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구더기 - 16세기 한 방앗간 주인의 우주관 현대의 지성 111
카를로 진즈부르그 지음, 김정하.유제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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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양문화사 강의를 들으면서 추천받았던 이 책을 최근 동네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는데, 앞부분의 한국어판 서문에 나와있는 저자와의 대담내용부터... 어지러운 각주와 어려운 학술용어 때문에 그만 덮을 뻔했다.

 

그나마 옮긴이가 서문에서 탐정소설과도 같은 이야기 진행의 박진감과 구성의 조밀함”, “실마리 찾기”,“진실을 밝혀내는 열쇠운운.. 꼬시는 말을 늘어놓는 바람에 혹시나하는 기대(<장미의 이름>수준?)로 끝까지 읽게 되었다. 그래서, 결론은? 역시나엄연한 역사(미시사)연구서다! 그래도 일반적인 학술연구서와 달리 구성과 문체가 소설형식이어서 흥미를 유발하긴 한다.(재미는? 글쎄...)

 

이 책의 저자인 카를로 진즈부르그는 미시사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태생의 역사학자인데, 어머니가 소설가였다는 이유도 있어서인지 일반적인 학술연구논문과 판이하게 상당히 문학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다. 아마도 미시사연구라는 것이 상상과 추리의 힘을 빌려 여백을 채워야 할 경우가 많은 것과도 관련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에 대해 대략적인 소개를 하자면, 16세기 이탈리아 상층부(지배계층)의 문화와 종속(민중 또는 피지배)계층의 문화가 교류하는 경계, 그 틈새의 인물,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의 우주관을 파헤지는 내용으로 종교재판의 기록을 토대로 하고 있다.

 

저자는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코너에 몰린 교회의 이단 심문관과 인쇄술의 보급으로 글을 읽고, 쓸수 있으며 간단한 암산능력을 갖춘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의 심문과정을 통해 당시 민중계급의 우주관을 추론해 간다. 여기서 쟁점이 되는 것이 전형성또는 대표성의 문제 일터인데 과연 그럭저럭 먹고 사는 방앗간 주인(게다가 교구의 행정관이다.)이 민중의 대표자격이 되는가? 메노키오의 우주관이 민중의 전형적 사고인가? 의 문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사건이 매우 특이하고 개별적인 사례이기는 하나 당시 민중의 사고에 이성과 상상력이 틈입하고, 생활양식에서도 근대의 맹아가 잠복해 있었을 것이라는 큰 흐름은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는 선에서 정리한다. (최소한 메노키오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단테의 <신곡>을 읽었거나 들었으며, 지상천국을 상징하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설로 치면 주인공이랄 수 있는 메노키오는 그리스도에 대해 이단적이고 불경한 발언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종교재판정에 끌려와 심문을 받게 되는데 이단 심문관에게 하는 답변은 나름대로 조리있고, 태도도 매우 당당하다.

 

(메노키오) “제가 생각하고 믿는 바에 따르면, ·공기·물 그리고 불, 이 모든 것은 혼돈 그 자체입니다.이 모든 것이 함께 하나의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이는 마치 우유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 구더기가 생겨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구더기들은 천사입니다.”(185)

 

(이단 심문관) “만약 천사들을 창조해낸 그 물질이 없었더라면, 또 혼돈이 없었더라면 하느님은 혼자서 세상의 모든 구조들을 창조하실 수 있었을까?”

 

(메노키오) “저는 재료 없이 어떤 것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하느님이라 할지라도 재료가 없었더라면 그 어떤 것도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이상 185-189쪽 발췌)

 

정말 대책없는 강심장이다. 그의 답변을 보면 그가 사상적으로 일관된 체계가 있거나 논리적이지는 못하지만 스콜라 철학에 기반한 책을 읽었던지, 어디서 주워 들었을 공산이 크다. (“바늘 끝에 천사가 몇이나 앉을 수 있을까?”참고로 천사9품계론에 의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사 'angel'은 최하위인 9등급. 다시말해 9급공무원 되시겠다.) 이 문제적 인물, '메노키오'는 어쩌면 공명심에 들뜬 현란한 말솜씨를 가진 허풍쟁이이거나 고지식한 확신범(양심범), 또는 둘 다 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한 인물이다. 결국 그는 처음 이단혐의로 고발되었을 때는 운좋게 2년만 살다 나왔는데, 나불대는 입을 단속하지 못하고, 15년후에 다시 종교재판에 넘겨져 결국 화형에 처해진다.

 

공교롭게도 이무렵 지동설을 믿었던 수도원 수사 출신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1548~1600)

선고를 받는 나보다 선고를 내리는 당신들의 두려움이 더 클 것이오라는 말을 남기고 불에 타 죽었다.(이 당시 종교개혁의 여파로 마녀재판이 강화되고, 부랑자나 집시들과 같은 소외 집단들에 대한 통제가 엄격하게 실시되었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에서도 성리학적 질서에 반기를 들어 역적혐의로 죽은 허균(1569~1618)이 있다. 죽기전 그의 마지막 말은? “할 말 있소!” 그러나 그는 '할 말'을 전혀 하지 못하고 찢겨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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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04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즈부르그, 진즈부르그. 저자명 표기를 뭐 써야할지 모르겠어요... ㅎㅎㅎ
 
가랑비 속의 외침 - 2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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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봉파의 대표적인 작가인 위화의 첫 장편소설이라 한다. <형제>라는 소설은 아직 읽어 보지 못했지만 위화의 소설은 대체로 중국 문화대혁명시기(1966~1976)를 배경으로 한가족의 삶의 과정과 투쟁을 다루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주로 과거에 대해서 화자의 기억에 의한 서술과 묘사를 통해 인간(주인공)이 거치는 생존기간을 시기별로 구분하여 소설 창작을 하고 있다.

<가랑비 속의 외침(·소년)>, <허삼관매혈기(·장년)>, <인생(노년)>. 그러고보니 우연찮게도 내가 읽은 순서는 위와 반대다.

 

중국에서는 현대문학이라는 말 대신 당대문학이라는 말을 쓴다는 정도로 중국 문학사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어 선봉파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마저 자료도 많지 않다. “중국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의 시대를 맞이하자, 1980년대 서구의 모더니즘 및 포스트 모더니즘적 문학사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문학 작품들이 등장했는데, 이를 지칭한다.”고 하며  절대적 화자에 대한 회의가 있어 화자가 직접 등장, 실패된 사건을 진술한다거나 허구 속에 진리 있다는 신념하에 허구와 현실의 경계선이 붕괴되고, 현실적인 메시지 없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홍고량 가족>의 모옌과 프랑스로 망명한 <버스정류장>가오싱젠도 선봉파로 분류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모옌은 그럴 것 같긴하지만 가오싱젠은?? )

 

책 앞날개에서 웃고있는 위화. 그의 사진을 보면, 판다곰 같이 검은 눈자위가 인상적이고, 매우 소탈해 보인다. 시골 촌부같은 인상의 그가 이렇게 재미있고, 슬프면서 통찰력 돋보이는 소설을 쓰는 중국 대표작가라는 사실. 아무튼 중국 '당대문학'에 대해 관심을 더 가져볼 일이다.

 

이 소설은 마오쩌둥이 1950년대 말 대약진운동 실패후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추진하게된 문화 대혁명 발발시점인  1965년 중국 베이징 근교 '남문'이라는 농촌(물론, 가상공간)을 배경으로 아버지 쑨광차이와 아들 3형제 쑨광핑, 쑨광린, 쑨광밍. 이들 4부자의 생활과 할아버지를 비롯한 윗대 조상들의 이야기, 주변인물과의 관계, 친구와의 우정 등을 화자인 쑨광린의 파편화된 기억을 따라 서술하고 있다. 이런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 다 읽고 나면 조각조각의 기억들이 합쳐져 나중에는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완성된다.

 

주인공 쑨광린은 이 쑨씨의 삼형제 가운데 둘째 아들인데  존재감 없는 국외자로서의 관찰과 체험을 바탕으로 유,소년기의 사건,사고들을 조용하고,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다. 일단 그의 아버지  쑨광차이는  집 건너편 뚱땡이 과부와 정을 통하는 개망나니로 매우 폭력적인 인물, 어머니는 우리 조선시대 여인처럼 묵묵히 참고 견디는 인종의 미학을 실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전체 4장으로 구성된 소설에서 1장과 2장은 장성한 주인공 쑨광린이 유년기(6살까지)의 고향 남문에서의 삶을 추억하고, 3장에서는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등 윗대 조상의 삶(일제강점기, 국공내전 시기), 마지막 4장에서는 양자로 끌려간 도회지에서의 학교생활과 양부가 죽고, 양모가 떠나자 소년(11,12살 무렵)이 되어 다시 고향 '남문'으로 돌아오는 과정으로 끝마쳐 진다.

 

이 소설은 중국인 특유의 과장과 해학, 그리고 엽기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지지리 궁상인 웃픈 현실을 능청스럽게 드러내는데 그 기억력과 묘사가 놀라울 따름이다.(어린화자의 눈과 입을 통해 묘사,서술되는 어른들의 폭력성과 아이의 순수함,추악한 이기심과 본능적 충동, 그리고 인간적 자존심의 대결 등은 극적효과를 증폭시킨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대부분의 공간은 마치 주성치 영화 <쿵푸허슬>의 배경이 되는 해방촌의 분위기(강호의 무림고수가 숨어사는 해방촌에서 폭력조직 도끼파와 싸움이 벌어지는 농촌 버전)인데 그에 걸맞게 식칼과 도끼가 난무한다. 실제로 형 쑨광핑은 자기 아내이자 며느리를 건드리는 개잡놈 아버지 쑨광차이에게 도끼질을 하여 왼쪽 귀를 자른다. 유혈이 낭자한 피비린내, 분뇨냄새, 밤꽃향기가 섞인 원초적 분위기가 연출된다. 즉 일상적인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본능, 폭력 등 억압된 욕망의 분출과 가까운 가족, 친구, 지인의 죽음이 주된 기억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한편 젊은날, 위화의 첫 장편이어서 인지 공포와 고독에 대해 작가의 감수성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문장이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양모인 새어머니 리슈잉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그 여자는 습기에 놀라울 정도로 민감해 손으로 공기중의 습도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매일 새벽 마른 걸레를 들고 그녀의 방에 들어가 창유리를 닦고 있으면, 그녀는 푸른색꽃이 새겨진 모기장 밖으로 손을 내밀어 뭔가를 만지듯 공기를 만지며 방금 시작된 그날 하루의 습도를 알아보곤 했다. 처음에는 어찌나 놀랐는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몸은 다 모기장뒤에 숨어 있고 창백한 손 하나만 달랑 나와 손가락 다섯 개가 천천히 움직이는데, 그 모습이 꼭 잘려나간 손이 공중을 떠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너 축축함이 어떻게 생기는지 아니?”

그녀가 말했다.

바람이 불어서 그런 거란다

 

난 지금도 그 시절에 보냈던 오후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햇빛이 맞은편 산등성이에 가로막힐 때면 리슈잉은 창문 앞에 서서 마치 버림받은 사람처럼 우울한 표정으로 산 저편 하늘의 붉은 빛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듯 내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햇빛은 이곳에 오고 싶어 하는데 산이 중간에서 가로채 갔어.”(292~294쪽 발췌)

 

민중들이 겪어왔던, 어려웠던 한시대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을 서로 엮어 정교하게 그리고 있는 위화의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사람이 이세상에 나서 죽기까지, 먹고 산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고달프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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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개념어 사전
채석용 지음 / 소울메이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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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퇴직을 앞둔 선배는 초조한 듯 말했다. “나가서 뭐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안한 눈동자로  겁난다.”고 말한다. 어이가 없다..물론 돈이 없어서 아이들 대학등록금 때문에 재취업이나 장사를 해야 할 상황이라면 모르겠다. 부동산 재테크를 잘해서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면서 개포동에도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뭐 그리 두렵나? 나같이 상계동에서 전세사는 사람은 어쩌라고? “그냥 하고 싶은거 하면서 노세요. 여행도 하고,..취미가 있을거 아녜요?” 없단다. "하다 못해 동주민센터에서 종이접기라도 하세요!" 이 선배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군대, 회사 등 조직생활 속에서만 양육되었던 것이다. 악착같이 돈만 벌면서... 주체성없는 삶. 자기정체성을 모르고 여태까지 살아온 것이다. 참으로 불쌍하고, 한심하다. (물론, 그는 집없는 나를 두고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그래서,사람이 살면서 중요한 것이 결국 철학이구나! 하는 생각


선배에게 이 철학 개론서를 추천해 주고 싶다. 그는 물론 고맙다고 하면서 책의 정가를 먼저 보겠지만, 읽지는 않을 것이다. 은마 아파트 재건축 부담금이 얼마나 되고, 재건축후에는 값이 얼마나 더 오를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일일테니...(어쩌면 이것이 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철학적 입장은 당연히 미국의 '실용주의'[이 책 212-216쪽] 에 가깝다.)

 

이 책의 지은이 채석용은 학부에서는 독일어를 전공했는데 외국 유학을 가지않고,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순수토종학자다. 대전대에서 선생노릇하면서 학생들과 대화하고,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같이 배운다는 자세도 바람직하다.

이 책은 원앤원북스라는 출판사에서 펴냈는데 소울메이트라는 인문·사회 브랜드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책이 독자를 위한 것임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독자의 꿈을 사랑하고,

그꿈이 실현될 수 있는 도구를 세상에 내놓다.” 훌륭한 출판 철학이다.

 

게다가 미신과 신비주의에 항거하다 무참히 살해된 19세기청년 슈발리에 드 라바르의 곁엔 불테르가 지은 철학사전이 놓여 있었다.” 본문을 읽기도 전에 왠지 믿음이 간다. ‘지은이의 말에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 대해 겁박?하는 말이 있다. “이 책은 설령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줄지언정 어떠한 개념어에 대해서도 결코 애매모호한 말로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지는 말자는 신념에 따라 지어졌다. 간단명료! 이것이 이 책의 이념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무언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독자들 책임이다.” 패기가 하늘을 찌른다.

필자의 주관적 시각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명료하게 제시된 객관적 정보를 토대로 독자여러분들께서는 필자와의 한판의 지적대결을 벌여보시기 바란다.”

 

이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의 솔직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사실 철학개념에 대해서는 네이버에 많이 나와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이런 객관적 정보가 아니라 저자의 주관적 판단의 명료함이 서양철학 뿐만아니라 동양철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과 함께 드러난다는데 있다. 철학에 대한 아래와 같은 예화는 책의 재미를 더한다.

 

지금 어느 남학생이 카페에서 한 여학생과 소개팅을 하고 있다 치자. 자연스럽게 코를 올리고 눈의 앞뒤를 튼 성형미인 여학생이다. 플라톤을 비롯한 모사론자들은 그녀의 성형한 얼굴을 가소롭게 볼 것이다. 참된 아름다움은 그렇게 모방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헛돈 쓴 여학생을 노려본 후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이다.

헤겔을 비롯한 절대적 관념론자들은 그 여학생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하는 절대정신의 현현이라 칭송할 것이다. 자연은 불완전하다. 인간의 노동이야말로 불완전한 자연을 아름답게 가꾸는 참된 행동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아름다운 당신의 성형얼굴에 찬사를 보냅니다.”

성리학자들은 그녀의 얼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녀가 착한 일을 많이 했는지, 어느부모의 자식인지, 차마시는 태도는 어떤지, 눈빛은 어떤지에만 관심을 쏟을 것이다. 집요한 호구 조사와 스펙 조사로 소개팅 자리가 갑자기 면접 자리로 탈바꿈할지도 모른다.

만물일체설을 주장하는 도가사상가들은 그녀가 누가 되었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신봉선이나 김태희나 만물은 똑같다. 우주 안의 미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주관적 감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다 끌어안는다.

회의주의자들은 도대체 아름다움이란 것을 누가 확신할 수 있느냐고 따지면서 아름다움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당신이 예뻐 보이기는 하지만 진짜 예쁜 건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뇌까리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 여러분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철학적 입장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기왕 철학을 가진 인간이라면 자신이 가진 철학의 정체 정도는 아는게 좋지 않을까?”

 

저자의 각 개념어에 대한 설명과 평가뒤에는 관련 개념어가 나와 있어 찾아서 같이 읽으면 훨씬 효율적인 독서와 이해를 할수 있다. 예를 들어 비트겐슈타인과 관련되는 '가족유사성'이라는 개념어는' 언어적 전회','논리적 원자론','논리실증주의','미메시스'가 관련 된다.

이런 책은 한번 쓰~윽 읽고 마는 책이 아니다. 그려면 남는 것도 없다. 부제(철학적 사고를 일깨우는 100개의 개념들!)에 씌여 있듯 철학 개념에 대해 의문이 들때 마다 곁에 두고 조금씩 읽어 나의 둔한 철학적 사고를 일깨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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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5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5 0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8-02-25 08:47   좋아요 0 | URL
예, 맞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사육당하며 사는줄도 모르다 나가게되니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거지요. 이런사람은 죽음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못하더군요.^^
 
국화꽃 향기
김하인 지음 / 더스타일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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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와 한 남자의 지극한 모성애와 지고지순한 사랑얘기다. 김정현의 [아버지],조창인의 [가시고기]와 같은 감동소설이다. 사실, 이런류의 소설은 왠지 눈물을 강요하는 듯 해서 선뜻 내켜하지는 않지만 삶에 지칠 때는 가볍게 읽어볼 만 하다. 소위 '문학한다'는 사람들은 순수문학이 아닌 이런 (멜로)장르 소설을 B급이라 하여 다소 낮춰보는 경향이 있으나 우리 문단의 행태가 낙제점인 F급인 주제도 모르나 싶어 한심스럽기도 하다.

 

장진영, 박해일 주연의 동명영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특성상 설정과 내용이 다소 변하긴 했지만 기본 줄거리는 비슷하다. 영화속 얘기처럼 장진영도 역시 위암4기 투병중이던 2009년 결혼하자 마자 삶을 마감했다. ‘데칼코마니(Decalcomanie)’는 원래 일정한 무늬를 종이에 찍어 다른 표면에 옮겨붙이는 장식기법을 말하는데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름이기도 하다. 이 말이 요즘은 소설이나 영화에서의 죽음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는 현상을 이르는 말로 자주 사용되는 듯하다. 최근 작고한 정미경작가도 마찬가지인 경우이다.역량과 재능있는 이들의 갑작스런 죽음은 너무 안타깝다. 덧붙이자면 장진영이 출연한 영화를 모두 본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그녀의 최고 작품은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과 똑같은 김승우와의 애닯은 연애를 다룬 2006년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도입부, 6.10항쟁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 198787일 시네마 드림솔저. 서울권 대학 영화동아리 CDS회원들이 단편영화를 찍을 수 있는 촬영장비를 갖추고 청량리역에서 강릉으로 가는 무궁화호 기차에 몸을 실었다. 승우와 미주와의 해변에서의 첫키스.

같은 써클의 선배이자 3살 많은 연상의 여자, 미주.

승우는  대학 신입생시절 전철에서 국화꽃 향기가 나는 그녀의 머리냄새에 뿅간 것이다.


군대갔다와서 한창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이승기가 2004년에 [내 여자라니까]로 빅히트를 쳤는데 누난 내 여자니까라고 부를 때 누나들의 가슴이 설레었을 테지만 ~라고 부를께.”연상녀,연하남의 사랑과 결혼. 과연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나이나 국경도 필요 없다지만, 나이와 서열에 민감한 유교질서속의 우리사회에서 쉬운 것은 아니지 않을까? 여자가 아니라서 모르겠다. 또 이런게 페미니즘과 관련있는지도... 그래서인지 승우는 첫키스의 추억과 사랑을 가슴속에 묻어둔 채 졸업후 라디오 FM음악방송 PD로 취업해 일하고, 미주는 시나리오 작가로서 전전긍긍하고 있던중, 어느날 호텔 커피숍에서 미주를 우연히 본 후 승우는 대뜸 반말로 대한다.

 

우리 같은 사회인끼리 서열 따지지 맙시다 이거.“

승우가 약간의 무례를 무릅쓴 것은 말이 가진 장벽부터 뛰어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언어속에는 사회 통념, 이를테면 관습이 내재되어 있어 사람들간의 간격과 상하를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미주를 사회에서 다시 만났을 때 선배라는 호칭을 자기도 모르게 붙이거나, 그녀는 말을 낮추고 자신은 말을 높인다면 다시 상하관계가 팽팽한 대학 시절로 되돌아갈까 봐 염려했던 것이다. 미주를 사랑하는 여자로 만나기 위해서, 자신이 미주에게 남자로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98) 결국 결혼후 라고 부른다. 다른사람들과 같이 있을때는 미주씨, 승우씨라고 호칭하지만.

 

자고로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

학교 다닐때는 선머슴에다가 왈패 저리 가라, 페미니스트에 여권신장의 기수 아니었어?"

"선배님들 아녀자가 지아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 이렇게 변하나이다 그리 타박 마소서!”(220)

하긴, 무슨 타박을 하겠는가? 사랑하는 사람끼리 합의하에 자기들 사이(또는 가정내에서) 너라고 하든, 자기야 하든, 아빠라고 하든 무슨 상관이랴.

 

강원도 고성에서 아트홀과 펜션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소설가 김하인은 시를 썼던 경력을 살려 감성적인 문체와 드라마적 구성을 통해 멜로의 극대화를 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소설의 후반, 미주가 임신사실과 동시에 위암 3기임을 알고 출산을 위해 치료를 포기한후 강원도 바닷가 폐교에 내려온다. 그들의 생활과 심리에 대한 묘사에서 작가의 감각적 문체는 더욱 빛난다.

 

황금빛으로 불타는 은행나무는 셀수없이 많은 잎을 달고 우람하게 서 있었다. 어쩌면 저렇게도 곱게 햇빛에서 노란 빛깔만을 뽑아 잎에 물들일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271)

고요와 적막감이 푸르게 푸르게 학교 담장을 경계로 거대해지는 느낌이었다. 운동장은 거인의 앞치마처럼 풍성하게 펼쳐져 바람을 담고 어둠을 꺼내 방목하고 있었다.(276)

잠이오면 자.”

그래. 여기에서의 잠은 아마도 바다 쪽에서 걸어올 것 같아.

자박자박, 찰랑찰랑 물 밟는 소리를 내면서.”(289)

승우의 혀가 미주의 가지런한 치아를 훑고 혀끝을 감았다. 승우는 자신의 몸 속에 담긴 풍부한 시간을 넣으려는 듯 뜨거움을 미주의 입속에 흘려 넣었다. 간절하게.

내 시간을 가져 가, 내 시간을 가져 가, 하고(326)

 

또, 죽음을 앞둔 자의 심경을 절묘하게 잘 표현한 문장. 

미주는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싫어졌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연속극, 개그 같은 화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하잘 것 없는, 문제가 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서로 헐뜯고 싸우고 웃고 떠드는 것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싫었다. 살 시간을 넉넉하게 가진자들의 횡포 같았다.

상황이 변해서일 것이다. 미주도 건강을 잃기 전에는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며 같이 킬킬대며 웃었으니까. 시시콜콜한 것을 가지고 떠들어대는. 인생이, 살아 있는 시간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인생을 가볍고 경박하게 만들기 위해 갖은 용을 써대는 것 같은.(282)

 

그래, 이게 인생이다. 인생등급이 B은 커녕 C급도 못되지만, 아직은 건강히 살아있는 나는 이쯤에서 독후감을 끝내고 텔레비전을 켜서 평창올림픽 중계를 볼 것이다. 아마도 손뼉을 치며 웃거나, 한숨을 쉬며 아쉬워 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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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서양 미술사 - 고대 그리스에서 인상파까지 세계의 명화를 읽다
기무라 다이지 지음, 박현정 옮김 / 휴먼아트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 [처음읽는 서양미술사]고대 그리스에서 인상파까지 세계의 명화를 읽다라는 부제가 의미하듯이 저자 기무라 다이지는 명화 감상란 감성에 의한 보는 방식이 아니라 작품제작 당시의 정치,역사,철학 등 사회적 배경을 알고 이성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 시대의 정수(essence)를 파악하라!’라는 저자의 말마따나 서양문화(문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그리스·로마신화나 기독교,그리고 서양고대철학<특히 플라톤, 화이트헤드가 말했던가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없다. 일반인을 위한 서양미술사 입문서운운은 출판사의 책 팔아먹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 당연히 그리스·로마신화, 기독교, 플라톤이 언급되고,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긴 하나 서양미술사 입문서에 대부분 나오는 플라톤 이데아론이나 미메시스 또는 회화, 조각, 건축이 어떻게 예술(fine art)로 편입되게 되었는지, 과학적 원리로서의 원근법, 소실점 등 어려운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일반상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술술 읽을 수 있는 명화에 대한 저자의 주관적 에세이 수준이다. 읽으면서 지식과 교양을 쌓거나 점검해 볼 수 있는 장점도 있는 교양서적으로 보면 되겠다.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을 시작해서 기원전 30년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멸망하기까지 약 300년간을 헬레니즘 시대라고 부른다(25)거나, 12세기 고딕양식은 프랑스 왕의 권위를 상징하고 왕권을 강화하면서 후에 이탈리아, 독일 통일 등 유럽을 국경선 있는 국가로 재편하는데 영향을 주었다(43)는 식으로 주로 시대적 배경이나 역사에 초점을 맞춘 그림읽기를 보여준다.

 

르네상스, 초상화, 네덜란드 회화, 풍경화의 탄생과 변천, 모던아트의 시작으로서의 인상파에 이르기 까지 이른바 오늘날 명화로 불리는 그림을 실어놓고 이에 대한 저자의 설명과 주장이 덧붙여진다. 기본적으로 서양회화의 흐름은 근엄하고 권위적인 종교화, 역사화에서 초상화를 거쳐 산업혁명이후 풍경화, 풍속화로 변천해 온다. 그 시대의 주류가 누구이고, 시대정신이 무엇이냐에 따라, 주제와 화법, 화풍이 달라진 것이다. 이 책에는 수많은 작품과 화가가 언급되어 일일이 적을 수는 없지만 모던아트의 시작 인상파화가에 대한 소개는 자세하고도 꽤나 인상적이다.

 

튜브물감이 개발되면서 바로 야외에서 채색이 가능해 졌던 19세기 프랑스. 외젠부댕(1824-1898)은 바다풍경화라는 장르를 확립했는데 클로드 모네(1840-1926)가 열일곱살이었을 때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화가의 길을 권했다. 더불어 인상파로 가는 길목에 천사를 본적이 없어서 그릴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사실주의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1819-1877)<박람회에 출품이 거절당하자 최초로 개인전을 연 반아카데미즘의 기수>와 오늘날 올랭피아’, ‘피리부는 소년으로 잘알려진 에두아르 마네(1823-1883)는 빠질수 없는 화가들이다. 인상파는 1874년 파리에서 모네,드가,르누아르 등이 주축이 되어 미술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살롱이라는 고루한 심사제도에 대항해서 개최한 그룹전이 발단이 되어 탄생했다. 모네의 출품작 <인상, 해돋이>에 대한 한 평론가의 야유에서 유래된 이름 인상파’. 이 화가들은 색채와 빛을 주역으로 내세웠다.(265)

 

저자는 인상파의 사려깊은 친구 바지유’,인생의 기쁨을 그린 르누아르’,온후한 무정부주의자이며 여덟번 개최된 인상파 전시회에 한번도 빠짐없이 출품한 유일한 화가인피사로’,파리의 빛과 그림자를 그린 <압생트><에투알>드가’,인상파의 홍일점 모리조’, 인상파를 미국에 소개한 커샛등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1860년대부터 1880년대에 걸쳐 진행된 인상파 운동은 고전미술과 현대미술 사이에서 분기점을 이루며 세잔, 고흐 그리고 고갱으로 이어지는 후기 인상파를 탄생하게 하였고, 이후 피카소의 입체주의에 이르러 현대미술의 활로가 개척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물론 서양미술사에서 인상파가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읽다보면 저자가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듯 하면서도 이들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된다. 이는 저자 본인이 일본인이어서 1867년 제2회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소개된 우키요에가 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 유럽에 자포니즘이 크게 유행하였다는 사실과도 크게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하긴 지금 평창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동메달이라도 따면 들썩들썩하듯이 민족적, 국민적 자부심이란 것은 어쩔수 없는가 보다.

 

사실, 저자가 주장하는 '읽기로서의 명화 감상'에 공감하는 바 크긴 하지만 여전히 나같이 게으르고, 촌티나는 초보에게는 그림이란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 느끼는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다시말해 명화에 대해 역사적, 정치적,사회적,사상적 배경을 공부하고, 분석하면서 감상한다는 것이 주는 지적 쾌감의 매력 보다는 보는 순간, 느끼는 정서적 울림이 더 본질적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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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2-19 0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상주의 미술이 워낙 유명해서 인상주의자들과 쿠르베와의 관계가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쿠르베는 인상주의 미술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영향을 받은 인상주의자들이 있었어요.

sprenown 2018-02-19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오르낭의 매장‘이나‘화가의 아틀리에‘등 쿠르베의 그림이 보수적 가치와 체제에 반대하는 혁신성을 띠었기 때문인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