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서는 어떤 식으로 이 장면을 묘사할까? 외로운 곳 위에 서있는 여신, 점점 멀어지는 그녀의 연인, 촉촉하지만 뜻을 헤아릴 수없고, 자기 안을 들여다보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두 눈, 동물들이그녀의 치맛자락으로 모인다. 참피나무가 꽃을 피운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에 그녀가 한손을 들어 자기배를 만진다.
그의 배가 닻을 올린 순간부터 내 뱃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평생 속이 메슥거려본 적 없는 내가 이제는 매 순간 메슥거렸다. 목구멍이 찢어지고 위장이 오래된 견과처럼 덜거덕거리고 입가가 갈라지도록 구역질이 났다. 내 몸이 지난 백 년 동안 먹은 걸 모두 게워낼 기세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렇게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는다. 첫 발길질을 느꼈을 때는 눈앞이 아찔했고, 약초를 빻거나 그의몸에 맞게 옷감을 자르거나 골풀로 침대를 짜면서 아이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내 옆에서 걷는 그의 모습을, 아이에서 소년에서 남자로상했다.
와중에도 전적으로 비참하지는 않았다. 나는 정해진 형태도 없고 불투명하며 온 사방의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는 불행이라면 이골이 나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해변도 있고 깊이도 목적도 형체도 있었다.
끝나면 나의 아이가 생긴다는 희망도 있었다. 나의 아들. 마법 때문인지 예지력을 물려받아서 그런 건지 몰라도 나는 아들이라는 걸 알았다.
아이가 자랐고 그럴수록 아이 안의 연약함도 자랐다. 그를 갑옷처겹겹이 감싸고 있는 내 불사의 육신이 그렇게 고마운 적이 없었

아 있는데 내가 건드리는 바람에 죽으면 어쩐다? 하지만 끄집어냈고,
아이는 살갗이 허공에 닿는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같이 울음을터뜨렸다. 그보다 더 달콤한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이를 내가슴에 눕혔다. 우리가 깔고 누운 돌이 깃털처럼 느껴졌다. 아이는몸을 부르르 떨고 또 떨며, 살아 있는 축축한 얼굴로 나를 눌렀다. 나는 탯줄을 잘랐다. 그러는 내내 아이를 잡고 있었다.
봤지?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한테는 아무도 필요 없어.
대답이라도 하는 듯 아이가 개구리처럼 꺽꺽거리고서 눈을 감았다.
내 아들, 텔레고노스였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없었다. 아이는 햇볕을 질색했다. 바람을 질색했다. 목욕을 질색했다. 옷을 입는 것도, 다 벗는 것도, 엎드려 눕는것도, 똑바로 눕는 것도 질색했다. 이 위대한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
그중에서도 특히 나를 질색했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평생 동안 나는 비극이 찾아오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런 순간의도래를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남들이 과분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소망과 반항심과 능력이 있었고 그건 모두 벼락을 유발할 만한 것이었다. 열몇 번의 상심이 나를 그슬었지만 여태껏 그 불길이 내 살 속까지 태운 적은 없었다. 그 무렵에 내가 미쳐버릴 것 같.
았던 이유는 새로이 확실해진 사실 때문이었다. 신들에게 드디어 나를 협박할 무기가 생긴 것이다.

그 당시의 내가 어땠는지 안다. 불안하고 안정감이 없는, 잘못 만들어진 활과 같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안의 모든 단점이 발가벗겨졌다. 모든 이기심과 모든 약점이 드러났다.

하루는 주문을 만들기로했는데 아이가 커다란 유리그릇을 집어서 자기 맨발로 산산조각을내 머리가 쿵쾅거렸다. 분통을 터뜨리게 내버려두면 결국에는 지쳐느낄 수 있었것이다. 아테나가 분노하며 달려올 것이다.

낸 적이 있었다. 내가 아이를 다른 데로 옮기고 유리조각을 쓸고 닦으려고 달려가자 아이는 가장 친한 친구를 빼앗기기라도 한 듯이 나를 때렸다. 결국에는 아이를 침실에 넣고 문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고함을 지르고 또 질렀고, 머리로 벽을 때리는지 쿵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망가뜨려놓지 않았던가. 그러니 아이가 성질을 부리는 것도가자, 나는 아이를 구슬렸다. 우리 재밌는 거 하자. 마법을 보여줄게이 산딸기를 다른 걸로 바꿔줄까? 하지만 아이는 산딸기를 내팽개치고 다시 바다를 보러 달려갔다.
매일 밤 아이가 잠이 들면 나는그의 침대를 내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일은 좀더 잘할 수 있을 거야. 가끔 그 말대로 될 때도 있었다. 가끔 둘이서 웃으며 바닷가로 달려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파도를 구경할 때도 있었다. 아이는 계속 발길질하며 내 팔을 쉴새없이 잡아 뜯었다. 그래도 뺨은 내가슴에 얹혀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부풀어올랐다가 꺼지는 아이의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인내가 넘쳐흘렀다. 계속 소리를 질러라,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견딜 수 있어.

의지였다. 매 순간이 의지였다. 따지고 보면 주문과도 같았지만이건 나에게 거는 주문이었다. 아이는 넘쳐흐르는 거대한 강물이었고, 나는 아이의 급류를 안전하게 유도할 물길을 매 순간 준비해놓고 있어야 했다. 나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먹을거리를 찾다가 발견한 토끼나 엄마를 기다리다가 만난 아이처럼 쉬운것부터 시작했다. 아이가 더 들려달라고 아우성치기에 계속 들려주었다. 그런 잔잔한 얘기를 들으면 호전적인 영혼이 차분해지지 않을까 싶었고 어쩌면 내 생각이 맞았을 수도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한 달이 왔다가 가는 동안 아이가 땅바닥으로 몸을 던지지 않았다. 다시 한 달이 지났고 그 중간 언제인가부터 아이가 더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언제 그런 날이 오리라는 걸 알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걸어놓은 주문 덕분이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마주보았다. "내가 그 마법의 효력을 유지하느라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했는지, 아테나가 절대 뚫고 들어올 수 없는 게 확실한지 온갖 시험을 하면서 얼마나 한참 동안 마음을 졸였는지 아니?"

"어머니가 좋아서 하시는 일이잖아요."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나는 긁는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네가 태어난 뒤로는 할 새가 없어서 거의 하지도 못하는데!"

"그럼 가서 주문 연구 하세요! 그거 하시고 저는 보내주세요! 솔직히 아테나가 아직까지 화가 안 풀렸는지 어쩐지 어머니도 모르잖아요. 아테나하고 대화해보려고는 하셨어요? 십육 년이 지난 일이라고요!" - P3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도요? 인간을 도와준 걸 가지고 제우스가 왜 그렇게 화를 내 는지 이유를 모르겠네
"생각해봐,
그가 말했다. 불행한 인간과 행복한 인간, 둘 중에 누가 더 제물을 열심히 바치겠어?"
"당연히 행복한 인간이죠."
"틀렸어." 그가 말했다. "행복한 인간은 열심히 사느라 정신이 없거든. 아무한테도 신세를 진 게 없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그를 쓰러뜨리고 아내를 죽이고 아이를 불구로 만들면 저절로 소식이 들릴 거야. 온 가족을 한 달 동안 굶겨가며 새하얀 한 살배기 송아지를 제물로 바칠 거야. 여건만 허락한다면 백 마리도 사서 바칠걸."
"그래도 결국에는 보답을 해야 하잖아요." 내가 말했다. "그러지않으면 더이상 제물을 바치지 않을 테니까."
"아, 인간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 바쳐대는지 알면 너도 놀랄걸? 하지만 맞아, 결국에는 뭔가를 선물하는 게 좋지. 그러면 그는 다시 행복해지지. 그러면 이쪽에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올림포스의 신들은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군요. 인간들을 괴롭힐 방법을 궁리하면서."
"정의로운 척할 것 없어." 그가 말했다. "너희 아버지의 솜씨가 어느 누구보다 훌륭하니까. 암소를 한 마리 더 얻을 수 있다면 마을을이에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걸." - P1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고, 집행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 부분을 모르겠어욤………. 기분이 찝찝해욤……. 토끼의 간을 주세욤." 이렇게 지적 옹알이를 할 수 있는 때는 지났다. 순간의 통찰이니 뭐니 하는 ‘지랄병’ 하지 말고, 연구자들이 누적해온지식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연구자의 길을 가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인식론적 객관성을 위해 도덕적 결단을 하는 일까지포함한다. 그러한 도덕적 결단 없이는 탐구와 인식의 객관성이 확보될 리 없다. 자칫 자기가 보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기고, 자기가 못하면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기 쉽다. 인식론적 객관성을 존중하는 자세가몸에 익으면, 누가 봐도 못생긴 아이를 두고 예쁘다고 강변하는 부모에게 엄연한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머릿속 모든 것을 입 밖에 내야할 필요는 없다. - P58

노년이 되면 체력이 현격히 저하된다. 그때 가서 새삼구해야 할 나라 같은 게 있으면 너무 피곤할 것 같다. 꾸준히 공부해왔다면, 공부가 이미 습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매번 결단을 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결단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여,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배우는 거다. 수중에 돈이 있으면 기꺼이 지불하면서.
그리고 마침내 때가 온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사놓고 그때까지 안 읽은 책들은 이제 포기하겠다. 이 단계가되면 내 삶에 들어왔다가 나간 동학들이 남긴 흔적들을천천히 치우겠다. 부고는 들리지 않고, 다만 근황을 듣기어려울 것이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작은 응접실의 불을끄는 거다. 이것이 삶이었나요? 이미 다 지난 일이군요. - P60

잔인한 것은 이 우주만으로도 충분하다. 중국 쓰촨성 루구호 주변에 사는 모소족 사람들은, 상대가 싫으면, "너는나에게 이 나뭇잎처럼 가볍다"는 뜻으로 손바닥 위에 나뭇잎을 올려놓는다고 한다. 이제부터 논문 발표장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형편없는 논문이 발표되면, 그에 대해 폭언을 퍼붓는 대신, 손바닥 위에 나뭇잎을 올려놓는 거다.
나뭇잎이 없다면 무말랭이라도 올려놓는 거다.
끝으로, 자신의 주장이나 비판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고 해서, 크게 상심할 필요는 없다. 활자화된 주장은똑똑함이나 멍청함을 대대로 홍보하는 최고의 수단이니,
언젠가는 자신의 똑똑함이나 멍청함을 제대로 이해해줄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김선재의 시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읽는다. "단수와 만난 단수는 복수가 된다/단수와 헤어진 단수는 여전히 단수다/그러니 아무것도 잃은 것은 없다/구름과 어제가 지나갔을 뿐" - P52

시가 아니며, 따라서 나는 일본에 도착한 이래 아직 스시를 먹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당신은 회전 스시를 먹은 것서, 품위 없이일 뿐, 스시를 먹은 것이 아니다." 이어서 이런저런 공부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지면서, 그는 나의 초라한 식도락을 다시 한번 확인 사살했다. "당신은 아직 스시를 먹지못했다. 진정한 스시를.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기억하는가/우리가 처음 만나던 그날/환희처럼슬픔처럼/오래 큰물 내리던 그날/네가 전화하지 않았으므로/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네가 다시는 전화하지 않았으므로/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최승자, 기억하는가> 중에서). 나도 노래한다. "기억하는가 우리가 만났던 그날/네가 회전 스시를 능욕한 그날/네가 내 취향을 부정했으므로/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러고도 네가 스시를 사주겠다고 전화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평생을 뒤척였다." 실로 그날 밤, 나는 여러 가지 질문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기억이 있다. 회전 스시는 과연 스시인가, 고래상어는 상어인가? - P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탄생했다. 다른 책을 조사하러영국을 여행하던 중에 독일군이 채널제도를 점령한 시기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어떤 충동에 이끌려 계획에 없던 건지 섬으로 날아갔고, 섬의 역사와 아름다움에 한눈에 반해버렸다.
이 책은 그 여행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오랜세월이 흘러야 했지만,
불행한 일이지만 책은 저자의 머릿속에서 완성품이 되어 튀어나오는 게 아니다. 이 책은 조사와 집필에만 몇 년이 걸렸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나오기까지 우리 가족의 인내와 지지가 필요했다. 나는 책을 완성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의심했지만 남편 딕 섀퍼와 딸 리즈와 모건은 단 한순간도 그런 의심을 품지않았다. 그들은 나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부단히 나를 컴퓨터와 키보드 앞에 앉혀놓은 일등 공신이다. 일개 아이디어가 한권의 책으로 존재하게 이끌어준 것은 내 등 뒤에서 팔짱을 끼고 나를 감시하던 쌍둥이 딸의 공이다.

독일군 점령하에서도 저는 찰스 램 덕분에 웃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돼지구이에 관한 글이 압권이지요. 우리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도 독일군에게는 비밀로 해야 했던 돼지구이때문에 탄생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찰스 램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가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찰스 램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보다는 실례를 무릅쓰는 편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니 찰스 램과 친구가 된 것 같거든요.
폐가 되지 않기를 희망하며, 도시 애덤스추신. 제 친구 모저리 부인도 한때 당신의 것이던 소책자를 구입했답니다. 제목은 《불타는 떨기나무는 과연 존재했을까? 모세와십계명을 위한 변론》이죠. 모저리 부인은 당신이 여백에 남긴메모가 마음에 든다고 합니다. ‘신의 말씀? 아니면 군중통제의수단?‘ 어느 쪽인지 결론이 났습니까?

친애하는 애슈턴 양, 제 이름은 도시 애덤스입니다. 건지 섬 세인트마틴스 교구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지요. 제가 당신을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예전에 당신이 갖고 있던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 선집》이 지금 저한테 있습니다. 앞표지 안쪽에 당신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더군요. 그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전 찰스램의 열렬한 팬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 제목이 ‘선집인걸로 짐작건대 작가의 다른 글들도 나와 있다는 얘기 같아서요. 다른 작품이 있다면 당연히 읽고 싶은데, 독일군은 건지 섬을 떠났지만 남아 있는 서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2 0그래서 당신에게 부탁드립니다. 런던에 있는 서점 이름과 주소를 좀 보내주시겠습니까? 찰스 램의 작품을 우편으로 주문ㄱ이유하려 합니다. 그리고 혹시 그의 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와중에 타임스>에서 저더러 문학 특별판에 실을 글을써달라더군요. 독서의 실용적, 윤리적, 철학적 가치를 논하는 3부작 특집을 차례로 실을 예정이래요. 필자 세 명이 하나씩맡아서 쓰는 거죠. 제가 맡은 주제는 ‘철학‘인데 지금까지 생각해낸 거라곤 ‘독서는 망령이 나는 걸 막아준다‘는 것뿐이에요.
보시다시피 저에겐 도움이 필요해요.
당신의 문학회 이야기를 칼럼에 넣으면 문학회 회원들이 싫어할까요? 문학회 설립에 얽힌 이야기는 분명 〈타임스 독자들을 매료시킬 거예요. 저는 진심으로 그 모임에 대해 더 알고싶어요. 하지만 싫다고 해도 괜찮아요. 전혀 마음 쓰지 마세요.
어느 쪽이든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어느 쪽이든, 다시 한번 당신의 편지를 받을 수 있잖아요.

친애하는 애슈턴 양,
저의 염려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줘서 고마워요. 어젯밤 문학회 모임에서 당신의 〈타임스 칼럼 이야기를 했어요. 칼럼에찬성한다면 자신이 읽은 책과 독서에서 찾은 즐거움에 대해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내라고 제안했고요.
반응은 폭발적이었어요. 문학회의 회장인 이솔라 프리비가조용히 하라며 의사봉을 두드릴 정도였답니다(하긴 이솔라는 누가 부추기지 않아도 의사봉 두드리는 덴 선수죠). 곧 당신에게 편지가 많이 갈 거예요. 당신이 쓸 칼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좋겠어요.
우리 문학회의 설립 배경은 도시에게 들으셨죠? 돼지구이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독일군에게 체포되지 않게 꾀를 쓴거라고요. 우리 집에서 열린 파티에는 도시, 이솔라, 에번 램지, 존 부커, 윌 시스비, 그리고 우리의 사랑스러운 엘리자베스매케너가 참석했어요. 독일군 코앞에서 즉석으로 이야기를 지어낸 그 아이 말이에요. 그녀의 재빠른 기지와 빛나는 말솜씨에 감사할 따름이랍니다.

우선 우리 모임이 진짜 문학회는 아니었다는 말로 시작하는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엘리자베스와 모저리 부인, 그리고 어쩌면 부커를 제외하고는 우리 대부분이 학교를 졸업한 후로 책과 인연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는 깨끗한 종이를 망칠까 조제가 보기에 그는 말을 아낄수록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찬탄하는 문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밝은 날이 다했으니 이제 어둠을 맞이하리라.‘ 바로심하며 모저리 부인의 책장에서 책을 꺼냈어요. 당시 저는 책따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사령부와 감옥에 대한 두려움으로 책장을 펼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고른 책은 《셰익스피어 선집》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찰스 디킨스나 윌리엄 워즈워스는 나 같은 무지렁이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누구보다도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그랬다고 믿습니다. 물론 제가 그의글을 항상 이해하는 건 아닙니다만, 언젠가는 이해하겠지요.
이겁니다.

어쨌든 책이 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고 싶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까도 밝혔듯이 저에게 책은 단 한 권입니다. 세네카 말입니다. 그를 아십니까? 가상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뒤집어쓴 다섯 놈이 섬 주민들을 팔꿈치로 밀어내며 나란히 거리를 활보하는 꼴을 보자니 세네카가 로마 황제 근위병를 써서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설파한 로마 시대의철학자입니다. 역시 지루할 것 같지요? 하지만 그의 편지는 결코 지루하지 않습니다. 재기 발랄하지요. 글을 읽으며 웃을 수있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세네카의 글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어디든 적용이 가능합니다. 생생한 예를 보여드리지요. 나치스 공군과 그들의 머리 모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런던 대공습 때 건지 섬의 독일공군도 런던으로 향하던 폭격기 사단에 합류했습니다. 그들은밤에만 폭격 비행을 했고 낮에는 세인트피터포트에서 자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시간에 뭘 했는지 아십니까? 미용실에서 손톱 손질이며 얼굴 마사지를 하고, 눈썹을 다듬고 머리를 말고는 정성스레 매만지기까지 했어요. 헤어네트 - P139

언제나 메리의 슬픔이 찰스 램을 훌륭한 작가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문에 그가 시를 포기하고 동인도회사의 서기가 되어야 했다 해도 말이에요. 그의 연민은 위대한 작가 친구들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천부적인 재능이었지요. 워즈워스가그에게 자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힐난했을 때도 찰스 램생 내 눈앞에 놓인 가구, 충직한 개처럼 어디든 나를 따라다니내게는 숲과 계곡을 향한 열정이 없어. 내가 태어난 방, 평은 이렇게 썼답니다.
는 책꽂이와 낡은 의자, 오래된 거리, 햇볕을 쬐던 광장, 예전에 다닌 학교……. 이래도 자네의 ‘산‘이 없다고 해서 내게 열정을 불태울 대상이 부족해 보이는가? 나는 자네가 부럽지 않아. 오히려 가엾게 여기지. ‘마음‘만 있다면 무엇과도 친구가될 수 있다는 걸 정녕 몰랐단 말인가.‘
마음만 있다면 무엇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전쟁 중에내가 자주 떠올린 구절이랍니다.
신이 그

"우린 살았어! 영국군이 왔다고!" 그러고 다가가니, 그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몇 분만 더 버티면 되었을 텐데. 저는 진흙탕에 주저앉아 마치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양 흐느껴 울었습니다. 탱크에서 나온 영국군들도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장교들마저 울더군요. 그 고마운 사람들이 우리에게 먹을 것과 담요를 주고 우리를 병원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그들은 벨젠을 완전히 불태워 없애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축복이 함께하기를,
신문을 보니 그곳에 전쟁 난민 수용소를 세웠다고 하네요.
아무리 목적이 좋다 해도 저는 그곳에 다시 막사가 들어선다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그곳은영원히 공터로 남아야 합니다.
이런 얘기는 여기서 그만하겠습니다. 왜 제 입으로 직접 얘기하기를 꺼리는지 당신도 이제는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세네카가 이런 말을 했지요.
‘작은 슬픔은 말이 많지만, 크나큰 슬픔은 말이 없는 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전이 없다
조영주 지음 / 연담L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면인식장애  형사 친전 , 퇴직을 몇달 남겨두고 일어난 장애로 인해 휴직을 하고 있다.

손자 나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면서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 손자 나무가 " 우비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유치원에 앞에 자주 우비를 입고 나타나는 할아버지가 무섭다며 , 꼭 잡아달라고 .

형사 로서가 아닌 손자를 위한 할비의 마음으로 우비 할아버지를 탐문하기 시작하는데, 50년 지기 동네 친구가 불러서 간 장소에 책에 압사당한 문제의 우비할아버지를 발견한다.

우비를 입은채 죽은 시신, 뭉개진얼굴 , 등뒤에 부처문신에 알수없는 칼 자국들 .

책들사이에서 발견된 핏자국들, 천정이 뚫린 집 ,그리고 반전이 찢겨나간 추리소설들

 

 

 

 

단순히 책이 무너진 사건이 아닌 , 책에 의한 살인 사건임을 직감하고 경찰을 부른다.

파트너였던 정의정이 데리고 나타난 김나영 형사를 진천은 안면인식으로 인해 20대로 착각한다.

김나영 또한 진천의 안면인식장애를 믿지 않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테스트를 한다.

우비할아버지라는 사체는 손지문도 없고 인적사항조회도 안돼서 난감해하던 찰나 , 진천이 그남자에 집에 많이 있던 책중 " 화이트펄 " 출판사 책이 많이 것을 알고 출판단지 파주에 가서 회사를 방문한다.

화이트펄 출판사 부부는 우비할아버지는 김성국이며 재미교표이며 야쿠자 출신이라는 말을 듣는다.

김성국을 탐문하던중 , 20년전 출판사 부도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고 , 곧이어 일어나는 또다른 책을 사용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 현장에 똑같이 뭉개진얼굴, 흉기는 책이며 ,비슷하게 천장이 아닌 뚫린 창문 그리고 시체에 입혀진 우비 . 반전이 찢겨나간 소설들 .

과거에 부도를 내고 달아난 출판사 사장과 가족들 , 없어진 20억엔 , 그리고 피해을 입은 업체관련 사람들과 그 2세들 , 복수인가 아니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달아난 누군가의 살인인가 ?

연쇄살인과 출판사,그리고 책이야기, 반전이 찢겨나간 추리소설 그리고 조금씩 흘려지는 힌트- 사건의 실마리들

안면인식장애형사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여형사와의 캐미 속에서 사건은 조금씩 풀려간다.

사건을 풀어가는데 안면인식장애가 장애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때론 장점으로 작용도 하게 된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형사와 추리소설을 반전만을 찢는 ,추리소설을 싫어하는 범인의 대립.

그리고 살해된 김성국이 쓰던 ( 판권 페이지 연쇄살인 사건 ) 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그책에 담긴 이야기는 무엇일까 ?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속에서 얽힌 인간의 욕망 , 그리고 우리나라 출판사의 현실들 ,고서들이 가지는 매력과 그것을 관리하고 구매하고 파는 곳의 이야기들 . 추리소설이 가지는 매력들이 이책을 보는 또하나의 재미다.

가장 중요한 재미인 범죄자를 찾는 과정 , 그리고 그뒤에 숨겨진 사연,복수,희생 ,그리고 한자리에 모여

" 범인은 바로 너야 " 하는 클라이맥스를 보는 재미와 반전 .

나는 왜 여태 이작가를 몰랐지 ? 촘촘한 줄거리와 안면인식장애형사와 독특한여형사 - 캐릭터자체만으로도 시리즈로 가면 더욱더 기대되는 작품이다.

조영주 작가의 책을 더 찾아서 봐야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