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짚 깔고
보리짚 덮고
보리처럼 잠을 잔다.

눈 꼭 감고 귀 오구리고
코로 숨쉬고

엄마 꿈 꾼다.
아버지 꿈 꾼다.

커다란 몸뚱이,
굵다란 네 다리.

- 아버지, 내 어깨가 이만치 튼튼해요.
가슴 쫙 펴고 자랑하고 싶은데
그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소는 보리짚 속에서 잠이 깨면
눈에 눈물이 조르르 흐른다.

- 권정생, <소 1> 
  

어린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국민학교에 다녔다. 맨날 가는 길인데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들어오면 늘 비슷한 시간. 그 어느 봄날. 뒷집 소의 울음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이상하게 여겨졌다. 소가 음메- 하는 건 당연한 건데, 어린 내 귀에 그 울음이 너무너무 슬프게 들려서, 소가 정말 슬퍼서 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소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궁금해 엄마한테 물었다. 그러자 엄마가 말하기를, 송아지가 팔렸다고, 소들은 송아지가 팔려가면 며칠을 그렇게 운다고 하셨다.

헉, 그럼 정말 슬퍼서 우는 거였어? 소도 슬퍼하는 거야? 놀라며 되묻는 내게 엄마가 덧붙였다. 너한테 그렇게 들릴 정도면 정말 많이 슬퍼하나 보다, 라고.  

지금도 기억나는 열 살의 어느 봄날. 엄마 이야기를 들은 나는 어미 소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같이 울었다. 참... 감수성 돋는 아이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어미 소와 송아지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몰래 숨어서, 그 집의 성질 사나운 개를 피해가며 보아온 나였기에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귀여웠는데.. 그 무서운 개나 팔지. 뒷집 아줌마 나쁘다. 어헝헝 

그렇게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왠지, 어미 소를 한 번이라도 쓰다듬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에. 어미 소는 그 집 앞 마당 한쪽에 자리했는데, 그곳은 나무 몇 그루를 경계로 우리집 뒷뜰과 붙어 있었다. 나무 사이 개구멍을 통과해 살금살금 소에게 다가가서 가만히 몸을 쓰다듬어주었다. 울지 마라 하기도 뭐하고, 괜찮을 거야는 말도 안 되고...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 한 말이 힘내, 였던가; 곧 대문을 박차고 달려온 개 때문에 더 말할 틈도 없었지만.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어미 소의 슬픈 울음소리가 잦아들었지. 


 

뜬금없이 소에 관한 추억을 풀어놓는 건 김홍도 화집을 보다가 이 그림을 발견해서.  

강을 가로지르는 긴 다리를 나무짐을 진 사람 둘과 나이든 선비가 건너고 있다. 그 옆에는 두 사람이 각각 소 한 마리씩 타고서 강을 건너는 중이다. 그 뒤를 따르는 송아지. 참 여유롭고 따뜻해보여서 한참동안 그림을 바라봤다. 김홍도가 살던 동네 송아지인가. 이 송아지는 쑥쑥 커서 밭 갈고 논 가는 소가 되었겠지.. 그때는 소가 큰 재산이었으니까 어디로 팔려가고 그러진 않았겠지..  이런저런 생각도 하면서. 

팔려간 송아지를 그리워한 그 어미 소, 그 울음소리를 듣고 같이 울었던 나, 권정생 선생님의 시, 김홍도의 그림.. 우연히 내 방에 모인 과거의 것들이 하나로 이어진다. 특별한 경험인테 좀 슬프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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