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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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9 더는 사랑하지도 심지어는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와 계속 사는 건 그가 불쌍해서일까? 아니면 남편과 한통속이 되어 사이먼을 타지로 보내버린 것을 속죄하는 마음에서일까?

 

샐리 페이지의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주인공 재니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이다. 특이한 점은, 이야기의 독보적 주인공인 재니스의 직업이 남의 집 가사일을 하는 청소노동자라는 점이다. 물론 작중에서 굉장히 유능해 고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묘사되기는 하지만 소설에서 주인공의 직업으로 흔하게 볼 수 있는 설정은 아니었기에 첫 페이지부터 흥미롭게 느껴졌다. 재니스는 청소일을 하기 위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고객들의 집을 드나들며 그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독자도 점점 그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게 된다.

 

흡입력 있는 문체로 쓰여진 글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데뷔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글이었다. 특별히 어렵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박진감 있는 진행이 페이지를 놓지 못하고 결말까지 단숨에 읽게 만든다. 베키의 다음 이야기는? 제니스의 무능한 남편은 어떻게 됐을까? 그래그래그래 부인과 아니지금은안돼 씨의 진짜 속내는 뭘까? 재니스가 B부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다음 내용을 궁금해하듯이 독자도 재니스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 바쁘게 책을 읽어내리게 된다.

 

p.178 그녀와 비교하면 재니스는 울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렇다고 계속 자신에게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있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특히 B부인이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느껴진다. 주인공인 재니스나 작중에서 호감적으로 그려지는 유언보다도 더 특이하고 더 흥미를 끈다. 전래동화도 아닌 현대소설에서 고령의 여성 캐릭터가 이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사실 이야기를 들려주는역할이 주로 할머니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껏 이런 롤의 캐릭터가 없었던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주인공 외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역할이 전직 스파이인 할머니 캐릭터라니, 샐리 페이지의 기막힌 센스에 경의를 표한다.

 

결국 재니스를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는 것도,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주고 계속 나아가게 해 주는 것도 모두 이야기이다. 누구나 살아 있는 것만으로 이야기가 생긴다. 그 이야기들이 모이고 모여 삶이 되고 삶과 삶이 만나 인연이 된다. 쉽게 후루룩 읽히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 소설이다. 재니스가 동생과 아들, B부인과 유언처럼 자신을 생각해주는 이들과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이야기를지키는여자 #샐리페이지 #다산북스 #다산책방 #서평 #서평단 #공삼_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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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민트 맛 소녀시대 - 20세기 소녀의 레트로 만화영화 에세이
백설희 지음 / 참새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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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7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은 전부 어딘가로 가는 것일까. 우리가 사랑했던 동네는, 내가 아끼던 그 완구는 전부 어디로 갔는지.

 

정식 학술 용어는 아니지만 종종 쓰이는 말 중에 투니버스 세대라는 말이 있다. 출생년도로 가르는 밀레니얼이나 젠지, 시대배경으로 나누는 에코나 N포세대처럼 투니버스, 즉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 세대에 해당하는 80~90년대생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만화영화의 황금기였다. 아침의 공중파부터 야심한 시각의 만화 채널까지, 온갖 애니메이션이 쏟아져 나왔다. 나의 민트 맛 소녀시대에는 그 세대의 낭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달의 요정 세일러 문, 카드캡터 체리, 꾸러기 수비대》 … 동시대를 살아온 작가가 풀어놓는 추억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은 순식간에 빠져든다. 책을 펴는 동시에 독자는 퇴근 후 책상 앞에 앉은 어른에서 순식간에 TV 앞에 엎드린 어린아이가 된다. 아무리 놀라운 반전이나 흥미로운 복선도 이길 수 없는 공감이라는 가치가 나의 민트 맛 소녀시대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단순히 만화 이야기를 하는 에세이에 그치지 않고, 방과 후 싸구려 간식을 물고 반질반질한 캐릭터 책가방을 끌어안고서 TV 속 마법소녀들을 하염없이 동경했던 어느 여름날의 시간 속으로 독자의 손을 잡고 뛰어드는 책이다.

 

p.101 앞서 말한 <슬램덩크>에서 다루는 농구나 여타 다른 만화영화들로 접한 축구, 야구 등은 남자아이들의 전유물이 되었는데, <피구왕 통키>의 피구는 여자아이들의 것, 그것도 우리가 스스로 쟁취한 스포츠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지는스포츠가 된 걸까?

 

동시에 작가는 애니메이션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성별 고정관념을 꼬집는다. 사회에는 마법소녀와 순정만화는 여자아이의 것이고 로봇과 스포츠는 남자아이의 것이라는 편견이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작가는 남자아이의 로망? 아니, 모든 어린이의 로망!이라는 챕터를 통해 여성도 얼마든지 스포츠나 공룡, 로봇같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소재들을 좋아하고 꿈꿀 수 있음을 말한다. 이런 점이 이 에세이를 더 트렌디하게 만든다.

 

페이지를 넘기며 추억에 울고 웃고, 맞아 나도 이 만화 좋아했는데! 하고 무릎을 치거나 깔깔거렸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추억은 모두 잊어버리고 재미없게 나이먹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되살려주는 책이다. 읽는 내내 동물원의 노래 혜화동이 생각났다.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나를 마음껏 꿈꾸게 했던 어린 날의 사랑하는 캐릭터들을 다시 떠오르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의민트맛소녀시대 #백설희 #도서출판들녘 #참새책방 #만화영화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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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3
소재원 지음 / 프롤로그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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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4 여러 크고 작은 단상들이 시위하는 곳곳에 만들어졌다. 그곳에서 누군가는 여성 문제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기타를 들고 공연을 하며, 누군가는 현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을 했다. 마치 축제를 즐기는 듯한 현장이었다.

 

영화 소원, 공기살인등으로 유명한 소재원 작가의 신작 20241203에는 그날의 기록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 영문도 모르고 그들을 막아서야 했던 군경, 목숨을 걸고 담을 넘어야 했던 정치인… …. 시선을 끄는 샛노란 표지에 선명하게 쓰인 제목이 독자들을 다시금 그날의 기억 속으로 끌어들인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갖고 국회 앞에 나섰다. 처음에는 각자 다른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단순히 나열하는 구조라고 생각했으나 챕터가 거듭될수록 인물들이 서로 얽혀 있는 관계가 꽤 흥미로웠고, 동시에 그런 점이 굉장히 현실적이라고 느껴졌다. 얼핏 보면 한 명의 개인으로 보이는 사람 모두가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자녀였다. 또는 배우자나 연인이었고, 광장에서는 동지였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나 역시 그날의 기억을 되새겨보았다. 샤워를 마치고 막 나왔는데 휴대폰에 연락이 잔뜩 쌓여있었다. 온갖 황당함과 당황스러움, , 놀라움으로 점철된 알림들을 슥슥 밀어 없앨 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또 어느 연예인이 사고를 쳤나 보다 싶어하며 SNS를 열었을 때는 이미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고 있었다. 벌써 네 달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마치 어제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날 그 모습을 지켜본 모든 국민들이 그럴 것이다.

 

p.183 각자 철학이 다르고 삶이 다르고 사상이 다른 우리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정의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됐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남편과 아내, 군인과 경찰 다음으로 등장한 인물이 레즈비언 커플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읽어나가는 동안 이렇게 진보적인 글을 쓰는 작가라면 젊은 여성에게도 한 챕터 정도는 할애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퀴어라고 못박은 캐릭터가 등장할 줄은 몰랐어서 선영과 현정의 이야기를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수많은 여성들과 퀴어들이 광장에 있었음에도 언론, 정치판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지고있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사실적인 소설에 여성 퀴어들도 그날 그곳에 존재했음을 똑똑히 남겨 주신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그 외에도 군인 아들이 걱정되었던 아버지, 그런 군인들에게 선배라고 달래던 어느 남성, 총구를 잡고 막아선 여성 등 많은 실화들이 글 속에 녹아있었다.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소설은 완벽한 사실을 기반으로 쓴 완벽한 픽션입니다.’ 우리는 이 소설이 픽션이라는 것을 안다. 그날 계엄을 선포한 사람은 윤성렬이 아니고, 야당 대표는 이재연이 아니니까. 동시에 이 소설이 완벽한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국민들이 그날 똑똑히 모든 것을 목격했으니까.

 

사실 정의를 말하는 글이 언제나 그렇듯 조금은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몇 번이나 눈가를 붉혔다. 123일 국회 앞에서, 남태령에서, 한강진에서 동지들이 민주주의를 지켰다. 우리에게는 정의가 승리한, ‘다시 만난 세계가 있다. 전봉준투쟁단의 어느 분이 동성로 자유발언대에 올라와 하신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노래 다시 만난 세계가 유행하는데, 당신은 그날 남태령에서 처음 만난 세계를 경험하셨다고. 투쟁과 연대는 누군가에게는 다시 만난 세계를, 누군가에게는 처음 만난 세계를 선물했다. 이 연대가 끝없이 이어지기를 소망하며, 작가님의 행보를 응원한다.

 

누군가는 역사를 기록해야 할 때 언제나 나서서 그 누군가를 맡아 주는 작가 소재원이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0241203 #소재원 #프롤로그 #공삼_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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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 : 숲속에는 축복이 림LIM 젊은 작가 소설집 5
남궁지혜 외 지음, 전승민 해설 / 열림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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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3 나는 망설임 없이 발길을 돌렸다. 목 안쪽이 바싹 마른 듯 건조했다. 갈증을 달 음료수 한 병.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단지 그것뿐이었다.

 

젊은 작가들의 소설은 언제나 특별한 '설렘'을 준다. 오랫동안 문학이란 고학력 지식인 남성만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의 젊은 작가들이 문단에 불러일으킨 센세이션이 어느덧 현대문학을 말할 때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로 굳어지면서 '젊은 작가' 라는 말 자체가 소위 말하는 '엠지하고 트렌디한' 문학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숲속에는 축복이에는 그런 젊은 작가들의 세밀하고 다정한, 동시에 모던하고 강렬한 글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비혼주의자 선양과 친구 기선, 숲 난임 센터, 인간의 땀을 빨아먹고 살며 기생하는 생물 오도르... 어떤 일은 어딘가에선가 일어날 것처럼 생생하고 현실적이고, 어떤 일들은 아주 다른 세상의 것처럼 낯설기도 하다. 올드하고 커다란 생애, 특히 사회의 보편적인 인물을 조명하는 류의 소설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때로는 다소 의도적으로 배척한다고 느껴지기까지 하는) 비혼과 퀴어, 젠더 등 다양한 트렌드 소재를 폭넓게 접할 수 있다는 게 이런 단편 소설집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p.54 그의 이상형은 그런 사람일 거야. 내 이상형은 나보다 불행한 사람이고.

 

단편들 중에서 특히 불가마 메이트가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 글의 첫인상은 굉장히 어리둥절했다. 글의 구조나 문체도 상당히 특이했고 몰입하기 힘들다고 느껴졌다. 심지어는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까지도 내가 이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당황스러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해설을 읽고 나서 다시 글을 꼼꼼히 곱씹어보니 오도르체취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응과 히읗은 어떤 인물인지 조금씩 머릿속에서 결이 잡혀왔다.

 

개인적으로는 쉽게 읽히는 글을 좋아한다. 어렵고 난해해야만 잘 쓴 글이라는 인식에 반해, 누구나 후루룩 삼키듯 읽을 수 있는 글도 충분히 좋은 글이라는 신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읽을 때마다 해석이 달라지고 자꾸만 깜짝 놀라게 만드는 글이라면, 내 호불호와 별개로 그런 글이야말로 정말로 젊은글이 아닐까? 불가마 메이트는 정말로 젊은 글이었다. 너무 특이해서 황당하게 느껴지면서도 그 페이지를 자꾸만 떠돌게 되는 센세이션함. 매력적이고 강렬하다. 동시에 황당하고 특이하다. 차기작에서는 또 어떤 글로 세상을 놀라게 할지, 돌기민 작가의 행보가 기대된다.

 

특이한 소재 속에서 일상을 녹여내고, 또 일상 속에 특이한 사건을 녹여내는 것. 몇 페이지 안 되는 단편으로 사람을 순식간에 사로잡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 이렇게 독자를 잡아끄는 힘이 젊은 작가들에게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림숲속에는축복이 #열림원 #공삼_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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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원고 2025
이준아 외 지음 / 사계절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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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50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제대로 서 있으려 했지만, 자꾸만 등과 어깨가 부딪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소설집 두 번째 원고가 매력적인 점은 막 등단한 신인 작가들의 글을 모은 앤솔로지라는 점이다. 취업했다면 계속 일거리가 보장되는 직장인과 달리 작가는 일종의 프리랜서라서, 등단했다고 해서 일거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 다음 글은 반응이 더 좋을 수도 있고,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번째 원고라는 프로젝트 자체에 정이 갔다. ‘두 번째 원고를 실어 줄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작가들에게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흥미롭게 읽었던 작가들의 낯익은 이름에 우선 마음이 반가웠고, 톡톡 튀는 듯이 컬러감이 좋고 요즘은 보기 드물어진 반지르르한 통짜 유광 코팅에 책을 펴기 전부터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준아의 구르는 것이 문제, 김슬기의 에버그로잉더블 그레이트 아파트, 권희진의 머리 기르는 사람들의 모임, 임희강의 러브버그물풍선폭탄사태, 김영은의 하루의 쿠낙. 총 다섯 편의 소설이 실린 앤솔로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펼쳤다.

 

p.78 비단 러브버그뿐만 아니라 이미 우리 주변에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일련의 흐름들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원한과 그에 따른 극적인 감정 표출,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활용한 테러, 그걸 받아내는 자들의 트라우마를 하나의 특수한 사건이나 상황으로 정의하기엔 확실히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작가들이 삶에서 찾아낸 키워드로 구성되어서일까, 앤솔로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다루고 있었다. 삶의 어느 단편,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때로는 거대한 판타지나 서사시보다 이런 글들이 더 마음을 울린다. 만두집을 운영하는 창수도 머리를 기르는 찬영도 동네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두 번째 원고에서 가장 마음이 간 단편은 임희강의 러브버그물풍선폭탄사태였다. 임희강 작가의 등단작이었던 시계를 넘어를 좋게 보았기 때문에 이번 작품도 기대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전개는 흥미롭고 깔끔하면서 주제부는 강렬하고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원한과 테러, 트라우마를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일련의 흐름이라고 표현한 점이 특히 그랬다. 매일같이 뉴스에서 너무나도 황당하고 허망한 이유로 누군가를 해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는 작금을, 이보다 더 깔끔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작가들이 정성껏 써내려간 작품을 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세 번째, 네 번째 원고도 세상의 빛을 보길 기대하며 좋은 프로젝트를 진행해 준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두번째원고2025 #사계절출판사 #앤솔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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