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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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지명도에 끌려 읽어본 이책.전체적인 나의 느낌은... 지루했다. 섹스와 성적환상이 더이상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코드가 아니어서 였을까. 섹스와 성적환상을 다룬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내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가령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항공모함을 상상하며 자위행위를 하던 장면 같은...그저 '이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군'정도 였지, 거기에 공범으로서 느끼는 무슨 동질감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하긴 30줄에 들어선 내가 십대 후반의 사고를 십분 이해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5년만 젊었어도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도 있지 않았겠나 싶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주제어는 '죽음'이다. 작품을 통틀어 많은 죽음이 연출된다. 키즈미의 자살, 나오코의 죽음등등...섹스로 대변되는 사랑과 인생은 마침내 죽음을 통하여 조금 더 상위단계로 옮아간다. 여기에서 당시 일본시대상의 암울함을 잠시 엿볼수도 있겠다. 사뭇 진지하게 혹은 편리하게 작가는 주인공들을 통해서 죽음이란 한 현상을 통찰한다. 작가의 남다른 사고방식을 추측할 수 있는 단면일것이다.

하지만 중년의 목소리로 고등학생시절의 성적체험을 회고하는 작품구도는 그 나이의 체험에 비해 지나치게 진지하고 엄숙하게 처리되어 나로 하여금 큰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학생운동시절을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그건 문자 그대로 배경일 뿐 그 시절 일본의 학생운동 참여자들이 가져야했던 혼란이나 고뇌의 흔적은 이 작품에서 전무하다시피 하다. 큰 주제를 너무나도 편리하게 처리한 흔적들도 있고...전체적으로 다소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언제 시간을 내어 다시 한번 읽어볼 심산이다. 그땐 내가 정신적으로 조금은 젊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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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9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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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전에 39세의 나이로 자신의 큰 이상을 모두 펼치지 못하고 떠나간 한사람.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체 게바라. 그는 혁명가였지만 ‘혁명가’라는 단어의 강하고 거친 뉘앙스와는 어울리지않게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휴머니스트이자 의사, 그리고 잔잔한 수도의 길을 걷는 순례자로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표지는 체 게바라의 열정을 의미하듯 새빨갛다. 이 책속에서 체 게바라는 사후 5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강렬한 삶을 지속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현실을 외면하지는 말자, 그러나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꿈 하나씩은 가슴에 담고 있자’라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우리 모두에게 '혁명가가 되라'고 말한다. 여기서 혁명은 굳이 정치적 혁명이 아니어도 좋으리라. 우리 자신 내부로 부터의 혁명을 먼저 이루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전문기자 출신이라는 저자 장 코르미에는 이 책의 탈고까지 8년이란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무려 700페이지에 가까운 많은 분량이 마치 소설처럼 지루하지 않게 술술 읽혀간다는 점에서 저자의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번역도 매끄럽고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의외로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20대 후반의 반(?)젊은 독자들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영웅부재의 시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고 자위하지만 누구하나 딱 꼬집어 우리네 살아가는 의미를 자신있게 말 할수 없는 시대. 존경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는 시대. 뭐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무엇하나 암울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런 시대의 우리들에게 이 책은 하나의 작은 빛일 수도 있겠다. 나는 사후에 이렇게까지 강렬히 생존하고 있는 다른 인물은 알지 못한다. 그건 아마도 그가 생전에 간직했던 꿈에 대한 크나큰 열정과 인간에 대한 애정 때문이리라. 그 열정과 애정의 한 꼭지나마 얻을 수 있다면 이 책을 통독한 보람은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살아있는 사람을 만난것 같아 많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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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
이인화 지음 / 세계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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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접한 대학신입생시절, 마지막장을 덮은 후 끓어오르는 감동을 억누를길이 없어 애꿎은 친구 불러내 소주와 조선당쟁사 이야기로 하룻밤을 보냈던 기억이 내게 있다. 그때는 정조가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으며, 그 '위대한 군주'를 독살했을지도 모르는 '흉악한 놈'들에게 직접 의분의 철퇴를 가할 수 없는 상황이 대단히도 안타까웠었다. 정조대왕과 같은 '난사람'이 한번 더 출현해야 우리민족과 국가의 역사가 흥성기를 맞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제 몇년의 시간이 지나 사고의 폭도 조금은 넓어지고 여러 다른 의견들도 접해 본후 다시 읽어본 이책. 소설적 재미는 여전했다. 궁중내 의문사로 시작되어 만 하루동안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의 배후가 조금씩 밝혀지면서 느끼는 재미는 여타의 추리소설들이 주는 그것과는 색다른 무엇이 있다. 거기에 방대한 자료조사와 역사지식이 뒷받침되었음직한 여러 야담적 에피소드들은 작가의 소설가로서의 능력을 남다르게 생각되어지게 하기도 한다.(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플롯을 도입한것은 차치하고.)

하지만 나는 작가의 역사인식관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정조대왕'으로부터 실패한 독재자를 보며, 그를 우직하게 따르는 주인공과 몇몇 작품속 인물들로부터 '악마적 초인사상'에의 광신을 느낀다. 작품의 주된 대립구조는 정조와 노론으로 대표되는 당파싸움이다. 작품에서 작가는 당쟁은 절대악이며, 우민을 바른길로 이끌 '초인'의 방해물(반드시 제거되야할)로 그리고 있다. 물론 여기서 초인은 정조대왕일 것이다. 당쟁은 물론 많은 폐해를 조선에 끼쳤다. 그러나 당쟁이라는 현상이 가지는 장점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동시대의 지구상 어느나라가 폭력적 방법이 아닌 논쟁으로 국가의 대사를 결정지었을까? 장점을 무시하고 단점만을 취해 그것의 피해자를 무조건 높혀보는 것은 저울의 한쪽이 기운다고 다른 한쪽을 너무 덜어내어 오히려 반대의 불균형을 이루는 형국이 아닌가싶다.

소설은 그저 개연성을 띈 허구일 뿐이라는 반박도 있을 수 있겠다. 그리고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지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견들은 소설을 문학적 테제로만 이해할때 가능한 것들이다. 이책을 읽으며 나는 다분히 정치적,계몽적(?)테제의 냄새를 각장마다 맡을 수 있었다. 작가가 박정희를 국가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도자로 인정하며 그의 치적(?)을 존중하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하다. 이는 작가가 3부작으로 진행중인 '인간의 길'시리즈에서도 확인될 수 있겠다. 그런데 왜 아무 상관도 없어보이는 '영원한 제국'을 읽으며 내 머리속에 '정조=초인=박정희'라는 등식이 떠오르는 지 씁쓸한 입맛이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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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식물
이외수 지음 / 동문선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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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다. 낯선 곳에 홀로 떨구어져 언젠가 누군가가 내가 진정 속했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다시 데려가주기만을 기다리는 심정. 이것이 내가 '꿈꾸는 식물'을 읽어가며 주욱 가진 느낌이었다. 시종일관 건조하게 일상을 나열하는 작품의 문체가 이런 느낌을 가중시켰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롭고 건조한 일상속에서 문득 문득 발견되는 위트와 아름다움이 나로 하여금 이 작품을 이외수 최고의 작품으로 느껴지게 한다.

이외수씨의 초기 장편중 하나인 이 책은 삼각구도를 가진다. 식물적순수로 대변되는 '작은형'과 동물적야만으로 대변되는 '아버지'와 '큰형' 사이의 대립을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내'가 관찰한다. 이 세 방향의 인물설정이 작품의 주요 환경인 '장미촌'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대자연의 먹이사슬을 연출한다. 먹이사슬의 법칙에 충실한 대립의 종말...바로 그후 항상 주변인적 존재였던 '내'가 꿈을 꾸기 시작한다. 이때 '나'는 주인공으로서 '나'도 될수 있지만 책을 읽고있는 독자로서의 '나'도 될수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라이터'를 켜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이 무의식적 감정의 전위. 이야말로 이외수만의 번득이는 능력이라고 할수 있겠다.

식물은 약하다.그리고 순수하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다. 동물성 공격에는 애처롭기까지하게 무방비상태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때문에 꿈을 꿀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여림의 미학이라 말해도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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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현암사 동양고전
오강남 옮기고 해설 / 현암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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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 작품을 초독에 전부 이해하겠다는 생각을 했던것 자체가 너무 큰 욕심이었는지 모른다. 속된 소인의 삻을 살아가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도 큰 텍스트였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몇번을 계속 읽으면서 나름대로의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지는 성경처럼 이 장자 또한 나의 초라한 사고력 증진에 많은 도움을 줄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는 비단 나뿐이 아니라 장자를 읽고자 하는 많은 미래의 독자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사항일 것이다.

장자는 기존의 서양철학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형식을 띈다(모든 동양철학이 그러하겠지만).미시적인 시각에서 사물의 현상을 관찰한 후 그 현상에 대한 통찰을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테제를 제시한 후 그 테제에 대한 통찰은 뭇사람들에게 맡긴다. 이것은 장자의 최대의 매력과, 이해에 있어 난점을 동시에 제공한다.

장자의 “무위”는 기본적으로 노자의 무위사상을 계승한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현세와의 타협을 배제했다는 점에서 더욱더 철저하며, 모순되게도 바로 그로인해서 장자철학은 더욱더 자유로와진다. 내편, 외편, 잡편, 총 33편으로 이루어진 장자는 독자들을 끝없는 자유와 무위의 세상으로 이끌것이다. 역자 오강남 교수가 각장마다 친절한 해설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해설 없이 먼저 통독한다음 자신의 생각과 해설을 나중에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게 이 책을 읽는 한가지 방법일 수도 있겠다.

내가 장자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낭만적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 어느 누가 이렇게 크나큰 주제들을 아무 거리낌없이 말하며 행복해 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 마침내 구만리를 솟구쳐 남명(바다)으로 향하는 붕새를 비웃는 매미와 비둘기같은 나의 인생. 구불거리고 옹이진 나무로 배를 만들어 노닐거나 그 그늘에서 쉴 줄은 모르고 그 실생활에서의 쓸모없음만 탓하는 나. 그런 내게 “장자”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소인이기에 이 모든 장자의 철학을 몸소 실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가슴속에 장자를 품고 다니며 남 모르는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이시대를 사는 한사람으로서 충분히 낭만적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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