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뭐라고 - 거침없는 작가의 천방지축 아들 관찰기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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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말 안 듣는 딸이었던 나는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엄마를 참 많이도 괴롭혔다. 빈말이라도 온순했다고 하기 힘들 정도로.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 엄마가 뭘 알아. 청소년 드라마에 나올 법한 대사들을 연일 쏟아내기도 했지. 

임신한 걸 알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덧이 시작되었다. 엄마를 닮아서인지 그리 심하지는 않은데, 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울렁거림에 기분이 상쾌하지는 않다. 어떻게 사람이 배에서 살 수 있지 궁금했던 적이 있는데, 그게 역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생명체가 내 안에서 자기의 존재를 있는 힘껏 표현하느라 나는 여지껏 겪어 보지 못한 일들을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경험 중이다. 이래놓고 낳아 놓으면, 얘도 나랑 같은 말을 하겠지. 엄마가 뭘 알아! 사는 건 역시 만만치 않구나.
배에서 나올 때부터 고역, 기르는 것도 큰일이라는 띠지 문구처럼, 한 사람을 길러낸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이랴. 나를 죽일 듯 노려보는, 내 배에서 나온 생명체를 보는 기분이 어떨지 아직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존재를 사랑하고 축복하는 건 이미 같은 길을 건너왔기 때문인 걸까.
말문이 틀 무렵부터 자기 주장도 강하고 호불호가 확실했던 첫딸을 보며, 온순하고 조용한 엄마는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추운 겨울 병원 진료를 받고 지친 몸으로 들어간 식당에서 대충 시켜 나온 음식을 거부하고 다른 거 시켜달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너댓 살짜리 딸을 보는 엄마의 기분이 어땠을지. 애처롭기도 하고 기억나지 않는 내 모습에 어이가 없기도 하다. 기센 사노 여사님도 이리 힘들었다는데, 우리 엄마는... 불쌍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엄마는 쭉 날 사랑해주었고, 내가 기억하는 거의 모든 순간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다. 
임신 소식을 알리고, 몸이 변하면서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묻다가, 나 닮으면 말도 많고 고집도 셀 텐데 어쩌지ㅠㅜ라는 말에 엄마는 호쾌하게 웃었다. 언젠가 엄마가 엄청 화가 나서, 너도 너 닮은 자식 키워 봐라! 했던 말이 이렇게 현실이 될 줄 나는 전혀 몰랐는데 엄마는 알고 있던 걸까. 
깔깔깔 신나게 웃던 엄마는, 쉽지는 않을 거다 하셨다. 그러고는 그래도 재미있었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쉬울 만큼...이라고 덧붙였다. 빨리 입덧이 끝나고 안정기가 오면 좋겠다고 하니, 엄마는 또 웃으며 지금이 제일 편할 때다 하셨다. 대체 자식이 뭘까.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하긴, 그걸 누가 알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기다려진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존재를. 그 존재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세상과 다른 존재에 호기심을 품고 또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서로 아프게 적응해야 하더라도 결국 화해하고 싶다. 이 험한 세상에 태어나게 한 걸 후회할 때가 오더라도, 원망을 받더라도 잘 지켜봐 줘야지. 씩씩한 엄마가 되고 싶다.


+ 재미있게, 금방 읽었는데 다른 책과 달리 양장이라 읽기 불편했다. 분량이 적어서 종이도 두꺼운 걸 쓴 것 같은데 굳이 양장으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나온 책들처럼 가볍게 들고 보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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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꼭 안아줄 것
강남구 지음 / 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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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란 아직 도착하지 않은 편지와 같다'는 구절을 십여 년 전 좋아하는 만화책에서 본 뒤,

지금 알지 못하거나 느끼지 못한 감정들이 언젠가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안에 차오를 수 있다는 걸, 삶에서 직접 겪은 뒤로 나는 누군가의 현재 모습 뒤에 감춰진 과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아주아주 조금이라도 더 깊어지게 되었다면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둘만 남은 작가와 특히, 어린 아들이 어느 순간 겪게 될 깊은 상실과 슬픔이 벌써 안타깝고 가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이토록 건강하고 사랑이 넘치는 아내와 엄마를 가진 그들이기에 

언젠가 몰아쳐 도착할 감정들을 아프지만 꿋꿋하게 잘 견뎌 내리라는 확신도 동시에 들었다.

살아 있는 존재는 모두 스러져 간다.

아무리 사랑하고 사랑하는 존재일지라도 예외는 없다는 이 명제 안에서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를 끝없이 갈망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냉정한 현실에 결국 사라져 가는 나와 너의 소중한 존재들,

달리 보면 이 힘든 현실을 헤쳐가게 해 주는 힘의 원천들.

너무나 사랑하는 존재들이 갑자기 사라질까 두려워 우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직 오지 않은 시련을 미리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내 손을 잡고 있는 이들과 하루하루 힘껏, 행복하게 살아가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지금 꼭 안아줄 것,

지금 내 맘에 품은 사랑을 보여 줄 것.

조금 더 용감해지고 솔직해질 것.

엉엉 울면서 읽으면서도 웃게 만들어 준

이 책의 작가와 어린 아들, 그리고 가족들의 행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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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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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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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네버랜드 클래식 45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김경미 옮김, 조디 리 그림 / 시공주니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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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고전, 영원한 나의 친구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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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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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멀어진 작가지만, 한때 절판되었던 이 책을 갖고 싶어 중고 서점을 찾아다녔지. 나의 스무 살도, 책을 찾아다닌 그 시절도 이젠 아련하게 그리운 추억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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