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꿈속에서 연주해준 음악은, 나중에 생각해보면 소리의 흐름. 이라기보다 오히려 순간적이고 전체적인 조사照射에 가까웠다는생각이 든다. 그 음악이 존재했음을 나는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음악의 내용을 재현하기란 불가능하다. 순서대로 더듬어가기도 불가능하다. 만다라 그림을 말로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듯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영혼 깊숙한 곳의 핵심까지 가닿는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듣기 전과 들은 후에 몸의 구조가 조금은 달라진 듯 느껴지는 음악 그런 음악이 세상에는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다.
실제로 내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것도 그 재킷을 소중하게품에 안은 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만약 비틀스의 재킷 사진이 없었더라면 내가 느낀 매혹도 그토록 강렬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는 음악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곳에 있었던 것은 음악을 포함하면서도 음악을 넘어선, 더욱 커다란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 정경은 순식간에 내 마음속 인화지에 선명히 아로새겨졌다. 아로새겨진 것은 한 시대 한 장소 한 순간의, 오직 그곳에만있는 정신의 풍경이었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그때 나는 꿈속이란 걸 알았다 나는 지금 버드가 나오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꿈을 꾸면서 ‘이건 꿈이야‘라고 확신하는 때가. 그리고 꿈속에서이토록 선명한 커피향을 맡을 수 있다는 사실에나는 불가사의한 감동을 느꼈다.
노인이 말했다. ‘알겠나, 자네는 혼자 힘으로 상상해야 돼, 정신 차리고 지혜를 쥐어짜서 떠올려보라고, 중심이 여러 개 있고 둘레를 갖지 않는 원을, 그렇게 진지하게 피나는 노력을 하고서야기이야 비로소 조금씩 그게 어떤 것인지 보이거든." oler"어려울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말 "당연하지." 노인은 무슨 단단한 것이라도 뱉어내듯이 말했다. "이 세상에, 어떤 가치가 있는 것치고 간단히 얻을 수 있는게 하나라도 있는가." 그러고는 행을 바꾸듯 간결하게 헛기침을한 번 했다. "그래도 말이야, 시간을 쏟고 공을 들여 그 간단치않은 일을 이루어내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크림?"
하지만 노인이 머리가 이상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나를 놀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지금 여기서, 중요한 무언가를 내게전하려 한다. 왠지 몰라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똑같은 곳을 빙빙 맴돌 뿐이었다. 중심의 여럿(혹은 무수히) 있는 원이, 어떻게하나의 원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고도의 철학적 비유 같은 것일까? 나는 단념하고 눈을 떴다. 더 많은 실마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노인의 모습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어디에도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내가 환영을 본 걸까? 아니, 당연히 그것은 환영이 아니다. 그는 틀림없이 눈앞에 있었고, 우산을 단단히 틀어쥐고서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걸고, 불가해한 물음을 남기고 갔다.
나는 어쩌다 이런 곳에 와 있는가? 좌석에 앉아 어깨를 웅크리고 달아오른 뺨을 손바닥으로 식히면서 자문했다. 특별히 보고 싶지도 않은 여자애의, 특별히 듣고 싶지도 않은 피아노 리사이틀을 위해, 용돈을 털어 꽃다발까지 사서,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11월의 일요일 오후에 이런 산꼭대기까지 제 발로찾아오다니. 참석 의사를 밝히는 엽서를 우체통에 넣었을 때부터 머리가 어떻게 됐던 게 틀림없다.
그래도 만약 행운이 따라준다면 말이지만, 때로는 약간의 말)이 우리 곁에 남는다. 그것들은 밤이 이슥할 때 언덕 위로 올라가서, 몸에 꼭 들어맞게 판 작은 구덩이에 숨어들어, 기척을 죽이고, 세차게 휘몰아치는 시간의 바람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동이 트고 거센 바람이 잦아들면, 살아남은 말들은 땅 위로 남몰래 얼굴을 내민다. 그들은 대개 목소리가 작고 낯을 가리며, 다의적인 표현 수단밖에 갖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그들은 증인석에 설 준비가 되어 있다. 정직하고 공정한 증인으로서, 그러나 그렇게 인내심 강한 말들을 갖춰서, 혹은 찾아내서 훗날에 남기기 위해 사람은 때로 스스로의 몸을, 스스로의 마음을 조건 없이 내놓아야 한다. 그렇다. 우리의 목을, 겨울 달빛이 내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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