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행사로 제주 여행 중 첫날.
유명하진 않지만 머물고 간 사람들의 후기가 좋고 가격도 좋아서 예약한 숙소는 한적한 곳에 있었다. 밤 9시가 넘어가자 고요한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남편이 아이를 재우다 함께 잠들어 가만히 밖을 보니 수묵화 속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손재주 좋은, 푸근한 인상의 주인 분이 밤이 깊어지면 다락방에 난 창으로 달을 보라고 권한 게 생각나서 올라갔다. 멀리서 시가지의 노란 불빛이 반짝였지만 이 어둠을 흐트리지는 못하였고, 은빛으로 환한 달빛에 커다란 나무는 검디검은 모습이었지만 차가워 보이지 않았다. 여행을 오기 전, 물감의 모든 색을 섞으면 검정색이 된다는 걸 아직 모르는 딸은 검정색은 아무 색깔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건 아니라고 설명하려다 언젠가 제 스스로 알게 될 테니 그렇구나 대꾸하고 넘어갔는데 굳이 내가 말해 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며 만나게 될 밤의 어둠이 새로운 발견으로 아이를 이끌 것이니. 감당 못할 일을 저질렀다 자책하며 깊은 우울의 늪으로 빠진 적도 있지만, 내가 원해서 선택한 삶은 다시 내게 기회를 주었다. 시행착오는 늘 함께하겠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하다면 다시 길이 보일 것이다. 언제든 상관없다. 스스로에게 솔직하다면. 
평화로운 이 밤이 참으로 감사하다.
이 기쁨을 타인과 나눌 길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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