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 죽음을 앞둔 철학자가 의료인류학자와 나눈 말들
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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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고 자란 시골집의 마당을 볼 때마다 옛날 이곳에는 누가 살았을까 궁금했다. 티라노사우스르나 돌을 다듬던 인류의 조상이나 나라가 만들어질 무렵의 어린이를 상상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났던 그 시절. 할아버지가 손수 지었다는 낡은 집의 오래된 나무 대문에 걸터앉아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는 게 중요한 일과였던 그 무렵부터 왜 지금 태어났을까 궁금했던 나는 그 사실에 때론 감사해하고 때론 서러워하며 나이를 먹었고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을 읽게 된 연유를 따라가보면 그것 또한 결국 우연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태어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신차려보니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래서 삶은 어려운 것일 수밖에 없으리라. 그 모든 우연은 결국 이별로 향한다고 생각하면 덧없는 삶이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람은 각자 선으로 이어지며 깊이를 만들어내며 자신에게 타인에게 의미로 남고자 한다. 두려움과 허무를 이겨내는 용기. 결코 확률로만 날아가지 않는 공처럼 그것이 무엇을 빚어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죽음을 사이에 둔 두 저자의 편지글을 읽으며 자주 울컥하여 책장을 덮어야 했다. 어느때보다 느린 독서였지만 다 읽은 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운이 밀려와 어쩔 줄 모르던 나는, 남편과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한 인간의 삶을 자꾸 초라하게 만드는 시대. 너무 많은 것들이 우리를 혼란케 하지만 그럼에도 전력으로 부딪히며 사유하고 대화하는 두 저자의 모습에 큰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글이 주는 떨림과 울림을 이렇게 느껴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라 여운이 더욱 짙었다.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한 번 더 읽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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