환자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데 있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고, 인간의 자유 또한 제한되어 있는 것은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조건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조건에 대해 자기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말하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은 조건 지워지고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그것에 맞서 싸우든지 양단간에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항상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간에게는 그런 조건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가능하다면 세계를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 비록 사회적으로쓸모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사람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있는 법이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나는 정신과 의사가 되는 것이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정신과 의사가 됐단 말인가? 다시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된 뇌라는기계를 고치기 위해서? 만약 환자가 그 이상의 존재가 아니라면 안락사도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롱은 자기 목을 부러뜨리도록 선택받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제 경계심을 갖자. 두 가지 측면에서의 경계심을.
아우슈비츠 이후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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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세컨드 윈드 (총2권/완결)
Joy / 비욘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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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작가님의 소설 <세컨드 윈드>를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일상속 사내연애물이고 큰 사건이나 격정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등장인물들이 현실속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이 생생했어요. 다만 읽을수록 연우의 가족에 대한 분노가 쌓여서 사이다를 기대했는데 권선징악류의 사이다는 없어서 좀 애석했어요. 어떻게 될지 좀 흐지부지한 느낌..영민과 연우 사이의 감정적 기류가 서서히 고조되는 묘사가 좋았고, 연우가 점차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같이 행복해지는 기분이에요. 힐링이 되는 좋은 소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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