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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가디언 / 2024년 11월
평점 :
‘독서는 신성한 행위’라는 오래된 금기를 깨고
비(非)독서를 포함하는 새로운 독서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나는 내가 평문을 써야 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너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오스카 와일드>
첫 번째 두려움은 독서의 의무라고 이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독서가 신성시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두번 째 두려움은 정독해야 할 의무로 불릴 수 있는데,
읽지 않는 것도 눈총 받지만, 후딱 읽어치우거나 대충
읽어버리는 것, 특히 그렇게 읽었다고 말하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눈총의 대상이 된다. 세 번째 두려움은 책들에
관한 담론과 관계된다. 우리의 문화는 우리가 어떤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임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다.
책을 읽지 않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방식은 어떤 책도 전혀 펼쳐보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완전히 외면할 수 있는가 하겠지만
사실 이는 우리가 책과 맺는 주된 관계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독자라 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책의 극히 일부를 읽을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양을 쌓았다는 것은 이런 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
즉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독서자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과 비슷해 보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책 앞에서 두 사람이
취하는 태도를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그들의 행태와 동기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 분명히 알게 된다.
첫 번째 경우는 아예 책에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으로,
여기서 "책"이란 그 내용과 상황 모두를 의미한다.
두 번째 경우는 무질서의 사서처럼, 책의 본질, 즉 그 책이
다른 책들과의 관계 속에 처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책 읽기를 스스로 자제하는 사람이다.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대충 훑어본다고 해서 책에 대한
평을 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책의
깊은 본성과 교양을 살찌우는 책의 힘을 존중하면서,
그리고 세부 사실에 빠져 길을 잃게 될 위험을 피하면서
책을 제 것으로 소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
지나친 독서는 아나톨 프랑스에게서 독창성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발레리가 보기에는 바로 그것이 작가가
독서 때문에 다른 저자들에게 종속되면서 처하게 되는
주된 위험이다.
어떤 책에 담긴 내용에 대해, 그 책을 읽지 않고도 아주
명확한 관념을 형성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들이 그 책에 대해 쓴 것을 읽거나
아니면 그 책에 대해 하는 말을 듣는 것이다.
'화면 책'이라는 특성은 독자가 그 책에 대해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 즉 그 책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말들에
중요한 지위를 부여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책에 대해
나누는 담론은 사실 그 책에 대한 기존의 담론과 관계가 있다.
독서는 단순히 어떤 텍스트를 인식하는 것, 혹은 어떤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은 아니다. 읽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어쩔 수
없는 망각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또한 독서다.
나는 독자와 모든 새로운 글 사이에 개입하여 알게 모르게
독서를 가공하는 이 신화적이고 집단적인 비개인적 표상들
전체를 '내면의 책'으로 부르고자 한다.
어떤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가장 흔히 있는 경우이며,
부끄러움 없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짜
중요한 것, 즉 책이 아니라 어떤 복합적인 담론 상황
(책은 이 담론 상황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결과이다)에
관심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책이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라 유동적인 오브제임을
인정한다는 것은 사실 우리의 안전성을 뒤흔드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책이라는
거울을 통해 바로 우리 자신의 불확실성, 즉 우리의 광기와
대면케 하기 때문이다.
'타자'가 알 거라는 생각이 주는 두려움은 책들에 대한
진정한 모든 창작을 가로막는 족쇄와 같다. 타자가
읽었으리라는 생각, 그가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창작을, 비독자가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부득이
의존하는 수단으로 환원시켜버린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서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gadian_books
@chae_seong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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