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기념일
사이토 하루미치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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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첫 방학에 식당에서 첫 알바를 할 때였다. 손님 네 분이 들어왔을 때 시각장애인용 안내지팡이를 보자마자, 나는 도와 드릴게요 하며 그중 한 분의 팔을 이끌었다. 유일하게 안내지팡이를 들지 않으신 분이 지금 뭐하는 거냐고 차갑게 말했을 때에야 실수했다는 걸 알았다. 당황한 나는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자리를 안내하고, 잔뜩 긴장하여 음식을 나르며 다시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일하는 중에 그 분이 다른 분들의 식사를 거드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 빈 반찬을 채우러 갔다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디에 무슨 뭐가 있는지 알려 드려도 될까요? 그분이 괜찮다고 하셔서 맞은편에 앉은 두 분의 손을 잡고 각각 앞에 뭐가 놓여 있는지 하나씩 알려드렸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그 분들은 오늘 정말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하시고는 아까 무섭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덧붙이며 웃어 보였다.

진심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날. 이 책을 읽으며 그날 일이 떠오른 건 작가가 듣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가 막 태어나서나 더 커서나 한결같이 일관되게 예의 있는 양육 태도였다.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지 않고 시간을 들여 지켜보며 기다리는 것. 간단한 말이지만, 그 예의의 부재가 때로는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내기도 한다. 내 진심과 상관없이 그러하며 부모 자식이건 처음 보는 남이건 다르지 않다. 그리하여 반대로 찰나의 진심과 예의가 상처를 씻어 주기도 한다. 우리는 이토록 서로 다르기에 상처도 치유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 때 간극은 자연히 좁혀질지 모른다.

사람은 모두 다르기에 서로 기대어 산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누군가를 도와 감사 인사를 받은 것만큼이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육아를 하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의 무언가도 함께 자라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책을 읽는 것도 그런 걸까. 역자가 덧붙인 설명을 따라하며 낯선 언어를 배우는 재미와 기쁨을 오랜만에 느껴 보았다. 아직 내가 모르는 세계가 이렇게 넓다는 사실이 뜻밖에 설렘으로 다가와 아이에게 한 동작을 가르쳐 주며 함께 즐거워했다. 비슷한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르고 다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르는, 이렇게 서로 다른 우리들. 일상의 피곤이 무심함과 짜증으로 이어지는 요즘 이 책을 읽게 되어 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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