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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 개의 날 3
김보통 지음 / 씨네21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사람은 믿을 수가 없어. 몇 년 전 아빠에게 처음으로 지역차별적인 말을 들었던 순간이 생각난다. 그 전에도 그 뒤로도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없었기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런 말씀 하시는 거 아니라고 화를 내려던 차 이어진 말에 입을 다물었다. 아빠가 군에 있을 때, 그 지역 출신 선임에게 무자비하게 맞았다는 것이다. 그때 상한 이 하나는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늘 거무스름한 색을 띄고 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수십 년 전 폭력의 증거를 지금도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받은 상처와 그것을 치유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린 시간 속에서 청년은 아버지가 되었고, 잊은 줄 알았던 그때의 상처가 뉴스 하나가 기폭제가 되어 흘러나왔다. 아빠가 드러낸 분노와 그 아래에 깔린 슬픔을 본 그 순간은 나에게도 아픔으로 남아 있다. 아빠는 입대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버지를 잃었다. 하지만 나라의 부름을 받았기에 그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그저 아빠 정말 힘들었겠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그 한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미워하지는 않으시면 좋겠다고 덧붙이며.
이 작품을 보면서 아빠의 젊은 날을 함께 상상해 본다. 이제는 나보다 훨씬 어린 20대 청년의 모습을. 그러다 보니 만화 속, 현실 속 군복을 입은 청년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더욱 친숙하게 다가온다. 동정은 아니지만 안쓰럽기도 하다. 큰 사건 큰 사고 겪지 않고 무사히 제대하기를 짧게 빌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폐쇄적으로 유지된 공간 속에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일보다는 그렇지 않은 일이 생길 확률은 훨씬 높을 테고, 슬프게도 현실 역시 그렇다. 수많은 미결 사건들같이 거대한 것뿐 아니라 더러워서 참았을 작은 폭력까지, 내가 가 보지 못한 시간을 수많은 청춘들이 감내했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그에 드리운 그늘은 그 현실을 목격하면서도 어쩌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안긴다. 작가의 말에서 밝힌 이 만화의 시작 역시 가벼운 마음은 아니었다. 창작자에게도 독자에게도 쉬운 소재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작품이 참 좋다.
희망이 무엇이라 쉽게 보여 주지 못하고 주저하지만,
비루한 현실에 눈 돌리지 않고,
그렇다고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냉소하지도 않고,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뚝심과 다정함이
그 공간 그 시간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에게 와닿아 작은 위로가 된다.
좋은 작품이라도 외면받을 때가 있다. 생각보다 그런 일이 많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기억에 남는, 의미 있는 무엇으로 남을 테니 이 작품도 지금처럼 쭉 잘 이어나가면 좋겠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창작자에게도 쉬운 시간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그 시간이 그저 힘든 것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이 만화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응원하며 쭉 지켜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