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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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작품으로 보여준 것이 바르고, 직접적인 설명이 그것을 뒷받침 하고 있을 때 비로소 그 작가를 완전히 지지하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문제로 고통받으면서도 제 탓만 하고 사는 사람들 앞에서 20년 전에 이룩한 민주화를 찬양하는 것은 삶의 질과 민주주의가 아무런 연관을 갖지 않는다고 선전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중략)

그럼에도 작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이 작품이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배포되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얘기라 하더라도 그 대상이 청소년이라면 하나마나한 소리도 꼭 해야 하는 소리가 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아무것도 아닌 걸 위해 수 많은 사람들-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처럼 터무니없이 약하고 겁 많고 평범한 사람들- 이 피와 땀을 흘렸고 제 삶의 기회를 포기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고 우리 민주주의가 안심할 정도로 튼튼하지도 않으며 끊임없이 강화하고 보완하려는 노력 없이는 어느날 사람 좋아 보이는 도둑놈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하고 싶었다.

_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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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 학생. 그렇게 슬퍼만 하는 것도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슬퍼하는 게 아니라 두려워하는 겁니다.

뭐가 두렵단 건가?

끝이 없을 거 같아서요. 처음 그 사람들 만났을 때는 그 열정에 반해서, 그런 사람 들이라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조직이 깨지고 사람들이 잡혀가고 죽어갈 때도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젠 모르겠어요. 정말 이길 수 있는 건지.... 끝이 있긴 있는 건지.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불을 얼마나 더 때야 할지,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하지만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끓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그렇다 해도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남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어떻게 수십년을 버텨내셨습니까?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 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허허허.

_91-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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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페이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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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지금+여기 3
오찬호 지음 / 개마고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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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간된지는 일년이 조금 넘었지만, 언젠가 이 책을 본 처음부터 줄곧 기억하고 있었다. 기가 막힌 제목이었지만, 분명 내가 찾던 종류의 책이 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독서침체기를 지나서 다시 책을 좀 읽기 시작하고, 나는 드디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보다 사회는 더 곪아서 이젠 고름이 나오고 보기에도 끔찍한 지경에 이르렀다. (내게 그건 바로 '세월호' 였다. 하지만 이 글에는 글의 내용만을 가지고 짧게 서평을 쓰려고 한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정확히는, 이해는 되지만 도저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반응들에 나는 너무 지쳤고, 질렸다.)

 

 이 책은, 'KTX 여승무원들의 철도공사 정규직 전환 요구' 문제에, 대한 이십대 (대학생)들의 차가운 반응에 당황한 한 대학강사로 부터 시작했다. 이십대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정규직은 비정규직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서 들어오는데, 어떻게 비정규직이 날로 정규직이 되려 하느냐' 다.

 

 그럴 듯 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을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하니깐. 아니 그런데 좀 이상하다. 그래도 이십대라면, 비정규직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거의 동일한 노동의 양에 대한 차별 보상, 이 갈수록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는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뭐라도 할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이십대들은 모든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역량과 능력의 탓으로 치부해 버리게 되었는가. 한 십년 정도만 거슬러 올라가도, 비정규직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을 것 같은 이십대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그 거침없던 이십대들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겁이 많아져서? 아니다.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개인에게 전가시켰기 때문이다. 저자는 구조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까지 개인의 능력 고하의 탓을 해버리는 이십대의 세태를 '자기계발' 즉 '힐링' 문화에서부터 찾는다.

 

과거에는 경영이라는 분야의 책들이 생산성 증대를 위한 논의나 마케팅 기법 등 전문서로서의 의미가 강했지만, 지금은 기업의 경영기법을 인간의 생애과정에다 적용해서 ˝노동자가 스스로에게 하는 최면적인 동기 부여를 위한 미사여구의 개발에 역량을 집중˝ 하는 내용이 사실상 전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분류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결국에는 '스스로를 잘 관리하면 어떠어떠하게 살 수 있다' 는 식의 논의가 무수하다. (28p, 위의 밑줄은 필자가 임의로 표기함)

 

 나 또한 한때, 자기계발서를 좀 읽은적이 있다. 손에 꼽아봐도 너다섯권 정도긴 하지만 나는 분명 힘들때 그 책들을 찾았다. 내가 일반적인 구직자들과 조금 다른 길을 가고있어서 사실상 책에 나온 것들이 직접적으로 연관없음에도, 지금의 상태를 극복하고, 역전의 드라마가 '나'도 가능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누군가 말해주고 증명해주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 응답으로, 그 책들은, 위의 말대로 온갖 미사여구로 최면을 걸었다. 그리고 최면은 마치, 우리가 앞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란 비참한 '희망' 을 심어주었다.  

 

 물론 나는 그들의 의도가 불순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사회가 정말로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고, 그에 따른 인간적이고 공정한 대우를 하고 있다면,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따뜻한 말들은 깊이 간직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들 '나름의 힐링' 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십대들이 처한 현실의 원인을 이십대 안으로 끌어들였다. '현실이 공정하지 않아도 잠깐 힐링하고 가면 되는것 아닌가? 그게 왜 이십대들이 사회문제를 자신의 탓으로 여기게 하는 것과 관계가 있나?' 라고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의 관심사는, 이미 경쟁사회에서 무감각해진 이십대가 어떻게 그렇게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이들을 비난하고, 자신도 통과할 확률이 미약한 그 좁은 문 안에서 권력을 부리는 자들을 옹호할 수 있을까 싶어서다. 나는 그 이유를, 그들이 언젠간 자신도 그 좁은문 안에 들어가 권력을 부리길 꿈꾸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계발 또는 힐링을 표방하는 책들이 사회적인 문제들을 간과하거나 혹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사회적인 문제를 바꿀 수 없다면, 그렇게라도 개인이 자신 스스로를 추스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자기계발_힐링의 무분별한 남용은 생각보다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다시 자기계발서가 어떻게 이십대를 지금처럼 바꾸는데 큰 역할을 했는지 이어서 얘기하겠다. 책에는 여러 자료와 근거들이 잘 나와있는데, 그것을 짧은 글에 선뜻 요약하기가 쉽진 않다. 나또한 책을 읽는 동안 저자의 주장과 충돌하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차근차근 논리적인 설명과, 근거와, 반박의 반박을 통해서 해결된다. 그 구체적인 내용들은 이 허접한 서평보다는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 다만, 내가 찾은, 내가 찾던 해답은 (의외로 책에서도 길지않게 정리해놓은) 아래와 같다. 물론 이것은 일부의 내용이다. 저자는 이것을, 자기계발의 시대가 만들어 내고 있는 이십대의 고유한 특성 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짧은 내용은 자기계발이 이십대에게 미치는 영향을 나름 간결하고 순차적으로 설명한다.  

 

 

1.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기

 - 자기계발의 논리로 무장할 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시중에 출간된 자기계발서들은 대다수가 자신의 고통은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남의 고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남의 고통까지 신경쓸 생각하지 못할 뿐더러, 타인의 고통과 극복을 그 자신 스스로의 몫으로만 치부하니 딱히 공감할 필요성을 못느끼며, 자연스럽게 공감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2. 편견의 확대 재생산

 - 고통에 대한 공감력이 떨어지면 필연적으로 특정 대상에 대한 기존의 편견이 더 강화된다. 기실 '공감' 이란 단지 함께 느낀다는 점에서 중요한게 아니라, 한 개인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권장된다. 타인의 상황을 깊고 넓게 이해할 수록 타인의 상황을 이렇다 저렇다 재단할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헌데, 공감력이 떨어지니, 타인의 상황을 이해할 생각도 전에 이렇다 저렇다 자신의 (세뇌된) 기준으로 이렇다 저렇다 판단한다. 자기계발서라면 대부분이 패자에 대한 편견을 강화해버리는 것이다.

 

3. 주어진 기존의 길만 맹목적으로 따라가기

 -  패자에 대한 편견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이 클수록 '안전한 길'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리고 그 외에 길에 대해서는 부정적 편견을 생산하며, 다름에 대한 거부가 날카로워 진다.

 

(위의 내용들은 거의 대부분 책의 내용을 인용하다시피 해서  적었다.)

 

 '이러한 다름에 대한 거부감은 이십대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옥죈다. 자기 스스로 '달라진다'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뜻이며, 그만큼 정해진 '레일' 위에 안착하겠다는 의지를 굳건히 한다. 이런 경향 자체가 시대적 특징이 되어 '당연한 것'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개인에게 강요된다. 그 결과 개인은 앞뒤 가리지 않고 레일 위를 달리기 위해 해야 될 자기계발을 찾고 있으며, 또 그런 자기계발의 일부 성공적인 결과를 보고 부러워하면서 더 적극적인 수행을 다짐하게 된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순환적으로 이어지고, 이로 말미암아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그로 인해 고정관념이 강화되는 현상은 더 가속된다. 이런 환경에 노출된 이십대는 당연히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이 '경직'될 수 밖에 없다. (98p)

 

 이 책은 나아가, 대학가에 팽배한 대학 서열화에 대해 파헤친다. 자기계발 시대에 대학생들이 스스로를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만드는 이 폐단에 대해 진단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최근에 새롭게 <진격의 대학교>라는 책으로 탄생했다.) 어쨌든, 책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줄이겠다.

 

'희망', 그건 개인에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을 해결함으로써 자연스레 생겨나도록 해야 한다. 사회가 진정 공정해지면 절로 희망이 부풀기 마련이다. 기회의 균등은 그럴 때 '실재' 할 수 있는 것이다. (214p)

 

리뷰를 쓰면서, 이 책에 언급된 책 중에 하나가, 나와 약간 인연이 좀 있다는 생각이 났다. 행사에 참여했던 책도 있으며, 또 그와 관련한 이들도 떠오른다. 이 책이, 이 글이 그들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으면 한다. 나는 그들이 가진 삶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며,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건 간에 이제는, 우리가 무분별하게 남용하던 힐링과 희망이 어떻게 달라져야하는지 함께 고민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다. 

 

 

 

덧, 최근의 예비군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네티즌 들의 적지않은 반응이 '작정하고 덤비는 놈을 어떻게 막냐' 였다. 이는 마치 인생의 한 논리처럼 보이지만, 나아가 생각해보면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고, 그것을 둘러싼 사회와 시스템은 할것을 다한것처럼 여기게 한다. 일차적으로 개인의 고의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이 원인이라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해야하는 시스템은 분명 허술했고, 그것이 사고를 키웠다. 모든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리는게, 모든 것을 사회, 정부, 기관의 탓으로 하는 것보다 나을까? 더 책임있어 보일까? 좋은 시스템이 구축되어있었다고 해도 만약 사고가 난다면 문제점을 진단하고 보완해야 한다. 사회가 만들어내는 문제를 계속해서 개인에게 모두 책임전가 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비슷한 사고들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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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김여진 지음 / 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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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배우 김여진의 연기를 극장에서 본건 영화 <아이들>에서 였다. 사라진 자식을 기다리던 한 부부의 아내역할이었던 그녀의 모습은 마치 정말로 그런 사람을 보는 듯 했다. 그녀의 연기는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잊고 있는 와중에, 이 책을 우연찮게 만났다. 

 

배우다. 배우(!)고 있는 사람이다.

 

 책 날개에 적힌 이 짤막한 자기소개가 왠지 그럴듯해 보인다. 책을 읽다보면 이 말이 그냥 어깨에 힘만주고 한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배움은 남녀노소 에게 다 해당되는 말인데, 배우가 말하는 배움은 남들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그것이 '사람' 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을 배우는 것이 배우에게만 유효한 건 아니겠지만, 분명 다른 점이 존재한다. 정말 연기에 몰입하고, 그래서 정말 빼어나게 연기를 한 배우들은 심심찮게, 작품이 끝나고서도 그 후유증을 토로 하지 않는가? (그리고 대게 그런 역할은 어두운 면을 강하게 품고있다)

 

 배우가 연기에 몰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맡은 역할에 대한 몰입인지, 배우 자신이 살면서 가져왔던 감정들에 대한 몰입인지는 각기 다를테지만, 분명한 것은 어쨌든 둘다 사람이란 점이다. 배우가 하는 일이 곧, 사람을 표현하는 일 아니겠는가. 그러니 배우가 가장 잘 알아야 할 것 또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자신 스스로 슬프지 않은, 즐겁지 않은 이가 어떻게 진정으로 다른 이들에게 그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겠는가? 나는 감히 말하건데 연기를 잘 하는 배우란, 사람을 잘 배운 사람이다. (물론 사람을 잘 배웠다고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리란 법은 없다.)

 그렇다면 (자신을 포함한) 사람을 배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뭘까? 어쩌면 그건 포괄적인 의미로 연애 아닐까.

 

<연애>라는 김여진의 첫 에세이는 이렇게 자신과, 타인과, 세상과 연애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쩌면 풋내기 배우가 그렇게 시작하듯, 어쩌면 모든 풋내기들이 그렇게 시작하듯,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알아볼 때 으레 그렇듯, 김여진의 이야기는 사회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개인적으로 흘러간다. (편집자의 의도야 편집자만 알터이니)

 

상상해본다, 버릇처럼. 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는 배우의 습관대로. (16p) 

 

 그녀가 세상을 향해 거는 연애의 시작은 '배우' 답다. 서울대학병원 청소노동자의 (해고에 항의하는) 파업 상황의 트윗 글들을 종종 리트윗 하던 그녀는, 연극 <엄마를 부탁해>를 공연하다가 문득 자신 주변의 청소노동자들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잃어버린 엄마를 찾는 딸의 마음을 매일 말하며 연기하던 그녀에게 어쩌면 그것은 운명같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자발적으로 트친(트위터 상의 친구)들과 모여서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시위하거나 시위현장을 돕곤 했다. 누구하나 가르쳐주지 않았고, 누구하나 시키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모여서 신기하게도 트친들 속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 그 일들을 실현케 했다. 트친들과 일명 날라리 라는 모임을 결성해서 고전적이고, 때론 창의적인 방법으로 부당하게 약자가 되어버린 이들의 편에서 함께 했다. 각자가 돕고 싶은 사람들, 만들고 싶은 세상을 위해 그들은 뜻을 모아 뭉쳤다. 그리고 그 연대의 힘은,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상황은 좀 다르지만) '좋은 사람과 함께하면 어쨌건 즐겁다.' (210p) 는 의미와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각자가 또 함께 꿈꾸는 세상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였으니 그 과정은 힘들지만 즐거웠을 것이고, 서로를 사랑했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행복한 도전들은 그렇게 지속되었다. 그리고 홍대 청소노동자들,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들과 함께한 김여진과 날라리들은 끝내 유의미한 결과와 성과들을 만들어냈다. 

 

 방법이 있다면 알려달라. 노동자들이, 이미 고용형태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하면 불법시위자가 아닐 수 있는지. 자신과 가족의 밥줄을 지키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기가 이렇게 힘들고 심지어 범죄가 되어버리는 지금의 노동환경을 보면서 제발 누구든 대답해달라. 그들이 법을 지키며 살아낼 수 있는 방법을.(79p)

 

 짧게 요약했지만, 이처럼 사회속에 있던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에 나는 이 책을 '세상에 연애 거는 배우 김여진'으로만 예측했다. 그만큼 그녀의 말과 행동, 생각들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그렇게 거시적이지만은 않다.

 

 두번째 장은 그녀가 자선모금활동을 하다 인도의 둥게스와리로 가서 깨달은 이야기들이다. 참 솔직하다. 그녀는 자선모금활동에서 자신을 지나쳐간 사람들이 주인공 역할의 배우가 모금하는 곳에는 바글바글한 현실에 위축되었다. 그녀는 '내가 왜 여기있나' 하고 후회와 한탄을 하다가, 다시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녀는 하루 1달러가 없어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자선모금을 하고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는 이들 때문에 움츠러들고있었다. 그것을 깨닫자 그녀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에게 더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직시하고자 생각했다. 똑바로 보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다. 고통의 실체를 내 눈으로, 내 몸으로 또렷이 보자. 그것만 하자. 싸우려고도 이겨내려고도 하지 말고 그저 똑바로 '응시'하자 (103p)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실제로 굶주린 이들을 마주하고자 했고, 인도의 둥게스와리로 가는 선재수련을 쫓아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짧게나마 굶주림을 체험하며, 또 낯선 지역에서 고생해가며, 낭떠러지 같은 산을 올라가며 깨닫는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법을. 

 

풀, 돌, 물, 먼지처럼 그렇게 가볍게, 자유롭게 살면 되겠구나 싶어졌다. (113p)

 

세번째 장은, 그녀의 대학시절과 연기를 막 시작하게 될 무렵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고등학교 시절과 다를 것이라고 예상했던 그녀는 막상 시작된 대학생활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죽었다. 무섭고 슬펐다. 죽으면서까지 말하고자 하는 그게 도대체 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집회를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이야기들을 그곳에서는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125p)

 

그녀는 목숨까지 바쳐 무언가를 이루려는 사람들에 대한 궁금함으로 데모현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허무하게 다치고 죽어가는 이들을 보며 가슴아파했다. 그리고 그녀가 만났던 한 여선배는 그녀에게 '아름다움'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고, 그래서 그녀는 이십대의 치기어린 마음과 자기 스스로의 기준을 통해, 조금은 다른 운동들을 하기 시작한다. 정치적인 것과는 약간의 거리를 둔, 노동자의 해고나 강제철거 같은 것들을. 첫사랑을 만나고, 사랑에 실패한다.

 

하지만 스무 살 그때, 사랑을 해야 할 나이였다. 사랑하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는 나이였다. 세상도 바꿔야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봐야 할 나이였다. (138p)

 

그리고 연기를 시작한다. 만화<유리구두>로 어렴풋하게 접한 연극은 시간이 지나 우연히 그녀를 연극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다시한번 우연을 계기로 주연으로 발탁된다. 연극을 거치고, 그녀는 영화를 시작한다. 아마 그녀가 연기를 막 시작하는 이 부분들이 배우 김여진에게 가장 궁금한 부분이자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의 연기인생을 모두 논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그 시작과, 여배우로서 갖는, 그리고 연기자로서 같는 즐거움과 고민들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네번째 장은 (자 드디어) 기다리던 연애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녀가 사는 모습중 가장 평범한 이야기다. 남편과의 이야가 주된 핵심이다. 자신이 출연하던 드라마의 피디와, 아는 배우의 소개로 만나 결혼하고, 또 그 결혼생활을 건강하게 이어가는 이야기들은 어느 연애사가 그렇듯 재밌다. 나아가 짧은 에피소드들 속에 담긴 그녀의 철학과 조언들은, 어떤게 진짜 서로를 위한, 서로를 사랑해주는 연애일까를 생각케 한다. 찰떡처럼 붙어있다가도 떨어져있고, 서로를 인정하는 일 같은 것들. 자신을 지키면서 상대를 지키는 법을. 물론 이 책이 이런 '이성과의 연애' 방법론 적인 책이 아니기에 대단한 것들이 수십 수백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거나 혹은 거부하고 있던 것들이 솔직담백 간결하게 때때로 날카롭게 쓰여있다.

 

 한 사람을 사랑해봐야 안다. 내가 무엇에 끌리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 얼마나 찌질하고 잔인한지, 얼마나 자주 작은 일에 상처받고 자기연민에 빠지는지, 감정이라는 게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연애해봐야 안다. 그게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해보면 해볼수록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우리 인생에서 연애만큼 매순간 자기성찰을 필요로 하는 일도 없으므로. (230p)

 

 이 책은 이렇듯 배우 김여진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수 있게 한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것과 타인을 위하는 것 어느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자신을 사랑하는 그만큼 타인을 사랑한다. 마치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는 진리를 확인케나 하듯.

 

 김여진은,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타인이 아프지 않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고, 배우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그녀는 즐긴다. 자신이 좋아서 한다. 자신의 환경이 허락할 때,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하고, 움직인다. 어떻게보면 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그 '일' 들을 지속케 한다.

 

그래서 나는 배우 김여진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스스로 즐겁게 요리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기 위해 먼길 마다 않고 찾아가는 사람.'

 

매력적인 배우고, 매력적인 사람이다. 언젠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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