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문장이 아니라 충분히 화려한 수사를 구사할 수 있는도 논술문이라는 성격 때문에 자제하며 써낸 문장이 발산하는 매력이라는 것이 있다. 미칠 능력이 없어서 그저 건전한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이나, 미치는 게 속 편해서 늘 미친상태에 있는 사람은 다가갈 수 없는, 얼마든지 미칠 수 있는데...
도 미치지 않고 생활하는 이의 존재감이라는 것이 있다. 수사학적으로 얼마든지 미쳐나갈 수 있는 이가 애써 담담한 문장을 쓸 때의 포스는, 욕망을 충분히 아는 이의 절제가 빚어내는치명적인 분위기와 닮았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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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왜곡의 음악을 듣기 위해 오늘도 여행 계획을 세운다. 그 미세한 음악까지 놓치지 않을 정도로 귀가 열린, 마음이 열린 나를 만나기 위해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꿈꾼다. - P131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그 왜곡을 찾아 더 새로운 곳으로, 누구도 못 가본 곳으로, 나만 알고 싶은 곳으로끊임없이 떠난다. 그렇게 떠난 그곳에선 골목마다 프리마돈나가 노래를 한다. 이름 모를 클럽마다 라디오헤드가 연주를 한다. 나뭇잎까지도 사각사각 잊지 못할 소리를 들려준다. 햇빛은 또 어떻고, 들어본 적 없는 음악들로 세상이 넘쳐난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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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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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채용을 하지 않고있다. ‘나는 헛일인 줄 알면서 무라이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싶다는 자기소개서와 졸업 작품으로 만든, 휠체어 타는 식구가있는 가족을 위한 집 설계 플랜을 동봉해서 우편으로 보낸다. 간단한 면접 후 예상외로 ‘나‘는 채용된다. 알고 보니 무라이 슌스케는 오랜 지인인 문부장관의 내밀한 부탁으로 국립현대도서관설계 경합에 참여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도쿄의 아오야마에 있는 본사와 여름이면 온 사무실이 다 옮겨가는 가루이자와의 여름 별장에서 무라이 슌스케 선생하고 보낸 일 년 남짓한 세월과 삼십 년 뒤에 나가 첨부한 현황에 대한 짤막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큰 기복도 드라마틱한 전개도 없이, 노년의 한 건축가와 그의 건축에 대한 철학과 열정을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공감하는 젊은 건축가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이 소설은 건축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뒷받침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곤충, 조류, 식물, 음식, 역사, 자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세밀한 묘사가 소설의 풍미를 더한다.
길지 않은 세월을 다루지만 소설 속 시간은 유구하고 느리게 흐르는 대하같이 느껴진다. 거기에 탄탄한 구성과 아름다운 언어가 소설에 매력을 더한다. - P423

가와카미 히로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의 매력은 첫째, 명석하고 막힘없는 언어 구사에 있다. 다양한 건축과 다양한 장소소설 속 가공의 것이 아닌, 우리의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작가는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 묘사하는 언어는 결코 설명을 위한 언어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언어들은 그 자체로소설을 풍요롭게 하는 과정이 되고 결과가 된다. 묘사라는 작업에 불필요한 부분도 모자라는 부분도 전혀 없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숨결은, 주인공이 선생의 일에 대해 현시욕과는 인연이 없는, 실질적이고 시대에 좌우되지 않는 아름다움‘ ‘디테일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고 모든 것이 최대한 합리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라고 표현한 것이 그대로 작가 자신의 지향점이 되고있음을 일러준다. 사용된 언어는 하나하나 우리 눈에 익숙한 것들인데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가 조합해서 쓰면 마치 부드러운애무 같은 독서감을 선사한다." - P424

담백해 보이는 이 작품은 놀랄 만큼 풍요로운 색채와 향기, 아름다움에 차 있다. 무엇보다도 의식주 중 하나인 건축이 우리의삶과 직결된 것이라는 사실을 재인식시킨다. 가구 하나하나, 가전제품…… 모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건축도 일상의 삶을 풍요롭고 편하게 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집이 집주인에게 영혼의 안식과 육체적 평안, 즉 기능과 편리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건축가의삶의 자세에 직결된다. - P422

건축은 준공되고 나서 비로소 생명이 부여된다. 나는 어느새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은 이용객과 그 시대에 의해 숨결이 부여되고 살아난다. 그렇게 악취미로 생각되던 니시하라 캐티드럴 성 베드로 대성당도 지금은 주변 풍경의 중심이 되고 조용한 침착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사람과 시간이 그 대성당을 키운 것이다. 선생님의 국립현대도서관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대로 흘러, 지나간 세월은 이 모형에 사소한 숨결조차 부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플랜의 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 선생님 플랜에 생명이 불어넣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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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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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는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은 별빛을 바라볼 줄 안다"고 말한 적이있다. 우리 스스로가 별이 될 수는 없지만, 시선을 시궁창의아래가 아니라 위에다 둘 수는 있다. 이 사회를 무의미한 진창으로부터 건져낼 청사진이 부재한 시기에, 어떤 공부도 오늘날 우리가 처한 지옥을 순식간에 천국으로 바꾸어주지는 않겠지만, 탁월함이라는 별빛을 바라볼 수 있게는 해줄 것이다. - P13

여러 가지 질문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기억이 있다. 회전 스시는 과연 스시인가, 고래상어는 상어인가, 무표정도 표정인가.
무의미도 의미인가, 단절된 관계도 관계의 일종인가..
이 세상 속에서 산다는 것은 이러한 모순, 긴장, 혹은 혼란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 세상을 주제로 논술문을 쓴다는 것은그러한 모순과 긴장과 혼란을 직시하되, 그에 대해 가능한 한,
모순 없는 문장을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논술문을 쓰기 위해서는 정교하게 정의한 개념 - P40

과 분석적 논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외부 세계에 대한 충분한 경험적 지식이 필요하다. 현실 사회 속에서 고기와 작은고기가 빚는 혼란, 스시와 회전 스시가 일으키는 모순은 단순히 논리학을 통해 해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모순에 이르게 된 인간과 세계에 대해 일정한 경험적 지식이 있을때, 비로소 그에 대해 모순 없는 문장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스시를 좋아해"라고 말하지 않으려면, 중국 음식과 스시에 대한 경험적지식이 필요하다. - P41

세상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이 쌓일수록, 세상은 모순이나긴장이나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완벽하게 흠결이 없는 혁명가, 오직 탐욕으로만 이루어진 자본가, 오직 순박함으로만 이루어진 농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은, 도덕적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던 혁명가, 너무 게을러서 탐욕스러워지는 데 실패한 자본가,
섣불리 귀농했다가 야반도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을 자기 희망대로 단순화하지 않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누군가를 독립운동가 혹은 친일파로 단정해버렸을 때는 보이지 않던 시대의 문제가, 사실은 그가 독립운동과 친일을 동시에 하던 모순적 인물난을 발견했을때 비로소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 - P42

영정 사진은 망자를 상기시키기 위해 거기에 있지만, 영정 사진이 곧 망자는 아니다. 즉 재현은 그 어떤 대상을 상기시키지만 그 대상 자체는 아니다. 어떤 풍경화도 그것이 표현하는 풍경 자체는 아니다. 어떤 나라의 지도도 그것이 가리키는 나라 자체는 아니다. 어떤 지구본도 지구 자체는 아니다.
호르헤 보르헤스는 이 점을 혼동하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일이 벌어지는지 일종의 사고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누군가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궁극의 지도를 만들겠다고 꿈꾼다. 그는 실제의 풍경과 모든 점에서 일대일로 정확하게 대응하는 지도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의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될수록 그 지도는 점점 더 커져간다. 그래서마침내 지도가 현실과 완벽하게 조응하게 되었을 때, 그 지도의 크기는 현실과 똑같은 크기가 된다. 문제는 그렇게 큰 지도는 들고 다닐 수도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실과 똑같다면그냥 현실을 들여다보면 되는데, 무엇 하러 똑같은 크기의 지도를 들여다보겠는가? - P61

이처럼 제목은 중요하다. 제목은 독자의 관심을 환기하고,
일견 모호하고 불투명한 책 내용을 선명히 해줄 수 있고, 다면,
적인 글 내용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제목으로 인해 비로소 글이 완성되는 멋진 경우도있다. 미국의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시를 한 편 읽어보자. 아래의 시는 그 제목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다.

"믿기지 않겠지만/갈등이나/고통없이 평탄하게/살아가는 사람들이/정말 있다./그들은 잘 차려입고/잘 먹고 잘 잔다./그리고 가정생활에 만족한다./슬픔에 잠길 때도/있지만대체로 마음이 평안하고/가끔은 끝내주게/행복하기까지 하다./죽을 때도 마찬가지라 대개 자다가 죽는 것으로 수월하게 세상을 마감한다./믿기지 않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정말존재한다."



찰스 부코스키가 지은 이 시의 제목은 외계인들>이다. - P69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운전, 요리, 각종 수리의 달인이 되고 싶다. 생활의 편의도 편의지만, 연애하는 데 아주 쓸모 있을 것 같다. 운이 좋아 대학생이 되고 나면, 의무적인 인성 교육 따위는 받고 싶지 않다. 참고 받는 인성 교육이라면, 인성은 나아지지 않고 인성 교육이라는 미션을 하나 클리어했다.
는 느낌만 남을 것 같다. 남을 착취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환경에놓이고 싶다. 왕자가 되지못했다는 이유로 흑화되고 싶지 않다. - P91

환자를중년이 되면, 차라리 결핍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 결핍이오히려 가능성을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청장년 시절의 어떤결핍이 오히려 자원이 되어 있기를, 그래서 결핍으로 고통받기는 했지만, 결핍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고 사는 인생이고 싶지는 않았다고 나직하게 중얼거릴 수 있기를 바란다.

노년이 되면 체력이 현격히 저하된다. 그때 가서 새삼 구해야 할 나라 같은 게 있으면 너무 피곤할 것 같다. 꾸준히 공부해왔다면, 공부가 이미 습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매번 결단을 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결단에 필요한에너지를 절약하여,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배우는 거다.
수중에 돈이 있으면 기꺼이 지불하면서 - P95

하고 대답했다. "나쓰메 소세키가 좋습니다. 두 사람은 차원이다릅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쿠사마쿠라(草t, 풀베개)》는 다음과 같은문장으로 시작한다. "산길을 오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치를 따지면 모가 나고, 정에 치우치면 휩쓸리고, 고집을 피우면옹색해진다. 이래저래, 사람의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사람의세상은 이처럼 살기 어렵다니, 《쿠사마쿠라》의 첫 부분은 웬지 단테의 《신곡》 첫 부분을 연상시킨다. "인생을 절반쯤 살았을 무렵, 길을 잃고 어두운 숲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 거칠고, 가혹하고, 준엄한 숲이 어떠했는지는 입에 담는 것조차 괴롭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죽음도 그보다는 덜쓸 것이다."

그래서 80대의 우스키 상에게 물었다, 산다는 것은 좋지않은 일입니까? 우스키 상이 대답했다, 좋은 일도 있습니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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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10만 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 - 카피라이터의 시선으로 사로잡은 일상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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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음악은 내게 실용이다. 책보다도, 그림보다도, 사진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일을 하게 하고, 집중을 하게 하고, 여행을 하게 하고, 술맛을 돋우고, 기분을 바꿔놓고, 마음을 간지럽히고, 흐린날에 햇살을 드리우고,햇살이 가득한 날에 비가 오게 하고,해를 더 반짝이게 만들기도 한다 . 그리고 맞다 . 이 글을 쓰게 했다 .음악이 - P119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그 왜곡을 찾아 더 새로운 곳으로, 누구도 못 가본 곳으로, 나만 알고 싶은 곳으로끊임없이 떠난다. 그렇게 떠난 그곳에선 골목마다 프리마돈나가 노까지도 사각사각 잊지 못할 소리를 들려준다. 햇빛은 또 어떻고, 들래를 한다. 이름 모를 클럽마다 라디오헤드가 연주를 한다. 나뭇잎어본 적 없는 음악들로 세상이 넘쳐난다.
그 왜곡의 음악을 듣기 위해 오늘도 여행 계획을 세운다. 그 미세한 음악까지 놓치지 않을 정도로 귀가 열린, 마음이 열린 나를 만나기 위해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꿈꾼다. - P130

예순도 넘은 정경화가, 그 나이만큼, 단정한 셔츠를 입고, 바흐를 연주하고 있다.
작지 않았고, 적지 않았고, 유연했고, 거대했고, 전부였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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