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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iniscence
유키 구라모토 (Yuhki Kuramoto) 연주 / 씨앤엘뮤직 (C&L) / 1998년 3월
평점 :
기숙사에 살던 그때. 한 살 어린 음대생과 방순이가 되었다. 음대생에 대한 환상 혹은 편견과 우연히 본 사진 속 예쁜 얼굴에 쫄아서;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그 전 해에 있었던 음대생과 문대생의 혈투 때문이었는지도. 그런데 알고보니 그저 나와 비슷한 대학생이었다. 죽도 잘 맞아서 일 년 생활이 정말 즐거웠다. 그 어느날, 기숙사 방에 전자 피아노가 들어왔다. 헤드폰으로 연결하면 시끄럽지 않게 연습할 수 있다고 큰 결심하고 산 것. 때때로 나도 재미삼아 치고 놀았다. 그리고 어느 토요일 밤,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일요일 새벽에 들어섰을 때, 방순이가 이 앨범에 있는 meditation을 쳐주었다. 사감한테 걸리면 벌점에 잔소리 대박날 것이라는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흐르는 피아노소리에 빠져들었다. 더운 여름, 창가로 하얀 달빛이 들어와 방을 환히 비추고, 그 속에서 연주가 끝났을 때 작은 행복을 느꼈다. 달빛 밝은 새벽의 시원했던 바람, 작게 흐르는 피아노 소리... 지금 생각해도 행복해지는 그 순간. 쑥스러워하는 방순이에게 소리 낮춘 환호를 보내며 결국 그날 밤을 꼴딱 샜다.
그 기억 때문에 이 앨범은 나에게 아주아주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때의 일을 방순이는 기억하고 있을까. 오랜만에 연락해서 말해줘야겠다.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줘서 정말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